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Envy (Wake Up, Shara) - 5 (25/72)



〈 25화 〉Envy (Wake Up, Shara) - 5



남색의 후드티는 벌써부터 얼룩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겨우  일이 지났을 뿐인데 이 정도로 될 만큼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아무튼, 이제 다시 걸어야  때였다.


“가자, 날씨는 좋네.”

어제와 아침까지만 해도 해가 떠 있었는데 그새 구름들이 끼어 흐릿한 날씨는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비까지 온다면 정말로 기분이 잡치게 될 것이다. 사라의 손을 잡고 석재가 나란히 걷는다. 그러면서 나는 앞을, 그는 뒤를 맡으며 또 다시 오토바이 무리들이 다가올까, 주의하며 걸었다.


“뭘 물어봤어?”

석재가 이제는화를 좀 식혔는지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새끼들 패밀리에 대해서. 뚜껑 열어보니 잡탕놈들 밖에 없더라고. 한 놈 빼고.”

“한 놈?”

“헬멧놈들 대가리. ‘리재혁’이라고 북에서 내려온 간첩새끼인데 나랑 구면이야. 관계 더러운 쪽으로.”


사라가 있어 나의 과거가 섞인 설명은 생략했다.


“간첩? 북한 말이야?”

“그래. 만나면 엄청 귀찮게 할 놈이야. 빨리 선착장에서 배타고 떠나야해.”

“간첩이면 엄청 위험한 거 아닌가.”

“너한테는 많이 위험하겠다.”


폐도시를 계속해서 싸돌아다니다가 횡단보도들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사거리가 나왔다. 중간에는 쉼터라도 되는  초록색의 천막과 바리게이트들이 쳐진 작은 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경찰 다음은 군인인가. 오늘 계속 기분 더럽네.

너덜너덜  천막은 구멍 가득히 휘날리고 있었고 군인들이 입는 군복이나 방탄모들은 굳어버린 피와 함께 바닥을 기고 있었다. 모래나 돌로 쌓은 바리게이트들에는 거치된 기관총들이 있었지만 몇몇개는 총구나 방아쇠 쪽이 부서져 있어서 사용할  없는 것들이었다. 그냥 고철이란 소리다. 처량한 통신장비들만이 먼지를 가득 품고 세워져 있었다.

“잠시 쉬다 가자.”


석재가 무릎을 메만지며 멀쩡한 의자에 앉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의자는 상당히 더러웠다. 사라를 앉히기 위해 다른 의자를 찾아 얼룩진 내 옷소매로 닦고 천막을 일부 뜯어서 방석처럼 놓아 주었다. 한  돌릴 정도로 깨끗해진 의자위에 조심히 사라를 앉혀주었다.

벌써 일상인 마냥 사라와 석재가 얘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사건’이 터지고 지금까지 겪었던 여행들이 주제였다. 나도 잠시 턱을 괴며 방청객이 되어 있다가별로 재미없어서 중간에 나와버리고 여기저기 떨어진 전투조끼들을 뒤적거렸다. 쓸만한 것이라도 있을까 하며 뒤적거렸지만 맞지도 않는 총알들과 깨져버린 아드레날린 주사기들 뿐이었다. 그 외로는 기관총의 탄창과 K2소총들 뿐이었다. 여기도 결국은 쓰레기장이었나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다가 바리게이트 잔해 속에 무언가 묻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잔해들을 발로 차고 손으로 던지며 조금씩 파내 나의 이목을 끌은 것이 뭔지 꺼내보았다. 묻혀있던 것은 값진 보물들이었다.

“야, 뺀질이. 어때?”

내가 파낸 것을 보여주자 그는 당황했다. 아침의 모닝샷 때보다 더. 내가 들고있는 것은 RPG-7이라는 로켓런처였다. 뇌관부터 몸체까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었다. 우리 삼촌은 이걸 가리키며 ‘만능의 지팡이’라고 불렀었다. 무엇이든  발만 쏘면 어떻게든 해결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 번도 쏴보지 못했던 것이어서 기뻤다. 이제야 나도 써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디에 사용하려고?”

석재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어디긴, 선착장에다 써봐야지. 기대해라. 멋진 한 방을 보여줄테니까.”


“무슨 한 방? 뭐라도 주운거야?”

이어서 사라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나중에 같이 쏴보게 해줄게.”

