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3 (45/72)



〈 45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3

크립톤이 돌아다니고 있을 밤, 진료실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사라는 나랑 놀다가 피곤해하는 표정을 짓길래 침대에 눕혀 재웠다. 부드러운 침대도, 털같은 이불은 아니지만 가장 좋아보이는 것으로 몸을 덮어주고 잘 자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졸린 눈을 감으며 자신의 밤으로 잠시 빠지는 그녀, 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평안을 느꼈다.

“잘 자, 사라.”

완전히 잠든 사라를 뒤로 하고 진료실로 나왔다. 밖에서는 손님인 재성과 일광, 미유키, 그리고 브라이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섹터 장악을 시작할 정예 멤버들이었다. 이 4명에 진욱, 송혜, 나까지  7명이었다. 지금부터는 작전 회의시간이었다. 이 모든 일의 계획자인 송혜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화이트보드 위에 각자들이 할 일들을 적어주었다. 그러면서 설명.

“나랑 진욱, 브라이언은 건물에 침입. 머리들을 노릴거야. 들어가는 시간은 6경기가 시작되는 때. 이미 한 상위층 인물의 진료를 잡아놨어. 나는 의사의 신분으로 들어가고 진욱씨는 경호, 브라이언은 조수로 속이고 들어가게 될거야. 엔은 혼자서 경기에 참가해서 카르디의 케이니와 강남의 두영, 섹터장 태신과 그의 경호원을 처리. 단, 내가 태신의 건물을 정리할 동안은 그 남자를 경기관람으로 붙잡아줘야 해. 한 마디로 시간을 좀 끌면서 싸워달라는 거야. 재성씨는 빠르게 탈락해서 제가 있는 건물로 쳐들어와 혼란을 만들어주세요.”

“일광이랑 미유키는?”

“사라의 호위. 지금 입원실에 있는 여자가 노려지고 있는데 붙잡히는 순간 엔이 빠지게 되요.”


“음, 중요한 여자인가 보군. 그럼 그렇게 하지.”

재성이 순순히 송혜의 말을 따랐다. 작전 내용을 정말 간단하지만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데다가 내가 제일 힘든 축이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좋았다. 그 망할 놈들을 하루만에 죽이는 퍼레이드를 벌일 수 있었으니까.


“잠깐만.”


이제 딱 정리만 하고 각자의 일을 명심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일광이라는 남자가 손을 들며 불러세웠다. 어서 빨리 귀여운 사라의 얼굴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은데 저 잡놈의 새끼가 흐트려놓은 것이다.

“저 여자 혼자서 그 3명을 상대한다고? 차라리 재성이형이 상대하는게 낫지 않아?”

저 병신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보지 못한 걸까. 뒷북이다 못  찬 남극물을 한 바다나 들이부었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그건 걱정마. 엔은 우리의 최대전력이니까.”

“외팔인데?”

“시발, 작작 의심해라. 뒤지고 싶냐?”

“엔, 가만히. 모를 수도 있지.”


“칫.”


송혜가 달래지 않았다면 벌써   쳤을 것이다.

“엔의 실력은 내가 보증할게. 여기서 당신들이 동시에 덤벼도 역으로 제압할 실력자니까. 아니면 직접 싸워볼래?”


그건 나야 환영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한테는 직접 보여주는  빨랐다. 미유키는 내 얼굴을 보더니 금방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됐어.”


이런, 시발! 귀찮게 의심해놓고 직접 확인시켜준다니까 발을 빼버렸다. 동맹이고 자시고 죽여버리고 싶었다. 사라의 호위만 아니였어도 밖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딴놈한테 사라를 맡겨도 좋은 걸까? 빨리 끝내고 돌아오던가 해야지. 여기있는 놈들은 당장 재혁이만 와도 쓸려버릴 놈들이었다.


“그럼 이제  질문 없는거지?”


“딱히 없어.”

[저도, 딱히.]

“내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이번에는 또 어떤 미친놈인가 했는데 의외로 진욱이었다. 그는 작전설명 내내 조용해서 아무 말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손을 들고 양해를 구했다. 송혜가 미소지으며 하라고 했다. 진욱은 나를 쳐다보았다.

“건우를 죽일거야?”


“왜? 아직 그놈의 정이 남았나 보지?”

“그래, 남았어.”


“하......”

