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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Wrath (I'm Sorry, Shara) - 2 (63/72)



〈 63화 〉Wrath (I'm Sorry, Shara) - 2

차 밖으로 여전한 시골의 풍경들이 지나갔다. 아직 해가  있는 만큼 크립톤 하나 없는 평화로운 낮이었다. 물론 풍경만 본다면. 여전히 나에게는 평화보다는 전쟁중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고  어색한 분위기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 빼고.

“코에는 춥지 않니?”

[에?......]

“그러니까, 바들바들?”

[바들바들?]

한숨을 쉬었다. 대화가 될 리가 있나.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라는 몸까지 써가면 대화를 이어가려 했고 코에도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코에가 영어를 잘하거나 사라가 일본어를 잘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대화의 진전은 전혀 보이지 않을  같았다.

[야, 꼬맹이.]

[으......]

이제는 불렀을 뿐인데 또 사라의 품 안으로 숨어버렸다. 거기다 사라의 시선도 영 곱지는 않았다. 이건 내가 이해하고 조용히 넘어가야할 부분이었다.

“부르기만 했어.”

“......”

그래서 해명하고.

[사라는 춥지 않냐고 묻는거야.]

[......조금 추워.]

다시 대화를 이어야 했다. 아무튼, 차량의 히터를 틀었다. 벌써 봄이 시작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이나 저녁에는 추웠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도 했다. 나나 사라는 어른이니까 그렇다 쳐도  꼬맹이에게는 매서운 추위일 것이다.

아까, 이 둘을 내버려두고 떠난 뒤 결국에는 돌아왔다. 도로에 가드레일도 없어서 그대로 유턴했고 마트에 도착하자 여전히 사라가 코에를 안은채 돌보고 있었다. 내가 말을 걸었을 때도 표정의 변화는 있지 않았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대로 사라와 함께 내버려 두었던 짐도 챙겨서 지금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참고로 코에는 사라와 함께 앞좌석에 올랐다. 나 때문에 무서운 건지 사라의 곁에만 매달려 있으려고 했다. 마치 모녀지간처럼 보였는데 그런 꼬맹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심코 엄마가 떠올랐다.

아빠새끼와는 나쁜 기억과 좆같은 경험밖에 없었다면 엄마와는 그래도 좋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만이 나를 감싸 안아줬으니까. 아빠새끼의 훈련이나 고문이 끝나면 언제나 다가와서 나를 치료해주고 돌봐주면서 밥을 해주었다. 그때만큼은 아빠새끼도 날 건드리지 못했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매번 엄마의 품에 들어가 안기는 날이 많았었다. 비록 사이비 하나에 몸을 담구면서 나까지 끌여들이기는 했었지만 그녀만큼 날 돌봐준 엄마는 없었다.

[꼬맹이.]

이제 우리와 함께 하게 된 코에에게 하나 당부하고자 말을 걸었다. 여전히 날 피하는 몸짓.

[사라가 널 돌보게  이상  널 버리지 않을거고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거야. 내가 좆같으면 욕하고 지랄하고 미워해도돼. 대신에.]

[......대신?]

[다른 사람들이나 크립톤하고 싸우게  때에는 무조건  말 들어. 살고싶으면.]

[......]

따로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사라의 시선은 따가웠다. 하지만 지금 한 말은 꼭 말해줘야 했던 것이기에  것 뿐이다. 이후 다시 대화는 사라졌다. 사라와 코에는 간간히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여러  서로 말을 걸었지만 나는 사라와도, 코에와도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저 사이에 내가  자리는 없었기에. 그렇게 당분간은 조용히 도로를 달려나갔다.



“뭐야, 저거.”

