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6
“더가져와!”
잔뜩 고기들을 구우면서 입안에 넣고 있었다. 오늘은 무려 돼지고기였다. 고라니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 삼겹살은 물론이고 항정살까지 있었다. 이런게 어디서 났나 했는데 강남이랑 카르디에 있던 것을 조달해온 것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저번들처럼 이상한 중년놈들은 다 빠지고 우리가 아예 가게를 독차지했다. 나와 사라, 송혜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진욱과 재성을 대신해 방문했다는 미유키, 그리고 분위기상 나오라고 말해둔 카바파의 몇 놈들과 함께 테이블들을 차지했다.
모든 테이블마다 돼지고기들이 대접되고 굽고 먹기 바빴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진욱이 구워주었다. 우선적으로 사라를 챙기고 송혜와 미유키, 나는 알아서 주워먹었다. 중간마다 미유키가 불편한 기색, 정확히는 나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기색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잘 먹겠지, 뭐.
“사라, 많이 먹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응.”
“야! 이제 항정살. 된장찌개는 없어? 밥 가져와!”
주문에 제한이 사라진 지금, 난 내 배가 원할만한 것들을 계속 주문했다. 벌써 2인분의 고기와 밥 2공기를 먹었지만 계속 배가 고팠다. 끊기지 않는 고기들과 밥. 아예 낮술까지 해버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엔.”
그러던 중간에 송혜가 불렀다. 나는 이제 막 새로 구워진 고기를 입안에 집어넣고 씹으려던 참이었다. 오로지 고기에만 쳐박았던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바라봤다. 실실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나와 사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안돼. 나 지금 뭐 쳐먹는거 안보여? 뒤져요, 우리 친구.”
“있잖아.”
경고문을 붙여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사라와 함께 우리 섹터에 머무는 건 어때?”
그러면서 어떤 노인이 했던 말을 우리에게 던졌다.
“내가 섹터장이 된 지금 값진 대우들을 해줄 수 있어. 편하게 지내는 건 물론 고기도 매일 먹을 수 있도록.”
“좆까. 부산 가야돼.”
더 들을 필요도 없이 거절했다. 이 썅년이, 섹터 하나 먹여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내 골을 쳐 빼먹으려는 생각이람. 다시 씹어던 고기를 목 너머로 넘기고 새로 집어서 입으로 다시 넣었다.
“사라도?”
송혜는 사라에게로 질문을 넘겼다.
“......호의는 감사해요. 그래도 저희는 부산으로 갈 예정이에요.”
“......그렇겠지. 하하.”
진욱이 머쓱해지지 않도록 각자의 접시들에 고기를 놔 주었다. 사라는 처음에는 내가 도와줘야 했지만 이제는 혼자서 잘먹어갔다. 사라말고 다른 사람들과, 그것도 시끌거리는 분위기에서 밥을 먹는게 흔하지 않았고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더욱 그랬는데 어쩌다 이런 상차림을 가지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그저 이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옛 친구와 여자친구를 끼고서.
솔직히 송혜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섹터장이 된 지금 우리가 머문다면 먹을 것도, 자는 것도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사라가 이곳에 머물 수도 없었다. 이번 ‘아델리’를 겪으면서 난 여러 참가자들을 죽이거나 반 불구들로 만들었다. 확신은 아니지만 나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 놈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노린다면 사라가 될 확률이 컸다. 아무리 송혜가 경비원들을 불러오고 내가 옆에서 지킨다 하더라고 총이 쉽게 오가는 이곳이라면 저격도 가능하니 위험이 도사리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위험했다.
뭐, 그 이전에 부산으로 가는 목표는 변할 일이 없었다. 나와 사라의 인생에서 가장 큰 약속이자 나의 맹세니까.
[저기......]
계속 눈치를 보던 미유키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존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말을 걸어온 덕분에 또 고기를 씹다가 말아야 했다.
[왜?]
입안에 고기를 품은 채로 답해주었다.
[재성오빠가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요.]
