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Greed (Don't Hate Me. Shara) - 1
내가 이런 삶에 첫걸음을 딛게 된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내 의사나 뜻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한 채 따라야 했다. 이 길에 들어서는 걸 아무도 막아주지 못했다. 모두 아빠의 지시였고 명령이자 내가 따라야할 의무였다. 평일, 주말, 모든 시간들을. 처음 배운 것들은 생존법들이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먹는 것. 초등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점심들을 먹을 수 있었지만 아침과 저녁들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쓰레기였으니까. 종류가 너무 많아서 하나로 요약하자면 ‘벌레’였다. ‘곤충’이 나의 아침과 저녁식사였다.
맨 처음 먹게된 곤충은 메뚜기였다. 메뚜기는 몸집이 작지만 그 안에 필요한 단백질과 영양소가 많았다. 그런 메뚜기를 아침, 저녁으로 먹었다. 이 훈련에는 규칙이 있었다. 메뚜기를 먹고서 내가 3번 구토를 하면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몇 번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그만큼 많이 들어갔었다.
첫 번째 메뚜기 식사는 정말 최악이었다. 아빠는 갑자기 어디서 구해온 메뚜기들의 머리를 따더니 항상 밥을 먹던 접시에 담아와 내 앞에 두었다. 난 이미 도망칠 수 없도록 의자에 묶인 상태였다. 그는 그릇에서 한 마리를 집어 내 입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그러고는 무섭게 속삭였다.
“먹어.”
“아빠. 이건......벌레잖아요. 어떻게 먹어요.”
당연히 거부했다. 대가리가 따여서 어떤 것들은 내부의 액까지 흐르고 있었는데 어떤 어린 꼬마가 그런걸 먹고 싶어할까. 그것도 지금까지 따뜻한 밥만을 먹고 지냈던 여자아이가. 하지만 그는 강제로 먹였다. 내가 계속 굳게 입을 다물고 거부하자 강제로 벌린 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씹어 넘길 때까지 뱉지 못하게 했다. 맛은 당연히 쓰레기였고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밥그릇에 구토까지 하고 말았다. 아빠가 잘라낸 메뚜기들은 내 구토물에 젖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묻은 그대로 다시 내 입에 넣었고 씹게했다. 그런식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최초의 첫걸음이었다.
처음에는 강제. 하지만 점점 먹게 할수록 나중에는 나 스스로가 집어먹었다. 먹을게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구토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기를 3번, 아빠는 바로 날 방 안에 가두었다. 정확히는 지하에 있는 방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메뚜기들이 내 주위를 뛰어다녔고 천장에는 괴물의 눈같은 CCTV들이 달려있었다. 그걸로 날 보고있다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막 들어왔을 때는 이 메뚜기들을 먹지 않았다. 더 이상 먹기 싫었으니까. 그것도 이틀, 6끼를 굶고 나서는 스스로 방안의 메뚜기들을 잡아먹게 되었다. 그게 첫 생존본능을 느낀 날이었다. 신기했다. 분명히 맛이 없었던 그 벌레들이 그 순간만큼은 맛있었다고 느꼈으니까. 그래서 나 자신을 혐오했다.
메뚜기 다음은 여러 가지의 잡벌레들이었다. 사마귀, 거미, 애벌레 등이 대부분이었고 규칙을 역시 그대로였다. 3번 구토를 하면 방에 갇히고 다시 주워먹을 때까지 풀어주지 않는다. 그게 내 초등학교의 일상 중 하나였다. 그 탓에 결석이 잦아졌고 학교애들은 나를 병에 잘 걸리는 ‘병자’로 생각했다.
또다른 일상이자 생존법의 가르침은 제작이었다. 아빠는 처음에 나무 조각들이나 생나무, 그리고 나이프 하나를 주고서 무기나 주거에 관련된 것들을 만들게 했다. 형태는 이런식으로 해라, 저런식으로 해라 식으로. 막 만들때는 손재주가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몇 개 만들수록 익숙해져 갔다.
“아빠! 이거보세요.”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들게 된 것은 호랑이였다. 엄마에게 먼저 자랑했다. 그 뒤에 아빠에게로 가져갔다. 칭찬을 기대하면서.