얼마나 한참을 달리며 헤멨을까. 곧 저녁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거처를 찾으려 했을 때 난관을 겪게 되었다. 유일하게 지날 갈  있는 도로의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폐차라던가 건물의 파편으로 막힌것도 아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수많은 숲의 잔재들로 막힌 것이다. 치우라면 치울 수 있겠지만 시간이 보통 걸릴 게 아니었다. 아직 거처도 찾지 못한 마당에 말이다. 보통같으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아보겠지만 지금 차의 연료가 마땅치 않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코에까지 있는 마당이라 걷는 건 무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을 망설이면서 다른 궁리를 찾던 그때,  쪽으로 흙길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막혀버린 길 바로 옆에 있었다. 저곳으로 향하면 길이 나올까? 지도를 꺼내서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길이었다. 안심할 수 있는 길일까? 막상 들어갔다가 막혀버린 길이면 후진으로 빼면 되긴 하는데 얼마나 깊숙이 들어갈 지가 관건이었다. 같은 이유, 연료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게 맞을까.

“음......”

조금 길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아무리 고민해봐야 앞의 길이 뚫리는 건 아니었다. 우선은 숲길로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막힌 길이면 돌아와서 빠르게 거처를 수색하기로 했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녁까지 시간은 남아있었다. 다녀오려면 지금뿐이었다.

“사라. 도로로 계속 가려고 했는데 숲의 잔재가 길을 막고 있어. 산길로 들어갈 거니까 그 꼬맹이  안고 있어.”

“......응.”

여전히 늦어지는 대답이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길의 크기가 지금 타고 있는 차량의 크기과 딱 맞아떨어졌다. 나중에 후진하게 된다면 조금 힘들 것 같았다.

숲길은 울창한 나무들 덕분에 그림자로 완전히 덮여있었다. 햇빛이 사이로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스위스에 있을 때는 자주 봐왔던 풍경이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던 곳이다.

“이건 또 뭔데, 시발.”

예상과 다르게 숲길은 길지 않았다. 정말 잠깐이었다.그런데도 내가 놀란 건 숲길을 벗어나서였다. 뭐랄까, 나라를 건너뛴 느낌?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었다. 우선 바리게이트가먼저 보였다. 아니, 바리게이트의 축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울타리를 치고 그 위에 윤형 철조망을  게 전부였다. 그래도 도움이 안 될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크립톤을 막기에 충분은 했다. 부실할 뿐이지.

운전석에서 내렸다. 울타리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으로는   채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게 내가 놀란 이유였다. 이곳은 한국, 그런데 집은 유럽식의 형태였다. 그것도 통나무집.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소 8명은 살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바로 앞에는 이곳 자체가 농장이라는 것을 말하듯 비닐하우스와 작은 밭이 가꾸어져 있었다. 추가로 크립톤에 대비해서인지 문과 창문들에도 윤형 철조망을 두르고 커튼을 쳐놓았다.

허리 뒷츰의 권총에 손을 가져간 채로 앞으로 걸었다. 우선은 울타리의 문부터 확인했다. 열릴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놓은 것을 보면 크립톤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리고 당연히 문을 잠그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끼익’

......열리네? 운이 좋은 건가. 뭐, 나야 좋았다. 이대로 단신으로 들어간다면 정말 편하게 다녀오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다시 차량으로 돌아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사라에게 말했다.

“사라, 농가랑 집을 발견했어. 사람이 사는  같은데 그 꼬맹이랑 차 안에 있다가는 당할 수도 있으니까 내 옆에 있어.”

그녀가  배쪽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내렸다. 꼬맹이를 먼저 내리게 하고 다음에 자신이 내린 뒤 한 손으로는 내 옷자락을, 다른 한 손으로는 코에의 손을 꽉 잡았다. 놓지 않겠다며. 맨 앞이 나, 중간이 사라, 끝이 코에가 되었다. 이 대열도 불안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내가 커버를 칠 수 있는 정도여서 이대로 농가 안쪽으로 향해 들어갔다.

움직이는 발소리, 그러면서 나의 귀도 건물 안쪽으로 집중했다. 사람의 소리가 들려올지. 곧이어 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엔. 사람소리가 들려. 안에 누군가 있어.”

