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10
눈이 아팠다. 빛 때문에 눈이 부신것도 아니고 더럽게 아팠다. 따갑기도 했고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그 속에서도 무슨 꿈이라도 꾼 것 같았던, 그 남자와의 장면이 선명했다. 아주 지랄같다. 우선은 일어서는 게 먼저였다. 그러기 위해서 눈부터 뜨려는데 제대로 떠지지가 않았다. 안간힘을 써도 힘들었다. 애초에 나 살아난게 맞기는 한건가? 의심이 들었지만 곧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지는 눈으로 주환의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을 보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너무 흐릿했다. 그래도 앞은 보이니까 상체를 일으켰다.
살아난 소감은 아주 좆같았다. 눈도 눈이지만 몸부터 엉망진창이었다. 겨우 상체만 일으켰을 뿐인데 몸 구석구석들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특히 뼈들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표정이 완전히 썩어질 정도였다. 얼마나 상처를 입었던 거지? 조심히 오른손으로 내가 입고있는 얇은 옷을 들어올렸다.
“.....히......할?”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처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분명이 흉터라도 남아있어야 할 상처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빠새끼한테 당한것만 해도 총상과 칼에 찔려 피가 터져 나왔었고 마지막에는 크립톤의 발톱에 가슴이 뚫리기까지 했었는데 그 모든 상처들이 사라진 것이다. 말끔히. 뭐지? 아직도 꿈 속인건가?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점점 돌아오는 선명한 시야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환의 텐트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입구 쪽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해가 뜬 것이다. 그런데 사라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구하지 못한거야? 불안해서 바로 누웠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려는데 허락받지 못한 건지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알지 못하는 의료도구들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도구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내 귀를 어지럽게 했다.
“......하....라......히할.”
말도 여전하다. 대화가 불가능할 수준이었고 목도 엄청 아파왔다. 젠장할! 하나뿐인 팔로 바닥을 짚으며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켰다. 역시 엉망이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한 걸음씩. 그리고 천막의 밖으로 나갔다. 여담으로 내 발은 맨발이었고 옷은 회색의 원피스였다.
밖으로 나오자 강렬한 빛이 내 눈을 덮쳤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던건지 햇빛이 보이는 바닥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오전? 오후? 모르겠다. 사라나 찾아야 했다. 눈을 찌푸리면서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몇개를 제외한 모닥불들이 꺼져있고 노숙자같은 놈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몸을 맛보고 싶다는 눈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좀 위험하다. 바로 뒤쪽으로 향했다. 그쪽은 좀 안전하니까.
어려운 걸음을 옮겨서 천막의 그늘을 지나 뒤로 가자 조금은 안전해 보이는 구역이 나왔다. 저번에도 이 안에 사라가 있었으니까 또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만나고 싶었다. 마음도 급했다. 덕분에 또 넘어졌다. 그나마 이번에는 팔로 지탱해서 아까처럼 얼굴까지 바닥에 쳐박은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헨항......”
말부터 빨리 고치고 싶다. 내 뜻대로 말이 튀어나오지가 않으니까 영 별로였다. 다시 몸을 일으키고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보통 이런 몸 상태면 쉬는게 맞지만 사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서운 나였기에 독하게 마음먹고 움직였다. 텐트구역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헤집으며 가능한 낼 수 있는 빠른 걸음으로 나무까지 향했다. 도착한 나무 아래에는 그녀가 없었다. 헛탕이었다.
다시 돌아가려 몸을 돌렸지만 벌써 한계가 오고 말았다.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천막까지 돌아가기는 글러먹었다. 그래서 남아있던 힘들을 억지로 짜내 나무 밑까지 기어갔다. 쓰러지는 건 좋은데 바닥에 얼굴 쳐박는 건 싫었다. 이대로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고 다시 사라를 찾으러 가자.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제서야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줍짢은 놈이 아닌 주환이었다.
“어떻게......살아난거지?”
그가 내게 물었다. 나는 아픈 목을 억지로 써가며 대답해주었다.
