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7 (56/72)



〈 56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7
어찌어찌 한 여자, 아니 이제는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로부터 일을 제의받은 뒤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모텔을 이리저리 다닐 필요 없이 한 곳에서 지내게  것이다. 그래봐야 밤이 되면 섹스를 한다는  변하는게 없었지만 날 뒷통수 칠 손님이 없는, 안정적인 곳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방은 얻은 나는 그동안 모았던 돈을 써서 개인용품들이랑 옷들을 사와 정리해두었다. 모텔들을 쏘다닐 때는 따로 옷을 보관할 곳들이 없어서 자주 버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옷장이 생겼으니까. 주로 섹스용 옷이랑 평소 활동하는 옷, 그리고 살인의뢰를 받았을 때 활동할 옷들을 장만해두었다. 남색의 후드자켓, 그게 사람 죽일 때 가장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옷 말고도 개인적으로 사용할 노트북이라던가 여러 가지 도구들도 구매해두었다. 어디에 사용할 지는 뻔한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정착생활을 시작한 첫 째날, 바로 작업에 들어설  있었다. 일의 구조를 보자면 평소에는 그냥 몸파는 매춘부로 일하다가 살인의뢰가 들어오면 잠시 언니의 모텔을 떠나 얼굴이랑 모습을 가리고 의뢰자와 접촉, 일을 처리해 보수를 받는 형식이었다.  중 10%는 언니가 중개비로 가져가고 나머지를 내가 모두 얻어내었다. 이게  편한게 뒷처리를 할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대개 의뢰자쪽에서 해결해주었다. 대부분이 권력이나 재력높은 사람들인 덕분에 조용히 처리되었고 뉴스에 뜨더라도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도록 손을 써주었다. 하지만 나도 실력과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틈틈히 흔적들을 지우는 편이었다. 그 덕분인지 나를 사용하면 손이 덜간다며 단골손님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름이 필요해졌고 나는 아빠새끼가 지어준 좆같은 이름을 버리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지었는데 간단하고 멋있는게 없을까 하다가 ‘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도 부르기 쉽고 어느 정도 상징성을 띄울 수 있어서 결정하게 되었다. 내 이름은 이제부터 ‘엔’이었다.

주말이 되면 개인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매춘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돈을 벌고 싶으면 언니에게 말해서 일을 하고 쉬고 싶으면 자유롭게 놀러나가거나 방에서 쉬면 되었다. 그 때 난 주로 어떤 휴식을 가졌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 이유? 재밌으니까. 원래는 그저 거북감이 없는 정도였다면 청부살인을 맡고  뒤부터 원래의 본성을 찾은 것인지 사람 죽이는게 무척이나 즐거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시비를 걸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니면 심심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많아졌다. 대부분 아빠새끼한테 배워먹은 것들을 많이 사용했다. 대신 이런 살인에서는 뒷처리가 모두 내 몫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있어야지. 즐거우니까. 겨울이 다가왔고 오늘도 난 휴식다운 주말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내가생각한 건데, 오빠. 이건 어떨  같아?”

오늘은 내게 시비를 털었던 한 양아치를 잡아 고문을 하고 있었다. 주로 찾는 장소는 폐공장. 아무도 없고 입구만 막아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특히 컨테이너 같이 안에 들어갈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면 더 안성맞춤이었다.

내 앞의 남자는 나에게 두들겨  맞고 의자에 묶인 채 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듣고 있었다. 최근 아빠새끼한테 배운 것 말고 다른 고문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 내 오른손에는 거친 사포  장이 들려있었다.


“이걸로 피부 어디든간에 계속 비비는 거야. 그래서 오빠한테 써볼까 하는데.”

“으읍!”

“좋다고? 나도 그래!”

오른손에 쥐고 있던 사포를 남자의 면상에 올리고 세게 밀어 재꼈다. 꽤 거친 정도가 센 것을 샀는데 얼마나 효율이 좋은지 벌써 피부가 때처럼 벗겨지고 있었다. 남자는 재갈물린 입으로 비명을 내지르려 해보지만 무리수였다.

