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5
“다시 쫓을거야.”
“내일 이어가도록. 지금은 늦었다.”
“그 개새끼를 죽일거라고!”
“상처가 깊으니 쉬도록. 말 들어라.”
“시발.”
단칼에 거절당했다. 나는 대충 치료가 끝나면 곧바로 다시 쫓을 생각이었는데 주환이 그러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서왔다. 송혜처럼 묶어두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압박삼이 컸다. ‘을’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냥 사라를 숨기고 다 쓸어버려? 무모한 생각은 그만두자.
“그러면 사라 데려와!”
“그것도 어렵겠군.”
“왜?!”
“내가 몇마디 던졌더니 금방 풀이 죽어서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리를 비키고 널 찾아온 것이다.”
“사라한테 몇마디? 당신 또 무슨 욕을 쳐한거야!”
이건 좀 빡쳐서 주먹이 나갔다. 이 남자가 던졌다는 몇 마디는 켤코 좋은 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것도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게 되었다. 상처 때문에 제대로 나가지도 않았고 역으로 제압당해 버렸다. 그는 가볍게 피하며 내 팔을 잡아 꺾더니 침대에 얼굴을 쳐박게 했다.
“나조차 한 대 치지 못하는 상태로 낚시꾼을 다시 쫓겠다는 건가? 그것도 크립톤들을 헤쳐가면서? 당치도 않다.”
“사라 데려와.”
“회복하고 직접 만나도록.”
그러고는 날 풀어주고 천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으아아악!”
짜증과 분노, 지금 내 상태에 대한 좆같음이 몰려오면서 자괴감과 함께 혼란이 찾아왔다. 빨리 사라를 보고프기만 했다. 진정하라고? 그럴 수가 있어야지. 역시 가만히 누워있는건 내 성질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야했다.
‘부스럭.’
아픈 몸을 강제로 일으켜서 밖으로 향하려는데 텐트 밖에서 여럿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 아니, 다섯. 발걸음들 속에는 대놓고 본능적인 기색들을 품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안그래도 잔뜩 빡친 상태인데 귀찮은 놈들이 붙어오려 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제발 그냥 돌아가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뱉었다.
“우리 자기들, 꼬추 잘리고 딸딸이조차 못 치고 싶지는 않겠지?”
‘부스럭.’
물러날까? 아니면 각을 잡고 쳐들어올까. 아니, 생각하는게 멍청하지. 혼자도 아니고 여러명이서 몰려오면 뻔하다. 텐트 입구에서 나이프를 위로 치켜들고 내려찍을 준비를 했다. 그대로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놈들이 몇 초 동안 고민할 지 궁금해서였다. 세볼까? 시작, 1초.
“덮쳐!”
맨 처음 천막의 입구를 들추고 들어오는 남자의 머리에 굵직한 쿠크리를 나이프로 내려찍어 주었다. 두개골 때문에 깊숙히 박히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워 할 정도였다. 남자는 순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조금 늦게,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우와, 1초 갱신, 축하.”
내려찍었던 나이프를 뽑고 말했던 대로 꼬추를 잘라내 주었다. 아니, 베어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바지에 가려져 있어서 아래에서 위로, 상처에 무리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베어주었다. 조금이지만 바지가 찢기고 꼬추가 어묵베는 느낌처럼 전해져왔다. 존나게 작은 느낌이었다. 대단히 실망했다.
“자기들, 아직 안 끝났어. 시발새끼들아!”
오히려 잘 됀건가.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사라도 없고 난 분명 경고를 했는데 먼저 다가온 건 이 녀석들이었다. 나이프를 고쳐 잡으며 베어진 남자의 뒤, 남은 4명이 멍때리고 있었다. 그래서 차례차례 베어주었다. 목을 자르고, 가슴을 찌르며 심장을 찌르는 동시에 얼굴을 가격하고, 마지막 놈은 눈을 뺏어준 뒤 입 안에 쿠크리를 깊게, 아주 깊게 박아넣어 주었다.