“이런 쓸모도 없는 건 왜 만든거지?”
돌아온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이어서 혼까지 났다. 내가 만든 호랑이 조각은 그 어떤 것에도 쓸모가 없다며 보는 앞에서 부수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 이후에는 정말 아빠가 말하는 ‘쓸모있는 것’만 만들게 되었고 그제서야 한 마디씩 칭찬을 받게 되었다. 그 때까지 호랑이 조각은 기억속에서 아른거렸다.
마지막 가르침은 ‘체력, 근력’이었다. 실질적인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애들은 놀기 위해서 뛰었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 뛰었다. 훈련은 기본적인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키와 무기다루는 법을 배웠다. 할 때마다 정해진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라도 달성하지 못하면 아빠가 때렸다. 뺨을 맞기도 했고 걷어 차이기도 했다. 시작할 때에는 모든게 미달이라서 쳐맞는게 일상이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쉽게 달성할 수 있어서 운동을 할 뿐인 일상이 되어있었다. 맞기 싫어서 죽도록 연습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다니던 학교가 달라졌고 일상 속의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다행히 밥은 더이상 벌레가 아닌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 때 먹었던 것처럼 따뜻한 쌀밥이 되어있었다. 반찬도 내가 좋아하는 계란요리가 나오게 되었다. 입학식을 맞이하고 이틀 뒤, 아빠가 나를 끌고 어딘가로 가더니 바닥에 박아놓은 의자에 앉히고 벗어나지 못하도록 손, 발들을 묶었다. 모두 튼튼한 밧줄들이었다.
“풀어주세요, 아빠.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훈련이야.”
그 한 마디로 일축된 나의 구걸. 훈련도 이미 시작된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 받은 훈련은 ‘내성 키우기’였다. 약물이나 고문들에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탈출법들이었다. 맨 처음 내가 만난 것은 ‘최루탄’이었다. 방안에 가두고 최루탄을 뿌린 뒤 그 안에서 버티도록 했다. 퍼진 최루가스에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가웠고 급기야 구토와 함께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기침을 했다. 그게 반복될수록 처음에는 최루탄 1개에 30분, 다음날은 2개에 30분, 그 다음날은 3개에 1시간. 그런식으로 이어나갔고 항상 기절하기 전에 꺼내주었다. 그 훈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아무리 최루가스를 집어넣어도 오래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맞은 훈련은 ‘숨참기’였다. 내 목에 밧줄을 둘러메고 숨을 참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갔다. 이것역시 기절하기 전에는 풀어주었다. 그 다음은 물고문, 또 그 다음은 전기, 마지막은 불이었다. 다행히도 화상자국은 크게 남지 않았다. 이것들이 지나고 나서는 마약이었다. 아빠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수많은 종류의 마약을 구해와 내게 투여하거나 흡입하게 했다. 처음에는 조금, 나중에는 양을 늘렸는데 어떤 건 치사량에 가깝게 투여했었다. 그런 미친짓으로 내성은 생겼지만 그 중학생이라는 어린나이에 금단현상을 겪느라 크게 고생했었다.
여담이지만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친구 한 명을 사귄 적이 있었다. 이름은 ‘채아람’이었는데 활발하고 키가 나보다 조금 큰 친구였다. 다른 일 없이 그저 학교에서 만나면 대화를 나누었던 그런 친구. 때로 아빠의 훈련이 비는 시간이면 그녀의 집으로 놀러가기도 했었다. 그만큼 잘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였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채로 고등학교에서 갈라지고도 가끔씩 연락하면서 지냈다.