“오빠 좋아? 덕분에 말이야 내 기분도 존나게 째질 것 같아. 시발아. 개흥분돼.”

그대로 얼굴을 계속 밀었다. 계속, 벗겨지는 피부, 다음으로 피가 흐를 때까지, 계속. 그러다 사포의 표면이 못 쓸 정도가 되면 새 것을 꺼내 또 밀어주었다. 벗겨지는 피부로 속살이 보이고 피가 흐르면서 목 아래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남자는 살아있었다. 심장이나 머리에 총알을 박으면 끝나는 게 사람인데 그것만 아니라면 이렇게 버티는 생명력이 신기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밀고 있는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손이 삐끗해서 눈을 갈아버린 것이다. 남자의 비명이  시끄러워졌다. 그래도 여자들보다는 나았다.


“어머, 미안. 그런데 어차피 죽을건데 아무렴 어때? 그치?”

그래서 남은 눈을 강제로 뜨게 하고 똑같이 사포로 밀어버렸다. 이후에는 목부분도 성대가 찢어질 때까지세게 밀어버려 남자는 죽여버렸다. 새로운 고문 방법은 쓸만했다. 역시 난 이런 것에 있어서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즐길  즐기고 시체를 깔끔하게 뒷처리 한 다음에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다행히 옷에는 튀지 않아서 따로 빨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폐공장을 나오자 해가 점점 저녁을 향해 떠나가고 있었다. 내 휴대폰에는 언제 오냐는 언니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금 간다는 답장을 하고 도시를 향해 걸었다.

그간 이런 생활을 하면서 꽤나 많은 돈을 벌  있었다. 빡촌에 있어서 나란 물건은 상당히 귀중했고 청부살인까지 겸하면서 잔고만 따진다면 이미 천만 단위를 훌쩍 넘은 지 오래였다. 따로 통장들이 있지만 극히 일부만 보관하고 남은 돈들은 들키지 않게 적절히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참에 차라도 한 대 사버려? 아무튼, 돈과 동시에 새로운 변화들도 있었다.

우선은 가장 큰 변화로 나에게 별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찰 놈들이 내가 여자라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불과  일 전까지만 해도 남자라고 확정 지으며 수사하다가 한 단서를 통해서 여자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기자새끼들이 ‘서울의 마녀’라는 시답잖은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게 좆같아서 답례로 내가 벌이는 살인마다 특정의 표시들을 남겨주었다.  중 몇몇은 귀찮아서 안 남긴 것도 있었지만 대표로 될만한 것들은 모두 남겨두었다. 덕분에 매일 뉴스에서 나를 다루는 분량이 엄청났다.


언니는 나보고 당분간은 사리면서 지내라고 했다. 마음대로 하는건 좋지만  정도로 경찰들이 움직인다면 나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면서. 하지만 어떻하나, 이미 난 완전히 맛들려 버린지 오래였다. 하루 빨리라도 살인의뢰가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하.”

혼자서 생각하다가 실소가 흘러나왔다. 요즘 느끼는 건데 난 단단히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발. 작작 죽일걸 그랬나? 아니, 더 죽여도 상관없을 것이다. 애초에 사람새끼란게  본능대로 살아야 사람다운 거지. 사회에서는 나같은 놈들을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상관없었다. 이게  모습이니까.


아주 잘 지내고 있는 빡촌건물에 도착하자 언니가 밖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공사관련이겠지. 최근에 PC방을 업그레이드 한다고 했다. 요즘 막 재밌는 게임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에 맞춰서 업그레이드 한다고 말했었다. 물론 난 알아듣는게 없었다. 컴퓨터를 가지고서 해본 거라고는 야동 보면서 자위하는 거랑 잠깐 도박좀  것 밖에 없었으니까.


“왔니?”


언니는 얘기를 나누다가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네왔다. 막 얘기가 마무리되어가던 참이라고 한다.


“피곤해. 따로 일 들어오거나   없지?”

“미안하지만 하나 있어서.”

“쾌락과 붉은색. 어느쪽?”