“컥.”
“에휴, 병신들.”
뽑아드는 나이프로 짙은 피들이 묻어나왔다. 일단 상처가 벌어지거나 터지지 않았다. 그만큼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상대했다는 소리다. 그럴 가치도 없는 놈들에게.
나이프를 집어넣고 누워있었던 침상머리에 걸려있던 후드자켓을 입었다. 내 배나 팔에 피가 튀기는 했지만 대충 닦아버렸다. 이대로 사라에게 향하려던 때 또 텐트의 입구가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누군가 했는데 일단 바닥에 널부러진 병신들은 아니었다. 진짜 주환의 비서인지 자주 마주치는 그 부하였다.
“한탕 하셨군요, 누님.”
“어떻게 할까? 내가 치워?”
“아니요. 저희 난민들이었으니 대충 크립톤들의 먹이로 던지겠습니다.”
“새끼, 목숨 부지할 줄 아네.”
이러니까 주환이 일을 맡기는 건가.
“이름 뭐야?”
“‘유성윤’입니다.”
“잘 지었네.”
같잖은 이름칭찬 한 번 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모닥불과 드럼통의 불들이 타들어 가는 저녁. 해는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었다. 슬슬 이곳은 피워낸 불에 모든걸 의존할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시선들이 잠깐 나를 스쳐 지나갔다. 주환의 부하들이 아닌 난민들의 시선. 이 새끼들도 저 병신들이 날 덮칠 거라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마지막 경고야. 나나 내 여친 건드리면 모가지 날아가니까, 잘 생각해.”
그제서야 시선들이 날 떠나갔다. 자, 해가 지기 전에는 찾아야지. 사라를.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이 캠프를 돌아보게 되었다. 친절히 가이드 역할을 맡아줄 사람은 없었지만 섹터도 아니니까 혼자서 둘러보기에는 충분했다. 난민들의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닥불의 온기들을 받으며.
“사라!”
찾는 방법 첫 번째,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귀가 밝으니까 이 곳에 있다면 내 목소리 하나쯤이야 캐치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어디에서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는 건 이 근처가 아니라는 소리겠지. 애초에 여기로 올 리가 없으려나. 주환이 보호해준다 했으니 돌발행동 염려가 있는 난민들 사이로 섞이지 못하게 했겠지. 그 새 바보가 된 나였다.
반대로 걸었다. 지금까지 내가 걸은 곳은 주환의 텐트 앞, 입구까지의 거리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뒤로 향했다. 한 번 보고 만 것이 전부였던, 대부분 여자나 아이, 노인뿐인 구역. 간간히 남자들이 섞여있기는 했지만 눈빛들에 딴 생각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었다. 이제서야 느낀건데, 이렇게 두구역으로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던 건가.
“사라!”
이곳에서도 힘차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여기에는 있겠지 하면서 부른 이름인데 여기서도 돌아오는 대답이 있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듣고 쳐다보는 여자들 뿐이었다. 설마 주환의 구역 밖으로? 아니, 그럴리가 없지. 자꾸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려 했다. 병신같이. 다시 목을 가다듬고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사라!”
“저기.”
누군가 미끼라도 물었는지 내게 다가왔는데 다 헤진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그녀는 드러난 살자국들로 흔적이 남은 멍들과 입가 옆에 생긴 흉터 하나를 내보이고 있었다.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눈이 안보이는 여자를 찾고 계신가요?”
“봤어?”
여자가 팔을 들어올리며 수많은 텐트들 중앙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혼자 솟아 올라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소나무였다.
“저 소나무에.”
“땡큐!”
대단한 발견을 해준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던지고 바로 텐트들의 숲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헤치며 소나무로 향했다. 스쳐 지나가면서 보이는 내 또래의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모두 무시한채, 오로지 사라만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지막 텐트를 지나 빠져나오자 나무 아래, 곁에 서 있는 주환의 똘마니 둘과 함께 앉아있는 사라가 있었다. 한 손에는 내가 만들어준 지팡이를 쥐고서.