아직 나의 보물자랑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내 팔만한 크기의 M79라는 유탄발사기였다. 휴대하면서 유탄을 갈겨버릴 수 있는 좋은 무기였다. 무겁기는 했지만 어딘가에 거치한 뒤 쏘면 사용할 만 했다. 소총들처럼 연속적인 반동없이  한 번, 의미없는 반동만 견뎌내면 그만이었고 건물 안에 숨거나 어디 기둥 뒤쪽 같은데 숨은 녀석들도 보내버릴 수 있었다.

“개쩔지?”

“둘 다 들고가게? 들 수는 있어?”

“시발! 안 그래도 알고 있는 문제로 낙담하게 만드네.”

그의 말이 맞았다. 둘  들고가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하나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라는 이미 배낭을 메고 있고 애초에 이런걸 들고 갈 힘이 없었고, 석재는 이미 들고있는 것이많았다.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당장의 시원한 한방이냐, 아니면 조금이나마 오래 쓸  있는 중고품이냐.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고민하는 나에게 다시 나비가  마리 날아 들어왔다. 이 나비는 두 색의 날개를 지닌 아름다운 나비였다.


“이 소리.”

사라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긴 울음소리가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쪽은 우리가 걸어왔던 방향이었다. 그곳에는 어제 보았던 매드독들이 무리지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배는 많은 수였다. 나쁜 소식은  바탕 싸움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바탕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좋은 소식은 M79와 RPG중 하나는 시험사용해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로보나 저러보나 M79가 더 좋았지만 아직 장전연습이 되지 않아서 빠르게 연속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RPG는 겨우 저녀석들에게 쏘기에는 아까운 보물이었다.

“야, 엔. 지금이라도 도망가야돼. 안그러면 우리 모두 위험해.”

석재는 빠르게 도망가자고 했다. 아직 거리도 있었고 녀석들도 어째선지 바라만 볼 뿐, 크게 움직임이 있지 않았다. 무언가 확인을 하는  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석재의 말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내가 매드독들에 대해서  몰랐더라면 그의 의견을 따라 도망쳐보겠지만 이미 시속 70km로 거뜬하게 달려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딱히 소용이 없었다.

“뺀질이, 너 저기 건물 보이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유리가  깨져나간 5층의 모텔옥상을 가리켰다. 옆에는 편의점과 1층높이의 식당뿐이라 옥상에서 문만 막는다면 적절한 위치가 될 것이다. 이제 석재의 머리가 다음을 이해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해는 커녕 내 말이 들어가지고 않는 돌머리였다.


“저기로 도망치자고?”

아니네. 최소한 들어가기는 했나보네.


“저기로 가서 자리잡고 지원해. 도망쳐봤자 교통사고 난 개먹이만 될 뿐이야.”


“뭘 하려고?”

M79를 들어 바리게이트에 거치시키고 적당한 곡사거리를 계산했다.

“선빵필승!”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굵은 유탄이 발사되었다. 유탄을 공기를 타고 곡사로 나아가 매드독들의 중앙을 때렸다. 작지 않은 폭발이 매드독 몇 마리를 터트려주었다.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미친년아!”


석재가 옆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고 사라가 갑작스러운 폭발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는 무언가 더 욕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급히 사라를 데려가려고 했는데 내가 먼저 가로채 잡았다.

“사라는 내가 5성급으로 모실 테니까 넌 올라가!”


“지금 무슨?”

“닥치고 올라가! 뼈해장국 되기 싫으면.”

벌써 매드독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는데  가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석재는 이제서야 모텔로 뛰어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사라를 데려와 그녀의 손에 기관총의 탄줄 부분을 들게 했다. 반동은 힘으로 이겨버리면 되지만 총알이 걸리는 것은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이 기관총을 멀쩡한 것이었고 총알도 상당수가 꽂혀 있었으니까.


“엔, 이게 뭐야?”

“개 잡는 칼이 없어서 꼬치막대 쓸려고. 오른쪽 귀 꽉 막고 있어!”


사라가 오른쪽 귀를 막는 것을 보자마자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렇게 무거운 총을 쓰는 건 삼촌의 사격장이후로 처음이었지만 아직 감은 제대로 남아있었다. 미친듯이 뛰어오는 매드독이 우리 앞, 선명한 대가리를 들이 밀었을 때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둔탁하면서도 시끄러운 총의 소리가 사거리를 울리기 시작하고 견착해 놓은 내 어깨로 무거운 반동이 연속으로 때려박혀 왔다.


