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4 (36/72)



〈 36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4
“어떻게 하죠? 이대로 있으면 모두 죽을 거에요.”


채원이가 옆에서 두려워하며 소근거렸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크립톤들이 돌아다니는 밤, 우리는 먹을 것들을 구하기 위해 무리해서 움직였다가 치우의 실수로 공구 몇 개가 쏟아져 괴물들에게 쫓기는 상황이었다. 울음소리들이 울려퍼지며 우리의 공포심을 두드려왔다.  한 명, 우리를 이끄는 두영오빠를 제외하고서. 그는 우리들을 한명씩 다독이며 조금씩 달래주었다.

“괜찮아. 분명 방법이 있을거야.”


정말로 방법이 있을까. 옆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을정도로 바짝 긴장하고 있는 휘온과 채원이가, 자신의 탓이라며 계속 스스로를 자책하는 부상입은 치우가, 그리고 나도 잔뜩 겁을 먹고서 움츠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하자.”

크립톤의 울음소리들이 요동치는 속에서 두영오빠가 말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작전이라면서. 오빠는 언제나 여러작전들을 세우고 행동하면서 우리들의 목숨을 여러  구해주었다. 그런만큼 그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에게 서려있었다. 목소리들에서 알 수 있었다.


“어떻게요?”

휘온이 긴장한 목소리로 방법을 물었다. 조심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찾아 잡아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나도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사라와 함께 시선을 끌게. 그동안 채원이는 치우를 데리고 조심히 이동하면서 주차장에 있는 트럭에 가서 시동을 걸어. 휘온이는 둘을 옆에서 지원해줘.”


“잠깐, 사라언니를 데리고 가겠다구요? 언니가 위험할 거에요.”


“저 크립톤들과 싸우려면 사라의 귀가 필요해. 가능한 오래 시간을 끌면서 싸워야 하니까. 가능하겠지? 사라.”


“......네. 가능해요.”


“부탁할게.”

오빠가 간곡히 부탁해왔다. 이미 내 마음은 부탁을 해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채원이, 휘온이, 치우, 두영오빠까지 살아나갈  있는 방법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모두가 날 보호하고 지켜줬던 만큼 나도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니  수 있는 것이라면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갈게요.”

“언니......”

“괜찮아, 채원아.”

채원이가 걱정가득한 마음을 목소리에 담아주니 더욱 더 지켜야한다는 마음과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두렵고 무섭지만 나서야겠다는 생각과 용기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요. 오빠.”

“그래, 가보자.”


두영오빠와 손을 잡고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끓는 속으로 향해 들어갔다. 아마 주차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중일 것이다. 그래야 채원이와 치우가 차까지 다가갈  있을 테니까. 달리면서 오빠가 힘껏, 크립톤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다. 괴물놈들아!”


벌써부터 거센 크립톤들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맡은 역할을 위해 귀를 기울이며 모든 소리들에 집중했다. 아랫층, 윗층. 그리고 앞에서 둔탁한 괴물의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오빠! 앞이요!”

조금 뒤, 오빠가 잠시  손을 놓고 무언가를 휘둘렀고 맞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비명이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러면서 내 피부로 무언가 튀기까지 했는데 곧바로 오빠의 손이 나를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크게 뛰지않던 몸이었던 만큼 금방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가쁜 숨을 참아가며 오빠를 따라 계속 달려나갔다.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있는 것은 든든했다. 나는 소리를, 오빠는 싸움을 담당하며 이 어둠을 헤쳐나갔다.








“두영오빠를 만난  다섯번째로 버려지고 난 뒤였어.”

맥주병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주범은 나였다. 조금씩 취기가 오르며 사라의 깊은 이야기에 푹 빠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셔졌다. 안주도 반 이상이 사라져있었다. 송혜도 깨작거리며 씹었지만 얼마 먹지 않았고 대신 라면을 주문했다. 라면도 있다니, 메뉴에는 없었는데 거  대박이네. 사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크립톤들을 피해서 낮과 밤을 한 곳에서 보내다가 지나가던 오빠일행이 구해준거야. 하지만 믿지 않았어.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얼마 가지 않아서 날 버릴줄 알고있었거든. 그런데 오빠가 다정할 말들로 누구나처럼 달래지 않았기에 더욱 따랐던 것 같아. 나에게 하나만 물어봤거든.”


