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Pride (Good Night, Shara) - 16
우리는 하수구를 나오자마자 맨홀뚜껑을 닫고 옆에서 굴러다니던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수없이 올려놓고 막아버렸다. 바로 밑에서 내가 뿌린 피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체이스벳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그 피를 모두 먹어버리면 위로 올라올 것을 대비한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몸은 급하게 움직였다. 이놈들이 여기 바로 밑에서 살고 있는 걸 알게 된 이상 여기에 1초라도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태영의 정비고에 도착하자마자 사라를 조수석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잠깐!”
나도 운전석에 타려고 했는데 태영이 붙잡아세웠다.
“공돌이. 미안하지만 우린 여기서 바이바이야. 이제 머무를 이유따위 없으니까. 혹시나 지금이라도 우리랑 함께 갈 생각이라면 빨리 챙길 거 챙기고 뒤에 타!”
“그 소리가 아니야. 아직 손볼게 더 있어.”
“뭐?! 아까 타고 다녔던 건 뭔데? 내가 모르는 초능력이라도 썼냐? 그런거면 나도 가르쳐주라. 사라를 들어서 데리고 다니게. 아니면 존나게 연습해서 총알 막는데 쓰던지 내 좆대로 할 테니까.”
더불어 크립톤 새끼들도 찢어버릴 수 있겠지.
“부품들이 전부 노후화되서 이대로 타고 나가도 얼마가지 못해. 몇 개는 바꿔야해.”
“얼마나 갈 수 있는데? 부산까지도 못가?”
“어쩌면.”
“시발!”
열었던 차문을 거세게 닫아버리고 내렸다. 그리고 솟구치는 짜증에 괜한 차의 바퀴를 걷어차버렸다. 그래봐야 내 발만 아프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더 걸리는데?”
“빠르게 해도 50분.”
“30분. 그 안에 끝내줘. 무리한 요구인지는 모르겠고 그 안에는 끝내야 돼. 가능하겠지?”
“해볼게.”
“좋아. 그리고 고치면서 생각해둬. 여기서 죽을지, 아니면 우리랑 함께 갈지.”
이 말을 남기고 사라를 조수석에서 내리게 한 뒤 정비고를 나왔다. 우리가 있어봤자 정비에 방해만 될 것이고 무엇보다 미처 가져오지 못한 나의 후드자켓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이다. 최악으로는 버리고 가려했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났으니 빠르게 가져올 생각이었다. 우리가 들어갔던 맨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크게 멀지도 않았었고 위치 찾는 건 금방이니까.
“엔, 민재씨는......”
저 멀리 나의 후드자켓이 보일 때 사라가 뒤늦게 물어왔다. 아래로 향하는 고개와 눈동자가 걱정을 표하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감정은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죽었어. 언제나 있는 일처럼.”
“못......구하는 상황이었겠지?”
“산타가 와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 그리고 미리 말하는 건데, 이런 일로 기죽지마. 이제 너한테도 흔한 일들로 다가올 테니까. 널 위로하면서 그를 추모할 시간따위 없어.”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감을 쌓아온 사라에게는 민재의 죽음이 슬픈 소식일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소리를 해 줄 수는 없었다. 2년 전만 해도 사람이 가는데 순서가 없기는 했지만 흔하게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흔하다. 너무도 흔하다. 이곳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통곡을 하며 울어댔지만 이제는 잘 들려오지도 않았다.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서는.
나는 사라가 싸움을 몰라도 마음만큼은 강해지길 빌었다. 그래도 아직은 무리였던 것일까.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민재씨도 분명 도와주길 바랬을텐데. 마지막에 우리에게 도망치라고, 자기도 무서웠을거야.”
사라는 내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눈물을 닦지만 멈추지 않았다.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단련시켜줄 무언가를. 그런데 내 행동을 정반대였다. 그녀의 손을 놓고 하나뿐인 팔로 조용히 안아주었다. 왜 그랬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라고는 그냥 이렇게 해야할 것 같았다는 본능이 답이었다.
사라는 내가 안아주자 눈물을 닦던 손을 내리고 나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는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뜨거웠다. 그녀의 눈물을 뜨거웠고 내 살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차가운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따듯한 게 눈물이었나.
“젠장.”