가까이 다가온 매드독들은 아무런 대응을 못한 채 기관총의 총알들에 머리부터 몸까지 모든  찢겨나갔다. 뾰족한 귀도, 굵은 앞다리들도, 근육진 몸통도 수박 깨지듯 붉은 피들과 함께.

“이건 몰랐지, 똥개새끼들아! 이게 바로 인간의 문명이란거다. 불도 피우지 못하는 원시 새끼들!  사실 지금까지 보신탕 3그릇을 족히 쳐먹었어!”

이제여 자기들의 분수를 알았는지 달려 들어왔던 매드독들이 뒤로 내빼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총알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벌써 반 이상이 휩쓸려 나갔다.  뒤에 숨으면 차에다가 갈겨버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들에도 갈겨버렸다. 그런다고  굵직한 총알이 막아지나. 인간 문명의 승리였다. 옆에서 사라가 무어라 말하고 있지만 총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틱, 틱.’

벌써  쏜 것인지 방아쇠가 헛소리만 내고 있었다. 사라역시 탄줄을  이상 쥐고 있지 않았다. 고개와 눈을 굴려 탄이 더 있는지 확인해본다. 다른 기관총에 아직 쓰지 않은 새 탄창이 끼워져 있어 빠르게 떼어왔다. 이제 탄을 꽂아 새로 쓰기만 하면 되었다.  줄을 새로 쥐어주고 끼운 뒤 다시 기관총의 방아쇠를 잡았을  사라가 소리쳤다.

“엔! 옆에서 소리들이 들려. 무언가 다가오고 있어.”

매드독들의 시체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정면에서  거리들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건물들의 유리창과 커튼들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보였다. 굉장히 빠른 속도. 내가 앞을 신경쓰는 사이 옆구리를 치려고 들어온 것이다. 뒤를 돌아 내가 석재를 보냈던 모텔의 옥상을 보았다. 그도 움직임을 발견하고서 내 왼쪽거리 쪽에 조준하고 쏘기 시작했다. 위로 총성과 함께 탄들이 날아가 유리창들을 깨고 커튼들을 찢었다. 난 그동안 오른쪽을 맡았다. 벌써 건물에서 4마리가 모습을 드러내 달려오고 있었다. 빠르게 권총을 뽑아 2마리의 머리를 쪼개버리고 나이프를 뽑아서 근접해온 매드독의 목과 입을 찢어버렸다.

“엔, 앞!”

다시 정면으로 덤벼 들어오고 있었다. 기관총의 손잡이를 잡고 정면을 향했다. 옆구리를 막는 동안   정면으로도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원시새끼들이 잔머리 굴리는  봐라.”

방아쇠를 당겨 또 시원하게 갈겨버렸다. 사라는 오른쪽 귀를 막고 있었고 귀 막을 손이 없는 나는 시원한 소리를 최대볼륨으로 들으며 즐겨야 했다. 다시 똥개새끼들이 물러났다. 벌써 30마리쯤은 터트렸는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뒤야!”


손잡이를 놓고 뒤로 돌면서 글록19을 뽑아들었다. 2마리, 바리게이트를 부수며 들어온 2마리의 똥개가 갑자기 좌우로 갈라지며 크게 돌았다. 내가 빠르게 조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벌써 학습했다는 건가. 그래도 아직까지는 싸울만한 정도였다. 한 마리를 쏴 맞추고 글록을 남은 한 마리에게 던져 당황시킨  나이프를 꽂아버렸다. 아직 총을 쏘는 걸로만 학습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쉴 틈은 없었다. 바로 앞을 보니 역시나 맹렬히 달려오고 있는 매드독들이 바리게이트를 향해 들이박으려 하고 있었다.


“엔! 다시 옆!”

“시발, 뭐?!”


“야, 엔! 옆쪽은 내가 맡아줄 테니까 앞이나 봐!”

3명의 목소리가 서로를 향해 소리쳤다. 이러니저러니 정신없는 상황속에서 서로에게 서로의 빈곳을 보완해야 했다. 석재가 나의 빈 옆구리를 맡고 그 사이 기관총을 잡아 갈겼다. 도대체  개새끼들은 얼마나 있는 것일까. 죽여도죽여도 끝을 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엔!”


“이번에는 어디야?!”

다시 옆? 뒤? 사라가 소리쳐 기관총을 갈기다가 둘러보다가 굳이 고개를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우리의 앞으로 그 때와 같이 믿기지 않을 광경이 펼쳐졌다.

“시발, 성경에서나 보던 지옥똥개를 현실에서  줄이야.”

