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4 (46/72)



〈 46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4

“축하드립니다. 엔씨.”

어느새 다가온 직원이 내 위에서 말했다. 축하한다고. 아까 그놈이었다.


“이럴 때는 그런 말 하는거 아냐.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던지 말던지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서 다음 경기로 가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놈의 직원들은 융통성이고 뭐고 없는 것 같았다. 하여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은 조용히 따라가야지.

무덤덤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는 7층을 눌렀다. 또 2층 위, 가까웠다.

“야, 케이니 시체 모니터로  나왔냐?”

“아주 잘 찍혔습니다. 아마 대중들도 모두 봤겠죠.”


“넌 보고서 어땠어?”


“글쎄요. 그냥 그랬습니다.”

“재미없는 새끼.”


문이 열리고 발걸음을 내딛자 부드러운 바닥이 밟혔다. 지금까지 이 건물에서 밟았던 딱딱한 바닥들과 달랐다. 여기는 어디일까. 들어오는 햇빛으로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왜냐면 정말 바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얀색의 카펫바닥, 주위를 두른 회색의 벽, 유리로 도배된 천장, 끝이었다.  넓은 공간에 그것들뿐이었다.


“아니네.”


정정, 중간에 2개의 의자가 마주보면서놓여있었다. 가운데에는 작은 테이블이,  위에는 2개의 잔이 놓여져 있었다. 송혜의 진료실에 있던 것과 달리 깔끔하고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였다. 다가가 손으로 만져보니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앉아서 사라의 배를 만지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앉았다. 사라가 있다고 생각하며. 허벅지, 엉덩이, 허리, 목으로 말할  없는 편안함이 덮쳐왔다. 이대로 잠이라도 자버려? 눈을 좀 감고 싶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잔에는 방금 만든건지 식지 않은 커피가 들어있었다. 먹으라고 만든거겠지만 입에 대지 않았다. ‘약이 타져있겠지’가 아닌 나중에 덮쳐올 목마름 때문이었다. 커피는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않고 역으로 갈증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그래서 손대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방. 소파만 없었다면 내가 살던 방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네. 분명 내 방은 이런 것들과 대부분이 반대였는데. 그다지 좋은 방은 아니었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책상 하나와 커다란 창문이 끝인 원룸이었다. TV 대신에 노트북이 있었고 그걸로 야동이나 포르노를 보면서 혼자서 여러번 즐기기도 했던 방이었다. 총 한자루 말고는 다른 무기들을 두지 않았었다. 괜히 이웃 놈들에게 걸려서 손을 보기는 귀찮았으니까. 아무튼 그런 방이었다.


두영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동안 잠시 집과 관련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고문같은 훈련을 받던 기억. 아빠새끼는 대부분 밖에서의 살인을 가르쳤지만  안에서의 살인도 가르쳐 주었었다. 모르는 남자 혹은 여자를 낚아와  방에 묶어서 던져놓고는 여러자기 도구들을 쥐어주면서 이렇게 찌르면 어떻게 되고 저런 부분에 총을 쏘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그 뒤로는 도구만 쥐어주고서 자유롭게 죽여보라고도 했었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어느 날 아빠새끼가 데리고 온 싸움꾼 3명과 싸워서 모두 져버리는 바람에 저녁내내 범해진 이후였다. 가랑이 사이에서 흐르는 액들을 닦아내고 막 잠옷을 입고 눈을 감으려던 찰나 그가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여자를 내 방에 던져주었다. 도구로는 공구세트가 들은 상자를 하나 주었었다.  다음은 ‘알겠지?’라며 눈길을 주고는 밖에서 문을 잠궈버렸다 방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비추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머리카락들이 매끄러웠고 하얀 피부가 조그만 내 손으로만져도 더러워질 것 같았었다.  알바는 아니었다만.

그녀는 눈가리개를 당하고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였다. 입으로는 재갈이 물려져서 뭐라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늘 듣는 것은 똑같았다. 무심하게 눈가리개를 벗겼다. 검은색의 눈동자였는데 나를 보더니 안심한건지 조금 두려움이 조금 풀렸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물이 묻었었고.

