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9
도깨비잡기로 한다는 경기장은 화천에 위치해 있었다. 가운데의 높은 탑 건물에 근접해 있는 곳이었는데 바로 전에 했던 ‘생존’과는 달리 작고 근소한 곳이었다. 기껏해봐야 공장하나 크기정도의 건물이었고 관중은 없으며 참가자들만이 모여있을 뿐이었다. 관중들은 아마 저 천장에 붙은 CCTV들로 볼 수 있나보지.
안은 간략한 구조였다. 중앙에 내가 모르는 기계하나가 놓여있고 육각형 모양으로 테이블들이 놓여져 있었다. 안내자는 3명이 전부. 심지어는 대기실이라 할 만한 곳도 없었다. 그냥 공장 각각의 문 앞에서 기다리면 되었다. 그 소리는 바로 옆에 케이니와 두영이 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동을 통제했기에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닥치고 기다려야 했다.
“여기는 의자도 없냐?”
기다리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할 무렵 점점 다리가 아파왔다. 언제까지 날 서있게 만들려는 건지 원. 이런거 원래 송혜가 챙겨야 하는거 아닌가. 엠병할! 이제는 다리까지 아파야 하다니. 바로 송혜에게 따지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돈이 없어서 들고 다니는 의자를 살 여유가 없다고 하겠지. 세상이 뒤집어지고 돈은 완전히 의미가 사라져서 써봐야 장작대용으로 끝을 맺을 줄 알았건만. 개썅우라질.
불을 피우겠다고 수표다발을 태웠던 행동이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나서야 후회되었다. 그냥 내가 돈을 벌어다 주는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생각을 접었다. 여기에는 사람을 죽여달라는 의뢰따위 없을 것이다. 있었다면 벌써 송혜가 거지일 리가 없었다. 젠장,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이것마저도 그만두었다. 얼굴 다 팔린 내가 그딴 짓을 했다가는 이미지타격이라는게 있을 거니까. 심각하게 사냥이나 마약팔이를 고민했다. 밖에서는 동물들을 잡아와 여기에서 팔면 되고 안에서는 뒷골목이나 남아있는 깡패새끼들을 두들겨 패버린 뒤 숨겨둔 마약들을 뺏어와 팔아버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들키지 않게. 좋아, 이걸로 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송혜에게 엎드리라고 한 뒤 등 위에 앉았다. 의자가 없으니 이 정도 대우는 당연했다. 이제 머릿속으로 이번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고민했다. 우선 나올 참가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리더’의 위치를 잡은 이들, 두영이나 케이니 같은 놈들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건 힘싸움이 아닌 머리싸움이 주였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 그걸 케이니는 확실히 안다. 그러니 처음에는 떠보는 식으로 싸움도, 머리도 어중간한 놈을 내보낼 것이다.
송혜가 점점 허리가 아파온다고 했지만 무시했다. 나는 이년 때문에 참가하고서 승리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녀가 날 방해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하는 자세로 도깨비일 때와 사람일 때 어떻게 이겨먹을 것인지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중 직원이 다가와 들어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줄 때쯤 생각을 마쳤다. 어느쪽을 받게되든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규칙이라는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 꼴리는 대로 해도 충분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문들로도 빛에 가려진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총 6명, 그 중 두영과 케이니는 없었다. 두영도 케이니와 같은 생각으로 날 떠보려는 거겠지. 나는 다 보여주고 그들은 정보를 얻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정보들을 토대로 날 족치려들 것이다. 그래서 어울려주기로 했다.
참가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는 얼굴은 거지와 같은 팀원이었던 ‘미유키’이라는 여자뿐이었다. 나머지는 잡놈들이라 딱히 기억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 모두 나를 시선 모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 창년 처음봐?”
아니꼬와서 한마디 뱉자 모두 고개를 돌려버렸다. 분위기로는 내가 이긴 듯 했다. 일단 이것만으로 1점을 먹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뒤, 얼굴 모를 직원이 들어오더니 멋대로 설명을 시작해버렸다.
“첫 번째 게임 참가자 확인하겠습니다. 강남 하성주, 화천 미유키, 카르디 강지혜, 4구역 엔, NRK 나유한, SRK 테오 게르니 맞습니까?”