뭐,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난 그 녀석의 부모님을 죽인 ‘마녀’였고 진욱은 그 피해자의 친구였으니까. 애초에 나랑 이렇게 대화는 나누는 것도 참고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최대한 죽이지는 않을게.”


“그래.”


“대신에 그 자식이 사라를 건들면 그 때는 가차없이 죽일거니까.”


“......그래.”

솔직히 죽이지 않고서는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지금 건우라는 놈의 부모를 죽인 원수고 설령 내가 죽이지 않더라고 그 놈이 칼을 갈고 있을 건 뻔하니까. 그렇게 되면 난 제압이 아니라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말수가 없던 그 놈의 귀가 열려 있기를 바래야 할 진욱이었다.


“그럼 끝낼까?”

작전설명이 마무리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다. 진료실에는 나와 송혜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화이트보드를 지우고 진료실의 약들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서랍에 있던, 마지막 남은 와인을 꺼내 가져왔다. 깨끗한 모양의 와인잔 2개도.

“드디어 내일이네. 기대가 되는걸.”

코르크를 열고 2개의 잔에 붉은색의 와인이 채워졌다. 송혜 하나,  하나.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그녀와 다르게 나는 목구멍 너머로 들이부었다. 역시 와인보다는 맥주가 짱이네. 갑자기 땡겼다.


“기대는 개뿔이고 난 빨리 끝내고 떠나고 싶거든? 도대체 시발, 언제부터 기름값이 사람 목숨 여러개로 바뀌어 있었냐?”

“대신 가득히 줄테니까.”

“나, 비싼 몸인거 알지? ‘사건’이 이따구로 만들기 전이었다면 겨우 기름 정도로 날 못 써.”

“알아. 근데 지금의 넌 ‘사라’라는 할인이 붙었잖아.”


“사라가 대신 사준거야. 고맙게 생각해라.”


“물론.”

내 잔으로 와인을 더 채워주는 송혜였다. 이딴 하수굿물은  계속 채워주는 건지. 다시 목구멍 너머로 들이켰다. 취기는 올랐지만 와인으로 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이 년이 자꾸 따라주면서 취하게 만들려고 했다. 내일이 끝나갈 때 쯤이면 기절할 때까지 기념으로 맥주를 마실거긴 하지만 이렇게도 한잔 하고싶은 걸까. 됐다. 나도 여기를 떠나면 이 친구와 바이바이가 되니까  정도는 괜찮겠지. 그걸 생각하면서 어울려주기로 했다.

“엔.”


“왜? 병신아.”

“섹스하자.”

들고있던 와인잔으로 송혜의 머리를 때렸다. 이 미친년이랑 할 바에야 마약빨고 남자들이랑 난교를 벌이는 게 더 나았다. 불과 몇일 전에  골로 보내놓고 이제는 죽이려고 하네. 내가 어쩌다 이런 양성애자랑 친구가 되었을까. 옘병할.

“레즈는 너 혼자서 찍으세요, 썅년아. 난 이제 사라만 받아.”

“정열적이네.”

“하! 내가  줄 아냐? 지금까지 연애라고는 1도 없던 내게 내려준 기가막힌 사랑의 결정체가 사라인데 당연히 정열적으로 대해야지.”


“......엔, 다시 한 번 조언하는건데, 네 정체...”


“닥쳐. 그딴 조언 안받을거니까 꺼져.”


“하하! 알겠어.  이상 말 안할게. 그래도 가끔씩 생각해보길 바래. 사라는 우리랑 다른 평범한 애니까.”

“알아.”

이미 넘치도록 알고 있었다. 사라는 평범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걸.  구렁텅이에서 좆같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지냈던 우리랑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 여기로 끌어들이면  될 사람. 그렇기에 나도 정말 조심히 다루는 여친이었다.

“엔.”

“또 왜!”

“내일 잘 즐기길 바래.”

“......하! 당연하지. 싸그리 죽여버릴 거니까.”


와인이 비고 송혜의 와인잔도 비게 되었다. 그녀는 어지럽다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여전히 깨어있는 채로 밤을 보냈다. 내일이면 이곳과는 ‘안녕’이였다. 이 빌어먹을 송혜의 계획만 끝난다면 바로 부산으로 향할 것이다. 송혜는 여기에 머무르라고 말하기도 했었지만 사라가  지낼만한 곳은 아니였다. 그녀에게는 정상적인 곳이 필요했다. 나같은 쓰레기들이 있는 곳이 아닌 그녀와 같이 평범한 놈들이 있는 곳. 그것만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거쳐야할 과정이었다.