초등학생 때는 사는 방법을, 중학생때는 인내와 버티는 것을 배웠다면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사람으로서의 본능과 살인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난 말만 고등학생이었을 뿐, 학교에는 가지 않았다. 위장으로 교복만 사 입었고 그 어떤 학교에도 등록되지 않은 가짜 학생이었다. 그래도 아빠는 교복을 사준 것이 나름의 입학 축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맞이한 첫 살인은 아빠가 잡아온 한 청년을 죽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유괴를 하고 죽였다. 세번째 살인은 혼자사는 사람집에 몰래 들어가 죽인 뒤 시체를 토막었고 네번째 살인은 집으로 잡아와 불로 태워버렸다. 그런식으로 살인에 익숙해지고 법으로 억제되었던 사람으로서의 본능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때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완전히 맛들려 있었다. 아빠의 훈련으로서의 마지막 살인은 시험이었다. 대상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채아람’이었다. 분명히 우리는 친구가 맞았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죽여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선은 납치가 먼저였다. 그 과정은 간단했다.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만나자고 불러낸 뒤 아빠에게 배운 특유의 화술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시선들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망하고 무너져 내린 폐공장의 창고였다. 그곳에서 약물을 이용해 기절시키고 근처에 있는 지하실로 끌고갔다. 지하실은 아빠가 옛날에 이용했던 곳으로 몰래 사람들을 고문으로 죽이던 장소였는데 이번에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생일선물이라면서. 그리고 여기를 이용해보라고.
안에는 바닥에 박힌 철제의자와 각종 고문 도구들과 살인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오래되었다는 것만 빼면 모두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먼저 아람이의 팔과 다리를 의자에 꽉 묶고 목에는 밧줄을 걸어둔 뒤 입을 막았다. 이후에는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10분, 아람이가 눈을 뜨고 자신의 상황을 보게되었다.
“읍? 읍!”
“안녕, 아람아.”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읍?.......”
“아빠가 널 죽이라고 했어.”
그 눈가에는 설명해달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그 감정을 내게 호소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빠에게서 사람을 죽일때는 어떠한 동정도, 어떠한 감정도 없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설령 친구라고 하더라도.
“읍, 읍!”
“지금부터 난 널 죽일거야. 아람아.”
“읍!”
제일 먼저 잡은 도구는 살인의 기초인 칼이었다. 하나를 들어잡고 은빛의 날을 아람이의 허벅지에 가져갔다. 그대로 천천히 아래로 베어나갔다. 내가 가르는 살들 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계속 움직여 달아나려는 다리를 10cm가량을 깊게 베었다. 아람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입에서는 미처 지르지 못하는 비명을 내뱉고 있었다. 베어나간 칼은 그대로 꽂아두고 다음칼을 꺼냈다.
이번에는 팔이었다. 여린 살 위로 날을 올리고 아까처럼 똑같이, 그리고 천천히 집어넣으며 갈라갔다. 붉은 색의 피가 그녀의 반을 적셔갔다. 이어서 다음 칼, 심장쪽이었다. 베어낼 생각이 아닌 찌를 생각이었다. 칼끝은 나의 힘에 조금씩 안을 헤집고 들어갔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심장. 그녀는 이미 고통의 한계에 달하고 있는 듯 했지만 난 아직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집어넣은 칼은 심장의 표면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살짝만 힘을 넣고 밀어 넣으면 그녀의 심장은 멈추게 된가. 정말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칼은 여기까지.
다음 도구로는 펜치를 집어들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고문방법이었는데 이참에 체험을 해 볼 생각으로 그녀의 손 끝, 예쁜 손톱으로 가졌갔다. 그리고 펜치로 손톱을 잡아뜯어냈다. 처음 한 개.
“으으읍!”
아람이가 많이 아파했다. 그래서 하나 더, 두 개. 세 개, 네 개. 한 손에 있던 손톱들이 모두 뜯겨져 나갔다. 아플까? 아프겠지. 그러니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게 듣기 좋았다. 다음 도구, 이미 목에 메어져 있던 밧줄을 잡았다. 그녀의 하얀목에 감긴 거친 밧줄은 무척이나 어울렸다. 망설임 없이 그대로 들어올렸다. 동시에 아람이의 목도 들렸다. 처음에는 사래가 거린 것처럼 켁켁거리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혀오는 것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고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쳤다. 그게 또 재밌었다. 이런거구나. 목을 졸라 죽인다는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증거가 남으면 안되니까.”
마지막으로 옆에 있던 휘발유가 담겨진 페트병을 들고 아람이의 가슴부터 배까지 뿌렸다. 강한 휘발유냄새가 이곳을 덮으려 했다. 그녀도 강렬한 냄새에 잠깐 어지러운지 눈가가 흔들렸지만 난 멀쩡했다. 모두 아빠의 훈련과 고문들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람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테이프를 떼어내주었다.
“사......살려줘......왜, 왜.....나한테.”