“붉은색.”

살인의뢰였다. 방금도 사람 죽이고 왔는데  죽이랜다. 뭐, 나야 좋지. 그래서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사람을 죽일 때 입는  후드자켓은 너무도 편했다. 바로 모자를 뒤집어써서 얼굴도 가릴 수 있는 데다가 여러모로 움직이기 좋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대충 화장실만 들렸다가 나왔다. 언니가 메모지를 꺼내 주소를 적어서 내게 주었다.


“여기로 가면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사람을 죽이면 돼.”


“기다린다는 게  아니지?”


“다른 일로 기다리고 있는 남자야. 아마 그 사람 혼자 서 있을거니까 간단할거야.”

“보수는?”

“2천.”


“오케이.”

바로 새로운 칼을 챙기고 움직였다. 적힌 주소를 여기에서부터 좀 떨어진 곳이었다. 택시는 안되고 버스를 이용했다. 선유동이란 곳은 처음 들어봤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일반인 마냥 버스를 타고 휴대폰으로 오랜 단골 손님들에게서 비싸게 쳐준다는 연락들을 보며 도착한 그곳은 작은 산이 있는 곳이었다. 약간 서울 외곽이었는데 기차가 다닐 수 있는 기찻길도 있었다. 공사하다 말은 폐건물과 함께. 그리고 멀지 않게  남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이건 언니한테  들었는데.

“뭐, 상관없나.”

군인이고 나발이고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내 쪽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쪽을 보면서 경계심도 없이 마냥  있었다. 이대로 뒤에서 칼을 꽂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칼을 꺼내 들었을 때, 기습을 받게 되었다.

‘픽.’

어둠 속에서 보인 칼날, 보자마자 몸을 숙여 피했다. 꽤나 빠른 속도였고 정확히 내 목을 노린 칼이었다. 누구지? 모른다. 하지만 반격이 우선이었다. 이대로 턱이라도  대 갈기려는데 칼을 고쳐잡더니내려찍으려고 했다. 아예 몸을 옆으로 굴러서 피해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날 기습한 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완전히 새까만 검은색의 옷을 입은 남자였다. 절대 여자 체형이 아니다.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로 단단히 가리고 있어서 볼 수 없었다.

“시발, 넌 뭐야?”


예의상 물었는데 씹혔다. 바로 칼을 들이밀어 왔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서 나도 칼을 꺼내 반격했다. 기분 더럽지만 아빠새끼 밑에서 배운 경험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의 칼이 또 내 목을 노리면서 들어왔다. 1의 오차도 없었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사람의 자세였다. 그래도 내  바가 아니었기에 보란듯이 피하고 다른 동작을 취하기 전에 내가 먼저 손목을 잡아 꺾고 다리를 걷어차 눕힌 뒤 등을 수차례 찔러주려고 했다. 무언가에 가로막히기 전까지.


‘퍽!’

주먹이 날아와 대 얼굴을 때렸다. 지나가던 깡패새끼의 주먹은 절대 아니었다. 졸라게 아팠다. 오죽하면 중심이 흔들리며 나도 따라 넘어졌을 정도였다. 바로 일어설 수는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오죽하면 그 언니가  죽이려고 함정을 파놓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검은색의 남자가 한두놈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 마냥 5명이 더 모습들을 드러내었다. 총 6명, 그것도 철저히 훈련받은 놈들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니들, 도대체 뭐야?”


“너야말로 뭐하는 여자야?”

“내가 물었어. 개새끼들아!”

선빵필승. 먼저 달려들었다. 숫자고 나발이고 어차피 전부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자세를 낮추며 먼저 목표로 삼은 자는 아까 나한테 쳐맞고 누운 남자. 물론 순순히  쳐맞아주지는 않았다. 다른 놈들이 감싸 돌면서 나를 죽이려 들었다. 모두 손에 칼들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식칼이나 그런 잡다한 게 아니었다. 진짜로 근접전을 하라고 만든 단검들이었다.


‘팅!’


칼이 마주치며 소음을 내고.

