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Envy (Wake Up, Shara) - 7 (27/72)



〈 27화 〉Envy (Wake Up, Shara) - 7

머릿속으로 욕을 하고 싶은데 그럴 생각의 틈조차 없었다. 내가 있던 모텔 옆 골목으로 놈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고 그 때문에  머리는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어떻게 죽여야할 지를 쥐어짜내는 중이었다. 이동하기 위해 일어서자마자 먼저 녀석들의 총구들이 보였다. 불을 뿜으며 매섭게 나를 노려온다. 콘크리트 기둥들과 철골들을 이용해 요리조리 피하면서 공사장 깊숙이 들어갔다. 이곳이라면 저격수의 눈은 피할 수 있었다. 저 높이에서는 보지 못한 곳이니까. 대신 남은 녀석들에게 유리해졌다. 이곳은 기둥 말고는 엄폐물이 없는데다가 사방이 뚫려있는 넓은 곳이었으니까.

“저쪽으로 돌아가!”

누군가가 지시를 내리며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빈틈없이 포위를 할 계획인 것이다. 시간이 촉박했다. M79를 너무 애용하게 되는 것 같은데 사실이었고 벌써 유탄을 끼워 넣으며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천장에 아래로 삐죽 튀어나온 철골들이 보였다. 마침 거기로 6명 정도가 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바리게이트로 삼은 기둥에 M79를 붙여 곡사를 계산했다. 천장에 맞도록 잘 쏴야했다. 곧 그 놈들이 내가 원하는 위치로 들어왔을 때 방아쇠를 당겼다. 폭음이 들리고 철골들과 함께 그 주위의 콘크리트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놈들을 깔아뭉갰다. 동시에 뿌연 연기가 연막처럼 퍼져나갔다. 그걸 방패삼아 위치를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해 그쪽으로 내달렸다. 이것역시 미완성된 계단이었지만 올라가다가 부서지는 일을 없었다. 올라옴으로서 잠깐의 틈을 벌고 유탄을 장전한 뒤 M79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2층은 1층과 달리 미로처럼 여러 자재덩어리들과 기둥들, 철근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괜히 쐈다가 천장이 무너지거나 아래가 꺼지면 나에게도 위험했다.


가방에서 사용했던 피묻은 단검을 꺼내 손에 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그려나갔다. 어차피  녀석들이 올라올 곳이라고 해봐야 저 계단뿐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것 중에는 그랬다. 벌써부터 발소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먼저 올라오는 놈부터 단검으로 머리를 찍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반대로 내가 좆되게 생겼다. 계단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발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이다. 재빠르게 벽들을 엄폐삼아서 숨었고 재차 소리들을 확인했다.

“와, 미치겠네.”

짜증은 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보지만 발소리들이 너무 난잡해서 그러기도 쉽지가 않았다.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삼촌이 일러준 것이 있었다. 우선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부터 천천히 족쳐버리라고.  별로  방법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괜히 먼저 온 놈들부터 족쳤다가 옆 혹은 뒤에 있을 어떤 모를 놈이 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했던가. 그 사기꾼이 그래보여도 꽤나 쩔어주는 군인이었으니 믿고 그의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먼저 속으로 셋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바로 튀어나가 계단 쪽의 놈들을 족치려 달려갔다가 유턴했다. 역시  사기꾼 새끼 말을 믿는게 병신이지. 족쳐버리기는 커녕 잠깐 비친  모습에 한 팀이 위치를 대중홍보 해버린 것이다.

“저기 있다!”

얼마나 우렁찼는지 2층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덕분에 난잡했던 발소리들이 더 개판이 되었고 시뮬레이션은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이젠 어쩔  없었다. 단검을 집어넣고 글록17을 꺼내들었다. 예고한 총알을 다 쓰기까지 앞으로 11발.  첫 발을 쏘기 위해 몸을 벽 밖으로 내던지며 내 허락없이 홍보를 때린 놈부터 겨누었다.

“여기 있다!”


