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0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개판이었다.일단 그 모텔로부터 어찌어찌 진료실까지 돌아오기는 했는데 무슨 일들이 있던 건지 내가 원래 입고 있어야 할 옷들은 바닥에 버려져있고 대신 송혜의 의사가운 아래에 유흥점에서나 입었던 란제리를 입고 있었다. 몸은 누가 씻겨주었는지 더럽지 않았다.
과음, 몰려오는 두통 가득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걷어버리고 맥주병들이 굴러다니는 바닥 속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그런데 신발마저도 내 것이 아니었다. 운동화 대신에 부츠가 놓여있었다. 일단 운동화가 보이지 않아서 그걸 신었다. 맞은편 침대에서는 사라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야 최송혜! 레즈년아!”
몸 여기저기가 욱씬거렸다. 머리가 아픈 건 술때문일거고 몸이 욱씬거리는 건 아마 이 레즈년 때문일 것이다. 이불 밖으로 조금 튀어나온 사라의 팔을 안에 넣어주고 진료실로 나왔다. 늘 앉아있을 것 같은 의자, 그곳에도 송혜는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예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더 이상 찾아봐야 나만 피곤할테고 아직도 머리가 욱씬거려서 그대로 침대에 다시 누워버렸다. 옷도 갈아입어야 했지만 지금은 움직이기가 싫었다. 아, 게을러졌네. 이곳에 온 뒤로 밤에 경계를 할 필요가 없어지자 푹 자버렸고 먹은 것도 대부분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셨더니 긴장감이고 나발이고 걍 나태해지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몸을 억지고 일으키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진료실에 앉았다.
내 몸은 어제 있었던 정사의 냄새가 많이 사라져있었다. 그래도 샤워가 하고 싶었다. 나중에 사라를 데리고 어제 들렸던 목욕탕으로 향하자고 생각해두었다. 총과 나이프를 꺼내 문제는 없는지 한 번씩 손봐주고 창문을 열어 바깥 하늘을 보다가 제자리에서 다리와 팔을 움직여 싸움 자세를 잡아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쨋든 몸을 움직이는 것들로. 분명 오늘도 경기가 있었다. 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래도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음.......”
사라가 신음거렸다. 귀여워서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쳐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 덮어주었던 이불은 다시 저만치 걷어져 있었다.
“역시 하나도 안 어울려. 사라.”
그녀를 볼 때마다 여전히 떠오르는 생각, 안타까움과 함께 지금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 이제는 어느 정도 녹아드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눈에는 여전히 툭 튀어나온 이물질같은 느낌이었다.
“엔......”
자면서도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분명히 좋은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속삭여 답해주었다.
“잘 자, 사라.”
송혜가 돌아온 것은 점심시간 때쯤이었다. 그 때는 늦잠을 자던 사라도 일어난 지라 걸음 운동을 시키고 있던 참이었다. 그년의 손에는 갈색의 종이봉투가 들려있었고 우리의 점심밥이라고 했다. 마무리 운동으로 사라에게 진료실 테이블까지 걷게 시키고 우리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간 뒤 셋이서 둘러앉았다. 송혜가 가져온 점심밥은 옥수수통조림과 햄이었다.
“어디 갔다온거냐?”
“이번에 NRK의 영역일부를 얻었잖아. 이동할 인구들과 영역조사를 좀 하고 왔어.”
“이제 의사에서 정치인으로 전직하는 거냐?”
“그러고 싶지는 않아. 정치는 따로 맡겨둘 사람이 있어.”
솔직히 얘가 정치를 하든말들 그건 관심이 없었다. 그쪽으로는 물어봤자 내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니까. 난 여기서 오로지 싸우는 역할만 담당하면 그만이다. 일이 끝나면 연료랑 식량을 들고 바이바이.
“그럼 이제 여기서 지낸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는 건가요?”
“아직은 아니야. 인원이 적어서 정비도 덜 끝났거든. 그나마 진욱씨가 열심히 해주고는 있지만 오후에는 여기로 돌아와서 사라를 지켜줘야 하니까 좀 걸리겠지.”