한명도 빠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귀찮아서 빤히 쳐다만 봐주었다. 어차피 인원이 나 밖에 없는데 뭘 확인할게 있다고. 나는 지겹도록 들었던 이름들을 대충 흘려버리고 빨리 이 역겨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사회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모두 뒤를 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됐다고 하시기 전에 고개를 돌리시는 분은 탈락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순순히 따랐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탈락이라는 데 어쩔 수 있나. 아닌가, 빨리 퇴근할 수 있으니까 좋은건가. 그러다가 이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관뒀다. 젠장.
아무래도 여기서 그 도깨비라는 걸 정하는 듯 했다. 다른 놈들은 자신이 사람일지, 도깨비일지에 큰 의의를 두겠지만 난 어떤것이 걸리든 상관없었다. 뭐가 되었든 내가 할 행동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되었습니다. 모두 돌아서 주시고 얼굴을 확인해주십시요.”
직원에서 진행자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진행자는 우리가 모두 서로를 바로보게 했지만 정작 그녀는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나를 모두를 한 번씩 둘러보았다. 얼굴 쩌는 남자도 있었고 예쁜 애들도 있었다. 특히 부자동네 애들. 그 중에서 내가 신경쓴 쪽은 미유키였다. 이 일본 여자도 거지의 팀이었다. 가능한 불구로 만들 지경은 피해줘야 했다. 귀찮네 진짜.
“이제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낮입니다. 모두 자유롭게 행동해주십시요.”
“야, 잠깐 질문이 있는데.”
게임을 시작한 지 겨우 첫 번째 밤. 마지막으로 확인차에서 한 가지를 물었다. 다른 의미로는 내가 던져주는 예고편이었다.
“자유롭게 행동하라는 건 몸을 움직이거나 싸돌아다녀도 상관없지?”
“공장 안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좋아, 마지막 확인도 끝났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무기는 금지되었지만 내게는 주먹 하나와 두 발이 있었다.
“미유키.”
[네?]
일본어네.
[남자친구 있어?]
일단 친해지기 위한 한 걸음. 미유키는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아뇨.]
[한국말 할 줄 알아?]
[조금이지만 할 수 있어요.]
[그래?]
우리의 대화에 나머지 인원들이 집중을 했다. 아주 간단한 일본어들이니까 몇몇은 알아먹었을것이다. 어차피 알아봤자 쓸모없는 대화겠지만.
“그럼 잠깐 딸치고 있어.”
[그게 무슨?]
경고해주고 빠르게 움직였다. 제일 먼저 여유 가득히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은 강남의 성주에게 주먹을 선사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그는 상당한 반응속도를 보여주면서 뒤로 한 걸음 물렀지만 예상을 해두고 있던 행동이었다. 그대로 반동을 이용해 힘을 싣고 발을 올려 턱을 후려치고 이어서 관자놀이를 갈겨주었다. 꽤나 중요한 곳들을 맞아서 비틀거리는 그의 넥타이를 잡아 끌어당긴 뒤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SRK의 외국인에게 던져버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름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싸울 준비를 마친건 카르디의 여자와 미유키뿐이었다. 미유키는 예상 외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달려들어 밀쳐버렸다. 그녀가 이 싸움에 껴 있으면 거슬렸다.
“이 미친 여자가!”
바로 주먹이 날아드나 싶었는데 대신 작은 커터칼이 날아들어왔다. 무기금지 아니였나? 슬쩍 직원을 보니 그녀는 작게 미소지으며 만족스럽게 웃고만 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커터칼은 사무용품이다 이건가. 좋네. 칼을 옆으로 피하고 손목을 잡아 꺾어버리며 무릎을 걷어찬 뒤 그녀가 놓친 칼을 공중에서 캐치하고 어깨를 찍어주었다. 일어나는 소음공해. 얼굴을 세게 때려서 닥치게 만들었다. 일단 3명.
“이봐, 진행자! 이거 반칙.”
끝까지 항의하지 못했다. 말끝을 맺기 전에 목을 쳐서 잠깐 숨을 못 쉬도록 만들고 그대로 얼굴을 잡은 뒤 벽까지 밀어 쳐박아 버렸다. 얼마나 강하게 밀었는지 그의 머리가 마주한 가벽이 찌그러졌다. 4명. 마지막은 외국놈이었다. 영어에는 재주가 없으니 부디 한국어가 유창하길 바랬다.