벨트에 끼워둔 뒷츰의 글록을 꺼내 정비하고 나이프의 날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라가 잘 자는 지도 확인하고 입에 걸린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해가 뜨고 작전은 시작되었다.








“마지막에 피날레에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델리’의 핵심이 되는 마지막 경기. 바로 대진표를 보이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벽을 가리고 있던 커다란 커튼이 치워지고 구역들의 이름이 적힌 대진표가 소개되었다. 이번에는 대기실들이 아닌 모두가 경기장의 중앙에서 바라보았다. 내 눈은 4구역의 글씨를 찾았고 상대쪽에 NRK의 글자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사라를 밀쳤던 개쌍놈새끼가 있는 구역이었는데, 잘됐네. 시작부터 쉽게 몸을 풀고  수 있었다. 케이니는 SRK를 상대하고 강남은 화천과 묶여있었다. 참고로 강남과 화천은 시드 뭐시기로 이기는 조가 바로 결승행이라고 한다. 뭐, 나로서는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되건 케이니와 두영을 죽여버릴 기회만 있으면 되니까.

“자! 누가 우승자가 될 것인가?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첫번째 순서, 4구역의 새로운 ‘S’급 참가자, 엔! 그리고 NRK의 ‘A’급 참가자, 양승민!  참가자는 경기장 바로 밖에 있는 빌딩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경기는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인이 있는 곳은 아니었고 다른 곳이었다. 이번 경기장도 강남이었는데 내가 벚꽃에서 4명을 죽여버렸던 그 야구장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빌딩은 원래 사무건물이었다고 한다. 그곳을 마지막 경기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지난번에는 공원에서 했다나. 아무튼 다가온 직원의 안내를 따라 그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러면서 슬쩍, 경기장의 관중석에서 가장 큰 의자에 앉아있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태신’이라는 정치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중년인데 잘 생기지는 않았다. 반반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건우’라고 했던  경호원놈이  째려보면서 서 있었다. 나도 한 번 째려봐주고 밖으로 나왔다.


직원을 따라 도착한 빌딩은 1층이 아예 비어있었다. 안내를 해줄 데스크도, 장식품들도, 아예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고 그저 검은색으로 칠해진 엘리베이터만이 깔끔하게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안내판을 붙어있지만 적힌 게 없었다. 오로지 숫자뿐이었다.

“들어가시죠.”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서고 직원이 3층을 눌러주었다. 안에는 모서리에 CCTV 하나가 달려있었다. 저걸로 보는 것이다. 3층이라서 그리 오래 올라갈 것도 없이 금방 도착했다. 열리는 문, 나의 바로 앞에는 서점이라고 적힌  가게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뜯어서 개조한 흔적들이 보였다. 책들 사이에서 총질과 칼질이라니. 글쓴다는 작가놈들이 본다면 대성통곡하거나 개쌍욕을 해대겠지. 승민이라는 남자를 죽이고 나서 심심풀이로 몇 권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라는 읽지 못하겠지만 까짓거 내가 옆에서 소리 내어 읽어주지 뭐. 무릎 배게로 눕히고 나의 쩔어주는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이다. 행복한 상상이었다.

나의 엘리베이터 맞은편으로 ‘띵’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도착음이 들렸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서점의 다른 입구로 모습을 드러냈다. 승민은 반대편의 엘이베이터를 타고 올라온다고 했었으니 당연히  남자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앞에 있던 책상들을 발로  엎어버린 다음에 몸을 숨기며 등을 기대었다. 송혜 썅년은 어찌 잘 들어갔을라나 모르겠네. 조금 뒤면 메스를 들고 광혜가 되어 여기저기의 모가지들을 해부하고 쑤시며 다닐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죽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 년은 정말 인격파탄자였다. 사라 보고싶다. 그리고 그녀의 배를 만지고 싶었다.

‘툭.’

기대면서 기다리던 사이 서점 안으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된 것이다. 경기의 룰은 정말 단순했다. 각 층에서 대결을 치루는데 도착하는 즉시 시작이며 승리조건은 상대방을 살해하거나 제압, 제한시간 따위는 없었다. 대신 기권은 20분이 지나서부터 가능하다고 한다. 어차피 나를 만나는 놈들은 기권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20분? 10명은 죽이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기권조차 주지 않기 위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안녕!”

