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Envy (Wake Up, Shara) - 6 (26/72)



〈 26화 〉Envy (Wake Up, Shara) - 6

“사라 데리고 튀어! 오지마!”

엔의 외침이 들리고 석재씨의 손이 날 잡고서 어딘가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엔과 반대쪽 방향이었다. 보지는 못해도 소리로 알  있었다. 아까 계단에 부딪혀 아픈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석재씨를 따라가다가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그의 행동에 이상함이 느껴져서 물어보았다. 엔이 저기에 있는데 그는 계속, 계속 달렸다.


“우리 어디까지 도망가는 거에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계속 나아갈 뿐이었고 엔이 있던 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만 있었다.

“석재씨. 엔을 도와줘야 해요. 너무 멀리가면.”

“도망가자.”

‘엔을 돕지 못해요.’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멈추더니 그가 내 말을 자르면서까지 말했다. 도망치자고.  말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하게 했다. 즉슨, 엔을 돕지말고 이대로 도망치자는 뜻이었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무거운 고백을 하는 것처럼 그가 설명해주었다.

“엔의 곁에 있으면 넌 위험해. 분명 언젠가  사고를 당할거야. 그러니까 도망가자.”

“싫어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보고 엔을 버리고 자신과 같이 가자는 그 말은 나에게 호의가 아닌 상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런데도 그는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사라. 엔이 너한테 하는 행동들, 모르겠냐? 안그래도 앞이 보이지 않는 넌데 계속 위험 속에 내몰고 있어. 역겨운 길을 걷게 하고, 무기를 쥐어주고, 아까도 나와 함께 가야 안전했는데 엔은 오히려  데리고서는  지경으로 만들어놨어. 방금도 봐. 죽을 뻔했잖아! 엔의 행동은 널 보호하는 게 아냐. 대신 내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나와 함께.”


“그 말, 이미 여러 번 들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버렸죠.”


듣기 싫었다. 지켜주겠다. 함께가자. 많이 들었던 말이었고 결과는 늘 버려졌었다. 지금 석재씨는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듣기 싫었다. 뿐만 아니라 겨우 이틀 남짓 다니며 보았던 엔의 행동들을 이유로 날 설득에 나서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납득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행동은 거칠었고 지금까지 나를 데리고 지켜주었던 사람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던져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엔과 다녀보지 않고서 단면만 보았을 때였다. 그래서 석재씨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그리고 엔에 대해서 아는 척 얘기하지 마세요. 정말로 엔이 절 지켜주지 않았다면 그 때, 그 지옥에서 구해주지도 않았을 거고, 벌써 버렸을 거고, 아까처럼 석재씨에게 그 어떤 순간에도 맡기지 않았을 거에요. 그녀는 지금까지, 그 어떤 곳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제 곁을 떠나지 않아줬어요. 매일 밤마다 저 때문에 잠자지도 않고, 걸을 때마다 한 손밖에 없는데도 제 손을  잡고서 놓지 않아주었고, 항상 부족한  채워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저를 믿어줬어요.”

그의 걸음과 나의 걸음, 둘 모두 멈추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한 숨.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한숨의 의미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놓으며 부탁했다.

“엔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안돼.”

그가 단호히 거절했다. 그럴 것 같았다. 지금 우리의 대화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연습 때 빼고는 아직 사용하지 않았던, 엔이 만들어준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총성소리가 울렸는데 엔의 것임을 쉽게 알아채었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돌리고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많이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그럼,  혼자서라도 돌아가겠어요.”

바닥을 두드리며 길을 나섰다. 세걸음 겨우 내딛었을 때, 석재씨의 목소리가 내 등을 두드렸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그 두드림에 문을 열고 답해주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 마세요.  만큼 석재씨는 모를 저와 엔 사이에 강한 무언가가 있다는 거니까요.”


“그래? 그러면 너희한테는 뭐가 있는 건데? 내가  모르는 건데?!”

“......저와 엔의 유대.”