“사라!”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사라도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주었다. 초점없는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빠르게 다가가서 앞에 쪼그려 앉아 마주 보았다.
“......엔.”
“말도 없이 돌아다니며 어쩌자는 거야? 걱정했잖아.”
“응......미안해.”
“사라?”
난 다시 만나서 반가운데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내리면서 훌쩍였다. 사라의 눈물이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바닥에 떨어져갔다.
“미안해. 나 때문에.”
“사라.”
“나만 없었으면 엔은.”
“그딴 말 하지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결국은, 주환 그 새끼 때문이었다. 도대체 사라에게 무슨 말들을 쳐 늘어놓았길래 그 강하던 사라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걸까. 열이 올랐고 화가 났다.
“새겨들어. 넌 아무 잘못도 없어. 널 데리고 다니겠다고 한 건 나였고 너와 함께 가겠다고 선택한 것도 나야. 내가 다치든, 상처가 나든, 모두 내가 선택한 거니까 넌 아무 잘못도 없어. 남이 하는 욕따위 듣지마. 내 말만 들어.”
“하지만.”
“그리고!......네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죽었어. 기억나? 내가 석환이랑 싸워서 널 구해내고 환각에 걸렸을 때, 그 때 날 구한건 너야. 절대로 짐따위가 아니야. 그러니까......내 앞에서 그딴 말 하지 말아줘.”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사라는 더 이상의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고개조차도 끄덕여주지 않았다. 그게 꼭 자책하는 건만 같아서 내 가슴이 옥죄어 왔다.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느낌이 아주 더러웠다. 난 그저 그녀와, 사라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데 주환 그놈은 왜 떨어트려 놓지 못해서 안달인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가 뭐 어떻다고.
“돌아가자.”
“......”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내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온기 가득히 느껴지는 사라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이번 밤을 보낼 주환의 텐트로 걸었다. 붙어있던 두 똘마니도 따라오려 하길래 이제부터는 내가 있으니 잠시 잠이나 자라고 돌려보냈다. 이후 다시 텐트의 숲을 헤쳐가면서 빠져나왔고 사라의 위치를 알려주었던 여자애를 지나치며 텐트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안에, 나를 덮치려다 죽은 놈들은 벌써 치워져 있었다. 냄새도 어떻게 한 건지 남아있어야 할 피비린내도 없었다 깔끔하게 일을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얘네들과는 크게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다. 딱히 내가 먼저 공격만 하지않으면 되긴 하다만 주환이 계속 사라를 건드린다면 그 때 또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나였다.
울어버린 만큼 마음을 추스리라고 사라를 먼저 침대에 눕혔다. 춥지 않도록 이불까지 덮어주자 처음 나와 싸웠을 때처럼 몸을 웅크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대로 마음이 꺾이지 않기를 바랬다. 사라는 강한 마음을 품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 오늘만 해도 하루종일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지금은 나도 걱정 투성이였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안에 있나?”
이런저런 사라에 대한 걱정과 생각으로 혼잡하던 때 주환이 돌아왔다. 사라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이불을 좀 더 덮게한 후 권총을 꺼내며 일부러 경계한다는 표시를 보였다.
“불만이 많은가 보군.”
“목소리 낮춰, 사라가 있으니까.”
“......네가 그런말을 할 입장은 아닌것 같다만.”
“자살한다?”
“흠, 받아들이지. 목소리를 낮추겠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군. 빚을 진건 네쪽이다만.”
“갚을거야. 그 새끼 죽여서.”
그는 앉지 않고 일어선 채로 테이블 밑에서 가방을 꺼내더니 나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권총을 놓지 않고서 조심히 다가가주었다. 가방이 열리며 안에 있던 총 하나가 모습을 보였다, K14 저격소총, 용병으로 굴려질 때 몇 번 보던 것이었다. 실전사격은 딱 한 번 해봤었다.
