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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2 (34/72)



〈 34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2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대에 묶여있었다. 한 팔,  다리가 테이프로 묶여있던 것이다.  다리는 발목에, 나의 팔은 빈 옷소매와 함께.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떻게 묶여있는 것인지 떠올려 보려하지만 계속 머리만 아프고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일단 이 테이프들부터 풀어야 했다. 이빨로 팔의 테이프를 먼저 뜯어내었다. 이어서 다리를 뜯으려던  송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났어?”

그 순간 내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떠올랐다.

“시발년! 니가 나한테 개수작을 부려?  뒤졌어!”

“침대부수지 말고 잘 들어 엔. 검사결과가 나왔어.”


결과라는 소리에  팔을 보니 밴드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입으로 뜯어내자 주사바늘이 들어왔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를 재우고서는 그새 피를 뽑아간 것이다.

“야, 이, 썅년아! 기어코  피를 빨았냐?! 시발!”

당장 다리의 테이프를 떼어내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송혜는 기록종이만 보면서 여유롭게 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 테이프, 왜 이렇게 안 뜯어져?

“사라는 영양부족 말고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어. 건강쪽으로는 아무 이상 없더라.”

“하! 당연하지! 내가 애지중지 먹였는데.”


“대신 너는 안좋게 나왔어. 스트레스랑 피로가 너무 쌓였더라. 보나마나 분노조절장애도 한 몫 했겠지. 엔, 너는 휴식이 필요해. 당분간 누워서 자고있어.”


“좆까! 이 테이프만 뜯겨져 봐라. 넌 뒤졌어!”


“하나.”


“‘둘’해봐. 해보라고! 당장 총을 꺼내서 니 새끼 배에다가 총알을.”

“셋!”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대에 묶여있었다. 몸 전체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고 가죽끈 같은 것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떻게 묶여있는 것인지 떠올려 보려하지만 계속 머리만 아프고 제대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단 이것들부터 풀어야 했는데 영 가능하지가 않았다. 팔과 다리만 묶인 것이아니고 몸 전체가 꽁꽁 묶였으니.


“시발.”

“엔? 일어났어?”

옆을 보니 사라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푸른 두 눈이 내 배를 향하고 있고 그녀의  손은  목을 만졌다가 머리카락을 만져댔다. 손을 찾으려는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손을 테이프들 속에 갇혀있었다.

“사라. 가위가 필요해.”

“가위? 잠깐만 기다려줘.”

“그럴 필요 없어.”


사라에게 시켜서 이 망할 테이프들부터 떼려고 했는데 송혜가 문으로 들어왔다.  순간 내가 어떻게 잠들었던 것인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엔은 휴식이 필요해. 사라, 절대 풀어주지마.”

“시발년. 지금 니년이사라한테 명령을 해? 내 와이프한테? 넌 뒤졌어! 당장 풀어. 시발, 바람구멍을 내버릴거야!”

“이거?”

그녀는 한 손에 글록17을 꺼내보이면서 여유롭게 서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내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나이프도 사라져있었다. 잠들어 있던 틈에 빼간것이다.


“썅년! 한 판해. 당장 나랑 붙어! 풀어 새끼야!”

“하나.”

송혜가 다니 나를 재우려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또 빌어먹을 놈의 ‘셋’을 듣게되면 뒤끝이 찝찝한 잠에 빠져들 것이다. 이번에는 안되겠다 싶어서 미리 준비를 했다.


“둘.”

“‘셋’해봐! 해보라고!”


“셋.”


송혜가  ‘셋’을 말했을 때, 이번에는 잠들지 않았다. 그녀도 꽤나 놀랐는지 의아해 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최면을 풀어버린 것이다. 송혜가 ‘셋’을 외치기 직전 머리를 침대의 철부분에 강하게 박아버렸다. 빠르게 잠에 들려던 머리가 그 충격에 깨버렸고 걸렸던 최면도 함께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제 잔재주 없지? 풀어.”


“참 독하네.”


“독한게 뭔지 더 보여줘?”

“......풀어줄게.”