거대한 걸음소리. 밟는 곳에 있는 차가 찌그러지고 부딪히는 가로등들은 꺾여 부러졌다. 같은 종류의 매드독, 하지만 사이즈가 달랐다. 시내버스만한 놈이었다. 거기다 스타일까지 달랐는데 머리부터 꼬리부근까지 은빛의 털이 이어져있었고 앞다리뿐만이 아닌 뒷다리도 굉장히 굵었다. 이빨은 상어처럼 입천장과 혓바닥까지 나 있고 발톱은 야쿠자 놈들이 사용했던 카타나  개를 붙인 굵기였다. 그 거대한 매드독이 입을 벌려 웅장하면서 전혀 똥개가 아닌 괴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는 당장 나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건 엎친 데 덮친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묻어버리는 거지.

거대한 매드독이 나타나자 곁에들 있던 다른 똥개들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정, 이건 도망이 아니다. 모두 일부러 물러난 것이다. 자신들의 우두머리 무대를 위해서.

“원시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 사라, 혹시 주변에 뼈로 만들어진 자동차 같은게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엔. 그런게 있을 리 없잖아.”


“그치. 왜 이런 소리를 하냐면......우리 지금 좆됐어. 뛰어!”

매드독의 시체에 꽂혀있던 내 나이프를 챙긴 뒤 사라의 손을 잡고 급하게 뛰었다. 물론 이런다고  거대한 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거리를 만들어는 놔야 방법을 생각하던지 할 수 있었다. 머리로 RPG-7이 생각났지만 바리게이트에 두고 와버렸다. 지금이라도 돌아가 빠르게 가져와봐? 그런데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거대한 매드독이 벌써 사거리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 놈의 발길질에 자리잡고 있던 진지가 휩쓸려나갔다. 삼촌이 봤다면 분명 욕을 했을 것이다. 돈 날렸다고.

“건물로!”

거리로 뛰는 걸 포기하고 급하게 옆에 있던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닫혀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리의 뒤로 미끄러지며 멈춰서는 거대 매드독이 잔해들을 밀어버리며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다 곧바로 자신의 거대한 입을 들이밀어 유리문을 부숴버리면서까지 우리에게 집착을 보였다. 다행인건 저런 몸집으로는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글록17을 뽑아 놈의 입 안쪽에다가 한 탄창을 쏴버렸다. 총알이 박힌건지, 찌그러진 건지 총성만 울릴 뿐 그 어떠한 핏방울도 튀지 않았다. 빠르게 탄창을 빼고 새것으로 장전했다. 조준한 뒤 이번에는 눈 같은 연약한 부분을 쏘려했지만 총구를 내려야만 했다. 그 새 뒤로 내뺀 것이다.

“사라, 네 차례야. 지금 그 똥개, 어디있는 지 소리로 알 수 있겠어?”


“......왼쪽. 왼쪽에서 발을 끄는  같은 소리가 들려.”

우리를 포기하고 물러난 것일까. 지 부하들 다 물리고 그렇게 맹렬히 쫓아와놓고서는?


“엔. 계속 왼쪽에 있어. 여전히 발을 끌고 있는 것 같아.”


“발을 계속?”

아니다. 이 녀석을 포기한 게 아니다. 무언가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옆에 있어봐야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떠오르는 것이 있어 권총을 품에 넣고 벽을 두드려보았다. 굉장히 얕은 소리.  벽은  얇은 벽이었다. 불안감이 몰려오면서 그제서야  너머가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사라의 손을 붙잡고서 복도를 뛰었다.


“사라! 쉬지마!”

자리를 벗어나고 불과 몇 초, 내가 두드렸던 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놈의 입이 들어오고 우리를 향해 울부짖었다. 굉장히 위험하다. 아빠새끼를 만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정말로 위험했다. 저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괜찮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무작정 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복도가 끝나고 꺾이는 부분, 그곳에는 계단이 있었고 급히 올라가야 했는데 잊고 말았다. 사라는 시각장애인이라서 계단을 보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사라!”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바로 옆까지  놈이 맞지도 않는 몸을 끼워가면서 빠르게 다가오는데 그럼에도 속도가 느리지 않았다. 사라를 일으킬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팔을 잡아 계단쪽으로 밀쳐 올렸고 나는 무게와 반동까지 이용한다고 복도로 뛰어들게 되었다. 덕분에 그대로 커다란 교통사고가 나버렸다. 거대매드독과 부딪혀버린 내 몸이 날아갔고 뒤에 있던 창문을 깨면서까지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등 뒤로 수많은 돌조각들이 찌르고 뻗었던 팔은 구르다가 제대로 찍혀버렸는지 바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는 무사했지만 몸의 다른 부분들이 문제였다. 그래도 다리는 여전히 움직여주었다. 팔도 조금 있으면 힘이 돌아올 테니까 괜찮았다. 저 놈만 없다면 말이다.

