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Envy (Wake Up, Shara) - 4
“뺀질이! 2층으로.”
등이 아프지만 꾹 참고 일어나 연기 속에서 정신을 헤메는 사라는 찾아 일으켰다. 우리가 먼저 빠져나온 뒤 석재가 튀어나오자마자 총알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창문을 넘어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아닌 일부만 들어온 것을 발소리들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나머지는 어딘가로 옮겨갔는데 경찰서의 정문쪽이었다. 잠깐 사라의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다가왔다. 아쉽고 절대로 놓기 싫은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사라. 잠시만 뺀질이랑 2층에 올라가 있어. 금방 돌아올게. 그리고 이거, 비상용.”
저번들처럼 마음이 편치않아 품 안에 넣어두고만 있었던 글록19를 꺼내 쥐어주었다. 방아쇠를 당길 줄만 안다면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만약 너를 헤치려 한다면 이걸로 쏴 갈겨버려.”
“나, 이런거 쓸 줄 몰라.”
“소리나는 쪽으로 방아쇠만 당기면 돼! 어서 가, 뺀질이, 빨리!”
석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사라의 손을 잡고서 올라갔다. 계단으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었다는 걸 느꼈지만 지금은 맘 편히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빠르게 튀어나왔던 문 옆에 붙어섰다. 귀를 기울이며 적들의 발걸음 소리에 집중했다. 조금씩 문으로 다가오고들 있었다. 언제쯤 들어갈까 타이밍을 잡다가 문에서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탄을 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다.
몸을 숙여 들어가며 권총의 총구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역시 내 감은 죽지 않았다. 바로 눈 앞의 얼간이가 탄을 갈아 끼우고 있는 중이었다.
“까꿍!”
당황하면서 피하려는 그에게 틈 따위 주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겨 심장을 터트려 죽이고 옅어지려는 연기사이로 시체를 밀며 들어갔다. 빠르게 돌진하다가 중간에서 지나가던 옆으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보여서 다리를 세게 걷어차버렸다. 무릎을 꿇게 한 뒤 어깨를 밟아 뒤로 넘어가서는 뒷덜미를 잡아 급히 일으켜 세워 새로운 방패로 삼았다. 동시에 총알세례가 쏟아졌다. 그대로 번갈아가면서 총알을 들이부었으면 좋았을 것을,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셋 모두 탄창이 비워질 때까지 쏴갈기고는 대머리가 들고 있던 칼들을 들고 나에게 덤벼들었다.
“자신있냐? 씹새들아!”
방패를 버리고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놈은 그냥 휘두르길래 가볍게 피하고 목을 베어버렸다. 두 번째 놈은 칼날을 막고 뒤로 흘려버린 뒤 발목을 걸어 넘어트리는 동시에 세 번째 놈의 목을 노렸다. 동작이 컸기에 당연히 막혔지만 그럴거라는 것쯤은 이제 지겹도록 알고 있었다. 바로 그의 복부를 차버리고 넘어트렸던 남자를 향해 몸을 돌리자 이제 막 일어나려 하던 참이었다. 보상으로 목을 꿰뚫어주고 다시 몸을 돌았다.
“썅년이!”
이제 욕도 하네. 좆같아서 다시 복부를 차버리고 대가리를 칼등으로 후렸다. 제대로 맞았는 지 남자는 어지러워 했고 목만 베는건 재미없어서 복부를 찔러주었다. 그런데 이 새끼, 쓰러지기는 커녕 자신의 칼을 높이 들고 날 찌르려 하는 것이었다.
“찔렸으면 좀 쓰러지라고!”
그가 이악물고 버티면서 치켜들었던 칼을 내려찍기 전 몸에 힘을 싣고 창문 쪽으로 밀며 끌고갔다. 나도 완전히 죽일 생각으로 복부를 쑤시며 있는 힘껏 민 덕분에 우리 둘의 몸이 창문턱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밖으로 밀쳐나가져 버렸다. 한 바퀴, 몸들이 구르면서도 난 나이프를 놓지 않으며 계속 찔러넣었고 바닥에 닿자마자 나이프를 빼내고 목을 베어버렸다. 그제서야 눈이 풀리며 시체가 되었다. 겨우 5명을 상대하는데 진이 빠지다니. 예전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에 한탄했다.