“야, 외국놈. 도깨비야?”
"Fuck asshole!“
통할 것 같지가 않아서 여러대 걷어차 주었다. 이로서 제대로 행동이 가능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미유키는 딱히 더 제압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모습에 겁을 먹은 건지 구석에 잘 찌그러져 있어 주었다. 참고로 나는 도깨비가 아닌 선량한 사람이었다.
“야, 진행자.”
“네.”
“도깨비 잡았어.”
“......사람측의 승리입니다.”
승리의 증거로 진행자의 선언을 듣고 내 멋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내 차례는 끝이 났다. 송혜는 밖에 있던 작은 TV로 안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안에 있던 직원과 같이. 이번 경기에 대해 관중들의 불만이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설마 규칙의 틈을 파고들 줄이야. 머리쓰는건 전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몸을 썼네.”
그렇다. 억지같아 보이지만 나의 행동은 전혀 규칙위반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규칙 안에서 행해진 정상적인 방법들이었다. 나는 그저 이 규칙의 허술함을 노렸을 뿐이었다. 첫번째로는 싸움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도깨비를 제압하라고 했을 뿐 꼭 찾아내서 제압하라는 말이 없었으며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제압하지 말라는 규칙 따위가 없었다. 그러니 도깨비는 누군지몰라도 내가 눕혀버린 5명 중에 한 명이 있던 것은 맞을 테니까 잡은 것으로 인정이 된 것이다. 그게 내가 이용한 틈이었다. 어떤 규칙이든 그 말대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항상 틈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도 너처럼 머리에 뇌 쳐박혀 있거든!”
“품질이 다르잖아.”
“그래! 시발년아. 네 가슴이랑 뇌는 나랑 다르게 1등급만큼이나 품질이 쩔어주겠지. 근데 이거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내가 비록 가슴도 작고 머리도 딸리는 바보라도 침대에서는 퀸이야! 알아?”
“여기에 침대 없는데.”
“야, 들어와. 시발! 들어와!”
얘기하다가 화가 나서 주먹을 들고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송혜는 말보다 몸으로 대화하는 게 잘 들을 것 같았다. 비록 나이프와 총은 없지만 몇 대는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여러 번 날렸는데 가볍게 피해버리고는 나는 진정시키려 들었다.
“분노조절부터 고치는 게 낫겠어. 그렇게 자주 화만 냈다가는 몸에 좋지 않아.”
“니 아가리부터 고쳐줄게.”
다리도 뻗어서 머리쪽을 노렸다. 그것도 몸을 필요한 만큼만 숙여 피해버린다. 애꿎은 발이 옆에 있던 부서진 가로등에 박혀버렸다.
“엔, 진정하고 다음 게임 준비해야지.”
“니가 나가.”
송혜는 2번째 게임에도 날 내보내려 했지만 거절했다. 대신 문을 가르키며 나의 뜻을 당당하게 밝혔다. 이 년도 분명 참가자로 함께 왔는데 나만 혼자서 구를 수는 없지. 그리고 양심이 있다면 몇 게임 정도는 나가줘야 하는게 맞지 않나. 나만 나가게 하는 건 내가 좆같았다. 누가 본다면 힘없는 의사를 내보내는 쓰레기년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아니었다. 내가 두 팔 멀쩡히 달고 ‘서울의 마녀’라는 간판을 달고 다녔던 시절, 날 보내버릴 뻔한 적이 있는 년이었다.
“음.....알았어. 이번 게임은 내가 나갈게.”
“저 TV로 화면 나오는 거지?”
“팝콘줄까?”
대신 술이나 달래서 포도주 하나를 얻었다. 덤으로 오프너까지 받아서 마개를 열고 바로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기대한 맛은 달달하면서 확 느껴지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가글조차로도 사용이 불가능한 하수구 맛이었다.
“이런, 시발!”
“입장하시겠습니다.”
완전히 병신같은 하수구 맛이라 왜 이딴걸 들고 왔는지 욕하려고 했는데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시발. 짜증나서 그냥 와인을 그대로 쳐 마셨다. 존나게 맛없네.