“뭔가 죄송해요.”
먹다 말고 사과하는 사라였다.
“아냐. 대신 아델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그러고보니 어제 엔은 어땟나요?”
사라의 질문에 송혜가 어제 있었던 경기내용들을 떠올리며 늘어놓았다. 특히 내가 와인병 하나로 살호를 때려잡은 것을 집중 조명했고 도깨비 잡기는 좀 순화시켜서 전달해주었다. 그대로 말해주기에는 사라의 심기를 생각한 것이겠지.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살인이나 싸움도 싫어하니까. 송혜 나름대로 잘 순화시켜서 그런 내용은 대부분이 빠지게 되었다.
“역시 엔은 대단하네요.”
“맞아. 어젯밤에도 대단했지. 안 그래?”
“닥쳐.”
그리고 나보다 저년이 더 대단했다. 여러 의미로.
셋이서의 점심시간을 마치고 나서는 진욱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짐을 챙기고 세 번째 경기를 위해 움직였다. 챙긴 무기들을 재차 확인하고 송혜역시 의료물품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번 경기부터는 다치는 일이 많을 거라고 했다.
“엔, 조심히 다녀와.”
“올 때 가슴 그대로 돌아올거니까 걱정마.”
손을 뻗어 내 가슴 쪽을 잡으며 사라가 걱정해주었다. 나도 그녀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송혜와 경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딱히 무거운 발걸음은 아니였지만 다소 긴장감이 풀린 발걸음. 역시 난 게을러졌다. 그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깨져버린 생활리듬에 뻑하면 일어나는 싸움들. 그것들을 이곳에서 술로 풀어버린 것도 이유였다.
경기장 장소는 카르디의 어느 한 빌딩이라고 한다. 옛날 회사건물로 쓰던 빌딩인데 1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이였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제일 거슬리는 건 그곳이 케이니의 영토나 다름 없는 곳이라는 거다. 괜히 걷다가 마주할 것 같아서 영역에 발길을 들여놓자마자 짜증이 솟구쳤다. 속으로 제발 그 양키년과 마주치지 않기를 마리아에게 기도했다.
빌딩에 도착하고 송혜와 함께 들어가 곳은 또 다른 대기실, 그리고 역시나처럼 의자 2개가 있을뿐이었고 모니터에 수많은 CCTV의 화면들이 띄워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원래라면 이 열악한 환경에 욕을 퍼붓고 한탄했겠지만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서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다행이네, 바로 전 경기에는 의자도 없었는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송혜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번 경기는‘보물찾기’야. 총 6개의 보물을 찾는 경기인데 개당 10점으로 처리해줘. 약탈은 허용되지만 살인은 안 돼. 대신 죽이지 않는 선에서는 뭐든지 가능해. 2시간이 지나면 경기는 끝나고 그 때 들고있는 보물의 갯수로 점수를 매겨.”
“그 망할 보물들은 뭔데? 코카인이라도 가져다놨냐?”
“루비목걸이, 사파이어 반지, 은해골, 다이아귀걸이, 담배, 책 한권.”
뒤의 2개 빼고는 어떤 곳에도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값어치가 없어진지는 오래고 가치마저도 사라진 물품들이었다. 뒤의 2개는 반대로 가치가 엄청나게 오른 것들. 그래도 다이아귀걸이에는 관심이 있었다. 찾아서 상태가 좋으면 사라에게 걸어줄 생각이었다.
“주의할 점은 중간마다 살호가 있다는 거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는 몰라.”
“좀 귀찮네.”
“건물약도는 안에서 확인하도록 해. 1층에 있으니까 꼭 한 번 봐둬.”
“지도는 없어?”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고개를 흔드는 송혜였다. 애초에 건물 따위에 약도는 몰라도 지도가 있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이번 경기는 어떻게 2시간을 뻐기며 지낼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우선 난 찾는 것 따위에는 약했다. 특히 내 관심이 없는 물품들이라면. 도둑질도 확실히 배우기는 했지만 저지른 게 몇 안되서 실력도 떨어지는 쪽이었고 애초에 아빠새끼가 이쪽으로 가르쳐준 게 잘 없었다.