시체에서 일어나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놈들의 오토바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떠올라 좌석의 짐칸을 열어 보았고 그 안에는 마약들이 한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판국에 얘네들은 이런걸 어디서 구한 것일까. 몇 개 꺼내서 비닐을 이리저리 확인해보았다가 익숙한 문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발?”
내가 아는 문양이라서 놀랐고 개같았다. 설마......
“개새끼. 살아있었네.”
“위로 갈거야. 계단이 있으니까 조심해.”
엔과 떨어지고 석재씨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급하게 올라가야 했기에 모든 걸 감에 맡겨 걸어야 했고 그 탓에 중간마다 발을 헛디디거나 계단에 걸리기도 했다. 다행히 석재씨가 손을 잡아주어서 느리지만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평평한 바닥이 밟히었다.
“우선은 어딘가에 숨자.”
우리는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했고 중간에 커다란 총성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엔의 것인지, 오토바이의 나쁜 불량배들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불안감이 커져갔다.
“엔은......엔은.”
“걘 괜찮을 거야.”
나도 엔은 믿고 있었다. 그녀는 강하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나를 지켜주었고 지옥 같았던 그곳에서도 꺼내주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다시 울리는 총성소리들 때문에.
“여기에 들어가 있어.”
석재씨가 나를 어딘가로 밀어 넣었다. 단단하고 바닥과 벽이 모두 차가운 곳이었다. 팔을 뻗지 않아도 손이 닿는 차가운 곳. 캐비넷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무바닥은 아니었으니까. 들어가고 나서 곧바로 내 앞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몸 하나가 느껴졌다. 그 주인이 석재씨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문이 닫히고 주위가 조용해져갔다. 한 손에는 그의 손이, 다른 손에는 엔이 억지고 쥐어준 총이 긴장감을 더했다.
“권총 주겠어?”
그가 말했다. 엔이 쥐어준 총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들고있어도 쏠 줄도 모르고 용기도 없었기에 순순히 석재씨에게 넘겨주었다. 이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우리가 올라왔던 계단이었다.
“올라오고 있어요.”
“뭐? 들려?”
“네.”
발걸음 소리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다. 뚜렷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들이 계속해서 내 심장을 두들겼다.
“너희 셋은 2층에서 찾아봐. 나랑 나머지 둘은 1층에서 그 년을 죽인다. 움직여!”
엔과 대화를 했던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서부터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어서 엔을 도와야 했다.
“갈라졌어요, 3명은 우리가 있는 2층을 찾아본다고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엔에게 갔어요. 빨리 엔을 도와줘야 해요.”
“저게 들려?”
“네, 들려요. 어떻게 방법을 찾아야 해요. 도와주세요.”
애원했다. 하지만 대답은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고 그의 표정도 볼 수 없어서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옆에서 그의 팔이 움직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어깨로 그의 팔이 부딪혀왔다.
“여기 가만히 있어. 금방 돌아올게.”
그가 닫았던 캐비넷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손을 붙잡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에서 혼자 있는 것은 너무도 무서웠다. 우리를 잡으려는 나쁜 사람들도 날 잡아두고 여러짓을 다 했었던 그들과 같으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붙잡지 않았다. 방해만 될 것이고 함께 나갔다가는 발목만 잡을 거니까. 이런 두 생각이 부딪히는 사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를 때리고 석재씨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잠깐 동안의 침묵. 곧바로 이곳을 뒤덮는 총성들이 울렸다. 그 소리가 무서워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차피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도 앞이 보였을 때의 행동들이 내게 남아있었다.
귀를 막았지만 총성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눈물마저 날 것 같았다. ‘사건’이 일어나고 총성이 들려오면 항상 크립톤들의 괴성들도 함께 들려와 괴롭혔다. 이 때만 해도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괴성이 아닌 사람들의 비명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그때부터 무언가 많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중에서야 세상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알기를 거부해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총성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엔.”