‘퍽!’

이번엔 내 주먹이 한 놈을 때려주었다. 내가 알고 있거나 한 번이라도 배웠던 잡다한 싸움방식을 전부 써먹고 있었다. 그런식으로 칼을  손으로는 칼을 상대하고 빈 왼손으로는 멱살이나 뒷덜미를 잡아 방해하거나 주먹을 쥐고 때려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힘들었다. 그저 깡패짓만 해온 새끼들이었다면 벌써 내 손에 다 뒤졌을 테지만 이들은 전혀 다른 놈들이었다. 마치 군인마냥.


“시발새끼야!”


그래도 지지는 않았다. 어렵다고 했지 내가 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걸 결과로 보여주었다. 날 기습했던 6명의 남자들을 모두 제압했다. 중간에 칼을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바로바로 죽이지는 못했지만 때려 눕히는데 성공했다. 그  3명은 아예 기절을 시켜놓아서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힘들었다. 나도 맞은 곳들이 있어서. 그런 나의 상태를 기다렸다는 듯,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본래 이번 청부살인 의뢰의 목표물이었던 군인이 다가왔다. 그는 나의 등 뒤에 멈춰 섰다.

“대단한데? 상상 이상이야.”

그런데 목소리가 어째선지 익숙했다. 여러번 들었던 목소리는 전혀 아니었는데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그런 목소리였다. 놀라서 급히 뒤를 돌아보니 역시 만났던 남자였다. 어떻게 잊을까,  그 빡촌에 남기고 튄 그 새끼인데.

“오랜만이야.”


“당신!”

그런거다. 이건 함정이었다. 언니는 살인의뢰를 가장해서 날 여기로 보낸 것이었다. 시발! 이번에는 언니가 날 팔아넘기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의 난 함정에 빠져서 기분이 아주 좆같았다.

“너무 그렇게 이빨 드러내지는 마. 그래도 널 마중하러 여기까지 왔는데.”

“좆까. 누가 나와달래?  뭐하는 새끼야?!”

“나? 그러게. 뭐하는 놈일까. 진영아.”

이름. 그가 내 진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어떻게?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뿐인데 이 새끼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은 것이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 상대가 아니었다. 죽여야 했다. 놓쳐서 바닥에 구르던 칼을 빠르게 잡아채고 목을 노렸다. 그리고 결과는? 허무했다. 분명 내가 먼저 칼을 쥐고서 빠른 속도로 접근했는데 몸이 한 번 공중에 떴다가 지금은 밤이 되어버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으로 꽤나 아픈 고통이 느껴졌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그런 틈으로 내 위로 올라타더니 팔과 다리를 짓눌러왔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컥.”

“형이 제대로 키웠나 보네. 미친개마냥. 아니, 유행 따라서 ‘마녀’라고 불러주는게 맞으려나?”

“당신 뭐냐니까!”


그가 말하는 ‘형’은 분명히 아빠새끼였다. 나를 키운건 그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새끼, 아빠새끼하고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소리였다. 다시보니 폭탄이었다.


“너의 삼촌.”


“뭐?”


삼촌? 시발, 삼촌? 아빠새끼한테 동생이 있었다고? 완전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애초에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을 안해주기는 했는데 적어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라도 들었던 것에 비해 삼촌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게 없었다. 그런 나였기에 상당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믿음도 제대로 가지 않았다. 아빠새끼라는 살인자의 동생이 군인이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네 이름도 알고 있는 마당인데 아닐 것 같아? 뭣하면 형 이름도 까줄 수 있어.”

“......원하는게 뭐야?  전에 조카한테 이따구로 대해도 되는 거야?”

“사랑스러운 조카는 맞지만 야수에서만 생활한 맹수는 함부로 놔주면 안돼서 말이야. 이해해주겠어?”

“좆까. 삼촌이고 나발이고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역시 까다롭네. 진정하고 내 얘기부터 들어봐. 이걸 위해서  사람한테 부탁하고 널 보내달라고 한 거니까.”


