〈 64화 〉Wrath (I'm Sorry, Shara) - 3
“먼저 자, 사라.”
“응.”
사라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코에를 껴안고서. 나는 저녁을 먹고 잠을 좀 자두었다. 사라의 무릎이 아닌 바로 옆 침대에 누워서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색한 분위기고 나발이고 무조건 깨우라고 말을 전해 뒀지만 다행히 그어떤 일도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밤에 눈을 뜨고 한 손에 권총을 들고서 조용히 사라를 쳐다보았다. 오늘도 우리는 싸움만 했을 뿐, 사적이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여기서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할지, 코에가 함께하게 된 만큼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해야 할지, 모두 그런것 뿐이었다.
깊어가는 밤, 사라가 어느정도 잠에 빠졌겠거니 했을 때 또 혼자서 읊조렸다.
“잘 자, 사라.”
내 생각도 깊어져 갔다. 머릿속에 박혀서 굴러가는 장면과 기억들, 모두 미리암그림자 교단의 것들이었다. 엄마가 몸을 담궜던 사이비 교단. 어떤 곳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내 눈에는 변태 집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어릴 적, 내 몸을 만져대면서 의식이라며 피를 묻히고 세례명을 받았던 그 시절, 중요한 의식의 날이 되면 모두가 모여서 달빛 아래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찬송가 마냥 노래를 불렀던 그런 미친 교단.
내가 창호를 계속 경계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이 의식이 없었다면 딱히 경계할 이유는 없었겠지. 지금도 자기는 조건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시 떠올려보자, 지금까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은 채 의식이 치뤄졌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시발, 어떻게 하라고......
처음 교단에 들어섰던 때는 중학생 때였다.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나를 엄마가 데리고서 아침에 향했던 곳이었다. 모두 아빠의 훈련이 없던 날들이었다. 옷은 단원이었기에 뭔가를 입을 필요는 없었고 엄마만 따로 걸쳐 입었었다. 이상한 옷은 아니고 교단의 옷 치고는 바깥에서도 충분히 입고 다닐 만한 디자인이었다. 아무튼, 교단에 첫 걸음을 내딛자마자 한 것은 다른 신자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것과 두 가지의 시험이었다. 얼굴을 비추는 거야 뭐, 내 면상 까고 보여주는 것이면 그만이었으니까 넘기고 시험이 기억에 잘 남아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마리아의 그림자가 되기 위한 관문이었다. 게임이나 영화마냥 관문이랍시고 뭔가를 사냥해오라거나 보물을 찾아오라는 건 아니었고 단순히 잔에 담긴 것을 마시면 그만이었다. 정말 간단하지만 당시의 내게는 괴로웠고 좆같았던 관문이었다. 피를 마시는 것인데 그게 다른 피도 아닌 엄마의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즉석에서 칼로 팔 쪽을 그어 잔을 채우는 피를 말이다. 마리아는 어머니의 상징이었고 그것 빗대어 그녀의 피를 마심으로서 그림자가 된다나. 지금도 그렇고 엄마만큼은 사랑하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괴로운 기억이었다.
두 번째 시험은 그림자로서 마리아에게 맹세하는 것이다. 멩세의 의미로 십자가에 묶여 등을 내주었었다. 작은 내 등에 마태서들이 한 차례씩 성수라며 물을 뿌리고 잔에 묻었던 엄마의 피로 내 세례명을 적었었다. 이렇게 두 시험을 끝내고 원치는 않았지만 엄마를 따라서 교단의 단원이 되었던 것이다. 역시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시발.
크립톤의 소리들은 들려오지 않았다. 창호의 말대로 크립톤은 잘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벌써 새벽 시간대임에도 근처로 한 마리조차 모여들지 않았다. 이번 밤은 잔잔하게 흘러갈 듯 했다. 또 오랜만에 맞이하는 조용한 밤이었다.
[아줌마도 자.]
그런 감상에 젖어있을 때,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자 사라의 품에 안겨있었을 코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여전히 두려워하는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내게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잠을 자라고.
[......너나 자, 꼬맹이. 어린놈 주제에.]
역시 어린 꼬맹이는 내게 힘들었다. 침대까지 있으면 잠이나 잘 것이지.
[하지만 아줌마가.]
갑자기 날 걸고 넘어지는 거 봐라. 무서워서 숨었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간 크게 서 있네.