조금이라도 무서움을 떨쳐내고자 엔의 이름을 담아보았다. 그녀가 옆에 있었다면 이 정도로 무섭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 두려움을 더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밖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 하나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지, 석재씨? 엔? 아니었다. 아무리 들어도 엔이나 석재씨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다른 사람의 것이었는데 계단에서 들려왔던 것과 비슷한 소리였다. 아까 작게 말했던 것을 들은걸까?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고 몸이 떨려왔다. 이윽고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계속 가까워지더니 캐비넷의 손잡이를 잡는게 들렸다.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야!”
그 때 기적처럼 석재씨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내가 있던 공간이 흔들렸고 내 몸도 흔들려 중심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소리는 끊기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무언가들이 부서지는소리가 들려왔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나무같은게 부서지는 소리, 문이 ‘쾅!’하고 열리는 소리, 무언가가 던져지는 부딪히는 소리. 밖에서, 그것도 바로앞에서 석재씨와 나쁜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소리들의 엉망진창인 합주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큰 총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끝이야.”
마지막의 총성소리가 들리고 다시 잠잠해졌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다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알고 있는 소리였다.
“괜찮아?”
석재씨가 캐비넷을 열고 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가 이긴 것이다. 아직도 몸이 떨리며 무서웠기에 그 손을 무심코 잡아버렸다. 이제 끝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며 밑에서 총소리들이 이어서 들려왔다.
오토바이를 몰아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일본으로 형사를 피해 토꼈을 때 말고는 몰아본 적이 없었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한 팔로도 넘어지지 않게 몰 수 있었다. 한 바탕 싸움이 끝나고 권총을 주워 챙긴 뒤 오토바이 중에 가장 멋들어진 것으로 골라 탔다. 얼마타지도 않겠다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한 방이었다. 바로 지금을 위하여.
“따르릉!”
정문쪽에서 나오고 있던 대머리와 두 헬멧 중 검은 헬멧을 쓰고 있던 놈을 바퀴로 박아버렸다. 그 충격에 오토바이가 중심을 잃었지만 재빠르게 뛰어내려 폐경찰차 뒤로 몸을 숨겼다. 헬멧을 썼다지만 속도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죽지는 않아도 기절정도는 했을 것이다. 조금 고개를 내밀고 그들이 나와 똑같이 옆에 있던 폐경찰차로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부딪혀 움직이지 못하는 자기 동료를 제쳐둔 채. 아까웠다. 그 놈의 ‘정’을 떠올리며 동료를 챙겨줬다면 둘 중 한 새끼의 머리구멍에다가 한 발 박아 넣었을 텐데.
“야! 대머리! 정정당당하게 우리 둘끼리만 칼빵 어때?”
싫다는 의사로 총알이 날아왔다.
“시발! 말로 해! 나도 방금 클락션 안되서 말로 하는 거 봤잖아!”
우선 첫 번째 작전은 실패였다. 바로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갔다.
“대머리 오빠! 나 젖었어!”
다시 엿이나 먹으라며 총알이 날아왔다. 두 번째 작전 역시 실패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작전을 써야 할 때였다.
“뺀질이! 사라! 지금이야!”
있지도 않은 애들을 부르며 한순간의 방심을 만들어내는 작전이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부른 뒤 바로 몸을 움직여 뛰쳐나가려다가 급히 되돌아오고 말았다. 속기는 커녕 내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총알세례가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엿 될 뻔한 것이다.
이제 마지막 작전도 실패하고 말았다. 다른 작전으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작전도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수단이었다.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고 고개를 뒤에 기댄 채 귀를 기울였다. 바람소리들 사이로 대머리쪽에게만 집중했다. 조금 뒤 누군가가 발을 떼어내는 것이 들려왔다. 움직이는 돌소리가 그 증거였고 빠르게 경찰차에서 튀어나가자 예상대로 몸을 드러낸 헬멧남자를 겨누고 쏴버렸다. 이후 대머리남자가 튀어나오려다가 내가 쏜 총알에 다시 기어들어갔다. 멈추지 않고 아까 오토바이에 부딪혀 쓰러져 있는 적의 헬멧을 한 번 걷어차주고 대머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경찰차의 앞머리로 뛰어올라 넘어가면서 그를 겨누었다.