난 여자가 보든말든 신경을 끄고 아빠새끼가 던져준 공구세틑를 열어서 여러가지 도구를 꺼내 늘어놓았었다. 망치, 니퍼, 벤치, 몽키스패너, 톱, 일자랑 십자 드라이버, 못 5개, 긴 볼트5개, 전동드릴. 드릴은 배터리가 없었던 건지 작동되지 않았었다. 목록에서 제외시키고 무엇을 사용할까 하다가 먼저 들었던 것은 니퍼였다. 작지 않았다. 그것을 들고서 여자의 앞에 서자 그녀의 눈빛은 바뀌어 있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알아챘는지 여러 알아듣지 못할 신음들을 늘어놓았었다. 조금 궁금해서 재갈을 벗기자 소리쳤다.


“살려줘! 제발. 여기서 벗어나야해. 너도 갇힌거지? 같이 빠져나가자. 응?”


그녀의 말은 잘못되었다. 난 갇힌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 지냈던 장소였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를 죽이면 어차피 아빠새끼가 문을 열어 줬었다. 나는 여자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하고 니퍼를 그녀의 엄지손가락으로 가져갔다. 사람은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없기에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 양쪽 모두 잘라버렸다. 아픈 걸까. 그녀의 비명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자른 손가락을 대충 던져버리고 다음 공구를 꺼냈다. 망치와 못이었다. 그걸로 여자의 발목에 박아 땅과 고정시켰다. 또 아픈건지 비명을 내질렀고 울기까지 하고 있었다.

“제발.....그만....”


벤치를 들었다. 혀를 뽑으려고 했었지만 생각이 바뀌어서 입을 강제로 열게하고 이빨 몇 개를 뽑아주었다. 입안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서 여자의옷을 찢고 등에 직선으로 발라주었다. 목 아래에서부터 꼬리뼈까지 직선으로 쭉.  선은 이제부터 내가 톱질을 할 선이었다. 공구세트에 있던 톱은 새것이었다. 끝쪽 날을 목 위, 선의 시작점에 가져가대었다. 여자는 톱이었던 것을 알았을까,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였다.

“안돼. 그만. 살려줘. 왜 나한테 이러는건데?!......엄마.....”

나한테 물어도 답할 수 없었다. 단지 이렇게 해야 내가 살아남으니까. 톱의 날을 조금씩, 손잡이를 잡고 움직이면서 여자의 몸을 갈랐다.  한 번 했을 뿐인데도 피가 뿜어져 나와 내 얼굴을 적셨다. 입속에 튄 건 먹으면서 천천히, 톱질을 이어나갔다. 그럴수록 여자의 비명을 거세지다가 반쯤 잘랐을 때 멈추었다. 죽은 것이다. 움직이던 눈이 멈추고 나오던 눈가의 물도 멈춰 사라져 있었다. 이제  톱질을 해봤자 비명은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이어갔다. 꼬리뼈까지 가르고 흘러내린 피를 다시 묻혀서 다리와 팔들에도 선을 긋고 잘라내었다. 죽은 시체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다른 살인자들은 물을 것이다. 그 중 싸이코나 베테랑들은 캐리어에 넣은  땅에 묻을 거냐고 묻지만 내 대답은 앞도, 뒤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여자의 시체는 오늘 먹지 못 한 나의 ‘저녁밥’이었으니까......뭐,이런 기억이었다.


‘띵!’

한 과거를 회상하던 중에 엘리베이터의 소리가 필름을 끊어버렸다. 저 멀리, 앞을 보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는데달갑지 않은 얼굴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내 여친을 심리적으로 괴롭혔던 망할놈의 두영. 그는 내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당당한 걸음으로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사장처럼 앉아있는 나와 달리 그는 협상가처럼 두 손을 모으며 앉았다. 뭔가 얘기를 하려는 자세. 맘에 안드는 새끼. 사라의 울음 가득했던 표정이 떠올랐다. 시발새끼. 잠시, 총열에 1발이 남아있는 글록을 꺼내서 장전을 했다. 빈 탄창이 바닥을 구르고 17발이 풀로 채워져 있는 새 탄창이 끼워졌다. 그리고 두영이 확인하는 것을 보고 손에 쥐었다.

“어깨는 좀 괜찮아?”

“난 사라가 존재하는 한 무적이라서.”


“그녀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그러고는 쓴웃음을지었다. 내 입장에서  새끼는 이딴 웃음을 지을 자격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내 여자친구니까, 버러지야.”

“당신도 날 원망하나 본데, 너무 그러지마. 나도 사라를 아꼈지만 당시에는 그것만이 보다 능력있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니까.”