[내가 뭐?]
일부러 노려보았다. 빨리 자라는 의미로. 하지만 꼬맹이의 말에 난 혼란스럽게 되었다.
[울고 있는걸.]
[......뭐?]
그 말에 잠시 권총을 내려놓고 손을 눈으로 가져가보았고.......정말로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존나 뜬금없게 갑자기? 왜? 모르겠다. 몇 번 눈물을 보인적은 있었긴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나조차도 느끼지 못한 적은 처음이었다.
“시발, 뭐야 이게. 꼴사납게.”
빠르게 닦아내고 다시 눈앞의 꼬맹이를 쳐다보았다. 눈물까지 보여주니 만만한건가, 한 손을 내 손목쯤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 손은 내가 만지기에는 부서질 것 같을 정도로 작아보였다. 이 꼬맹이도 사라와 같은 세계의 사람이었다.
[야, 꼬맹이.]
[난 코에야.]
[.......그래, 코에. 넌 사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사라언니?]
[그래.]
사라는 언니라고 불러주네.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더 적은데.
[좋은 언니야.]
[말은 통하고?]
[아니. 그래도 알 것 같아. 좋은 언니야. 아줌마랑은 달라.]
[아까부터 자꾸 아줌마라고 하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사라보다 나이가 적어. 무려 3살이나.]
[그런데 아줌마는 왜 사라언니한테 언니라고 안해?]
[......자라.]
그냥 자라고 했다. 이대로 얘기를 이어갔다가는 다른 것들도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귀찮게 할 것 같았고 크립톤의 위험도 있으니.
[아줌마는 안 자?]
[그래. 안 자.]
[왜?]
[크립톤이 찾아오면 싸워야 하니까.]
[아줌마 강해?]
[최근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모르겠다.]
솔직하게 답하면 그렇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난 강하다. 그건 분명했다. 내가 생각한 최정점에 있던 아빠새끼도 죽여버렸고 거슬리게 했던 재혁이도, 케이니도 족쳐버렸다. 이름 가는 용병들도 죽였고 일본에서 제일 간다는 야쿠자에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떨쳤던 마피아 새끼들도 족친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사라에게 ‘서울의 마녀’라고 까발려진 뒤에는 모르겠다. 사라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졌으니까. 그녀의 강한 눈빛과 말에서는 항상 내가 지고 말았다. 시발.
[이제 적당히 물어봤다 싶으면 쳐 자. 귀찮게 굴지 말고.]
[난 귀찮은 아이가 아니야!]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코에였다.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권총을 놓았던 손으로 급히 꼬맹이의 입을 막아버릴 정도였다. 사라는 깨어나지 않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였다. 크립톤. 바로 창문에 귀를 대고 들을 수 있는 범위까지 소리를 들어보았다. 다행히도 들리는 발소리나 울음소리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너 미쳤어? 크립톤이 소리라도 들으면 어쩔 뻔했어?!]
[.......죄송해요.]
[없어서 망정이지. 새겨들어. 니가 정말 우리와 함께 가고 싶다면 꼬맹이들이나 하는 짓 하지마. 알겠어?]
[......네.]
[그럼 가저 잠이나 자.]
혼내서 그런가, 꼬맹이는 그대로 시무룩 해진 채 다시 사라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히 그녀에게 안기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방금은 정말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래서 난 저런 꼬맹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제일 싫은 것이다. 식량도 문제지만 중요한 순간에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으니까. 사라가 그러자고 했으니 데리고다니는 거지. 하여간, 시발.
조용한 밤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귀찮은 밤이 되고 말았다. 기분 잡친 그대로 다시 권총을 들고 방문 밖과 창문 밖의 소리들을 집중했다. 시선은 여전히 사라에게로 향한 채.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난 코에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 진영이, 오늘 엄마랑 같이 마트에 갈까?”
“좋아요!”
오랜만에 함께 하는 엄마와의 외출이었다. 원래라면 아빠와 함께 훈련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하루 정도는 쉬라며 허락해주시고 어딘가로 떠나가셨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앉아있었는데 마트에 가자고 내게 말해준 것이다. 외출도 외출이지만 마트에 가면 수많은 과자나 음료수들이 있기에 좋을수 밖에 없었다.