“까꿍, 탈모아저씨.”
대머리도 나를 보고서 총구를 겨누었는데 그 탓에 쏴버린 내 총알이 그를 죽이지 못하고 애먼 총열을 맞춰 조준만 흐트려놨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총을 쓰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대머리도 그걸 알고서 서로 짜기라도 한 듯 각자의 나이프와 칼을 뽑아들었다. 서로의 굵은 날이 부딪히고 팽팽한 힘싸움이 시작되었다.
“장애인 배려 몰라? 양심있으면 좀 물려주지?”
“닥쳐.”
그가 먼저 칼을 미끄러트리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날려왔다. 막을 손이 없어서 허리를 꺾어 피하고 다리를 올려 그의 목을 낚아챘다. 다급히 나를 떼어내려 했지만 내가 더 빨리 힘을 싣고 올라가 나이프로 목을 노렸다.그러나 빗나가버렸다. 그가 몸에 힘을 싣고서 아예 나를 경찰차 쪽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대로 내가 넘었던 차의 앞대가리로 내팽개쳐졌지만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빗나갔던 그 순간에 나이프의 궤도를 바꿔 그의 귀를 잘라버렸다.
“시발!”
뭔가 더 말하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대머리의 주먹이 얼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고개를 움직여 피한다고 말을 끊어야 했다. 차의 표면이 찌그러졌다. 자유로워진 다리를 이용해 배를 걷어참과동시에 발목을 가격한 뒤 일어나 나이프를 다시 그의 목으로 가져가 휘둘렀다. 식상하게 닿지도 않았다. 한 걸음만큼 거리가 벌어졌다가 빠르게 다가가는 나의 걸음이 다시 사이를 좁혀갔다. 대머리에게 작은 틈 하나라도 주어서는 안되니까.
나이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정신없게 만들어보지만 대머리는 그걸 또 요리조리 피하고 받아쳤다. 전혀 맞지가 않아서 짜증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이제서지만 이 대머리새끼도 나와 완전히 같은 부류였다는 걸알게되었다. 물론 급은 다르다. 휘두르기만 했던 나이프를 그의 이마를 노리며 던져버렸다. 당연히 피하겠지. 그가 옆으로 피하며 부메랑처럼 날아가는 내 나이프를 간단하게 피했다. 그거면 돼. 즉시 옆구리를 걷어차 중심을 흐트리고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팔? 아니, 심장. 주삿바늘을 그의 심장에 꽂아 넣은 뒤 팔꿈치로 턱을 한 번 때려주고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얼굴에 뿌려주었다. 그의 손이 얼굴에 묻은 가루를 닦아내려다가 그만두었다.
“새끼, 잘 아네. 그거 니네거야.”
마무리로 던졌던 나이프를 주워 뒤에서 심장을 노렸다. 주사기에 들어있던 코카인이 벌써 그의 몸을 지배했을 것이다. 다른데도 아니고 심장에다 꽂아버렸으니 벌써 어질어질하겠지.
“다음 생에는 탈모가 없길 빌어줄게.”
이대로 찔러버리면 끝나는 것인데, 정말 더럽게 쉽지가 않았다. 대머리가 갑자기 나의 허리를 붙잡아 감싸 안더니 그대로들어올린 것이다.
“이 새끼, 왜 이렇게 질겨?! 계속 대머리로 살거야?!”
