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11
혼자 생각해봐야 알 수 없어서 노인에게 내 피를 조금 뽑아가게 했다. 원래 깨끗한 곳에서 조용히 뽑아야하는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어딜가나 썩은 곳이라 똑같다는 대답과 함께 내 피를 가져갔다. 진짜로 죽여버리고 싶은 노인이었다. 송혜가 있었다면 이런 노인한테 내 상태를 맡기지 않아도 되었는데. 시발.
조금 뒤, 사라가 드디어 옷을 다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는 내가 만든 지팡이를 쥐고서 나온 그녀의 모습은 좀 더 어린 모습이었다. 원피스를 입었을 때와 핫팬츠 차림에서는 어른스러움이 묻어있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어린감이 있었다. 그래도 나이는 확실히 그녀가 위지만. 다가가서 예쁜 차림의 옷을 칭찬해주려다가 관두었다. 내 목소리따위, 들려줄 때가 아니었다.
“괜찮군.”
“네.”
“바로 떠날건가?”
“......그건 엔이.”
나한테 대답을 떠넘겼다.
“피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머무르다 갈 생각이야.”
“마음대로 하도록. 그런데 사라의 옷차림에는 추가가 필요하겠군.”
“이상한거 입히지마. 죽여버린다.”
“오히려 필요할거다.”
주환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걸리적거린다고 판단해 던져버린 베이지색의 후드가 달린 판초를 들고나왔다. 단추로 잠그는 판초를 그대로 사라에게 입혀주었다.
“지금까지는 엔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온 것 같지만 네가 무방비한 여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시선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거다.”
그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뻔했다. 지금도 나를 바라보는 거지들의 시선들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주환의 말대로 내가 확실히 지킬 수 있었기에 딱히 가리지 않았지만 현재의 내 몸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만큼 필요로 할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쉬도록. 필요하면 나중에.”
“형님!”
이제 쉬다가 대충 검사 결과나 받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주환의 부하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온 것인지 숨도 거칠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밖에 이상한 괴물놈이.”
“괴물?”
그 소리에 즉각 몸이 반응했다. 사라의 손을 잡아끌어 텐트 안으로 숨기고 달려온 부하에게 잠시 보호를 맡긴 뒤 주환과 함께 벽으로 뛰어갔다. 텐트 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려간 벽의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자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체이스벳’, ‘시드’, ‘살호’, ‘매드독’, 지금까지도 좆같은 돌연변이라던가 믿기가 힘든 크립톤들을 만났는데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알다가도 모를 것 같았다. 그만큼 눈앞의 괴물은 나의 이목을 끌었다.
“확실히 세상은 변했군.”
“그래, 시발. 아주 좆같게.”
오죽하면 차라리 낮에 크립톤이 쳐들어오는게 나아보일 정도였다. 일단 괴물은 거대했다. 족히 4m는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몸은 멧돼지에서 변형이라도 된 것처럼 보였고 입 쪽에는 등 쪽으로 크게 휜 상아와 등 자체에도 하얀 뼈들이 휜 상태고 달려 있었다. 그리고 환공포증이라도 느끼게 하려는 건지 등 여기저기에 검은 구멍들이 수없이 나 있었다. 꼬리는 보이지 않으므로 패스, 다리는 굽이 있긴 한데 어떤 동물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이상한 모양이었다.
“일단 난 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너의 의뢰는 끝났다. 마음대로 하도록.”
“시원해서 좋네.”
‘피아아아아아!’
거슬리는 울음소리였다. 귀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거리는 대략 100M. 울음소리가 참 신기했다. 거기다 한 가지 더, 등 쪽에 뚫려있는 구멍들로 반투명한 액체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게 햇빛에 반짝이기까지 했는데 당장은 몰랐지만 곧 옅게나마 맡아져 오는 냄새에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형님, 그냥 쏴서 끝내겠습니다.”
“쏘지마!”
“쏘지마라!”
주환과 내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도 눈치챈 것이다. 저 액체, 단순히 뿜어내는 액체가 아니었다. 괴물의 타액도 아니었다. 옅지만 맡을 수 있는 이 냄새, 휘발유였다. 오랫동안 맡았던 것인만큼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젠 휘발유를 뿜어내는 멧돼지 새끼라니. 가지가지하네.”