“역시.”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범위 안이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있냐는 것이다. 만약 나같이 미친놈이 있다면 죽여서 뺏어야 했고 단순한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교섭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원래는 전자든 후자든 뺏는게 편했지만 사라와의 관계를 생각해 후자를 남겨두었다. 권총을 든 채로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

사라가 실시간으로 중계를 해주었다. 이제 문에서 조금 물러나 권총을 숨기면서 바로 뽑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한  뿐인만큼 신중해야 했다.

‘철컥’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서히.

‘끼이이이익.’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총구도, 칼도 아닌 중년 남자의 얼굴이었다.

“누구쇼?”

그것도 구수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정말 시골에 살고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어디선가 수도 없이 마주친 느낌. 그래서 나 혼자서 더욱 경계를 했다. 바로 권총을 뽑을 기세로.

“당신이 이 농장 주인이야?”

“으잉? 그런디. 아가씨들은 어디서 왔는가?”

“우린.”

“저희는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부산을 향해 가는 길이에요.”

내가 답하려는 찰나, 사라가 대화를 뺏어갔다.

“부산으로 간다꼬?”

“네. 그런데 좀 문제가 생겨서요.”

“니들 혹시 차타고 움직이나?”

“네.”

“아, 그라믄 저 아래에 그 쓰레기들 때문이긋네.”

“맞아.”

다시 내가 대화를 뺏어왔다. 방금 머리로 앞으로의 계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그 길 말고는 차량으로 지나갈  있는 길이 없다시피였다. 이 농가도 숲이 둘러싸고 있고 차가 지나다닐 만한 산길이 없어서 정말로 막힌 셈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 숲의 잔재는 충분히 내가 치울  있는 정도였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거처도 문제였고. 그런데 지금 그 거처가 잘만하면 해결될 수도 있었다. 바로 이 농가가 열쇠였다.

“그래서 부탁을 좀 하고 싶은데,  밑에 있던 쓰레기들을 치울 때까지 신세를 져도 될까? 대가는 확실히 치루겠어.”

“얼마나 머물긴데?”

“3일.”

3일이면 치울 수 있었다. 크립톤들만 아니였다면 하루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3일? 흠......”

남자는 고민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지금 나를 포함해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3명이나 되는데. 그만큼 대가는 세게 나오겠지만 사라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선에서는 어떤 대가도 치룰 생각이었다. 섹스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빨아줄 수도 있고 일을 시키면 한 손으로 가능한 일들은 무엇이든지 할  있었다. 사냥도 마찬가지.

“부탁드릴게요. 보시다시피 어린아이도 있어서요. 드릴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여기가 농가라고 들었어요. 도울 손이 필요하다면 저라도 열심히 도울게요.”

“누가봐도 농가기는 한디.”

“제가 앞이 보이지 않아서요. 방금 제 친구에게 농가라고 들었어요.”

“꼬맹이는 동생인감?”

“먼 친척인데 일본에서 살다가 ‘사건’이 터지기 전에 막 넘어왔던 애에요.”

“일본? 그 참 먼데서도 왔구만.”

사라가 코에의 정체를  숨겼다. 확실히 오다가 주워온 애라고 하기보다는 저런 식이라도 둘러대는  좀 더 나아보였다.

“대가가 부족하다 싶으면 따먹는 것까지도 허용해줄게. 얼마든지 섹스해도 돼.”

“뭘 그렇게까지 하고 자빠지노......들어오소.”

“와아. 감사합니다!”

사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운이 좋다고 해야할 지, 아니면 사라 덕분이라고 할 지, 우리는 거처를 얻게 되었다. 아랫동네의 허름한 곳들보다는 안전한 거처를.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감은 계속 불길함을 표하고 있었다.

“혹시 성함을 물어봐도 될까요?”

“내? 내는 최창호다. 창호씨라 불러라.”

“감사합니다. 창호씨.”

그렇게 우리는 이 농가에 머물게 되었다.