반대로 약탈은 내 주특기였다. 싸워서 이기고 뺏는다. 이것만큼이나 쉬운 방법이 없었다. 단점으로 내가 참가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지만 물건과 달리 이쪽도 내 주특기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모두 아빼새끼가 훈련이라 말하며 고문시키다시피 가르쳐논 덕분이다. 그런고로 이번 경기는 약탈을 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중간에 살호를 만나는 것은 그 때 상황을 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참가자, 준비해주세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중 직원이 들어와 말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었다. 송혜는 내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대충 받아주고 직원을 따라 건물로 향했다.
빌딩은 1층부터 3층까지 빼놓고는 유리들이 멀쩡한 건물이었다. 중간마나 흠집이 나 있거나 구멍이 있었지만 아래처럼 아예 박살들이 난 것은 없었다. 주로 아래층에서 많은 싸움들이 있었나 보지.
“여기서 대기하셨다가 신호탄 소리가 들리면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의 뒤에 서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봐, 다른 참가자들은 누군지 알 수 없는거야?”
그러고보니 구역들마다 누가 나오는지 알림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 무표정한 직원에게 물어 보았지만 무시가 돌아올 뿐이었다. 싸가지없는 새끼, 알려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직접 마주하라는 소리인데 만약 망할놈의 케이니나 두영이 참가했다면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과연 이번에 참가할까. 그런 혼파망 사이속으로 건물 가운데서 커다란 신호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친 몸과 함께 빌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떠 있는 낮인데도 이 안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1층은 로비였다. 몇몇개의 기둥들이 위층을 지탱해주고 직원들이 드나들었을 입구들은 모두 부서져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안내를 해줄 카운터는 테이블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모니터들이 나뒹굴고 컴퓨터들도 아작이 났다. 바닥에는 청소조차 하지 않았는지 핏자국들이 엄청 늘어져 있었고 벽에도 수많은 싸움의 흔적들이 흥건했다. 난장판 같은 장소, 우선 가운데로 향했다. 이쯤이면 다른 참가자 놈들은 그 ‘보물’이라는 것을 찾으러 바삐 발걸음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아주 작지만 빌딩 안에서 울려대는 발걸음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위로 향하고 있었다.
급히 쫓지 않고 여유를 가졌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은 40분이 남았을 때, 그 쯤이면 반 이상은 찾아놓았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할 것은 빌딩의 약도를 찾아 건물이 어떤 구조인지를 외우는 것이었다. 부서진 엘리베이터, 깨져서 바닥에 조각나있는 형광등, 모니터처럼 나뒹구는 전화기들, 썩어버린 식물과 조각나있는 화분, 정말 개판인 이곳에서 먼지가 덮인 약도를 찾을 수 있었다. 벌써 누가보고 간 것인지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뒤의 권총을 뽑아들고 천천히 약도를 둘러보았다.
약도는 글씨들이 조금씩 지워져 있기는 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우선 1층은 내가 다니는 드넓은 로비와 양쪽 건물 가운데들에 엘리베이터와 작은 공간이 있고 정중앙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2층.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들이 적혀있었다. 3층부터는 모두 부서별 사무실들과 회의실들이 줄지었다. 6층에는 쌍둥이빌딩을 오갈 수 있는 다리가 놓여있고 10층에는 사장실과 다른 고위인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대충 약도보는 것을 마치고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숨을 곳도 대충 정했고 이제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만 하면 끝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최근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난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참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내가 죽여버릴 놈들의 리스트. 1순위 케이니, 2순위 두영, 3순위가 이 경기들을 즐겁게 보고 있을 섹터장. 송혜의 목표이기도 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죽여버려야지. 대강 정리를 끝냈다.
아무리 사라의 애교와 부탁이 곁들여져 있다지만 내가 왜 이딴 일을 하겠다고 했을까. 그 때의 난 무슨 정신이었던 걸까. 이미 되돌아본들 늦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사라의 부탁이니까.
‘카아아악!’