“앞서 만나봤나?”
“다 다른 놈들이었지만 좆같은 것들을 만나는 봤어.”
“방안이 있나?”
“없어. 나도 저런놈은 처음이라고.”
“그렇군. 그런데 지금 저 놈, 다가오고 있다.”
그의 말대로 괴물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달려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분명히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내 차 어딨어?”
“차까지는 끌고오기는 힘들었기에 적당한 곳에 두고왔다. 여기를 나가서 저 왼쪽 산너머로 가면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을거다. 그곳에 있다.”
“시발! 먼 곳에도 가져다 놨네.”
“길 하나 정도는 있으니 걱정말도록. 그곳이라면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빨리 안내해.”
“그러지. 찬용아, 대신 안내해주록.”
“형님. 지금은 그럴 때가.”
“이 여자와의 거래는 끝났다. 오히려 우리가 보상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안내해라.”
“넵! 따라오십쇼, 누님.”
긴 장발에 몸 좀 기른 남자가 나의 안내역을 맡았다. 주환은 저 괴물 때문에 여기 남아야 했고 따로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빠새끼를 죽이는데 협조만 한 것 뿐이지 동료로 여길만큼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을 거래했고 내가 손해를 본 입장이었다. 그러니 정따위 줄 필요도 없었다. 사라만 챙기면 되었다.
천막에 도착하자마자 보호를 받고있던 사라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려 했다.
“사라.”
“알고있어. 괴물이 쳐들어 온거지? 소리를 들었어.”
역시 귀가 밝았다. 무서운 청력이었다.
“엔은 어떻게 할거야?”
“하나뿐이야. 튀어야지. 안전한 통로가 있어. 그곳을 통해서 밖에 버려진 우리 차로 돌아갈 거야. 괴물이 덮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해.”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아니야. 아무것도.”
사라가 말을 끊었다. 굳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뒷내용은 뻔했다. 그래서 기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놀랐다.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알던 사라라면 분명히 또 사람들을 구하자고 고집을 부렸을 텐데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의 내게는 좋은 대답이었다.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는게 목적이었으니까.
“가자.”
가기전 지금 입고있던 후드자켓을 벗어 던지고 주환이 가져왔던 옷 중에서 적당한 자켓을 골라 걸쳤다. 색이 조금 바랜 후드달린 청자켓이었다. 사라의 손을 잡아 일으킨 뒤 바로 길을 안내받았다. 분명히 똑같이 손을 잡고 있는데 어째선지 온기가 느껴져오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사라를 사랑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부산까지 갈 거니까.
[‘낚시꾼’이 죽었습니다.]
‘마녀’와 ‘낚시꾼’의 싸움을 본 나는 바로 결과를 알렸다. 너머로 들리는 미세한 잡음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남자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녀’의 승리라는 거네. 어땠어?]
[막상막하였습니다. 둘 모두 한 끗이라도 실수할 때마다 치명상을 입을 정도였으니까요.]
[‘마녀’는?]
[지금 막 난민구역으로 실려갔습니다. 숨이 완전히 끊어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회수할 수 있어요. 소규모 구역이라서 저 혼자서도 가능합니다.]
[흠......아니, 우선은 돌아와. ‘낚시꾼’이 죽은 이 시점에서 그렇게 급할 이유는 없으니까.]
[미리 회수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또 그 남자같이 보호자가 생긴다면 곤란할 거에요.]
[아니.]
그는 단호히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히라. 이제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마녀’를 이길 사람은 없어. 차라리 살아난다면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그곳에 묶어둔 ‘오일’있지? 그 괴물을 풀어.]
[‘오일’을 푸는 순간 이 지대는 불바다가 될 겁니다. ‘마녀’라도 죽을 위험일 거에요.]
[그 때는 네가 잡아오도록 해. 쉽지?]
[......당신의 놀이에 어울려드리죠.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상대는 ‘서울의 마녀’니까요.]
