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Gluttony (I Love You, Shara) - 1
‘딱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휴게소였다. 주차장에는 난잡하게 트럭들과 차들이 어지럽혀져 있고 비를 피하라고 만든 천장들은 모두 구멍들이 나 있거나 내려앉아 있었다. 음식을 팔았던 가게들은 모조리 폐업되고 건물 안의 식당 카운터는 먼지만 가득했다. 맑은 하늘 아래, 초록빛 하나없는 이 휴게소에는 까마귀들만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나마 치우고 깨끗이 만든 식탁 위에서 사라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이 망할놈의 까마귀 새끼들이 시끄럽게 쳐 울어대는 소리에 밥맛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조류독감 축생 새끼들아! 밥 좀 쳐먹자!”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던지 내가 총을 쏴도 묻힐 정도였다. 탄창 하나가 다 비워질 때까지 쏴대서 여러마리를 떨어트리고 나서야 아침상의 분위기가 되었다. 사라가 놀라서 귀를 막은 걸 뺀다면.
“아침부터 제삿상 쳐먹게 하네. 시부랄 놈들.”
“엔. 그냥 넘어가면 안돼?”
사라의 손을 떼어내주자 불평을 했다. 아침부터 다투기는 싫어서 그냥 알겠다고 말하고 통조림을 뜯었다. 옆에 나뒹구는 까마귀시체가 반짝이는 통조림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못 먹겠지만.
오늘의 상은 꽤나 푸짐하다고 할 수 있었다. 희망없이 들린 이곳 휴게소의 편의점에서 아직 남아있던 통조림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메인요리가 고라니고기였다. 해가 뜨자마자 운전하던 중 운 좋게 고라니와 교통사고가 난 덕분에 풍부한 단백질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큰 동물 한 마리를 나와 사라 단 둘이서. 오랜만에 고기였다.
“많이 먹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몰라.”
살이 많은 부위들을 뜯어내 대부분 사라에게 주었고 나는 주로 뼈부분을 가져갔다. 양은 결코 적지 않았고 그저 사라가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보지 못 한 채로 잘 못 먹다가 뼈를 씹으면 안되니까. 그녀는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잘 구워서 그런지 아무튼 잘 먹어주었고 그 모습을 감상하며 뼈에 붙은 살들을 발라먹었다. 디저트로는 과일 통조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름 풍부하게 즐기는 아침식사였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는 잠깐 쇼핑을 즐겼다. 구닥다리 냄새가 나는 군복상의를 벗어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작게 마련된 옷가게를 사라와 거닐었다. 그녀의 옷은 아직 멀쩡해서 찢어져 있는 스타킹만 갈아 입히고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괜찮은 후드자켓을 발견하나 싶었으니 등 쪽이 찢어져 나가서 도로 버렸다. 오늘 안에는 갈아입을 수 있을까 싶던 중 운 좋게 남색과 검은색이 무늬로 들어간 후드자켓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걸 주워서 들어보니 등에도 ‘Crazy’라는 글자가 적혀있어 딱 나한테 어울리는 후드였다. 그리고 여전한 지퍼형식이라서 공돌이가 골라주었던 것 못지 않은 것이라 바로 입어보았다. 지퍼를 잠그고 깨진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팔을 움직여보았다.
“워우, 편하네. 사라, 나 멋져?”
“엔은 뭘 입어도 멋져.”
“역시! 내 여친.”
좋다. 이게 마음에 들어서 입기로 했다. 추가로 검은색의 청바지와 검은색의 새 운동화로 갈아신은 뒤 카운터에 다 찢어진 지폐더미를 올려두었다. 카드가 없으니 현금결제는 당연했다. 이걸로 옷 쇼핑을 끝내고 잠시 밖을 거닐었다.
싸돌아다니면서도 챙길 수 있는 것들이나 필요한 것들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주는 건물이지만 차가 있을 때는 차들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이외의 물건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차량들이었다. 문이 잠겨있으면 부숴서 열고 앞좌석, 뒷좌석 뒤적거려본 뒤 여유가 되면 트렁크도 열어재꼈다.
“이건 뭐, 박물관이네.”