안되겠다 싶어서 심장을 포기하고 등을 수차례 쑤시며 내려찍어버렸다. 붉은 선혈의 자국들이 생겨나 꽤 아플 텐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에는 다시 한 번 역겨운 경찰차 앞대가리 위로 던져졌다. 운이 좋은 건 등이 모서리같은데 찍히지 않아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반대로 운이 나쁜 건 머리가 세게 부딪혀서 시야가 흐려졌다는 것이다. 시발, 그냥 흐릿한 정도도 아니고 빠르게 돌아오지도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머리의 주먹이 올라가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바로 옆의 철판이 또 찌그러졌다. 힘은 진짜 무지막지하네. 저 주먹 한 대 맞았다가는 정신 못차릴 것 같아서 나이프를 세게 붙잡고 다가온 대머리의 목을 찔렀다. 동시에 그의 주먹도 나를 내려찍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이 싸움, 내가 이겼다. 하지만 저건 좀 아플 것 같다. 나이프가 목을 들쑤셔 마지막 생명선을 끊었지만 둔탁한 주먹이 나의 얼굴을 제대로 가격해 앞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한 차례 흐려진 것도 문제인데 초점이 안 맞춰지는 건 당연지사에다가 색마저도 탁해보일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시발. 대머리 새끼, 존나 무겁네. 머리카락까지 자라있었으면 깔려 뒤졌겠네. 씹새끼.”
시야가 조금씩 돌아오기는 했다. 내 몸 위로 누워버린 대머리의 몸을 치워버리고 두 다리로 일어서서 천천히 중심을 잡아갔다. 더럽게 어지러웠다. 계속 휘청거렸다. 한 팔이 아닌 두 팔 모두 멀쩡했다면 이 딴 불량배새끼쯤,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역시 한 팔로만 싸우는 것은 힘들었다. 잠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고자 경찰차에 기대 앉았다. 머리를 만져보니 정말로 세게 맞아서인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코가 부러지거나 하는 것보다는 훨 나았다.
“하......시발.”
예전의 나라면 이미 정리하고 멋지게 사라를 구했을 텐데.
“엔!”
나를 부르는 사라의 목소리와 함께 석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격렬한 운동에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모든게 귀찮아졌다. 그래도 나는 움직여야 했다. 사라를 위해서.
아침운동이 끝나고 기절만 시켜놓은 헬멧의 남자를 가둬놓은 뒤 다툼이 일어났다. 주제는 사라였다.
“아까 급한 상황이라 말 못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그런거야?!”
“뭘?”
“하마터면 모두가 위험할 뻔했잖아!”
이 대화를 시발점으로 시작된 다툼은 조금씩 산불을 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서로 손잡고 불가마 안에라도 들어가 있냐? 다 생각하고 벌려놓은 판이거든!”
“결국은 살았으니까 상관없다? 죽을 뻔한 위험에는 다 빠트려놓고?! 내가 말한대로 했더라면 이 정도까지 커지지 않았을 거야.”
석재의 목소리가 커져 사무실 안을 쩌렁쩌렁 울려댈 정도였다. 옆에 앉아있는 사라가 무어라 말해서 말리려고 했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묻혀갈 뿐이었다.
“그리고 사라한테는 왜 무기를 쥐어준거야? 생각이 있어? 자꾸 사라를 목표물로 만들어서 위험하게 만들거야?!”
“어차피 저새끼들은 처음부터 우릴 죽일 생각이었어. 그냥 붙잡혀 죽는 것보다는 저런거라도 쥐고 저항이라도 해봐야지. 니새끼야말로 생각을 좀 더 넓게 가져가지 그래?”
“사라는 앞이 보이지 않잖아.”
“넌 대가리도 온전히 붙어있는 새끼가 아직도 장애인 우대해주는 복지세상으로 보여? 이미 시대는 원시시대로 회귀했어. 약육강식 사회라고! 시대분간 못 하냐, 뺀질이 새끼야!”
“야!”
“뭐?! 한 판 해?”
급기야 우리는 서로 죽일 기세까지 넘어갔다. 당장이라도 서로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준비상태였다. 격하다 못해 개판인 것이다.
“후......됐어. 이제부터 사라는 내가 챙길거니까 넌 따라오기나 해.”
