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8
“형님, 저희도 가야 합니다. 그 장애인 여자 혼자서 ‘낚시꾼’을 잡는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텐트의 안, 주환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의 앞에는 한 부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있었다. 그러든 말든 주환은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캠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 생각을 알지 못하는 부하가 계속 떠들었다.
“분명히 개처럼 죽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가야합니다.”
“......착각하지 마라.”
그런 부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역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형님!”
“늑대가 앞다리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똥개가 되나?”
“......아닙니다.”
“그래, 늑대는 늑대다. 오히려 난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더군. 앞다리를 잃은 젊은 늑대와 늙고 병든 늑대, 둘 중 누가 살아남아 목을 물어뜯을지.”
주환이 일어섰다. 그리고 천막의 밖으로 나섰다. 그는 조용히 기다라고 있었다. 과연 어떤 늑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지를. 달이 가려지는 밤, 그는 부하들에게 단단히 이 구역을 지키고 있을 것을 말했다. 그리고 저 멀리, 엔이 떠나간 자리를 지켜만 보았다.
발을 떼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추는 빛이라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은 달빛들이 전부였다. 그 아래, 나를 기다리는, 지금까지 내가 찾았던 남자, ‘낚시꾼’, 숨겨진 최악의 살인마이자 나를 이렇게 키운 장본인, 아빠새끼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철장에 갇힌 사나워 보이는 똥개 두 마리와 그 옆에 사라가 묶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입은 따로 막아두지 않았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 하나에 조금이나마 안심하게 되었다.
“사라!”
“......엔?”
거기다 자신의 목소리도 아직 낼 수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엔, 안 돼. 도망가. 제발!”
무시했다. 지금부터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내 인생 최악의 남자가 먼저였다.
“이제야 둘이서만 만나는구나. 진영아.”
“......”
“꽤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아보이는군. 그렇게도 내가 싫은가?”
“......”
“대답조차도 해주지 않는건가. 후후. 변한 구석이 있어서 불쾌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성장했구나. 난 너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단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음, 뭐지?”
“만약 내가 그때 콱 죽어버리려 했으면 어쩔 생각이었어?”
“어릴 때를 말하는 건가?”
“몇 번이고 죽어볼까 했었거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적절히 정신을 다뤘었지.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였던만큼 네가 죽으면 많이 슬플테니까 말이다.”
“지랄하네.”
“진심이란다. 넌 내 소중한 딸이고 난 아버지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놈들’이 너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란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묘비에 무슨 말이나 새길지 생각이나 해둬. 오늘 당신은 하나뿐인 딸내미한테 묻힐테니까.”
“......다른 결말은 전혀 없어 보이는군.”
아빠새끼가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와 똑같은 글록17이었다.
“이제 결말은 딱 두개야. 당신이 죽던가, 아니며......내가 죽던가!”
나도 바로 글록을 뽑아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머리를 노리면서. 뒤에 사라가 있기 때문에 조심히 조준해서 싸우며 밖으로 유도해야 했다. 그걸 위한 동선을 그리며 총알의 표적들을 노려보지만 역시 내 생각을 아는건지 그는 이상한 움직임들로 모든걸 망가트렸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칼은 꺼내지 않고서.
밖으로 몰아내는 동선은 포기하지 않고 그의 한 걸음마다 새로운 동선들을 만들어갔다. 이 폐공장에 보이는 문은 총 3개. 내가 들어왔던 뒤의 문과 양옆에 셔터가 올라간두 곳. 한 곳도 빠짐없이 동선을 맞춰나갔다.
‘탕!’
물론 나의 동선도 마찬가지.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총알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멈추어서는 안되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그 동선을 맞춰야 했다. 첫 번째 싸움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를 밖으로, 그는 내 계획을 잘라나가며 안으로. 신경전, 심리전, 모든게 오갔다. 서로의 눈빛과 표정, 발동작, 손동작 모든 것에 집중했다. 엄폐물은 없기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판자 같은 것들을 이용하거나 조준점을 흐트려야 했다. 그래서 총구의 동선에도 집중했다.