그러다가 90년대에서나 볼법한 싸구려 차에서 재밌는 걸 하나 발견하데 되었는데 몸뚱아리가 큰 라디오였다. 주파수를 돌리는 것도 버튼이 아닌 돌리는 것일 정도로. 전원은 들어오려나 싶어 켜보았지만 역시 들어오지 않았다. 쓸모없어서 저 멀리 던져버리고 다른 것들을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음악CD가 가득 들어있는 CD통을 찾게 되었다. 옛날 노래들 밖에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역시나 옛날 음악들 뿐이었다.
“사라, 클래식 좋아해?”
“응. 좋아해.”
클래식 음악CD로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챙겼다. 사라가 좋아한다는 데 당연히 챙겨야 마땅했다. 밤에는 안 되지만 낮에는 갈 때 들으면서 지루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공돌이가 준 CD는 벌써 몇 장 정도가 얼마 안가서 스스로의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옛날 차를 뒤적거린 다음에는 큰 트럭들을 살펴보았다. 밤낮으로 달리며 운전했을 트럭기사들의 노고가 있는 만큼 무언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미 누군가들이 털어간 뒤였다. 있는 걸 모아봐야 재미없는 책들과 다 부서져버린 잡동사니들만 가득했다.
휴게실에서의 모든 볼일을 마친 뒤 우리의 차에 올라탔다. 아침도 먹었고 별 소득이 없었던 보물찾기도 끝이 났으니 여기에서 시간을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사라를 조수석에 태우고 이제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라디오에서 잡음섞인 목소리가 기어나왔다. 아침에 켜놨던 게 시동을 걸자마자 따라서 켜진 것이다.
‘알립....다. 이 방송을......치직...신분은...’
몇 단어 듣자마자 꺼버렸다. 흔한 섹터광고였다.
“엔. 방금 라디오.”
“믿지마. 대출보다 더한 새끼들이니까.”
이런 광고를 믿지 않는데는 나의 경험이 바탕을 했다. 세상이 이따위로 망했다고 해도 몇몇 사람들이 라디오의 기술을 되살려내는데 성공했다. 무슨 방법으로 성공했는지는 난 알 턱이 없었지만 아무튼 이 라디오를 통해 자신들의 섹터로 오라는 광고들이 많았는데 열 중에 일곱은 모두 여우새끼들 마냥 순수한 사람들을 꾀어내기 위함이었다. 광고를 듣고 모인 사람들은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가지고 있던 걸 뺏기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운이 나쁘면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도 그 순수한 사람들인 척 라디오를 듣고 찾아가 역으로 기습해 죽여 필요한 것들을 뺏은 적이 많았다. 더 고백하자면 이용도 해봤다. 서울은 그런 놈들만이 있는 소굴이었으니까.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건’으로부터 1년이 지났을 때는 너무 허다한 수법이 되었고 각자들 자신들의 섹터에 자리를 잡아서 아무리 광고를 해본 들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지도를 꺼내 길을 확인했다. 지금 이 고속도로를 타고 쭉 내려가면 전라남도 쪽으로 가게 되는데 중간에 부산으로 갈 수 있는 고속도로가 하나 튀어나온다. 우선 이쪽으로 가볼테지만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대부분 보면 무너져있거나 차들로 꽉꽉 막혀있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덕분에 소중한 기름도 존나게 날려먹기도 했다.
주워온 클래식 음악CD 중 파란색이 들어간 것을 넣고 돌렸다. 그 CD를 고른 이유로는 사라의 눈동자가 푸른색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베이지색 머리카락 때분에 베이지색 CD를 넣어보려 했지만 그 색의 CD가 없는 것도 한 몫 해주었다. 오디오 스피커에서 처음 들려온 소리는 바다였다.
“엔. 바다소리야.”
사라는 깊이 감상하며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바다라도 되는 것 마냥.
“그러게. 바다갈까?”
“아니, 괜찮아. 그냥 옛날 생각이 났어. 친구들하고 바다에 놀러가기도 했었거든.”
친구들. 바다. 그녀와 나의 삶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었다. 사라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집의 딸이었고 나는 콩가루를 넘어선 집의 딸이었다. 이따금씩 나도 사라처럼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곧 관두었다. 그렇게 살았다면 분명히 난 여기서 사라와 함께 오순도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엔도 바다에 가본 적 있어?”