무언가를 손으로 쥐고 내게 건넸다. 그 거지가 나한테 주라고 했다라. 뭘까, 궁금한 마음에 빠르게 먹던 고기를 배로 밀어 넣고 미유키에게서 받았다. 재성이 전해달라고 했다던 선물은 작은 메모수첩이었다. 제목은 따로 적혀있지 않았고 낡은 흔적투성이였다. 궁금해서 바로 펼쳐보았는데 나한테 엿이라도 먹이려던 걸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모두가 빈 페이지였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데?]
[아마 그냥 사용하라고 준 게 아닐까요?]
사용해라 이건가. 아무튼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펜은 나중에 따로 구하던가 하면 되니까. 일기는 내 성격상 안맞아서 귀찮으니 간단히 메모하는 정도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의 고기를 먹어치우고 나서는 사라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그녀는 갑작스런 어깨의 기댐에 조금 놀랐지만 나라는 것을 알고는 떨어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내 고개를 잡아주었고 다른 한 손으로 천천히 고기를 먹었다. 오늘의 그녀는 식성이 조금 많았다. 평소보다 배부르게 먹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많이 먹어. 그래야 내가 기분이 좋지. 매일 이렇게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려나.
[저기, 진욱씨.]
“응?”
잠시 미유키가 진욱을 불렀다.
[경호원분의 장례식장, 늦었지만 지금 가 봐도 될까요?]
“어......엔, 해석 좀 해주겠어?”
통역사 하라네.
“건우 그 새끼 장례식장 좀 가봐도 되겠냐는데.”
“그렇군. 가는건 얼마든지.”
[가도 좋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미유키와 경호원과 딱히 관계가 없던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나도 잠시 들려볼까.”
따라서 송혜가 가보겠다고 말했다.
“적이었지만 진욱씨의 친구였고.”
이유는 딱히 없어보였다. 그냥 저년도 미유키가 경호원과 무슨 관계였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이 참에 모두 건우의 장례식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는 별로 가기 싫었지만 진욱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예의상 가보자며 사라까지 설득을 해와서 향하게 되었다. 옘병. 누군가의 장례식장을 가는 건 딱히 거북한건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내가 죽였던 누군가의 아들의 장례식장이라는 것에서 불편했다. 더군다나 송혜는 그걸 알면서도 내가 따라오길 원한 것이다. 반대로 진욱은 석연치 않는 표정이었고. 잠시 뒤, 점심을 알차게 먹은 우리는 그의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거창하지 않았다. 시신을 넣은 관이 묻어진 무덤과 비석 대신으로 세운 십자가 모양의 나무판자가 끝이었다. 판자에는 경호원의 이름과 언제 태어나서 언제 뒤졌는지 적혀있었다. 그 외에는 따로 적힌게 없었다. 미유키는 그의 무덤 앞에 다가가 자신의 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건 또 목걸이였다. 값비싸보이는 그런 목걸이는 아니었고 그냥 길가다가 볼 수 있는 그런것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나무판자의 위에 목걸이를 걸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 목걸이는 바람에 날리며 저 멀리 떠나있을 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묵념. 진욱도, 송혜도, 사라도. 나를 빼고서 모두가 묵념을 했다. 애초에 난 여기에 온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죽였으니까. 지금에서야 죄책감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노’였다. 그런것 따위 느끼지 않았다. 그의 가족을 죽인것도 마찬가지.
미유키는 조심히 일어서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 경호원 놈이랑은 무슨 관계야? 옛 애인?]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은인이었어요.]
은인, 정말 뜻밖의 소리였다. 저 망할놈이 구한 사람이라.
[그래서 날 원망해?]
[솔직히 말하면......원망해요. 저기,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뭔데?]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망설임 없이 죽일 수가 있는 거죠? 경기때부터 말이에요.]
[......하, 뭔 잡소리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제대로 된 놈들이 없네.]
한숨이 나왔다. 한국어였다면 여기서 더 얘기해봐야 위험했겠지만 다행히 사라와 진욱은 일본어는 알아먹지 못한다. 유일하게 송혜가 듣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딱히 상관이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게 제대로 된 사람인가요? 그런 이치에 안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야.]