거대매드독은 그대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앞다리를 올려 날 찍어내릴 생각이었다. 아픈 것들은 억지로 참고 몸을 굴려 피하자 이번에는 반대쪽의 다리가 올라가 있었다. 다시 반대로 몸을 굴렸다. 이제는 내 위로 그 놈이 올라타듯 서 있었다. 세 번째는 수천 개의 이빨이 박힌 입이 반겨주었다. 이대로 먹힐까보냐. 다리와 등에 힘을 실어 넣어 쥐새끼마냥 그 놈의 배 밑으로 들어가면서 나이프를 뽑아 깊숙히 찔러 넣었다. 총알이 소용없는 건지, 배가 약점인 건지, 나이프가 배를 가르고 붉은 피를 쏟아냈다. 그 피가 나의 후드티를 더럽혔다. 몇 방울은 내 얼굴에 튀면서 더러운 향기를 풍겼다.


배에 고통이 가해지자 놈은 다리들을 굽혀 나를 깔아뭉개려 했다. 내 눈치가 빨라서 겨우 손가락만한 차이로 옆으로 굴러 빠져나와 부침전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야! 엔!”

밖으로 굴러나오자 어느  달려온 석재가 사라의 손을 잡고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사라 데리고 튀어! 오지마!”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저 뺀질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사라를 데리고서. 도와주는 척하다가 도망가면 덧나나. 안타깝지만 아쉬워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배에서 피를 뚝뚝 떨어트리는 거대매드독이 나를 노려보면서 또다시 덮쳐오고 있었다.


“성격 더러운 똥개새끼. 삼촌주면 존나 좋아하겠네.”

정면으로 부딪혔다간 방금처럼 날아가면서 중요한 허리가 날아갈 것이다. 주위를 훑어보며 무언가 이용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며 찾다가 도로 저 멀리 공사차량들이 보였다. 그  노란색의 불도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불과 100m정도였다. 양 옆으로 펼쳐진 건물들은 모두 높낮이가 비슷했다. 벌써 머리로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게 멈추는 순간.


“하......들어와! 똥개새끼야!”


일부러 매드독을 자극해 달려오도록 하고 옆에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도 녀석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아니라 입이 껴버리고 그 틈에 권총을 뽑아들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옆 건물과 통하는 창문들에 총을 쏴 깨버리고 몸을 던져 옮겨갔다. 유리조각들이 스쳐 옷 중간이 찢겨나가  살이 드러났다. 상처는 생기지 않았다.

몸을 굴러가면서까지 복도를 내달린 뒤 똑같은 방법으로  건물을 옮겼는데 이번에는 창문의 높낮이가 달라 잘못하면 밑으로 떨어질 뻔했지만 무사히 들어가 내달렸다. 창문을 보니 불도저가 내 눈앞에 있었다. 1층으로 가면 바로 먹힐게 뻔해서 또 창문을 깨고 밖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란듯이 엿을 먹으라며 창문에서 뛰어내려 버려져 있던 버스 위로 착지한 뒤 불도저까지 달렸다. 다리가 아파오지만 이 정도는  겪어오던 생활이었다. 놈은 이제서야 나를 발견하고서 달려오지만 그 녀석이 몸을 돌리는 사이 미리 조준하고 있던 눈을 쏴버렸다.


‘키아아아악!’


“시대도 느리니까 몸도 느리네! 이게 인간이야, 멍멍이새끼야!”

매드독이 총알 때문에 파토난 눈을 앞발로 가리면서 고통스러워 할 때 볼도저에 올라타고 열쇠를 찾았다.  놈의 공사차량, 주인이 급하게 튀었나 보다. 열쇠가 꽂힌 채였다. 덕분에 시간낭비 없이 곧바로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좀, 걸려라. 멍청한 기계야. 좀!”