다시 문을 닫아버리고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걸었다. 다시 한  총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러다 ‘툭’하고 무언가가 나와 부딪혔다. 석재씨와 함께 걸었던 길들을 되새겨보았다. 기억에서 석재씨와 함께 어딘가로 들어왔음을 떠올렸다. 그러니 여긴 아마 복도였다. 지팡이를 왼쪽으로 향해본다. 벽이 부딪혀 다시 오른쪽으로 향해보았다. 여러 번 두드리고서 이쪽에 길이 있음을 알  있었다. 따라서 걷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바닥의 느낌과 함께 소리도 달라져갔다. 걸으면 걸을 수록.


다시 ‘툭’. 지팡이가 부딪혀 걸음을 멈추고 길을 찾았다. 그리고 공기가 달라지는 것으로 바깥에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바닥이 달라지고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다시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저 멀리서 소리치는 게 들렸다. 엔의 목소리. 그쪽으로 걸어갔다.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가능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계속, 계속 걸었다. 엔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석재씨는 아니었다. 그였다면 나의 뒤에서 들려왔을 것이다. 이건 앞에서 들려오는 발걸음이었다. 지팡이를 쥐고 소리쳐보았다.


“엔!”


나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엔에게 날아갔다.

“사라!”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도 바람을 타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기쁜 마음으로 그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순간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게 아까 들었던 매드독의 거대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불안감과 함께  쪽에서 선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조심해!”

커다란 울음소리가 나를 무섭게 했다.









거대한 매드독이 달려오는 걸  순간 사라에게 질주했다. 지금 저 녀석이 뛰어오는 방향선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사라도 서 있었다. 이대로 질주하면 내가 먼저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다. 좀 더 빨리,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이 벌써 나와 좁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급히 사라에게 이판사판 소리질렀다.


“사라! 옆 아무곳으로나 피해!”


사라가 내 말을 듣고 빠르게 왼쪽으로 움직여주었다. 이로서 최소한 사라는 피하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그녀에게 소리치며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미처 옆으로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대로면 부딪힌다. 이미 글렀다. 이판사판으로 몸을 완전히 눕혀 바닥에 밀착시켰다. 어차피 저 놈은  때문에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했다. 예상대로 놈은 내 위를 강한 바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갔다. 나도 짓뭉개지지 않았고 얼마 안  매드독이 건물에 자신의 몸채로 들이박았다. 그 틈으로 사라를 낚아채 부서진 진지로 들어가 숨었다.


“사라, 나 지렸어.”

“엔, 괜찮아? 다친 곳은?”


“지린거 빼고는 바지도 깔끔해.”

고개를 내밀고 매드독의 상채를 보았다. 녀석은 들이받았던 몸을 빼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날 찾고 있었다. 여담으로 저 놈이 들이박은 가게는 이제 폐점 처리되었다. 철거당했으니까.


이제 어떻게 저 망할 거대한 똥개를 해치울 수 있을까. 불도저는 끌고 오기에는 건물파편들에 묻혀버렸고 무기라고는 권총과 나이프  자루 뿐이었다. 그러다 지팡이가 떠올랐다. 녀석에게서 눈을 떼고 진지를 집중하며 둘러보았다. 다행히 찾을 수 있었는데 영 장소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매드독과 거리가까이 있은 것이었다.

“유인이 필요해.”

우선을소리로 멀찍이 떨어트리려고 주위에 있던 돌을 주워 RPG가 있는 곳에서 반대방향으로 멀리 던져보았다. 돌이 바닥과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지만 매드독은 고개만 돌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한  더 돌을 주워 던져보지만 똑같은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더  소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용해볼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거운  던지지 못하고 수류탄 같은 것도 있지 않았다. 그냥 소리를 죽이고 다가가서 가져올까? 아까부터 돌 던지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같던데. 너무 위험하긴 해도 시도해볼 법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라, 여기에 잠시만 있어.”

사라에게 속삭이고 지팡이를 가지러 가려고 했는데, 운이 좋은건지 커다란 총소리가 울렸다. 매드독이 고개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돌려 바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 끝에는 석재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거기다가 외치기까지 했다.

“엔! 좆같은 시발년아!”


드디어 저 새끼가 쳐돌았나. 당장 RPG를 주워 매드독이 아닌 그에게 쳐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똥개가 먼저라서 꾹 참고 빠르게 RPG로 다가가 어깨에 걸치며 들었다. 그 사이 석재는 매드독을 상대로 투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녀석을 불러들여 쏴야 했는데 조금 문제가 생겨버렸다. 어깨에 걸쳤는데도 무게가 상당해서 계속 조준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손이 필요한 법이었다.