중간에 듣기가 역겨워서 일부러 끊었다. 이런 말들을 하루 이틀 듣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역겨웠다.
[사람을 죽이는게 왜 이치에 안맞는데? 그딴 거 법으로 정해놨으니까 그렇게 지껄일 뿐이지, 법이 없는 지금은 무슨 이유를 들먹일 건데? 같은 사람이라서? 아니면 생명이니까? 그런 지겹고 하찮은 이유를 계속 들먹일 셈이야? 지 좆만 알고 제대로 된 이유조차 들먹이지 못하면서 무작정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하는 너같은 년들을 찐따라고 하는거야. 알아? 너같은 새끼들이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어도 법이랑 이치얘기를 하면서 못한다고 하는데 속은 병신같이 겁먹어서 못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우리같은 살인자들에게 손가락질이나 하고 말이야.]
[......아니에요.]
[잘 들어.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여 정한 법을 어기고 살던 놈들이야말로 제대로 된 사람들이야. 법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욕망과 본능을 억제하는 너희들과 달리 우리들이야말로 충실하게 살았거든. 그걸 이 멸망해버린 세상이 증명해주고까지 있잖아. 그러니까 그딴 질문을 더 지껄일 생각이라면 입 다물어.]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미 사라의 묵념시간은 끝나있었다. 장례식장 앞에서 알맞지 않는 소리나 지껄인 나는 역시 빨리 꺼지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미유키도 사라와 같은 부류였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사라와 달랐다.
사라의 손을 잡고 이제 진료실로 돌아가 떠날 채비를 할 생각이었다. 송혜에게서 정산할 것들을 받고 바로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시 이 망할 세상이라는 게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펑!’
폭발이었다. 그렇게 큰 폭발은 아니지만 무덤이 뚫리면서 날아갔다. 방금 미유키가 목걸이를 걸었던 나무십자가는 뽑혀서 내 발밑까지 굴렀다. 하늘에서 폭격이 떨어지기라도 했나. 그건 아니었다. 그럴 폭격기도 없을 뿐더러 이 폭발은 무덤 안에서 터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관짝의 문도 반으로 부서진 채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사라!”
바로 사라를 나의 뒤로 물렸다. 어째 또 위험한 느낌이었다. 그걸 똑같이 직감한 송혜와 진욱도 도망가거나 싸울 채비를 했다. 미유키만이 터져버린 무덤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엔? 방금 뭐가 폭발한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일단 축하폭죽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절대 내 뒤에서 나오지마.”
뭘까. 뭐가 폭발한 걸까. 적어도 그 경호원놈에 폭탄이 붙어있다던가는 아닐 것이다. 이 장례식 자체가 진욱이 이끌었고 시체도 끝까지 보고 있었을 텐데 붙어있었다면 알아차렸을 것이고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와서 집어넣었다 하더라고 파헤친 흔적이 남아있었을 건데 그런것도 없었다. 모든게 의문투성이인 나에게로 곧 답이 보였다.
“마녀......”
터져버린 무덤 안에서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런데 사람의 손은 아니었다. 손톱들이 뾰족하고 주황색의 털이 뒤덮인 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었는데, 그래, 살호다. 살호의 손이었다. 그럼 어째서 그 살호가 말도 하고 나를 지칭하는 마녀를 읊조리며 폭발 속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근본이 잘못되었다. 어째서 저 경호원이 살호로 변해있는 것일까.
잡은 땅을 그대로 커다란 생명체가 뛰쳐나왔다. 대부분의 모습은 살호였지만 부분마다 사람의 모습이 남아있었고 특이 얼굴은 내가 죽여버린 건우의 것이었다. 눈빛이 매섭게 변하고 손이며 발이며 굵어지다 못해 사람 한 명 정도는 으스러트려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꼬리, 지금까지 본 살호의 꼬리는 2개, 그런데 이놈의 9개였다. 심지어 무슨 신화마냥 끝에는 작은 불들이 붙어있었다.