이제서야 그녀가 날 침대에서 풀어주었다. 가죽끈들을 풀고 테이프들을 잘라 몸을 자유롭게 했다. 당장 풀려나자마자  대 칠까 했지만 옆에 있는 사라를 보고 특별히 넘어가 주기로 했다.

“몇 시야?”

“저녁 6시.”

벌써 어두워져 가는 시간이었지만 크립톤이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었다. 여기에 온 건 아침인데 잠만 자면서 저녁까지 시간을 날려보낸 것이다. 그대로 덕분에 몸의 피로감이 풀리기는 했지만 영 찝찝한 잠이었다. 다시는 이런식으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일어난 김에 출발할까?”


“그 술집? 당장 가. 아오, 머리 띵하네.”


“난 네가  쉬었으면 했는데. 쯧,   갈아입고 올게. 기다리고 있어.”


그러면서 송혜는 문 밖으로 사라졌고 사라와 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눈을 보면서 문득 송혜라면 사라의 눈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몰래 물어봐야지.

“푹 잤어?”

사라가 물어왔다. 대답으로 풀린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올렸다. 나와 달리 온기가득한 손. 그리고 나와 달리 깨끗한 손.


“송혜랑  했어?”

“그냥 대화했어. 나랑 엔이 처음 만났던 얘기라던가.”

“혹시 나에 대해서 뭔가 떠벌리거나 했어?”


“내가?”


“아니. 송혜가.”

“그런건 없었어.”

내가 잠든 사이 송혜가 사라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얘기해버릴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나 보다. 뭐, 얘기하지 말라고 했고 그런걸 어겨봤자 나한테 엄청 쳐맞을 걸 아는 여자니까. 괜한 걱정을 했나 싶기도 하다.


우리 의사선생님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사라를 데리고 나와 총과 나이프를 챙기고 송혜의 진료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금이  천장과 벽은 물론이고 바닥도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먼지나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인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약품들이 들어있던 서랍들은 모두 손잡이들을 페트병 뚜껑을 대신 붙이고 있었다. 의자는 소파와 바퀴 하나가 부서진 의자, 2개가 있었다. 이런 제대로 되먹지도 않을 곳에서 의사노릇을 하고 있있던 것이다.

“갈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송혜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의사가운을 벗고 블라우스와 청바지라는 조합에머리끈을 푼 생머리에 중간중간 보라색빛을 머금고 있었다. 사라와 송혜, 그 둘 중 사이에 있는 나만이 초라했다. 아무나 주워입을 만한 후드자켓에 허름한 바지. 젠장, 술집은 패션과 얼굴이 90%인데. 그래도 얼굴은 되니까 반은 가지고 가는 셈이었다.  둘만 100%였고.

이동할 때는 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기름을 아껴야 하니까. 애초에 송혜의 말로는 차를 가져가지 않는게 좋다고 한다. 거리고 그렇게 먼 것이 아니라 충분히 걸어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송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저녁이 지난 이곳은 가로등 불빛하나 들어오는게 없었고 지나가는 폐가들에서는 희미한 불빛들만이 새어 나왔다. 그 불빛들에서 이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 했다. 주황색의 불안한 불빛들, 아무래도 모두 옛날식 전구를 사용하고 있나 보다.

“곧 밤인데 여기는 크립톤들을 어떻게 상대해?”

높은 벽을 보며 물었다. 함부로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벽들. 붉어지는 노을이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그 위로 몇몇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들어올  봤던 문열어주던 사람들, 기억해?”


“그 시커먼 놈들? 물론.”

“그 자들은 섹터의 본부에서 나오는 사람들인데 밤시간이 되면 무기를 들고  위를 순찰해. 군인같은 존재야. 물론 우리편들은 아니지만.”


“공짜경호네.”


“그러면 좋겠지만 일부 비용을 줘야해. 여기는 자본이 존재하는 섹터니까.”

“우린 낼 돈 없다.”


“달라고도 안 해. 여기로 먼저 들어온 시점부터 4구역의 주민으로 취급받겠지만 손님이니까.”