차에 있던 짐을 일부 빼내어 창호의 집으로 옮겼다. 입을 옷과 일부 식량들, 내가 지니고 있을 잡다한 도구들까지.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라를 데리고 제일 먼저 화장실부터 알려주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면서 집의 구조를 익히게 했다.  옆은 꼬맹이가 따라다니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창호와 서로 소개를 나누고 한 테이블을 두고서 마주앉았다. 대가에 대한 얘기와 이곳 상황은 어떤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제일 먼저 묻고 싶은게 있는데 여기에 크립톤은 얼마나 자주 출몰해?”

먼저 질문을 꺼냈다. 그러면서 뒤늦게나마 거실을 둘러보았다.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  달갑지 않은 물건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젠장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읎다.”

너무 적었다. 정말로 그렇게 밖에  온다고? 의아한 부분이었다.

“숲으로 떡칠되어 있는  집에 뭐하러 오긋노. 하하하!”

추가설명. 신뢰성이 전혀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시골 중에서도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는 데다가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도 않는 곳이었다. 거기다 트립톤에 대비해서도 울타리 정도만 쳐 놓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보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리 같은 다른 생존자들이나 약탈자들은?”

“니들이 처음인디.”

“그래.”

그건 희소식이었다. 적어도 낮에 습격을 받을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다음은 대가에 대한건데, 어떻게 지불받고 싶어?”

“대가? 솔직히 필요는 없는디.”

“나중에 말나오는 건 내가 존나게 싫어하거든.”

“아따, 성격 쎈 여자네. 그라믄 나중에 일이나 좀 도와라. 그거면 된다.”

“좋아.”

지내는  치고는 대가가  편이었다. 식량이나 기름같은 중요한 자원을 요구했다면 골치아팠을 건데 이 남자, 성격이 꽤 호탕한 편이었다. 덕분에 얘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올라가서 쉬라. 내 따로 준비할 게 있으니께.”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창호는 다른 방에 들어가버렸다. 사라와 코에는 계단 쪽에서 여전히 구조를 익히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고 있었는데 뒷끝이 찝찝해서였다. 역시 저 남자,맞는 거겠지. 내 개인적인 감이지만 조심하기로 했다. 언제나 의심하고 긴장해야만 여러 상황에 대처를 할  있으니까.

권총과 나이프를 확인했다. 아직 글록과 쿠크리 나이프를 들고 있던 때의 감이 사라지지 않아서 익숙치 않아 매번 만지게 되었다. 확인이 끝나고 사라가 오르고 있는 계단에 섰다. 그리고 뒤에서 그녀와 코에가 천천히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최근 사라의 걸음은 무척이나 늘었다. 여전히 벽에 부딪히거나 하는건 있었지만 구조를 익히기만 하면 지팡이를 쥐고 여기저기 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였다. 세상이 지랄난 이런 환경에서 이정도까지 연습이 된 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니, 도착했어.]

“다 올라온거야?”

그리고 이 둘,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고 있었다. 사라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거나 코에에게 한국어를 일부 알려줘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 수고를 좀 덜을 수 있을 듯 했다.

“자, 침실은 여기야.”

이후에는 내가 둘을 이끌었다. 이번에도 사라가 내 옷자락을 잡고 다른 손으로 코에의 손을 쥐었다. 대신 아까처럼 긴장하는 대열은 아니고  더 편하게 움직였다. 창호에게 안내받은 방은 2층의  침실이었다. 문에는 작은 창문과 함께 작은 팻말이 있었다. 그곳의 문을 열자 생각보다 넓은 방 안이 모습을 보였다. 침대 2개에 TV하나, 옷장 하나, 바닥에는 원형의 카펫이 깔려있고 작은 서랍 위에 램프도 놓여져 있었다. 필요한 것은 얼추 갖추어져 있었다.

여기에 들어와서도 사라에게 그녀가 쓸 침대를 먼저 안내해주었다. 손으로 만지고 천천히 앉았다가 꼬맹이도 앉혀주었다. 코에는 그대로 사라에게 기대었다가 많이 피곤한 건지 누워버렸다. 사라도 따라 눕나 싶었는데 곁에서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바로 자도 돼.”

“안 잘래.”

“......마음대로.”