엄마와 함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우리 집은 조금 구석진 곳이었기에 버스를 타려면 좀 많이 걸어야 했다. 그래서 학교를 갈 때도 다른 반 친구들보다 일찍 출발하는 편이었다. 엄마가 내 한 손을 잡아주며 빈 도로를 걸어갔다.
“우리 딸, 먹고 싶은 거 있니?”
“응!”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마침 다가오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창문 밖으로 내가 살고있는 동네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지나면 여름이었다. 저 멀리, 내가 엄마와 함께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모습도 보였다.
마트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카트를 끌고서 안에 가득히 담으며. 엄마도 카트를 하나 끌고 그 옆에 내가 따라 걸었다. 제일 먼저 요리해 먹을 재료들을 샀고 휴지나 생활에 필요한 몇몇 도구들을 샀다. 그 뒤가 내 차례였다. 과자 코너에 들어가자 많은 종류의 과자들이 진열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키지만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닿는 순부터 과자들을 골랐다.
“너무 많이 고르면 안 돼. 아빠가 또 뭐라고 하신다?”
“그치만, 다 먹고 싶어.”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걱정마.”
“피.......”
결국 몇몇개는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엄마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장보기가 끝나고 마트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다음에도 꼭 마트에 가기를 산타할아버지한테 말했다.
해가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사라였다. 마침 난 아침운동으로 권총과 나이프를 꺼내 들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고치던 중이었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품에 안긴 코에를 쓰다듬고 천천히 정신을 깨우기라도 하는 듯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짚으며 방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부딪히지 않도록 구석으로 비켜 총과 나이프를 집어넣었다. 우리는 각자의 아침을 맞이했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창호의 부름에 코에를 깨우고 내려갔다. 이마저도 내가 먼저 내려갔고 그 뒤에 사라가 코에와 함께 내려왔다.
[언니, 다 내려왔어.]
꼬맹이가 그녀의 옷깃을 건들면.
“계단 끝난거야?”
그녀가 답했다. 우선 아침을 먹었다. 집에 굽는 기계가 따로 있던 것인지 창호는 빵을 구워봤다고 한다. 여기는 아니지만 밀도 따로 키우고 있는 덕분에 가능하다나. 그런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데 굽는건 어떻게 한거래? 모르겠다. 애초에 요리하고는 거리가 1도 없는 나니까.
어제와 똑같이 창호는 식사기도를 했고 사라와 코에는 바구니에 담긴 빵을 쥐고 한 입씩 베어먹으려 했다. 난 가장 먼저 그 둘을 막아섰다. 꼬맹이한테는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잠시 조용히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사라에게도 그녀의 입에 잠시 손가락을 데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바구니에 있던 빵을 하나 집어 베어먹었다. 씹는것도 여러번. 독이나 약을 탄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먹어도 좋다고 꼬맹이와 사라에게 알려주었고 마침 그의 기도도 끝나게 되었다.
아침을 먹은 직후에는 바로 차 앞에 있었던 잔해를 치우려 테이블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창호가 우리 모두를 잠시 불러세웠다.
“아침에 잠깐 시간 괜찮긋나?”
“지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다.”
“저는 괜찮아요.”
“엔도 괜찮긋나?”
“......시간만 오래 안 잡아먹으면 돼. 난 빨리 잔해를 치워야 하니까.”
“그는 걱장마라. 가는 길이니께.”
“흠, 그럼 따라는 가줄게.”
창호는 우리들의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입고있던 농촌 아저씨 패션에서 정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밖으로 나가며 안내를시작했다.
그가 제일 앞에 서고 난 품안에 있는 권총을 언제라도 꺼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바로 뒤에서 사라가 내 옷깃을 잡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코에가 허리를 잡으며 따라왔다. 권총까지 쥐고 이동하는건 과민반응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약탈자를 대비하는 동시에 아직도 믿지 못하는 창호때문이니까. 아침에 빵을 먼저 먹고 확인한 것도 그 이유였다.
“여다. 얼마 안 멀제?”
[교회?]
그가 끌고 도착한 곳은 아니나 다를까, 미리암그림자 교단이 사용했던 걸로 보이는 작은 교회 건물이었다. 이 건물도 멀지 않는 숲 안에 감춰져 있었다. 보통은 반지하나 꼭대기 층에 전세를 내는 건물들이 일반적인데 교회건물을 쓸 정도면 이 지역에서는 규모가 작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참고로 내가 단원으로서 다녔던 곳도 교회였고 규모가 큰 곳 중 하나였다.