걸으면서 지도로만 보았던 4구역이 얼마나 작은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겨우 5분. 입구에서 병원까지 차로도 5분이었지만 사람 한 걸음으로 환산하면 20분쯤 되는 거리였다. 합쳐서 겨우 40분이 되는 이 거리가 4구역이었다. 이러니 지도에서도 그 정도 크기밖에 안 되지.  어렵게 살고 있는 곳이었다. 사라가 앞이 보였다면 분명히 돕자고 했을 것이다.


거리의 중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성은 비니모자에 마스크까지 하며 한 손에는 구닥다리 콜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길지나가는 잡놈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잠시 멈춰 세웠다. 나는 사라의 손을 쥔 채 언제라도 꽂아둔 글록을 꺼낼 수 있도록 위치를 옮겼다.


“뒤에는 누구셔?”

“손님.”

“손님들까지 올 필요가 있는 일이야?”


“우연찮게 만나게 된 옛 친구거든.   하려고. 이 정도는 괜찮잖아.”

“뭐, 좋아. 들어가.”

총을 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달리 잘 넘어갔다. 남자는 길을 비켜주고 우리는 다시 송혜를 따라 걸었다.

“저 남자는 뭐야?”

“경비원. 구역간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야.”


“존나  뚫리겠네. 니네 구역에는 없어?”


“있어. 한 명뿐이지만.”

작기는 해도 한 명이 경계선을 계속 돈다고 생각하면 꽤나 피곤할 것 같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없는데다가 싸움  하는 사람도 부족하다는 일 뜻일 것이다. 전쟁, ‘아델리’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큰 이유인듯 했다. 싸움을  줄 아는 사람이 적은 섹터일수록 망하는 속도는 빨랐다. 이곳의 부부가 말했던, 힘이 없다는 뜻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섹터의 힘이 아닌 구역의 힘. 아마 송혜의 구역사람이었을 테지.

“여기야.”


송혜가 말한 술집은 생각보다  낡은 건물이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네온사인이 켜지고 안에서 훤한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정도였다. 2층의 높이를가졌고 간판에는 ‘Pogos’라는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안에서는 벌써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2년만에 찾아오는 술집이었다.

안은 매달린 주황색의 전구들이 가게를 비추고 있었고 꽤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에는 문신을  남자들이 대다수였는데 혹시나 아는게 있을까 보았지만 전부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차례대로 우리에게로 한 번씩 향해왔다. 그 속을 뚫고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말 잘들어. 여기서는 나 빼고  누구와도 얘기 섞지마. 말을 걸어와도 전부 무시해.”

“알겠어요.”

“오냐.”


“특히, 엔. 우리구역 빼고는 전부 경찰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너라도 귀찮아질거야. 그러니까 제발 모두 무시해줘. 여기 경찰하고 엮이면 곤란해.”


송혜는 나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부탁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귀찮은 일은 여기서 사양이었다. 어리숙한 꼬맹이들이 상대라면 모를까 이런 중년 아저씨 놈들은 피하는게 나도 편했다.

“알았어. 대신 사라를 건드리는 새끼는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대신 조건을 붙였다. 나를 건드리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사라를 건드리는 새끼들은 살려서 보내지 않은 생각이었다. 송혜는 애매한 표정을 보이고 넘겨버렸다. 그녀는 지나가던 허름한 옷의 직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 있는 종류는 별거 없어서 국산맥주 3개와 땅콩안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벌써 총합 가격이 3만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잘못 본  알았는데 이게 이곳의 가격이랜다. 마트같은 데서 사면 몇 천원만 주고 살수도 있는 것들이 여기서는 10배는 받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송혜는 돈이 없다면서 이런돈은 어디서 나는 걸까.

“돈 많네. 없다더니.”

“두 번째 계획대로 하려면 어쩔 수 없어. 여기서는 1인당 한 잔씩은 주문해야만 앉을  있거든.”


“만나는 놈은 누군데?”


“저기, 오고있어.”

송혜의 손가락이 우리가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에  칼을 차고있는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남자들을 많이 만나네.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성킁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브라이언.”


“브라이언? 외국놈이야?”

“예의가 없네. 외팔이 아가씨.”