방아쇠를 당겨 튕겨나간 총알이 그의 목을 뚫었다. 이제 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목숨은 덤이고. 그 첫발을 쏘고 다시 미로같은 벽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모든 발걸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벽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출구를 찾아 나섰다. 적들도, 나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발소리들이 아무리 난잡한들 어디서 가장 가까운 소리가 들리는지 정도는 알아챌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바로 옆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4명. 바닥에 굴러다니던 작은 파이프하나를 주워들고 소리가 완전히 가까워졌을 때 힘껏 휘둘렀다. 얼마나 세게 휘둘렀냐면 파이프와 부딪힌 헬멧이 깨질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에서 바짝 달라붙어 오던 놈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고 난 재빨리 단검을 꺼내 급소들을 파고 들었다. 총을 쏴볼 틈도 주지 않았다.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로 다른 놈들은 내게 도달해 벽들을 엄폐물 삼아 총구를 내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놈을 처리하고 옆에 있던 벽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날 잡지 못 해 분한지 여러 발의 총알들이 벽에 박히거나 지나갔다. 벌집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하마터면 발목이 날아갈 뻔했다. 이미 팔한 쪽도 없는데 한쪽 발마저 날아가 외발이 되는 것은 극구 사양이었다.


“우리 재혁이, 애새끼들 좀 빡세게 가르쳐놨네.”

저번에 싸운 꼬맹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걔네들처럼 흐트러져 있는 것도 아니라 함부로 돌진해 손을 써볼수도 없었고 숫자도, 조직력도 달랐다. 권총을 들고 벽을 따라가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부러 큰 발소리를 내 위치를 노출시켰다. 이건 훈련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쫓아오도록 만들 수 있었다. 저쪽은 쫓는 입장, 나는 쫓기는 입장. 벌써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앞과 오른쪽 벽 너머. 미리 글록을 들고 달려가며 앞에서 튀어나온 헬멧을 쏴버리고 그를 방패삼아서 한 번 기대고 돌아 뒤에 있던 3놈에게  발씩 꽂아주었다. 남은 총알 8발. 맨 뒤에 있던 놈이 바로 쓰러지지 않아서 단검으로 마무리 지었다.

바로 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가 양손에 식칼 하나와 나와 똑같은 단검을 들고 덤벼들어왔다. 나도 저렇게 들고 싶은데 외팔이라 불가능한 상대로 그는 보란듯이 매너없게 행동한 것이다. 하기야, 목숨이 걸린 일에서 누가 매너를 따질까. 수염남을 선두로 뒤에는 도끼와 벼를 벨 때 쓰는 작은 낫을 들고 나에게 휘둘러왔다. 나도 받아치며  번 부딪혔는데 그 거대한 똥개랑 싸울 때 다쳤던 팔이 저려왔다. 거기다 얘네들, 근접전에 익숙했다. 아침에 상대했던 대머리보다는 아니었지만여기저기 나의 빈 곳을 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팔과 허리 쪽에 날이 지나간 흔적이 남게 되었다. 군복이 베어나갔다.

“수염 깎는데 헤로인 1g.”

겨우 만든 빈틈으로 수염남의 턱수염을 반듯하게 잘라버렸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칼날에 그가 놀라 잠시 주춤했다.

“거시기는 무료.”

그 주춤함을 파고 들어가 단검으로 사타구니를 찔러버렸다. 이상한 것이 베여지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수염남의 표정은 기분이 좋은지 눈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바로 뒤에 달려오던 남자를 걷어차고 목을 찌른 뒤 남은  명도 수염남처럼 사타구니를 베어버렸다. 두 번째지만 역시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던져!”


칼싸움이 마무리되었지만  새로운 싸움이 들어왔다. 미친놈들이 수류탄이라도 던지나 했는데 차라리 그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들이 많아서 수류탄이면 피하기라도 했지, 예상을 깨고 들어온 것은 기름을 가득히 넣어 불과 함께 날아 들어오는 화염병들이었다. 아예 통구이를 만들 생각이었다. 재혁이가 아주 칼을 갈고 총도 닦아놓은 것이다. 그래, 우리가 이 정도로 악연이긴 하지. 나 같아도 최소한 무기 한 트럭을 싣고 찾아갔을 것이다.


화염병들이 깨지고 흘러들 나오는 기름에 불이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붙어나갔다. 다급한 상황이지만 생각없이 움직여서는 안되었다. 혹여나 기름이라도 튀어서 불이 옮겨 붙으면 옷이며 살까지 다 태워먹을 테니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내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반대쪽이었다. 그쪽으로 향해 달려가면서 권총을 쥐었다.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화염병은 내가 가려는 길목들로 하나씩 날아와 깨지며 불바다를 만들어갔고 그 속을 헤엄치며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총구를 내보이고 있었다. 덕분에 죽일  있었다. 먼저 꺼내놓고 있던 권총으로 3발을 쏴 총알세례를 피하고 다른 벽으로 들어갔다.