[.......건우씨?]
[야! 빨리 물러서!]
그런 괴물이 튀어나왔음에도 미유키는 바로 물러나지 못했다. 경기때는 괜찮은 자세를 보여줬었는데 왜 하필 여기서 어리버리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살호, 구미호의 꼬리 하나가 빠르게 날아와 그녀를 쳐내버렸다. 얼마나 세게 쳤으면 맞으면서 허리가 꺾였을까. 그대로 날아간 미유키는 땅바닥을 굴렀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저 강하게 맞았을 뿐이었고 의식이 흐릿할 것이다.
“엔, 물러서.”
다음은 송혜가 나섰다. 품에서 언제 챙겼는지 단검 하나를 꺼내 들더니 빠르게 달려 붙었다. 완전히 1대1 싸움, 괴물은 꼬리들과 함께 앞발을 휘두르면서 그녀를 공격해갔고 송혜는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고집스럽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상처를 줘도 힘이 빠지기는 커녕 더욱 더 날뛰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송혜도 쳐내버렸다. 미유키와는 다르게 팔로 막아서 충격은 덜했지만 얼얼한지 막는데 사용한 팔을 쉽사리 들어올리지 못했다.
“야, 진욱.”
“어.”
“사라좀 대리고있어봐.”
“엔? 어디가는 거야? 위험해.”
“알아. 그러니까 가는거야.”
앞으로 걸어나갔다. 일단 보통 괴물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살호라는 크팁톤들 중에서도 특수한 놈이다. 흐물거리는 9개의 꼬리, 점점 사라지는 사람의 모습. 어떻게 건우가 저딴 괴물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넌 빠져.”
송혜도 뒤로 물렸다. 팔 하나 다친 애는 있어봐야 방해만 될 뿐이었다. 나는 허리 뒷츰에서 글록을 꺼내들었다. 가득 찬 탄창으로 총알의 묵직함이 느껴져 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구미호도 강하게 반응을 했다. 망설임 없이 내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좀 곱게 죽여줄 때 뒤지란 말이야!”
총구를 올려 머리를 조준하고 쏘았다. 총성이 울리면서 빠져나간 총알이 대가리에 정확히 맞았지만 뚫지는 못했다. 그래도 피가 튈 정도로 박혀 들어가기는 했다. 제로거리까지 다가온 구미호는 앞발을 휘둘러서 내 머리가 가슴, 급소들이 있는 곳을 노렸다. 몸을 꺾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피하고 탄창이 비어질 때까지 머리를 집중적으로 쏴주었다. 그러면서 턱 아래를 보았는데 다른 살호들처럼 붉은 살이 있지 않았다. 역시 다른 개체다. 엄청 까다롭게 되었다.
탄창이 비어버린 글록을 대충 집어넣고 쿠크리 나이프를 뽑았다. 동시에 다가오는 앞발 하나를 급히 막아 흘려주고 몸을 돌려 가슴 쪽에 날을 집어넣었다. ‘푹’하고 들어간 굵은 날은 안을 헤집었다. 피해는 있는지 순간 녀석의 몸이 느려지는 것을 보았다. 꼬리들도 축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급소인건가. 그래도 속은 사람이라 그런지 심장을 찔러서 크게 피해는 입은 듯 했다. 앞발이 헛곳을 휘두르고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져갔다. 나이프를 빼고 발로 밀었다. 이제 정말로 끝난 것이다. 어떻게 다시 괴물의 모습으로 태어난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만 죽였으니 되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사라에게로 돌아갔다. 겨우 지친것을 회복했는데 이런 기분 잡치는 장례식까지 맞이하니 기분이 엿같았다. 언제까지 이딴 일만이 일어날려나.
[엔씨!]
그런데 갑작스런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가떨어졌던 미유키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렸지만 바로 반응하지 못해서 나도 구미호의 꼬리를 쳐맞고 말았다. 몸이 붕 날아오르더니 어딘가로 쳐박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올려다보는 하늘은 정말 맑아서 좆같았다.
