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Pride (Good Night, Shara) - 17
“비켜! 여기 일방 통행이야!”
우리가 나왔던 섹터의 입구. 그곳으로 차를 돌진시키듯 엑셀을 끝까지 밟아 부수며 들어갔다. 입구를 지킨 작은 바리게이트 같은 것이 있었지만 들어가는 절차도 좀 생략시킬겸 차로 박아 부숴버렸다. 한 번쯤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해보고 싶었던 행동이었다. 버킷리스트에서 한가지의 항목을 이루어내었다. 여담으로 그 리스트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2개, 하나는 만약 살아있다면 아빠새끼를 죽여 그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이고 남은 하나는 사라와 정열적으로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사라, 5단!”
“5단 넣을게!”
사라가 기어봉을 잡고 5단을 넣어주었다. ‘덜컹’거리며 기어가 들어가자마자 엑셀을 끝까지 밟아 때렸다. 앞으로는 몇몇의 불타는 건물과 열려있는 맨홀뚜껑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위로를 체이스벳들이 계속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까이서, 그것도 바로 밑에서 보니 하늘을 검게 뒤덮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정도로 많을 줄이야. 골치가 썩어 들어갔다. 상황이 그냥 법정처럼 개판이었다.
대략적으로 작전이랍시고 시뮬레이션과 함께 어떤 방법으로 이 날파리들을 처리할 지 생각해오긴 했지만 잘 될까하는 의문이 스스로에게 들었다.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옆의 사라가 신경쓰일 뿐이었다. 절대로 다치면 안되니까. 빠르게 섹터 안을 달리던 중 여기에서 처음 들렸던 시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는 익숙한 늙은이 한 명이 보였고 잠시 멈추었다.
“중립!”
“바꿨어!”
사라가 기어를 바꿔주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강하게 밟은 만큼 브레이크가 닳겠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이 차는 폐차가 될 것이니까. 매끄럽게 멈춰가던 차는 노인의 앞에서 멈추었고 그가 창문너머로 나를 보더니 꽤나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내린 뒤 바로 이 엉망진창인 상황에 대해 물었다.
“몇 마디 주면 이 난장판을 개판으로 줄여서 설명해줄래?”
“떠난 것이 아니었나?”
“이봐! 지금 묻는 건 나고 내가 돌아온 건 중요치 않아! 빨리 집 화장실에서 똥싸고 싶으면 요약해서 설명해봐! 안그러면 내 좆대로 다 해결할거니까.”
노인은 남들에게 흩어지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에 따라 뒤에 있던 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 내 물음에 답해주었다.
“준열이가 화기물품들을 들고 하수구로 들어갔나 보네. 아마 내 의견에 반대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겠지. 혼자서 들어갔으니.”
“혼자서 들어가? 단단히 돌았네. 살아있어?”
“그걸......알 수가 없어서 나도 힘드네.”
“좋아. 3줄 요약했으니까 90점 줄게. 사람들이나 건물 안으로 다 들어가라 해. 이제부터가 진짜 재밌는 하이라이트니까. 커튼치지 말라하고.”
“잠깐, 내게 생각이 있네!”
노인은 차에 올라타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래서 생깠다.
“그 생각 맞춰볼까? 방법은 무슨 병신짓을 할 지는 모르겠는데 저 날파리 새끼들을 다시 하수구에 가두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다 쳐 넣어서 크립톤퇴치제로 쓸 생각인거겠지?”
“그렇게 되면 크립톤들도 쫓아낼 수 있고 이 사태의 해결을.”
“멍청한 노인네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려?”
그의 말을 잘라버렸고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씨부려 주었다.
“지금 이 괴물들을 길들이겠다고? 당장 사람이면서 괴물같은 나 한명도 길들이지 못했으면서 뭔 지랄같은 행동이야?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하는 건데? 아니, 무슨 자만심인건데? 준열이 그 꼬맹이새끼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둘 다 자만심이 쩔어줘 그냥.”
“우리는 그만큼.”