“합리? 지랄하네. 그러는 새끼가 사라한테 1도 설명없이 ‘짐’이라고 쳐 말하고 버리고 튀셨나?”

“생존에 있어서 사라같은 사람들은 ‘짐’이 맞으니까. 사람으로서 좋아해도 목숨이 걸린 시점에서는 ‘짐’일 뿐이지. 당신도 그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을 거야. 안 그래?”

“그래, 있었지. 사라가 내 기분 풀어준 일, 내 목숨 구해준 일, 내 인생 넓게 펼쳐준 일. 충분하냐?”


“......뭐, 그렇게 생각하는건 자유니까.”


두영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검은 야수같았다. 이쪽이 본심이라는 것을 대충봐도 알 수 있었다. 아빠새끼보다는 덜하지만 나름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거야. 사라가 ‘짐’인건 변함이 없으니까.”

“웃기는 새끼네 이거.”


조소를 섞어서 받아쳐 주었다. 난 ‘합리’라는 단어를 존나게 싫어했다.

“야, 네가 힘이 딸려서 안된  ‘합리’를  붙여서 자위하냐? 씹새야, 네가 약한 걸 탓해야지. 나라면 그딴 선택이나 생각따위 안 해. 크립톤 새끼들을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항상 너같은 약아빠진 새끼들이 ‘합리’를 운운하더라? 그러니까 그 입에서 사라를 가리키고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란 말, 하지마.”

대화는 끝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죽일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조용히 흐리기만 하는 정적. 눈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나와 두영. 가운데에서 사라가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깨는 이제 아프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이 새끼를 갈가리 찢어 죽인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신호가 된 것은 정적 속에 울려퍼진 두영의 발움직임 소리였다.

둘 모두 동시에 권총을 뽑아 겨누었다. 나는 즉각 반응해 발까지 들어 올리며 두영의 권총을 차버려 총구를 흐트렸고 그도 마찬가지로 다른 손을 이용해 내 총구를 흐트려 놓았다. 각자 발사된 첫 총알은 하얀 벽에 흠집을 남겼다. 이대로 근접전도 가능하긴 했지만 먼저 거리를 벌린 것은 두영이었다. 소파에서 옆으로 굴러 뒤로 물러났고 나도 소파 뒤로 몸을 내빼고 다시 권총 싸움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파를 엄폐물 삼아서 싸우려 했지만 포기했다. 두영이 자신의 콜트를 들고서 옆으로 돌며 다가오고 있었다. 소파말고는 어떤 엄폐물도없는 공간에서 많은 심리전이 오갔다.


서로가 서로의 예상경로를 일부러 헷갈리도록 흐트려 놓으면서 예측으로 권총을 쐈다. 그런식으로 2발씩 오갔다. 그리고 이 심리전의 승리는 나였다. 옆으로 움직이다가 방향을 반대로 트는 척 속이고 빠르게 그에게로 돌진했다. 먹혀들어간 덕분에 제로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고 턱대가리에 총구를 겨누어주었다. 이대로 방아쇠만 당기면 턱이 날아간 채로 뒤지는 그였다.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그의 손이 또  총구를 밀친 것이다. 동시에 그의 총구가 내 가슴을 향했다. 나도 발을 휘두르며 밀쳐버렸다. 내 총알은 천장의 유리를, 그의 총알은 소파에 구멍을 뚫었다. 나이프도 아닌 권총으로 싸우는 근접전이 되었다.


삼촌이 여러 번 가르쳤던 싸움이기도 했다. 매번 그에게 졌지만 웬만한 놈들은 내가 이겼던 종목,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 때만큼은 하지 못한다.  증거로 두영와 나는 여러번의 밀치고 겨누기를 주고받았다. 중간에 한번 씩 총알을 쐈지만 스치지도 않고 애꿎은 곳들에만 박혀갔다. 팔을꺾어서 허리를 노렸다. 그가 몸을 틀며 손으로 밀치고 내 역으로 내 허벅지에 겨누었다. 그러면  내가 다리를 들어올려 두영의 손목을 밀쳐 피했다. 동시에 다시 턱으로 총구를 향해보지만 실패한다. 이거 끝나기는 하냐? 시간도 맞춰야 하는데.