“있는데, 네가 말하는 바다는 아냐.”
“응? 무슨 바다였길래?”
“있어.”
바다에 가본 기억은 여럿 있었지만 놀러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두 총, 칼, 시체, 셋 중 하나를 드는 경우들 뿐이었다. 추가로 말하자면 삼촌과 연관되서 간 적이 제일 많았었다.
바다소리가 끝나고 이어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달리던 중 도로 가운데서 멈추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버려진 차들로 막힌 구간이 나타난 것이었다. 불과 몇 일 전이라면 욕을 한 바가지 싸질렀겠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한 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기 있어.”
시동을 그대로 걸어둔 채 밖으로 나왔다. 걸음을 폐차들로 향했고 이 난잡한 도로를 둘러보았다. 대개 승용차들이 가득했는데 부딪히면서 죽었는지 썩은 시체들도 한가득이었다. 고약한 정도가 아닌 그냥 오물 폐기장급이었다.
“에고고......시발, 시발, 시발.”
어쩌고저쩌고 한탄을 해본들 우리에게 선택권은 있지않았다. 왔던 길들을 되돌아가야 했다. 돌아가는 건 쉬웠지만 문제는 연료였다. 공돌이가 주었던 연료들이 벌써 바닥나고 남은 것이라고는 차 안에 있는 한 칸이 전부였다. 그걸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대략 180km. 턱없이 부족했다. 아직 경상도 부근에 도착한 것도 아니라서 큰일이나 다름없었다. 오는 길들마다 주유소들을 털어보기는 했지만 한 통의 양도 나오지 않았었다. 젠장.
차오르는 한숨과 함께 차로 몸을 실었다. 잠시 머리를 운전대에 박고 생각해본다. 이런 촌구석들에는 섹터를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기름있는 섹터를 더욱 희귀해 함부로 아무곳이나 들어가 약탈할 수도 없었다. 이미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이라 다른 휴게소들을 가본들 기름은 전부 털려있을 테고 폐차들 안의 기름을 뽑아 쓸 수도 없었다. 생각하자, 생각, 생각, 생각!
“으아아악!”
“엔, 무슨 일이야? 뭐가 안 좋아?”
옆에서 사라가 걱정 가득히 물어왔다. 우선 상황은 같이 알고있는게 편할테지. 나는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기름이 없어. 차가 달릴 기름이! 좆됐어. 혹시 기름흐르는 소리같은건 안 들려?”
“들릴 리가 없잖아. 섹터같은 곳들에서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촌구석에 백화점 있는거 봤어? 시발, 광고라도 하면......아, 시발!”
순간적으로 섹터 한 곳이 떠올랐다. 아는 곳은 아니었지만 우연찮게 들었고 섹터광고. 급히 라디오는 켜고 그걸 들었던 주파수로 맞추었다. 잡음 가득했던 광고가 다시 흘러나왔다.
‘현재 우리 섹....치직.....중이며....지직...신 분들은....지지직.’
“옘병.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마지막으로 배팅을 걸듯 켜본 라디오는 잡음 때문에 제대로 들리는 것이 없었다. 다시 고개를 운전대에 쳐박다가 고개를 젖혔다가를 반복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도 부숴버릴까. 그만두자. 기름이 없는 판국에 힘도 아까웠다. 명상을 하 듯 숨을 크게 들이내신 뒤 차를 돌렸다. 우선은 혹시라도 있을까, 그 휴게소로 다시 돌아가보기로 했다. 소리 빵빵하게 잘 나오는 라디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왔던 풍경, 길들을 지나 다시 돌아온 휴게소는 여전히 망할 까마귀들이 꽥꽥 울어대며 반겨주었다. 난 반갑지 않아서 총을 꺼내 쏴 맞추려다가 관두었다. 시발. 스트레스만 더 쌓여가고 있었다. 사라와 함께 차에서 내려 라디오를 찾아보고 주유소를 한 번 들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손이 날 잡아끌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왜?”
“엔, 누군가 있는 것 같아.”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뭐?”