“말했잖아. 아빠가 죽이라고 했어.”
“우린 친....구잖아.”
“아빠는, 너가 내 친구니까, 죽이라고 한 거야. 우린 친구야. 아람아.”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냈다. 붉은 머리의 성냥이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타오를 준비를 했다. 성냥갑에 있는 것으로 ‘칙’, 불을 붙였다. 그 작은 불빛은 이 안을 화려하게 비추었다. 아람이의 배 위로 보이는 휘발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곳에 성냥을 던졌다. 공중에 떠오른 불이 그녀의 배에 옮겨붙고 천천히 태워나갔다. 비명소리가 불과 함께 이 지하실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 소리에 난 완전히 미쳐있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그가 준 감정으로 웃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뒤에는 본격적인 기술연습이 시작되었다. 중학생 때는 아직 이르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성고문도 함께. 특이한 점은 아빠는 사람만 데려올 뿐 이기든 지든 간섭하지 않았다.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건달 혹은 범죄자, 청부살인업자가 대부분이었다. 내게 그들의 기술로 훔쳐 자기것으로 만들기를 바란 것이다.
규칙은 간단했다. 내가 이기면 이긴것이고 지면 날 상대했던 사람에게 몸을 내주었다. 물론 성적으로. 상대가 여자여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모두 내 입이든 그곳이든 안에 자신들의 것을 먹였고 여자들은 손가락과 입으로 여기저기들은 괴롭히거나 가지고 놀았다. 임신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없도록 수술을 받은 뒤였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기술들을 배웠다. 여러 가지의 기술들을. 마지막은 성고문을 견디는 것이었다.
아빠는 처음, 각종 성기구들을 사용해 날 가두고 하루종일 느끼게 하거나 괴롭혔다. 덕분에 기절 직전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묶어놓고 고문하거나 매달아놓고 괴롭히기도 했고 어떤날은 섹스에 미친 남자들 사이에 던져놓기도 했다. 그 날은 그곳도, 애널도 헐어버릴 때까지 갔고 배가 부르도록 정액을 먹은 날이기도 했다. 몸 여기저기에도 샤워물 대신 액범벅이었다. 이런식으로 지낸게 17살, 여름이 거쳐갈 때 쯤 집에서 빠져나왔고 삼촌이 거둬들였다. 그날부터 난 다짐했다. 그를, 아빠를, ‘낚시꾼’을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사라, 배 안고파?”
“난 괜찮아.”
‘꼬르륵.’
그러면서 배고픈 소리를 내고있는 그녀였다. 거 참, 귀엽네.
“솔직히 말 안하면 나 굶는다?”
“안 돼. 그건.”
다시 봐도 귀여웠다. 이래야 내 여친이지. 아직은 허허벌판인 곳이라 세우기에는 무리라서 자그마한 건물이라도 보이면 그곳에 멈추고 한 끼 정도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달리기도 했으니까 슬슬 배를 채울 때 이기도 했다. 아까 오는 길에 지나가던 고라니 새끼도 잡았으니 메인을 고기로 잡고 디저트로 과일 통조림을 먹으면 딱이었다. 마침 저 멀리 건물 한 채가 보였다. 허름한 건 당연하고 반 정도 무너져 가는 곳이었다.
“사라. 곧 식사시간이니까 내릴 준비.”
‘틱!’
잠시나마 긴장의 끈을 놓고 있던 우리에게로 굵직한 총알이 날아왔다. 나는 급하게 핸들을 꺾으면서까지 차를 세웠고 놀란 나머지 무방비하게 비명을 지를 사라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탕!’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총소리, 저격이었다. 그것도 멀리. 여기는 완전히 깡촌인데다가 황폐해진 곳임을 고려하면 저 멀리에 보이는, 몇 안되는 건물에서 쏜 것이었다.
“이런, 시발! 좆같은 저격충 새끼들.”
권총을 뽑아들며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있다고 생각한 장소쯤에서 햇빛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개새끼, 존나게 멀리도 있네.
“엔!”
“가만히 있어, 사라. 흥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까.”