오랜만에 보는 인사로 책상에서 튀어나와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발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그는  예상이 적중하는 곳에 서 있었다. 그도 총구를 올리기는 했지만 내가 빨랐다. 그대로 글록의 총알이 놈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기를 바랬는데 아쉽게도 목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잘 못 쏜게 아니라 생각보다 승민의 순발력이 빨랐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더 우세, 계속해서 총알들을 퍼부었다. 그가 움직이는 방향의 앞으로 미리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여러  당겼다. 그리고 총알 한 발이 정확히 그의 다리에 꽂혀 들어갔다. 승민은 갑작스러운 총알에 다리가 꼬이고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웃기지마!”


발악, 자기총을 들었는데 나같으면 이런 때 절대로 들고다니지 않을 윈체스터였다. 2차 세계대전 때나 쓰던 단발식. 그러니 또 내가 빠를 수 밖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도록 손목에도 총알을 박아주었다.

“끄아아악!”

그는 이제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윈체스터를 발로 차 밀어버리고 그의 대가리에 총구를 들이대었다. 눈동자가 겁에 질려있었다. 이대로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존나 오랜만이야,  지냈어? 난 못 지냈는데.”


“비켜!”


어이쿠야, 이번에는 어디서 꺼냈는지 단검을 꺼내 내게 휘둘렀다. 그걸 피하고 나이프를 뽑아서 어깨를 찍어눌러 주었다. 나의 나이프가 그의 왼어깨를 깊이 찔렀다. 살을 파고들어가며 근육을 찢어버리는 감촉이 슬슬 내 정신머리에 시동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자기야, 잘 지냈냐고. 묻잖아!”

꽂은 나이프를 그대로 어깨에서 팔로 썰어나갔다. 정육점의 아저씨가 고기를 썰듯이, 뼈와 다른 근육들이 걸리면서, 써걱대면 뺏다가 다시 꽂아서 썰었다. 흉터만 있던 팔이 뼈를 드러내고 속살을 드러내면서 피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의 다른 손이 내 가슴을 밀면서 떼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붙어주었다. 나의 가슴과 그의 가슴이 맞닿도록.

“아파? 알아. 그래서 더 아프라고 하는거야.”

“그만....그만!”


“이제 시작인데? 시발놈아. 엄살 피우지마. 아직 죽지도 않았으면서.”

나이프를 뽑았다. 더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옆에 있던 서재에서 책을 한 권 꺼내서 종이를 찢고 여러개를 뭉쳤다.  동안 승민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면서  상황이 뭔지 이해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어차피 그는 죽는다.


“아~해봐.”

“웁!”


종이뭉치를 쥔 주먹 그대로 순간 벌려진 그의 입에 세게 쑤셔박았다. 그런데 닿는 것이라고는 이빨일 뿐 주먹이 전부 들어가지는 않았다. 정말 귀찮게 하네. 잠시 주먹을 거두고 대신 내 입을 가져갔다. 맞닿기 겨우 1cm전.


“입 벌리고 있어.”


내 말과는 반대로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뭐, 상관없었다. 뭐든지 틈이 있으면 밀어 넣어서 강제로 벌리게 하면 그만이었다. 진하게 입술을 부딪혀 주었다. 그대로 내 혀를 내밀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라도 좋으니 그의 입술 사이로 계속 집어 넣어 주었다. 나름 끈기있게 버텼지만 승자는 나였다. 내 혀가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서로의 혀가 맞물렸다. 승민은 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혀가 들어가 벌려진 그의 입, 나는 혀만 넣으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좁은 입구는 찢어서라도 벌려줘야지. 그래서 물어뜯었다. 그의 입 옆을. 강하게 이빨로 물고 나의 힘을 실어서 찢어주었다.


“아아악!”


점점 커지는 고통소리. 내 정신은 시동이 걸리다 못해 이미 엑셀을 밟아가는 중이었다. 더이상의 발악도 하기 전에 준비했던 주먹을 다시 쑤셔 넣었다. 찢어진 입안으로 막힘없이 잘 들어갔다. 그대로 목구멍까지 종이를 집어넣었다. 이제 겨우 하나, 종이를 더 찢었다. 그리고  장씩 계속 그의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야, 야! 죽냐? 죽는거야? 죽는거냐고!”