이제  명이 남았을까. 이상하게도 발소리들이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까 짧게 보았지만 지금 나에게 화염병을 던져댔던 놈들만 숫자가 10명은 되어보였다. 다수를 처리 하는데는 폭발물이 짱이지. 근데 난 한 명이잖아. 시발, 매너 가져다가 팔아먹었네 진짜.

귀를 기울였다. 1층에서 새로 올라오는 발소리들. 탄을 장전하는 소리들 사이로 누군가가 라이터의 불을 켜는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우리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나의 귀도 돌아오고 있었다.

“던져!”


적의 목소리. 그 타이밍에 맞춰 나도 벽 밖으로 나서며 총을 겨누었다. 적이 아닌 이제 던져 날아오려는, 적의 손에 쥐어진 화염병에.

“화끈하게.”

총알이 튀어나가 화염병을 터트려버렸다. 원래라면 나를 덮쳐올 기름이 저들을 뒤덮고 순식간에 불을 싸질렀다. 거기에 추가로 유탄을 꺼내 몇 개를 던지고 M79를 꺼내들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아직도 1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놈들을 이대로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나도 위험부담이 있겠지만 대신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잘 빠져나가 재혁이를 죽여버릴 자신감.


어렵게 마음을 다잡고 이대로 쏴버리면 끝이었겄만, 하늘이 아닌 저 멀리 있던 저격수가 허락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날아온 M79의 총구를 때려 저 멀리 벽 밖으로 밀쳐 내버렸다. 이 새끼, 위치를 옮긴 것이다. 그 위치를 찾아볼 시간은 없었다. 바로 자리를 떠나 움직여야 했으니까. 저격수로부터 반대쪽으로 바르게 달려가 벽에 기대었다. 유탄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가방도 마찬가지라 벗어서 단검하나와 포박줄 하나만 챙기고 던져버렸다. 이제 걸리적거리기만 했다.

“둘러싸!”


거 참, 좆됬네. 1층에 있던 발소리들이 어느  2층으로 올라와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다 아까처럼  숨은 것도 아니라서 이미 놈들은 내가 어디에 숨었는지도 까발려진 상황이었다. 쉬지 않는 총성들과 빈틈없는 총알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권총으로 맞대응하고 싶지만 그럴 틈이 아예 없었다. 영화같은데서는 멋있게 나가서 총알들을 피하며 적을 죽이지만 이건 빌어먹을 영화따위가 아니었다. 머리를 굴려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난 완전히 둘러싸여 재혁이한테 끌려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짜증과 화가 솟구쳤다. 이게 다 망할 석재새끼 때문이었다. 젠장, 사라!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바로바로 머리에 그려지지 않던 그 때 익숙함 울음소리가 들여왔다. 이 도시에 와서 듣게된 울음소리. 겨우 이틀 뿐이지만 지겹도록 들은 개의 울음소리가 이 주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에 나뿐만이 아닌 재혁이 똘구들도 모두 한 곳에 시선들을 모으고 있었다. 총알세례와 발걸음들이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은 내가 있는 쪽이었다. 나는 기대면서도 볼 수 있었다. 헬스클럽을 끊고 몇 날 몇일을 단련해온 듯 한 매드독 3마리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저 밑으로 수십여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도 지랄이고, 개새끼도 지랄이고. 하여튼 멀쩡한 새끼들이 없는 곳이네.”


이게 악화되어 보이는 상황이긴 했지만 오히려 더 나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이 똥개들이 중간에 끼얹은 이상 사람끼리 싸워봤자 복잡하고  지랄같이 변할 뿐이었다. 그러니 먼저 이 매드독들을 정리하려 들 것이고 그 사이로 헬멧들을 조금씩 줄여갈 생각이었다. 나에게 기회가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당장 내 앞에 있는 3마리를 죽였을 때의 이야기다.


뻐근하다 못해 삐그덕 대며 난리부루스를 쳐대는 몸을 강제로 일으켜 단검이 아닌 쿠크리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우선 이 3마리부터  밑으로 보내버리고 생각하자. 이제서야 보는데, 중간에 있는 매드독은 한 번 보았던 놈이었다. 뒷통수를 맞고 버려졌던 그 사거리에서 날 멀뚱히 쳐다보았다가 가버린 놈이었다. 이런 인연이 다 있나. 시발. 싸움의 준비를 끝내고 몸을 일으키며 나이프를 쥐었다. 그리고 칼날을 들이밀었다.