조금씩 지쳐가던 도중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의 콜트에서 ‘틱틱’거리를 소리가 들린 것이다. 이때뿐이다.  생각만을 하며 두영의 가슴팍을 걷어차서 밀친 뒤 총알을 갈기려고 했다. 바람구멍들을 내서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도 반응이 빨랐다. 내 발을 잡아서 옆으로 치우더니 내가  권총의 방아쇠에 자신의 손을 얹어서는 바닥으로 향하게 한 뒤 갈겨버린 것이다. 처음 1발, 근접전에서 9발, 그리고 지금 그가 연속으로 쏴버린 7발. 내 글록 탄창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탄환의 수였다. 17발. 두영을 그걸 노렸다는   웃어 보이고는 손에서 권총을 낚아채 멀리 던져버렸다. 그 보답으로 다시 올린 내 발차기가 두영의 턱을 차고 허리를 걷어차 주었지만 그는 별로 다치지도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이 사용하는 건 글록17. 탄창은 17발이 최대야. 이제 서로 총은 사용하지 못해.”

“몸싸움은 자신있나 보지? 술집에서 쳐맞은거 기억 못하냐?”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존나게 시발아!”


바로 달려들었다. 시작은 언제나 주먹이었다. 얼굴을 노리며 잽을 날려봤다. 그는 잡지않고 내 아래로 피하면서 들어와 받아치려 했다. 바로 몸을 틀며 다리를 걸어보았다. 역으로 멱살이 잡히는 바람에 똑같이 넘어졌는데  짧은 순간 두영이 위를 차지했다. 주먹이 내 얼굴을 향했다. 맞으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심하게 뒤틀어 피하고최대한 다리를 뻗어 그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동시에 상체를 일으키며 그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옆으로 밀어 던지고 일어서서 발로 내려찍었다.

“개새끼야!”


두영은 몸을 굴러 피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일어서지 못하도록 빠르게 따라붙어 상체를 일으킨 그이 턱에 다리를 휘둘렀다. 그걸 또 고개를 숙여 피해 움직이는데 그 정도는 예측할  있었다. 떠오른 다리를 내리지 않고 방향을 바꿔 뒷꿈치로 다시 노렸다. 뻑 가버려야, 개새끼.


정정, 시발, 두영이 단단한 손으로 발목을 채더니 그대로 아래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등이 바닥과 마주하고 이제  괜찮았던 오른쪽 어깨가 세게 부딪혀 고통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아픔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두영의 방식이 갑작스레 바뀐 것이다. 다가와서 아까처럼 발로 찍어누르려는 게 아니라 발목을 잡은 채 나를 뱅뱅 돌리면서 바닥에 내팽개치는 형식이었다. 주로 오른쪽 어깨가 가격이 되도록. 이런 썩을 놈의 새끼. 타이밍 잡고 브레이크를 걸어보지만 그러면 그가 자신쪽으로 세게 당겨 흐트려 놓았다. 어깨의 상처가 완전히 터져버렸다. 또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했다. 이대로 가면 어깨가 부러질 것이다. 등에 있던 나이프를 뽑아 바닥을 찔렀다. 그리고 꽉 잡으며 그의 힘에 반동을 걸어 발을 돌렸다. 풀리는 손, 앞으로 굴러 빠져나오며 뒤로 돌았다.


“늦었어.”

주먹이 꽂혔다. 가만히 있던 배로. 쳐먹은 게 별로 없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심하게 구토를 했을 것이다. 그걸   참으며 그의 주먹을 잡고 일자로 다리를 뻗어 기회를 노려봤다. 실패. 얼굴에 꽂히는 잽이 들어오면서 내 정신을 흔들고 오른쪽 어깨를 힘주어 걷어차고 내가 쓰러지려 하면 옷을 잡아 강제로 일으키고는 다시 잽날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쳐맞기만 했다. 틈을 찾아서 공격을 끊고 한대라고 반격을 해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았다. 쓰러지려고 하면 일으켜 때리고, 일어서면 어깨를 짖이거나 잽으로 머리와 가슴, 배를 때려왔다. 어느새 벽까지 몰리고 말았다. 등으로 하얀 벽이 날 맞이해주었다. 앞은 아니지만 뒤로  뻗은 그의 주먹이 내 시야에 가득했다. 이제 내가 뻑갈 수도 있었다. 정신도 엄청 흔들리고 있고 여기저기도 성치 않은데 특히 케이니에게 찔리고 두영에게 두들겨 맞은 오른쪽 어깨는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거기다 이 새끼, 진심으로 날 죽이려 하고 있었다. 시발, 뭐, 그래도 난 여기서 져줄 생각이 없었다. 두영은 자신이 이겼다고 웃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많이 보던 것이었다. 다 이겨놓으면 지가 이미 이겼다고 확신하는 방심. 기다렸다, 씹새끼야.