“하호 홀......컥!”
그러다 뭔가에 걸려 헛기침까지 튀어나왔는데 이거 엄청 아팠다. 목을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말하지 마라. 우선 천막으로 돌아가자.”
“하라 허이어? 하라.”
사라가 어디있는지 물었다. 알아들었을까?
“그녀라면 지금 텐트에 돌아온 참이다.”
“할리 하라하헤.”
알아들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내 몸을 안아들고 힘겹게 걸어왔던 걸음을 따라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 두 눈으로 사라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무사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조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설마 또 이 망할 놈이 뭔 지랄을 해놓은건가? 시발. 그러면 진짜로 죽여버릴 것이다. 나의 사라는 그런 좆같은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사라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대로, 어째선지 힘없으면서도 나를 보려는 표정을 한, 정말 복잡한 감정이라도 가진 것처럼 그녀가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조심히, 정말 아끼는 것처럼 이름을 불렀다.
“하...라. 사....하.”
시발! 이름만이라도 제대로 부르고 싶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전달되었다. 그녀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게로 시선을 옮겨주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평소의 사라라면 나를 확 끌어안아 주거나 손을 뻗어서 날 만지려고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무언가 엄청나게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드디어 사라가 한 손을 뻗어서 내 손을 찾아 나섰다. 나는 기쁜 마음에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은 별로 없었지만 잡기에는 충분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내 몸에 전해졌다.
“엔!”
사라의 목소리. 그녀가 날 불렀다. 젠장, 목이 별로인데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다.
“응. 아, 혀있허.”
“엔, 있잖아, 엔......”
뭐야? 왜 그러는거야?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가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결코 그건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난 것에 기쁘지 않은 걸까? 뭐지? 주환을 쳐다보았다. 그는 사라와 나를 번갈아보다가 겨우 한 마디, 설명해주었다.
“난 너와의 약속을 지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사라가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 당장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을 것 같더군.”
나의 사라가? 이건 좀 충격이 컸다. 그렇게나 내 죽음에 슬퍼했던 것인가. 그가 다음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위로 따위는 할 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슬픔은 당장 해결해야 했지. 그래서 말했다.”
“훨?”
“있잖아, 엔.”
주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사라가 이어갔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줄곧 보았던, 내가 죽여왔던 자들 대부분이 보였던 두려움의 눈빛이었다. 나도 따라서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내게 현실이 되었다.
“엔이 ‘서울의 마녀’야?”
“......”
잘못들은게 아니었다. 그녀는, 사라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내게 물었다. 나에게 ‘서울의 마녀’냐고. 귀를 의심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어째서, 네가 그걸 알고 있는거야? 어떻게?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주환. 그를 노려보았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히할롬이!”
“정말이구나, 엔.”
아차, 실수하고 말았다. 재빠르게 거짓말을 둘러대야 했는데 주환을 죽일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건 맞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사라는 그대로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를 보았던 눈빛도, 따스하게 전해주었던 온기들도 거둬들이고 있었다. 아냐. 안돼. 사라, 날 떠나지마. 그녀를 붙잡기 위해 힘들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내게 보이지 않았던, 특히나 나를 향해서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두려운 눈을 보이고 있었다. 나의 가슴 속 어딘가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엔.......나, 조금 혼자 있고 싶어.”
“......”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그녀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사라는 혼자있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러면서 정작 내 옆에, 그대로 앉아있기는 했지만 나를 바라봐주지는 않았다. 고개를 아래로 숙인채 나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그게 충격이 되었다. 나에게도. 이제 사라에게 있어 나는 좋은 사람도, 함께하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저 추악한 쓰레기 살인마일 뿐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정체를 들켜버린 난 몸이 나을 때까지 사라와 불편한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나는 미련가진 멍청이처럼, 사라는 이제 남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말이 돌아오고 몸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자리를 떠났다. 계속 있어봐야 나도 나지만 누구보다 사라가 불편해 할 것이니까. 그녀가 잠들던 침대에 놓여 있던 내 옷으로 갈아입고 마시라고 뒀는지 보이는 물에 발과 손을 대충 씻고 남은건 마셨다. 그리고 아직도 해가 저물지 않은 밖으로 나가자 주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나?”