“똥개새끼가!”

외침. 그리고 싸움을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죽였다고? 그건 아니다. 오히려 이해가 안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개들은 내가 공격자세를 취하고 덤벼들려고 했음에도 이빨을 내밀기는 커녕 갑자기 머리를 숙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자세, 많이 봐왔던 자세였다. 주로 깡패새끼들이나, 아니면 내가 족쳐버렸던 곳들에서 패배자들이 보이던 자세였다. 이쪽 업계가 대충 그렇다. 기존의 대가리를 죽여버리면 죽여버린 놈이 새 대가리가 된다. 아무래도 내가  새 대가리가 된 것 같았다.


“......하! 개새끼들이 사람보다 낫다고들 하던데.”

나이프를 내리고 허탈한 자세로 한숨을 쉬고 한바탕 웃었다. 내가 이 미친 개새끼들의 새 대가리랜다. 웃겼다. 참, 여러 번 대가리 노릇을 하긴 했지만 미친개들의 대가리라니. 그런데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미친개와 미친년, 정말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다.


“일어서.”


내 말을 알아먹는지 간단한 명령을 해보았다. 지능은 어디 가지않았는지 머리를 조아리던 3마리가 튼실한 다리를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눈에 상처가 난 놈이 나를 쳐다보는데 이 새끼만이 위압감이 달랐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개장수여, 시발. 존나 재밌네. 사실 보신탕  입도 먹어본 적 없는데.”


5발이 남은 권총을 꺼내들고 나의 위로 1발 쏘아올렸다. 그 소리에 아마 모두가 집중되었을 것이다. 나에게로.

“재혁아! 나 4발 남았다! 다 쓰기 전에 나오면 애완동물로라도 데리고는 있어줄게! 빨리 나와!”


다시  번 더 한 발 쏘았다.


“3발!”

여전히 재혁이는 답이 없었다. 방아쇠를 한  더 당겼다.

“2발!”


그 년의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한 발 더.

“1발!”

탄피가 옆으로 튕기며 굴렀고 내 총에는 마지막 탄환이 남게 되었다. 이게 나의 마지막 인내심이자 재혁이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숨어버린 채 대답도 없었다. 분명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방아쇠에 손이 올려지고 마지막 인내심이 탄환이 되어 주위를 울렸다. 권총의 빈 탄창을 빼서  탄창을 끼워 넣었다. 새로운 17발의 총알이 이 망한 전투일지의 종지부를 찍을 잉크가 되어주었다.

“야, 눈깔 상처난 놈. 넌 오늘부터 맥스야.”

눈가에 상처난 개에게 ‘맥스’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상남자답게 생긴 게 너무도 어울렸다. 맥스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무자비한 냉혈함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뷔페라도 즐겨보겠어? 맥스. 여자들 빼고 나를 죽이려 했던 저 시발놈들, 다 뼈까지 발라먹어. 여자가 보이면 건들지 말고 내 앞으로 끌고와.”


맥스가 내 말을 알아듣고 아까보다 더 우렁차고 긴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 울음소리에 이곳으로 몰려들었던 매드독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맥스와 나머지 두 말의 매드독도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귀염성 있는 매드독들은 일제히 재혁이의 똘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수많은 비명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훅 가버리는 놈들도 적지 않았다. 매드독들이 목부터 노리며 뜯어버렸으니까.

나도 구경하기 위해 직접 행차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맥스였다. 그 녀석은 목을 물어뜯을 때 다른 놈들보다 이빨이 강한지 아예 목과 몸을 분리시켜 놓았다. 나도 배워야 할 수준이었다. 매드독들이 계속해서 물어뜯는 동안 나는 여유롭게 부서진 기둥 하나에 앉아 가쁜 숨을 쉬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싸움지랄만 해온 나에게 필요한 것을 휴식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빵 뚫린 2층과 재밌는 눈요깃거리와 배경음으로 깔린 비명들. 나에게 있어 오랜만에 즐기는 바캉스나 다름없었다. 원래부터 이런 상황을 즐겨왔다가 사라를 만나고서 제대로 즐겨보지 못했던 바캉스였다. 여기에 술만 있었다면 더 완벽했을 텐데. 아까워라.