‘탕!’
두 발의 총성. 내것은 그의 어깨를, 그의 것은 내 허벅지를.
‘탕!’
이어지는 총성. 서로의 뺨을 스쳤다.
‘탕!’
폐공장에 시끄럽게 울리는 총성은 쉴 틈이 없었다.
‘탕!’
서로에게 다가가며 또 한 발, 아슬아슬하게 허리쪽으로 빗겨나갔다. 그리고 정말 오랜시간이 흘러 가까이서 마주하게 되었다. 서로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의 눈빛에는 심연과도 같은 어두운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내 총구가 먼저 그의 머리를 노렸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쳐내졌다. 역전, 그의 총구가 내 머리를 겨누었다. 고개를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 피하고 쳐내었다. 그러면서 가슴을 겨누었다. 정확히는 심장. 하지만 또 먹히지 않았다. 몸 자체를 돌려서 피하고 내 팔을 붙잡으며 역으로 내 심장을 겨누어왔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다리를 올려 걷어차 총구를 위로 꺾어주었다.
“동작이 크구나.”
내 팔을 잡던 손에 목이 잡히고 말았다. 강하게 들어오는 충격과 함께 순간 헛기침이 나왔지만 빠르게 풀어 헤쳐내고 다시 총구를 그에게로 겨누었다.
‘탕!’
자세를 다시 잡자마자 당긴 방아쇠, 빠르게 뛰쳐나간 총알은 이미 깨져버린 유리를 한 번 더 맞추었다. 낚시꾼은 이미 예측하고서 피한 것이다. 내 동작을 미리 다 꿰고 있었다. 역시 다르다. 다시 방아쇠를 당겨 쉽사리 사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는데 이미 내게로 다가와서는 또 총구를 흐트려 놓았다. 발길질에 맞은 손이 얼얼했다. 다시 그의 총구가 나를 향했다.
“어쩔.”
맞아서 튕겨져 나가는 손으로 빠르게 바닥을 짚고 몸과 함께 다리를 올려 그의 총도 차버렸다. 우리 둘, 모두 총을 놓치게 되었다. 이대로 칼을 뽑고 베어버리는 선택지도 있긴 했지만 남는 손이 없었기에 육탄전에서 제대로 된 타이밍을 잡을 때까지 몸싸움을 이어가기로 했다. 총을 차버린 다리를 빠르게 꺾어 그의 목에 걸고 일어서는 동시에 몸을 완전히 돌려 강한 힘과 함께 바닥에 쳐박아 줄 생각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머리가 깨져 죽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긴장감 따위도 없이 쉽게 풀어버렸다.
“동작이 크다고 했단다.”
그리고는 역으로 내 발목을 잡더니 바로 앞 밑바닥에 던져버렸다. 등이 세게 부딪혀 고통이 느껴졌지만 주환이 준 약물 덕분인지 다른 때보다 훨씬 덜했다. 덕분에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지 못했다면 아빠새끼가 내려찍는 발에 뼈 하나가 부러져 나갔을 것이다. 바로 몸을 일으켜 권총의 위치부터 찾아나섰다. 내 건 들어왔던 입구쪽으로, 그의 것은 우리 사이에 떨어져 구르고 있었다. 덕분에 생각이 일치했다. 나도, 그도, 사이의 권총을 쥐기 위해 바로 몸을 달렸다. 먼저 도착한 건 그의 오른손이였다. 총구가 나를 향했다.
“총에 의존하지 말 것. 그게 당신이 내게 가르쳤던 거잖아.”
총구를 손으로 잡아 옆으로 흘리며 발을 날렸다. 정확히 허리를 노리며 들어가는 킥이었다. 이대로 한 대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정이라는 걸 몰랐기에. 그의 왼손이 내 킥을 막아내면서 역으로 내 허리에 킥을 허용하고 말았다. 고통을 덜했지만 내 중심이 흐트러지는데는 충분했다. 이어서 배에 주먹이 들어오고 얼굴을 한 대 후려 쳐맞게 되었다. 그 와중에 억지로 몸을 지탱시키며 나도 한 대, 턱을 갈기며 권총을 다시 놓게 하는데 성공은 했지만 전혀 교환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았다. 내가 일방적으로 쳐맞기만 한 게 많았다. 일시적으로나마 그를 떼어낼 수 있었다.
