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Envy (Wake Up, Shara) - 1
탄창을 빼고 장전했다. 새로운 9mm탄환들이 권총 안으로 들어가고 눈앞에 있는 여자의 몸을 찢어버릴 준비를 했다. 지금만큼은 총알이 아깝지 않았다. 운 좋게 대량으로 발견했고 지금 내 옆에 박스채로 있으니까.
“보자. 아직 260발은 더 남은거 같은데, 몇 발을 더 쏴야 니년 몸이 반으로 끊어질까?”
커플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여자쪽. 천장에 손이 묶이고 천쪼가리 하나만을 걸친 채 몸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나의 뒤에는 남자가 안타까운 눈빛과 절망, 분노와 함께 오열하고 있었다. 딱히 재갈을 물려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미리 시끄러워질까 혀를 잘라놨기 때문이다. 여자는 입은 속옷으로 막아버려 조용히 시켰다.
“탄창 3개만 더 쓰면 되나?”
여자의 배쪽에는 내가 쏴 맞춘 총알의 흔적들이 가로로 선을 그리고 있었다. 붉은 피도 일자로 흐르며 커다란 폭포를 만들고 그녀의 아래를 완전히 적셔놓았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데 그 쪽은 아직도 흐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상이 이래서. 어쩌면 폭포대신 시체들이 쏟아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미술실에는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많았는데 그 중 멀쩡한 하나가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사람새끼냐고 묻는 것 같은데 어쩌나, 난 사람새끼가 아니다. 매번 말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장전을 끝내고 다시 여자의 배쪽으로 조준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헛맞지 않도록 조심히, 아주 정교하게 조준했다. 그녀는 이제 신음소리조차 없었다. 죽은 건 아니고 아마 기절이거나 의식이 날아갔을 것이다. 아니면 진짜로 뒤졌나? 뭐 어때, 한 발, 두 발, 세 발, 차례대로 17발. 여전히 몸은 무리없이 이어져 있었다. 슬슬 중간으로 장기가 보이긴 하는데 엄청 질긴건 지 붙어있는 게 신기했다.
여자의 고개가 완전히 축 쳐지고 나는 또 빈 탕창을 뺀 뒤 새로운 탄창을 끼워넣고 쏘기를 반복했다. 뒤에는 여전히 남자가 오열하다가 무어라 소리치는데 무시해버렸다. 자, 다시 조준을 하고 한 발, 두 발, 세 발. 그리고 네 발째, 드디어 무리하게 이어져 있던 여자의 몸이 끊어져 하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상체는 묶인 손 때문에 여전히 매달려 갈고리에 걸린 식용돼지마냥 피나 철철 흘리고 있었다. 꽤 재밌네, 이거. 추가로 들리는 남자의 외침, 고개를 돌려 눈물범벅이 된 그와 마주했다.
“왜? 화나?”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그의 표정에서부터 나를 잡아먹으려 드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지만 일부러 비꼬며 물어보았다. 남자의 눈이 계속 매서워져 갔다. 가까이서, 당장 코가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이렇게 해도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러게 시발, 자는 사람을 왜 쳐 건들고 지랄이세요? 니 여친 위해서 멋있는 척 할거면 적당한 새끼를 건드려야지. 하여튼 이 빌어쳐먹을 장애인 신세 때문에 존나 밑보이네. 관심이란 관심도 다 받아보고 개고생이야, 시발.”
권총을 옷 안에 집어넣고 피곤해서 하품을 찍찍 내뱉었다. 그래도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총 쏘는 것도 이제 질렸고.
“잘 들고 있어. 이제 딱 두 개밖에 안 남은 보물인데, 너 하나 줄게. 짜잔~”
주머니에서 동그란 수류탄을 꺼내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핀을 뽑은 채. 동시에 남자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지는데 볼만했지만 지금은 그런게 들어오지 않았다. 피곤하니까 얼른 자고 싶었다.
미술실의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잿빛하늘 때문에 어두운 복도를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생겼지만 어린애들처럼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귀신보다 더한 괴물새끼들이 돌아다니는데 뭐가 무서울까. 몇 초 지나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곧바로 이 무엇인지도 모를 건물을 나오지 않았다. 아직 데려가야 할 사람이 남아있었다. 바로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라였다. 싸움 중간에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급히 지하에 있던 큰 금고 안에 집어넣고 왔었다. 막 다루는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이런 망할 판국에서는 폭탄도 막아주는 게 금고였다. 금고만큼 좋은 방패가 없지.