승민은 눈이 점점 뒤집어져 가면서 켁켁거리기만 했고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잠시 멈추었다. 지금 죽어버리면 곤란했다. 아직 나는 제대로 즐기지도 않았으니까. 나이프를 꺼내 그의 배를 찌르고 깊숙히 날을 넣었다. 중간에 무슨 장기가 걸린 것인지 잘 들어가지 않아서 힘으로 억눌렀다. 나이프가 땅바닥과 마주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대로, 가슴쪽으로 서걱서걱 베어나갔다. 열리는 배 안으로 날에 베이거나 아직 숨쉬며 움직이는 장기들이 나타났다. 뼈는 잘 보이지않았다.


“네가 목구멍으로  넘기니까 직접 배 안으로 넣어줄게.”


열려버린 그의 배, 찢었던 책을 그대로 넣고 주위에 있던 책장에서 다른 책들을 꺼내와서 하나둘 안을 채워주었다. 이제는 켁켁거리지도 않고 있었다. 이쯤이면 죽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살아있었다. 그저 말이 없고 의식이 없을 뿐이다.

“맛있어? 맛있냐고!”

대답이 없는 것에 짜증이 나서 머리를 걷어찼다. 원하지는 않았는데 목이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건 뒤졌겠네. 이건 내 실수였다. 나도 차버리고 나서야 힘조절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급히 승민의 머리를 잡아 뺨을 때려보지만 역시 죽어버렸다. 숨도, 심장도 뛰지 않고 있었다.


“아, 시발. 좆같네. 머리차지 말걸.”

시동이 걸리고 이제 엑셀좀 밟아보려는 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아쉬움을 표했다. 정말 나는 바보였다. 사라와 지내면서 조금씩 감을 잃는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잃고 있었다. 조절 잘못해서 죽여버린 지금을 보면. 그래도 반대로 말하면 시체라도 있는 것이다. 죽었어도 아직 가지도 놀 장난감은 충분했다.

배에서 가슴으로 베어가면 꽂아두었던 나이프를 뽑아 잠시 옆에 두고 시체의 바지를 벗겼다. 팬티가 흐르던 피들로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그것도 벗겨버린다. 죽어버린 바람에 커지지 않은 작은 꼬추가 축 늘어져 있었다. 별로 크지도 않네. 아무튼 그 꼬추를 잘라버렸다. 이걸로 이제 뭘 할까. 막상 장난감이 남아있어서 이 짓거리를 해봤는데 재밌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시발. 잘라버린 꼬추를 던지고 시체에게서 떨어졌다. 솔직히 크기라도 컸다면 딜도로 사용했을 텐데. 브라이언이 박아왔던 그 밤이 떠올랐다.

“승리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조금 기대서 기다리던 나의 뒤로 어느샌가 다가온 직원이 서서 말했다. 그는 내 눈앞에서 여러 의미로 잔인하게 뒤져버린 시체를 두고서도 관심 없다는 눈을 보였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눈이었다.


“그딴 눈으로 말해봤자 기분만 잡치니까 집어치워. 그런데 사람이 뒤지는 걸 봤는데도 멀쩡하다?”


“많이 봐왔으니까요.”


“하! 그래서, 내가 역대급이야? 나보다 더한 놈 있었어?”


“아뇨. 당신 말대로 당신이 역대급입니다. 엔씨.”

“하하하! 아부할  아네.”

직원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안내해주었다. 이긴 사람은 쉬는 거 없이 바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러 간다고 한다. 즉, 나는  상태로 케이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SRK의 참가자가 올라올 수도 있겠지 않는냐 하는 놈들도 있겠지만 케이니는 이런 떨거지들한테 절대 질 년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논다고 낭비한 시간에 이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원은 5층을 눌렀다.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역시 바로 위라서 그런지 1분이  가기도 전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이곳은 사무실이었다. 모든 공간이. 컴퓨터들과 프린터기들, 커피를 끓이는 작은 탕진실과 몇몇 높은 놈들이 앉는 것으로 보이는 세련된 책상들. 진짜로 사무실. 그리고  멀리, 유리로 밖을 둘러보고 있는 금발의 여자 한명이 보였다. 뒷모습이지만 몰라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케이니였다.

“그럼 무운을.”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내뱉은 직원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으로 사라졌다. 이제 이 공간에는 저 여우년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오랜만에,  혐오스럽고 기분 더러워지는 이름을  입으로 불렀다. 힘차게.


“케이니!”