“총을 쥐었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한다는 생각은 버리는게 좋다.”
“미안한데 니 새끼 수업은 자퇴한지 오래거든? 더이상 날 가르칠 생각하지 말라고!”
“호오.”
쿠크리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이 시점에서 육탄전은 끝. 애초에 몸싸움으로 그를 이길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몇 대는 때리겠지만 순전히 그것만으로 내가 이긴다? 웃기는 소리다. 그래서 나이프를 뽑아든 것이다. 똑같은 근접전이지만 양상은 달랐다. 그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내게로 달려들었다. 부딪히는 칼날, 케이니와 싸웠을 때나 재혁이와 싸웠을 때와는 전혀 다른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 년들한테는 한 번 허용해도 피할 자신이 있었지만 이 남자는 전혀 아니었다. 실수하는 순간 바로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동작을 최소화하고 빠르게, 정확하게 움직였다.
처음부터 목이나 심장을 노리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 막힐게 뻔하니까. 그래도 아예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고 우선적으로는 칼을 쥔 팔이나 다리, 허리들을 노려갔다. 먼저 휘두른 건 나였다. 그의 허리를 노리고서 빠르게 접근해갔다. 몸을 숙이며 다가가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리고 막혔다. 동시에 주먹하나가 나를 향해왔다. 역시 팔 하나가 없는게 빈 자리가 컸다. 대신으로 몸을 돌리며 다리를 이용해 막았다. 그러면서도 머리에 킥을 날렸다. 역시 막혔다. 포기하고 다시 나이프로 손목을 노려본다. 아빠새끼는 나이프를 반대편 손으로 던져 잡고 내가 가장 자주이용하는 다리를 찌르려 했다. 빠르게 뒤로 내빼었다. 역할은 이미 바뀌어있었다.
“꽤 좋은 칼을 쓰는구나.”
이제는 아빠새끼가 칼을 휘둘러왔다. 내것보다는 가벼운 것이라서 휘두르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거기다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들어왔기에 막기가 버거웠다. 오른쪽을 막으려 하면 그는 왼손으로 칼을 던져 잡아서 들어왔고 또 왼쪽을 막으려 하면 오른손으로 칼을 던져 잡아 휘둘렀다. 거기다 계속 나를 발로 걷어차거나 할 기회를 엿보는 눈빛이 보였다. 빡쎄다고 확 느껴졌다.
쿠크리 나이프가 크다는 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막아보지만 벌써 뺨이나 허벅지를 긁히고 말았다. 그대로 급소가 찔리는 것을 막았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러다 일부러 내 배를 걷어찰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체력이 빠진 척하면서 틈을 보여주었고 보란듯이 그가 무릎을 올리며 공격할 자세를 잡았다. 그 때문에 느슨해진 칼의 공격 사이를 파고들어 나이프를 휘둘렀다. 결과는 성공. 큰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올려지는 그의 허벅지를 찌르는데 성공했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미친 개마냥 깊숙히 찔러주었다.
“흠?”
이어서 옆으로 움직여 찌른 나이프를 뽑아서 허리까지 노렸다.
‘팅.’
조금만 더 뻗으면 벨 수 있었는데 막히고 말았다. 그가 허벅지를 맞자마자 칼을 왼손에 던져 잡고 막아내었다. 날 밀쳐내는 건 덤. 그래도 아까처럼 틈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정말 그 시절의 내가 된 것 마냥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오로지 그를 죽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망가질 몸이라면 쓸 수 있는대로 다 쓰고 뒤지는게 편하다.
‘팅!’
부딪히는 칼날, 힘싸움은 동등했다. 다만 그는 두 손이었다. 주먹이 다가왔다.
‘퍽!’
한 대 맞았다. 피한 덕분에 얼굴은 맞지 않았지만 어깨에 내리꽂히고 말았다.