“변명따윈 저 위에서 앵앵거리는 놈들한테나 먹이로 주시고, 뭐가 되었건 지금의 결과가 당신과 준열이 자만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야. 당신은 이 괴물들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 꼬맹이는 혼자서 모조리 죽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친네양반, 이제와서 네가 뭘 하든 이 개같은 상황은 나아질 수 없어. 그러니까 가만히 닥치고 ‘크립톤 베테랑’놀이나 더 이어가기나 해.”
마지막 말을 돌 던지듯 하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 이제 준비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2단!”
“2단넣었어.”
급하게 차를 출발시키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시청은 굳이 들릴 필요가 없었지만 사이드미러로 비치는 저 얼빠진 노인의 얼굴이 보고 싶어 들린 것이었다.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아직 그가 살아있을까. 급한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30분이면 100명의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살아있었다.
“야! 공돌이!”
차를 세우자마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시 만난 태영을 불렀다. 그는 내가 말해준대로 불을 이용할 생각이었는지 어디선가 휘발유들을 가져오고 있었다.
“뭐야, 왜 돌아왔어?”
“화장실 들리러. 길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사라가 또 잔소리 할 것 같거든. 그런데 여기도 마음 놓고 오줌 쌀 여유가 있어보이지는 않네.”
“보시다시피.”
“내가 분명 집 안으로 들어가라 있으랬지만, 뭐, 잘됐어. 여기에 휘발유나 경유같은 불 잘 붙는 것들 많아?”
“비축해둔 게 꽤 있을 거야. 여기있는 것도 가져온거고. 불로 태울 생각이었어.”
“화장실도 들리고 고기도 먹게 40분주겠어. 내가 오다가 안쓰는 것 같은 공장을 봤거든? 거기다가 휘발유든 경유든 싹 다 집어넣고 몇 개는 뿌려놔.”
“30분이면 돼. 그 폐공장 시청에서 여기로 오다가 본 거 맞지?”
“맞아. 빨간색 지붕. 그럼 난 사라랑 30분정도 드라이브 하면서 저 위에 있는 친구들이랑 놀다가 올 테니까 준비해놔. 화려한 클럽 하나 차려줄게.”
“알았어. 그런데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뭐가?”
“저놈들, 내려오고 있어.”
태영이 우리 뒤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이드 미러로는 전체장면이 보이지 않아 열린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뒤를 쳐다봐야 했는데 그의 말대로 공중에서 맴돌기만 하던 녀석들이 밑으로 빠르게 내려들오고 있었다. 사냥이 시작되었거나 아니면 노인의 멍청한 작전이 시작된 듯 했다.
“시발, 존나게 빨리겠네.”
“조심해.”
“시발, 꼭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뒤지던데. 그게 내가 될 줄이야.”
“가기나 해.”
창문을 닫고 출발준비를 마쳤다. 태영은 저 위에 것들이 내려오는데도 용감하게 자신의정비고에 있던 휘발유통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는 무언가 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라. 오랜만에 레이싱 좀 해보자. 물론 넌 보지 못하겠지만 지금 의자와 맞닿아있는 엉덩이로 느끼게 해줄게. 달리다가 혼자서 가버리지는 말고.”
“기어 넣었으니까 출발이나 해줘.”
“시발! 양쪽에서 가라고 지랄이야.”
엑셀을 밟았다. 우선적으로 이곳의 길들을 외워둘 필요가 있었다. 불과 2박 3일밖에 지내지 못했고 차로는 달려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기어를 4단까지 올린 뒤 주변에 무슨 건물들이 있는지와 어떤 건물들이 붙어있고 어느 쪽으로 가는 길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말했던 폐공장 중 빨간색 지붕의 건물을 주위에서 둘러보며 시뮬레이션의 마지막 장면을 그렸다. 이제 길은 충분했다.