옆에 있던 작은 책상같은 것을 가져와 의자로 삼아 앉고 TV를 보았다. 조금 뒤, 안으로 들어간 송혜가 보였다. CCTV는 위에서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얼굴들은보였다. 먼저 두영이나 케이니가 참가했나 봤는데 둘 다 두번째 게임에서도 출전하지 않았다. 모두 다른 이들을 내보냈을 뿐이었다. 아까처럼 직원이 이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화면만 나올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단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건 맞는 듯 한데 어디쯤까지 소개를 하고 있는지 가늠되지 않아서 더 지루해져 갔다. 하수구 물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앞 맛, 뒷 맛 둘 다 더러웠다. TV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일까. 이런 불만들을 내뱉는 사이 모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도깨비를 정하는 시간이었다. 직원놈이 가운데서 돌고 돌다가 마침내 한 명을 골랐다. 도깨비는 ‘송혜’였다.
“도깨비가 선택되었습니다. 모두 고개를 돌려주십시요.”
소리는 내뱉지 못하던 TV가 갑작스럽게 음성을 지원해주었다. 마이크가 있었는데 잠깐 고장이라도 났었나 보네. 지금이라도 들려서 다행이었다. 만약 계속 들리지 않아서 움직이는 화면만 보고 있었다면 하수구만 마시다가 화나서 TV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나만 왕따되는 기분은 싫었다.
“첫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행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첫 낮은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이나 말이 없었다. 모두 조용히 서로를 확인할 뿐이었다. 아까 나처럼 행동할 놈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 누구도 따라하지 않았고 송혜도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냥 빨리 끝내고 오지, 왜 질질 끄는건지. 음성이 나오는데도 다시 지루해졌다. 하수구는 진짜로 맛이 없어서 중간에 먹기를 포기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 눈을 감아주십시요.”
진행자의 말을 따라 모두 눈을 감았다.
“도깨비는 죽일 상대방을 지목해주세요.”
송혜는 고개를 들었지만 그 누구도 지목하지 않고 넘겼다. 첫 번째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나와 달리 이번 게임은 정말로 조용했다.
“밤이 지나갔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모두 자유롭게 행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저 여자야.”
이제 맞이하는 두 번째 낮, 그런데 바로 지목이 나왔다. 강남의 김원호라는 남자가 송혜를 지목한 것이다. 표정은 이미 범인을 잡았다는 확신이었고 자신이 게임을 이겼다는 것 마냥 두 어깨도 올라가 있었다. 송혜는 침착하게 물었다.
“증거는?”
“아까 당신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어. 난 귀가 좋거든.”
증거로 소리를 제시했다. 터무니없는 증거같기도 하지만 정치질하기에는 먹힐만한 증거였다. 하지만 표까지 얻는 것은 부족했는지 모두가 눈길만을 움직일 뿐 마녀사냥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 답답함에 조금 화가 난 듯한 남자가 더욱더 소리를 높여 말했다.
“모두 내 말을 듣는 게 좋아. 난 저번 ‘아델리’에서도 도깨비에서 두 게임 모두 참가해 소리로 가려냈어. 이기고 싶지 않은 거야?”
평가하자면 전형적인 찐따같은 정치였다. ‘사건’이전에 활동하던 쓰레기같은 윗대가리들도 이것보다는 훨씬 잘했다. 차리리 소리를 듣지 않는 게 더 흥미진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하수구병을 TV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송혜가 어떻게 대처할지 흥미가 있어서 참기로 했다. 그의 한심한 정치질이 끝나고 송혜에게로 발언권이 넘어갔다.
“미안하지만 잘못 짚었어. 난 아니야.”
대놓고 자신이 도깨비라고 말하고 있었다. 표정에는 긴장감이 잔뜩 서렸고 말에도 떨림이 있었다. 살인마 새끼가 제 발 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까지 내놓고 있는 정도였다. 정말 송혜에게 어울리는 대처였다. 이걸 놓칠세라, 남자는 바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아니면 어쩌지?”
화천의 일광이 불안감을 표했다.
“진짜라니까! 불안하면 거짓말 탐지기까지 써 보던가. 이 여자가 아닐 수가 없어. 표정 안 보여?”