“사라!”

계속 바리게이트에 숨어있던 사라를 불러 데려와 두 손에 뒷부분을 쥐어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들고만 있어. 조준부터 똥개새끼 보신탕 만드는 요리를 내가  테니까.”


“너무 무거워.”

“어깨에 걸치면 돼. 옳지, 잘하네.”


이 지팡이를 쏘는데 2명씩이나 달라붙게 되었다. 설명이 끝나고 이제 조준을 하려는데 저 멀리서 그가 또 소리쳤다.


“좀, 빨리해라!”

이제는 재촉까지 했다. 역시 그에게 쏘는 것이 백번은 맞아보였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잠시 보류하고 대신 욕으로 화답했다.

“마리아의 이름으로 저 시발새끼의 주둥아리를 닥치게 하소서. 아멘.”

이어서 정신없게 굴던 똥개를 불렀다.

“야! 보신탕 새끼야! 솔직히 불도저를  줄은 몰랐다! 나 존나 진심으로 고백할게 있어! 오는 길에 너네새끼 잡아다가 구워먹었는데 맛있더라!”

그 녀석이 석재를 버리고 내게 반응하더니 매섭게 달려왔다. 좀만  다가와라. 이번에는 너도 구워버리게. 천천히 조준을 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녀석의 입이 벌려지고 우리를 집어 삼키려 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입 안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뒤쪽으로 엄청난 연기와 함께 떠나간 포탄이 매드독을 명중시켰다. 반동은 크지 않았지만 사라가 넘어지는 바람에 나도 연달아 넘어지고 엄청난 폭발음이 우리의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만큼 짜릿하고 좋은 첫 경험이 된 것이다. 포탄을 맞은 거대매드독은 얼굴부위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몸은 선 채로 피를 흘리다가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가 된 것이다.

“하! 그러게 엎드리면서 배라도 보일 것이지. 넌 날 만난게 재수 쓰레기인거야! 지옥가서 목줄 메고 문지기나 해, 시발. 최소한 취직은 하겠네. 축하한다, 개새끼야!”

“엔.”

뒤에서 사라가 부르기에 쳐다보니  머리가 그녀의 배를 베고서 누워있었다. 어쩐지 부드럽더라.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를 일으켜 주었다.  멀리서 석재도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등을 한 대 후리며 칭찬해주었다.

“쓸모있는 새끼! 덕분에 개밥을  뻔했어도 개껌은 안 됬네. 기특한 새끼.”


그는 꽤나 불만있는 표정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역시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나보다.


“할 말이 꽤 있긴 한데, 됐어. 어차피 말해도 안 통하겠지.”

“말은 통해. 생각이  통할 뿐이지.”

“고마워요. 석재씨.”


사라가 정중히 감사인사를 했다. 그녀의 옷은 여러모로 더러워져 있었다. 나름 열심히 뛰어다니고 넘어지기도 했으니 오히려 당연했다.

“넌 옷 어쨋어?”

석재가 스포츠브라만을 입고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보내줬어. 똥개랑 같이. 몇 일 뿐이지만 정이 깊었는데.”

“추우니까 이거라도 입어.”

그가 그 답지 않게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자켓형태의 군복  하나를 건네주었다. 후드자켓처럼 모자는 없었지만 주머니가 많았다. 팔소매와 가슴 쪽, 거기에 안주머니까지. 무언가 넣고 다니기에는 정말 편해 보이면서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다시 이걸 입는 날이 쳐 올 줄이야. 허리뒷츰에 꽂아두었던 글록17을 안주머니에 넣고 바지주머니에 있던 탄창들도 꺼내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면서 권총을 뽑는 행동을 취해보다가 글록은 다시 허리뒷츰으로 돌려놓았다. 주머니에서 꺼낼 때 조금 걸리적거리는 것이 이유였다. 그 조금의 순간으로 사람은 훅 가버린다.

“별일이네. 나한테 옷도 건네주고. 이제 겨우 1박2일 되었는데 싸우면서 생겼나봐? 나 예뻐?”


나름 옷에 괜찮다는 평을 해준 것이다. 후드 자켓만하지는 않지만 주머니가 많은 게 좋았고 단추형식이라 위에 구멍만하나만 잠궈도 되었다. 지퍼였으면 불편했을 옷이 단추가 살려주었다.