“이건 왜 보여주는데?”
“어제 네가 죽였던 크립톤들, 그쪽 무리에서 더 찾아온 것 같더군.”
“뭐?”
복수인가. 이상할 건 없었다. 괴물이긴 해도 어째선지 동료애같은 걸 가지고 있던 애들이었으니까.
“몇 마리야?”
“13마리다. 내가 멀리서 일부를 처리해주면 네가 나머지를 처리해줄 수 있겠나? 나이프로.”
저격소총의 끝에는 소음기가 달려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가능한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의미다. 그래봤자 소리가 큰건 딱히 변함이 없다만.
“가능은 한데 당신 상태로 제대로 맞출 수나 있겠어? 폐공장에서 그 짧은 거리에서 그 새끼조차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었잖아.”
“내가 아니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도록.”
“적어도 6마리는 잡아 줘야해. 아직 상처가 있는 몸이니까.”
“그럼 가도록 하지.”
다른 놈이 대신 쏜다는 건가. 일단 별다른 반항 없이 따라가 주기로 했다. 좆같지만 빚이 있으니 그걸 갚아 나간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것이다. 크립톤 7마리까지는 지금의 상처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오늘은 조용한 밤이 필요했다. 나와 사라, 둘 모두에게.
밤이 드리우고 별들이 보이는 아래, 난민 캠프의 모닥불들은 쉬지 않고 타들어갔다. 대신 난민들의 모습들이 없었다. 모두들 텐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크립톤 때문에. 조용해져서 보기 좋네.
“형님. 놈들이 다가옵니다.”
“안다.”
주환의 부하 중 한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급해하지 않았다. 주환은 먼저 벽에 올라가 패딩을 입은 한 청년에게 저격총을 건넸고 난 문으로 다가가 열으라고 한 뒤 구역의 밖으로 나섰다. 어제는 문지기가 진짜로 열어야 하냐고 물었었는데 오늘은 눈치껏 먼저 열어주었다.
‘탕.’
나의 위로 총소리가 뻗어나갔다. 긴장한 표시 없이 한 발씩 끊어지면서 나아가는 총알들이 저 멀리서 미친듯이 다가오는 크립톤들의 머리를 부숴갔다. 사격 실력이 일품이었다. 빗맞힘이 전혀 없었다. 한마리, 두마리, 그렇게 8마리까지 맞추었다. 설마 저새끼가 내 차를 쐈던 그 놈인가?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총구가 벽 안으로 사라지고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남은건 다섯, 나이프를 꺼내들고 괴물들에게로 걸음을 향했다.
“우어어!”
발톱이 다가왔다. 선두의 놈이 높게 뛰어 나를 향해 내려쳤다. 놈이 무안해질 정도로 가볍게 피하고 심장을 찌른 뒤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이어서 다가오는 크립톤들의 머리들을 차례로 베어주었다. 괴물들이 비명소리를 지를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다. 동작을 간략하게, 가능한 움직이지 않도록 해서 상처를 지켜내며 다섯의 부랑자들을 땅에 쳐박게 해주었다. 모두 고개들이 아래로 향하면서 떨거지들처럼 죽어버렸다.
마지막 놈을 베자마자 문으로 돌아왔다. 이정도 되는 숫자나 몰려왔으니 이번 밤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리는 문으로 들어갔고 주환이 내려오면서 피겠냐고 담배 하나를 내밀었다.
“난 그렇게 빨리 뒤지고 싶지 않아.”
“나도, 네 아버지도 살아있다만.”
“그럼 오래 살든가.”
그의 입에 물린 담배의 연기를 헤치며 나이프를 집어넣었다.
“상처는?”
“겨우 저딴 놈들한테 당할까봐? 멀쩡해.”