‘팅.’
또 다행인건 팔이 날아가버린 어깨라서 나이프를 휘두르는데 지장은 없었다. 계속, 급소를 노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빠르게, 쉬지 않으며 휘둘렀댔다. 수십번도 부딪힌 소리가 폐공장을 울렸다.
‘퍽!’
기회라면 기회, 급소까지는 아니지만 내 발길질이 먹혔다. 그것도 허리에. 조금이지만 아빠새끼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칼을 놓지 않으며 언제든지 방어할 수 있는 자세를 빠르게 취하는 그였지만 내 나이프의 끝을 허용해주었다.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으나 손목 근처를 베는데 성공했다.
‘팅!’
도박으로 나이프를 고쳐잡으며 목을 노려보았지만 막히고 말았다. 그러다 이 남자가 왜 고개를 숙여서 피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고 곧 대답이 들어왔다. 그의 손이 내 목을 쳐내려 했다. 빠르게 힘을 실어 밀쳐낸 덕분에 빗나가게 할 수 있었다.
‘툭.’
밀쳐진 아빠새끼의 뒷발에 내 권총이 닿았다.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그를 폐공장의 문까지 이동시키는데 성공했다. 중간마다 동선들이 꼬여서 힘들었지만 이곳에서 벗어날 틈을 마련할 수 있었다.그 작전을 확실히 하고자 준비자세도 없이 몸을 날렸다. 아예 몸채로 쳐박을 생각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그가 빠르게 중심을 잡고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부딪히는 우리. 조금이지만 그가 뒤로 밀려갔다.
“어리석구나.”
나의 시선으로 칼이 올라가는게 보였다. 등을 내려찍을 생각인 것이다. 주먹에 쳐맞는 건 몰라도 찔리는 건 안되지. 밀치던 걸 멈추고 아래에 보이던 내 권총을 공장 밖으로 차내고 몸을 굴렀다. 바로 일어서자마자 그의 칼이 다가오고 있었다.
‘팅!’
벌써 몇 번째나 이렇게 칼을 마주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힘겨루기가 시작되면서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진영아. 왜 그렇게까지 저 여자를 지키려는 거냐. 그저장애를 가진 여자일 뿐이건만.”
“남이사, 시발아. 내 여자니까 존나 특별한 거야.”
“너 스스로 목숨을 조이고 있는 것이란다.”
“알고 그러는거니까 신경꺼, 시발.”
“후후후......재밌게 자랐구나.”
두 칼날이 튕겼다. 그리고 바로 마주했다. 서로 급소만을 노리면서 계속 휘두르던 칼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권총을 주워야 하는데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총격전은 버리기로 했다.
“어째서 날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는 거지?”
싸움 도중 아빠새끼는 끊임없이 자기 할말을 물어왔다.
“왜냐고? 니 새끼가 존나게 싫으니까 그렇지!”
“내가 준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착각하지마. 당신이 준 삶? 오히려 망쳤으면 망쳤지.”
“그렇게 생각하나?”“그렇게 생각해. 그나마 사라를 만나서 이 개좆같은 삶이 행운도 가져다 주었구나 자위중이긴 한데, 그래도 니새끼가 싫은건 변함없어.”
“날 죽인다고 해결될 건 없단다.”
“대신 당신을 쳐죽여 버림으로서 내가 니 새끼의 딸이라는 것과 이 썩어빠진 가족이라는 관계를 끊어버릴 수는 있지. 지금까지 그것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시발아.”
“안타깝구나.”
“그래? 난 드디어 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쁜데!”
나이프를 던졌다. 정확히 머리를 향해서. 그는 피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고 그 기회를 노려 권총을 줍워 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빠새끼가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게까지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내 행동을 읽었는지 무슨 곡예사 마냥 내 나이프의 손으로 잡아채었고 그대로 고쳐잡아 다시 나에게 던진 것이다. 날 부분을 쥐면서,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내 작전을 저지한 것이다.