창호가 문을 열어 들어가고 뒤이어 따라 들어갔다. 그는 마리아의 석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엔, 여기는?”
“교회야. 지금 창호는 기도중이니까 그냥 조용히 있으면 돼.”
“응.”
이제서야 사라와 하는 첫 대화였다. 아침을 알리는 인사도 없이 이렇게, 그저 필요한 것만 묻는 대화. 그래서일까, 교단에서 탈퇴한지 오래임에도 나는 마리아에게 속으로 기도했다.
‘그래도 사라가 나를 믿고서 부산까지 따라와 주기를.’
지금처럼 날 싫어해도 상관없었고 대화가 줄어든 것도 버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부산까지는 나를 계속 믿어주기를 바랬다. 과거에 대한 변명을 할 생각이 아니다. 그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창호의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교회의 문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농사일을 해야하는게 있다며 돌아간다고 했다. 도울게 있냐고 했지만 아침일은 간단하니 괜찮다고 했고 잔해부터 치우라고 했다. 사라와 코에는 내가 데려가기로 했다.
“그라믄 점심쯤에 올라온나. 밥은 먹고 해라.”
“그래.”
그렇게 창호를 보내고 우리는 잔해에 도착했다. 여전히 꽉꽉 막힌 잔해가 길을 정성스럽게 막고 있었다. 플라스틱 폭탄이나 적어도 수류탄이 있었다면 꽤나 부수고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굴삭기라도. 뭐, 있을리가 있나.
우선 사라와 코에는 잔해더미 옆에 있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혔다. 내 시야에 잘 보이도록. 그리고 잔해의 사이즈를 재보았다. 흙은 기본이고 커다란 나뭇가지들과 돌 파편들로 엄청나게 꼬여있었다. 전부 한 손으로 치우기에는 무리였다. 지렛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없고 진짜 순수 힘으로 다 치워야 했다. 진짜 좆됐네.
일단 가지들을 잘라내기로 했다. 나이프를 꺼내 자를 수 있는 자잘한 가지들을 잘라나갔다. 한손 뿐이라 다른 손으로 쥐고 자를 수는 없었지만 미리 한 차례 꺾어서 자르거나 힘을 주고 내려쳐 베어내는 걸 반복했다. 겨우 이것만 했을 뿐인데 벌써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래도 이어나갔다.
‘서걱.’
중간크기쯤 되는 가지에 나이프가 박혔지만 조심히 톱으로 자르듯 베어내었다.
‘따닥, 딱!’
발까지 사용해가면서 가지를 세게 차서 꺾어주었다. 동시에 자잘한 돌 파편들도 저만치 치워버렸다.
‘푹.’
나이프를 휘두르다가 굵은 가지에 박히게 되었다. 지금 것으로는 벨 수 없는 것이라 다시 힘을 주고 조심히 빼내었다.
“나중에 옷 구하러 가볼래?”
[응?]
“음, 그러니까. 이거.”
중간에 사라와 꼬맹이를 보았다. 둘이서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가 안되니 서로 말을 하면서도 동작들을 붙여갔다. 방금은 사라가 자신의 옷과 꼬맹이의 옷을 만져주는 것으로 의미를 전달했다.
‘데구르르르’
가지를 쳐내다가 돌멩이들이 굴러떨어졌다. 해는 벌써 중앙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딱 맞춰서 올라가는게 좋겠지만 미리 올라가기로 했다. 그래야 창호가 다른 허튼짓을 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자,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볼까? 고개를 돌리고 남아있는 잔해의 양을 보았다. 3시간 동안 한 팔로 열심히 일한 결과는 이제야 10%정도를 치워내었다.
“시발!”
들고있던 나이프를 흙에 던지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좆같이 했는데도 겨우 10%? 인생 진짜 좆같네. 시간도 3시간이나 지났는데 겨우 이 정도라는게 정말 좆같았다. 거기다 일정도 깨지게 되었다. 난 분명 이틀이면 치울 수 있다고 말해놨는데 더 걸리게 생겼다. 생각해보니 내가 한 팔 뿐이라는 것을 전혀 가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죽고 살아났더니 병신이 됐다.