“뭘?”

“날 따라가서 살아남겠어? 아니면 여기서 아무것도 못한 채 죽을래?”


“존나 단순하네.”

물론 난 물어보지 않고 대들면 죽여버리거나 도망쳐버리면 내 취향대로 처리해왔다.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일단  놈이 우리 와이프를구했고 최악의 상황에서 커다란 작전을 하나 펼쳤다. 좋아, 그 뒤는?









“오빠!”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쉬지 않고 같이 헤쳐가며 시간을 끌던  오빠의 손을 놓쳐버리고  것이다. 큰일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크립톤들의 소리들, 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 머릿속으로 좋지 않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버려지는 것, 아니다. 그는 달랐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믿자, 믿는거다. 마지막이라도 좋으니까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간을 함께했고 이런식으로 남겨둔 적이 없는 오빠였다.

“사라.”

그렇게 기도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던 내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속에서 작은 빛이 떠다니는 듯한 목소리. 급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손을 뻗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상했다. 모든 게 이상했다. 목소리부터 내가 알던 그의 느낌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헤어져야겠어.”

“오빠?”

“사라, 네가 여기에 계속 남아서 괴물들의 시선을 이끌어줘.”

“네? 오빠,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오빠!”

“모두가 죽는 것보다 한 명이 버려지는게 나아. 그리고 사라, 넌 귀는 밝지만 앞을 보지 못해서 손이 많이가는 존재였고. 지금 나에게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야. 잘 있어.”

“두영오빠!”






“그리고서는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어. 그 뒤로 크립톤들에게 쫓기다가 죽을 뻔했고.”

“용케도 살았네.”

아무것도 모르는 송혜가 말했다.  뒤가 사라에게 있어 또 다른 지옥이었다. 진짜 지옥.

“됐어. 충분히 들었어.”


4병의 맥주병이 모두 비어있었다. 그중 3병은 내가 마신것이다. 아니, 이건 중요치 않다. 무엇보다 내가 화난 것은  빌어먹을 새끼의 행동이었다. 감히 사라를 그런 곳에 버리고 가? 뭐가 되었건  쌍놈의 새끼를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고 뒷목이 부러질 정도로 분노가 터져나왔다. 안되겠다. 역시 시발, 죽여버려야지.


“엔, 괜찮아. 이미 지나간 일이야.”


내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나자마자 눈치  사라가 옷자락을 잡으며 말렸다.


“지나간 일이면 누가 덮어주기라도 하냐? 해결이 되지 않은  지나간 게 아니라 아직도 진행중인거야.”

“두영오빠는 강해, 엔. 정말로.”


“풉.”

송혜가 옆에서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아줘. 여기는 ‘강남’이야. ‘NRK’와 다르게 경찰 수준도 다른 곳이라 찍히면 정말로 힘들어져.”

그리고는 사라를 따라  말렸다.


“시발!  알바야? 두영, 이 시발새끼야!”

목소리에 힘을 주어가며 그놈을 욕하며 불렀다. 이름에 욕만 더했을 뿐인데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불렀던 그 타이밍에 문으로 스쳐갔던 얼굴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잘생긴 외모, 솔직히 원나잇 해볼만한 가치가 있어보였다. 거기에 잘 빼입은가죽자켓차림. 우리를 비웃던 두영이었다.


“사라?”

우리를 보자마자 자격도 없는 놈이 내 와이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사라는 고개를 숙여 피했고 송혜는 그런 그녀의 앞에 서서  대신 방패가 되어주었다. 좋아, 모든 상황이 완벽했다. 옆에 있던 술병을 집어  쌍놈에게 던져버렸다. 꽤나 있는 힘껏 던졌는데 사라가 왜 강하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내가 던진 술병을 잡는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정말 거친여자네. 무작정 던지기야?”


“닥쳐! 개새끼야. 사라를 던져준 건 고마운데 넌 좀 뒤져야겠다. 좆같으니까.”

“무슨 소리야?”


“사라 몸값 받으라고, 시발아!”


다른 빈 맥주병을 이어서 던지고 쿠크리 나이프를 뽑아들며 달려들었다. 그는 쥐고있던 술병을 휘둘러 막고 깨진 부분으로 위에서 내려찍는 나이프를 막았다. 일단 힘에서는 내가 밀렸다. 나이프로 한 손을 잡아둔 채 발을 올려 그의 허리를 노렸지만 막히고 이어서 잡히기까지 했다. 그대로 당기는 바람에 내 몸이 밑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이 새끼가!”