한 바퀴를 뱅 돌다가 다시 시청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고 나이프집에 꽂아두었던 쿠크리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내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하려면 그 어떤 방해도 있으면 안되었다. 아직 이곳에는 박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지금이 기회였다. 사라에게는 절대 차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일러둔 뒤 문을 차문을 굳게 닫고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곧바로 향한 곳은 통신실이었다. 이들의 방식이라면 몇 명쯤은 안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 통신실이라고 적힌 곳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불쌍하게도 몇 명도 아닌 여자 혼자만이 자리에 앉아 낙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자는 바쁘게 마이크에다가 무어라 말을 하면서 기계들을 조작하고 있었다.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나이프를 높이 쳐들었다. 그 와중에 실수로 바닥에 있던 선을 밟아버렸고 그 탓에 팽팽해진 선이 있었는지 책상위에 있던 스피커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내가 치켜든 나이프는 이미 아래로 향했기 때문이다.
“아오, 시발, 존나게 아프네.”
여러번 닦고 붕대까지 이용해 감은 다리가 계속 쑤셨다. 빨리 뛰어야 하는데 마음처럼 빨리 뛰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준비가 갖춰졌고 빠르게 시청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손에 들린 것은 1L의 복숭아음료수 페트병이었고 안에는 피가 반 정도 담겨 있었다. 대력 300ml를 채워 넣은 것이었다. 하수구 안에서 이것보다도 훨씬 적은 양으로도 그 작은 무리를 유혹해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부족하다면 중간에 생각하지 뭐. 차안에는 아직 사라가 아무 일 없이 타고 있었고 짐칸에 나와 여자의 것을 섞을 피를 뿌려놓은 뒤 차에 올라탔다. 내 것이 200, 여자의 것은 100이었다. 벌써 저 가까이 냄새를 맡은 무리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빠왔다.”
“다 된거야?”
“그래, 이제 끝내러 가보자고. 2단!”
“응!”
우선 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텀도 없이 쫓아오는 녀석들이어서 무얼 하든 출발이 먼저였다.
“엔.”
중간에 사라가 갑자기 내 이름을 담았다. 그것도 감성적이고 아련하게.
“왜?”
“고마워.”
“고마우면 나랑 하룻밤 자줘.”
“여전히 짖궂어.”
“시끄럽고 기어나 넣어. 3단!”
“3단 넣을게!”
아픈 다리로 엑셀을 밝아 속도를 더 높였다. 핸들을 꽉 쥐며 머리로 그린 지도를 떠올리면서 도로를 내달렸다. 중간마자 차가 엎어지거나 길이 험했지만 전투차량은 그런 곳을 달리라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장은 없었다. 다 밟고 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길을 지날수록 쫓아오는 체이스벳들의 수는 늘어갔다. 하수구에서 봤던 무리의 숫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키이익!’
놈들은 길가를 방황하거나 지나다니던 사람들을 습격하다가 내 차를 급히 쫓아오는 듯 했다. 길가에는 벌써 말라비틀어진, 미라같은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 중에는 차의 바퀴로 밟아 지나가기도 했는데 ‘뿌드득’거리는 소리만 날 뿐 피는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짜 마신 것이다.
체이스벳들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하던 것들도 멈추고 쫓아왔는데 그 중에는 앞에서 오다가 차의 유리나 범퍼와 부딪혀 짖이겨졌다. 그 때마다 내가 외쳤다.
“지나갑니다! 빵빵! 차도 못타는 것들을 다 자빠져 날파리새끼들아!”
어느 새 태영의 정비고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의 모습과 휘발유통들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옮겨놓고 있는 듯 했다. 체이스벳의 숫자는 그 새 또 늘어나있었고 꽤나 모아버린 것인지 하늘과 거리에 있던 녀석들의 모습이 많이 줄었거나 아예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만큼 내 피가 인기가 있나 보지. 처음 섹스 할 때 거기에서 흘린 피를 뿌렸으면 더 모였을 지도 모른다. 난 쩔어주니까.
아직 30분까지는 10분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는데사이드 미러로 본 뒤는 꽤 장관이었다. 아예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였고그냥 하나의 벽을 만들고 있었다. 도로를 물론이고 지나오는 건물들도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차라리 경찰새끼들이 쫓아오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윽.”