[엔씨!]
눈앞에서 싸우던 엔씨가 괴물의 꼬리에 맞고 땅을 굴렀다. 거기다 경기때와 달리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섹터장이 된 의사도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나마 진욱이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뒤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여자까지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나도 겨우 일어선 참이었다. 강하게 맞은 허리는 아직도 아팠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재성오빠를 불러야 할까. 최소한 일광오빠라도 있었다면.
괴물은 뒷다리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엔씨가 가슴 안으로 나이프를 밀어 넣었음에도 움직이고 있는 그 괴물은 꼬리들을 곤두세우면서 위협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 끝은 진욱이라는 남자가 있는 쪽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도 포함해서.
[미유키.]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게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다가 여기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고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맞고 쓰러졌던 엔씨가 쳐다보고 있었다.
[좀 일으켜 줘봐. 젠장, 저 망할 괴물새끼는 송혜나 진욱을 노리는게 아니야. 사라를 노리고 있다고. 빨리 막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좀 일으켜달라고!]
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움직일 수 있었다. 느리더라도 다가가서 엔씨의 말대로 그녀의 팔을 잡아서 천천히나마 일으켜주었다. 그녀도 많이 아픈지 아까처럼 몸을 가누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움직였다. 유일한 한 손에 커다란 칼을 들고서. 우리가 상대하는 괴물을 따라서 이 여자도 괴물이라고 느껴졌다.
“야, 건우 씹새끼야! 애먼 애들 건들지 말고 나랑 놀지? 시발아.”
그리고 당당하게 괴물의 이목을 이끌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죽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괴물은 엔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우리쪽을 보았다.
[야. 너 달릴 수는 있지?]
그녀가 물었다.
[달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빨리 달리지는 못해요.]
[됐어. 그거면 돼. 잘 들어. 내가 저 망할 구미호새끼를 쳐 죽일 거야.]
[네?]
[넌 그동안 저기 저 의사랑 내 여자친구 좀 바래다 주고 와라.]
[그 몸으로 싸우시겠다는 건가요? 죽을거에요.]
[좆까. 안 죽어. 대신 죽을 만큼 아프긴 하겠네. 아무튼 간에 바래다 줘. 나중에 갔는데 사라한테 상처 하나라도 생겨 있으면 뒤진다.]
[......]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발걸음을 옮겼다. 느리지만 천천히, 중간에 괴물이 나를 바라볼까 눈치를 봤지만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엔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지나가 의사에게 다가가 말을 전하고 이곳에서 벗어났다. 곧 뒤로 또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유키에게 다른 이들을 맡기고 보낸 뒤, 나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주 좆됐다. 이 괴물새끼한테 예상치 못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꼬리만 늘었지 기껏 해봐야 계속 근접전으로 싸우게 될 줄 알았는데 미친놈의 새끼가 꼬리에 있던 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 불이 바닥이든 벽이든 닿으면 터지기까지 했다. 수류탄과 맞먹는 그런정도는 아니었지만 불똥이 튀면서 내 뺨을 긁어댔고 직통으로 맞으면 꽤나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계속 근접전을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멀어지려 하면 불을 던져대니.
4구역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남겨진 폐건물의 숲 속, 두 앞발을 휘둘러오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9개의 꼬리가 번갈아 가면서 나의 다리나 허리를 노려왔다. 허리가 맞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아까 맞은 곳일 뿐더러 그 뒷통수 한 방으로 심하게 멍이라도 든 것인지 무진장 아팠다.
“잘 생겼던 사람새끼 얼굴 다 갔다 버렸네! 얼굴값 날린 병신새끼가!”
나이프를 휘두르다가 틈을 발견하고서 목을 찔렀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들어갔으면 했다. 그런데 피해는 개뿔,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나를 향해 내려찍어왔다. 나이프를 뽑아서 뒤로 몸을 던졌다. 이어서 꼬리들이 내려찍어왔다. 옆으로 몸을 굴렸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또 달려들었다. 휘둘러지는 나이프, 난잡하게 움직이는 꼬리들. 이 새끼는 어떻게 죽여야하는 걸까. 다른 살호들처럼 붉은 살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문제였다. 분명 그런 약점을 똑같이 가지고는 있을 건데 보이지가 않으니 미칠것 같았다.