아마 이 방의 구조를 아직 외우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때까지 난 쉬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창호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니까. 언제 돌변해서 사라를 덮칠 지 모르는 일이었다.나도 침대에 앉고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사라를 보는 시선을 조금 달라져있기는 했다. 나쁜 쪽은 아니었다. 그저 조심히 봐야 한달까, 아무튼 그렇다. 조심하게 되었다. 지금 사라는 날 미워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싫냐고? 절대로 그건 아니다. 그녀가  미워하고 원망해도 사랑하고 있다는게 내 감정이었다. 정말로 사랑하니까,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속이 답답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말 한마디 걸기도 힘들었다. 지금도 대답이 짧아지고 평소처럼 밝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 이것 때문에 계속 숨기고 있던 거였는데, 주환 그 개새끼 때문에......

아니다. 이것도 마냥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내가 처음 죽고 사라가 슬픔에  이겨 정말로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어떤 상황까지 이어지게 될지는 그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의 거래도 사라를 끝까지 살리며 책임지라는 거였지, 내 정체를 말하지 말라는 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장에서는 약속을 지키려  것이다. 그래도 개새끼처럼 느껴졌다. 만약 그 때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이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테니까. 세상이 미웠고 좆같았다. 그런데 어쩌겠어, 세상이 이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꼬맹이가 조용히 잠들었다. 그러면서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밖은 해가 저물 준비를 하고있었고 사라는 여전히 코에를 부드럽게 만져주며 앉아있었다.  끝을 내가 알렸다.

“코에는 잠들었어, 사라.”

햇빛이 들어오며 사라와 꼬맹이를 비추었다.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그림자만이 여전히 나를 뒤덮고 있었다.

“그래. 피곤했나봐.”

“응.”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이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이 있으면  뿐이었다. 다시 흐르는 침묵. 사라가 먼저 일어났다. 지팡이를 펼치고 걸음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옮겼다. 내 쪽이 아닌 문 쪽으로. 예상대로 방 구조를 익혀가기 시작했다. 남은 한 손으로는 벽을 짚으려. 그렇게  바퀴를 돌았다. 벽에서 옷장으로, 옷장에서 자신의 침대로, 그리고  침대로,  침대에서......내 머리로, 손이 올려졌다.

“......있잖아, 엔.”

머리를 만져와도 아무말 않고 있던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례적인 경우였다. 나는 목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다른 말은 있지 않았다. 말할 생각은 있었는지나 모르겠네. 하지만 나도 별말 하지 않았다. 괜히 신경질 내며 묻거나 억지로 잡아 세워봤자 상황만  악화될 뿐이었다.

“엔. 있는교?”

 때 창호가 우리가 머무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허리에 각종 공구들을 메고서 나를 불렀다. 희한하게도 어울리는 밀짚모자가 돋보였다. 그건 무척이나 낡은 밀짚모자였다. 괜시리 아빠새끼가 떠올랐다. 형태는 비슷한 모자였기 때문에.

“시간 된거야?”

“후딱 끝내고 돌아오자. 해 저물기 전에는 끝내야 한다.”

“알아. 크립톤하고 싸우는 건 나도 사양이라서.”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사라에게서, 아니, 침실에서 벗어나 창호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사라를 바라봤는데 그녀는 내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쳐다봐 주었다. 눈동자를 전혀 흐리지 않으면서. 아직 해는 저물지 않았다. 아직은......






엔과의 사이가 멀어졌다. 앞을 보지 못해도  감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날 구해주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살아남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줬던 소중한 사람, 그런 엔을 지금 난 무척이나 미워하고 있었다. 왜? 이미 알고있어. 그녀는 최악의 범죄자, ‘서울의 마녀’니까.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주환이라는 남자가 날 혼란스럽게 하기위해 지어낸 거짓말일 뿐이라고. 지어낸 이야기라면서. 그래서 엔이 깨어나기를 기다렸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무척이나 기뻤다. 모든 슬픔이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엔에게 물었다. 정말로 너가 ‘서울의 마녀’냐고. 그 대답은......한순간만에 내 생각과 감정들을 바꿔버릴 정도였다. 화가 났던걸까? 아니면 배신감을 느꼈던 걸까? 알 수 없는  순간의 감정이  몸과 마음을 휘감았고 엔에게서 떨어트려 놨다. 저 멀리, 아주 멀리.