솔직히 기가 막혔다. 아기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아기가 있다는 것인데 엄청나게 위험한 행동이었다. ‘사건’ 이후 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며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을 여럿 보았지만 끝끝내 지키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작은 그룹은 아기때문에 몰살당하는 꼴도 의도치 않게 보았던 적도 있었다. 낮에는 괜찮다 쳐도 밤에는 엄청 위험했다. 지금에야 섹터들이 생겨서 그 안에 있으면 모를까, 이런 밖에서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을 정말로 미친 짓이었다. 나같은 쓰레기 새끼들한테 타겟팅이 되기 정말 편하니까. 점차 그 소리들이 끊겨가면서 이제는 못 듣나 싶었는데 여기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어디쪽이야? 손가락으로 가리켜봐.”
사라가 다시 소리를 기울이다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휴게소 화장실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반대쪽. 그곳에는 차들이 가득한 주차장이었다. 조용히 글록을 꺼내 들었다. 머리 위에는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면서 전봇대나 지붕들을 거닐고 있었다. 영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라,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아기가 있다고 해서 모두 선량한 선인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더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을 지킨다고 극도로 예민해진 부모들은 누구를 만나든 예민하게 굴어버리니까. 나도 애가 있는건 아니었지만 사라가 있어 그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용히 걸음을 내딛으며 사라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서서히 나에게도 그 아기 울음소리가 들여왔다. 그렇게 우렁찬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큰 소리였고 어딘가 안에서 울고 있는 소리였다. 기껏해봐야 차 안일 테지만. 조금씩, 점점 소리가 가까워지고 이제는 어느 차에서 들리는지도 알 수 있었다. 빨간색의 소형차였다. 조금 구형모델이었는데 그곳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천천히, 앞 유리로 다가갔고 일순간 선팅된 차 안의 유리로 묵직해보이는 그림자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 자세히 보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았다.
“떨어져!”
막 유리에 얼굴을 대고 확인하려던 때 내 얼굴이 비치는 옆으로 안경 쓴 험악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고 나를 습격했다. 급히 몸을 옆으로 움직여 피했는데 그가 휘두른 칼에 머리카락이 찍히고 말았다. 남자의 눈은 여럿 보았던 극도로 예민해진 부모의 눈이었다.
“이 미친새끼가!”
멍하게 있지않고 남자의 배를 강하게 차버렸다. 그는 순간 비틀거리다가 다시 나에게 칼을 들고 설쳐댔지만 손목을 잡아 비틀고 무릎을 걷어차 꿇린뒤 턱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움직이면 쏴버릴 뜻으로 글록을 그의 머리에 조준했다.
“시발! 이젠 샵도 없단 말이야. 그런데 머리카락을 찔러? 개새끼야!”
“잠시만요!”
이제는 차의 문이 열리더니 아직은 젊어보이는 여자가 튀어나와서 남자의 앞에 섰다. 품에는 날 여기까지 이끌었던 아기가 울음을 그친 채 안겨있었다.
“제 남편이 실수했어요. 죄송해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여자는 남자 앞을 가로막으며 애원했다. 급기야 내 다리를 붙들기까지 했는데 시끄럽기만 했다. 그냥 아기 한 번 보려고 했을 뿐인데 이게 무슨 꼴인지 짜증이 났다. 확 그냥 쏴버릴까 싶었지만 아기가 있으니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분명 사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엔!”
벌써 가만히 있지 않고 있었다. 베이지색의 사라가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표정부터 무슨 일이냐며 설명을 하라고 묻고 있었다. 나는 조금 억울했다. 내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건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이 남자가 먼저 나를 공격해왔다. 그래서 받아친 것 뿐인데 벌써부터 내가 저지를 것인 마냥 다가오니 영......우선은 설명해주기로 했다.
“난 그냥 소리따라 다가갔는데 남자가 먼저 칼로 공격해왔어. 사라, 이번엔 내가 아니야.”
“당신이 먼저 우리를 위협했잖아! 총까지 들고서.”
“그럼 시발 너같은 새끼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기 하나 없이 쳐다니냐? 뒤질래?”
“진정해, 엔. 알았으니까 참아줘.”
그녀의 손이 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두 손이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며 천천히 달래주었다. 참아보기로 했다. 사라는 남자를 보지 못한 채 말을 시작했다.
“엔은 당신들을 위협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거칠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그만해주세요. 그리고 먼저 엔을 공격했던 건 사과해주세요.”