사라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안아주고 전봇대에 걸어두었던 후드자켓을 빼 입었다. 살이 드러났던 곳에 남색의 옷이 색을 칠했다. 그리고 내 것임을 증명하는 얼룩진 피들. 옷을 챙겼으니 남은 것은 차가 수리되자마자 이곳을 떠나버리는 것이다. 원래라면 내일이 출발인데 태영의 솜씨가 좋은 것이었는지 예상보다 하루 빠르게 끝난 것이다. 테스트로 조금이나마 달리기까지 했으니 충분했다. 고개를 축 내린 사라를 데리고 돌아가려 던 순간 뒤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아니기를 기도했지만 닿지 않았고 되려 무시당해버렸다. 시발.
“엔.”
준열이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다만 평소랑은 다른 분위기였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여기저기 자신만만하던 기세를 사라지고 무거운 표정을 담은 그였던 것이다.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부르고도 나에게 자신의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꼬맹이. 할 말 있으면 빨리해. 난 곧 여길 떠날거야. 만약 그 망할 놈의 약속때문에 하고 싶은거면 빨리 바지내리고 까던가. 전봇대에 기대서 5분만에 뽑아줄 테니까.”
“도와줘.”
“......”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또 내가 비웃으며 말했으니까. 그러나 정작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드디어 나도 청각장애인이 된 것인가 했지만 그의 목소리로 똑똑히 들려왔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도와줘’라고.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야, 이 어이없는 새끼야. 니 새끼는 자존심도 없냐? 지금까지 나한테 지랄이란 지랄은 다하고, 민감한 부분도 건드리면서 협박하고, 그냥 시발 개새끼대하 듯 다해놓고서 갑자기 와서 도와달라는 게 사람새끼 입에서 나올 말이냐? 그렇게 갑자기 목소리 깔고 굽신거리는 자세로 와서 도와달라 하면 내가 ‘아이고, 알겠습니다.’ 하고 도와줄 년으로 보이냐? 좆까! 씹새끼야. 차라리 떠나기전에 한번 쳐 박게 해주세요 하고 말하지? 그게 더 낫겠네.”
“민재가 죽었어.”
“어쩌라고. 동정팔지마. 네 친구지, 내 친구냐? 그리고 이제서라도 심각성을 깨달았을 텐데 너 도와주다가 사라도 휘말리게 하려고? 하여튼 지 앞가림만 볼 줄 알지, 니네 아버지한테나 도와달라해. 그렇게 베테랑, 븅테랑 거렸잖아.”
“아버지는 체이스벳들을 죽이지 않기로 하셨어.”
“......하?”
기가 찼다. 너무 기가 차서 무슨 말을 내뱉지도 못 할 정도였다. 무슨 정신과 이차원적인 생각을 가졌길래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늙다보니 정말로 머리도 늙어버려서 유아퇴행이라고 한건가. 치매걸려도 이것보다는 더 정상적인 결정을내릴 것 같았다. 당장 이 망할 박쥐새끼들을 불태워서 쓸어버려고 모자랄 판에 키우겠단다. 그냥 다 필요없고 정말 병신같은 생각이었다.
“체이스벳들 덕분에 크립톤이 찾아오지 않으니까 이 점을 이용하기로 하셨어. 민재를 죽인 그 체이스벳들을 말이야.”
“어이구, 조련사 납셨네. 나중에는 애완동물로도 키운데니?”
“민재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아버지의 결정은 변함이 없으셨어.”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간에 모두 무시해버리고 자신의 말만을 이어갔다. 사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도 준열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래서, 뭐? 체이스벳들을 모조리 죽일테니까 도와달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여기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거야.”
“노인의 결정도 무시하고 그 짓을 하겠다는 거겠지?”
“그래. 그러니까.”
“싫어.”
그의 말을 끊고 나는 못을 박아버렸다. 완전히 거절했다. 무거운 표정만을 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는데 절망과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싫어했던 그이기에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지만 겉으로 말하지 않았다.
“네가 말한 문제는 너네집 집안 싸움이니까 그쪽에서 해결하시고 괜히 사라랑 날 끌여 들여서 개죽음당하게 하지 말란 말이야. 우린 우리 결정대로 떠날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보호해줬다느니, 차를 고쳐줬다느니, 그딴 소리 들이밀 생각하지마. 우린 딱히 보호해달라고도 안했고 차도 공돌이, 태영이 고친거니까. 뿐만 아니라 난 이미 한 번 도움까지도 줬고. 알겠니? 꼬맹아.”