한창 달리고 있던 중간 갑자기 사라가 머리를 강하게 잡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 때문에 한숨을 쉬며 짚는 것은 많이 봐왔지만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파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탓에 운전대가 조금 흔들릴 정도로 나의 정신도 놀라고 말았다.
“사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머리가 아파. 이상한 소리 때문에.”
“이상한 소리?”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라니. 아직까지 멀쩡한 내 귀로 들어보아도 차가 굴러다니고 뒤에서 체이스벳들이 꾁꾁거리는 괴성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당장이라고 차를 멈추고 그녀의 상태를 돌보고 싶었지만 멈추는 순간 죽음의 문턱을 걸어 들어가는 것과도 마찬가지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생각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무슨 소리야? 어디서 들리는지 알겠어? 그보다 괜찮은 거야?”
“엔! 앞이야. 앞에서....들려! 거디가 가까워지고 있어. 무서워, 제발 멈춰줘. 엔!”
“사라! 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라며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눈 앞에서 나타난 한 괴물 때문에 핸들을 크게 틀어야 했고 하마터면 차까지 뒤집어질 뻔했다. 다행히 균형을 잡으면서 그 괴물 옆으로 스쳐 지나갈 수 있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발! 저건 또 뭐야?! 좀, 시발, 처음부터 같이 나타나면 덧나냐!”
그 괴물은 똑같은 체이스벳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놈들과 같은. 하지만 그 괴물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게 하수도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덩치였다. 2,3배 정도 큰 것도 아니었고 키만 하더라도 족히 2m는 되어보였다. 그래도 그 덩치 때문에 날 수는 없는지 날개하나 펼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앞발과 뒷발로 빠르게 쫓아오고 있었다. 박쥐는 조류인지 포유류인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럴 만 했다고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저렇게 맹렬히 달려오고 있으니까!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엔......”
저 괴물도 당황스러운데 옆의 사라까지 아픔을 호소하니 더했다. 무엇이 원인인 것일까. 멀쩡하던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답을 아예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확인을 해볼까.
“사라, 그 좆같은 소리 이제는 뒤에서 들려?”
“으, 응. 엔, 뒤에 뭔가 있는 거야? 엔은 괜찮...아?”
“시발,역시.”
사라가 아픔을 호소한 것은 저 괴물이 튀어나올 때 쯤이었다. 아무래도 저 괴물과 사라는 연관이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왜 그녀만 아파하고 난 멀쩡하지? 아니, 정정하자. 왜 그녀 혼자서만 아파하는 거지? 차로 달리면서 보이는 밖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것 없이 멀쩡히 도망치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 소리, 사라가 말한 이상한 소리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머릿속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작은 지식이 떠오르고 그 상상이 사라와 이어졌다. 이게 말이 되는지 그런건 알 바 아니었고 박쥐는 초음파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걸 내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걸 듣지 못한다. 주파수가 어지간히 높아야지. 하지만 사라는 달랐다. 그녀의 귀는 무척이나 밝았고 예민했다. 그게 주파수와 연관이있을까 싶지만 그것밖에 달리 떠오르는 추측이 없었다. 난 바보니까. 아니면 저 박쥐들도 변화하면서 주파수를 고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자건 후자건, 저 고릴라박쥐도 죽여버려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새 약속한 30분이 지났고 아프다는 사라를 태운 채 폐공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예약되지 않은 불청객이 하나 추가되었지만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크기니까 상관없었다. 속으로 제발 그가 무사히 일처리를 했기를 빌며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이제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벌릴 필요가 있었다. 우리도 빠져나가야 했으니까. 드디어 공장의 열린 문이 보였는데 그 안에서 태영이 우리를 향해 팔을 흔들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비켜! 공돌이!”