앉아서 정리가 되는 것을 지켜보던 도중 나를 쐈던 저격수가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렵게 구한 보물 중 하나를 작살낸 놈인데 하마터면 잊고서 놓쳐버릴 뻔했다. 맥스를 시켜 그 새끼 엉덩이를 물어 뜯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리려 할 때 매드독들이 헬멧을 쓴 누군가의 다리를 물고서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이것들이 잘 못 잡아온  알았는데 비명소리가 여자의 것이었다. 그럼, 우리 맥스가 그런 실수를  리가 없지.


“잘했어, 맥스. 넌 남고 나머지 놈들한테 저 건물에 있는 저격수새끼, 엉덩이  쪽으로 갈라버리라고 해.”

맥스는 정말로 똑똑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먹고 있는 것이다. 맥스가 다른 매드독들에게 한 번 짓더니 3마리가 공사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놈들은 다리도 안 아픈가. 나도 저런 튼실한 몸이었다면 여러모로 좋았을 것이다. 이것도 다 아빠새끼 때문이었다.

맥스가 물고  여자의 헬멧을 벗기자 안에서 예쁘장하게 생긴 단발의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핫팬츠 밑으로 드러난 다리에는 한 쪽 발목이 꺾여있고 피가 흐르며 상처가  있었다. 매드독들이 물어오면서 생긴 상처고 발목은 모르니까 패스. 여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재혁이 밑에 죄다 고추새끼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스코리아도 계셨네. 이름이 뭐야?”

여자는 겁을 먹고 있었다. 겉으로는 숨기려 하지만 날 속일 수는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알려줄 이름 따위 없어.”

“이열, 언니 쎈데?”


차였다. 고작 이름만 알려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언니, 내가 사람 한 명 찾고 있거든? 베이지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졌고 미인인 여자랑 좆달렸고 빼빼마른 뺀질이 새끼 본 적 있어?    명만이라도 봤으면 돼. 봤어? 못 봤어?”


“몰라, 본 적 없어.”

그럼 뭐, 어쩔 수 없었다. 무조건 봤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금방 수긍할 수 있었다. 겨우 똘마니 중  명인데 못 볼 수도 있지.

“그럼 우리 재혁이는 어디있는지 알아?”


이건 모른다고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재혁이는 자기 똘마니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얼굴을 내밀고 다니는 년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마지막 존심이라도 세우겠다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몰라.”


“그래? 그럼 쓸모가 없네. 맥스!”

나는 옆에 있던 맥스를 불렀다. 맥스가 자신의 단단한 두 앞다리를 내세우며 일어섰다.

“이 여자, 먹어도 돼.”

“잠깐! 잠깐만!”

잠시 손을 들어 맥스를 멈추게 했다. 여자는 떨리는 눈동자와 함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그녀의 뒷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왜?”

“어디있는지 알아. 리재혁이 어디있는지.”

“그래? 근데 필요없어.”


여자의 애원하는 울상을 무시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할거면 진즉에 말하겠다고 하던가. 왜 시발 지 목숨 날아가는 상황이 되야만 말하겠다고 지랄이야? 짝짝꿍 놀이하냐? 거기다가 재혁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어차피 걔나 나나 서로 만나게 되는건 무조건이거든.”


“기다려, 잠깐만!”


“쌍년.”

그녀의 배에 올리고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매끄러운 배였다. 사라처럼 부드럽기보다는 탄력있는 매끄러운 배.

“욕봤어.”


여자는 무어라 소리치려 하지만 그러지 못하도록 배를 세게 걷어차 버렸다. 그녀가 매드독들 사이로 나뒹굴고 배를 움켜잡았다. 옆에 있던 맥스는 명령만을 기다리며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 나의 애견에게 팁을 말해주었다.


“맥스. 자궁부터 뜯어먹어. 거기가 제일 맛있어.”

앉아만 있던 맥스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두터운 두 앞발로 여자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밟아버렸다. 그녀는 눈알을 굴려 맥스를 쳐다보았지만  이후의 장면들을 빠르게 지나갔다. 맥스의 입이 그녀의 배를 물어뜯어 열어버리고 안에 있던 장기들 중에서 자궁을 꺼내 물어 빼내었다. 주변으로 붉은 피들이 페인트 칠하듯 튀어나가고 맥스의 이빨에 걸려 튀어나온 소장은 밖으로 줄을 이었다. 여자가 넘어가는  속으로 날카로운 소음을 내지르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맥스가 이어서 다른 장기들도 꺼내 씹어 먹고 있었다. 벌써 입가와 털에는 붉은 색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정말로 볼만한 광경이었다.