나이프를 놓쳐버렸지만 빠르게 그의 손목을 잡으려 뻗었다. 그런데 이것도 닿지 않았다. 그가 다리를 잡은 채 바닥에서 돌려 벽에다 내던진 것이다. 그리 튼튼하지 않은 벽이었는지 찌그러지고 말았다. 등이 무척이나 쓰라렸다.


“계속할래?”

“엔! 그만해!”

그의 손에 내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저 새끼가 누굴걸 만지는 거야. 의자를 집어 던졌다. 그는 가볍게 피해버렸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고 나는 탁자를 밟고 높이 뛰어올라 얼굴을 발로 노렸다. 또 막힘과 동시에 잡히고 말았다. 그는 여유가 가득이었는데 엿이나 쳐먹으라는 의미로 잡힌 발목을 역으로 이용해 다가가며 가슴팍을 강하게 밀쳐버렸다. 잡혔던 발이 놓여져 자유롭게 풀리고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쿠크리나이프를 되찾아 휘청거리는 그에게 휘둘러주었다.  와중에도 내 공격을 막는다는 것에 솔직히 감탄했다. 재혁이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싸움을  줄 아는 놈이었다. 그래서 취기를 날려버리고 진지하게 상대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너무 마셔버리는 바람에 여전히 술기운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여러  휘둘러댔다. 요리조리 잘 피하네.


“생각 외인데, 외팔이.”

“두 팔 다 달렸는데도 감탄하는 네가 병신이지!”


나이프를 던지며 일부러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대로 턱을 갈겨버리려고 무릎을 들었는데 그도 눈이 빨랐다. 손으로 내 무릎을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반격까지.  멱살을 잡아 끌더니 자신의 숙였던 머리를 들어올리며 박아버리고 내 배를 역으로 가격해왔다. 시뮬레이션과 다르게 내가 휘청거려야 했다. 머리가 어질하다. 맞아서 그런것도 있는데 취기도 한 몫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날리든 발을 올리든 술병으로 내려찍든 해야하는데 뜻대로 되지가 않고 계속 두드려 맞아야 했다.

“잡놈 새끼가!”


억지로 맞는 것을 참으며 발길질이라도 해보려 하는데 두영이 날 넘어트리고 벽으로 내팽개쳐버렸다. 거기다가 내가 던졌듯이 의자도 날아왔고 내 몸 구석구석들을 괴롭혔다. 짜증이 났다. 빨리 술이 깨던가 해야하는데 사라의 얘기에 심취한 나머지 꽤 마신게 죄였다.


“그만둬. 너만 불리해 보이는데.”

“엔. 두영오빠와 싸우지마. 제발.”


한 쪽은 비아냥 거리고 다른 한쪽은 그만하라며 냥냥거렸다. 사라의 귀여운 애교로 생각하고 옆의 테이블을 잡고서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 피맛이 났는데 혀로 먹어보니 진짜 피였다.  여기저기고 쑤시긴 했지만 뭐, 이 정도는 흔하게 다쳐봐서 아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 진정시키자.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앞의 남자는 일반 깡패도 아니고 재혁이같은 간첩처럼 싸우지 않는다. 확실히 달랐다.

“왜 한 눈을 팔아?”


시뮬레이션을 그리던 중간 그가 먼저 다가와 내 얼굴로 주먹을 날려오고 있었다. 급히 오른팔을 올려 막아보지만 빈 아래쪽으로 발길질이 날아 들어왔다. 이럴 때 왼팔이 있었어야 했지만 없는 덕분에 멀리 자리만 잡고 있던 창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유리에는 크게 금이 나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변상해줄 돈이 없다. 구해주던가 해야지.

우선 변상은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또 주먹이 날아왔다. 고개만을 옆으로 피하자 방향잃은 그 주먹은 금만 갔던 유리창을 완전히아작내버렸다. 좋아. 이건 이새끼가 변상하면 되겠네.

“유리값 46000원, 개새끼야!”