“마녀!”
또 애타게 불러왔다. 그리고 나의 실수, 또 꼬리에 맞고 말았다. 다행인건 허리가 아니라 허벅지였다는 것이다. 다행이 아닌건 그대로 쳐맞고 옆으로 돌며 넘어졌고 팔이 없는 왼쪽 어깨가 돌바닥에 찍혔다는 것이다. 아픔이 몰려오면서도 안일한 생각과 함께 쉴 수는 없었다. 다른 꼬리들이 공격해왔다. 다리에 순간적으로 힘을 넣고 피하자 애꿎은 판자벽을 때렸다. 벽들이 그대로 무너지면서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었다.
“마녀! 죽어!”
“그건 싫다니까!”
부서진 판자 중에서 내 몸의 반만한 것을 들고 던졌다. 꼬리가 그 판자를 부숴버리지만 그 뒤를 따라서 내가 나이프를 들고 다가갔다. 판자를 부수기 위해서 앞세워진 꼬리 하나, 귀찮게 구는 그걸 잘라버렸다. 강한 힘을 싣고 휘두른 나이프에 무기로 사용되었던 꼬리가 그대로 잘려나가 바닥을 굴렀다.
‘키에에에엑!’
의외랄까, 효과가 있었다. 구미호는 비명을 지르면서 뒷걸음질을 쳤고 잘린 꼬리는 끝에 지펴졌던 불이 그대로 붙어 타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판타지 속의 괴물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뭔 경우람. 그래도 약점을 찾은 것 같았다.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나이프를 고쳐잡고 뒷걸음질을 치던 놈에게 붙어서 근접전을 펼치며 다른 꼬리들도 노려주었다. 그렇게 하나 더.
‘키에엑!’
이어서 하나 더.
‘키이이익!’
울음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하나만 더.
“마녀!”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해버렸다. 갑자기 이놈이 높게 점프해 뛰어올라 한 폐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다른 곳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내 양옆에서는 그 놈의 꼬리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구미호는 그렇게 모습을 감췄다. 이대로 놓치면 안되었다. 곧바로 그 놈이 점프해 달아난 쪽으로 달리며 추격에 나섰다. 내가 아니라면 다음으로 노릴 목표가 뻔해서 목숨 걸고서라도 쫓아야 했다. 사라가 죽는 꼴을 절대로 볼 수 없는 나니까.
의사와 진욱씨,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여자를 데리고서 4구역의 병원까지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진욱씨는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가방을 하나 들고 돌아왔다. 꽤나 큰 가방이었는데 그 안에서 총을 두 자루 꺼내었다.
“미안하지만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한국어. 완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도와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난 싸움도, 괴물과 맞서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가 말했다. 진욱은 커다란 총을, 그리고 나에게는 UZI를 주면서 부탁을 하고 있었다.
“진욱씨, 나도.”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로 팔을아직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의사가 나섰다. 자기에게도 무기를 달라는 의미인지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거절했다.
“사라를 지켜줘. 조금만 상처가 나기라도 하면 엔이 미쳐 날뛸 거니까.”
“나도 싸울 수 있어.”
“안돼. 당신, 남은 팔 하나마저 다치면 누가 의사역할을 해줄건데? 수희는 어쩔 생각이야. 그리고 이 섹터는?”
“......그건 그렇지.”
“그리고 그 괴물, 겉은 그대로 내 친구였던 놈이야. 싸워도 내가 싸워. 그러니까 당신은 마지막 방어선으로서 사라를 지켜줘. 그리고 미유키라고 했나?”
[네, 네.]
“당신은 어떻게 하겠어. 꼭 도와주지 않아도 좋아. 도망가도 원망할 사람은 없어.”
[.....저는.]