“시발새끼.”
다시 봤다고 해서 반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만큼은 경멸했다.
“너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게 된 건 열 번 사과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라를 살리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줬으면 하군.”
“알아. 그러니까 닥쳐. 진짜로 주먹 나가기 전에.”
“흠......우선 옮기지.”
그는 나를 뒤에 데리고서 다른 장소로 옮겼다. 이곳에서 말하면 전부 사라에게 들리는 것도 있고 여전히 노숙자 놈들이 날 보는 시선이 좆같았다. 그를 따라 이동한 곳은 이 구역의 벽이었다. 부하들은 사람들을 데리고서 일을 나갔는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위에서 얘기를 이어갔다.
“우선 네가 죽고 살아난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을 설명해주겠다. 분명 궁금할테지.”
“말해봐.”
마침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너의 차를 본 건 이 벽에서였다. 멀리, 라이트가 켜진 차가 다가오더군. 그래서 애들을 데리고 다가갔고 너의 차인 것을 보자마자 확인했지. 그때 이미 넌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오히려 숨이 붙어있던게 신기할 정도로 상처가 심했지. 사라는 그 옆에서 널 붙들고 있더군.”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널 옮겼고 나이는 좀 들었지만 한 때 실력있던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했지만 그도 말하더군. 가망이 없다고.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라고도 했지만 답은 역시 같았다. 그 때 사라의 정신이 나갔었다. 너가 죽을 리가 없다고 말하다가 끝끝내는 자기가 죽였다면서, 스스로를 살인자라고까지 몰아갔다. 난 생각했지. 이대로 두었다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경우가 생길것 같다고. 그래서.”
“내 정체를 말하고, 나에 대한 슬픈 생각을 저따구로 바꿨다는 거겠지. 슬픔을 줄이기 위해서.”
“맞다.”
“내 손에 총만 있었으면 당신 대가리는 아니라도 다리를 쏴버렸을 거야.”
순간 내 눈앞에서 부서진 글록17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진정시켰고 부하들에게 따로 감시를 맡긴 뒤 난 의사와 함께 너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지. 그리고 오늘 아침, 사망을 확정짓고 장례를 치를 생각이었던 때에 너가 깨어난 것이다. 말이 안되는 상황이지. 숨이 꺼지고 심장도 멈춘 사람이 살아났다는게.”
그 남자가 떠올랐다. ‘작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 그의 짓일까? 아니, 가능성이 적다. 그도 분명 날 보며 죽었다고 말했고 이상한 빛에 감싸였을 때 똑같이 놀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서는 있는 것 같군. 아까는 분위기상 말해주지 않았다만, 잠시 이 거울을 보겠나?”
“갑자기 거울을 보라고? 화장은 자신없어.”
“보면 알 거다. 특히 너의 눈이.”
“눈?”
주환은 품속에서 작은 거울을 하나 꺼냈다. 녹이 슬었고 검게 그을린 부분이 있었지만 내 얼굴을 보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을 받고 바로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왜 눈을 가리켰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눈동자의 색이 변해있었다. 검은색에서 노란색으로. 그것도 분명한 노란색으로 말이다.
“뭐야, 이게.”
“의사를 불러놓았다. 나중에 잠깐이라도 좋으니 검사를 했으면 하는군.”
“......마음대로 해.”
“그 동안 쉬도록. 특히, 사라와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아보이는군.”
“당신만 아니었으면 마음편히 그랬어.”
“그런가. 그거 미안하군.”