일광의 불안감 섞인 발언에도 그는 기세를 흐리지 않고 말했다. 덕분에 모두의 의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확신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점점 얘기는 과열되다가 낮이 끝나기 직전에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자는 의견쪽으로 기울었다. 송혜는 그 의견에 대답을 얼머부리면서 마지 못해 받아들였다. 이미 원호라는 남자는 표정에 기세가 가득이었고 송혜는 조금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못 숨기지. 완전히 못이 박혀버린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자는 의견에 5명이 동의하게 되었고 그 표를 받아들인 직원은 그 기회를 주었다.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을 송혜에게 사용한 것이다. 직원이 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직원들과 함께 여러가지를 들고서 들어왔다. 모니터와 몸에 붙이는 패드와 선들. 진짜 거짓말 탐지기였다. 저건 또 어디서 구한거래. 바로 송혜에게 패드를 붙이며 모니터와 기계들을 작동시켰고 화면에 잔잔한 선들을 긋는 장면이 나타났다.
“바로 질문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준비는 끝났다. 송혜가 질문을 받았다.
“......네.”
확실히 대답이 늦었다. 그리고 자신도 없어 보이는 대답이었다. 그에 비해 원호라는 남자는 자신의 낙승이라며 좋아라 하고 있었다. 나약한 동물을 사냥한 것처럼.
“원호씨, 질문하십시요.”
“하! 당연하지. 질문할게. 어이, 4구역 의사양반, 너지?”
질문이 들어갔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서 규칙역시 지킨 선이었다. 저 새끼, 나름 말 돌려서 하네. 누구든지 저 상황에서 ‘너지?’라고 묻는다면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 것이다. 모두가 바라보는 속에서 선들이 움직이며 송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요.”
아니라는 대답. 그리고 결과는......잔잔한 선들이 대신해주었다.
“아니라고?”
그 어떤 선들도 요동치지 않았다. 모두 송혜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답만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직원의 표정에도 놀라움이 가득이었다. 그녀 자신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가송혜를 바라보는데 여전히 잔잔한 선들이었다. 기계고장도 아니었다.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원호가 틀렸다는 걸 지적하면서 거짓말 탐지기의 기회가 날아갔다며 한탄하거나 되려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 썅년, 이걸 노렸네. 처음부터 이렇게 흘러가도록 시나리오를 짠 것이다. 직원도, 다른 참가자 놈들도 모르는 송혜만의 트릭.
이후의 진행은 손바닥 뒤집듯 간단하게 흘러갔다. 송혜를 몰아갔다가 실패한 정치질의 당사자는 바로 다음 밤에 탈락당했고 나머지들도 헛다리들만 짚으면서 송혜에게 한 명씩 탈락해나갔다. 중간마다 충분히 의심을 할 수 있을 만한 발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탐지기의 결과만을 믿은 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이런식으로 송혜는 손쉽게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고 승리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이번 도깨비잡기의 1등은 우리 4구역이 되었다. 그리고 NRK의 영역을 일부 손에 넣게 되었다.
“사기야! 이건 사기라고!”
게임이 끝나고 송혜가 ‘도깨비’임이 밝혀지면서 모두 충격과 함께 개판이 되었다. 당연히 송혜를 맞추고 몰고까지 했던 원호는 제일 난리였다. 하지만 송혜역시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거짓말 탐지기를 속였을 뿐이었다. 테스트기가 의심을 받았지만 여러 번 작동한 결과 정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리없이 승리를 인정받았다. 시끌벅적하게 끝난 이 게임은 역대급 반전으로 남게 되었다나.
“어땠어?”
드디어 모든 경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시간은 벌써 밤이었다. 슬슬 사라가 졸립다고 말하는 시간이자 크립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때였다. 달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거리의 사람들과 유흥점들의 문들은 열리고들 있었다.
“여전하네. 그 두 썅년들도.”
“걔네들도 나야. 따로보지 말아줘.”
“그러기에는 너네한테 당한 게 많아.”
“그랬던가?”
“그랬어.”
송혜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었던 이유, 그녀만의 특별한 개성이며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얘같은 사람들이 쓰기 어려운 말은 모르니 내가 아는 말로 풀이하자면 송혜는 이중도 아닌 삼중인격자였다. 말 그대로 3개의 인격이 있는 사람. 그게 송혜였다. 내가 ‘마녀’인 것을 극소수가 알고 있듯이 그녀가 삼중인격자라는 것도 나를 포함해 극소수만이 알고 있었다.