맥스가 몇 번 먹고나서 자리를 물러나자 남은 시체덩어리를 다른 매드독들이 달려들어 뜯어먹었다. 여자의 팔이 닭다리마냥 뜯겨져 나가고 동태눈깔이  얼굴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벌써 붉은 웅덩이 속으로 뼈가 드러나보이고 있었다. 잘도 쳐먹네.


맥스에게 자궁부터 먹으라고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음 먹어본 사람 부위가 자궁이었기 때문이다. 아빠새끼는 내게 먹는 것도 생존으로서 중요하다며 벌레, 각종 동물들로 모자라 어디에서 데려온지도 모르는 남자와 여자를 내게 먹이기도 했었다. 그게 첫 인육식사였다. 그리고 가장 처음 입을 대보았던 게 자궁이었다. 맛은 없었다. 중간에 구역질도 하고 구토까지 했지만 아빠새끼는 내가 그것들을 다 먹을 때까지 지하방에 가두어 두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날들을.


물론 지금은 아예 입에 대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번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먹은 적이 없었다. 인육은 아무리 미친년인 나라도 거북했다. 대신 곤충이나 지나가던 고양이들을 쳐먹고 말았지.

“맥스. 이년처럼 여자들은 다 내게 끌고와. 알겠지? 그리고 무기없는 년들은 아까처럼 다리 물어서 질질 끌고오지 말고 유도해. 너희들 그런거 잘하지?”

맥스가 매드독들에게  번 짓고 함께 공사현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몸을 털며 걸음을 공사장의 끝으로 옮겨 저격수가 있던 방향들을 둘러보았다. 죽었나 안 죽었나 확인하려는 건데 타이밍 좋게 그 놈이 죽는 광경을  있었다. 저 멀리, 유리창들이 깨지며 매드독과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 하나가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무언가도 떨어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스코프가 달린 일반 라이플이었나 보다. 새끼들, 일 잘하네.


지긋했던 공사장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오던 중간에 버렸던 가방에서 도로 신발을 갈아 신었다. 전투화는 싸울 때는 좋은데 발이 아팠다. 투정을  부렸을 뿐이지 실은 신고 있는 내내 아팠다. 원래 신발을 신으니 한 결 나았다. 이제 재혁이만 찾으면 되었다.

매드독들은 맥스를 따라 이 건물, 저 건물 들어가 이 잡듯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중 뒤적거리지 않는, 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내 직감으로는  곳에 재혁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기다리면서 말이지.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기 전 잠깐 맥스를 불렀다.

“맥스! 그냥 나한테 데려오지 말고 선착장 입구에 모아놔.”

알겠다며 멀리서 ‘컹’하고 짓는 소리가 들렸다. 새끼, 똘똘하네.

걸어서 다가간 선착장은 큰 편은 아니고 서울 한강에서나 볼  있는 정도의 적당한 크기였다. 아닌가, 큰 건가. 아무튼 있을 것은 있어보였다. 3층 높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깥 안내도를 보니 1층에는 매표소와 식당, 편의점이 있고 2층에는 직원들이 드나들었을 직원실이, 3층에는 반쪽의 옥상정원과 전망대가 있다고 적혀있었다. 재혁이라면 어디에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어느 것을 보든 최종보스 같은 것들은 항상 꼭대기에 있기 마련이고 재혁이도 북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항상 꼭대기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그년 밑에 있을 때도 그 년은 항상 위에서 우리를 보았다.

선착장의 입구다리를 건너 있지도 않는 유리문을 지나 식당을 가로질렀다. 끝쪽에 난간이 다 부서진 계단은 금이 심했다. 공사장에서 올랐던 계단보다도위험해 보였는데 내가가벼워서인지  버텨주었다. 계단을 오르며 오랫동안 나와 함께해 세월의 흠집을 가진 글록17을 꺼내 들었다. 불이 꺼지고 어둡기만 한 2층을 지나 3층에 다다르자 바깥의 햇빛이 안을 비추고 있었다. 동전을 넣고 한  구경할까 하다가 옥상정원에서 비쳐오는 그림자에 관두기로 했다. 썩어버린 잔디들과 부서져가는 나무들, 색바래고 울퉁불퉁한 흙들이 나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었다.  위로 ‘터벅’, 발걸음을 옮길 때 마침내 만나고 싶었던 얼굴이 고개를 돌리고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 때와는 달리 물들인 머리가 남아 초록색  뭉치와 검은색인 머리카락, 볼짝에는 나 때문에 생긴 일자형의 흉터가 있고 매서운 검은 눈동자가 예뻤다. 밑은 다 헤진 검은색 코트에 아래로 멋이라도 챙기려는 건지 가죽바지과 가죽구두, 파란색의 청셔츠가 차가움을 더했다.


