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12 [완]
물어볼게 많았지만 우선 차에 올라탔다. 당연히 사라를 먼저 태우고 내가 따라서 문을 닫으며 올랐다. 아슬아슬한 거리로 괴물에게 부딪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주환이 엑셀을 밟으며 조금씩 거리를 벌려나갔다.
“어떻게 온거야? 참고로 우린 더이상 줄 게 없어.”
“차가 엎어진건 이미 봤다. 대가는 바라지 않아. 그저 저 괴물을 죽이면 될 뿐이다.”
“죽이는 방법은 알고 있고?”
“안타깝게도 모르겠군.”
“자랑이다.”
젠장, 저 괴물은 완전히 처음이다. 어떻게 죽여야 활까. 그러다가 아까 사라가 내게 말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소리. 분명히 소리가 들린다고 했었다. 퍼지는 소리와 무언가 모이고 있다는 소리. 그 말들을 했을 때 상황들을 떠올려보았다. 불을 붙이고 터진 뒤, 그리고 자주포마냥 변했을 때. 머릿속으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으로 이미지가 조금씩 잡힐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시험해 볼까?
뒷좌석의 두 창문을 모두 내렸다.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오는 괴물의 달리는 소리가 확실히 전해져왔다. 그리고 주환에게 말해서 앞의 두 창문도 모두 내리게 했다.
“창문 내려.”
“창문을? 무슨 생각이지?”
“무슨 소리 때문이다! 이 인간아. 빨리!”
그가 앞의 두 창문도 내려주었다. 갑자기 쳐들어오는 바람에 사라와 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사라! 아까 무슨 소리들이 들린다고 했었지? 지금도 들려?”
“바람이랑 차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리고 괴물쪽은 잘 들리지도 않아, 엔.”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차의 뒷창문을 깨부쉈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주환의 차 조수석에 있던 망치를 이용해 깨버렸다. 왜 망치가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고 권총도 보여서 그것도 챙겼다. 우리의 뒤로, 괴물의 소리가 조금 더 말끔히 들렸다.
“이제 좀 들려?”
“조금이지만, 응.”
“아예 차를 부숴버리는군.”
“다음에 더 좋은 차 뽑던가 하시고, 사라, 지금부터 넌 저 괴물의 소리에 집중해줘. 한 가지, 해 볼게 있어.”
“......알았어.”
뭔가 망설인 감이 있지만 지금은 넘기기로 했다. 애초에 무슨 망설임이 있든 지금의 나에게는 뭐라고 할 수 있는 권한따위 있지도 않았다.
저 괴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건 휘발유, 그렇다면 권총으로도 충분하지. 손에 쥔 콜트로 괴물을 조준했다. 그대로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탕!’
선명한 총알의 소리가 터져나가며 괴물을 향해 날아갔고 내가 원하던 그림을 그려나갔다. 불이 붙었다.
‘펑!’
동시에 폭발도. 터지는 것부터 저 괴물의 휘발성이 상당량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멀쩡했다면 붙잡아서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아깝게 됐네.
‘프아아아아악!’
“사라!”
“응.”
사라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집중했다. 그녀는 어차피 보이지는 않지만 눈을 감으며 집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
“또 이상한 소리가 퍼지고 있어.”
사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물의 물이 더 커지며 활활 타올랐다. 엄청난 불이었다. 그렇군. 아직도 확신은 아니지만 어떻게 돌아가는 괴물인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휘발유를 만들고 뿜는게 아니었다. 저것도 크립톤일까? 돌연변이일까? 이제는 나조차도 세상이 무섭게 보일 정도였다.
“불까지 붙으면서 움직이는 괴물이라. 무섭군.”
“이제와서?”
“자, 불을 붙인건 너고 뭔가 해결책이 있을것 같은데, 어쩔 생각이지?”
“컨테이너든 뭐든 좋으니까 저 새끼가 박게 해서 무너지게 할 만 한거 있어? 타격을 줄 생각이야.”
“타워 형식의 수조탱크가 있는 공장이 있다.”
“그럼 그곳으로 달려!”