그녀가 나가고 잠이 들었다는 코에와 단 둘이서 남아 조용히,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만을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다른 감정도 들지 않았다. 엔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하면  혼란스러워 지고 계속 밉다는 감정만 늘어날 뿐이었다. 난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조용히 울었다.

[엄마.......]

나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운 코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포근한 목소리. 어린아이일 뿐인 코에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때 엔은 코에를 버리자고 했다. 약하고 어린아이를. 하지만 난 반대했고 화까지 내었다. 그녀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라면서 식량과 크립톤의 문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문제가 맡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성인도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심지어 부모조차 사라져버린 아이를 구할 수 있음에도 죽게 내버려 두는건 사람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었다. 분명 난 엔에게 실망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미움과 실망뿐인 감정들이 내 주변을 멤돌았다.

부드럽게, 보이지는 않지만 만져지는 코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서 탁해진 머리카락과 그래도 아직은 부드러운 뺨. 그러면서도 난 엔의 이름을 떠올렸다.


“자, 물뿌리개 받아라.”

“이야, 스프링 쿨러도 없어? 뭔 농장이 이래?”

“손수 키워야 맛있는 기다. 알긋나?”

“물만 뿌리면 돼?”

“오늘은 그거말고는  그 읎다. 빨랑 뿌리라.”

“뿌리는 거야 쉽지.”

그가 건네주는 물뿌리개를 받아들었다. 안에는 이끼가 좀 끼기는 했어도 물은 깨끗해 보였다. 농사를 하는데는 전혀 지장 없는 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일만 도우려 나온 것은 아니었다. 농장에 물을 뿌리기 전, 그에게 말했다. 아니, 물었다.

“너.”

“잉?”

“미리암그림자 교단 사람이지?”

“......”

당연하게도 정곡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아까 뒤늦게 나마라도 거실을 둘러보았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마리아를 모시는, 엄마가 몸 담았던 사이비종교, 미리암그림자 교단의 석상을. 성모 마리아님에게 붉은 옷을 입힌  석상. 엄마도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창호는 들고있던 호미를 바닥에 꽂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느낌이 상당히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봤자 애송이 수준이기는 하지만 뒤돌아서 나를 봤을 때의 눈빛은 꽤나 봐줄 만 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말투 바뀌는 거 봐라. 이 새끼 심지어 ‘마태사’였네.”

‘마태사’는 미리암그림자 교단에서 뭐랄까, 학생과 교수, 교감, 교장이 있다면 교감의 위치 정도였다. 마리아님의 말을 전달해야 하고 단원들과 신자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강제로 말투를 바꾸도록 되어 있었다. 지금 이 남자가 말투를 바꿨다는 것부터 제대로 ‘마태서’의 직위라는 것을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학생은 그냥 단원이라고 불렀고 교수직위의 신자는 ‘이사야’, 마지막으로 교장 직위에 해당하는 교단장은 ‘안나’라고 불렸다. 성경을 기반으로 이름을 지었다기에는 무척이나 개판인 사이비 교단이었는데 나름 영향력을 있던건지 전국 각지에서  교단에 가입한 사람들이 여럿 있을 정도였다. 엄마는 그중 신자인 이사야였고  강제로 단원으로 들어갔었다.

“그대는 이사야입니까?”

“아니, 이제는 단원도, 아무것도 아닌 지나가던 미친년이야.”

물론 이제는 아니었다. 탈퇴한지 오래고 엄마도 죽어버린 지금, 이딴 종교에 몸담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이비교단에 대해 잘 알기에 경계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라와 코에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조용히 3일을 지내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되다니, 참 좆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교단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지. 경고할   새겨듣고 목숨 부지하길 바랄게. 나랑 함께온 사라나 코에를 건드리지마. 알겠어?”