몰라.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그게 먼저다. 오랜만에 힘쓰는 일을 했더니 배고픔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서사라와 꼬맹이를 데리고 올라갈 생각인데, 또 문제가 생겼다. 코에가 아주 잘 자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저 꼬맹이, 새벽에 깨어났었지. 어이구, 시발.
“사라, 올라갈 시간인데, 코에는 언제부터 잠들었어?”
“10분 정도일거야. 아마.”
어이구, 개시발. 얼마 되지도 않았네.
“코에 깨워, 잠을 자더라도 올라가서 자라고 해.”
“......응.”
사라는 개의치 않는 대답으로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코에를 깨웠다. 꼬맹이는 눈을 비비다가 사라의 손을 작은 두 손으로 잡으며 일어났고 내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사라의 품 안으로 더 들어가버렸다.
[밥 먹을 시간이야. 올라갈거야.]
[......응.]
둘 다 대답이 영 시원치가 않았지만 내게 뭐라고 할 권한은 없었다. 그대로 둘을 이끌고 창호의 집까지 향하는 길에 올랐다. 사라가 내 옷깃을, 코에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잠시만.”
도착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잠시 세워두었던 차를 확인했다. 크립톤과 약탈자, 그리고 그가 무슨 장난질을 해놓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겉을 확인하고 안까지 꼼꼼히 확인한 결과 손을 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까지 끝내고서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점심을 만들고 있는 소리나 냄새는 있지 않았다. 대신 창호가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우선 사라와 코에를 윗층으로 올려보내고 내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책을 읽는 그였다.
“쪼까 일찍 올라왔네?”
“왜? 음식에 이상한 짓거리 할 시간 사라져서 좆같냐?”
“아그야, 내 말했지 않았나. 이상한 짓 안칸다.”
“그러기에는 내가 별의별 의식들을 존나게 봐와서 말이야.”
“그것도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의식이고, 나 혼자 농사나 짓고 살고 있는디, 어케 그짓을 하겠노.”
“......집에 톱이나 삽, 있어?”
화제를 바꾸었다. 의심을 거둬 들인건 아니다. 단지 이 얘기로 물고 늘어지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언제든지 걸고 넘어지면서 단단히 머리에 새기도록 해줄 거지만.
“있기는 한디. 필요하나?”
“어.”
“그라믄 밥먹고 줄게. 가지가라.”
창호는 책을 덮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도 일어서서 따라 옆에 섰다. 재료를 꺼내는 모습부터 요리를 하는 모습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다른 장난질은 하지 않았다. 음식들을 테이블 위로 옮기고 의자에 앉아서 윗층에 있는 사라와 꼬맹이를 크게 불렀다.
“사라! 밥 먹어!”
문이 열리고 어제처럼 꼬맹이가 계단에서 사라를 도와 내려왔다. 자리에 앉고 창호는 식사기도를, 우리들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오늘 점심은 밥과 참치통조림, 당근볶음이었다.
[당근 싫어......]
시작부터 꼬맹이가 반찬 투정을 부렸다. 그래서 밥그릇 위에 당근을 가득 올려주었다.
[언니. 아줌마가 나한테 당근만 줘!]
“엔, 코에에게 무슨 짓 한거야?”
무슨 내가 꼬맹이에게 해코지라도한 마냥 가시와 함께 물어오는 사라였다. 예전처럼 확인 차 묻는 표정이 아니었다.
“당근 안 먹으려고 하길래 밥그릇 위에 올려줄 것 뿐이야.”
“......코에, 당근도 같이 먹어야지.”
다행히 해명되었다. 그렇게 코에의 반찬투정을 잡는 것은 사라에게 넘어갔다. 그녀는 보지 못하지 한 번씩 반찬들의 위치를 외우고 꼬맹이의 밥 위에 번갈아 가며 올려주었다. 창호는 그 장면을 보면서 화목한 가정을 보는 눈빛과 함께 미소짓고 있었다. 당연히 난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치캔은 우리 것이 아닌 창호의 것이었다. 그래서 난 밥과 당근볶음만 깨작거렸고 참치는 전혀 건들지 않았다. 두 개도 아닌 겨우 한 개였기 때문에 나까지 손을 대면 분명히 양이 적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창호는 중간에 그런 나를 보고서 참치캔을 하나 더 꺼내줄까 하는 눈짓을 보냈지만 거절했다. 그렇게까지 빚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어떻게 이용해 올지 모르니까.