차의 속도가 점점 높아졌다. 그럴수록 안에 들어오는 바람이 더욱 강해졌다. 사라는 옷이 날아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판초를 잡았고 나는 계속 괴물을 주시하며 거리가 너무 좁혀지지 않도록 확인했다. 괴물은 아까처럼 불이 붙자마자 바퀴로 구르며 다가왔다. 길들였다면 아마 엄청난 병기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난 아까의 의문점을 다시금 떠올렸다. 먹이를 찾는 것이라면 바로 눈앞에 있던 주환의 구역을 공격했을 텐데 그걸 포기하고 우릴 쫓아온 이유. 일단 먹이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렇다면 정말로 남는 이유는 나 혹은 사라뿐인데 굳이 접점을 찾자면 역시 나뿐이었다. 왜? 그나마 이유를 찾자면 노란색의 눈동자와 연관이 있어보였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 모르겠다. 역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추측조차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지금은 저 괴물을 죽이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데 수류탄 같은거 있어?”
“어떤 부분에서 필요한거지?”
“발화만 되면 뭐든지.”
“신호탄이라면 있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며 조수석의 서랍을 가리켰다. 그곳을 열어보니 던지는 조명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완벽하다. 던질 수 있는 것일수록 더욱 좋았다. 그걸 꺼내 뚜껑은 사라에게 쥐어주고 몸체는 내가 잡았다. 준비가 끝나고 바로 주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그 약속 아직 유효해? 내가 뒤지면 사라 지켜주겠다는 거.”
“유효하다.”
“엔?”
사라가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내가 ‘서울의 마녀’라는 것을 알기 전의 눈빛이었다.
“그래. 그럼 뒷말은 굳이 안해도 알겠지?”
“무슨 소리야? 엔.”
“그러지.”
“엔!”
“사라. 어디까지나 만약이야. 난 살아서 돌아올 거고 너와 함께 부산으로 갈거야. 네가 싫더라도 말이지. ‘서울의 마녀’는 쉽게 뒤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그랬고.”
“다왔다.”
사라가 뭔가 더 말하려던걸 주환이 끊고 앞을 가리켰다. 콘크리트인지, 철근인지 아무튼 높은 수조탱크가 부실한 다리를 보이며 서 있었다.
“속도 높였다가 줄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물론!”
주환이 속도를 더 높였다. 조금이라도 더 괴물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달리는 검은색의 차량이 공장을 가로질렀다. 괴물은 눈앞에 보이는 자잘한 컨테이너나 구조물들을 박거나 밟으며 달려왔다. 그 도중에 트럭에 한 번 잘못 박아서 미끄러졌지만 곧바로 다시 바퀴로 변해서 돌격해왔다.
“꽉 잡아라!”
주환도 사이드미러로 뒤를 보면서 타이밍을 잡았고 괴물이 달려오는 것에 맞춰 속도를 줄여 수조탱크 바로 앞까지 끌고갔다. 그리고 부딪히기 직전 핸들을 꺾었다. 급하게 왼쪽으로 꺾이는 차량이 수조탱크의 다리에 조금 긇이며 빠져나갔다. 괴물은 일절 몸을 돌리지 못한 채 그대로 수조탱크에 쳐박혀 버렸다. 안그래도 부실했던 다리가 부서졌고 물을 담고 있던 수조탱크가 무너져내리며 괴물을 때렸다. 안에는 썩은 물이라도 차 있었는지 괴물의 불과 맞물리면서 하얀 수증기를 폭탄처럼 퍼트렸다.
“사라! 뚜껑 꽉 쥐고 있어!”
난 바로 행동을 했다. 뒷좌석의 문을 열면서 사라가 들고있던 조명탄의 뚜껑을 사용해 불을 켰다. 붉은색의 조명탄이 붉은 빛을 뿜어내며 타들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앞으로, 타격을 강하게 입었던 괴물이 다시 불을 내뿜었다가 형태를 변화시켜갔다. 두르고 있던 불들을 자신의 몸 안으로 넣어갔는데 물 때문에 번진 불까지 모두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몸을 분리시키며 자주포의 형태로 크게 변화해갔다.
“엔! 또 이상한 소리가 모이고 있어!”