그는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졌다. 내 손에는 여전히 거울이 쥐어진 채였다. 이대로 사라에게로 돌아갈까? 아니, 분명 그녀가 반기지 않을 것이다. 사라가 싫다면 나도 싫었다. 그럼 이제 난 어디로 가지? 누구에게로 가야하는 걸까. 그 목적을 알지 못한 채 텐트 밖을 서성이다가 입구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저 먼 농촌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했다.
우선, 깨져버린 사라와의 관계였다. 이 일에 주환이 크게 터트려주기는 했지만 마냥 그에게 잘못을 따지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름 사라를 살리려고 한 뜻은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미 들켜버린 이상 관계를 새로이 할 필요는 있었다.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는 걸 찾아야 했다. 가능하면 부산까지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약속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친구라는 것을 넘어서 내게 ‘사랑’이라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은 사라가 유일했다.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으니까 최소한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아빠새끼가 정말로 죽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을 장식한게 내가 아니긴 했지만 크립톤한테 찢기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날 키웠고, 내가 가장 경계했으며, 가장 정상급으로 보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 막상 뒤져버리니까 어딘가가 좆같았다. 이 좆같음을 더한 것은 ‘작가’란 놈의 말도 한 몫 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아버지’라고 했었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그랬는지는 더 생각해봐야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바로 ‘송혜’가 지금까지 내게 경고했던 말들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내게 진실을 말하라고 했었고 언젠가는 들킬거라고, 내 입으로 직접 말하라고 했었다.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말할 것을 추천했으며 그 섹터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사라에게 ‘폭풍’이 찾아올 거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 년, 무슨 예언가마냥 다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시 떠올리니 좆같네.
잡다한 생각들을 끝마치고서는 일어섰다. 이대로 마냥 앉아만 있어도 지금 내 정체를 사라가 알게 되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최악에서 그나마 나은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조금 큰 결심을 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이런다고 관계가 무조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미 이렇게 된 거, 그 동안 숨겨만 왔던 나에 대한 것들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사라의 몫이었다. 그런 각오를 하고서 천막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내가 없는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사라의 여린 등을 비추었다.
“사라.”
조심히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지만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대답으로 알고 그녀의 바로 앞, 침대에 걸쳐앉았다. 그리고 억지처럼 사라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온기가 전해져오지 않았지만 부드러움을 그대로였다. 그래, 이거면 충분해. 마음 편히는 아니지만 전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천천히 입을 열고서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재미없는 내 인생이야. 사라, 난 살인자인 아빠와 사이비 종교 신자인 엄마 밑에서 태어났어. 이름은 ‘노진영’. 생일은 1997년 4월 17일. 그 때 엄마가 내게 세례명이라는 것도 붙여줬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나. 아마 좆같은 거였겠지. 아무튼 그렇게 태어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빠의 밑에서 훈련이라는 고문을 받았어. 의무로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학교를 다녀오면 내 식사를 따뜻한 쌀밥같은게 아닌 벌레였어. 어디서든 생존력을 키운다는 명목하에서 강제적으로 먹게 했지. 만약 거부하거나 구토를 하면 벌레들이 가득한 어두운 방에 가둬버렸어. 처음에는 벌레들이 징그러워서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살기위해 먹게되었고 나중에는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아서 자연스레 먹게 됐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어서 나무를 깎아 무기를 만들거나 바로 필요한 것들을 제작하는 법을 배웠고 초등학생 막바지에는 강제로 운동을 하면서 체력과 근력을 키웠지. 각각 정해진 목표가 있었고 하나라도 실패하면 아빠한테 추가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어. 다른 애들은 놀기 위해 뛰어다녔다면 난 살기 위해 뛰어다녔어. 그게 내 초등학생 때의 삶이야.”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사라의 손이 움직여지는게 느껴졌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의자에 묶여서 지냈어. 아빠새끼가 훈련이라는 구실로 내게 최루가스를 직접적으로 뿌리거나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약들을 내 몸 안에 집어넣었어. 그러다가 심심하면 숨을 오랫동안 참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내 목에 밧줄을 감았었고 다른 것들로는 물고문이나 불을 이용한 고문도 많이 당했었어. 그래, 내성을 키운거야. 그 어떤 싸움에서도 쉽게 당하지 말라고. 그나마 내게 휴식처가 있었다면 학교였을 거야. 그곳에는 아빠새끼의 손이 닿지 않았으니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었던 장소이기도 해. 한 명뿐이었지만. 그 친구도 너처럼 나에 대해 알고 싶어했지만 말해주지 않았어. 이유는 알거라고 생각해.”