그가 자신만만하게 내지르는 주먹은 뒤로 물릴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이 새끼의 주먹을, 반대로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바꾸어주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크게 틀었다. 있는 힘 다 짜내서 스프링마냥 벽을 바닥삼아 틀어버리고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스쳐보기만 했어도 알 수 있었다. 당황하는 표정을. 잡은 손목을 꽉 잡으며 진욱에게 써먹었던 걸 사용했다. 오른 다리를 굽히며 들고 왼 다리로 중심을 잡고서 주먹으로 잽을 날리는 것처럼 발로 잽을 날렸다. 빠르게 목을 걷어차고 머리, 가슴을 가격해주었다. 역으로 들어오려 하며 정수리를 찍어내리고 허벅지를 가격, 다시 턱을 걷어차 올렸다. 두영이 조금씩 물러나면 왼다리를 비틀거나 확 움직여 바짝 붙어서 차고 날 끌어당기려 하면 그 반동까지 힘에 실어서 세게 후려쳐주었다. 아까까지 맞았던 만큼 그대로에 이자까지 붙여서 되돌려 줄 생각이었다.

“마리아의 이름으로, 넌 뒤졌어.”


두영의 표정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그도 좀 정신이 흔들리는 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턱을 여러 번 갈겼으니 그럴만하지. 그는 어떻게든 내가 잡은 손목을 풀고 벗어나려 했지만 뜻대로 되게 두지 않았다. 손목을 돌려서 빼려하면 나도 같이 돌았고 내 손을 가격하려 하면 그걸 막고 걷어차 주었다.


“우쭈쭈, 잘 가.”


그리고 마침내 벽까지 내몰았을 때 손목을 놓고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나처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 코가 깨진것인지 피가 흘렀다. 붉은색의 피가 손에 묻었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그래서 한 대  때려주고 멱살을 잡아 소파까지 던져버렸다. 그이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보통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움직이지 못할 텐데 바닥을 짚더니 그대로 일어서는 두영이었다. 이 새끼도 독하네. 시발, 나도 조금씩 지쳐가는데.


“야, 그냥 좀 뒤져. 뭘 그렇게 애쓰고 지랄이야?”

“당신도 애쓰잖아.”


“사라가 있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애초에 넌 날 못 죽여.”

“사라는 당신을 죽이게  거야.”

화나서 달려가 목을 세게 치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차버렸다. 소파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다가가며 바닥에 떨어져있던 나의 글록을 주웠다. 새 탄창은 없었다.


“아직도 그 소리야? 네가 약해빠진 걸 내 여친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렇군,  이상 얘기해봐야 소용없는 건가.”

“이제 알았냐?”

그는 힘 빠진 말을 하면서도 소파를 잡고 일어섰다. 아까 걷어찬 것도 꽤나 세게 찬건데 잘도 일어나네.

“존나게 일어서네. 자신있어?”

“당신이 강자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저번에 말했듯이 제대로 된 기술도 없고 팔도 하나가 날아갔지. 지금까지는 깡하나 믿고  거 같은데, 이 참에 보여줄게.”


“응, 엿.”


더 이상 개같은 소리를 들어주기가 싫었다. 끝내자.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 쥔 손을 들이밀었다. 눈을 개박살을 내려는 생각으로. 그런데  이상하다. 내 시선이 어째선가 천장으로 향해 있었다. 뭐지 하는 순간에 큼지막한 발이 보였다. 옆으로 굴러 피했다. 역시 착각이나 꿈이 아니었다. 난 엎어진 것이다.그가 무언가의 행동으로  엎어서 바닥에던진 것이다. 그것도 진짜 순간적으로. 무감각했던 등과 어깨가 빠르게 아파왔다. 그래도 빠르게 일어설 수는 있었다.


“뭘?”

두영이 달려들어왔다. 내지르는 주먹, 난 그의 손목을 낚아채서 또 아까처럼 두들겨 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엎어진 것은 나였다. 반대가  것이다. 그가 내 손목을 잡고서는 밑쪽으로 끌어당겨 배에다가 무릎을 꽂아왔다. 이제는 나도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입안이 찢어진 게 아닌 몸 안의 어딘가가 문제였다. 나도 너무 쳐맞은 것이다.