[그래? 내 생각은 좀 다르지만, 크립톤이 된 사람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지. 아무튼 조금 수고해줘. 복귀하면 ‘식사’는 충분히 준비해 놓을테니까.]
[네.]
통신을 끊었다.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서 바로 ‘오일’이 있는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생겼다. 근처에 있던건지 어느새 내 주위를 크립톤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략 8마리였다. 아무대로 지나가려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카타나를 뽑아들었다. 검은색의 날이 달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어어어어!’
동시에 달려 들어왔다. 자세를 잡고 검은색의 카타나를 크게 휘둘렀다. 달빛 아래로 괴물들의 피가 흩날렸다.
차에 도착했다. 우리의 차는 아주 다행히도 멀쩡했다. 내가 흘린 피들이 문짝과 운전석에 잔뜩 묻었지만 차만 굴러간다면 상관없었다. 바로 사라를 안에 태우고 딱히 내키지는 않는 운전석의 핏자국 위에 앉고 시동을 걸었다. 곧있으면 그 괴물이 주환의 구역과 싸움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기 전에 빨리 튀어야 했다. 사라에게 안전벨트를 메어주고 후진을 했다가 바로 도로에 올랐다. 공기가 답답해서 운전석과 보조석의 창문을 열어 한 번 환기를 시킨 뒤 그대로 탈출하려던 순간, 썩 좋지 않은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피아아아아!’
“시발?”
아주 불길한 소리였다. 내 예감이 얼마나 적중도가 높았는지 우리의 바로 앞에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엔! 괴물 소리가.”
“알아!”
젠장할, 바로 차를 돌리고 반대편 도로를 내달렸다. 어째서?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주환의 구역을 노리고 있었고 그곳만을 노리는 자세를 보였었다. 거기다 우리는 다른 통로를 통해 몰래 탈출했는데 이 괴물새끼는 어떻게 우리를 쫓아온걸까? 설마 벌써 구역이 털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달리는 차량의 뒤로 괴물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면상이 매서웠다. 엑셀을 강하게 밟아 시속 100km까지 올렸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충분히 떼어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우리와 같은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이 새끼, 매드독보다 훨씬 빨랐다.
“사라, 꽉잡아!”
엑셀을 더 밟았다. 아직까지는 직선도로들 밖에 없어서 가능했다. 속도계가 점점 올라가 시속 120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괴물은 떨어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발,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오른쪽 창문으로 주환의 캠프가 보였다. 여기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캠프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엄청 작지만 주환으로 보이는 사람을 포함해 여럿이 벽을 지키며 서 있는것도 보였다.
“사라. 우리 좆됐어.”
“알아.”
“시발.”
좋아. 일단 좆됐으니까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근데 난 저 괴물새끼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시발. 아주 좋은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었다면 모를까. 최악이었다. 거기다가 유리한 것도 저 괴물 쪽이었다. 나에 대해 알 것 없이 밟아버리면 그만이니. 더럽게 불편하네. 이런 혼란함 속에서도 한 가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사라를 살려야 했다. 이대로 사라까지 내 저승길에 동행시킬 수는 없었다.
차를 스펙타클하게 운전하면서 사이드미러를 수시로 확인했다. 괴물이 얼마나 쫓아오고 있는지,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환이 도와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의 거래를 이미 끝났으니까. 이 괴물과의 싸움은 오로지 내 싸움이었다.
차를 뒤지며 쓸만한 무기를 찾아보았다. 내가 아끼던 글록과 나이프가 아빠새끼의 손에 작살이 나버렸으니 대체용이 필요했다. 운전을 하는 동시에 찾아낸 무기라고는 2개가 전부였다. 라이터와 맥가이버 하나. 심지어 맥가이버는 녹이 슬어있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우선 내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 나온 첫 번째 시도는 라이터였다. 저 괴물놈이 몸에서 뿜어내고 있는건 휘발유였다. 지금은 도로를 달려서인지 그러지 않았지만 처음 마주했을 때 다량의 휘발유들을 뿜어냈었다. 그걸 노릴 생각이었다. 시도를 할 만한 코너가 나오자마자 속도를 확 높여 거리를 순간적으로 벌렸다가 조금씩 줄였다. 그리고 괴물과의 거리가 적당히 좁혀졌다고 생각했을 때 코너에 맞춰 핸들을 꺾어 차를 돌렸고 괴물이 미끄러져 넘어지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옆에서는 사라의 작은 비명이 들렸다.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시발아!”