“그래도 조심하는게 좋아.”
“그러면 애초에 나 시키지 말던가!”
“너만한 괴물이 있었다면 이미 그랬을 것이다.”
“자랑이네요, 시발.”
오늘은 이만 자야할 것 같았다. 피곤하다. 상황이 끝난 것을 알았는지 겁쟁이 마냥 텐트들 속으로 숨어들었던 난민들이 하나, 둘씩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주환의 부하들도 평소의 경계모습으로 돌아갔고 그와 나는 텐트로 향했다.
일단 나는 사라와 함께 잠에 빠질 생각이었고 이 아저씨는 지 알아서 뭐라도 하겠지. 밤에 시끄럽게만 하지 않으면 딱히 신경쓸 게 없었다. 아무튼 지금도 마음이 상해있을 그녀를 위로 해주자고 생각하며 텐트의 안으로 들어선 순간 모든게 반전되었다. 우리의 공기가, 사라와 함께 달콤한 잠을 자려던 행복이, 그 모든게.
“성윤이?”
텐트의 안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날 누님이라고 부르며 부두목쯤으로 인정해주었던 성윤의 목이 나가떨어진 채 죽어있었다. 테이블 위에서 피를 잔뜩 흘리며. 이 광경에 나뿐만이 아닌 주환도 표정이 굳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이딴것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고개를 돌려 사라가 누워있어야 할 침상, 그곳에 이불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고 누워있어야 할 사라가 없었다. 편지 봉투 하나만이 놓인 채.
“이 개, 개새......시발새끼가!”
반쯤 미쳐버린 정신으로 흔들리며 침상에 다가갔다. 사라가 누워있던 자리에 손을 올려보지만 벌써 온기가 반쯤 날아가 있었다. 꽤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다급하게 편지 봉투를 뜯어보았다. 안에는 내가 아는 특유의 글씨체로 메시지 하나가 적혀 있었다. 아빠새끼의......‘낚시꾼’의 초대장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씨부리는 이야기는 절대 재밌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어떤 예쁜 한 범죄자의 재미없는 한탄과 좆같음이 느껴지는 인생살이의 일부일 뿐이다. 고된 고문, 훈련, 범죄, 이런것들을 배우고 실습, 그러니까 실전으로 써먹었던 나이가 17살이었다. 막 첫 살인과 납치, 도둑질 같은 것을 배우고 이제는 어느 정도 혼자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숙달되었을 때 집에서 빠져나왔다. 다른 애들처럼 가방을 싸고 가출하는게 아니라 옷과 무기로 쓸 칼만 챙겨서 아빠의 눈을 피해 나온 것이다. 돈은 당연히도 없었다.
입은 옷은 후드자켓에 짧은 치마, 부츠가 전부. 이제 여름이 끝나가는 때라 더울 일은 없었다. 조금 추울 수는 있어도. 개인적으로 산타가 방문할 때 빼고는 더운게 추운것보다 좋았다.
집을 나와서 제일 먼저 필요했던 건 돈이었다. 목적지를 서울로 잡고 있는데 갈 차비가 부족해서 그걸 메꿔야할 용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용돈벌이는 몸팔기였다.
“아저씨, 여고딩이랑 섹스해볼 생각 없어? 싸게 해줄게.”
가장 쉬웠다. 길가던 꼴초 아저씨나 세상불만 많아보이는 남자들을 꼬드겨서 한 번 대주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콘돔없이.
“싸게해줄게, 오빠.”
특히 이 분야에서 내가 유리한 점이 많았다. 첫 번째로는 예뻤고 두 번째로는 고딩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임신이 되지 않는 몸이라 얼마든지 안에다 싸도 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학생증 하나를 구해서 위조했고 정말 고딩이냐고 물을 때마다 잘 먹혀들어갔다. 어차피 진짜로 고딩인데 거짓말은 아니니까. 일단 첫 번째로 꼬드긴 아저씨에게서 몸팔고 받은 7만원으로 곧장 서울에 오른 뒤 목욕탕에서 대충 씻고 공원에서 잠을 잤다. 두 번째로 낚아챈 오빠에게는 더 싸게 5만원을 받아서 끼니를 때웠다. 밤이 되고, 제대로 된 밤일의 시간이 되었을 때 3명을 꼬드겨서 27만원을 벌 수 있었다.