나에게 다가오면서 내지른 주먹때문에 생긴 그의 빈 틈을 파고들었다. 팔을 굽혀 팔을 낚아채 잡고 다리를 높이 들어오려 턱대가리를 부숴줄 생각이었다. 그곳을 갈겨버리면 정신머리가 온전치  할 것이다. 웬만한 맷집이 아닌 이상 완전히 흔들리는 타격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역으로 당해버렸다. 그가 먼저 다리를 올려 내 무릎을 막고 위로 올라가는 힘을 역이용해 내 턱을 가격해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핑’돌려고 했다. 제정신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집중해도 쉽지가 않았다.


“깡도 되고, 힘도 되고, 맷집도 좋은데  날 못 이겨.”

그가 내 머리채를 잡아 사라쪽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더럽게 등이 쑤셨다. 그래도 그에게 감사할 일이 생겼다.“기술이 없어. 어떻게 사라랑 살아남은 거야?” 취기 가득했던 머리가 턱을 세게 맞은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지러움이 회복되는 동시에 술기운이 날아가주었다.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짜증과 화가났다.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키고 다시  번 자신만만하게  있는 두영에게 달려들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아직까지도 등이 쑤시고 맞은 곳들이 아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잔기술들을 쓰면서 흠씬 패버리려 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어쩔  있나. 머리도 맑아졌고 화가 났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개새끼를 조져버려야 했다.

“그만하지.”

그는 이제 지쳤다는 듯 넌저리를 쳤다. 아마 의미없는 기싸움이라 생각하고 있을테지.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여유가 사라지게 되었다. 아까처럼 머리를 노려 날아온 그의 팔을 붙잡고 나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삼촌새끼와의 그 날을 되풀이했으니까. 두영의 팔을 잡아 끌고 발로 왼쪽 뒷 종아리와 앞 허벅지는 차례로 가격했다. 그의 한쪽 무릎이 꿇려지면서 중심의 밸런스가 사라졌다. 그대로 발로 턱을 있는 힘껏 가격해주었다. 이제 반대로 그가 휘청거렸다. 당황하는 표정도 내가 마음에  정도로 완벽했다.

“46000원 내라고. 시발아.”


그저 돈을 내라고 했을 뿐인데 더럽게도 반응하는 두영이었다. 일어서면서  몇  쳐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대로 나도 힘을 빌려주어 반 강제로 일으켜주었고 그대로 어깨의 힘으로 들어올린 뒤 테이블로 던져버렸다. 걷어차주는  덤이었다.


“계속할거야?”

“이 빌어먹을 여자가.”


두영은 어디서 꺼낸 것인지 손에 트렌치나이프를 들고서 달려들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날붙이였다. 내 것은 바닥에 구르고 있어 줍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괜히 그랬다가 저 칼이 내 몸을 깊숙히 들어와 쑤실게 보였다. 나이프가 처음에는 내 가슴사이를, 다음으로는 옆구리와 목, 하나뿐일 팔을 노려왔다. 모두 발로 손목을 밟거나 팔을 이용해 다른 방향들로 흘려주었다. 그러면서 한 대씩, 내가 맞았던 곳들과 똑같은 부분들을 때려주었다. 계속 표정이 찌그러지고 화는 내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왜? 아까처럼 존나 쳐웃으면서 놀려봐. 놀려보라고! 쌍놈아!”

마지막으로 턱을 발끝으로 가격하고 뒷꿈치로 가슴팍을 걷어찼다. 아까처럼 대충 걷어찬 게 아닌 심장위를 정확하게. 이게 꽤나 묵직했나, 그도 벽을 기대로 엎어져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병신새끼. 그냥 그대로 조용히 사라 몸값만 받았으면 될 것을 괜히 지랄이야.”


“엔.”

지금까지 큰 소리가 울릴때마다 작게씩 비명과 놀란소리를 하던 사라가 작게  이름을 불렀다. 지금에서야 보니 송혜가 몇몇개의 파편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나중에 감시의 표시로 보답하나 하던가 해야지.

“골라. 하늘로 꺼질래? 땅으로 꺼질래?”


“꺼지는 건....너야.”


 새끼가 미쳤나하고    패버리려 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아프게 따가운 빛까지. 이런거 영화에서나 보던건데, 벌써 래퍼토리가 눈에 선했다.

“손들어!”


경찰들이었다.  이상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경찰. 심지어 'NRK‘따위와는 규모도 달리했다. 이거, 조금 좆됐네.





“기다리고 있어. 꼭 꺼내줄게.”