“이 뺀질이 새끼가 진짜 미쳐 돌았나? 좆까, 시발아. 내 여친인데 누구 맘대로 목줄을 채워? 니 새끼 딸딸이 치는 오른손에 채우고 오세요. 씹새야.”
“시발, 진짜!”
이번에는 정말로 달려들었다. 벌써 각자의 손에 무기들이 올라갔고 누구든 한 명 저세상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안돼요!”
뺀질이 새끼 대가리에다가 한 발 박아 넣으려는 찰 나 사라가 갑자기 끼어들어왔다. 내 앞에 서서 석재의 행동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이럴 대마다 그녀는 앞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정확하게 내 앞에 서니까.
“엔의 말대로 저희는 모두 살았어요. 그러니까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해주세요.”
석재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사라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말을 잘 듣는 게, 자신이 쥐고 있던 총의 총구를 먼저 내려놓았다. 그에 따라 나도 나이프를 등에 도로 꽂아 넣었다. 그럼에도 아직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도로 가져가.”
그는 나에게 글록19를 던져주었다. 내가 사라에게 쥐어주었던 호신용 무기였다. 그 나름대로 한 발자국 양보한 것이다. 나도 더 이상의 마찰을 잠시 접어두기 위해 권총을 받고 품 안에 넣은 뒤 조용히 짐만 챙겨 넣었다. 이미 우리는 어긋나 있었다.
소화기 때문에 더러워진 침낭은 몇 번이고 털어야 했다. 털어도 털어도 빨간색의 침낭은 하얀색의 가루를 머금고 있었다. 도저히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정도여서 아무래도 버려야했다. 대신으로 할 만한 것을 다시 구할 수나 있을련지.
가방들 역시 가루들이 묻었지만 지퍼를 잠궈 놓았던 덕분에 내용물들은 모두 깨끗했다. 그냥 메고만 가면 될 정도였다.이제 이 거북한 곳과는 안녕이었다. 다른 곳들처럼 정들지 않았기에 미련도 없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어쩔거냐?”
석재는 내가 데려와 가둔 취조실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까 아침운동 때, 일부러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켜두었던 놈을 내가 잡아와 묶어놓고 있었다.
“알아낼게 있어. 넌 사라 데리고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
이제부터 내가 뭘 할 것인지 그는 눈치를 채고 사라와 함께 밖으로 나가주었다. 사라는 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해 했지만 알지 않는 게 그녀의 정신건강에 좋았다.내 가방만 내버려둔 채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라고는 들어오는 곳이 없어 켜진 램프만이 안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내가 잡아온 남자의 이름은 ‘정수한’이라는 자였고 꽤나 오토바이 무리에몸을 담고 있던 27살의 불량배였다. 그는 테이프로 손목과 발목들이 의자에 묶인 채 팬티 한 장만을 걸치고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의 두려움 가득한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취조실이야. 지금부터 나는 내 방식대로 너에게 질문을 할 거야. 모른다고 하면 거기부터 잘라서 쳐먹든지 딜도로 쓰던지 할거니까 대답 잘해라.”
“......뭐가 궁금하지?”
“내가 질문한다고 했잖아, 개새끼야!”
그가 먼저 질문했다는 것과 표정이 띠꺼워서 걷어차 버렸다. 의자에 함께 넘어진 그를 발로 일으켜세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 잘들어. 질문은 나만 할거야. 넌 대답만 해. 오케이?”
“그러지.”
“좋아. 시발.”
이제서야 취조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여러번 해본거지만 한 번쯤은 이런 어두칙칙한 취조실에서 해보고 싶었다. 경찰서만 아니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네 구성원 총 몇 명이야? 대충 셈해도 돼.”
“이제 76명.”
대략 40,50명쯤 예상하고 있었는데 내가 18명을 죽이고도 남은 숫자가 76이라면 상당했다. 이런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세력도 크다, 이 말인가. ‘사건’전이었다면 흔한 숫자였겠지만 이런 판국에서는 많은 숫자였다. 한 번에 부딪혔다가는 꽤나 골을 썩혔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팔이 하나고 내가 아는 깡패두목새끼들도 전부 뒤져버렸고.