움직이는 어깨,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미 웃고 있는 표정. 역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시점에서 내가 온 것을 알고 여유잡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예전보다 확실히 늙은 흔적이 있었지만 이목구비나 저 빌어먹은 푸른 눈을 그대로였다. 사라만큼이나 맑은 눈은 아니여서 비교할 가치가 없었다.


“오랜만이야, 엔.”

영어밖에 못하던 년이 한국어를 뱉고 있었다. 억양이나 어투는 어색한데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난 아직도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뒷통수를 맞고 팔려나간 그 배 위에서의 날을. 덕분에 하루이틀 고생한게 아니었지.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면서 사무실 사이의 길을 걸으며 중간으로 향해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달려들고 싶지만  시간이 흐른 케이니에 대해 몰랐고 그녀도 시간이 흐른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마당이라 서로 탐색아닌 탐색전을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그녀도, 서로의 걸음부터 행동거지, 옷차림, 하나도 빠트림없이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 년은 바지부터 위에까지 쫙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온거지?”

걸으면서 여우년이 물었다.


“늑대새끼 목줄을 잘 관리한다고 제대로 복종할 줄 알았냐? 걔네들보고 주의는 해줬어야지, 목줄 채워도 목은 조심하라고. 서비스  후지네.”

“팔은 안타까워 보이네. 기권하는  어때? 지금의 나라면 20분을 기다려줄 수 있어.”

“기권은 네 똥구멍에다가 쳐 꽂으세요.  하나 없다고 해서  개같은 성격 어디  것 같아? 그리고 난 진다고 생각   시발년아.”


“여전히  많네.”

“꼬우면 네 귀 잘라. 아니면 대신 잘라줄까?”


“귀 대신 너의 입을 찢어버리는 것도 방법이지.”


“그거 내가 방금 아래층에서 해봤는데 별로더라.”


그리고 완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거리는 불과 5M. 몇 걸음만 앞서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거기서 난 한 가지, 제안했다.

“우리 총 놓고 뜨는게 어때? 어차피 우리끼리 총 겨눠봐야 맞지도 않을 거 잘 알잖아. 시원하게 칼빵 콜?”

“......너한테는 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쫄리면 거절해, 양키년아.”

“좋아, 그러면 콜.”

나의 제안에 고민하던 여우년이 승낙했다. 일단 이게 1단계다. 좋아, 이대로 쭉 걸려 들어오길 바랬다. 이년하고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피곤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내가 먼저 글록을 꺼내고 손에 쥐었다. 탄창까지 끼고 있는 권총이라는  일부러 보여주며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그녀도 자신의 권총을 꺼냈는데 마피아새끼들 사이에서 딱 한  사용해봤던 데저트였다. 저 굵은 몸체 봐라. 은색의 데저트를 감상하며 천천히 바닥에 글록을 내렸다. 케이니도 따라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계속 주시하면서 몸의 남아있던 긴장감들을 깨웠다. 적절한 긴장감은 감각들을 더욱 이끌어내준다.

1cm, 바닥과 총이 닿기 전, 나의 시뮬레이션을 이랬다. 저년과내가 바닥에 권총을 두고 옆으로 차버릴  그러는 척 하면서 발로  글록을 차 올린 뒤 머리에 바람구멍을 낸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확률은 반반. 내가 아는 여우년이라면 순발력이 나쁘지 않으니까.


권총이 바닥과 닿았다. 내가 먼저 손을 뗴고 허리를 세워 일어섰고 여우년도 따라 일어섰다.


“옆으로 차버리자고. 하나, 둘, 셋!”

‘셋’을 세는 것에 맞춰 발로 글록을 차 올렸다.  때 이미 케이니는 자신의 데저트를 옆으로 차 버린 뒤였다. 낙승이라고 생각하며 공중의 글록을 낚아채고 총구를 겨누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되었다. 그런데 여우년이 마치 이럴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다른 주머니에서 새로운 권총을꺼내고 이미 겨누고 있던 것이다. 시발.


두 개의 총성이 울렸다. 나의 글록과 케이니의  번째 권총인 USP였다. 서로 주고받는 총알이었지만 그 누구도 맞지 않았다. 나는 책상쪽으로 몸을 던졌고 그녀도 옆에 있던 프린터기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 역시 총을  다 쥐고 있으면 크게 의미가 없었다. 최소한 로켓이나 기관총이면 모를까. 귀로 주위의 소리를 집중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방금 내가 있던 곳에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나는 사무실을 반 정도 돌아서 같이 움직이던 케이니를 발견했다. 그녀도 나를 발견했다.  서로를 겨누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다시 숨었다. 이렇게 주고받기를 반복했다.