“언니를 말하는 거야? 애초에 날 그쪽에 팔아넘겼으면서.”

“보호차원에서 그럴 필요가 있었어. 다 얘기하면 복잡하고 귀찮으니까 오늘의 본론부터 말할게.”

“본론? 그럼 좀 비키시지?  덮칠거 아니면.”

“그건  그렇고. 하하!”


“그럼 빨리 얘기나 해!”

“내 밑으로 들어와.”

“......뭔 시발 좆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밑으로 들어오라고? 내 성격이 그건 전혀 맞지 않았고 아빠새끼랑 연관된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난 싫으니까 얘기 끝이지? 비켜!”


“응? 하하하! 우리 조카가 참 별 이상한 생각도 하고 그러네. 하하!”


“비키라고!”


“얘기 끝까지 들어.”


아까의 모습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빠새끼만큼은 아니었지만 중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섭지는 않았다. 역시 당황했을 뿐이었다.

“지금 널 쫓는 형사 한 명이 있어. 그자는 나도 힘들 정도야. 그러니까 조용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지내다 가. 당분간은.”

“결국에는 군인하라는 소리일거 아냐?”


“물론 그것도 포함이겠지. 하지만 생활면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해주겠어.”


“그 형사새끼가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러게. 뭐길래 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할까.”

“어쩌자는 거야?”

“일주일 주겠어. 그동안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내 연락을 기다려. 다른 사고는 치지 말고. 알겠나?”

“들어가겠다고  적 없는데. 시발!”


“난 대답을 듣겠다고 한 적이 없어. 이건 명령이야.”

자기 할 말을  하고나서야 비켜주었다. 엄청 쑤시는 몸을 정리하고 바로 한 대 후려갈기려고 일어섰지만 스스로를  삼촌이라고 말했던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내가 때려눕혔던 놈들도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정말 좆같은 하루였다고 할 수 있었다.






사고치지 말라고는 했는데 그런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그딴 삼촌의 밑에 들어갈 생각역시 없는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주일이 되기 하루 전까지 몸을 팔거나 즐기지 못했던 일들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고 밤이 되자마자 편지 한 통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래도 나한테 여러 일들을 던져주었었고 이 정도로 돈을 버는 것에 도움을 줬었으니 그에 대한 기본 예의상으로 언니가 읽기를 바라며 나름 정성스런 편지를 둔 것이다.


가방에는 입을 옷가지들과 함께 여분의 현금, 무기로 사용할 칼과 그  잡다한 것들을 챙겨 넣었다. 휴대폰은 바로 버렸다. 스스로를 삼촌이라고 밝힌 그 남자, 휴대폰 추적같은 건 엄청 쉬울 것이다. 그러니 버리는게 나았다. 나중에 다시 맞추면 그만이다.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으로 가서 가능한 멀리갈 수 있는 기차표를   내려가기로 했다. 부산이 좋겠지. 가능하면 해외로 튀고 싶었지만 아직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했고 모르는 곳보다는 아는 곳에서 움직이는게 더 나을 거라는 내 판단이었다.


밤에 탑승한 기차는 조용했다. 덕분에 조용히 숨어들 수 있었다. 표를  때 직원이 조금 의심스러운 눈치로 보기는 했지만 위조한 민증 덕분에 그것마저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좌석을 찾아서 앉고 가방을 열었다. 이 열차칸에는 오로지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정도는 쉬어갈 생각이었다. 먼저 간단히 먹을 것을 꺼냈다. 데웠지만 식어버린 삼각김밥과 물.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혹시 모를 싸움에서 배가 아프거나 하면 곤란하니 적당히 먹어두었다. 그리고는 바로 잠에 빠질 생각이었다. 새벽까지 무리해서 섹스로 돈을  날들이 있어서 수면이 부족했는데 여기서 조금이나마 챙길 생각이었다.


부산에 도착하면 어딜 향해야 할지 조금 막막하기는 했지만 돈에서 여유가 있으니 그걸 사용해 버티며 살인청부든 빡촌이든 머물 곳과 동시에 일할 곳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좆되고 말았다.