브라이언이라는 남자는 옆에서 나뒹굴던 의자를 끌고와 앉았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내 신경을 건들일 정도로 거만해보였다. 불쾌했지만 참았다. 송혜가 부탁한것도 있고 기름을 얻고 난 뒤에 가서 후드려 패든 죽이든 늦지 않으니까.그는 자신의 커다란 바지를 뒤적거리면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우리와 같이 주문을 했다. 같은 국산이지만 종류는 다른 맥주였다.


“당신 친구들이야? 못 보던 얼굴들인데.”


“우연찮게 만난  친구들이죠.”


“뭔 원하지?”

“이 친구들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름을 원해요. 경유로. 가격은 잘 쳐줄게요.”


나와 사라는 조용히 앉아 송혜의 거래를 지켜보았다. 아니지, 사라는 유심히 듣고 있었다. 브라이언이라는 남자는 송혜의 말을 듣고 팔짱을 끼며 생각하는 자세를 보였다. 입으로 작게 숫자까지 세면서 무어라 중얼거리기까지 했는데 오죽 길었으면 주문한 순과 안주가 나와 테이블을 채우고 있을 정도였다. 궁시렁궁시렁대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안되겠어.”

거래에 대한 답은 거절이었다.

“왜죠?”

“지금 우리가 들고있는 양으로는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안돼.”


“정말로 안되나요? 조금이라도 좋고 값을 더 쳐줄수도 있어요.”

“안 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났다. 이따구로 대답을 할 거면 그냥 바로 거절하던가 할 것이지 뭔 놈의 생각을 저리 오래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망할놈. 술병의 뚜껑을 따고 컵도 필요없이 바로 들이켰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더럽게 쓴 맛이었다.


“이만 가지.”

그도 자신의 것을 들고 한 모금 마셔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정말 끝까지 마음에 들지가 않는 싸가지였다. 열 받아서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저 시발새끼. 분명 약이나 올리려고 온  틀림없어.”

“엔, 진정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닐까?”

사라의 잔은 텅텅 비어 있기에  잔 따라준 뒤 쥐어주었다. 송혜도 빈 유리잔을 내밀기에 가득 따라주었다. 나만 혼자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하염없이 맥주만 들이키고 이에  때까지 땅콩만 쳐먹어대는 나였으니까. 그런 나를 보며 송혜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엔, 아무래도 두 번째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아.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저 시부랄놈을 쫓아가서 족쳐버린 뒤에 뺏어와야지! 외국물 좀 쳐먹었다고 옘병짓 하는 개새끼. 이름만 외국이지 꼬추는 토종인 한국인새끼가. 가자! 족치러!”


“엔. 그러면 안돼. 제발 진정해줘.”


“그래, 엔. 네가 그랬다가는 4구역은 ‘NRK’와 시비가 붙어서 정말로 끝장날 수도 있어.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앉아줘.”

송혜와 사라의 손들이 각자 나를 막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서 조져버리고 싶은데 그 누구도 아닌 사라와 송혜의 부탁이기에 도로 앉아서 다시 술이나 들이켰다. 계속 술이 넘어갈수록 몸이 달궈지고 있었다. 어느새  혼자 두 병을 비워내고 있었다.


“하나 더!”

“돈 없어, 엔. 다 마셨으면 일어나자.”

“시발.”


모든게 허탕이었던 지라 일어서자니 몸과 마음이 무겁기보다는 좆같았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곳보다 훨 배 좋은 술집에서 아낌없이 마시고 구토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고 아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의 손을 잡았다. 들어올 때와 똑같이 더러운 아저씨새끼들의 눈길이 우리에게로 향해왔다. 그 숲을 사고없이 지나쳐가려 했다. 송혜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그런데 웬걸, 내가 아닌 상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두툼한 손이 대놓고  엉덩이를 치는 것이었다. 그 탓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까지 했다.


“시발! 어떤 개새끼야?!”

화가나 뒤를 돌아보지만 모두 한통속이라도 된 듯 ‘껄껄’거리려 웃고 있었다. 삼촌이나 내뱉었을 웃음소리를 생판 처음보는 이 새끼들이 지껄이는 중이었다. 바로 누구든  명을 본보기로 죽여버리려 글록으로 손을 가져갔을 때 송혜의 손이 막아섰다.