비상계단을 타고 내려온 지하실은 어두웠다. 우선 눈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천천히 금고를 향해 다가갔다.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나고 찌그러진 금고. 사라가 몸을 구부려 들어가야 딱 크기가 맞았던 그것 앞에 다가가 노크했다.
“아빠 왔다.”
“엔, 어서 꺼내줘. 너무 비좁아......”
사라가 말한다. 기다리라는 의미로 노크를 해주고 금고의 비밀번호를 풀기 시작했다. 조금 오래 걸린 듯 했지만 크립톤이라는 커튼이 쳐지기 전까지는 열 수 있었다. 금고에 귀를 가져가대고 소리에 집중했다.
“엔?”
흐트러진다. 내가 말이 없자 불안하기라도 한 듯 사라가 불렀다.
“조용히 있어. 안그러면 금고채로 들고가야 하니까.”
그녀를 진정시키고 다시 소리에 집중했다. 톱니, 마찰음,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금고의 잠금장치 설계도를 그려갔다. 톱니가 돌아가며 한 곳에서 ‘찰칵’소리와 함께 잠금장치를 풀고 단단한 금고문을 열자 다이아나 돈 따위보다 훨씬 비싸고 가치가 있는 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원피스에 파란 목도리, 갈색 부츠. 베이지색 머리카락의 그녀가 몸을 웅크린 채 있다가 느껴지는 내 인기척에 손을 뻗어 나를 찾았다. 그러다 옷자락도 아닌 작은 내 가슴이 잡혔다. 뭐라고 핀잔을 주기는 커녕 이해했다. 사라는 앞을 보지 못하니까. 이제는 시각장애인이 되버린 그녀에게는 이게 당연했다.
“그래, 그래. 가자. 졸립다.”
사라를 조심히 금고에서 꺼낸 뒤 건물 밖, 대기시켜놓았던 누군가와의 나쁘지는 않은 추억이 담긴 차량에 태웠다. 그녀에게 알맞게 조정한 조수석이 주인의 등장에 요란해보였다. 운전석으로 돌아서 타고 시동을 걸고서 차를 출발시켰다.
지금 우리가 달리는 이곳은 커다란 도심 속이었다. 촌동네의 시내가 아니라 완전한 도심.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도로 여기저기에 버려진 녹슨 차들이나 불에 타버린 폐차량들이 건물에 쳐박히거나 길을 막고 있었다. 덕분에 겨우 구한 반쪽자리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해야했고 짜증과 귀찮음이 늘어갔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쉬는 틈에 염장질 커플하나가 나를 털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거 참, 부산가기가 이렇게 힘들었었나? 옘병할. 그 와중에 또 길이 차량들로 막혀있었다. 그것도 시내버스로. 참다못한 내가 소리를 질렀다.
“이 시발! 죄다 김여사법으로 엑셀 쳐밟았냐! 좀 지나가자 개새끼들아! 아오, 시발! 개 좆같은 새끼들.”
욕으로 성이 차자 않아 차에서 내린 뒤 버스로 다가가 발로 차버렸다. 미동도 없었지만 그래도 차버렸다. 찌그러져 있던 버스의 옆판이 부서져갔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부서진 판을 또 걷어 차버렸다. 에라이, 시발.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풀고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옆에서 앞만 보고 있던 사라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뭐?
“엔. 화내면 안 돼.”
“맨 입으로?”
“잠시 손을 빌려줄래?”
그녀가 바라는 대로하나밖에 없는 내 손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따뜻한 감촉 위에 사라의 다른 손이 얹어졌다. 차가웠던 손이 그녀의 온기를 받아 따뜻해졌다. 거기다 쓰다듬기까지. 천국이 따로없네.
“좀 진정이 됐어?”
아무래도 의사가 아니라 수의사인 듯 했다.
“손이래서 손 줬더니 내가 똥개로 보이지?”
“엄마가 내가 어릴 때 힘들어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면 이렇게 손을 잡아주었었어. 그때마다 진정이 되고 편안해졌거든. 별로야?”