“오케이!”
녀석이 포가 완성되기 전에 달렸다. 조명탄을 들고서. 아마 확실할 거다. 사라가 지금까지 저 괴물에게서 들었던 소리는 휘발유나 에너지 같은 것의 흐름일 것이다. 그 증거로 불이 붙었을 때 소리가 퍼져가고 있다고 했고 지금은 모이고 있다고 했는데 살에 지핀 불을 유지하려면 그만한 휘발유를 몸 여기저기에 퍼트려야 했을 것이고 지금도 불을 흡수하는 것과 소리가 모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쏠 포탄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난 그 포탄을 터트릴 생각이었다. 처음 발사했을 때, 날아오던 궤도 아래로 액체가 흐르던 것을 볼 수 있었다. 필히 휘발유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렸다. 녀석이 쏘기 전에 안에서 터트릴 생각으로.
“시발! 같이 터져버려! 좆같은 돼지새끼야!”
포구 아래쪽, 그곳에서 높이 점프했다. 4m나 되는 크기의 괴물이지만 포의 높이는 3m, 거기다 포구의 크기도 자주포보다는 널널하게 컸다. 그곳을 바라보며 정확히 던졌다. 해가 뜬 오후, 조명탄의 불빛이 날아가며 일말의 오차없이 골인했다. 안으로 굴러들어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왔다. 이제 터질 것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내가 이 녀석의 바로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이 땅에 닿자마자 뒤로 달렸다. 있는 힘껏 달렸다. 저 멀리 사라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내 쪽을 바라봐주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내가 최악의 살인마라는 걸 알면서도, ‘서울의 마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쯤이면 경멸해도 좋을 텐데. 그녀의 경멸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이래서야 원.
“네 마음도 모르겠잖아, 사라.”
‘펑!’
폭발음이 들렸다. 당연하게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등 뒤로 뜨거운 열기와 함께 커다란 충격파가 나를 덮쳐왔다. 처음 불을 붙여서 터졌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급속도로 날아가는 몸이 바닥도 아닌 근처에 있던 컨테이너에 쳐박혔다. 둔탁한 충격음이 들렸고 나의 정신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마 난 죽을 거라고, 모든 신경이 끊기기 전, 생각했다.
“X!”
[히라입니다.]
[오! 그래, 어떻게 됐어? 잡았어?]
[‘오일’이 죽었습니다.]
[......‘마녀’가 이긴거야?]
[네. 압도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겼습니다. 죽을 거라고 말했던 제 말이 경솔해지네요.]
[......]
[마지막에 폭발의 여파로 컨테이너에 부딪혀 기절했고 다시 난민구역으로 실려갔어요. 말씀했던대로 데려가겠습니다.]
[아니, 내버려둬.]
[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이런 재밌는 순간이 어디 있겠어? 어차피 너만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즐겨보자는 소리야.]
[상대는 ‘오일’마저 이긴 ‘마녀’입니다. 나중에 제가 그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질 이유가 어디있어? 넌 완성된 사람이야. 충분해. 아무리 ‘마녀’라도 완성된 사람을 이길 수는 없을거야. 아니면 또 너의 감은 다른건가?]
[네. 달라요. 솔직히 전 ‘마녀’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아요. 지금 제 모든 감각이 그녀를 꺼려하고 있을 정도에요.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요?]
[흠......뭐, 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논쟁은 여기서 끝내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더 지켜보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전 계속 추격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통신이 끊겼다. 여전히 마음에 드는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제안도 나쁘지는 않았다. ‘마녀’를 지켜보는 것, 나도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 직접 싸우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보는 건 달랐다. 그러니, 나 역시 지켜보기로 했다. 그 생각을 가지며 등을 돌렸다.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잘까, 하며.
요약하자면, 다 필요없고 내가 이겼다. 그 괴물을. 사라의 소리를 바탕으로 추측한 나의 가설은 들어맞았고 마지막에 던진 신호탄에 괴물의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터지며 그대로 처참하게 폭사당했다고 한다. 다시 부활한다거나 분열되어 새로운 괴물로 변화한다거나 하는 개같은 일은 없었다고. 아무튼 내가 이겼다. 와, 시발. 나란 년, 쩌는 년.