“배가 있는 선착장 알지? 거기에는 몇 명이 지키고 있지?”
“8명이 대기하고 있어.”
배는 충분히 타고 갈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
“지금 너희 리더는 누구야? 이름, 생일, 경력. 싸그리 말해.”
누가 이들을 이끌고 있느냐였다. 어쩌면 내가 아는 놈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이 바닥에서 유명했던 만큼 나도 아는 깡패새끼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리재혁.”
......시발?
“잠깐, 뭐? 리재혁? 인천에서 깡촌 열었다가 개털리고 사라졌던 그 빨갱이 새끼?”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너무도 잘 아는 사이였다. 와, 좆됬네. 리재혁, 나에게 돈을 후하게 쳐준다길래 몸팔러 들어갔다가 개 취급도 안해주는 월급에 비싼 값의 살인들까지 외상으로 해줬더니 줄줄이 밀리다가 나한테 개박살나고 종적을 감추었던 간첩이었다. ‘사건’이 터지고도 소식이 없어서 뒤졌겠거니 했는데 아직까지도 살아서는 여기서도 마약 깡촌을 열고 있었다니.
“어떻게 아는 거야?”
다시 한 번 수한을 걷어차 주었다. 이어서 그의 멱살을 잡고 올라타 두 무릎으로 어깨는 짓눌러주었다. 고통스러운지 이를 악물고서 버티고 있었다.
“내가, 시발놈아, 질문은 나만 한다고 했지. 간부터 빼줘?”
그의 고개가 아픔을 이기며 거부의사를 표했다. 다시 발로 일으켜주었다.
“리재혁, 리재혁......야, 그 새끼 나 여기있는 거 알고있어?”
“모를거야. 우리도 찾아내 죽이라는 말만 들었어. 누군지는 몰랐어.”
다행이었다. 그 간첩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모두를 이끌고 직접 맞이하러 왔을 것이다. 나 혼자서 마주한다면 괜찮았겠지만 사라가 있어 매우 위험할 상황이었을 테고. 미리 알아서 잘 됐네. 조금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거 있어?”
“있어.”
“그럼 말해. 들어줄게. 계획이 변경되서 널 죽이고 갈 거거든.”
“그럼 그냥 죽여. 시간 끌지 말고.”
마지막이라고 자존심이 있다는 듯 말했지만 내게 정보를 술술 풀어준 것부터 그의 자존심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괜히지 꼬추만 세우는 짓이었다.
“두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나름 술술 정보도 불었으니까 그 답례라도 하려는 거야. 뭐든지 말해봐. 들어줄 수 있는건 들어줄 테니까.”
그는 자상한 나의 답례에 비웃는 미소를 짓더니 원하는 것을 내뱉었다.
“내가 요즘 여자가 고파서 말이야.”
역시나. 그 리더에 그 애새끼일까. 아니, 이건 이 남자 나름대로의 조롱이었다. 어차피 죽을거 나를 놀리고 죽자는 식이었다. 보통은 저런 말 했다가 목이 베이는 게 일상이겠지만 난 달랐다. 마침 나도 오랜만에 이 썩을 본능을 풀어줄 장난감이 필요한 참이었다.
“너, ‘복상사’라고 알아?”
당황은 커녕 자신만만한 나의 표정에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정신나간 여자를 보는 듯 했는데 그건 나도 알고 받아들이는 부분이었다.
“‘복상사’는 보험처리도 안해준다더라. 그리고 말이야.”
그의 팬티를 잘라내고 나도 바지를 내렸다. 유일하게 피가 묻지 않은 팬티가 드러났고 옆으로 조금 치우지 나의 속살이 드러났다.
“나도 남자가 고픈 참이었어.”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해갔다. 꽤나 오랫동안 즐거울 것이다. 오랫동안, 이 새끼가 뒤질 때까지.
“잠깐!”
“세워, 시발련아.”
얼마만일까, 이렇게 오랫동안 해보는게. 수한의 심장은 쾌락을 따라서 몇 번이고 요동치다가 이내 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