“칫.”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했던 나이프가 이마 바로 앞을 스치고 날아가서는 글록17을 정확히 맞추었다. 그 탓에 안그래도 낡아가던 권총이 마침내 부서지고 말았다.
“기억하거라. 난 너의 애비다.”
이거야 원, 순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최악의 적이었다. 나는 나대로 그 시절로 돌아감과 동시에 죽을 것까지 생각하고 달려들었는데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도 빡쳤다. 지금까지 마냥 논 것도 아니었고 언제든지 아빠새끼를 죽일 준비를 했었고 내 스스로 가능할거라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비등하기는 커녕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권총이 부서지자마자 총을 쓰는건 아예 포기하고 바로 나이프를 주워서 달려들었다. 내 총은 부서졌고 아빠새끼의 총은 공장 안에서 나뒹구니 이제는 정말로 근접전 뿐이었다. 어렵겠지만 이대로 밀어붙이다가 기회만 생긴다면 내 승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가 누구였더라? ‘낚시꾼’이었다. 보기좋게 난 미끼를 물고 말았다.
그의 손이 품 안에서 빠르게 다른 권총을 꺼낸 것이다. 글록19. 아뿔싸. 이미 내 몸은 완전히 달려들고 있었고 방향을 꺾기에는 발이 떼어진 상태였다. 완전히 낚이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최악 속에서 죽을 수는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그의 총구를 노려보았다. 어디를 쏠까. 머리? 심장? 아니, 내 오른 어깨. 빠르게 나이프로 이판사판으로 오른쪽 어깨를 가렸다.
‘탕!’
‘팅!’
방아쇠가 당겨지는 동시에 총알이 나이프를 맞아 튕겼다. 안 맞았냐고? 그건 또 아니다. 튕겨나간게 아니라 궤도만 바뀐 것 뿐이었다. 본래라면 오른쪽 어깨를 뚫을 총알이 살을 스쳐지나갔다. 가벼운 생채기는 아니었고 살조각이 조금 찢겨져 나갔다. 그래도 이 거리까지 좁혀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기에 이 악물고 버티며 다가가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도 이런 내 미친짓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날카로운 날이 아빠새끼의 허리를 찔렀다. 그것도 깊숙히. 절대 얕은게 아니었다.
멈추지 않았다. 바로 몸을 돌려 다시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런데 오른어깨의 상처 때문에 아파서 제대로 노리지 못했다. 비켜나가는 바람에 목이 아닌 그 아래를 스치게 되었다. 그도 상처를 입자마자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기억해. 난 오늘 당신을 죽이고 호적 팔거라는거.”
“흠.”
그는 이제 나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아까부터 가졌던 여유를 전부 벗어 던졌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워졌다. 덕분에 좀 더 긴장을 가지게 되었다. 2차전, 이제 우리는 서로 상처를 가지고서 달려들었다. 나는 더 최소화한 동작으로 그의 빈틈은, 그는 더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나의 빈틈을 노려왔다. 내 나이프와 그의 칼이 계속 부딪혔다. 아빠새끼는 칼을 움직이면서도 총을 쏠 틈을 노려왔고 나는 그 틈을 계속 막으면서 밀어붙여 나갔다. 그의 집중력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는게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샌가 우리는 평지에서 공장 옆에 쌓여져 있던 콘크리트 파편들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덕분에 동작 하나하나가 더 중요해졌다. 어쩌다 여기까지 올라온건지 감탄할 여유따위 없었다. 아직도 아빠새끼는 살아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마냥 내가 불리한건 아니었다. 같은 조건이니까.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계속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러다 마지막인 것 마냥 온 힘을 담아서 머리를 노렸고 그의 칼도 방어를 포기하고 내 목을 노렸다. 동시에 부딪힌 나이프와 칼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서로를 튕겨냈다. 내 손에서도, 그의 손에서도 무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뒤져버려.”
따라서 뒤척이려던 몸의 중심을 빠르게 잡고 손을 뻗었다. 마침 아빠새끼는 자신의 총구를 내게 들이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목을 잡아 총구를 돌리고 삼촌에게 당했던 것을 써먹었다. 내쪽으로 끌어당기며 무릎을 걷어차 꿇렸다. 그리고 빠르게 다리를 올리면서 턱을 세게 가격했다.