기나긴 마지막 말을 무대의 마지막 대사로 장식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떠났다. 그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알 바도 아니었다. 태영의 정비고로 돌아가면서 무언가 말한 것 같은 사라에게도 미리 말을 해두었다.
“사라. 이번일 만큼은 나라도 못 돕고 절대로 안 돼. 가장 큰 이유는 네가 죽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야.”
그녀는 나의 말에 침묵만을 유지했다.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사라였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내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으니까. 나는 괴물을 학살하거나 전문으로 처리하는, 영화의 주인공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과거에 엿같은 아빠새끼 밑에서 자라 창녀인 동시에 용병이자 미친 청부살인자였던 일개 쓰레기의 조각에 불과했다. 이 밑의 체이스벳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들어가 봤자 미라만 될 건 뻔했다.
“그리고 잊지마. 우리는 부산으로 가고 있어.”
침묵에 이어 사라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이상 이제 나의 말을 따라야 했다.
태영은 막 정비를 마쳤는지 여러가지 공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더니 드디오 모든 정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교체할 수 있는 건 전부 교체했어. 부산까지 가는데는 문제없을 거야. 길만 뚫려있다면 말이야.”
“원래 이런 말 안하지만 너니까 특별히 해줄게. 넌 분명 크리스마스때 산타한테서 선물을 받을 수 있을거야.”
“아직 멀었는데. 지금 받을 수는 없어?”
“K2소총, 가져가. 여기에 있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새거일걸.”
“하하!”
태영의 옆 선반 쪽에는 내가 빌려주었던 K2소총이 세워져 있었다.
“태영씨는 이곳에 남을 건가요?”
이제 마무리가 되려는 분위기속 사라가 걱정가득한 말로 물었다. 아마 민재의 죽음때문이겠지. 태영도 여기세 남는다면 무사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니까.
“남을거야. 이유는 알고있겠지?”
“하지만!......위험할거에요. 그래도 남으실건가요?”
“말은 고마워. 하지만 난 여기서 떠나지 않을거야.”
사라는 포기하게 되었다. 그 증거로 슬픈 표정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사라는 태영이 우리와 떠나기를 고집하지만 그곳과 같이 그는 여기에 남기를 고집했다. 나름 이유도 있으니 나에게 강제로 데려갈 의무같은 것은 있지 않았다.
사라를 조수석에 태우고 나도 운전석에 올랐다. 태영에게 키를 받고 시동을 걸자 엔진소리가 정비고를 올렸다. 역시 한번 싹 고친 보람은 있는지 처음 삼촌한테 받았을 때랑은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좀 더 힘이 있는 소리였다. 차를 천천히 후진시켜 뒤로 빼고 창문을 내려 무슨 아빠라도 되는마냥 바라보는 태영을 손으로 불렀다.
“너, 담배피냐?”
“폈었지. 갑자기 왜?”
핀다는 그의 말에 가운데 있는 상자를 열어 그 안에 포장된 채 찌그러져 있는 담배를 꺼냈다. 국산담배였다. 삼촌이 자주 피던 것이다.
“자, 오랜만에 펴라. 불은 횃불을 지지든 숯불로 지지든 알아서 하고.”
“담배가 남아있었어? 이제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는데.”
“원래 내가 죽어갈 때 꺼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필요 없겠더라고.”
“이게 선물이지.”
그는 매우 흡족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서 귀금속보다 더 값비싼 것 중 하나가 담배였다. 술도 그렇고. 이제는 생산이 되지 않아 구하기 힘든만큼 값어치가 억소리가 나도록 오른 것이다.
“잘 들어.”
아직 끝나지 않은 말을 이어갔다. 이건 특별서비스 같은 것이다.
“체이스벳들은 집을 부수거나 유리를 깰 정도의 힘은 없을 거야. 적은 숫자로는. 만약 그놈들이 보이면 잽싸게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우려될 것 같으면 피를 받아놓던가. 하수구에서 본 것처럼 피라면 미친듯이 달려들테니까. 도망갈 때 뿌리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거야. 무기는 공돌이 특기로 불을 쓸 수 있는 걸 만들어놔. K2같은 소총이나 덩치 큰 기관총으로 쏴재껴 봐야 그런 작은놈들은 상대하기 힘들어. 불이 최고로 조지기 쉬워. 이상 끝, 질문있어?”