“이.....시발놈이!”


억지로 참으며 고꾸라지는 몸을 일으키고 반격하려 했지만 목으로 고통이 들어오고 옆으로 날아가는  몸이었다.


“말했잖아, 기술이 없다고.”

하염없이 구르는 몸. 계속 안에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피. 누가보면 암걸려서 피토하는 줄 알겠네. 손을 바닥에 짚고일어났다.  다리로 서 보지만 어딘가를 잘못 맞았는지 힘이 풀리고 주저앉게 되었다.

“지랄마!”

아까 주웠던 내 글록을 그에게 겨누었다. 탄창이 비어버린 권총. 정확히 머리를 겨누었다. 그는 내 행동을 보더니 마지막 발악으로 보듯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조소섞인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들이 본다면 그냥 지나가던 훈남새끼가 멋진 미소를 짓는걸로 보이겠지만 전혀 아니다.  새끼는  비웃고 있었다. 제대로.

“탄 없잖아. 아까 17발 다 쏜 거, 기억못해?”


“확인해볼까? 니 대가리 날리는 걸로.”

“쏴봐.”

두영은 걸음을 멈추고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미소 그대로. 진짜 개같은 표정이다.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스스로도  만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여기저기가 존나 쑤셨다. 이제 송혜와 얘기한 대략적인 작전시간을 맞춰야 할 때였다. 글록의 검은색 총구가 올라가며 천장으로 들어오는 빛에 반짝였다. 사라는 무사하겠지. 그는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며 허세가 가득한 표정을 치우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도  당당했다. 한숨을 쉬는 그, 그리고 나를 향해 다시 다가오길래 주저앉은 채로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다가오면 물러나기를 반복. 등이 벽에 닿았다. 회색의벽이 날 내려다보면서 받쳐주었다. 허리가 한결 낫네.

“나라면 지금이라도 기권했을거야. 목숨이라도 건져야하지 않겠어? 그게 합리적인 선택일텐데.”


“‘합리’라는 단어, 약해빠진 새끼들이나쓰는거라고 못 알아쳐먹었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니 대가리 날리는거.”


“하아......허세도 통하는 걸 해야지.”


그는 손을 들어 나를 향해 천천히 뻗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발도 하나 떼었다. 날 들어서 던지든, 짓누르든 어떤식으로든 죽이려 하겠지. 다시 말하지만,  죽을 생각이 없었고 진다고상정하며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짓으로 일그러트렸던 나의 표정을 풀고 짙게 웃었다. ‘마녀’라고 불렸던 그 때의 모습으로.


“병신새끼. 좀 놀아주니까 진짜로 지가 위인줄 아네.”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말한대로내가 허세였다면 들려야  소리는 ‘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구에서 흩뿌려진 소리는 이 공간을 크게 울린 총성이었다. 불을 뿜으며, 내 짙은 웃음소리까지 담은 총알이 튀어나가 두영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가 당황하며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는 이미 머리에 구멍이 난 뒤였다. 바닥으로 진득한 피가 흐르고 움직이지 않는 몸이 내 위로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내 어깨를 무게로 누르는 빌어먹을 몸덩이였다.


“이, 시발! 근육덩어리 새끼가. 죽어서도 지랄이야!  어깨 시발.”

아픈 어깨 때문에 발로 근육덩어리를 밀어버리고 벽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이 짜증나는 망할 놈의 시체를 걷어차고 또 걷어찼다. 뼈가 부서지고 얼굴이 짇이겨 질 때까지.


“뒤질거면 곱게 뻑 가라고 시발아! 남의 아픈 곳은 왜 건드리고 지랄이야. 살아서도 지랄인 새끼가 죽어서도 합리적인 민폐를 끼치네. 개새끼, 망할놈!”


축구공을 차듯 저 멀리 보내려 가득 힘을 싣고 대가리를 걷어차 주었다. 나의 마지막 일격이었다. 제대로 먹혀들어갔는지 고개가 꺾여 자기등을 쳐다보는 그의 시체를  수 있었다. 이제 지 꼬추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보고 기술이 없네 옘병할 말만 늘어놓더니 꼴 좋다, 시발아. 기술이 있으면 뭐하냐? 다른게 딸리는데. 하여간 지들 잘난 스킬이 조금이라도 먹히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어, 병신이. 진짜 허세는 내가 아니라 너야, 이 개새끼야!”