“그만둬.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네 반응이야. 여기서 싸움을 걸었다가는 경찰이 나타날거고 바로 4구역을 짓밟으려 들거야. 그러니까 참아줘.”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송혜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데 웬 썩을 놈이 대놓고 그녀의 가슴을 만져대었다. 당장 뽑아서 대가리를 날려 버릴려고 했지만 정작 그녀가 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쥐더니 더더욱 막아서고 있었다. 정작 도와줘야 할 직원도 그저 바라보며 낄낄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서야,  곳이 뭐하는 술집인지 알 수 있었다. 수없이 지나거나 들어갔었던 한 깡패집단의 소굴이었다. 꽤나 힘자랑 하는 깡패들의 소굴.


“시발새끼들이......”

분노의 극에 달해있는데도 스스로 참으며 송혜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아직 기름도 얻지 못했을 뿐더러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벌써부터  놈들의 손이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지만 꾸역꾸역 무시하며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결국은 여기서 내가 엄청난 짓을 할거라고. 불쾌한 감촉들을 무시하며 사라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는데 잡히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뒤에 있던 그녀가 저 멀리 남자들의 무리로 잡혀가고 있는 것이었다. 싫다며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보이지 않을 뿐더러 입까지 막아진 그녀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공포영화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게  나는 머릿속 무언가가 끊어져버렸다. 망설임 없이 글록을 뽑아들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데까지 1초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만큼 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단단히 이성이 나가버린 나였다. ‘마녀’처럼.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놓았을 뿐이었다. 권총을 쏘자마자 상황이 얼어붙었을 때 송혜와 사라를 밖으로 내보냈다. 이후에는 곧바로 술집에 있던 개새끼들과 한 판 붙게 되었고 모조리 급소를 때리거나 나이프를 뽑아 베어버리거나 총알을 팔이나 허벅지에 박아주었다. 몇 놈은 자식새끼 못보게 사타구니를 세게 걷어차 버리기도 했다. 덕분에 수십개의 술병들이 깨지고 테이블들은 반쯤 나가 부서졌으며 의자들은 사용할 수 있는게 별로 있어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져 기고있는 개새끼들은 덤이었다. 종업원새끼는 튀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네가 무사할  같아? 나 ‘카바’파야!”


이제 술병이나 하나 들고 나가려는데 바닥을 기던 웬 놈의 새끼가 나에게 소리쳤다. 아직 덜 쳐맞은 듯 한 놈이었는데 보란듯히 팔에 그려진 문신을 내놓고 있었다. 내가 처음보는 문신인걸로 보아 별 이름도 없는 버러지집단이었다. 감히 나한테 소리친 대답으로 그를 밟아주었다.

“어. 두 가슴 다 달린채로 존나 무사할 것 같아. 시발아.”


이어서 걷어차 버리고 부서진 가게문을 통해 거리로 나왔다. 밖은 벌써 구경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무슨 구경이라도 난 듯 옹기종기들 모여 나를 쳐다보고 있고 맨 앞줄에서는 사라와 송혜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딱 여기까지만 모였다면 맘 편히 돌아갔을 텐데 그럴 일은 없는 듯 했다. 바로 뒤로 검은색의 헐렁한 제복을 입고 무장한 사람들, 10명 정도가 둔기를 들고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중간에 멋들어진 가죽고트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굵은 목소리로 나에게 경찰행세를 하는 그가 이 구역의 경찰인 것 같았다. 자기혼자 형사 행세를 하면서 권총까지 내게 들이밀었다. 흔하디 흔하고 제일 싸구려인 경찰들의 리볼버 권총이었다. 사람들 속, 송혜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사라는 소리만 들을 수 있어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안달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고있던 병의 맥주를 마신  던져버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바닥에 엎드려주었다. 무섭거나 질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주변 상황들 때문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사라가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라 우선은 장소를 옮기기로 생각했고 아마 경찰서를 흉내내는 곳으로 이들이 데려다  것이다. 형사는 내가 엎드리자 무기를 빼앗고 다른 무장한 자들과 함께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송혜에게 빠져있으라는 고갯짓을 보냈고 알아먹었는지 사라를 데리고서 무리속으로 사라져주었다.