“질문은 없고 부탁은 있어.”
“뭔데?”
그가 담배의 포장을 뜯고 바로 하나, 입에 물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내 옛날 군동료들을 만나게 되면 나 아직 살아있다고 전해줘.”
“또 군인을 만나라고? 시발, 알았어. 그 정도는 해줄게.”
“잘들 가. 무사히 도착하길 빌어줄게.”
“안어울리니까 집어치워. 사라,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인심써서 20초줄게.”
사라는 운전석 너머의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태영에게 닿는 높이는 아니었지만 방향이 맞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꼭 조심하세요. 꼭이요.”
“고마워. 사라도 잘 가. 엔이랑 떨어지지 말고.”
사라까지 마지막 인사를 시키고 창문을 올렸다.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사이드 미러속에 비치는 태영이 점점 멀어지다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섹터 안의 도로를 계속 달려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향했다. 그곳으로 나가야 내가 아는 길들이 펼쳐질테고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곧 섹터의 입구가 보였고 경비를 서는 남자 두 명이 우리를 맞이했다. 나갈 때는 간단했다. 이름을 알려주었을 뿐인데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로 내보내주었다. 그세 유명세라도 탄 듯 했다.
섹터는 나서자 황폐해진 논과 지겨운 산들 사이로 뻗은 도로가 우리에게 잘 돌아왔음을 표해주었다. 벌써 지겨워지는 느낌이었다. 하루 빨리 부산으로 가서 사라랑 둘이서 신혼집을 차리고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3단.”
“......3단 넣을게.”
사라가 까먹지 않았을까 했지만 다행히 잘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까먹어버렸다면 다시 위치를 알려주어야 했는데 그것으로 또 몇분은 지났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소리로 멀어져 가는 것을 아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섹터에서 벗어날 때마다 사라의 표정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사라, 4단.”
“......”
“사라?”
‘펑!’
사라에게 4단을 넣어달라고 했는데 대답이 없어 재차 불렀을 때 뒤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사라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감쌌고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세웠다. 덕분에 앞 유리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시발! 이 차는 싹다 방탄으로 쳐 만들었냐?! 유리가 뭐이리 단단해!”
박은 머리를 매만지며 잘 열리지 않는 차 문을 발로 차 내렸다. 도대체 어떤 망할놈의 주인공새끼가 소리를 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할 수는 없었다. 주인공은 방금 우리가 떠난 섹터였으니까.
섹터는 아직 해가 뜬 낮이었지만 큰 폭발의 흔적인 검은 연기들이 치솟고 있었는데 그 위로 검은색의 날파리떼같은 것들이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녀석들이 하수구를 뚫고 모두 지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조금만 더 저곳에 머물러 있었어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라는 지켜낼 수 있어도.
아직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지금,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급히 차에 올라타고 엑셀을 밟았다. 차는 다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출발했고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유리를 닫았다. 기름은 아껴야 해서 히터는 여전히 틀지 않았다.
“엔, 무슨 소리였어?”
“알지 않는게 좋아. 지금은 부산으로 가는데만 집중해.”
“섹터구나.”
순간 잡고 있던 핸들이 흔들릴 뻔 했다. 그만큼 사라의 빠른 눈치가 나를 건들이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엔. 돌아가자.”
“안돼. 우린 부산으로 갈거야.”
“엔, 제발.”
“작작해! 사라.”
그녀의 아이같은 고집에 큰 소리로 받아쳤다.
“말했잖아. 거기에 남아있는 그 시답잖은 정 때문에 우리가 뒤질 수도 있어. 거기다 난 만능인간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제발 그말해. 한 번만 더 돌아가자고 하는 순간 너의 입에다가 테이프를 발라서 갈 테니까. 그러니까 닥치고 있어!”
이쯤이면 알아먹겠구나 했다. 물론,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녀는 사라였다. 나의 정반대인 사람, 사라 리즈.
“태영씨가 있어.”
다시 한 번 급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 이번 브레이크는 나 스스로 알고 한 것이라 유리에 머리를 박지는 않았다. 의외로 사라도 박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면서 자신의 말을 전달해왔다. 진심을 담아.
“엔, 돌아가자. 태영씨만이라도 구하자......”
“후......시발!”
핸들을 잡고 거기에 엑셀을 밟았다. 테이프가 필요했다. 그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