사라가 정말 오랜만에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내심 기뻐서 끌어안고 이대로 덮쳐버리고 싶었다. 저 남자가 똥씹은 표정만 하지 않았다면! 그걸 봤는지 여자도 남자의 손을 쥐었다.
“여보......”
“......미안합니다.”
“하! 잘 아네. 그런데 어쩌지? 내 머리카락은 엉망이 되어버렸는데.”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머리카락 비용을 받으려 했는데 사라가 대신 받아버렸다. 아니, 되려 줘버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나에게 발언권은 없었다. 나를 제쳐두고 저 부부가 아닌 허허벌판이 된 고속도로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쪽.”
부끄러워 할 것 같아서 그녀의 몸을 잡아 부부쪽으로 돌려주었다. 부부는 사라를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내가 눈을 가리켜주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사라는 사라였다.
“죄송해요. 제가 눈이 안보여서. 아, 저희는.”
“소개는 나중에 하고 일단 자동차들 화장실이든 들어가자. 저 마귀씌인 까마귀 새끼들한테 옘병짓 당하기 싫으면.”
내가 사라의 말을 잘라야 했다. 전혀 웃자고 한 얘기를 아닌게 아까까지 우리는 관심 밖이었던 까마귀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기가 차 밖으로 나왔을 때 부터였다. 하나둘씩도 아니고 모든 새대가리가 이곳으로 시선을 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제 어미의 손을 잡는 아기를 향해서. 이 까마귀들도 절대 평범한 까마귀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부는 서로 아기를 보호하며 빨간색의 소형차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도 잠시 신세를 지며 안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까마귀 따위야 아침처럼 쏴버릴 수는 있었지만 그 때와 지금은 숫자가 달랐고 눈빛도 달랐다. 그저 멍청하게 날아만 다니던 새대가리들이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사라와 여자가 뒷좌석으로, 나와 남자가 무기를 들고서 앞좌석에 앉았다. 아기는 어느 새 잠들어 여자의 품에서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좋아. 자기소개 시작. 1번순서로 아까 하려했던 사라.”
끊었던 분위기를 재개해주기 위해 사라를 지목했다.
“아, 응. 저는 ‘사라 리즈’에요. 그리고 저와 함께 다니는 이 친구는 ‘엔’이구요.”
“저는 ‘김광배’고 이쪽은 제 아내, ‘구재희’.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남자가 힐끗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든말든 나는 혼자 창문 바깥을 보며 까마귀놈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않나 눈여겨 보았다. 귀로는 대화소리를 들으면서.
“아이 이름은 ‘김윤제’라고 해요.”
“좋은 이름이네요.”
까마귀들은 계속해서 지붕에 모여있는가 싶다가 근처의 전봇대로 날아가기를 반복했지만 시선들은 계속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까는 총까지 쏴도 관심조차 없더만 작은 아기를 보고서는 그새 관심이 폭발하나 보다. 귀여운 아기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하던데 이 정도일 줄이야. 벌써 휴게소건물 지붕 위에는 까맣게 칠해지고 있었다.
“두 분이서 다니시는 건가요?”
“네. 주로 엔이 다 챙겨주지만요.”
“대단하시네요.”
“당연하지, 애엄마. 내 여친이 얼마나 대단한데. 미래에 내 와이프 될 사람이야.”
“무시해주세요.”
“뭐야, 그렇게 쉽게 차버리는 거야?”
아직 고백도 안했는데 차였다. 그럼 어쩔 수 있나. 고백은 건너뛰고 바로 프로포즈 준비해야지. 이 부부는 그새 사라와 대화를 트고서 다정하게 얘기들을 나누었다. 역시 사라의 친화력은 대단했다. 방금까지 싸웠던 사람들하고 이렇게 얘기를 나누니 원.
“사라씨와 엔씨는 어쩌다 여기로 오셨습니까?”
“저희는 여기 고속도로를 지나려 했는데 막혀있어서 되돌아왔어요.”
“아, 막혔습니까?”
“틈도 없으니까 가지마. 당신들도 되돌아가는 게 좋을거야.”
“그래야겠네요.”
옹기종기 모여 있던 까마귀들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날개를 펴면서 지붕과 전봇대들에서 벗어나 포기했는지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때였다.