“옆에 앉아도 될까?”

내가 피하고자 했던  삼촌이 어느샌가 옆에 다가와서는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군복은 아니었다. 근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도대체  씹새끼가 왜 여기에 있냐는 것이었다.


“......시발?”

“고마워.”


“너......시발......”

“튈 건 알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대전에서 내려서 일 하나만 하고 좀 쉬다 가면 되겠다. 네가 들어오기 전에 바로 실전을 뛰어줘야  일이 있었거든.”


“하겠다고 한 적 없어!”

“그건 내  바가 아니야. 그리고 지금 얘기 들으면 넌 나한테 올 수 밖에 없을걸?”

“좆까.”


“진짜로? 형이 널 찾고 있는데도?”


“......”

그 새끼가 날? 지금까지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날 찾겠다고? 이제와서 왜 찾겠다는 걸까. 개소리라고 생각하려 해도 마냥 그렇게 확정지을 수는 없었다. 난 아직 아빠새끼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있지는 않으니까.

“평생  밑에서 일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적어도 그 형사와 형의 눈에서는 피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 내가 밑작업 중이거든. 그때까지만  밑에 숨어있어.”

“그렇게까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얻어내고 싶은게 뭐야?”


“최고의 암살자. 아직 가공할 수 있는.”


“하! 그런 목적을 가지신 분이 혈육인 조카새끼  따먹으려고 하셨어요?”

“너무 착각하지마. 그때는명분뿐이고 난 어린애들 몸에는 관심 없으니까.”

그는 주머니에 담배를 꺼내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바로 피웠다. 회색의 연기가 좆같게 기차 안을 멤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기보다 삼촌이 내 옆에 있다는 것과 아빠새끼가 날 쫓기 시작했다는 게 제일 신경쓰였다. 시발.

“살인마를 데려다 어디에 쓰려고?”

“그건 따라오면 알려줄게.”

“그 전에, 당신 진짜로 내 삼촌이야?”


“의심하는 거야?”

“당신같으면 안하겠어? 지금까지 생판 얼굴 한 번도 안  인간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이거면 돼?”

그는 내 의심에 종이 한 장을 내보였다. 상단에는 DNA검사라는 단어와 함께  이름과 다른 이름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DNA검사 결과야. 너와 나, 일치하는 DNA가 있고 혈육이라는 관계가 증명됐어. 부족해?”

“내건 언제 뜯어갔데?”

“그 때, 널 때려눕혔을 때.”


머리카락을 가져간 건가. 뭐라 말할 수 없는 삼촌이었다.


“곧 있으면 대전이야. 자, 가볼까?”


“아직 대답 안했잖아!”

“글쎄. 애초에 너한테 대답할 여지는 준 적도 없어서 말이야. 순순히 따라오는게 좋아. 서울의 마녀씨.”


그리고는 먼저 객실의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치 내가 알아서 따라올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게 엄청 기분 나빴다. 이대로 뒷통수를 때리고 콱 부산으로 튀어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이 마냥 나쁘다고는 볼  없었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고 치면 어느 정도의 자유와  가지의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아빠새끼한테서 날 숨겨준다는 것과 같으니까. 따라가는 게 맞는걸까?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금은 대전역이었고 조금 있으면 이곳을 떠나 열차는 부산으로 떠날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초조하게 움직이다가 마침내 선택을 했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기로 했다.








“무기는 더 필요없나?”

“필요없어.  개새끼를 잡으려면 내가 가장 자신있는  쓰는게 나아. 뭐, 애초에 있어도 사용 못하는게 지금의 나니까.”


“그렇군. 혼자 보내게 돼서 미안하게 되었군.”

“아니, 애초에  혼자서 가야할 일이었어.”


앞뒤 상황,  어느것도 필요없었다. 중요한 건 사라가 납치되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제 내게 할 일은 단 하나,  개새끼를 죽이고 사라를 다시 내 품 안으로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아마 그녀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원하는 상대는 나니까.