엉덩이 붙이고 조용히 쉬려고 했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귀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눈을 뜨고 옆을 보니 로비에서 살호가 이빨을 보이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마리아님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케이니와 두영대신에 저 괴물새끼를 만나게 해 준 것이다. 시발.
지친 몸을 강제로 일으키고 나이프를 들었다. 왜 1층부터 3층들이 개판인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끄럽다. 잡놈새끼야.”
그래도 첫 번째로 살호와 마주했던 것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그 때처럼 와인병이 아닌 무기를 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목을 풀면서 자세를 갖추었다. 이번에도 살호의 턱대가리만을 노려보았다.
‘카아아악!’
내가 일어선 것을 도전장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바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가리를 조금 숙여서 턱이 묘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나도 녀석에게로 당당히 걸어갔다. 어떻게 공격을 해올지는 이제 뻔했다. 조금 다리게 행동이라도 했다면 죽이는 맛이 들었을 텐데 그런 지능은 없는지 두 앞다리를 벌리며 덮치려 했다. 그래서 지겨워졌다. 바로 틈 안으로 파고 들어가 나이프로 붉은 살을 깊게 찔러넣고 쑤셔주었다. 터져버리는 살과 함꼐 힘을 잃고 쓰러지려는 살호의 시체를 옆으로 흘려보냈다. 바닥에 쳐박힌 괴물은 팔다리를 조금 움직였다가죽어버렸다. 너무도 식상하게.
“개병신같이 만들었네.”
이걸 만들었다던 ‘크레이터’도 상당히 병신이었다. 보통 괴물을 만들면 스펙타클하게 만들텐데 겨우 이 정도라니. 거기다 크립톤이라고? 그 녀석들만도 못했다. 적어도 이 놈처럼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을 거둬들였다. 식물형 크립톤, ‘시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병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건 실패작같은 게 아닐까. 애초에 목적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만드는 괴물을 일개 섹터에게 넘긴다? 세상을 개판으로 만드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미 이뤘기 때문에 여기에 납품할 이유가 없었다. 뭐하는 집단일까. 그래도 나하고는 접점이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사라와 함께 부산으로만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크게 연관되고도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저년은 어떻게 할까. 내가 살호와 싸우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와 있었다. 우리의 큰 싸움소리에 자신의 발소리가 묻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난 똑똑히 들었다. 기둥들 사이로 움직이면서 고양이새끼 마냥 걸어오며 나의 뒤쪽에 숨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
몸을 빠르게 돌려 글록을 겨누었다. 기둥 옆, 조그맣게 모습을 드러낸 발쪽으로 한 발 쏴주었다.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급히 모습을 숨기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게 그녀의 실수였다. 이미 달려든 내가 목덜미를 잡아채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를 보는 여자, 아는 얼굴이었다. 재성의 팀에 있던 미유키라는 일본년.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하려던 걸 멈추고 말을 건넸다.
[여기서 뭐하냐?]
난 공격을 멈췄는데 이 년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칼을 들고 나를 겨누지만 먼저 걷어차 버려 손목을 잠시 얼얼하게 만들고 뒷꿈치로 가슴쪽을 찍어내렸다. 정통으로 맞은 미유키는 가슴부분을 잡으며 쿨럭거렸지만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그 거지새끼를 생각해서 약하게 때렸으니까. 아니면 얘가 더럽게 약한 것이다.
[한 가지만 묻는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 내가 수도없이 보았던 눈빛, 그게 마음에 들었다. 몸이 달아올라 벌써 흥분하려 하고 있었다.
[보물 찾았니? 못 찾았니?]
[잠깐만요. 난 당신한테]
동문서답하길래 정신차리라고 머리를 한 대 쳐주었다.
[한 가지만 묻는다고 했는데 그게그렇게 어려워?]
[잠깐.....말좀.]
또 다시 동문서답. 아무리 그 거지의 팀원이라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난 그렇게 인심이 좋은 여자는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고 바닥과 또 마주하게 해주었다. 점점 시동이 걸리고 있었다. 벌써 나의 머리는 이 여자를 죽일 갖가지 방법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규칙 때문에 죽이면 안되는데도.