바로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뛰쳐나와 나뭇가지를하나 줍고 흩뿌려진 휘발유 웅덩이에 살짝 묻힌 뒤 바로 불을 붙였다. 나뭇가지에 급속히 묻은 불이 휘발유를 태워가며 강한 냄새를 풍겼다. 그대로 괴물에게 던져버렸다.
‘피아아악!’
던져진 나뭇가지의 불이 괴물에게 닿았고 곧 큰 폭발을 일으켰다. 이건 좀 예상 밖의 결과였다. 덕분에 커다란 폭발의 충격파에 몸이 날아갔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몸은 도로의 끝, 가드레일에 쳐박히게 되었다. 덕분에 등으로 꽤나 아픈 고통이 몰려왔다. 얼마나 세게 부딪힌 건지 바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정신차리고 다시 일어나 괴물쪽을 보았다. 뒤져라, 씹새끼야.
“엔!”
그런데 차쪽에서 사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폭발소리가 들렸던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퍼지고 있어!”
갑자기 무슨 개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곧 내가 영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괴물에게 불이 붙기는 했다. 그런데 불에 타들어가며 비명을 지르기는 커녕 무슨 강력해지기라도 한 것 마냥 아까보다 더 센 기세로 당당히 서 있는 것이다.
‘프아아아악!’
울음소리도 약간 달라져 있었다. 일단 뭔가 더 좆됐으니까 바로 차에 올라타고 다시 엑셀을 밟았다. 무리하다시피 빠르게 출발시킨 차가 급속도로 달렸다. 시골의 도로를 달려서 다른 곳들처럼 폐차들이 길을 막지 않고 있다는게 최고이기는 했다. 반대로 저 괴물놈도 편히 쫓아온다는게 최악이었다. 벌써 쫓아왔으려나? 잠시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진짜, 시발, 개새끼야! 미쳐버리겠네!”
잠시 보았는데도 이정도의 욕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분명히 아까까지 저 괴물은 4개의 다리로 달리기만을 했었다. 지금은? 바퀴마냥 굴러서 다가오는게 아닌가. 그냥 바퀴였다. 멧돼지가 달리는 것도 모자라서 빠르게 구르는 속도로, 그것도 활활 타오르는 불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 생각으로 엑셀을 밟으며 시속 140까지 올렸는데 통하지 않았다. 거리를 벌릴 수 있었던 속도가 이제는 동일하기만 했다. 여기서부터 확실히 느꼈다. 차로 도망치기는 글렀다. 그럼 어디로? 눈앞에 화물센터가 보였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도 저 괴물에게는 비좁은 길들이 눈에 보였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컨테이너 상자들이 모여있는 그곳, 거기로 향해 달렸다. 컨테이너의 좁은 사이를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사라! 고개숙여!”
‘끼이이이익!’
딱 맞았던 크기 덕분에 사이드미러들이 긁혀갔지만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꽤나 멀쩡했던 차였는데 이렇게 긁혀버리니 마음이 아팠지만 수확은 있었다. 괴물이빠른 속도로 달려 컨테이너 박스들에 부딪혀왔고 굴렀던 방향이 틀어지면서 넘어지게 되었다. 걸려서 무너진 컨테이너들이 괴물을 짓눌러주는건 보너스였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바로 엑셀에 발을 올렸다. 괴물이 컨테이너들을 치우며 일어섰다.
‘프아아악!’
짧으면서 더욱더 굵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시발새끼, 체력 더럽게 좋네. 다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화물센터를 돌면서 저 불덩어리에게 엿을 먹일만한 길들을 찾으며 달렸다. 컨테이너 다음은? 세워져 있던 트럭들이었다. 버려진 트럭 사이들도 무척이나 비좁았다. 좋아, 그 사이를 노리고 들어갔다. 역시 사이드미러가 긁히기는 했지만 조금이었다. 바짝 다가오는 괴물은 또 트럭들에 쳐박으면서 넘어지게 되었다. 화물이 달려있던 트럭들이넘어지며 괴물을 짓눌러주었다.