“존나 의미없게 싸우네!”


“그럼 전차라도 끌고오지 그랬어?”


찾았다, 썅년! 숨어있던 책상에서 튀어나와 나이프를 들고 달렸다. 정확히는 책상들을 밟으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마지막 책상을 밟고 미리 왼발로 중심을 잡고 오른발을 휘둘렀다. 케이니는 권총을 겨누면서 나오려다가  발에 맞아 총구가 흐트러지고 이상한 곳을 쏘면서 빈틈이 생겨났다. 나이프를 위로 들고 아래로 빠르게 내려찍었다. 이대로 대가리게 찍히거나 최소한 스치기라도 바랬는데 역시 쉽지가 않았다. 여우년이 책상에 있던 머그컵을 쥐고서 막은 것이다. 이게  여기에 있어?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무릎으로 내 배를 때리려 했다. 그에 맞춰 몸을 굴리듯 움직여 아예 몸통 채로 여우년에게 박아버렸다. 서로 뒤엉키며 내 나이프와 여우년의 권총이 바닥을 굴렀다.

먼저 떨어진 내가 고개를 들자 바로 앞으로 머그컵이 날아왔다.  머리를 노리고서. 고개를 살짝 비켜 피했다. 이제부터는 몸싸움이었다. 일어서려는 케이니에게 몸을 숙인 채 책상에 널부러져 있던 커피포트를 들고 다가가 휘둘렀다. 맞지 않았다. 몸을 둘리며  대라고 맞으라고 소리쳤다. 케이니는 그 새 주운 키보드로 막으며 내 발목을 걷어찼고 덕분에 중심을 잡아줄 손이 없어서 앞으로 고꾸라져야 했다. 얼굴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아팠지만 참고서 빠르게 몸을 뒤로 굴렸다. 내 머리가 있던 곳으로 힘이 가득 실린 발이 나타났다. 옆에 구르고 있던 쇠자가 있길래 주워서 바로 그녀의 발에 찍어버렸다. 잠시 주춤한 케이니, 쇠자를 위로, 그녀의 턱을 향해 던지고 일어나면서 자를 피하느라 몸을 뒤고 뺀 케이니를 발로 차버렸다. 이번에는 그녀가 넘어졌다. 다가가면서 책상 위에 구르던 볼펜을 쥐고 심을 들이밀며 눈을 노렸다. 그걸  손이 막아섰다. 동시에 내 가랑이 사이로 발이 들어와 가격해왔고 뒤로 밀쳐졌다.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픈 건 똑같다만.


“한 게임 칠까?”


왜인지 세워져 있던 골프가방에서 채 하나를 꺼내드는 케이니, 채 끝은 금색이었고 손잡이는 매끄러운 가죽이었는데 더럽게 비싸보였다. 비싼만큼 엄청 아플 것 같다. 나도 맞서서 거울을 들었다.

“네 면상 네가 봐봐라. 치고 싶게 생겨먹었나!”


거울을 던지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뒤는 벽이었기에 골프채로 쳐내야 했다. 산산조각나며 깨지는 거울, 그  중간크기의 깨진 조각을 낚아채서 나이프처럼 휘둘렀다. 그녀도 따라 골프채를 계속 휘둘러왔다. 피하고 휘두르기의 반복. 둘  누구라도 실수하는 순간 크게 다칠 상황이었다. 운나쁘게 그 주인공은 내가 되었다. 역시 팔 하나 없는게 지장이 되었는지 순간 비어버린 허리로 골프채가 때려왔다. 생각보다 더럽게 아팠다.


“커헉!”

잠시 주춤해버리는 나, 주먹이 날아와 얼굴을 때리고 발이 날아와 걷어차여 책상까지 밀쳐졌다. 사장 혹은 과장의 자리로 보이는 책상에 꼬리뼈가 부딪히면서 그 위에 등을 대고 누워버렸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흔들리는 시야를 무시하고 다리에 힘을 박차 책상을 넘어트리며 뒤로 굴렀다. 가랑이를 스치는 골프채, 방금건 최소 ‘나이스 샷’이었다.


‘달그락’


구르던  몸에 부딪힌 무언가가 굴렀다. 순간적으로 책상을 훑어보자 검은색의 잉크통이 구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