“사라, 나 어때?”


“엔은  입어도 예뻐.”


“지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말은 잘한다. 그래도 좋게 받아들이면서 다시 사라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저 망한 똥개도 이제 해치웠겠다, 하루 빨리 부산으로 향해야 했다. 빨리 가서 사라랑 둘이 오순도순 지내는 게 꿈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강한 충격이 나를 때렸다. 안그래도 아픈 머리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흔들렸다. 아프다. 존나게 아프다. 순간적으로 상황파악도 되지 않아 어떻게  것인지 보고 싶었지만 이미 바닥과 마주하면서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설마 리재혁인가? 아니면 매드독? 아니다. 걔네들이라면 벌써  죽였겠지. 절대로 이런 어설픈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엔!”


사라의 비명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시야는 흐릿해도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비명소이에 억지로 정신을 붙잡아가며 일어서려고 했는데 나의 팔로 뾰족한 무언가가 꽂혀 들어왔다. 아픈 것보다는 따끔했다. 그런데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거, 나에게 익숙한 코카인이었다. 진짜로 리재혁  새끼인가. 코카인에는 면역이 강해서 환각이나 환청 따위는 들리지 않았지만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고 몽롱한 정신이 오랜만에 쾌락을 쫓아갔다. 그런 상태 속에서  앞에 발걸음을 옮기는 신발이 보였다. 그제서야 어떤 시발놈이 이런 짓을 한 건지 알  있었는데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방심한 순간에 당한 것이다.

나도 참, 예전에 비해서 많이 죽어버린 걸까. 이제 스르르 눈도 감겼다. 사라가 계속 외치는데 그것마저 멀어졌다. 찾아오는 어둠속에서 읆조렸다. 석재, 개 시발놈.








나에게 몸을 파는 것과 범죄, 둘 중 어떤 것을 많이 해봤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전자였다. 범죄는 어떤 식으로 하든 위험부담이 따라왔고 때로는 몇 번의 위험고비들도 겪어야 했지만 몸을 파는 것은 간단했다.  많은 놈들 사이에 껴서 ‘나 써줘.’라고 한마디만 하면 끝이었으니까. 내가 외모가 부족한 것도, 몸매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기에 얼마든지 팔아치울 수 있었고  버는 것도 가장 쉬웠다. 등급으로 따지면 S급이라 한 번만 해도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은 기본으로 챙겨갔다. 그러다 만나게 된 사람이 ‘리재혁’이었다.

북에서 내려와 간첩짓도 하면서 자기만의 가게를 차렸는데 꽤나 좋은 조건으로 내가 들어갔었다. 먼저 제시를  쪽은 그년이었고. 그 때부터 우리의 악연은 시작된 것이었다. 일단 그 썅년은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고 쭉 참다가 빡돌아버린 내가 그년의 사업장을 전부 깨부수고 쫓아내버렸다.  뒤로는 보이면 죽이고,  보이면 그러려니 하고 살려고 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치게  줄은 몰랐다. 지금부터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석재의 뒷통수에 얼얼하게 쳐맞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중천을 넘어버린 오후였다. 아직 해가  정도는 아니었지만 벌써 먼 산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드독과의 싸움흔적들이 가득 찬 사거리와 그 중앙에 후드 자켓 대신에 군복자켓을 입고 쓰러진 내가 나그네처럼 버려져 있었다. 눈을 떴다고 해서 바로 정신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뒷통수를 맞은 것에 대한 감정의 5단계라는 중간 배가 찾아왔으니까. 1단계는 분노였다,

“김석재! 뺀질이 시발새끼야! 내 뒷통수를 쳐?! 이, 시발 좆같은 새끼! 그냥 시발, 버리고 가네! 걸리면 죽여버릴거야. 시발! 내 여친도 데려갔네? 시발새끼. 사라 브라 한 조각이라도 건드려봐라. 씹창새끼! 박을 것도 없는 공허한 새끼! 아직 시발, 나도 못 만졌는데! 대가리에 똥이든 박아 죽여버려야지. 시발련. 나 같이 예쁜 년을 통수쳐? 시발, 개시발! 으아아악!”

2단계는 한탄이었다.