“적어도 주먹을 쓰지는 않을 정도야.”
예전부터 그랬지만 그녀에게는 마법같은 효과가 있었다. 지금가지 그 누구도 나의 분노조절장애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오로지 사라만이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 진짜로 흥미롭고 대단한 보물이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는 차를 후진시켜서 다른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건물 사이로 구름들이 사라지고 하늘은 회색빛에서 진한 어둠으로 장막을 치고 있었다. 곧 있으면 크립톤들의 활동시간이었다. 머무를 곳이 필요했고 차량을 숨김과 동시에 잘 곳을 한 곳, 발견할 수 있었다. 살인자였던 나는 쉽게 갈 수 없었던 병원, 그곳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3층의 한 병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침대들을 떼어내거나 부숴버려 잔해들로 문과 창문들을 단단히 막고 커튼위에 뜯어버린 침대피들을 붙여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작은 램프 하나를 켜두고 침낭을 꺼내 펼쳐 사라를 먼저 눕힌 뒤 그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서 앉았다. 아쉽게도 불을 피우거나 할 수 없어 온기를 챙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버텨야 했다. 잠시마나 따뜻하게 해줄 핫 팩이 있었지만 두 개 모두 사라에게 주었다. 그녀는 추위에 약했다.
“엔은?”
“존나 더워.”
덥다기보다는 그냥 버틸 수 있는 기온이였다. 분명 추운 것은 맞지만 담요도, 옷도 필요 없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버틸만했다.
“이제 부산까지 얼마나 남았어?”
사라가 고개를 내게 기대며 물었다. 그러게, 얼마나 남았더라.
“얼마남지 않았어.”
사실 모르겠다. 네비게이션도, 제대로 된 지도도 없는데. 거기다가 길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문제였다. 고속도로만 쭉 타고 간다면 수월히 갔겠지만 대부분이 막히거나 부서진 지 오래라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하루면 갔을 부산을 현재 몇 일이나 소비하며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 지 장담할 수 없었다.
세웠던 무릎을 내리고 품 안의 권총에 손을 대었다. 요즘 총을 쏘면서 느낀 것인데 탄창을 끼는 것부터 방아쇠를 당기는 것까지 모든게 뻑뻑했다. 손질이 필요했지만 그럴 수 없는게 안타까웠다. 바꿔야 할 때가 온건지도 모르겠다. 꽤나 애착도 생겼는데.
잔뜩 경계심을 가지로 창문과 문을 번갈아보며 긴장하던 사이 구석진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조건반사 하는 것 마냥 빠르게 움직였고 권총을 뽑아 그곳을 겨누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헛것이었다. 그저 둥그런 막대 하나가 우리쪽으로 굴러온 것 뿐이었다. 어디서 떨어진거지?
“엔, 방금.”
사라가 잔뜩 겁을 먹은 채 나에게 더 들러붙었다. 한 바탕 크게 겪고 난 뒤 그녀도 평소보다 긴장감과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잡동사니야.”
몸까지 떨며 눈을 감은 그녀를 진정시키고 그 잡동사니를 잡아들었다. 무엇인가 하고 보니 접이식의 막대였다. 우산같은 거에서 분리된 것 치고는 튼튼한 것이었지만 그래봤자 쓰레기였다. 이왕이면 필요한 거나 주지. 저 멀리 던져버렸다.
사라는 추운 지 다시 침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춥지 않도록 쓸만한 담요하나를 그녀의 위로 덮어주었다. 그러는 김에 내 것도 하나 챙겨 대충 둘렀다. 사라가 졸린듯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그럴만도 한 게 조수석에만 앉은 채로 몇 시간을 보내고 중간에는 급히 내려 뛰다가 좁은 금고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갸날픈 그녀에게는 체력적 한계를 넘은지 오래였다. 벌써 잠들어버렸다.
어둠, 침묵, 차가운 공기. 사라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될 이 공기에 자연스럽게 과거의 내가 앞에 나타났다. 똑같이 무릎을 안은 채 앉아있는 모습에 이가 아팠다. 조금 다른 점, 내 앞의 나는 고개를 쳐박고 눈만을 내보이며 지금처럼 한 팔이 아닌 두 팔을 달고서 무릎을 안고 있었다. 막 고등학생이 된 나였다.