본인의 입으로는 그저 성격만 다르다고 말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사라가 보았어도, 아니 조금만 얘기를 해보며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3개의 인격은 모두 개성이 달랐다. 난 이 3명에게 따로 네이밍까지 붙여줄 정도였다.
첫 번째 인격은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최송혜’였다. 그냥 최송혜. 여기에 와서 만나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내 옆의 그녀. 의사면서 느긋할 말투가 베여있는 것 말고는 이렇다할 특징이 없었다. 이제부터가 설명시작이지.
두 번째 인격, 난 그녀를 ‘최광혜’라고 불렀다. 본 적은 딱 3번이었는데 내가 날카롭게 미친년이라면 그 년은 끈적하게 미친년이었다. 도저히 의사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말투며 행동이며 모두 변태가 되고 수술에나 쓰는 메스만 쥐어두면 웬만한 잡놈도, 심지어는 케이니와 두영도 처리할 만한 정도의 싸움꾼으로 변해버린다. 나도 그런 광혜와 한 판 하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할 정도였다. 물론 내가 이기지만 변태스러움 때문에 내가 가장 꺼려하는 인격이었다.
세 번째 인격, 막내같은 그녀는 ‘최지혜’라고 불렀다. 지혜역시 완전히 다른 인물이나 다름없는데 느긋한 말투며 행동이 사라지고 말이 없어지며 대답이 응, 아니로 줄어든다. 행동도 오로지 필요한 행동만 하고 안그래도 뛰어난 송혜의 머리가 더 좋아진다고 보면 되었다. 의사로서의 실력도 물론이고 머리를 사용하는 게임이나 지식들에있어서도 강해진다. 표정변화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두 눈을 마주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대신 광혜와 달리 지혜는 싸움을 못한다. 웬만한 잡놈은 때려잡지만 당장 여기서 ‘A’라고 매긴 애들한테는 이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송혜의 인격이었다. 조용하고 얌전해지니까. 물론 그렇다고 말을 잘 듣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송혜가 사용한 방법은 이러했다. 모두가 거짓말탐지기를 자신에게 사용하도록 연기하며 유도하고 기계를 사용하기 직전에 다른 자신을 불러내 대신 탐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엄연하게 다른 사람을 부른 것이기 때문에 ‘송혜’가 아니 ‘제 3자’에게 사용한 거나 다름없었고 덕분에 기계는 1도 먹히지 않았다. 이걸로 자신이 ‘도깨비’임을 안전하게 숨기고 매턴마다 참가자들을 탈락시킨것이다. 독한년.
“야, 지금까지 잊었다가 존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섹스할 때는 어떤 년이 하냐? 광혜? 아니면 지혜?”
“날 덮쳐보며 알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니까 오늘 밤 덮쳐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는 정식 섹스에 브라이언이 온 것은 최고였다. 사라가 잠든 것까지 확인한 우리는 뺏은 영역을 둘러보면서 목욕탕을 찾아 들어가 땀이 난 몸을 씻고 카베 뭐시기가 운영하는 모텔로 쳐들어가 빌빌 기어 나오는 두목놈에게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협박한 뒤 술을 뜯어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바로 라이언과 즐겼다. 옷도 벗지 않은 채 그에게 달라붙어 진하게 키스했다. 서로 덮은 입술 안으로 혀를 엉키고 여기저기를 빨아댔다. 나의 유일한 손은 그의 어깨를, 그는 한 손으로 내 고개를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만져댔다. 그러면서 한 겹씩 내 옷을 벗겨내었다. 그 때부터 직감했다. 이 새끼, 완전히 날짐승이라는 걸. 그래서 더더욱 맘에 든 것이다.
씻을 때 빼고는 보이지 않는 내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손에 쥔 것만으로 만족 못 한 그의 혀가 내 가슴을 삼키고 손은 아래로 향했다. 그런식으로 뒤엉키다가 내의 다리를 벌리고 그가 박아 들어왔다. 인생살면서 박힌 역대급 크기는 아니었지만 나름 큰 축에 속했고 오랜만에 받아들이는 내 몸에 충분하고도 남을 쾌락을 주었다. 거기다 다른 남자들처럼 기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진짜 짐승새끼 마냥 쳐 박아와서 좋았다.