“방 하나요.”
“신분증 보여주시겠어요?”
이제 모텔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위조된 신분증을 챙겨온 덕분에 나이가 딸리지만 편하게 잠은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몇 개월간은 똑같았다. 모텔들을 돌아다니며 잠을 잤고 예쁜 옷과 교복하나를 사 입고 조금씩 가격을 올리면서 몸을 팔았다. 학생이라는 것에서 크게 먹고 들어간 덕분에 돈 버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몇몇은 기분에 따라서 팁을 더 주기도 했다. 제일 많이 번 하루는 얼마를 벌었더라? 한 90만원을 벌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찾아온 금요일, 기분이 좋아서 역으로 날 꼬드겨 온 한 오빠가 술집을 가자고 했고 돈을 더 얹어서 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따라갔다. 이 날이, 아빠곁을 떠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날이 되었다.
“도망칠 생각 안하는게 좋아.”
따라간 술집은 사람들의 눈은 물론 CCTV들 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날 끌고 들어가더니 문을 잠그고는 자신의 친구 몇몇들과 함께 날 협박해왔다. 단체로 그냥 발정이 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이 뒷골목 입구로 들어온 시점에서 이런 경우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날 단체로 따먹고 버리려는 것을. 기분 더럽지만 모두 아빠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병신들.”
술집이라 넘쳐나던 술병을 깨서 차례차례 찔러주었다. 처음에는 좀 패주는 걸로 끝내려 했는데 그들이 꺼내든 칼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반응한 것이다. 목을 찌르고 눈을 파버리는가 하면 심장을 찌르고 목을 꺾어버렸다. 술의 향기와 이 새끼들의 정액으로 흩뿌려질 예정이었던 이곳은 사방팔방 피들이 튀었다. 그렇게 7명을 죽였다. 손쉽게, 거부감없이.
당연히 뉴스에 떴다. 문제는 내가 한 명도 빠짐없이 죽였고 치밀하게 뒷정리를 했으며 목격자, CCTV, 그 무엇도 없어서 범인을 특정짓지 못했다. 경찰들도 건장한 남자가 벌인 것으로 생각할 뿐, 누구도 내가 저질렀다는 걸 알지 못해서 수사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뉴스를 봤을 때가 낮에 레즈 여자와 한창 즐기고 있을 때였다. 17만원 받고서.
“시발, 언니. 언제까지 빨거야?”
내가 수비.
“조금만 더. 돈 더줄게.”
여자가 공격이었다. 나보다 4살 많은 언니였는데 아까부터 가슴이랑 아랫부분만 존나게 빨아재끼면서 적시고 있었다. 뭐, 덕분에 난 기분 째지면서 몇 번인가 절정을 느낄 수 있었다.가슴과 아랫도리는 침범벅이었다.
“여기에 이거 넣어봐도 돼?”
그녀는 어느 정도 만족한 뒤 딜도를 하나 꺼내더니 내 애널을 문질렀다. 젤도 잔뜩 바르고서. 레즈 경험이 처음은 아닌데 꽤나 오랜만이다 보니 몸이 긴장했지만 진하게 키스해주면서 허락해주었다. 돈 더준다는데, 해야지. 천천히, 굵은 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아랫도리랑은 다른 느낌이 또다른 쾌락을 자극했다. 조금 아픈 느낌도 있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아랫도리도 계속 괴롭혔다. 이미 달아오를 대로 화끈한 몸이 점점 더 뜨거워져 갔다.