다음 요약, 내가 컨테이너에 부딪히면서 큰 상처가 생겼다고 했다. 뼈가 부서진 건 기본이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흘렀으며 등에 커다란 화상자국도 있었다고 한다. 즉사 한 것 까지는 아니고 빠르게 치료를 하든 조치를 취하든 하지 않으면 뒤졌을 정도라고. 하지만 주환이 날 데리고 구역에 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 상처가 대부분 나아있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의사를 행사하는 그 망할 노인네가 직접 진단을 했고 아빠새끼때처럼 사람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치유능력이라고 했다. 역시 내 몸에는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괴물을 죽였고 난 살았으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 나아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사라가 날 꺼려한다는 것. 그건 내가 눈을 떳을 때부터였다.
“시발.”
정신이 깨어나고 앞의 시야가 보이자마자 내가 뱉은 말이었다. 절대 나에게서 빠질 수 없는 말이기도 했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사라의 반응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는데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엔.”
옆에서 들리는 사라의 목소리.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손을 뻗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손과 얼굴을 감추려 들었다. 조심히, 가까이 다가가 표정을 보았는데 뭔가 엄청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그 안의 생각들을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어떤 혼란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딱히 별말 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사라.”
“......무사해서 다행이야.”
조금 뜻밖의 말, 뭐랄까, 어색하다. 그것도 엄청. 이럴 때만큼은 주환이 들어와 내 대화를 뺏어서 주도권이라도 잡아주었으면 했다.
“일어났나?”
이야, 타이밍 봐라. 아주 쩔어주는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이나마라도 어색한 이 분위기를 깨부술 수 있었다. 그는 노인네 의사와 함께 들어왔다. 망할 노인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자기 할 말을 뱉어냈다.
“무모한 꼬맹이같으니라고.”
“이 몸매가 꼬맹이로 보여? 딸딸이도 못치는 영감탱이가.”
“이젠 관심도 없다!”
“지랄.”
“하여튼, ‘서울의 마녀’인 것부터 무모할 꼬맹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그럴 줄이야.”
“덕분에 목숨 건진 주제에 뭐가 그렇게 불만인건데?!”
진짜로 맘에 들지 않는 노인네였다. 사라만 없었다면 벌써 한 대 쳤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노인공경은 날 건들지 않는 사람들만 포함되어 있는 범위였다. 진짜로 한 대 쳐버려?
“하......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았는데? 설명이나 해줘봐.”
“여기저기 뼈들이 부서졌던건 물론이고 등에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때는 이미 낫고 있었지만 말이지.”
“낫고 있었다고?”
“그래. 네년 몸이 갑작스럽게 움직이더니 뼈가 붙는건 물론이고 화상자국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자각을 가질 때야. 넌 사람이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모르지.”
“이 영감탱이가 다 알 것처럼 말하고 마지막에 내빼는거 봐라?”
“그럼 여기에 병원이라도 세워주고 말을 하시지, 꼬맹이.”
“아까부터 자꾸 꼬맹이라고 하는데 한 번 확인시켜줄까? 마침 관도 짤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내가 직접 짜줄 수도 있어.”
“이미 짜놨으니까 간섭이나 하지마라!”
“이, 시발!”
“둘 다 진정하지. 중요한 결론이 나왔으니까. 엔, 지금 너의 눈동자 색이 변한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건 확실히 연구를 해야할 상황이다.”
“장비도 없으면서 무슨 연구. 거기다 좋은거 아니야? 큰 상처를 입어도 말끔히 낫는다는 소리잖아.”
물어뜯긴 팔이 다시 자라지는 않았지만.