그 나이에 뭘 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바로 기억이 날 정도로 자극적이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핵심적이 말들로 정렬해본다면 첫 살인, 첫 납치, 첫 의뢰,총, 섹스였다. 모두 아빠새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들이자 훈련이었고 몇몇개들은 기자들의 디저트가 되었었다. ‘살인자’라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 시작이 첫 살인이었다. 어땠더라?
고등학생이라는 겉치레와 교복을 입고서 아빠새끼의 차를 타고 이동했던 곳은 어떤 폐공장 이었었다.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않아 녹이 뒤덮고 있는 그곳은 천장에 뚫린 구멍들로만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 빛 아래로 한 남자가 있었었다. 옆에는 끊어진 채 버려져 있던 검은색의 가방이 있었고 그는 당시 유행했었다는 헤어스타일, 청바지를 입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청년이었다. 입은 가려진 채 흔들리던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에 훤했다. 그 청년을 내 앞으로 밀고서 했던 단 한 마디.
“죽여봐.”
그러면서 쥐어두었던 식칼. 그 때 이상하게 느꼈던 것, 처음임에도 익숙한 것처럼 거북함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은색의 날이 청년의 몸을 수차례 찌르고 내 손과 교복은 핏빛으로 물들여졌었다. 일부는 내 얼굴에 튀기도 했고. 청년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었다.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서야 멈췄던 나였다. 끝나서 나서 아빠새끼가 귀에 대고서 이렇게 말했었다.
“잘했어.”
그 일이 있고난 다음날에는 납치를 배웠다. 아빠새끼가 근처에서 차를 타고서 대기하면 내가 후드자켓에 모자까지 둘러쓰고서 밤길에 지나가는 여자를 힘으로 제압해 차에다 집어넣는 식이었다. 그 뒤에는 적당이 죽여서 버렸고 급하면 그 차안에서 내 손으로, 쥐어주는 칼로 즉석에서 죽여버리기도 했었다. 이 일들은 매일매일 신문에 올라 전국이 떠들썩 했었지만 그 누구도 우리 부녀를 잡지는 못했었다.
옛 추억 같지도 않은 기억 속에 빠져있을 때 ‘쿵’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글록17을 꽉 쥐어 잡았다. 와야할 놈들이 온 것이다. 모든 신경들을 그 놈들에게로 집중했다. 창문에 이어 문까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지 않고 복도도, 천장에서도 들려오는 크립톤들의 흔적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막았고 사라가 잠들자마자 램프도 꺼버려서 들킬 위험은 없었다. 이대로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지루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꽤나 큰 ‘쿵’소리와 함께 어딘가를 긁는 소리들이 들려왔고 놈들은 건진 것 없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밤도 무사히 지나가주었다. 옆에 누운 사라는 눈을 감고서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올랐다가 내려가는게 만지고 싶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 마디, 말해주었다. 매번, 그녀가 잠들고 크립톤들이 지나가면 해주는 말.
“잘 자, 사라.”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여기에 온지 하루만에 3가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선 첫 번째, 3가지의 일들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이다. 바로 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을 위한, 정확히는 사라를 위한 도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 시발, 역시 난 대단해. 이대로 장애인들의 장영실이 되볼까?”
“무슨 일이야? 엔.”
아침부터 사라가 깨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던 나는 너무지루했던 나머지 어젯밤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3단 접이식의 긴 막대를 도로 주워와 새로운 도구로 활용했다. 한 쪽 끝에는 침대의 고무로 만들어진 다리캡을 떼어내 붙이고 반대쪽에는 손으로 잡는데 있어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얇은 시트의 천을 꽉 두르고 죽였던 여자에게서 얻어낸 머리끈으로 고정을 시켰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한다는 긴 지팡이를 완성시켜내었다. 오로지 사라를 위한 것으로 무엇보다 이 지팡이는 3단접이식이라 작게 만들어서 소지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고무캡 때문에 소리도 크게 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마무리 작업으로 사라의 이니셜까지 나이프로 긁어 새겨 넣어 그녀의 것임을 증명케 했다. 이 모든게 수제작으로 완성 된 것이다.