[보물에 관해서만 물었어. 왜 말을 못 알아먹는 거야?! 사람한테 사람말을 하는데 왜 못 알아먹냐고!]
[최송혜!]
세 번째 동문서답. 하지만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내 친구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잠시 얘기를 들어볼 생각이 들었다.
[송혜가 보냈냐?]
미유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건가, 대강 알 것 같았다. 이 썅년이 말을 해줘야지. 하마터면 그녀의 또다른 동료를 불구로 만든 뻔했다. 잡던 머리를 놔주었다. 미유키는 겁을 잔뜩 먹고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피는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상당히 세게 가격했으니 배에는 멍 하나정도는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난 미유키에 대해 아는게 없었고 그녀 역시 송혜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기에 내 잘못은 없었다. 나는 두 다리를 쪼그려 앉아 잠시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주기로 했다.
[송혜씨가 재성오빠와 얘기했고 당신을 도우라고 했어요.]
중간에 미유키가 기침을 쿨럭대었다. 그나저나 기가차는 내용이네. 날 도우라고?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니면 내 팔하나가 없는 것을 보고 판단한 것일까. 송혜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자.
[뭘 도우라고 했는데?]
[보물을 찾는거요. 이 경기는 제 주특기니까요.]
[그래?]
정말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럼 됐으니까 어디 들어가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숨어있어. 보물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못 들었어? 꺼지라고.]
한 번에 말귀를 못 알아먹는 그녀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저만치 밀어버렸다. 사람찾는 것말고 물건을 찾으라는 송혜의 배려였지만 필요없었다. 난 이미 ‘약탈’로 방향을 잡았기에 오히려 흐름을 끊는 방해물밖에 되지 않았다. 엿이나 먹으라지.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거든 앞으로 이런 방해짓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둘 예정이었다.
미유키는 나를 한 차례 살피다가 로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알아서 잘 숨으리라고 생각하고 나도 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경기는 이제부터였다.
어디부터 찾아볼까 하다가 왼쪽건물 2층부터 뒤져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아서 몸소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부서져서 엎어져 있는 비상문을 밟고 지나 휘어진 난간이 붙은 계단을 올랐다. 손에는 나이프대신 글록을 들고 올라가 2층을 폐점이 된 커피숍과 작은 편의점이 하나, 끝쪽에는 작은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부터 책들이 난잡하게 떨어진 그곳, 저기구나 하고 안으로 향했다. 귀를 활짝 열어두고서 걸음을 옮겼다. 많이 어둡기는 했지만 점점 그림자에 적응된 눈이 어둠을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6개의 보물 중 하나가 분명히 책이라고 했었다.
‘툭.’
결과는 적중이었다. 안쪽에서 책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멀지 않았다. 바로 발소리를 죽이고 글록을 들고서 몸을 숙이며 소리의 방향쪽으로 다가갔다. 마침들려오는 걸음 소리는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책장에 기대 몸을 숨기고 소리에 집중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리고 사람의 신발이 보이자마자 몸을 날렸다.
“까꿍.”
내가 놀래키는 목소리와 함께 마주했다. 전혀 안면이 없는 남자. 그는 자신의 허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했지만 이미 한참이나 늦었다. 내가 먼저 권총을 들고 무릎에 한 발 쏜 뒤 어깨를 걷어차 주었다. 그는 고꾸라지며 무릎을 부여잡고 고통 가득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총이라도 꺼내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아무리봐도 싸움이라고는 일절 경험이 없어 보였다. 무릎도 아예 총알을 박아버린게 아니라 옆쪽을 쏴서 상처를 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글록의 총구를 그의 어깨에 맞닿게 했다.
“잠깐! 살인금지야!”
갑자기 규칙을 운운하는 남자. 이거 완전히 꼴통인가.
“안 죽여, 새꺄.”
“내 무릎을 쐈잖아!”
“그거 가지고 안 죽어 병신아! 총알이 박히기라도 했냐? 엄살부리지마.”