그래도 오랜 세월이 지난터라 잘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시동이 걸리고 움직일  있었다. 대충 조작방법은 알고 있어서 곧바로 레버들을 조종해 앞으로 움직였다. 매드독은 한 눈을 감으며 불도저는 탄 나를 보더니 미친개마냥, 아니, 이미 미친개에서  흥분을 하며 달려 들어왔다. 나고 레버를 조절해서 힘을 최대로 높혔다. 거대한 원시문명과 기계문명이 서로 부딪히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속도는 당연히 매드독이 훨씬 빨라서 부딪히는 순간 밀린 것은 내쪽이었지만 승기는 조금씩 내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어떻게든 밀어보려는 애쓰는 똥개를 내가 조금씩 밀어버리고 있었다. 역시 불도저는 막강하다.

“지금이라도 엎드려서 배라도 내밀면 쓰다듬어 줄게! 엎드려!”

되려 입을 벌리고 불도저와 함께 날 씹어 먹으려 했다.


“앉아!”


이번에는 머리까지 박아가면서 밀으려 했다. 아무래도 내게 복종할 똥개는 아닌  했다. 그렇다면 정답은 이대로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불도서의 힘과 속도를 높여 밀고 뒤에 있던 건물까지 밀어버릴 기세로 아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눌러버렸다. 매드독의 머리가 위를 향하고 힘을 주던 다리들도 짓눌려 움직이지 못했다. 녀석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불도저의 궤도는 밀려날 생각이 없었다. 레버는 앞으로 유지시킨 채 권총을 들고 내린 뒤 녀석의 남은 한 쪽 눈을 겨누었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며 핏줄까지 세우고 있었다.


“분해? 분하면 너도 기계 쓰던가.”

앞발은 모두 불도저에 집중하고 있어서  총을 피할 수도 없는 매드독에게 선물을 주었다. 탄창의 남은 총알들을 모두 녀석의 눈에다가 박아버렸다. 다시 붉은색의 피가 튀지만 이미 옷은 다 얼룩졌다. 울리는 총성, 울리는 울음소리,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져버려! 똥개새끼야!”


나이프를 뽑아들고 거대매드독의 사이로 들어가 갈랐던  안으로 쳐 넣으며 쑤셨다. 무언가 장기들이 얽히는 게 느껴지는 건 모두 칼집을 내고 잘라내 버렸다. 놈의 비명소리가 귀를 멍하게 정도로 울어댔다. 앞발이 움직이더니 불도저를 놓쳐버리고 저항없이 밀리기까지 시작했다. 나는 또 빠르게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불도저를 더 이상 밀지 못  매드독은 그대로 건물과 함께 짓이겨 졌다. 깨지는 유리조각들이 녀석을 찔렀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파편들이 놈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무대의 막이 내린 것이다.


“아오......시발,  튀었네.”


이제 돌아가려는 길, 중간에 차 유리에 비춰진 내 얼굴을 보며 눈가부터 시작해 입까지 튀어버린 피들을 보았다. 소매로 대충 닦아내지만 잘 지워지지 않고 얼룩처럼 남아버렸는데 진짜,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샤워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지 못한다는 게 최악. 옷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온통 피로 끈적거리면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데 도저히 맡기가 역겨워 벗은 뒤 죽여버린 매드독의 머리에 던져버렸다. 묘비 대신으로 사용하라지. 그렇게 해줄 주인이 없어서 아쉽겠다만 뭐 어때. 내 똥개도 아니고.


권총의 탄을 갈아 끼운 뒤 허리 뒷츰에 꽂아넣고 사라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싸우면서 뛰어온 거리를 되돌아갔다. 여기저기에 방금 싸운 흔적들이 난장판이 되어 남겨져 있었다. 부서지고, 깨지고 하는게 거의 지역 철거 수준이었다.

“사라! 뺀질이!”


얘네들은 어디까지 간 것일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멀리까지 튀어버린  아니겠지. 만약 그 뺀질이가 사라를 데리고 나에게서 튄 것이라면 정말 끔찍한 경우였다. 조금씩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은 게 뺀질이는 계속 사라에게 호감을 보였고 누가 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걸음이 다급해져갔다. 급기야는 뛰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사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엔!”


불안감이  가시고 정겹고 반가운 목소리.


“사라!”


다행히 데리고 튀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엉뚱한 곳에서  이름을 외치고 있다가 내 목소리에 날 쳐다봐주었다. 완전히 날 보는 시선을 아니었지만  쪽이었으니까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석재는 보이지 않았다.

“조심해!”


갑자기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 소리에 뒤를 보니 다시금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대한 매드독이 파편에서 불도저를 밀어버리고 파편들을 깨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아,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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