“어때?”
“혼자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지팡이를 이용해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벽에도 다가가보고 문 쪽으로도 이동해보며 움직인 사라의 평이었다. 이로서 사라는 만에 하나 내가 없을 때에도 더 편하게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안전한장소 한정으로. 그 외의 때나 장소에서는 나와 함께 다녀야 했다.
“잘 됐네. 기다려봐.”
신기한 듯 여기저기로 돌아다녀보던 그녀를 멈춰 세우고 소중하게 들고 있던 그 지팡이를 잠시 가져와 접은 뒤 사라의 허리츰에 달아주었다. 벨트 대신으로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찢어진 커튼으로 대신했다. 그 후 사라의 손을 잡아 지팡이의 위치와 함께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다시 혼자 사용해보고 도로 접어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허리츰을 더듬으며 지팡이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아까처럼 병실은 잠깐 돌아다녀본 후 스스로 접어서 다시 제 허리츰에 꽂아 넣었다. 하나하나 엉성했지만 합격점은 충분히 줄 수 있는 정도였다.
“고마워, 엔.”
“맨입으로?”
그녀가 웃으며 내 옆에 앉고 어제처럼 내 손을 잡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덮어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언제나 차가울 수 밖에 없는 내 손을 데워주었다.
“지팡이로 모자라서아예 똥개까지 키우게? 나 잘 무는거 알지?”
일부러 비꼬는 말을늘어놓았는데 사라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여전히 짖궂은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이게 첫 번째 일이었는데 재강조하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지팡이를 만든 뒤 차를 몰고 이동하던 중 길이 끊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리하나를 건너서 저 맞은편의 도심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다리를 건너려면 이쪽과 반대쪽에서 이어줘야 하는 구조였다. 그것도 최소 10km는 되어보이는 이 다리를.
그리고 이 다리, TV에서 얼핏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크립톤 등장 이후 비상시 대피로 비슷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조작용 다리였다. 꽤나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고 무사히 완공되었지만 완전히 무쓸모가 되어 돌아왔다. 나와 사라가 지나갈 수 없었으니까. 급격히 화가 치솟아 오를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대피용을 커녕 지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놨네.
“하여튼 뭐 하나 거하게 싸질러놓고 꽁냥꽁냥 제대로 쓰는 경우가 없어, 시발롬들. 이럴거면 그냥 다리를 만들던가. 보여주기만 급해가지고 지들 똥이나 뭉쳐서 보여주네. 시발.”
옆에서 사라가 눈초리를 주었지만 무시해버리고 그녀와 함께 다리관리센터라고 적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동안 아무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며 뿌연 먼지와 늘 함께 다니는 거미새끼들이 벽이며 바닥이며 자신들만의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신발바닥에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중고품보다 더한 상품으로 변질시켜버리고 있었다. 몇 걸음 움직이자 보이지 않던 거미줄이 얼굴에 붙어버렸다.
“집 참 좆같은데다가 지어놨네! 입에도 들어갔어, 시부랄.”
입에 들어간 것들 때문에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맛도 느낌도 참 더러웠다. 침을 뱉으며 밖으로 빼내긴 했지만 찝찝함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이런 동굴 같은 복도를 꽤 지나서야 제어실을 찾을 수 있었다. 버튼 덮개들마다 먼지가 쌓여 어느게 어떤 것들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어차피 친절히 설명이 적혀있었어도 난 알아먹지 못 했을 것이다. 총 빼고는 기계치인 나였으니까.
하는 수 없이 모든 덮개를 열고 하나씩 눌러봐야 했다. 이거 눌러보고 저거 눌러보고 그냥 잡히는 버튼마다 다 눌러보았다. 중간에 이상한 경고음 같은거나 안내음이 들렸지만 알 바 아니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당첨될 수 있었다. 하나가 얻어걸리더니 여기저기로 빛들이 들어오면서 다리 한쪽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강위로 접이식의 다리가 천천히 펼쳐지며 작동되었다.
“하! 역시 난 천재야! 아인슈타인도 저리가라지.”