“안에다 싸라. 밖에다 지르면 죽인다.”
“임신하려고?”
“나 애 못낳아. 그러니까 안에다가 존나게 싸라고. 알았어? 입은 나중에 박게 해줄게.”
“감당할 수 있겠어?”
“너야말로 날 감당할 수 있겠냐?”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안에 하얀 액들을 가득히 싸지르더니 쉬지 않고 나를 일으켜 벽에다 밀치고 다시 박아왔다. 흘러내리던 정액들은 내 사타구니 사이로 나오다가 다시 박혀오는 것에 막혀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 남자, 정력이 정말로 좋았다. 이미 한 번 거버린 상태라 더욱 더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내 안에 가득히 액들이 차올랐다.
“지친거 아니지?”
“너야말로 나한테 다 빨리지 마.”
이번에는 내가 밀치고 올라탔다. 그리고 내 허리를 움직여 짐승새끼마냥 달려들었다. 아직도 그의 것은 딱딱하고 굵었다. 그렇게 세 번. 잠깐 멈추고 손가락으로 내 안을 긁어내 정액을 빼고 맛보았다. 갓 나온 거라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송혜는 아까부터 이상한 종이뭉치를 보면서 관심도주지 않고 있었다. 대충 표정을 보았는데 송혜가 아닌 지혜였다. 작전이라도 짜나. 그래서 내버려두고 이쪽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뒤로 박아왔다. 내 안에는 이미 가득 찼는지 움직일 때마다 하얀 액들이 계속 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나저나 이 남자, 박아오는게 끊기지가 않았다. 더욱 더 맘에 들기 시작했다. 역시 가득 안에 싸주었는데 바로 빼내고 입으로 물어 빨아재껴 주었다. 겉에 묻었던 정액들을 긁어먹고 쭉 빨아주니 더 흘러나왔다. 브라이언도 좋았는지 내 뒷머리를 잡고서 안까지 찔러넣었다. 이미 내 배 안은 가득 찬지 오래였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끌어안아 내 위로, 정상위 자세를 만들었다.
“대단하네. 앵간한 남자새끼들은 여기서부터 포기선언하던데.”
“지쳤어?”
“아니라고 했을텐데. 빨리 쳐 흔들기나 해.”
일부러 도발했다. 그는 내 다리 한쪽을 올려 옆으로 눕게 하더니 그대로 쳐박아왔다. 더 깊숙히 내 안으로 박혀들어오고 있었다. 쾌락에 찌들어버린 나, 이미몸은 여러번 가다 못해 지금도 계속 절정을 오락가락했다. 미치겠네. 여기까지는 예상하지를 못했는데. 내가 누운 이불자리에는 정액들이 튀다 못해 내 몸에까지 묻어버리기 시작했다.
“입벌려.”
이대로 또 안에 싸면 될 것을, 그는 내 얼굴을 잡아 입안에다 싸주었다. 이건 나도 갑작스러워서 조금 목이 막힐뻔했지만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삼켜주었다. 밥 다먹었네.
“하아..하아...야, 내가 지치겠네. 너 뭐하는 새끼냐? 딸딸이로 단련했냐?”
“글쎄. 그리고 나도 슬슬 지쳐가는 참이었어.”
“안 치친다메?”
“허세. 그래도 이 정도면 대단한거지. 안 그래?”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야겠네.”
“좋을대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고 거기서 끝을 맺었다. 브라이언은 마지막으로 내 안에 박아 싸주고 유유히 옷을 입고 떠나갔다. 나는 조금 지쳐서 잠깐 누웠다. 아직도 정액들로 내 몸이 미끄럽기는 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이게 내 성욕이었다. 지치지 않는 뒤틀린 성욕.
지혜는 마침 종이뭉치를 다 읽었는지 그것들을 가방에 넣더니 그제서야 날 봐주었다. 그리고 송혜로 돌아와 있었다.
“다 즐겼어?”
“시발, 브라이언 번호 나중에 내놔라. 섹프로 삼아야지. 매일 할거니까.”
“잘 즐겼나보네.”
“오랜만에. 시발. 다 읽었냐? 그럼 이제 돌아가자.”
“무슨 소리야?”
나는 돌아갈 준비를 하려는데 송혜는 반대로 가방을 멀리 밀고는 자신의 의사가운을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엎드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