우리 주변도 조심히 둘러보았다. 멀리서 저격을, 그것도 우리를 노렸다면 보나마나 약탈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주변에 숨어있던 거지새끼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마 지네들이 존나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좆까고 보이는 순간 모조리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사라를 놀라게 했고 우리 둘이서 가지려던 오붓한 식사시간을 망쳐놨으니 목을 따버려도 시원치 않을 정도였다. 아예 꼬추도 잘라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막상 내 눈앞에 나타나니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상상한 놈들이랑 달랐으니까.
“시발, 인생 개꼬이네 진짜.”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다가온 차량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줄줄이 내리는 놈들마다 총을 들고 겨누어대는데 총마저 화려했다. 전부 권총 따위가 아닌 소총들이었으니까. 나는 한 발 쏘면, 저새끼들은 존나게 갈기고. 교환비율이 답이 없었다. 하지만 제일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들 사이로 한 남자가 내 앞으로 나섰다. 동료도, 친구사이도 아닌 남자. 그렇다고 악연도 아니었다. 그냥 얼굴 몇 번 사이일 뿐이었는데 굉장이 낯이 뜨거운 얼굴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오며 우리 차의 창문을 노크했다. 아주 정중히. 조심히 창문을 내렸다.
“오랜만이군.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낮게 깔고 들어오는 목소리. 명품코트가 아주 어울려서 대단한 악역처럼 보였다.
“난 죽어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발, 어떻게 살아계셨어요?”
“물건을 데리고 다니는군.”
그는 내 답인사를 무시하고 옆에 있는 사라를 보며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 탈취하려는 목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있는 장난감을 찾았다는 목소리였다. 진짜 좆됐다. 어떻게 만나도 이런 새끼를 만날까.
“건들지마. 물어뜯어 버린다.”
“그저 흥미를 보였을 뿐이다. 오해 말았으면 좋겠군.”
“어머, 그럼 자기. 저 개같은 똥구멍들은 좀 치워주겠어? 너무너무 무서워서 오해했잖아.”
“거짓말 마시지. 그리고 네년을 상대로 이정도는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목에 있는 흉터는 여전했다. 아무튼, 나의 머리는 빠르게 탈출할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내가 여기 있는 아무나 죽이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대신 잡히면 영원히 감금당하겠지. 그게 더 좆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튀지? 우선 차로는 무리였다. 완전히 꽉 막고 있으니까.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저 여자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무슨 여자인줄 알고?”
“네가 사람을 데리고, 그것도 저렇게 안전벨트까지 채우고서 옆에 앉힐 정도면 애정섞인 관계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
‘철컥.’
사라가 있는 조수석쪽으로 총소리가 들렸다. 부하 한 놈이 다가와서 사라에게 제로거리로 겨누고 있었다. 진짜 염병할 상황이었다. 탈출구를 모두 봉쇄할 생각이었다. 역시, 아빠새끼를 궁지로 몰아본 놈은 달랐다. 그는 도시 하나가 아닌 ‘전라북도’ 하나를 주름잡던 남자였다. 이름조차 붙이지 않는 조직을 이끌며 아빠새끼와 수많은 마찰을 빚고, 싸우고, 꼬리까지 잡아본 최초의 건달, ‘천주환’이었다. 나와는 일체의 마찰은 없었지만 그 새끼의 ‘딸’인 덕분에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설령 내가 그 새끼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시발......원하는 게 뭐야? 빨리 말하고 꺼져.”
“원하는 게 있는건 맞다만 꺼지는건 어렵겠군. 따라와 줘야겠다. 자리를 잡고 진지하게 논해 볼 얘기니까.”
“좋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겠어, 자기? 내 여친 의견도 들어보고 싶거든. 당신 그렇게까지 쪼잔하지는 않잖아. 그치?”
“좋을 대로.”
바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수석쪽에서 사라를 겨누고 있는 놈에게도 잠시 꺼지라는 표시를 던져주었다. 조금 안심하게나마 총구가 치워졌다. 자연스레 핸들에 손을 슬며시 올려놓았다.
“사라.”
“엔, 남자 목소리는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그래. 아주 좆같이도 잘 아는 남자야. 그러니까......꽉잡아!”
“응?”