“허튼 소리. 오히려 난 불안하더군. 정말로 상처를 빠르게 치료해준다면, 네가 괴물에게 차를 잃어가면서 다쳤을 때는 왜 낫지 않았지?”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의 말대로 불안하기는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몸은 큰 상처를 입으면 빠르게 치료를 해주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만큼은 낫지 않았다. 뭔가 다른 조건이라도 있는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특정 조건이 있고 그걸 만족시켜야 능력같은게 발현되던데. 혹시 나 능력자인가? 아직은 이렇다 하면서 확정지을 수가 없었다. 의학쪽은 전혀 모르는데다 송혜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손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득이었다. 불안하기는 해도 상처가 낫는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누웠던 상체를 일으키고 입고있던 환자복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내 옷으로 갈아입었다. 괴물과 싸우면서 조금 찢어진 후드자켓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입을 만했다. 바지는 좀 말끔했다. 먼지가 잔뜩 묻은것을 빼면.
“바로 떠날건가?”
“그럼 볼 일 있어? 아빠새끼도 족쳤고 괴물도 죽였고,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흠......그렇군.”
주환은 내가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 텐트 안에 있던 한 상자를 열고 안에서 가방 2개를 꺼내었다. 검은색의 가방 하나와 군청색의 가방 하나였다. 그 2개를 열면서 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건넸다. 나는 평소처럼 사라의 손을 잡고 가려했다가 그만두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나의 손을 막아버렸다.
그에게로 다가가자 가방속에 있던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감상평으로는 뜻밖이라는 거? 검은색의 가방에 들어있던 것은 권총이었다. 모델은 베레타-92FS, 내가 쓰던 글록보다는 안전성이 좋은 것이었다. 거기다 겉먼지가 조금 묻었을 뿐, 신품이었다. 이 남자, 참 여러모로 신기한 남자다. 이런 판국에 권총을 또 어떻게 구했대.
“탄은 같은 것이니까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이어서 옆의 군청색 가방도 열고 보여주었다. 안에는 내가 사용했던 쿠크리보다는 작지만 무게감이 있어보이는 검은색 날의 단검이 자태를 뽐내며 들어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몇 번 휘두르다가 내게 넘겨주었다. 손으로 잡히는 작은 무게감이 낯설었다. 그만큼 가볍다는 소리였다.
“잘 잡히나?”
“좋네, 이거. 쿠크리만큼 묵직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휘두를 수는 있겠어. 그래서,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보수다. ‘낚시꾼’과 괴물을 죽여준 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 이제서야 값 제대로 쳐주네.”
바로 베레타를 꺼내 안에 들어있는 탄을 확인한 뒤 함께 있던 허벅지에 끼울 수 있는 총집을 달아 꽂아넣었고 단도는 품 안에 대충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알맞은 동작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익숙해졌을 때 쯤 사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정말로 이 좆같았던 곳을 떠날 시간이었다. 부산으로 가는 길을 아직 멀었고 차와 함께 식량들도 날아갔기 때문에 앞으로의 길이 험했다.
“사라, 출발하자.”
“......”
대답이 없었지만 조심스레 내게로 손을 뻗었다. 그래도 먼저 붙잡아오지는 않았다. 이해하니까,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밖으로 나오자 오전의 햇빛이 떠올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또 내가 하루정도 기절해있었다고 한다.
“걸어갈 생각인가?”
천막으로부터 두 걸음 떼었을 때 미련이라도 남은 남친마냥 주환이 다시 불러세웠다.
“그럼 걸어가야지. 어쩌라고? 차라도 뽑아주게?”
“원한다면.”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로 던졌다. 잠시 사라의 손을 놓고 그 무언가를 잡아 펼쳐보았다. 차키였다.
“검은색 차량이다. 타고가라. 이미 내 애들이 식량 일부와 기름을 넣어놨을 거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뭐야?”
“무슨 의미지?”
“원래 거래값이라고 해도 난 당신이 그렇게 원망하던 ‘낚시꾼’의 딸이야. 관련된 핏붙이들은 다 끊어내고 싶지 않아?”
“착각하는군. 내가 싫어하는 건 ‘낚시꾼’인 ‘노길홍’이라는 사람이지, 너가 아니다. 핏줄을 맡긴 하지만 그것일뿐이다. 넌 너다. 알겠나?”
“몰라. 시발. 아무튼, 차는 고마워.”
“너의 여행길이 무사했으면 하는군. 특히 그 여자와 함께 간다면 말이다.”
“아직도 사라한테 해코지 할 생각이야?”