클락션를 울리면서 그에게 비키라고 대신 말했고 텔레파시처럼 뜻이 전해진 근 공장안에서 밖으로 잽싸게 튀어나왔다. 입구는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고 들어가기 전 급브레이크를 밟아 정확히 공장 안에 멈춰 세웠다. 가능한 깊숙히. 차를 세우고 나서부터는 여유따위 부릴 수 없었다. 바로 앞에 수많은 휘발유통과 바닥에 뿌려진 휘발유가 보였으니.
“사라! 내려!”
차문을 열고 내리며 사라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하지만 나만 빠르게 내렸고 그녀는 쉽사리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픈지 계속 두 손으로 머리를 뜯어버릴 것처럼 잡고 있었다. 격한 냄새가 풍기는 휘발유속, 하필이면 나도정신이 멍해져 가는 이 순간에. 그래도 억지로 그 정신을 붙잡으면서 조수석 문 쪽으로 다가가 뜯어 열고 사라의 손을 잡았다.
“사라! 난 여기 있어.”
그제서야.....그제서야 겨우 그녀가 고개를 돌려주었다.
“부산가야지.”
사라는 아픈 머리를 인상까지 쓰며 참았고 다리를 움직여주었다. 힘쓰는 사라를 도와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해주었고 나도 아픈 다리를 부여잡으며 공장으로 들어왔던 큰 입구 옆,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문으로 향했다. 다리가 절둑거리기는 했지만 붙잡은 사라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 문에 집중하면서 향했다. 드디어 내 손이 문의 손잡이에 닿았을 때 바로 뒤로 지금까지 우리를 쫓아왔던 체이스벳들이 쏟아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어릴 적 실수로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가 나를 향해 쏟아졌던 시체들과도 같았다. 끝으로 덩치가 큰 불청객도 무사히 들어왔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문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밖에는 태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져버려!”
그는 우리가 나오는 것을 확인 한 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급히 꺼내려고 했다. 그 사이 사라를 데리고 이제 피어오를 폭발을 피하기 위해 앞에 있던 반 부서진 건물 쪽으로 뛰어가 벽을 방패로 삼았다. 이제쯤 폭발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폭발을 커녕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내 쪽으로 달려오는 태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라이터를....잃어버린 것 같아.”
“......뭐? 시발! 그게 지금 타이밍에 할 소리야?!”
황당했다. 벌써 밥에다가 반찬을 물론이고 숟가락, 젓가락, 술 다 올려놨는데 고기를 구울 불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의 멱살을 잡아 벽 쪽으로 밀어 넣은 뒤 급하게 권총을 꺼냈다. 허리츰에 있는 글록17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가능한 탄알들을 아끼려고 했는데 지금 어딘가를 뒤적거려 불을 찾아올 수 없었으니 최고의 수단이자 최후의 수단을 써야했다. 놈들이 피를 다 햝아 먹고 나오지 전에 쏴야했다. 그러나 막상 조준도 하지 전에 이 수단마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공장안에 있는 휘발유들이 놈들 때문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작은 체이스벳들이 작은 구멍하나 없도록 촘촘히 막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끝인걸까. 지랄하지 말라지. 되든 안되든 총을 갈겨보았다. 무수히 울리는 총성. 하지만 닿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서라도 사라를 데리고 도망치려 했다. 짜증나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비켜. 여긴 우리 섹터야.”
옷의 군데군데가타들어가 있었고 살이 보이는 이곳저곳에는 상처가 있었다. 노인도 생사를 알지 못했고 나도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준열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손에는 어떤 액체를 넣고 구멍 쪽에 불을 붙여 만든 화염병을 들고서 공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폭발에 휩쓸릴 지도 모르는 공장안으로 있는 힘껏 피날레를 던져 넣었다. 마리아가 내 주사위를 던졌던 것처럼.
“병신새끼야!”
한심한 행동에 급히 달려가 그의손목을 낚아채고 공장에서 멀어지도록 돌아왔다. 그래도 불이 더 빨랐다. 화염병이 깨지고 안에 있던 액체들이 퍼지면서 심지에 붙은 불들을 옮겨갔다. 빠르게 옮겨간 불들은 체이스벳들을 태우는 동시에 태영이 준비했던 휘발유들에 붙어갔다.