그렇게 말하고서 송혜는 ‘강남’의 경찰서를 떠나갔다. 사라를 데리고. 그동안 나는 이 비좁은 유치장에서 송혜가 오기만을 계속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모르는 남정네 2명과  이상한 여자 1명과 같이! 거기다 그냥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그렇지 않았다. 바로 내 옆에 앉은 남자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긴 어쩌다 들어온거야? 도둑질? 시비? 아니면 쌈박질이라도  했나? 그럼 나랑 같은 경우인건데. 하하하!”


엄청 시끄러웠다. 거기다 이 질문만 비슷한 문장으로다가 벌써 5번째였다. 계속 씹고 무시하면서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 망할놈은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미 글렀다. 그렇다고 이 놈을 두드려 패면서 소동을 피우기에도 이 경찰서의 규모가 커서 문제였다. 빠져나갈 수는 있겠지만 난이도가 상당할 것이다. 당장 ‘강남’이 어떤 구조인지도 모르는데 괜히 나섰다가 개지랄을 당할바에야 어차피 열어줄 거, 송혜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썩을놈을 참고서. 마지못해 짜증이 나서 대답을 던져주었다. 안 그랬다간 정말로 미쳐버릴 것이다.

“사람패고 들어왔다. 됐냐?”

“하! 꽤 흔한 케이스로 들어왔네. 나도 그렇거든.”


“너도?”

“한 의사양반이랑 싸웠다가 들어왔지 뭐야. 하하하!”

“의사랑은 무슨 접점이 있다고 싸워? 장기라도 털렸나보지?”

”다른 걸 털렸지.“


남자는 30대 중반정도로 보였다. 검은색의 정글모에 트레이닝 자켓을 걸쳤는데 인상은 동네 아저씨였다.


“난 ‘류재성’이고 ‘화천’의 대표야.”


“대표? 네가 구역장인가 보지?”

“아니, 그거 말고. ‘아델리’의 대표야.”

“화천이면 2구역이던가. 맞아?”

“맞아.”


일단 이 남자는 바보라고 결론내렸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데도 자신에 대해 술술 가르쳐주고 있으니. 나도 뭣도 모르는 ‘아델리’의 참가자건만. 조금 더 얘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이참에 ‘아델리’를 포함해 섹터에 대해 다른 정보들을 뜯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론 짜증은 나지만 이렇게 정보는 퍼다줄 바보는 흔치 않았다.

“난 ‘엔’.”


“엔? 그게 이름이야?”


“존나 간편하고 간지나지?”


“괜찮네.”

“바로 한 가지 물어도 될까?”


“뭔가 궁금하지? 하! 재밌는 질문이면 좋겠는데.”

“‘아델리’에 대해서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내가 여기에 온지 얼마 안됬거든.”

재성은 주머니에서 사탕같은 것을 하나 꺼내 나에게 주었다. 어릴 때나 먹었던 누룽지 사탕이었다. 여기에 참 별의별게 다 있는 듯 했다. 고맙다는 고갯짓을 하고 받아먹었다. 조금 끈적하기는 했지만 입에서  번 굴리자 매끄러운 사탕이 되었다.

“‘아델리’는 우리 섹터에서 3개월마다 열리는 대회이자 게임이야. 기본적으로 3인 1팀이 되어서 각 구역의 대표들이 출전하지. 그리고 이 게임을 이용해서 영역다툼을 하는거야.”

“헤.....재밌어?”


“재미라. 그건 아니지. 먹고사는 싸움이 걸린 게임이니까.”

“그럼 너도 그걸 위해서 대표로 나가는 거겠구만.”


“우리도 먹을 입이 많아서 말이지. 그런만큼 이번 ‘아델리’는 잔뜩 긴장하고 있어. 2번째로 6개의 구역들이 전부 참가하는 거니까. 설마 그 몰락한 ‘4구역’까지 참가할 줄은 전혀 몰랐거든!”


역시 송혜의 구역은 영 상태가 좋지 않은 게 맞았다. 몰락했다는 말까지 붙이는 것을 본다면.