이들을 따라가 도착한 경찰서라는 곳은 무너져가던 건물을 보수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창문쪽에 달린 환풍기 하나가 유일하게 돌고 있었고 더러운 화이트보드 하나가  쪽 아래에 있었다. 거지같은 사무실을 지나 전구 하나가 켜져있는 어두운 방에  집어넣었다. 의자 2개와 부서진 테이블 하나, 나름 만들어놓은 취조실이었다. 정말 조잡한 곳이다.


“우리구역 사람이야?”


“여기면 내가 그딴곳에 들어가서 생지랄을 했겠냐? 머리좀 굴려라, 짭신새끼야.”

“짭신?”

“짭새 더하기 병신이라는 뜻이야. 유행어가 될거니까 잘 기억해둬.”

“이 여자가!”

아무래도 이 남자는 경찰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겨우 한 마디에 발끈해서는 화내고 있는데 이렇게 인내심없는 형사는 능력부족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나는 날 개같이 쫓던  형사만을 경찰중에서 유일하게 높게 평가했다. ‘개같이’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개였다. 별명도 ‘부산의 진돗개’였고. 다시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서 회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내 눈앞의 남자는 형사에 어울리지 않았다. 요점은 이것이었다.


“일단 ‘4구역’의 손님이라고만 말해둘게. 됐지?  이제 가도 돼?”


“4구역? 어쩐찌 꼬라지랑 성격보니까 매치가 되네.”

“내 꼬라지가 어때서?”

“거지지.”

내 옷차림을 확인해보았지만 아까 술집에서 보았던 진짜 거지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다. 이 형사는 패션감각도 없는 모양이다.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난동을 부렸으니 합당한 처벌은 받게  거야.”

“처벌? 야 이 개새끼야. 그 새끼들이 먼저 지랄을 했는데 나만 처벌이야? 이거 동태눈새끼네. 아니면 뇌가 시발 야시장 야동시디에 절여졌냐? 우웩, 토나와.”

“불만있으면 당신네 구역에 도와달라 해보던가. 힘이 있으면.”

형사는 굳이 ‘힘’이라는 단어까지 붙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정말, 이 섹터의 구역간 힘차이는 심각하게 고착화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에 대한 차별도. 분명 잘못은 그 개새끼들이었는데 내가 했댄다. 예전에 보았던 윗대가리 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수긍하지 못할 논리는 아니었다. 힘이 있으면 무죄고 힘이 없으면 유죄인게 당연하지. 이건 어디를 가도 따라오는 이치이자 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고로 난 ‘무죄’였다.

“야, 짭신. 넌 여기에 몇  정도 잡아와봤냐?”


“왜? 갑자기 무섭기라도 하신가?”

“시발, 몇 명이냐고.”

“수십명은 되지. 너같은 사람들만.”

“그런데 시발 날 여기에 넣으셨어요? 겨우  정도 집어 쳐넣고.”

“뭐?”

아, 나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역시  형사가 될 일이 없지, 그럼. 우리 형사님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목소리도 굵어져있었다.


“무슨 소린인지 모르겠지. 겨우 갓 사다리에 올라서려는 멍청한 놈이 이미 올라가서 사다리를 쥐고 있는 사람을 어찌알겠어.”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그만 닥치는게 좋을거야.”

손으로 책상까지 세게 치면서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는 힘줄까지 솟아오르는 게 보이는데 차라리 한 대를 치던가 하지. 이게 뭐하는 생쇼인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지쳐서 송혜와 사라에게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누가 일어서라고 했지?!”

그가 고함쳤다.


“니새끼 눈깔이. 병신아.”


손 하나가 나를 붙잡으려 했다. 정말이지 인내심이 없어보였다. 내가  소리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직업과 위치가 달랐기 때문에 난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 형사가 문제였다. 이제 볼일 다 봤으니 돌아갈 시간이었다.