“글쎄, 어떨까. 나라면 떠오르는 답이 이미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나의 답이지, 너희들의 답이 아니니까.”
“더럽게 감성적이네. 질리니까 간다. 잘 있어.”
마무리 인사를 했다. 정겹게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받은 총과 칼, 차량들은 모두 내가 받아야 할 거래의 값이었고 정당하게 받은 것이니까. 거기다 주환이 날 나로 봐주면서 다르게 본다느니 해도 나의 시선은 다르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건 아니었고 나도 평소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지만 아빠새끼가 엮인 건 좀 달랐다. 아무튼 그런게 있다.
몇 걸음, 이 구역을 만든 벽이 보이고 문을 통해 나가자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진 키의 차량이 보였다. 주위에는 주환의 애들이 마중 나온것인지 서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조수석에 사라를 먼저 태웠다. 그리고 운전석의 문을 열자 애들이 한 목소리로 모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십시요! 누님!”
무시해버리고 시동이나 걸었다. 이제 난 저런 애들에게 인사를 받을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두목은 주환이지 내가 아니니까. 기어를 드라이브로 넣고 엑셀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옆에 있던 사라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무슨 깊은 생각이라도 하고있는 듯 했다. 피곤한 것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나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젠장할, 이건 나도 골치아팠다. 들키더라도 부산에 가서 들키고 싶었는데 여행 중간에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사라, 잠 좀 자둬.”
“......응.”
일단은 재우기로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제부터 고민과 함께 내 옆에 쭉 있었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지금 나의 존재는 어떨까. 그저 미쳐버린 살인마? 아니면 그냥 엔? 나도 모르겠다. 사라도 그 중간의 경계에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알아. 시발.
차를 출발시키고 구역을 떠난 지 30분이 지났다. 잠깐 옆을 보니 사라가 눈을 감으며 잠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하얀 꽃이었다. 연약하고 내 곁에서 피어날 수 없는 그런 꽃. 망할. 그래도, 그렇지만서도, 나는 한 마디 읊조렸다.
“잘 자, 사라.”
“붙잡아! 말리란 말이야!”
“히익!”
눈 앞에 나를 막으려는 무장한 사람들과 몸을 연구하고 헤집어놓으면서 괴물로 만들어버린 연구원 아저씨가 두려운 표정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비켜!”
피묻은 하얀색의 옷, 거대한 칼날로 변해버린 오른팔을 들고, 한쪽 눈으로 보이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런 끔찍한 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변해버린 내 몸이 어떤 몸인지, 얼마나 끔찍해져 버린지 세세하게 알게 된 지금, 탈출을 감행했다.
총알들이 날아와 때리지만 조금 따가울 뿐, 무섭지 않았다. 얼굴쪽은 칼날로 막기에 충분했고 막아가면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눈앞으로 총구가 보이자마자 오른팔을 휘둘렀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가 하얀 옷을 붉게 물들였고 바닥으로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상체가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사람, 연구원 뿐이었다.
“죽어가던 목숨을 붙여줬더니 이런식으로 대하는거냐?!”
“난 붙여달라고 한 적 없어. 오히려 당신들은 날 크립톤으로 만들기 위해 괴롭혀왔을 뿐이잖아!”
“크립톤이 아니라 신인류다. 그것들은 실패된 부산물에 불과해. 넌 비록 반만 완성 되었지만 우리 크레이터가 바라던 신인류란 말이다! 그러니까!”
“시끄러.”
베어버렸다. 연구원의 목이 잘려 하늘에 잠시 머무르다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를 향해있던 육체는 힘없이 바닥에 누워버렸다. 알맞는 관따위는 없었다. 이곳에는 이제 사람따위 아무도 없었다. 그저 크립톤이 되어버린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했다. 기억 속으로 소중했던 언니오빠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엔.”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가 죽인 것이다. 내 가족들을. 어차피 크립톤이 되어버린 참이다. 그녀를 죽이자. 아무리 사람으로서 강한 그녀라도 괴물이 되어버린 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죽이자. 그리고 나 스스로도 죽는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세상의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하늘은 맑지 않았다. 그래서......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