“이봐, 혹시 근처에 아는 섹터 있어?”
“섹터......하나 있습니다. 저희도 마침 그곳에서 나오는 길이었고.”
“그곳을 나왔다고? 왜지. 애까지 있는데.”
애가 있다면 오히려 섹터같은 곳에 있는게 좋을텐데 왜 나온걸까. 그들만의 사정이라도 있는건가.
“그곳을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는 곳입니다. 힘이 없어서.”
“힘?”
섹터끼리의 싸움에서 지기라도 했나. 만약 그 싸움에 져서 모든 걸 빼앗겨서 나온거라면 그럴만 했다.
“어떻게 가? 우리가 거길 꼭 가야해서.”
“추천은 안합니다만 꼭 가셔야 한다면......고속도로를 나가서 보이는 길 그대로 쭉 직진만 하시면 됩니다.”
“추천 안한다라, 꼭 가봐야겠네.”
내 추측이 맞았나 보다. 이들은 섹터를 빼앗기고 나오는 길인 것이다. 아마 깨끗한 섹터는 아닐 테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광고부터 함정 가득한 섹터일 것이니 역으로 기습해서 뺏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막 주인이 바뀐 곳이라면 대가리만 족치면 되고 빼앗기기만 한 거라면 가져간 놈들을 추적해서 족쳐버린 뒤 우리가 뺏으면 되었다. 마지막으로 확인 차 물었다.
“그 섹터, 광고도 해? 라디오 같은 걸로.”
“......네.”
빙고. 사라도 찾았다는 듯 기뻐하고 있었다. 이 부부와의 연은 운이 좋았다. 이제 기름을 얻으러 갈 시간이었다.
까마귀들이 물러가자마자 사라와 나는 우리의 차로 돌아갔고 부부와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빠져야할 국도까지만이었다. 얼마나 멀리 가야할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았고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광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우리와 동갑인 부부였다. 남자가 26, 여자가 23. 아이는 1살. 나는 그들에게 보답으로 주의를 주었다.
“까마귀놈들이 보이거든 절대로 차에서 내리지마. 그 새끼들, 당신들의 아이를 보자마자 눈빛이 달라졌었어.”
“그러죠. 주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도 행운을 빌겠습니다.”
“말은 고맙네. 이미 행운 다 써버렸지만.”
그 후로는 각자의 길을 달렸다. 부부는 고속도로를 타고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내가 알던 도시를 지나는 게 아니라서 그 쪽으로는 딱히 충고나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를 예정대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섹터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여전히 볼 게 없는 황무지, 졸립도록 쏟아지는 클래식 음악. 정말 환상적이었다. 바로 잠들 것 같네. 사라는 이미 잠들어있었다. 그녀는 ‘시드’를 만난 이후로 자주 잠에 빠져들었다.
“존나 이쁘게 자네.”
아스팔트 도로는 뭐가 그리들 지나갔는지 여기저기에 금은 물론이고 사고방지랍시며 만들어진 가드레일들은 쓰러져있거나 끊어져 있었다. 신호등과 속도 표지판들도 곱게 누워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꽃이나 나무같은 것들이라도 자라나 있었다면 꽤나 볼법한 경치였겠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이곳은 황폐한 나머지 모두 썩어가고 있었다.
식물이 자라나지 않는 지역들에 대해서 딱 한 번 설명을 들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에 이해는 개밥으로 줘버렸고 어쨋든 점차 자라나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쌀밥을 먹지 못 한 것도 벌써 1년이 넘어갔다. 딱히 그립지는 않았다. 내 인생에서 쌀밥을 먹은 횟수는 얼마 있지도 않았고 아빠새끼 덕분에 이것저것 이상한 것들만 쳐먹고 지내왔다. 최소한 삼촌이 주던 것은 사람의 손을 한 번이라도 거쳤지만 아빠새끼는 아니었다. 죄다 날 것이었다. 때로는 조리가 되기도 했었지만 조리인지 시발인지 구별이 가야지. 엄마밥은 그리웠네. 성수에다가 씻은 밥.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아빠새끼랑은 달리 나름 ‘부모’라는 역할을 기본적으로 해주었던 분이었고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부모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아빠새끼가 간섭하지 않을 때마다 밥을 차려주었고 나를 데리고서 놀아줬으며 여러 곳을 다니게 해주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장소를 찾자면 그 썩을 놈의 교회였다. 그곳으로부터 밤 시간마다 신박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 번은 벗겨진 채로 하얀 꽃을 들고 누워 의식을 치른 적도 있었다. 의식의 조화가 될 여자가 꽃을 들고 누우면 신도들이 손에 피를 묻히고 내몸을 쓰다듬는 의식이었다. 느낌은 별로였었다. 피 비린내만 심했지.