망설임 없이 엑셀을 밟았다. 잠시나마 시간을 번 지금이 기회였다. 우리의 차가 찢어질 듯한 타이어 소리를 내며 급출발했다. 내 예상대로 이 부하놈들은 우리를 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쏘지 않았다. 이대로 길을 봉쇄한 차들을 박아서 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솔직히 이판사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저 남자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더 이상의 말을 씨부려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그런데......
‘끼익!’
달리던 우리의 차 앞으로 새로운 2대의 차량이 더 끼어들어와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아예 지나갈 수조차 없도록, 그것도 안에 사람이 타고서 운전대까지 꽉 잡고 있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또 핸들을 돌리면서까지. 이대로 박았으면 뚫기는 커녕 우리가 크게 다쳤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거리, 겨우 세워진 차량. 나는 긴장의 숨을 내쉬었고 사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시발......”
그리고 도망치려던 우리에게로 주환이 걸어왔다. 급한 마음 없이 아주 천천히, 여유있게. 그리고서 내 쪽의 창문을 정중히 두드려왔다. 그야말로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오줌을 지린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사라가 없었다면 진죽에 죽여버렸지. 일단 창문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나도 정중히 맞이해주었다.
“어머, 자기. 내가 그만 브레이크랑 엑셀을 헷갈렸지 뭐야. 나도 참 바보인가 봐. 자기 화난거 아니지? 그치?”
“한 번 더 도망치려 한다면 그땐 망설이 없이 저 여자의 두 다리를 끊어버리도록 하지.”
“협박하는거야? 우리 자기, 농담도 잘해라.”
“경고다.”
“시발! 시발! 개시발! 나한테 왜 그러는데?! 그 개새끼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나도 그딴 시발새끼의 피가 몸에 섞여있어서 좆같다고! 나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시발......”
“엔! 진정해.”
“시발, 시발, 시바알!”
사라가 손을 잡아줬는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권총을 뽑아서 이 망할놈을 겨누기까지 했다. 그러자 잠시나마 내게서 관심을 멀리했던 부하 놈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어왔다. 정확하게, 더불어 사라에게까지.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은 얹어졌는데 당기지 못했다. 그래서 더 화가났고 좆같았다.
“내버려두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텐데.모든게 변해도 네가 그 녀석의 핏줄이라는 건 변치 않는다.”
“더 지껄여봐. 그 입에다가 화약 덩어리를 쳐박아줄테니까.”
“넌 그 녀석의 ‘딸’이다. 세상의 이치가 변한다 한들 진실은 바뀌지 않지. 다시 말하지. 우리를 따라와라, 엔.”
“그만하세요!”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 최악의 상황에 치닫으려는 찰나, 사라가 외쳤다. 그녀는 분명 자신에게로 총구들이 향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꺼려하는 이 남자에게 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를 구하려.
“끼어들지 말았으면 하는군. 너같은 외부인이 마주할 상황이 아니다.”
“아뇨. 엔이 괴로워하는 걸 듣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당신이 엔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하세요.”
이렇게 예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나로서는 기뻤지만 시선이 주환의 영 좋지 못한 곳으로 향하고 있어서 위화감이 들었다. 아무튼 그런건 넘기고 솔직히 감동받았다. 난 역시 여자친구 복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었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조금 귀찮게 되었다.
“너야말로 엔과 무슨 관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애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경고하지, 한 마디만 더 열고 끼어들면 그 입을 꿰메주지.”
“엔이.”
진심이 담긴 그의 경고에도 사라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급하게나마 내가 끼어들었다.
“사라.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
“하지만.”
“내가 부탁할게. 이 새끼의 말대로 여긴 네가 끼어들 놀이터가 아니야.”
“......알았어.”
위로는 나중에 해주기로 하고 우선은 이 남자와의 대화가 먼저였다. 안타깝지만 빠져나가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차라리 마피아 패밀리 하나를 족쳐 버리는게 나을 만큼 이놈들과의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못 이기는게 아니다. 이길 수는있겠지만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사라를 망설이지 않고 언제든 죽여버릴 놈들이라 최악이었다. 나만 제외지, 사라는 아니었다. 머리로 수도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하나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고립, 그렇게 느껴졌다. 처음은 아니지만 이 남자에게서는 처음이었다.
“엔......”
사라의 걱정섞인 목소리.
“정했나?”
주환의 물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답했다.
“안내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