“내가 왜 그 새끼를 잠시나마라도 믿어가지고. 아이고, 시발. 다 내 탓이야, 내 탓. 내가 뺀질이 새끼를 믿지 말고 그  죽였어야 했는데, 뭔 믿을 구석이 있다고 같이 다닌건지. 시발, 사라,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음에는 어떤 놈이든 믿지 않고 죽여버릴게. 사라,  내 탓이야. 시발, 내가 뒤지던가 해야지. 우리 사라, 우짜냐, 시발. 내가 사랑하는 여친.”

3단계는 미침이었다.

“사라! 멀리 안간거 다 알아! 뺀질이도 거기있지? 카메라도 없는데  몰카를 하고 그래? 시발, 좆같으니까 빨리 나와줘! 셋이서 3P나 해보자. 화끈하게! 뭐해? 빨리 나오라니까. 사라! 사랑해! 내가 정말 사랑해! 빨리 돌아와. 뺀질이도. 나 화 안났어. 정말로! 아니면 숨박꼭질이라도 하자는 거야? 그럼 나 찾으러 가면 되는 거지? 찾는다? 먼저 발견하는 사람부터 따먹는다?!”

4단계는 두려움이었다.


“시발, 어쩌지? 그 개새끼가 먼저 사라를 덮쳐버리면 어쩌지? 시발, 아직 나고 못 따먹었는데. 그 쌍놈이 먼저 따먹어버리면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사라. 사라. 사라, 제발 무사해줘. 사라, 제발. 넌 내가 먼저 따먹을거야. 제발, 제발, 제발.”


마지막 5단계는 긍정이었다.

“그래. 뭘 어렵게 생각해. 까짓거 뺀질이 그 새끼 찾아내서 죽여버리면 되지. 그 참에 좆같던 재혁이도 죽여버려서 같이 묻어주고 그 위에서 사라랑 화끈한게 섹스하는 거야. 담요피고 부드럽게. 아니면 둘 다 반 살려서 가둬놓고 뭐하나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것도 재밌겠네. 마침 뺀질이 죽여버릴 구실도 생겼겠다. 그래, 그러자. 존나 재미있겠다. 가볼까?”


이러한 5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주머니에  것들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준비를 갖추었다. 권총과 탄창을 새로 갈아 끼우고 쿠크리 나이프의 날을 닦은 뒤 등에 메었다.  후 바리게이트에 굴러다니던  상자들을 열어 필요한 것들을 챙겨 넣었다. 가방은  무늬가 들어간 허름한 것을 주울 수 있었다. 그 안에 멀쩡한 M79유탄들과 초록색의 포박줄, 무언가와 연결해 쓰는 짧은 철끈, 녹슬었지만 살을 파내버릴 수 있는 단검 몇 개를 집어넣었다. 다음으로는 굴러다니던 전투화를 전부 주워와서 내 발사이즈와 맞는 것을 찾아보았다. 없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 맞은 사이즈가 딱 한 짝이 있었다. 스니커즈를 벗어 가방에 넣은 뒤 전투화를 신었다. 삼촌이 말하길 이걸 신고 머리를 걷어 차버리면 훅 보내버릴  있다고 했다. 지금은 몸도 무기로 갖출 필요가 있었다. 손과 이빨로 끈을 조여메고 준비를 마쳤다.


“기다려라, 씹새끼.”


‘컹.’

권총을 뽑아들었다. 뒤 쪽, 총구를 겨눈 곳에 매드독 한 마리가 다가와 있었다. 어느 새? 대단한 새끼일세. 아니면 내 귀가 맛이 갔나?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 몸 성한 곳이 없는 채로 방금 잠에서 깨어났으니까.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늘 몰려다니던 매드독일 텐데 단 한 마리 만이 나의 앞에서 서서 무언가를 하기는커녕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눈가에 상처가 있는 놈이었다.

“뭐야, 똥개. 니네 애비 복수라도 하러 왔냐?”

놈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주위들을 훑어보았다. 어딘가에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놈뿐이었다.


“야 똥개, 내가 지금 기분이 별로거든? 옆에 있는 시체처럼 되기 싫으면 빨리 꺼져.”


‘......컹.’