“컥.”
‘낚시꾼’의 중심이 흔들렸다.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아픈 부분들을 꾹 참으며 몸이 흔들리는 그의 손에서 글록을 빼앗아 겨누었다. 정확히 머리를. 이대로 방아쇠만 당기면 지긋지긋하고 내 인생 동안 좆같았던 최악의 악연을, 정말로 죽이고 싶었던 이 남자를, 내 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뒤져버려! 개새.......쿨럭!”
......이상하다. 아까까지 덜 아팠던 몸 구석구석들이 갑작스러운 고통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뭐지? 알 것 같다. 주환이 주었던 약물의 효과가 끝난 것이다. 덕분에 머리를 노리던 총구가 흔들린 채로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다.
‘탕!’
밤중에 울리는 총소리, 달빛에 잠깐이나마 반짝였던 총알의 궤도가 아래로 내려가며 아빠새끼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노렸다. 심장에서 좀 왼쪽으로 벗어난 곳이었다. 총알이박히고 나도 이 콘크리트 파편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평지도 아니라서 더더욱 아팠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내 상처들을 보게되었다. 여기저기 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적셔가고 있었다. 특히 허리, 송혜가 강조하면서 조심하라고 했던 상처였는데 그게 터지고 말았다. 거기다 아픈 정도가 장난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시......발!”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정말로 코앞이었다. 저 개자식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일어섰다. 조금만 움직여도 뒤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콘크리트 바닥이라 제대로 짚을 곳이 없었지만 아무곳이나 잡고 강제로 힘을 주면서 일어섰다. 겨우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손에 쥔 권총은 아직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거는 다행이네. 아빠새끼는?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고 다가가 보니 콘크리트 속에 묻혀있던 철근에 어깨가 찔려 있었다. 나만 운이 좋았다. 아니다. 또 일어서서 보니 다리가 개판이 나 있었다. 걷기가 힘들다. 특히나 평지도 아니라서 더더욱. 그래도, 시발!......그래도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흔들리는 시야와 점점 중심을 잃어가는 몸. 아까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다룰 수 있었서 한 결 나았다. 그렇게 아빠새끼의 앞에 서서 총구를 겨누었다.
“하아......하아......내가 이겼네? 시발아.”
“......딸아.......움직이거라.”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그가 힘이 빠지 목소리로 말했다. 뭐지? 마지막 개소리라도 지껄이려는 건가 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너의 사랑하는 이가......고통받을 것이다.”
“무슨......개소리를.”
“꺄악!”
개소리 집어치우라며, 이제 좀 진짜로 죽으라며, 마지막 인사를 해주려는데 익숙한 목소리의 비명이 들려왔다. 누군지 안다. 그래서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채 소리가 들려온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어째서? 아, 떠올랐다. 묶여서 잡혀있던 사라의 양옆에 보였던, 두 마리의 개가 갇혀있던 우리, 그게 개였던가. 생김새가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늑대개.
바로 걸음을 옮겼다. 아빠새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이상 움직임을 크게 하면 상처가 더 찢어지고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 알고 있었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사라가 위험하다. 그저 키우던 개를 그냥 데리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저 똥개로만 인식했던게 내 큰 실수였다.
콘크리트 파편들을 밟고 내려가다가 발목이 꺾이며 넘어질 뻔했지만 하나뿐인 팔로 어떻게든 지탱하면서 빠르게 내려왔다. 상처가 터지다 못해 아까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덕분에 시야가 완전히 흐려지고 말았다. 저 위에 뜬 달만이 더럽게도 피를 잘 비춰주고 있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라를 찾았다. 숨이 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 빠르게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 우리에 갇혀있던 두 마리의 늑대개가 빠져나와서 그녀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 망할 똥개새끼들이! 누구를 물어?!”