싸움의 기술로는 확실히 두영이 케이니나 재혁보다는 좋았다. 하지만 걔네들하고도 막상 싸우면 이 버러지같은 시체가 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기술만이 아닌 다른 것들도 중요했다. 특히 경험이란게. 내가 ‘마녀’였을 때 아빠새끼를 쉽사리 죽이지 못한 이유도, 삼촌한테도 매번  이유도 ‘경험’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부족한 촌뜨기였으니까.

“하, 시발......”

피곤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서 바닥을 구르는 소파를 일으켜 세우고 등을 받치며 앉았다. 침대가 있었다면 더 좋겠것만. 아니면 사라라도 안으면 모를까. 고개를 들고서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햇빛을 가리는 회색의 구름이 가득했다. 비는 오지 않았다. 우중충한 더러운 하늘덕분에 갑자기 나 몸에힘이 빠져나가 버렸다. 그만큼 피곤한 거겠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속이 시원했다. 떠나기 전에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던 여우년과 두영을 죽였으니까. 선배도 기뻐해 주려나. 여자는 만났는지나 모르겠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또 움직여야만 했다. 아직 두 새끼가 남아있었다. 글록의 빈 탄창을 장전하자  뒤로 직원이 다가왔다. 1명이 아닌 4명이었다. 남녀 2명씩인데 모두 내가 본 얼굴들이었다. 반갑지는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엔씨, 우승입니다.”

“......상장주냐?”


“밑에서 섹터장님이 기다리십니다.”

“하아......가자.”

소파에서 일어나 두 다리로 섰다. 이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딱  새끼만  죽이면 끝이었다. 빨리 사라에게 돌아가고 싶다. 엘레베이터의 숫자가 내려가면서 점점 바닥을 향했다. 5,4,3,2 그리고 1. 1층에 도착하자 익숙한 토스트기 소리와 함께 바깥이 나오고 거대한 모니터와 구역장들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관중들의 함성이 울렸다. 이제 이 중앙에서 상장에 피를 묻힐 차례. 직원들은 나를 데려다준 뒤 흩어지고 늙은 섹터장이 계단을 밟으며 내려왔다. 뒤에 있는 건우와 함께. 경호원이 바짝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똑같이 노려봐주었다. 이미 서로  판 할거라는 것을알고있는 듯 했다.


계단을 내려온 섹터장이 관중들의 중앙, 내 앞에 섰다. 역시 이 얼굴, 낯이 익는데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사소한 건 넘어가기로 하자. 그는 다가오는 사회자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 사이 주위를 둘러보는 척 재성을 찾아봤는데 이미 송혜쪽으로 붙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엔.”


늙어가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지금 당장이라도 글록이나 나이프를 꺼내 시도할 수는 있었지만 당장 옆에 서서 보호하는 건우의 시선이 따가웠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려준다면 편하겠지만 그의 눈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존나 노려보네.


“우승을 축하하네.”

“상금은 두둑히 준비했겠지? 개쩌는 것들을 보여줬으니까.”

“상금도, 영역도 있지만, 더 큰 제안이 있네.”

그냥 줄거나 주지. 하여간 윗놈들은 대개 이렇다.

“뭔데?”


“내 밑에서 일하지 않겠나?”

솔직히 말하면 1도 안끌렸다. 애초에 난 누구 밑에서 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설령 있더라도 항상  꼬우는대로 행동하지.

“좆까.”

“......아쉽군.”

그래도 생각은 있는 놈인지 딱 한 번 제의하고 그만두어주었다. 거  다행이네. 보통 다시 생각해보라며 접근해오는 놈들이 대다수니까. 섹터장은 내 앞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이쯤이면 송혜쪽도 정리 되었을라나. 그랬길 바랬다. 나는 훈화라던지 연설이라던지를 들으면 정신이 나가니까. 센스가 있는 송혜라면.

“먼저말하길 앞서.”


시발, 센스없는 년. 벌써 지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쇼를 하나 펼칠까 합니다.”


뭔 개소리인가 싶어서 빨리 죽이려던 때 건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잔뜩 경계를 갖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호성이 넘치는 경기장뿐이지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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