“오랜만이다. 머리 예쁘네. 그동안 내 돈 먹고 잘 지냈어? 시발련아.”


“집어치워.”


나름 옛 정이 있어서 편하게 인사를 건넸는데 집어 치우란다. 역시 정 없는 년이었다. 아무리 악연이라도 가벼운 인사정도는  수 있는거 아닌가.


“그래, 석재때문에 온 거겠지? 그 장애인여자 찾으러.”

“잘 아네. 그리고 장애인 여자가 아니라 사라야. 이름 예쁘지?”

“의외야. 정말로.”


그새 말이 잡혔는지 북에서 쓰던 말투는 온데간데 없고 슬슬 우리말을 잘 내뱉고 있었다. 물론 억양은 좀 남아있었다.


“뭐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


“‘사람’이라면 죽이는 것 밖에 모르던 미친여자가 그렇게 멍청하고 세상모르는 여자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는 거.”


“야, 나도 ‘사람’이라고 해서  죽였던  아니거든! 친구도 사귀고 했거든! 사라는  이상인  여친이고. 그 썩은 뇌에다가 박아둬. 존나 비싸고 중요한 정보니까.”

“......석재는 여기에 왔었어.”


“알아. 네가 네 입으로 이미 말했잖아. 병신아. 어디로 갔는지나 말해.”

“말해줘도 순순히 지나갈 것도 아니지 않나? 거기다 나도 볼일이 있고.”


“새끼. 이젠 몸으로 얘기 안해도  알아먹네. 솔직히 나도 네가 순순히 불거라고 생각 안 했.”


“이미 배를 타고 건너갔어.”

내 말을 끓고 대뜸 재혁이 말했다. 보란듯이 무시하는 그 끊음에 화가 나서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기로 했다. 총구를 그년에게 들이밀고 쏴버렸다. 재혁이는 알고 있다는 것처럼 옆으로 몸을 던지면서 총을 꺼내 내게로도 총알을 쏴재꼈다. 나도 옆으로 피하며 벽 뒤로 숨어들어갔다. 서로가 첫 발로 인사를 나누었다.

“씹년아! 돌려서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넌 죽어.”


“야! 방금 못 봤어? 나한테 미친개 부대가 생긴거!”


“자존심때문에 안 부를 거잖아.”

“하여튼 미운 말만 골라서 존나게 밉네. 시발 것. 치사해서 안 부른다, 간나년아.”


“맞는 말이겠지.”


우리는 서로 고개를 내밀고 빠르게 위치를 확인한 뒤 서로에게 한 발씩 추가로 나누어주었다. 재혁이가 한 칸 앞서오고 내가 한 칸 뒤로 물러났다. 올라왔던 계단이 바로 옆에 있었다.

“맞아! 근데 하나 틀렸거든. 나 안 죽어. 지금 외팔이됬다고 존나 무시하나 본데 시간만 좀 걸릴 뿐이지, 그 때랑 다를 거 하나도 없어. 알던 새끼가  하나 사라졌다고 무시하지마! 뒤진 게 아니면. 이름은 그대로니까.”

“그래? 그럼 남은 팔도 자르고 다시 말해줄게.”


또 저년이 무슨 정신 나간 말을 하나 귀기울이던 소리 속으로 ‘이게 여기서 나오나?’라는 의문이 생각될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방금 보지 못했었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보자마자 계단으로 빠르게 도망갔다. 지금 재혁이가  것은 북에서 애용한다는 돌격소총이었다. 지금에서야 어째서 석재가 AK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되었다. 뜬금없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긴 싸움이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싸움이었지만 사라를 위해 참고 달렸다. 바로 뒤로 굵직한 총알비가 쏟아져왔다. 이어서 조금씩 하늘에서도 비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악연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가 정말 싫어할 정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