점심을 먹은 뒤에는 간단히 눈을 붙였다. 아침에 몸을 쓴 덕분에 피곤이 쏟아졌고 원래라면저녁에나 잘 잠을 미리 자게 되었다. 알람은 사라의 목소리로 대신하기로 했다.
“사라, 1시간만 눈을 붙일테니까 꼭 깨워줘.무슨 일 있어면 바로 깨우고.”
“응. 자고 난 후에도 내려갈 거지?”
“그래.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부산에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려면 말이지.”
“알겠어.”
[꼬맹이도. 사라는 시계를 보지 못하니까 1시간이 넘어버리면 깨우라고 전해주고.]
[게으름뱅이.]
[......깨우기나 해.]
여기서 존심 긁힌걸로 싸우면 또 길어진다. 그래서 대충 답하고 눈을 감았다. 밤을 샌 것도 있고 몸까지 써서 그런지 금방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깊은 잠 말고. 그러기에는 아직까지 불안요소가 하나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교회에서 처음 치루는 의식으로 보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이 교회가 아빠랑도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단 단원이나 신자는 아니었고 협력 관계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처음 의식을 보았던 날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오늘은 중요한 의식이 있는 날이라며 내게 검은색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목에는 마리아님의 말씀이 들어간 십자가를 메어주었고 함께 교회로 향했다. 그 때 교회는 다른 날보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었다. 모두 검은색의 옷을 입고서 마태서의 말씀을 들으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1시간이 흘렀을까, 마태서가 말했다. 의식을 치룰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굳게 닫혀 아무도 들이지 않던 문이 열리고 안으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오빠 한 명과 누나 한명이 들어왔다. 둘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신자들에 의해 끌려 들어오고 있었다. 아빠가 자주 쓰던 묶는 방법이었다.
“너희 아빠께서 힘쓰신 거야.”
“아빠가?”
살인과 납치를 배우기 전, 아주 어릴 적의 나였으니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사람을 관리한다고 밖에 들은게 없었다. 아무튼, 그 때 보았던 두 고등학생 남녀의 표정을 볼만 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었고 겁을 먹고서 공포에 떨고 있던 눈빛, 지금의 내가 보았더라면 엄청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마리아님이 내려보내신 분신을 들이겠습니다.”
마태서와 말과 함께 신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우리와 의식이 진행될 단상쪽 사이에 철창을 둘러 잠궜고 밖에는 우리가, 단상에는 고등학생 오빠, 누나가 올라가게 되었다. 둘의 입에는 여전히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뒤, 자른 신자들이 바깥에서 천으로 덮어진 우리 하나를 밀며 들어왔다. 천으로 가려져 있었기는 했지만 아빠덕분에 감각이 길러진 나에게는 전달되어 왔었다. 미세한 울음소리와 무엇이 들어있는지.
잠시뒤, 철창이 열리고 신자들이 들어갔다가 바로 밖으로 나온 뒤 단단히 잠궈버렸다. 마태서의 말이 시작되었다.
“마리아님이시여. 허기지신 배를 우선 달래옵소서.”
동시에 천이 거둬졌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맹수가 들어있었다. 눈빛이 매서운 호랑이였다. 허기가 졌는지 배 쪽에 뼈가 보였고 세상빛을 보자마자 오빠, 언니를 보며 바로 달려들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풀거라.”
호랑이를 본 오빠, 언니가 급히 몸을 일으켜 우리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하지만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으니까. 마태서의 지시에 신자 한 명이 지팡이를 이용해 우리의 문을 열었고 뛰쳐나온 호랑이가 먼저 오빠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건 한 순간이었다. 비명소리도 들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오빠의 목부터 몸까지, 고기가 되는 부분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걸 본 언니가 다시 열심히 소리를 쳤지만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호랑이가 벌써 오빠를 먹어치운 것인지 그대로 언니를 덮친 것이다. 오빠와는 다르게 언니의 비명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길게, 아주 길게. 그럼에도 단원들과 신자들은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마리아님께 기도를 올렸다. 마태서만이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와 함께.
호랑이는 언니의 몸까지 헤집으며 식사를 끝내고 순순히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단상 쪽 바닥에는 피가 튄 흔적들이 많았고 철창들에도, 맨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신자들의 얼굴들에도 묻어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던 내게, 문 사이로 보였던 아빠의 눈동자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