‘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난걸까? 아까보다 울음소리가 더 길었다. 화나겠지. 나 하나를 상대로 저렇게 고전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럴수록 내 기분은 더욱 좋았다. 한 방씩 쳐먹이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으며 계속 차를 굴렸다.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한 방을 때려줄까. 모르겠다. 그래도 괴물이 일어서면서 다시 구른다고 나보다 출발이 늦어진 덕분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방금까지는.
“엔.”
다시 사라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으로.
“왜?”
“모이고 있어. 소리가.”
“뭐?”
‘펑!’
사라와 대화를 하고 있던 도중 바로 나의 앞으로 불에 휩싸인 커다란 무언가가 폭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진짜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마냥 말이다. 놀람과 동시에 급해서 핸들을 확 꺾게되었는데 차가 너무 빠른 속도였던 덕분에 통째로 도로 위를 구르게 되었다. 유리들이 깨지고 지붕이 찌부러지면서.
“젠장할!”
핸들을 쥐던 손으로 사라의 몸을 보호하는데 집중했다. 안전벨트가 끊어질 정도로 억지로 몸을 움직여 그녀를 안았다. 덕분에 그녀에게로 가는 충격들은 최소화 할 수는 있었지만 난 여기저기에 찔리거나 부딪히게 되었다. 몸에 고통들이 가해졌고 상처들이 나를 덮어왔다.
‘쿵!’
차가 가드레일에 박으면서 겨우 멈추었다. 거기다 운 좋게 뒤집어지지 않았다. 바로 머리를 흔들며 흔들리던 시야를 되찾고 사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다. 상처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나처럼 유리파편에 찔리거나 한 흔적은 없었다.
“시발.”
안전벨트를 풀고 먼저 내린 뒤 반쯤 껴버린 조수석의 문을 바닥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워 부숴버렸다. 그리고 많이 어지러운지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사라를 부축했다. 그녀는 내 몸에 팔을 올리며 겨우 걸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바로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디서, 갑자기 포격이 날아온건지? 그 답은 괴물에게 있었다. 저 멀리, 쓰러지는 트럭들에 짓눌렸던 괴물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까까지 보여주었던 멧돼지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게 휜 상아들이 뒤로 가고 얼굴 쪽에는 전차에나 달려있는 포대가, 다리가 있던 부분에는 고정시키는 용도인지 두 개의 굵은 기둥이 바닥을 짚고 있었다. 몸에 붙어 있던 불은 꺼져있었다.
“진짜 다양하게도 논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런식으로 형태변화를 시킨다니. 완전 사기나 다름없는거 아닌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어려웠다. 계속 상처를 입히다 보면은 뭔가 답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싸움에 사라를 끼울 수는 없었다. 일단 달릴 수는 없었서 걸었다. 있는게 도로뿐이고 도망칠 곳도 마땅히 보이지 않았지만 걸어나갔다. 사라를 지키는 게 우선이다. 만약 또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나를 미끼 삼아서 저 괴물을 떨어트려놓을 생각이었다.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런데 희소식이 된 걸까. 괴물이 바로 쫓아오지 않았다. 자주포같던 모습에서 초면에 보았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움직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저 우리를 멍때리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포격을 하고 나서는 바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희소식이었다. 이 틈에 빨리 튀어야 했다. 사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사라, 조금만 더 빨리.”
‘피아아아악!’
시발, 취소.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괴물놈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지. 역시 나 자신을 미끼로 삼아서 멀리 떼어놓아야 하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잠시 살아났던건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끝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사라의 이름을 불렀다.
“사라.”
‘끼이이익!’
이름을 불렀을 때, 우리의 앞으로 차가 미끄러져 빠르게 다가왔다. 설마했다. 그만큼 익숙한 차였다. 겨우 엊그제 보았던 차량이었으니까. 운전석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주환이 밖으로 나왔다.
“빨리 타도록.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