옆에서 듣고 있던 사라도 잘했다며 눈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내 말은, 기쁘게 봐주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두 번째 일도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마무리뿐만이 아니지, 해결까지 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시당초 고속도로들만 제대로 뚫려 있었다면 벌써 부산에 도착하고도 사라와 뜨거운 밤과 낮을 보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건 해결되지도, 마무리 되지도 않았고 현재진행형이었다. 거기다가 딱히 평화로운 순간도 아니었다. 총알들이 오가는 생생한 장면의 순간이었다.
반쪽뿐이지만 다리를 무사히 가동시키자마자 밖으로 나왔고 원래는 차량을 타고 반대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 나나 사라나 수영 따위는 할 수 없었고 갈 수도 없어 배 같은 것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꼭 차까지는 아니고 우리만 넘어가서 다리를 내린 뒤에 건너면 되었다. 참고로 다른 다리나 길은 어제부로 다 막혔다는 것을 확인한 터라 꼭 이 다리를 지나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차의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사라의 청각이 한 건 해내주었다.
“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
“뭐?”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가 달려온 길 쪽으로 두 눈을 치켜뜨며 확인해보았다. 몇 초쯤 지나 햇빛에 반짝이는 여러대의 오토바이를 볼 수 있었다. 환장하겠네.
“사라! 빨리 타!”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결코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저것들은 착한 호구들이 아니었다.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바로 뒤에는 사람을 매달아 바닥에 끌고 오는 착한 호구새끼들이 어디에 있겠어. 안그래도 급한 상황, 사라의 비명이 그걸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탓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해자였다.
사라의 비명은 조수석의 문이 열리다 말고 들려왔다. 다행히 운전석에 오르기 전이라 빠르게 확인 할 수 있었는데 화도 덩달아 빠르게 차올랐다. 사라의 팔에 밧줄에 묶인 작은 갈고리가 박혀 맞은편의 식당쪽으로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 밧줄을 따라가자 검은색의 헬멧을 쓴 건장한 누군가가 내 여친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거기다 사라가 다쳤다는게 나를 빡돌게 만들었다. 이미 총을 드는 것에 대한 이유는 충분했다.
“이 새끼들이 누구 여친을 쳐 건드려?!”
어디서 쳐 튀어나온 놈들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은 늦게 내 총을 발견하고서 조준을 했지만 아름답게도 먼저 머리에 바람구멍들이 생겨난 것은 그들이었다. 사라를 끌던 놈부터 총알을 쳐박아넣고 나머지 것들에게도 그 어떤 오차의 실수없이 연속으로 쏴재껴 죽여버렸다. 5명. 5발의 총알을 쏘고나서 나이프를 들고 사라를 다치게 했던 밧줄을 끊어버린뒤 부축해 데리고 엄폐할 수 있을 만한 폐차의 뒤로 숨어들었다.
“시발, 잡놈 새끼들이.”
입에서 거친 욕이 쉴 틈 없이 나왔다. 이미 사라의 어깨에는 갈고리가 박혀 피를 흘리게 하고 있었다. 내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 여친이 상처입었다. 내 여친이!
“사라! 정신 똑바로 차려! 괜찮아?”
“난......괜찮아.”
“괜찮기는 개뿔!”
품안에 넣어두고 쓰지 않았던 붕대로 빠르게 응급처치를 해주고 그녀는 폐차에 기대 앉혔다. 장소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 멀리서 다가오던 오토바이들의 소리가 가까워졌다. 고개를 내밀고 보니 3대 정도가 앞서 오고 나머지들은 시내버스 뒤로 숨어버렸다. 덕분에 상대가 몇 명인지를 셈할 수가 없었다.
“사라. 지금 상황이 엄청 좆됐어.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좆된건 변함이 없어. 그러니까 꼼짝말고 여기에 있어. 알겠지? 네가 애지중지 하는 똥개의 말이니까 그 정도는 들어주겠지? 그치?”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옳지 착하다, 우리 주인. 똥개는 잠깐 다녀올게.”
이번에는 차 옆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고 밑의 틈으로 앞서 왔던 3명의 위치를 확인했다. 몸은 안보여도 다리랑 발이 보이니 그것으로 위치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금씩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데 이런 싸움에 경험이 있는 듯 한 움직임과 자세들이었다. 저번에 상대했던 어린 꼬맹이들 따위가 아니었다. 당장 다가오는 저 3명은 이미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고 있겠지.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사라를 무사히 지키면서 빠져나갈 방법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적당한 방법을 찾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 신호로 손에 쥐고 있던 글록을 다가오는 그들 앞으로 밀어 던졌다. 역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자들이 내가 던진 권총을 보자마자 당황했고 그 사이 재빠르게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항복의 표시를 보내었다.