잠시 텀을 두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갔다.
“초등학생 때는 살아나가는 방법을, 중학생 때는 버티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맞이한 고등학생 시절에, 그래, 그 때부터 난 살인을 시작했어. 사실 고등학생도 아니었어. 학교를 가지 않았거든. 다른 애들이 펜을 쥐고 책을 보았을 때, 난 칼을 쥐고 수많은 시체들을 보았어. 아빠새끼의 주도하에 거부감을 없앤다는 이유로 첫 살인으로 한 청년을 죽였고 그걸 시작으로 유괴해서 죽이거나 혼자 사는 사람의 집에 쳐들어가 사람을 죽이거나 여러 가지로 죽였어. 솔직히 말해서 거부감 따위는 없었어. 그렇게 키워졌으니까. 그런식으로 몇 주 정도 보내고 나자 난 완전히 사람을 죽이는 것에 미쳐있었어. 습관이 되었고 일부가 되었을 정도로. 그게 막바지에 달했을 때, 아빠새끼는 내게 시험을 줬어. 내용은 간단했어. 나 혼자서 한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죽이면 되었거든. 대상은 내 중학교 때 사귄, 유일한 친구였던 그 애였어. 그리고 난 시험을 완수하기 위해 걔를 납치했고 폐공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였어. 그때부터 이미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었던 거지.”
사라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살인에 대해서 배운것들이 끝나고 나서는 한 수술을 받았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수술. 그 때 아빠새끼는 싸움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그런 수술을 해버리니까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지만 막상 훈련에 들어가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 매일, 아빠새끼는 어디선가 현역으로 있던 범죄자나 건달, 청부살인업자들을 데려왔고 내게 싸움을 붙였어. 그 싸움에서 내가 이기면 조용히 넘어갔지만......지게되면 상대방에게 몸을 대줘야 했지. 성적으로 말이야. 그제서야 왜 그런 수술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더라고. 그는 두 개의 훈련을 동시에 시킨거였어. 하나는 싸우는 법을, 다른 하나는 성고문에 견디도록.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여름, 난 한 가지, 커다란 결정을 했어. 그 집에서 나가기로.”
내 스스로의 인생을 직접 말하며 돌이켜보니, 역시 아빠새끼의 밑은 좆같았다.
“집을 뛰쳐나가면서 한 가지 다짐을 한 게 있어. 바로 지금의 날 만든 아빠새끼를 죽여버리기로. 내 몸에서 그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었고 날 이렇게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거든. 개인적으로 앞의 이유는 쭉 이어나갔지만 뒤의 이유는 나중에 가서는 좀 희미해져 버렸어. 아무튼, 집을 뛰쳐나간 나는 겨우 있는 돈을 가지고 서울로 향했고 고등학생이라는 걸 이용해 비싸게 몸을 팔고 다녔어. 집을 뛰쳐 나가자마자 얻은 첫 직업이 창녀였지. 그게 가장 익숙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그냥 창녀로 돈이나 벌면서 살아 남아갈 생각뿐이었는데 키워진 본능이 어디 가지는 않더라고. 우연히 한 깡패놈들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시작은 싸움이었지만 끝은 살인이었어. 그래, 모조리 죽였어. 그 뒤로도 몇 명 더 죽였고. 그러다가 한 특별한 모텔에 다다랐고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어. 처음에는 웬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니까 아니더라. 왜냐고? 내 삼촌이었거든. 아빠새끼한테도 단 한마디도 존재에 대해 듣지 못했던 내 삼촌. 당연히 처음에는 의심했지. 그런데 유전자 검사라던가 여러 증거들이 삼촌이 맞다고 말해줬어. 근데, 그 모텔에서 바로 안 건 아니야.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야. 