“언니, 완전히 ‘공’이구나. 많이 해봤나봐?”
“해봐야 비슷한 나이대 애들이랑. 너같이 애는 처음이야.”
“알 건 다 알고 있는 애야.”
마지막 절정에 다다르고 총 32만원을 벌 수 있었다. 오늘은 이걸로 저녁을 사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또 뭘 먹을까 하며 식당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애들처럼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모두 별로인 것들이었다. 오히려 김치찌개나 백반정식 같은 것들이 먹기가 좋았다. 오늘은 김치찌개로 할까나. 대충 먹을 것을 정하고 네온사인들의 거리를 걸었다.
주문한 김치찌개는 마음에 들었다. 늘 오던 곳이지만 여기 아저씨의 요리솜씨가 좋아서 항상 맛있는게 장점이었다. 그 덕분에 김치찌개를 먹고 싶을 때는 여기로 왔고 주인아저씨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아내 한 명과 내 또래의 남자애를 자식으로 둔 그였다.
“더 줄까?”
“아니, 됐어.”
때문에 맨날 혼자서 먹으러 오는 날 애 대하듯 했고 그릇이 비워질 때쯤이면 다가와서 더 먹겠냐고 물어왔다. 딱 적당한 양이기에 매번 거절했다만. 오늘도 맛있게 배불리 먹고 계산을 하려고 했을 때, 사건이 터졌다.
“박사장님, 돈 주셔야죠.”
“제가 다음달까지는 꼭 드린다고.....”
“이 새끼가 장난하나, 진짜!”
웬 깡패새끼들이 와서는 주인장 아저씨를 밀치고 테이블 하나를 엎어버리는 것이었다. 뭐하는 병신들인지는 대화를 다 들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사채업을 하는 깡패 새끼들. 아저씨는 넘어지면서 어깨를 부딪히고 말았다. 다른 손님들도 지켜보는 가운데서.
“또 몇 달이나 쳐 걸리시게? 시발아!”
급기야는 앉으라고 놔둔 플라스틱 의자까지 던져대었다. 다른 이야기 접어두고 이게 왜 사건이 되었냐면 내가 빡돌았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아저씨지만 무엇보다 여기는 내가 김치찌개를 먹으러 오는 가게였다. 단골이면서 내 영역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이 개새끼들이 주인 허락도 없이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식당을 부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꺼내들던 손으로 엎어진 냄비 하나를 집었다.
“야, 뚱땡이.”
“뭐?!”
내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반응한 놈의 머리에 냅다 후려 갈겼다. 있는 힘껏 쳐서 때문인지 냄비가 찌그러질 정도였다. 그대로 깡패 한 마리가 바닥을 기었다. 남은 건 두 마리, 사정 봐줄 것 없이 얼굴에 주먹을 갈기고 목을 친 다음 옆에 있던 테이블에 쳐박아주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알로하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본성마냥 자신의 품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나도 하나 들고는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었으니까. 다가오는 칼날을 피하고 코를 세게 쳐 깨트려 준 뒤 발로 머리를 차버렸다. 강하게.
“개새끼들이 남의 영역에서 왜 지랄들이야.”
“너, 너 뭐야!”
“그러는 넌 뭔데, 시발아!”
더 꼴보기 싫어서 밟아버렸다. 이빨 몇 개 부숴버릴 정도로. 아저씨는 어깨가 부딪힌 것 말고는 부상이 있지 않았다. 벌써 아주머니가 튀어나와서 돌보고 있었다.
“아줌마, 아저씨는 무사해?”
“그랴, 멀쩡혀.”
“얘야.”
“아저씨. 말할 수 있으면 가만히 있어.”