"‘4구역’은 땅덩이리가 똥만하던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욕심이 과했던 거지. 처음에는 마땅한 인물들이 있어서 몇 번 승리를 거두고 여러 영역을 차지했었어. 대단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강남’과 ‘카르디’에 엄청난 인물 2명이 들어오고 나서 급속도로 반전되기 시작했거든. 강남과 카르디는 빠르게 4구역을 몰아냈고 구역의 크기를 늘려갔어. 4구역은 다시 뺏기위해서 여러 번, 있지도 않는 전력들을 쏟아부었지만 다들 처참하게 깨질 뿐이었지.“


“호오. 그 엄창난 인물이 누군데?”

“‘강남’의 1인자 ‘두영’과 ‘카르디’의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케이니’라는 여자야.”


“뭐? 시발?”


내가  귀가 썩어들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입은 분명히 ‘케이니’라고 말했고 여자라고까지 했다. 아니, 시발. 설마 이런곳에서 그 개년을 만난다고? 만약 내가 아는 케이니가 맞다면 자존심 세고  더럽고 맨날 국가들 상대로 꼬리나 치는 미국년일 터이다.

“혹시 미국년이야?”


“맞아. 이름만 듣고 나라까지 맞춘건가? 대단한데!”

젠장! 그렇다면 내가 아는 그 썅년이 맞았다. 어디선가 살아있겠거니 했는데 이런곳에서 만나게 될 줄을 망상조차 못 했다. 정말 기가 차서 뚫고 나올 기세였다. 제발, 제발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무서워서 그러는게 아니라 더러워서 그렇다.

“그 둘도 이번 ‘아델리’에 참가해.”

시발! 마리아는 내 기도를 씹었다. 기분이 급속도로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카르디’라는 구역에 가서 그 썅년을 찾아내 썰어버리거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무기를 뺏겨버린 상황이다. 옘병!


“하.....‘아델리’가 게임이라고 했는데 그냥 사람만 죽이면 끝인건가?”

“아니.  그런건 아니야. 괴물과 싸우고 머리싸움을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해. 뭐, 결국에는 싸움들이지만.”

“괴물? 크립톤하고 싸우기라도 하나 보지?”


“크립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우괴물들과 싸웠었지.”

“여우괴물이라.”


아무래도 돌연변이인  했다. 그런것들과 싸움을 붙이다니. 마치 콜로세움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 돌연변이들을 잡아두고 있다는 건데.  섹터, 뒤가 수상했다. 뭐, 아무렴 어때. 나는 기름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 뒤에 누가 어떻게 있든 거기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5개의 경기는 진행하고 난 뒤에 최종전에서 1대1 토너먼트를 진행해. 서로 싸우는 마지막 게임이지.”


“거기서 ‘4구역’의 대표들이 전부 죽었나 보네.”


“그렇지. 혹은  경기들에서 죽거나.”

‘아델리’는 살해까지 허용이 된다는 소리였다. 정말 좋은 정보들을 얻게 되었다. 보답으로 진하게 입맙춤이라도 해줄까 했지만 그가 화천의 대표라고 한 것이 떠올랐다. 내 미래의 적이라는 소리였다. 음......좋아, 대신 ‘아델리’에서 살려주는 것으로 퉁치기로 했다. 물론, 이 남자만이었다.

“엔.”


그와 대화하는 사이 송혜가 혼자서, 아니다, 어떤 남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또 처음보는 남자였는데 만약 송혜의 남자친구라면 그닥인 놈이었다. 아무튼 송혜는 그 남자를 앞세우며 들어와 당당히 철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이 답답한 거지같은 곳에서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의 표시로  의사를 와락 끌어 안아주었다.


“기특한 년.”

“너도 돌아가는 길에서만큼은 기특해줘.”

뒤에서는 나와 잘만 얘기를 나누었던 재성이 동네아저씨같은 웃음으로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해왔다. 처음에는 기피했지만 알고보니 꽤 괜찮은 놈이었다. 남은 대화는 ‘아델리’에서 천천히 몸으로 나눠봐야지. 송혜를 따라온 남자는 경찰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를 먼저 이곳은 나서서 진료실로 돌아왔다.







진료실에는 사라가 먼저 도착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겨주었다. 나도 그녀를 반기며 손을 잡아주고 자리에 도로 앉혔다. 송혜는 자신의 의자를 끌어와 앉고 몇몇개의 자료같은 것을 보다가 문으로 누군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릴 때쯤에서야 고개를 들었다. 나도 누가 들어왔나 해서 눈을 올려보니 경찰서로 송혜와 함께 왔던  남자였다. 운동을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어깨와 검은색의 테안경. 위에입은 검은색의 운동복이  들어맞아 그의 몸을 더 강조하고 있었다. 얼굴은 그닥. 그래도 남자다운 몸에 몇몇 여자들이 끌릴만한 정도였다.