여전한 망설임. 무엇하나 빠르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 솔직히 난 이들을 도울 의무 따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도망을 쳐도 나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엔씨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작전 중에 얘기가 안 되었더라도 나를 때렸었고 잘못하면 죽을 위험까지 갔었기에 오히려 미웠다. 나는.
‘펑!’
망설이지 않는게 좋았을까. 갑자기 큰 폭발음이 여기를 덮쳤다. 유리가 깨지면서 파편들이 날렸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폭발이 들렸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6개의 꼬리가 펼쳐지면서 벽을 부수기까지.
“여자!”
“건우.”
진욱은 나에게 건네주려던 UZI를 던지고 바로 사격 자세로 들어갔다. 하지만 늦었다. 괴물의 꼬리가 먼저그를 잡아채더니 벽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빠르게 날아가버린 그는 그대로 쓰러지더니 움직이지 못했다. 이어서 괴물은 나를 쳐다보았다. 의사는 급히 수술대에서나 쓰는 메스라도 쥐었지만 택도 없을 것이다. 상대는 괴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유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브라이언’이라는 남자가 있을거야. 그 사람에게 도움을 좀 청해주겠어?”
[네?]
긴 문장으로 무언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모두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었다.
“......알아듣지 못했네. 뭐, 어쩔 수 없나.”
의사는 다시 한 문장을 말하고서는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한팔을 겨우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메스만을 쥐고서 괴물에게 맡서는 것이다. 분명히 질 것이다.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왜? 꼬리가 올라가면서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그 꼬리들을 하나씩 피하면서 천천히 다가가려 했다. 그녀를 맞추지 못한 꼬리들은 진료실의 약품들을 부숴나갔다.
“나머지 꼬리는 잘렸나 보네. 그러니까 엔한테 왜 시비를 걸었어?”
“마녀!”
분명히 다친 사람임에도 괴물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이라도 상처들을 내면서 피해들을 주고 있었다. 내가 알던 4구역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엔씨도, 진욱도, 그리고 이 의사도.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었다. 괴물은 온전히 의사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다리를 움직여서 저 문 밖으로 뛰면 그만이었다. 설령 내가 싸우지 못하더라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었다. 그러면.......의사는 죽을까.
[바보같아. 나는.]
울음이 날 것 같았고 두려웠다.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다......그래서, 늦게나마 UZI를 들었다.
[비켜주세요!]
나의 용기를 담은 한 마디, 의사는 그 말을 듣고서 나를 쳐다보자마자 옆으로 비켜주었다. 괴물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시선이 내게로 옮겨져 있었다. 그 눈이 보이는 얼굴은 여전히 건우씨였다. 위험했던 순간에 나를 구해줬던 사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방아쇠를 당겼다. 빠르게 나가는 총알들이 괴물을 맞추었다. 큰 피해는 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관심을, 그리고 도망갈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여기로, 건우씨!]
바로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계단을 통해서 1층으로, 그리고 거리가 있는 밖으로.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고 나를 찾던 괴물은 진료실에서 내 앞까지 뛰어내렸다. 커다란 울림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꼬리, 의사나 엔씨처럼 유연하게 피하지는 못했고 대신 뒤쪽으로 멀리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꼬리들이 내 발끝을 스쳤다. 그리고 잠깐 뒤를 돌아서 다시 총을 쐈다. 완전히 내게로만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결과는 성공이었다. 더는 진료실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만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디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달렸다. 바로 뒤로 쫓아오는 건우씨의 두터운 발걸음 소리가 가깝지만 멈추지 않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사거리.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키아아악!’
발을 바삐 움직이며 방향을 꺾자마자 그는 미끄러졌다. 나를 따라서 바로 꺾으려다가 넘어진 것이다. 조금이지만 시간을 벌게 되었다. 총구를 들고 조금만 쏘고 다시 달렸다. 혹시나 괴물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떠나갈 것 같아서. 이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건우씨를 쓰러트릴 방법을. 무언가 강한 공격이 될만한 게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바로 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