해도 뜨지 않은 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환은 이곳을 지켜야 해서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도 아끼는 부하를 잃어서 빡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캠프를 버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혼자 가려던 나였다. 친히  손으로  새끼를 묻어줄 때가 온 것이다.  대가가 내 모가지라도.

아빠새끼와의 연을 정리한다는 기념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꽤나 추억이라면 추억이 있는 옷인데 어째서 이 남자가 들고 있는지는 나중에 묻기로 했다. 삼촌한테 반강제로 잡혀가 스파이나 암살로 임무를 뛰었을 때 입었던 특수한 복장인데 도중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입었음에도 사이즈는 딱 맞았던 덕분에 따로 조절이 필요 없었다.


오랫동안 묶고 지냈던 머리카락도 풀었다.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주환에게 부탁해 어깨 조금 위로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긴 머리카락은 잡힐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헤어샵도 없는 지금임에도 과감하게 잘라버렸다.


“이걸 챙겨가도록.”


총을 장전하고 탄창도 넉넉히 챙긴  칼집을 메자마자 주환이 내게 알약 하나를 건네었다. 작은 봉지에 담긴 알약이었다. 합법적인 약으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뭔데? 이게.”


“완벽히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고통을 지워줄 거다.”

“하! 그래. 이 정도는 필요하겠지.”


빈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텐트 밖으로 나섰다. 아빠새끼의 편지는 이제 필요없으니 태워버리고 달이 떠있는 아래, 내 차에 올랐다. 옆에 있어야 할 사라가 없어서 무척이나 빈 느낌이었다.


“이봐.”


“뭐지?”


“이번만큼은 나도 장담을 못해서 그러는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뒤지면......사라  보살펴줘. 당신 목숨 끊어질 때까지.”

“......그러지. 단, 그 놈을 죽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건 걱정마. 죽이는 건 확실히 할 테니까.”


시동을 걸고 텐트들을 지나 문 앞에 섰다. 이제 밖으로 나설 시간이었다. 천천히, 나를 본 주환의 부하들이 문을 열어주고  구역의 밖으로 나섰다. 헤드라이트로 비춰지는 길은 나를 위험한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크립톤? 이제 그딴건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아빠새끼가 나와 같은 곳에 있는 지금만큼은.


달리는 차 밖은 어둠뿐이었다. ‘사건’ 전에는 가로등들이 그나마 빛을 밝혔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밤이 오면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근처에 섹터나 주환의 것과 같은 캠프가 없다면 완전히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버티거나 크립톤을 맞이하거나 뿐이었다. 그래도 ‘사건’ 전보다 나아진게 있다면 공기가 깨끗하고 별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운전하면서 위를 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내게 누가 말했었다. 지구의 인구를 반 이하로 줄이면 자연이 살아날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도 틀리게 되었다. 인간이 멸종 위기에 놓이고 크립톤이 나타나면서 자연은 대부분 죽어갔다. 여기같은 시골들이 그나마 보존된 것이다.


보이는 헤드라이트로 도로가 끊기고 흙길이 나왔다. 그럼에도 차는 무리없이 잘 나아갔다. 이대로 사라만 잘 구하면 좋을텐데. 최고의 스토리는 나도 함께 살아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뭐, 솔직히 이미 그런 생각은 어느정도 접어두고 있었다. 분명 우리는 함께 부산으로 간다는약속을 했고 지금까지 그걸 지켜왔지만 그만큼 아빠새끼가 상대라면 과연 지킬  있을지 미지수가  정도다.


‘초대장’에는 흔적을 찾아 들렸던 슈퍼 근처도, 사라와 함께 잡혀갔던 폐공장도 아니었다. 전혀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었다. 똑같은 폐공장이긴 하지만 그곳처럼 컨테이너나 다른 기계들이 있지 않았다. 정말 깔끔하게 빈 곳이었고 옆에 콘크리트 파편들로 쌓인 작은 동산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나를 때렸다.

“......”


감이라고나 할까.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환에서 받았던 약을 꺼내고 바로 삼켰다. 그가 제조한 만큼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부작용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는 약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의 나는 마녀시절의 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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