“그대는 외국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건 왜 묻고 지랄이야. 토종 한국인이다, 사이비 중고품 새끼야.”

“눈동자가 노랗군요. 렌즈는 아닌 것 같고.”

“나도 몰라. 신경꺼. 내 말만 잘 새기라고. 이만  주러 가본다.”

“......”

할 말 다 했겠다, 바로 물을 뿌리러 갔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맞았지만 어지간해서는 경고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단을 넘어서 엄연히 동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방금 내 표정과 눈빛을 제대로 읽어냈다면 건드려봐야 좆됀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물을 뿌리다가도 이 새끼가 어디로 안 도망가나 한 번씩 힐끗 쳐다봐 주었다. 다행이랄까, 이 남자는 농사하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따로 약이나 독을 쳐넣는건 보이지 않았다.

밭에 물을 주는건 분명히 간단한데 은근히 넓었던 덕분에 하나뿐인 팔이 빠질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가 요구한 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물을 주었고 비어버린 물뿌리개를 들고서 아직도 열심히 밭을 가꾸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끝났어.”

“아따, 일 잘하네!”

“그새 또 말투 바뀌는 거 봐라. 아무튼 또  도와주면 돼?”

“오늘은 이만 됐다. 해도 슬슬 지고 있고 들가자. 밥은 묵으야제.”

그러면서 허리를 피며 소리를  번 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따라서 들어갔다. 안은 해가  덕분에 점점 어두워 지고 있었다. 창호는 서랍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고 가구들마다 올려져 있는 램프들에 불들을 붙였다. 전구를 킨  만큼은 아니지만 어두운 저녁은 되지 않았다.

나는 저녁을 먹겠다는 소리에 사라와 코에를 데리러 가려다가 이 남자가 마태서라는 것을 깨닫고 요리하는 과정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언제, 어떻게 약을   모르니까. 그걸 알았는지 그도 나를 보며 한 마디 말했다.

“요리에 장난질은 안칸다.”

“그걸 어떻게 믿어? 세상이 이 지랄 났어도 니새끼가 언제 교단의 의식을 치를지 모르는데.”

“그것도 사람 많을 때 얘기 아이가? 그리고 의식을 치룬다 한다케도 조건 안맞는거 니도 알지 않나?”

“......”

그건 맞았다. 마태서가 치룰 의식에 조건이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나. 그래서 고집스럽게 따라 들어가 그가 요리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고 약이나 다른 장난질을 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동시에 표정도 세세히 보았는데 가면을 쓴 것 치고는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기는 했다.

오늘의 저녁은 감자스프였다. 밥도 있기는 했지만 스프로 대체하기로 했다. 코에도, 사라도, 따뜻한 것이 필요할 것이고 부족하면 내 차에서 통조림 하나씩은 가져다  수 있으니까. 요리가 완성된 것을 확인하고  멀리, 깨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와 코에를 불러보기로 했다.

“사라! 코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조금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사라가 코에의 손을 잡고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내 역할을  꼬맹이가 대신해주고 있었다. 분명 내가 올라갔다면 손이 아닌 옷깃만 잡고서 내려오고 있었겠지.

“밥먹자.”

“코에, 밥 시간이래.”

“밥?”

말은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밥 먹으라고, 꼬맹아.]

대신 전해주었다. 꼬맹이는 여전히 내가 무서운 건지 대답을 하지 않고 사라의 뒤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숟가락을 들었다. 여기서의  끼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와중에 창호는 혼자서 두 손을 모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미리암그림자 교단의 식사기도 였다. 따로 말을 하지는 않고 속으로 읊는  대사가 있었다. 당연히 난 알 바 아니라서 바로 숟가락을 들고 스프를 떠먹었다. 사라도, 코에를 챙기면서 한 숟가락씩 먹기 시작했다. 스프도 나쁘지는 않았다. 배를 채우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라와 코에에게는 충분하겠지. 그렇게 저녁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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