“소개할게. 여긴 진욱씨. 어제 말했던 ‘4구역’의 유일한 경비원이자 전 ‘아델리’참가자야.”

“여어. 송혜랑은 무슨 관계야? 혹시 몸 텄어?”

“엔, 실례야.”

송혜의 남자친구라면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나. 옆에서 사라가 가만히 있으라며 쥐던 손을 더욱  쥐었다. 덕분에 온기가 더 잘 느껴져서 좋았다.


“네가 엔이야?”

“이름 간지나지?”

“너무 무모했어.”

다짜고짜 나보고 무모했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풀어보자면 간덩어리가 부은 것이었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저딴 소리를 하는 것일까. 이제와서 풀렸던 화들이 다시 쌓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라를 생각해 참기로 했다.

“거긴 ‘강남’이었고 두영의 홈그라운드였어. 다행히  녀석이 무기를 안들어서 망정이지, 제대로 다 끼고 싸웠으면 위험했어.”

당돌하게 말하는 그가 너무 기가찼다. 우선 그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주기로 했다.


“뭔가 잘못알고 있나본데, 그 새끼 나랑 칼빵했어. 그리고 내가 이겼고. 이게 무모해?”


“경찰이 다가오고 있어서 직전에 관둔거겠지. 그러면서 네 싸움방식도 외워갔을 거고.”


“거기에 직접 없었으면 가만히 있으시지. 뭔데 나보고 지랄이야?”

“나도 그 남자랑 싸워봤으니까.”

“나도 방금까지 싸우고 온 년이란거 모르냐?”


우리의 분위기는 슬슬 점화되고 있었다. 솔직히 난 이 남자가 벌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두영 개새끼를 족쳐버리고 왔는데 봐준거라는 둥, 내 싸움방식을 알아가려는 작전이었다는 둥, 모두 나를 무시하는 발언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조금만  이어지면 싸울 것 같은 분위기속, 잠잠코 구경하던 송혜가 이제서야 중재를 나서주었다.


“두 명 다 이쯤하고, 엔, 진욱씨는 내일 너에게 ‘아델리’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야. 그러니까 잘 모시도록 해. 비록 은퇴했지만 다름없지만 4구역에서 ‘아델리’에 대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니까.”


“좆까. 필요없는 짓이야.”

“엔, 도움이  거야.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사라.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경험이 쩌는 여자란다. 아무튼 난 싫었다. 솔직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빠새끼가 내 몸을 만들어주었고 삼촌이 다듬주어서 완벽한 상태나 다름없는데 뭔 더 쳐 배우라는 소리일까. 절대 사절이었다.

“그 팔, 원래 그런거야?”

진욱이  팔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나도 내 허전한 왼팔을 보며 답하기 싫었지만 대충 답해주었다.


“‘사건’새끼가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래?”


그리고 정말 순간적이었다. 그가 다가오더니 내 옷을 잡고 들어올려 벽 쪽으로 던져버리려 한 것이다 가만히 당할 내가 아니였기에 재빨리 사라의 손을 놓고 그의 손목을  풀어버린 뒤 오른발을 들어올려 관자놀이를 겨누었다. 이걸로 반격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허리쪽으로 주먹이 들어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들어올렸던 다리를 내려 막지만 그의 다른 손이 옷 뒷덜미를 잡아채어 사라와 앉아있던 침대위로 날 쳐박아 버렸다. 다행히 침대라 머리가 깨지거나 등이 아플 일은 없었지만 제압당하고 말았다.


“팔이 비어서 주로 다리를 쓰게 되니 본데, 덕분에 동작이 크고 빈틈들이 대놓고 드러나 있어. 나머지는 우수하지만 이거 하나로도 넌 무너질 수도 있어.”


날 제압하고 나서 자기 마음대로 지껄여대는 그였다. 저 빌어먹을 입을 틀어막고 싶은데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동작을 크게 하면 가능하긴 했지만 바로 옆에 사라가 여전히 앉아있어서 그러기도 어려웠다. 그나저나 이 남자, 뭐하는 새끼지. 아무리 뭘 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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