엄마는 아빠새끼처럼 생사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죽었다. 열심히 신도로서 생활을 하며 나를 키우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직접 보지는 못 했었고 삼촌에게서 소식으로만 들었었다. 내가 유일하게 생각했던 부모였고 나름 친하게 지냈던 엄마였지만 이상하게도 눈물따위는 흘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키워졌으니까. 대신 여러번 꽃을 들고 찾아갔었다.
“뭐여, 이건.”
오랜만에 엄마에 대해 생각하던 도중 검은색의 그림자무리가 드리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는데 수많은 ‘까악’거리는 소리들 덕분에 까마귀무리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숫자로 무리짓는 까마귀들이 철새마냥 무리지어서 차 위를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랄들을 하네.”
이제는 까마귀들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하며 뚫어져라 위를 쳐다보던 그 때, 찰나였지만 한 까마귀가 물고있던 피묻은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모르는 옷가지라면 이상한 걸 모으나보다 했을텐데 불과 몇 분 전에 보았던 아기의 옷이었다.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서 저 무늬를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그런 결말이 된 것이다.
영화나 소설같은 곳에서는 애들이나 아기들이 전쟁이나 괴물들 속에서 죽는 게 나오지 않지만 이 현실에서는 흔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빠르게 죽어나갔고 제일 먼저 목표들이 되었다. 이제는 아기가 귀한 존재가 됐을 정도였다. 저출산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낳기가 어려우니까. 만약 낳았더라고 얼마가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세상, 시발. 하여간 지 멋대로들이네.”
까마귀들이 저 멀리 날아가면서 사라져갔다.
일반 국도를 달린지 대략 1시간하고도 10분이 지나서 조금씩 무너진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거대한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벽의 높이는 마치 하늘과 닿을 정도로 높았고 크립톤들조차 날지 않는 이상 쉽게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멀리서도 커보였는데 문 앞 가까이서 보니 빌딩 정도의 높이였다. 이게 섹터라고? 완전히 처음 보는 곳이었다. 요새같은 이곳은. 거기다 규모도 달리했다. 단순히 도심하나만을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예 이 지역 자체는 둘러싸고 있는 정도였다. 거 참, 말이 안나오네.
우리가 차를 세우고 멈춘 곳은 달랑 도로만 남아있는 섹터의 문 앞이었다. 그 문도 단순히 모래를 쌓거나 철들을 억지로 조립한 게 아니라 진짜로 문이었다. 성의 문. 그 옆에는 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고 우선적으로 초인종을 찾아야 했다. 사라와 함께 차에서 내려 문 옆들을 둘러보았다.
“이게 섹터야, 성이야?”
“많이 커?”
“팔 벌리고 재봐. 한 세월 다 보내걸.”
아쉽게도 초인종 같은 것은 있지 않았다. 그러면 그냥 열리기라도 하나 하고 있는 힘껏 밀어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벽에 이어 문도 요새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고 단단한 문은 그저 제자리만 지킬 뿐, 조금도 움직인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봐! 아무도 없어?! 누구라도 있으면 대답 좀 해봐!”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러보았다. 초인종이 없으니 소리라도 질러봐야지 않겠는가. 그래도 문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사라를 다시 차에 태우고 방향을 돌아가려던 그 때, 꿈쩍도 않던 문이 서서히 알리는 것이었다. 안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내며 열린 문 사이로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2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나의 몇 안되는 친구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의사라는 것을 알리 하얀 가운을 걸친 ‘송혜’라는 친구가. 그녀가 나를 불렀다.
“엔!”
나도 꽤나 당황스러운 나머지 차 안에서 잠시 눈만 꿈뻑이다가 내려야 했다. 내려서보아도 그녀는 송혜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