총구를 들었다. 이때만큼은 어떤 정신인지 평소대로 정확히 겨눌 수 있었다. 정확히 두 발, 늑대개들의 머리에다가 꽂아주었다. 내 총알에 맞은 놈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이 이상 더 움직이면 좆된다는 걸 알면서도 사라에게 달려갔다.
“사라!”
가까이서 본 그녀의 모습은 최악이었다. 묶인 팔 때문에 몸을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물어뜯긴 상처들과 함께 피가 흘러나왔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라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상처들이었다. 치료. 그것만 생각했다. 그녀를 묶어 죄고 있던 줄을 풀어주고 벽에 기대어 앉혔다. 늑대개들에게서 튄 피들이 머리카락도 붉게 묻히고 있었다.
“엔, 엔.”
“이제 괜찮아, 사라. 기다려. 금방 치료해줄테니까.”
‘탕!’
오랜 시간만에 재회한 것처럼 감동과 함께 그녀를 무사히 구출한 것에 대해 기뻐하던 때, 총소리가 울렸다. 내 것이 아니었다. 난 아예 총마저 던져놓고 사라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누가 쐈는지는 몰라도 누가 맞았는지는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내리고 내 배를 보자 허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빠르게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그래도 아파 뒤지겠는데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또 내 실수가 드러나고 말았다. 사라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다고 내버려 두었던 빈사상태의 아빠새끼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팔 하나는 축 내린 채.
“......시발...새끼......가.”
“항상 마지막은 잘 장식하거라. 엔.”
그대로 날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는 나를 쳐다보면서 총알을 한 발 더 쏘기보다는 웃고 있었다. 비웃음같은게 아니었다. 정말로 웃고 있었다. 내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그의 표정이었다. 왜 웃는 거지? 너무 다쳐서 정신이 돌아버린 건가? 아니다. 아빠새끼는 그럴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어째써? 모르겠다. 시야가 계속 흔들렸다. 그 속에서 지금만큼은 최악이 되어버릴 소리가 울려퍼졌다.
“우어어어!”
크립톤이었다. 지금은 밤, 크립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모습을 보인건 천장이나 다른 곳이 아닌 아빠새끼의 뒤였다. 그것도 나 대신 아빠새끼를 발톱으로 찢어 죽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마무리하고자 했던 끝이 괴물새끼들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나의 아빠는 죽어버렸다. 수년간, 도망치다가, 쫓다가, 쫓기다가, 마침내 만난 아빠새끼가.
허무하달까. 좀 그런 감이 있었다. 내 손으로 완벽히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하지만 그런거, 지금은 생각치 않기로 했다. 또다른 최악의 상황이었으니까. 지금 내 옆에는 사라가 있었고 내 몸상태는 더럽다 못해서 움직이기도 버거운 정도였다. 그런 우리의 앞으로 크립톤 3마리가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짜로......좆됐다.
“엔, 이 소리.”
“알아. 그러니까......가만히 있어. 이 시발새끼들이 내 마지막 밥상을 엎어?”
토하려던 피를 참아내고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 손에 권총이 들려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총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는 것과 여기서 저 3마리가 다가오기 전까지 죽여버리지 못하면 사라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내 인생 역대급의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한탄해봐야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맞서야 했다. 총구를 들었다. 점점 힘이 빠지려는 팔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시야도 흔들리는데 총구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봐주는 거 하나도 없는 괴물새끼들 앞에서.
“우어어어어어어!”
크립톤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왔다. 거리를 불과 10M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짧게, 정확하게 끝내야 했다. 숨을 참으며 제일 먼저 앞장서는 놈의 머리를 겨누었다.
‘탕!’
한 발, 머리를 뚫었다. 선두에서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던 놈은 그대로 굴러 죽어버렸다.
‘탕!’
두 발, 이어서 달려오던 놈의 머리를 쏘았다. 지금 생각하면 괴물치고는 약점이 사람과 같아서 다행이었다. 좀비같은 놈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놈, 역시 머리를 겨누었다.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을 당기려했지만, 몸으로 강한 충격과 함께 무언가가 관통해왔다. 동시에 총알이 뛰쳐나갔다.
‘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