뭐, 아무튼, 그 모텔에서도 하는 일은 똑같았어. 몸을 팔고 돈을 버는 건데 다른 점은 한칸뿐이지만 지낼 곳이 생겼다는거. 그 전까지는 이 모텔, 저 모텔 엄청 싸돌아다녔으니까 지낼 곳이 있다는 게 좀 편하기는 했지. 그런데 단순히 몸을 파는 일만 했다면 특별한 모텔이라고 안했겠지. 왜 특별했는지 알아? 살인청부까지 받는 곳이었거든. 모텔의 주인이 살인의뢰를 받아오면 내가 죽였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모텔에서 몸을 팔고 의뢰가 없는 날에도 난 사람을 죽였어. 이유는 간단해. 재밌으니까. 나도 어느 순간부터 살인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더라. 처음에는 거북감만 없었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었는데 점점 재미가 붙었어. 그래서 죽였어. 사람들을. 그 뒤로 내게 붙은 별명이......‘서울의 마녀’야.”
내 입으로 그 별명을, 그것도 사라 앞에서 얘기했다. 다른 때들과는 다르게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과거, 사람을 죽이고 나를 누군지 궁금해하는 놈들한테는 가볍게 썼던 별명이었는데 사라에게 만큼은 무척이나. 줄곧 그녀가 알고 싶어했던 나의 ‘마녀’이야기. 조심히 사라의 표정을 확인했다. 여전히 좋지는 않았다. 그럴만하지.
“나가 있을게.”
내 얘기를 들려주었고 잠시 그녀를 혼자 두기로 했다. 그래서 손을 놓고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약한 힘이 내 옷자락을 잡아왔다. 누가 잡았는지 알았지만 마냥 기쁘게 대답하거나 확 끌어안을 수는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분위기는 완전히 어두웠다. 그 속에서 들려온 사라의 대답은 눈물이었다.
“모르겠어, 엔.”
“......그래.”
“난 정말 모르겠어. 그러니까......”
사라지라고 말한다면 사라져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산까지는 데리고 간 뒤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게 약속이었고 그곳만이 그녀를 살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들을 때가 되었다는 사라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다가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일단은 옆에 있어줘.”
“......그래.”
기뻐야 할 말이었다. 사라져달라고 하기는 커녕 같이 있어 달라는 말이니까. 엄청 기뻐해야 했다. 그런데 아주 좆같게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어딘가가 먹먹하고 답답했으며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가려던 걸음을 뒤로 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앞, 침대에 걸쳐 앉아서 바라보기만 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평소라면 내가 자주 걸었겠지만 지금만큼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녀가 결론을 내릴 때까지. 머리가 아프다. 속도 무거웠다. 그런데도 주환은 망설임 없이 우리의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두 손에 옷들을 쥐고서.
“잠시 실례하지. 부하놈들에게 시켜서 좋은 옷들을 구했다.”
한 벌씩으로 구성해오기보다는 그냥 있는거 없는거 다 긁어왔는데 하나같이 예쁜 것들이 없었다. 이 남자도 패션감각이 더럽게 없었다. 다시 살아나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센스 구린 놈이 사라를 평생 데리고 있었을 테니까.
물론 나도 기능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있고 사라에게도 그 생각을 적용시켜서 입히기는 하지만 서울에 있을 때처럼 여유가 없는게 아니면 최소한의 패션의 선을 지켜서 입히는 편이었다.
“마음에 드나?”
“당신, 앞으로 여자들 옷 함부로 골라주지마.”
“옷들이 조금 낡기는 했어도 입기에 문제는 없어보인다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이 멍청아.”