“내가 졌어! 항복.”
비굴해보이겠지만 이건 엄연히 작전이었다. 이들은 그런 나를 의심했고 총구를 빠르게 겨누다가 무기가 없는 것을 보더니 맨 앞이 남자만 우선 무기를 거둬주었다. 나머지 뒤의 2명은 여전히 겨누고 있었다. 그래도 날쏘지는 않았다.
생각했던 대로 이들은 우리를 죽이거나 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미 사라는 내가 절대 원하지 않는 광경 속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만. 죽이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우리가 여자인게 이유였다. 약자라서? 그런것보다는 지들 노리개장난감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여자는 무척이나 귀하다. 그 어떤 놈들이 나를 거절 할 수 있을까. 이럴 때만큼은 내가 여자인게 만족스러웠다. 살인을 하는데 있어 남자보다는 힘도 약하고 체격조건에서는 밀릴지 모르지만 틈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탁월했다. 지금같이.
“잘 생각했어.”
다가온 남자가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총이 들려있던 손에는 이미 밧줄이 들려있었다. 벌써부터나를 묶어 데려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울리는 격언을 선사해주었다.
“좆은 항상 당신 안에 있다.”
“뭔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그가 되물으며 잠시 틈이란게 생기자마자 등 뒤의 나이프를 꺼내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당연하게 막혀버렸다. 이들은 모두 유경험자들이다. 이런 뻔한 수에 당할리가 없지. 하지만 내가 노린 것은 그의 목도 이런 뻔한 상황도 아니었다. 진짜 노림수는 사타구니였다. 나이프가 막히자마자 비어버린 남자의 좆을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다. 발로 느껴지는 거기가 썩 크지는 않았다. 남자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쓰러지려 했는데 멱살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방패로 써먹었다. 그리고 대답.
“나도 몰라, 시발롬아. 삼촌이 그랬어.”
갑작스러운 행동에 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던 남자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지만 당기지는 못했다. 아직 자신들의 동료가 살아있으니까. 이래서 나는 지금까지 동료를 따로 두지 않고 혼자서 싸워왔다. 그놈의 정과 의리는 패배로 향하는 지름길이었으니까. 사라는 예외다.
방패막이로 삼은 남자를 밀면서 아까 권총을 던졌던 거리까지이동했다. 그 사이 뒤의 두 남자는 총쏘는 것을 포기하고 제 손들에 날붙이를 들고서 덤벼들었는데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내가 총도 줍기 전에 칼들을 들고 근접전을 걸어온다면 당연히 난 권총을 주울 수 없게 되니까.
나도 방패막이 남자를 밀치고 나이프를 꺼내들어 오히려 먼저 다가가 맞이해주었다. 맨 먼저 다가와 나를 향한 날붙이를 피하고 뒤에서 이어 베려던 남자의 허리를 크게 베어버렸다. 깊지는 않아도 치명상이나 다름없었다. 멈추지 않고 뒤로 돌아 지나쳤던 남자의 목을 아래에서 위로 그어버렸다. 쿠크리 끝이 턱까지 붉은 선명한 선을 그어버렸다.
“넌 좆껍찔이나 까고 있어. 그럼 나중에 빨아줄게.”
마침 일어서려던 방패막이남자의 사타구니를 다시 걷어차고 멱살을 잡아 세웠다. 이제서야 버스 뒤에 숨어있던 나머지 무리들이 각자 총들을 들고 나타났는데 참 다양한 무기들이 섞여있었다. 쓰고 싶었지만 쓰지도 못한 채 불길 속으로 날려먹었던 무기들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버스 뒤에 있던 놈들은 5명이었고 우리사이에는 오토바이 3대가 시동이 걸린 채 멈춰 있었다. 오토바이가 휘발유를 사용하는 덕분에 커다란 폭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방패막이 남자와 함께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저들이 오토바이들까지 들어오기만을 노렸다. 조심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