요놈봐라. 사람말을 알아 쳐먹은 건지 일어서더니 떠나버렸다. 뭐야, 시발. 황당했다. 뭐, 아무튼 매드독을 보내고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던 바로 앞, 무언가가 떨어져있었다. 그것을 주워들었다. 내가 사라에게 만들어주었던 지팡이였다. 끌려가면서 놓쳐버린  뻔한 그림이었다. 젠장, 사라. 이거 없이 걸을 수나 있을 련지. 내 허리츰에 끼워 넣었다. 이것만큼 중요한 물건은 없었다.

뺀질이도 완전히 바보는 아닌지라 나름 흔적들을 감췄겠지만 들쑤시다 보면 나올거고 분명 이 도시를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낸 놈들은 쉽게 떠나지 않으려는 버릇들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2가지의 경로를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사라를 데리고  도시 어딘가에 숨어 버티고 있거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날 따돌리는 경로. 나머지 하나는 사라를 데리고 선착장을 통해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 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그가 재혁이 무리와 싸워서 지나갈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아니었다. 나를 팔아버리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2가지 중 어떤 경로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리재혁, 썅년을 찾아가 족치는 것이었다. 그 년을 거쳤다면 만나자마자 얘기가 나올거고, 거치지 않았자면 그런대로 얘기가 없겠지. 뭐가 되었던 그 개년을 거쳐야 한다는  변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혼자서 걷는 길은 조용한 폐허뿐이었다. 왼쪽을 보든 오른쪽을 보든 부서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지겹게 봐왔고 날 고요하게 만드는 것은 빈 손이었다. 사라와는 같이 지낸지 별로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짧지 않았을 시간이라 항상 잡았던 손이 사라지자 이상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내가 알던 외로움과 달랐다. 그저 조용하고 폐공장이나 방에 혼자있던 것과 다르게 몸 어딘가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주로 혼자 걸었던 거리를 딱 이런 분위기에 해가 없는 밤이었고 가로등 불빛도 간간히 비추어지던 거리였었다. 그 시절,  때마다 자주 심심하거나 외로워서 지나가던 또래의 젊은 애들을 잡아와 대화를 나누거나 여러가지를 시켜 심심함을 달랬었다. 그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2명이 있었다.  명은 정신병자였고 다른  명은 겁없는 년이었다.

정신병자는 남자였는데 나한테 잡혀와 이름을 듣고는 팬이라면서 마리아를 찬양하듯 나에게 들이대던 놈이었다. 처음에는 꽤나 재미있었지만 나중에는 쉬지않고 들이대서 묻어버렸다. 적당히 해야 나도 받아주지. 다음으로는 겁없는 년이었는데 얼마나 겁이 없었냐면 잡아 묶어두고 나이프로 여기저기를 베어도 비명하나 지르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었다. 그런 상태에서 대화까지 나누기도 했었다.

“사람 죽이면 어때요? 재밌어요?”


“재미보다는 짜릿감도 있고 손맛도 있고. 그냥 다양한 감각들이 있어.”


“어떻게 죽여본 게 제일 짜릿했어요?”


“‘강남 양궁판 사건’ 알아? 그게 제일 좋았어. 재미도 있었고 사람도 죽이고. 원플러스 원이었지.”

그런 대화가 있고 난 뒤에는 묶던 것도 풀어주고 방 한정으로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전 어떻게 죽일 거에요?”

그러다 어느 날 그 년이 물었고.


“어떻게 죽여줄까?”


그 질문으로 대답해주고 난 뒤, 갑자기 스스로 죽어버렸다. 꽤나 재미있던 애였었다.


어쨋든 그 이후로 혼자 걷는 것은 오랜만인 셈이었다. 그러다 사라를 만나고 함께 했다가 지금, 뺀질이 녀석이 가로채 간 것이다.


어느 새 강에 다다르게 되었다.선착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우선은 강을 따라가보았다. 운 좋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착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보트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이제 저기로 어떻게 가냐. 이대로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주변은 공사지대여서 그런지 뼈대만 있는 건물들과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곳들을 지나고 지나 무작정 걸으면  썅년과 마주치겠거니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무대로 석재는  예상대로 이놈들을 거쳐간 것이다. 벌써 마중들 나와 있는 걸 보면.

수많은 오토바이들과 수많은 총구들, 대부분 헬멧들을 쓰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략 50명쯤은 되어보였다. 리재혁은 보이지 않았다.