폭발은 정말 일순간. 폭탄 수십개가 터진 것처럼 큰 소리와 함께 안에 들어가 있던 박쥐새끼들을 모조리 태워버렸고 그 덩치 큰 놈마저 죽기직전의 비명소리를 지르게 할 정도였다. 미처 멀리까지 피하지 못했던 나와 준열은 폭발의 충격에 휩쓸리고 말았다. 등 뒤로 전해지는 강한 바람이 밀며 때렸고 중심을 잡지 못 해 앞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하마터면 그대로 얼굴이 도로위에 쳐박고 갈릴 뻔했지만 본능적으로 팔로 얼굴을 보호한 덕분에 그 미래만을 면할 수 있었다. 예쁜 내 얼굴 잃으면 곤란하니까. 대신 깔려버린 팔이 엄청나게 쑤셨다.
“엔!”
폭발이 끝나고 폐공장이 불길에 타들어가는 중, 사라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점점 흐려지는 시야로 고개를 들어보니 태영이 그녀를 데리고 나에게 다가와 일으켜주었다. 그의 어깨에 유일한 내 오른팔을 걸치고서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준열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슬쩍 보니 혼자서 잘 일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잘 지져졌냐?”
“직접 볼래?”
“어.”
태영이 나를 부축한 채 몸을 돌려주었고 불타고 있는 공장을 볼 수 있었다. 꽤나 대형불이라 엄청난 연기가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 덮으려 들었다. 정말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타들어가서 코로도 타는 냄새가 강하게 찔러오고 있었다.
“시발, 거지됐네.”
타들어가는 공장은 보며 안에서 박쥐놈들과 함께 타들어가고 있을 삼촌이 준 똥차와 무기들이 생각났다. 아직 써보지도 못한 것들이었지만 어차피 난 쓰지도 못해서 아깝지 않았다. 대신 차가 아까웠다. 정비가 끝난지도 얼마 안 되었고 서울에서 기름도 열심히 약탈하고 퍼날라 연료도 꽉꽉 채웠던 차였는데. 시발. 이제 사라와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도 한숨이 나왔다. 역시 돌아오지 말걸 그랬나하며 후회해보지만 이미 차는 장작이 되버린 후였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고 그저 후회감만이 들었다.
어느 정도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자마자 태영에게 올린 팔을 치우려 했다. 그는 계속 기대고 있으라며 놔주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고집으로 배려를 뿌리치고 옆에서 나를 소리로 찾고 있는 사라의 손을 잡았다.
“그 상태로 걸으려고?”
그녀의 손을 잡고 이 섹터에서 나가려 걸어가던 나에게 태영이 아닌 준열이 물어왔다.
“내 상태가 뭐? 차 하나 잃었다고 정신이라도 쳐 나간 줄 알어?”
“정신말고, 다리.”
그가 손가락으로 내 아래쪽을 가리켰고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겨 내 다리를 보았을 때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통신실에서 여자가 다루고 있던 기계들의 선들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스스로의 다리에 나이프를 찔러 페트병에 피를 담고 난 뒤에 붕대로 대충 감아서 일시적으로나마 피를 멎데 했던 왼쪽다리의 상처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흐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예 길바닥에 흔적들을 남기고 있었다. 아까 준열을 끌고 온다고 무리하게 뛰었던 탓일까. 아니면 폭발의 충격파 때문에 바닥에 넘어졌던 것 때문일까.
뭐든간에 둘 중 하나긴 하겠는데 콕 집어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갑작스럽게 시야가 흔들리다 못해 뒤틀리기 시작했고 조금씩 좁아지더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불쾌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 사라가 이런 느낌일까. 보이지 않는 것에 약간 두려움이 느껴졌다.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면서 들리던 소리들도 고요해져 갔다. 이런건 시뮬레이션에 1도 없었는데. 시발, 좆됬네. 빨리 사라를 부산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꺼지고 고요해지는 그 속에서 사라의 목소리만큼은 모든 것을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입은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