붙잡으려는 손목을 낚아채고 끌어온 뒤 테이블을 발로 차 올려 얼굴과 찐하게 키스시켜주었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싶어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게 바로 손목을 놓고 머리 뒷부분을 잡아 바닥에 쳐박아버리고 발로 눌러 땅에 짓이겼다. 형사의 의식은 날아가고 밖으로 우당탕탕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한 번 시끄럽게도 하네.

형사의 벨트에 끼워져 있던 싸구려 리볼버 권총을 꺼내 들고 총알을 모두 빼낸 뒤 거꾸로 쥐었다. 잠시 쉬는  명상 삼아서 심호흡을 하고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발소리들로  때 바깥에 있는 인원은 10명. 이미 2명이 문 양옆에 자리를 잡았고 한 명이 문을 열기위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윤형사님?”

이상한 것을 느끼고서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문고리가 둘려질 때 튀어나가듯 움직였다. 문을 잡은 손이 먼저 열기 전에 내가 가로채 세게 열어버렸고 미처 문고리를 놓지 못한 남자가 같이 끌려들어오게 되었다.


“형사 없다.”

들고있던 리볼버를 무기삼아 머리를 가격해주었다. 이것을 신호로 발판삼아  밖으로 나가며 옆에서 대기하다 진입하려던 두 놈을 먼저 후려쳐버렸다. 그리고 뒤에서 각자의 무기들로 나를 맞이해주려는 행렬에 자진해서 들어가주었다. 예상대로 10명이 나를 깊이 반겨주었다. 뒤에 이미 쓰러진 3명과 앞에 7명.


“줄 서, 개새끼들아!”

멍하니 있는 갈색머리 남자가 보였다. 가장 먼저 다가가 손잡이로 때려주고 다리를 그의 머리에 걸고 올라 몸의 무게를 싣고서 반바퀴 돌면서 뒤로 던져버렸다. 그 던져진 몸뚱아리에 애꿎은 다른 놈이 넘어졌다. 틈도 없이 다가오는 금속배트. 몸을 숙여 피하고 허리, 발 턱 순으로 가격했다. 그러면서도 뒤로 돌며 비겁하게 뒷치기를 하려던 놈의 관자놀이를 갈겨주었다.


“미친 여자가!”

이번에는 옆, 몸을 힘껏 돌려 리볼버는 던지고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다리를 세워 다가오던 그의 양 어깨에 걸쳤다. 그대로 힘을 실어 지렛대처럼 내 몸은 일으키고 놈은 앞으로 고꾸라지게 했다. 다시 일어서려 하길래 엉덩이를 깊숙이 걷어차 주었다. 더러워라.

이젠 남은  2명. 동시에 나를 덮쳐왔다. 앞으로는 야구배트가, 뒤로는 망치가 다가오던 중이었다. 둔기 2개가 들어온다고 해서 무서울 건 없었다. 이것들보다  위험한 것들은 수십번도 봐왔었다. 자연스럽게 빠른 속도로  놈의 손목을 가격해 망치를 뺏어버리고 배트는 숙여 피하며 내 눈앞에 보이는 그들의 발을 두들겨주었다. 있는 힘껏 망치로 두들겨 주었기에 뼈가 부러졌을 거고 당연한 반응처럼 두 남자가 자신들의 발을 부여잡으며 땅을 기었다.


“에휴, 병신들. 이건 뭐 짭신도 아니고 그냥 짭새끼들이네.”

그다지 힘을 쓴  같지도 않은데 벌써 끝나버렸다. 진짜 경찰들이었다면 이것보다는 더 잘싸웠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이기는 건 변함없지만.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옷품새를 정리하고 책상위에 던져져 있던 나의 글록17과 쿠크리나이프를 챙기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 경찰서는 이제 폐업해야할 것이다. 겨우 한 명한테 가볍게 털릴 정도면 경찰을 할 자격이 없었다.

이제 길도 모르는 이곳에서 애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싶었을 때 마침 앞으로 마중을 오고있던 사라와 송혜가 보였다. 난 그녀들에게 당당한 표정과 승리의 웃음을 보이며 다가가 반겨주었다.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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