정신차리라는 의미에서 뺨을 때려주었다. 그대로 가슴위에 올라타고 다시 총구를 어깨에 겨누었다. 그의 눈빛이 두려움 가득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픈 건 싫나보다.
“딱 하나만 묻는다. 보물 찾았니?”
“차, 찾았어!”
드디어 한 번의 질문에 동문서답없이 대답해주는 녀석을 만났다. 갑자기 이 병신이 마음에 들어지기 시작했다. 첫 단추부터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어딨어?”
“여, 여기.”
“존나 기특한 꼬추새끼.”
그가 넘겨준 것은 붉은색 커버의 책이었다. ‘푸른색 소녀’라고 적힌 책인데 커버는 완전히 다른 색이었다. 좀 맞추던가 하지, 누구의 디자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엉터리였다. 글쓴이는 ‘작가’라고만 적혀있었다.
책을 받으려다가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이 책을 쥘 손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왜 안받지 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의 등에 짓눌린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 됐네. 올라탔던 그의 몸에서 일어났다. 권총은 그대로 겨눈 채.
“일어서.”
순순히 일어나준다. 맞은 무릎 때문인지 자세가 조금 흔들렸지만 늦지않게 일어섰다.
“옷 다 벗어.”
“네?”
“다 벗으라고!”
위협으로 한 대 후려갈겼다. 대답을 빨리해주는 건 고마운데 행동이 느려서 다른 의미로 답답했다. 그는 맞은 곳을 잊은 채 빠르게 옷을 벗어갔지만 바지에서 계속 막혔다. 결국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발로 차버리고 보물과 가방을 뺏고서 도서관을 나왔다.
2층부터는 높은 계단이 나를 반겼다. 잠깐이지만 그 뺀질이가 계단에서 날 엿먹이려 했던 함정들이 떠올랐다. 개새끼. 층마다 다 뒤적거릴 필요 없이 계속 올라갔다. 한 명쯤은 얻어 걸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쭉 올라가 6층까지 올랐고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지친 몸이었는데 계단을 올라온다고 다리가 아팠다. 여기는 전기도 흐르면서 참가자들을 배려해 만든 엘리베이터 하나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니. 최소한 에스컬레이터라도 두던가. 참가자들에 대한 매너가 없었다.
10분 정도를 쉬었다가 다시 일어섰다. 아직 보물을 하나밖에 얻지 못했고 최소한 3개는 더 뺏어야 했다. 1등을 목표로 해야 하니까. 가방끈이 느슨해져서 꽉 조여메고 빈 팔로 흘러내리려는 끈은 잘라서 다른쪽에 대충 묶어두었다. 준비를 마치고 다시 올라가려고 했던 그 때, 그럴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바로 다리 너머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쪽으로 건너오려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낚시를 해볼까.
신고있던 신발을 하나 벗어서 근처에 널부러트리고 가방은 열어둔 채 바닥에 놓은 뒤 그 옆에 적당히 누웠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도록 권총을 꺼내 위로 한 발 쏴주고 얼굴은 바닥에 박았다, 준비는 끝, 이때다 싶을 때 추가로 두 발을 쏘고 총 역시 내 손 근처 아무데나 밀어버리고 기다렸다.
총성이 울리고 난 뒤, 너머에 있던 누군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달려오지는 않았고 대충 벽같은 데나 붙어서 엄폐를 한 것이다. 꽤나 조심성 있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함부로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았고 시간이 더 지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 확인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내 잔머리가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다만 누군가는 바로 나를 건드려보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조심성 더럽게 많네 진짜.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는지 내 몸을 여기저기 만졌고 어깨까지 두드려보았다.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애써 기절한 척을 했다.
“기절?......”
여자의 목소리였다. 카르디인가. 그렇다면 생각하며 행동하자. 그녀도 ‘A’급이라고 했으니 기초는 몸에 베여있을 것이다. 세밀히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가 어디로 갈지, 혹은 뭘 할 지 머리로 그렸다. 가방을 줍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히 실눈을 뜨니 여자의 뒷모습이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책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눈 앞에는 발목이 보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손을 뻗어 그 발목을 세게 낚아채냈다.