“쌍년 어딨냐? 걔가 제일 먼저 나와서 안아줄 줄 알았는데. 시발, 정없는 년.”


위치대신 총구들이 들이 밀어졌다. 저 멀리 옥상에서도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없는 살림에 저격수까지 들여온 것인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년은 너무 쉽게 뒤질 거니까. 그 만큼 일이 어렵겠지만 사라만 되찾아 올 수 있다면 그딴건 신경쓰지 않았다. 어려울 뿐이지 해결 못할 건 아니니까. 허리뒤츰에서 나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글록17을 꺼내들었다.눈길로 주변을 확인해 페건물, 길, 장애물, 엄폐할 만한 것들을 확인했다. 녀석들 위로는 크레인과 녹슨 사슬 하나만이 연결되어 위태로워 보이는 철근이 보였다.

“지금부터 17발을 쏠거야. 그 전에 우리 재혁이 데려와. 안 그러면, 아, 시발, 뭔가 간지나게 말하려고 했는데. 야! 재혁아! 빨리 튀어나와. 대사 까먹었어!”

무반응들 뿐이었다. 역시나 재혁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본도 없고 리액션도 없다면 이제 시작해야겠지. 권총을 들고 첫 발이라는 신호탄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외쳤다. 당당하게, 내 스타일대로.

“산타한테 선물받기 싫은 새끼들은 다 따라와! 내가 대신 줄게!”


방아쇠를 당겨 시작의 총알을 쏘았다. 권총의 작은 총알이 내가 노린 크레인의 녹슨 사슬을 맞추어 끊었고 떨어지는 철근에 모두의 시선이 잠깐, 그곳으로 향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멀어진 틈으로옆에 있던 골목길로 들어갔다. 이런 다수를 상대할 때는 좁은 곳이 유리했다. 그렇다고 숫자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판의 숨통을 만들 수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발걸음 쪽으로 가방에서 M79를 꺼내 미리 장전해두었던 한 발을 쐈다. 강력한 유탄이 회전하며 나아가 시끄러운 폭발을 일으켰다. 바로 옆에 있던 담이 넘어지면서 폭발과 함께 4명 정도를 휩쓸었다. 괜찮은 수확이었다. 그런데 방금 인원이 아니었다. 벌써 서로들 갈라져서 날 포위할 생각인 것 같았다. 여기 지리라면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애들일 것이다. 재혁이  새끼, 잘 훈련시켜놨네.

M79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고 바로 옆에 있던 모텔 건물로 들어갔다. 안을 들어가보니 일반적인 모텔은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불이 꺼진 복도를 헤쳐가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 후 유인까지 하기 위해 계단 바로 옆에 있는  문 손잡이에 2발 쏴버렸다. 남은 탄 14발.

“나 2발 쐈다!”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고 가방에서 유탄을 꺼내 M79를 장전시킨  단검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쿠크리보다 많이 가벼운 무게가 익숙치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억지로라도 익숙해져야  때였다. 사라를 지금 어디에 있을 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시간. 문 밖으로 발걸음소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으로 5명, 머릿속으로 그들의 모습을 그리며 다가오는 발소리에 맞추어 문을 강하게 열어 재꼈다. ‘쿵’하로 무언가가 부딪히는데 제일 먼저 앞서왔던 한 명이었고 부딪힌 충격에 잠깐 비틀거렸다.

“헬멧 쓰면 안전하데니?”

단검으로 그의 복부와 심장을 빠르게 찌르고 목을 베어버린 뒤 던져버리고 몸을 돌리며 삼촌이 추천한 묵직한 전투화로 바로 따라오던 놈을 걷어차 버렸다. 단검을 고쳐잡고 이어서 달려오는 놈들의 목, 가슴, 배들을 찌르며 죽여갔다. 그 중 하나가 이를 악물고 버티며 내 얼굴을 주먹으로 쳐버리려 했지만 몸을 숙여 피하고 역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찔러버렸다. 울부짓으며 팔을 잡길래 시끄러워서 총으로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이제 9명.  힘이 들었다. 한 팔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조금도 쉬는 시간 없이  다른 발걸음 소리들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더 많았다. 최소 10명.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공격했다. 선빵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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