일단 다행이었다. 그 맛있는 김치찌개를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다. 몸을 숙이고 깡패놈들의 휴대폰을 모조리 꺼낸 뒤 화면을 켰다. 그 중 비밀번호가 걸린 2개는 부숴버리고 유일하게 걸리지 않은 하나로 연락처를 뒤져보았다. 이런 새끼들을 보낸 대가리를 족쳐버릴 생각이었다. 난 뿌리까지 뽑아서 다시는 이 가게를 건들지도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존나 정직하게 저장해놨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대장’이라고 저장을 해놓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뭐냐?”
받자마자 들리는 중년의 목소리. 되게 건방졌다.
“니가 이 뚱땡이 새끼 주인이냐?”
“넌 뭐야? 뭐하는 년이야?”
“알고 싶으면 주소 까, 지금 찾아갈 테니까.”
“우리 애들은 어떻게 했지?”
“너네 애들?”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한 놈의 부랄을 강하게 짓눌렀다.
“으허억!”
“일단 부랄 한 쪽 터트렸는데 나머지도 터트려줄까?”
“......니년, 기다려라.”
그러고는 끊겼다. 아무래도 친히 직접 찾아올 생각인가 보다. 이 전화기 역시 반으로 부서버리고 의자 하나를 끌고와 앉았다. 주머니에서는 오늘 벌었던 32만원을 전부 꺼내서 아저씨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김치찌개 값이랑 부서진 테이블이랑 의자 값. 그리고 잠시만 피해있어. 남은 병신들이 온다는데 해결해놓을게.”
아저씨는 의문의 눈동자로 바라볼 뿐, 받아들지 않았다. 때문에 답답한 내가 직접 쥐어주었다.
“또 부탁이 있어. 경찰은 부르지마. 귀찮아지니까.”
가게에 더 이상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때려눕힌 3명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 위에 밟고 앉아서 턱을 괴었다. 내 주머니에 있는 작은 칼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두목을 건드렸으니 날 반쯤은 죽이러 올게 뻔했다. 그에 대한 대비였다. 몇 분이 지나고 조금 더 뚱뚱한 남자가 정장을 차려입고서 다채롭게 꽃무늬 옷을 입은 깡패새끼 여럿을 대리고 나타났다. 밟고 있던 놈의 얼굴을 걷어차며 인사를 해주었다.
“뱃살 존나 기름져보이네. 와 시발, 깡패가 아니라 뚱땡이 삼겹살집 주인이야?”
“어떤 미친년인가 했는데 순전히 애새끼잖아. 고작 저런 년한테 당했다고? 체면이 말이 아니군.”
“니새끼 꼬추 체면도 밟아줄게. 오늘 잘라내버릴 거니까.”
“하아......요즘 애새끼들이란. 잡아와.”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여자애 한 명을 잡기 위해 사내새끼들이 달려들어 왔다. 우선 내 선택은 도망이었다. 이곳은 눈도 많았고 무엇보다 가게가 근처였다. 서울의 먹거리 가득한 골목, 낣아빠진 곳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우루루 들리는 발소리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들을 끌었다. 나는 계속 골목들을 꺾어 들어가며 내달렸다. 이곳의 지리는 훤히 꾀고 있었다. 어디가 사람들의 눈이 없는지, 막다른 곳인지.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면서 한 골목에 다다랐다. 이곳은 길이 막힌 골목이었다. 내가 벽을 등지고 서자 쫓아왔던 깡패들이 다 잡아논 쥐새끼를 보는 것 마냥 쳐다보았고 두목이란 놈이 여유롭게 비웃었다.
“애새끼가 애답게 살 것이지.”
“뚱돼지라서 발정난 것 마냥 헥헥거릴 줄 알았는데 꽤나 잘 달리네?”
“허세가득이네. 얘들아. 잡아와! 창녀로 부려먹으면 돈 좀 될거니까 상처내지 말고.”
“예!”
돼지의 마지막 손짓, 모두가 내게로 달려들어 왔다. 나도 품에 넣고 있던 칼을 꺼내고 걸음을 앞으로 했다. 지금 이 새끼들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왜 일부러 이곳으로 도망쳤는지, 그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