“가녀리네.”
“무슨!”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잡아당겨서 넘어트리고 팔을 잡아 뒤로 꺾었다. 겨우 이런 작은 틈으로 한순간에 낙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게 제대로 확인했어야지. 바보야.”
“놔!”
“그런다고 놔줄거면 내가 거머리같이 땅에 박혀있었겠냐?!”
더욱 세게 팔을 꺾으며 엉덩이로 허리를 짓눌렀다. 여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경쾌한 리듬이었다. 이대로 부숴버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보류했다.
“질문 들어갑니다. 보물 찾았어요? 못 찾았어요?”
“그런 거, 말할 것 같아?”
“도대체 시바 그런 똥고집들은 왜 부리는 거야? 그렇게 존심 챙기다가 뒤지거나 병신꼴 되는 거 못봤어?”
“말 안 해.”
한숨이 나오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말 하지마. 그냥 내가 알아서 뒤적거릴게.”
그대로 잡았던 팔을 온 힘으로 짓눌러 부러트렸다. 뼈들이 삐걱대며 으스러지는 소리들과 함께 펜을 부러트리는 듯 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 놈의 소음공해. 엄청 시끄러웠다. 규칙만 아니었다면 머리나 구멍을 내거나 가슴을 갈아버려서 죽여버렸을 것이다. 팔을 부여잡고 날뛰는 그녀의 몸을 밟은 채로 수색해보았다.
“가만히 좀 있어. 발정났어? 찾기 힘들잖아!”
배려깊은 말을 해보지만 듣지 않았다.
“남은 팔도 부러트려줄까?”
결국엔 남은 팔을 걸고 협박해서야 몸부림이 적어졌다. 손을 이러저리 넣으며 찾다가 허벅지의 주머니에서 다이아 귀걸이를 찾을 수 있었다. 두 쪽이 아닌 한쪽 뿐이었지만 아직 깨끗한 것이었다. 사라에게 정말 어울릴 것 같았다. 그대로 가방을 집어 넣어둔 뒤 메었다. 이 여자에게서의 볼일은 모두 마쳤다. 보물도 얻고 팔도 부러트려 놨으니 앞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도록 했으니까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여자는 아직도 아픈 소리를 내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눈을 나를 보는데 그 속에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왜? 분해? 지가 속아놓고 지랄이야.”
“죽일거야. 반드시!”
신음을 내면서도 저런 말은 잘한다. 참 기특하다.
“그래? 그럼 나도 다음에 너 만나면 죽여버릴거야.”
시답잖은 한마디를 던져주고 걸음을 옮겼다. 남은 놈들을 찾아내어야 했다. 이쪽 건물은 이제 이 윗쪽만 찾아보면 끝이었다. 바로 계단에 올라 10층까지 층마다 흔적이 없는지 둘러보면서 올랐다. 꼭대기 층인 이곳에는 사장실과 바로 앞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 너머로 그 정치인이 있다는 빌딩이 아주 잘 보였다. 그것말고는 없었다.
다른 방들은 대부분 창고들이었는데 옛날 자료들이나 이상한 물건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모두 먼지투성이였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여러 개 있었다. 새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찾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많이 묵혀있던 먼지들 사이로 누군가가 지나가 흔적처럼 쓸려나간 자국이 있었고 바닥 역시 미세하지만 신발의 흔적도 있었다. 이 근처에 누군가 있었다.
글록을 꺼내들고 더 깊숙히,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안에 있을 게 호랑이인지 오랑우탄일지는 모르겠지만 뭐든지 잡으려면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맞았다. 이미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있을거라고까지 확신한 것도 아니었다. 모 아니면 도겠지. 이미 다른 방으로 갔을 수도 있지만 나의 감은 모두 여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리에 집중했다. 그 어떤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흔적의 끝은 보안실이었다. 문의 자물쇠는 이미 오래전에 부서진 것이었고 철문은 반쯤 찌그러진 채로 조그만 틈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 안으로 들어간 흔적들이 잔뜩이었다.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온 흔적도 없었다. 이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문을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