잠시 일어나서 옷들을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들춰보면서 사라에게 어울리면서도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을 것들을 골라보았다. 우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세상이 개판이어도 날씨는 여전했다. 앞으로 마주할 수도 있는 일들과 여러 경우들을 생각하면서 고른 옷들은 이러했다. 남성용이지만 어느정도 사이즈가 맞는 하얀 셔츠와 누가 입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름있는 연갈색의 치마, 다리를 감싸줄 검은 하이삭스 스타킹, 벗기는 불편하겠지만 먼 길을 갈 때 발을 오래 보호해줄 갈색의 부츠, 원래 메고 있던 벨트는 그 때 똥개들에게 물려서인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아서 버리고 얇은 벨트가 보이길래 메주기로 했다.
“사라, 오랜만에 옷 좀 갈아입자.”
“......”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왔다. 사라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만히, 다른 행동없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옷을 들고 입혀주려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혼자서 입을게. 할 수 있어.”
“아......그래.”
거절당했다. 평소라면 내가 입혀준다고 했을때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주었는데 지금 그녀는 분명하게 거절했다. 슬프기보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왜? 아직 확신할 수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좋은건 아니었다라는 걸 머리에 새겼다. 여기서 난 억지로 그녀의 옷을 갈아입힐 수도 있었다. 사라는 힘으로 날 이기지 못하니까. 또한 힘으로 눌러버리는게 내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조용히 물러났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야한다고 느꼈다.
주환을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멀리 가지는 않았고 바로 입구에서 기다렸다. 그러면서 안에서 들려오는 옷 갈아입는 소리만을 들으며 사라의 한 마디를 계속 떠올렸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내게는.
“이 꼬맹이냐? 고얀놈아.”
잘만 기다리고 있는데 웬 늙은 할아범이 다가오더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다 나를 꼬맹이라고도 했다. 순간 화가 나서 손가락을 꺾으려다가 주환과 관련된 사람임을 알고 참았다. 그래도 기분은 나빴다.
“그래. 피를 가지러 왔나?”
“쯧, 하여간 문제 덩어리들 뿐이구만.”
“야, 영감탱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가리는 말이 없다? 나같은 사람이야?”
“사람? 웃기고 자빠졌네. 지금 니년이 사람이라고 생각되냐?”
“그래, 시발! 정정할게. 나같은 쓰레기다. 됐냐?!”
“그 소리가 아니다, 이 꼬맹아!”
자꾸 아까부터 날 꼬맹이라고 부르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얘기만 했다가는 노인네고 자시고 주먹이 나갈 것 같았다. 아, 그냥 한 대 쳐버려?......잠깐, 그런데 그 소리가 아니라니. 뭔 얘기지? 좀 더 자세히 묻기로 했다.
“내가 왜 너같은 꼬맹이 피를 뽑아가는지는 아냐? 니년이 정말로 사람인지 괴물놈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썩을년.”
“그럼 설명이라도 해주던가! 미친 노인네가 지 혼자 알고서만 지랄이야. 죽을래?”
“어차피 죽을 나이야! 거 답답한 년. 거기다 설명할 것까지 뭐가 있겠느냐? 상식적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나는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운이 좋았겠지.”
“운? 오냐. 그런 니년 몸상태부터 설명을 해주마. 총상과 칼에 깊숙이 찔린건 물론이고 아예 몸이 뚫려있었다. 장기까지 한 곳으로 밀리다 못해 폐가 하나부서져 있었고 숨이 붙어 있을 수도 없었던 몸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너의 모습을 봐라. 상처들이 흉터지면서 붙은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았잖냐. 그것부터 넌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낚시꾼’과의 싸움에서 무슨 일이 있던건지, 아니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던건지 모르는데, 운? 쯧.”
확실히,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예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몸이었고 흉터가 남은 것도 아니고 아예 말끔히 나았다. 짐작가는 거라면 하나 있긴 하지만 그 남자도 나를 아예 죽은 사람 취급했었고 내가 살아난다는 징조를 보였을 때 거짓없는 당황한 표정을 보인걸 생각한다면 이것도 아니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내게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