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Pride (Good Night, Shara) - 15
“사라!”
혹여나, 들어오면서도 아직 섹터가 무사한 것은 보았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무거운 절망감으로 변해 있었다. 태영의 집에 있어야 할 사라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방을 열고 찾아보았지만 사라는 물론이고 태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허리츰의 글록17을 장전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다 내 전투차량도 사라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나의 모든 생각들이 태영을 찢어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가 사라는 데려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우리가 탔던 그 차로!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던 사이 저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다름아닌 사라진 우리의 차였다. 고장이 나서 달리지 못했던 차가 쌩쌩 달리고 있는 것이다. 운전석으로는 태영의 모습이, 조수석으로는 사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나를 본 것인지 저만치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량은 점점 속도를 줄이며 정비고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왔어?”
그가 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먼저 차량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크게 달라진 외형은 없었다.
“어디 갔다가 오는 거지?”
대답대신 신경을 곤두세우고 물었다. 그는 여유있게 답했다.
“차량 테스트. 마침 정비가 거의 끝난 참이었거든.”
“정말로 그것뿐이야?”
“의심하는 거야?”
우리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신경전을 하는 사이 사라가 문을 열고 내려 자신의 이미지속 정비고를 떠올리며 걸어다녔다. 그녀는 차를 손으로 짚으며 뒤로 돌아 천천히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엔? 있어?”
그리고 나를 찾는 목소리에 빠르게 권총을 집어넣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부르기는 커녕 미소조차 짓지 않던 사라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무슨 심경변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매번처럼 반겨주는 행동에 조용히 기뻐했다.
“그래, 여기있어.”
“무슨 일 없었지?”
“내가 갔는데 아무 일 없으면 섭섭하지.”
“안 좋은 일이야?”
“그래, 사라. 우리는 당장 떠나야 할지도 몰라. 더럽게 안 좋은 일이야. 노인이 손을 쓴다고 하지만 난 그 양반을 믿을 수 없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우리의 대화사이로 태영이 끼어들어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는 알려줄 틈이 없었다. 바로 가봐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진심으로 죽기 싫으면 집안에서 문이랑 창문들 다 닫고 있어. 크립톤들보다 더한 새끼들이 나타났으니까.”
“그럼 사라는 내가.”
“아니. 이번에도 데려갈거야. 가까운 맨홀 뚜껑으로나 안내해줘.”
“크립톤들보다 위험하다면서 사라를 데려가겠다고? 벌써 어제의 총격전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은 마셔. 그 녀석들보다 위험하기는 해도 피하는 건 쉬우니까.”
“사라, 너는 어떻게 생각해?”
태영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 듯 사라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눈을 나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엔을 믿어요. 그리고 저는 엔의 옆에 있고 싶어요. 언제나처럼.”
“정해졌네.”
모든 결정이 끝나고 사라를 잠시 세워둔 뒤차량에서 새로운 것들을 꺼내었다. 이번에 꺼낸 것은 이 섹터로 오기 전 잠깐 주유소에 들려 조금이마나 챙겨온 휘발유가 담신 음료수통과 삼촌이 사용했던 구닥다리 라이터였다. 그런 작은 녀석들에게 총을 쓰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었다. 오히려 불로 휩쓸어버리는 것이 최고였다. 물론 섣불리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간단한 무장을 마치고 짐칸에서 내렸을 때 집안으로 들어갔던 태영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와 있었는데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그는 내가 주고 아직 회수해가지 않았던 K2소총과 함께 여기저기에 해진 군인조끼와 헬멧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의 모습이 떠오르게 해서 짜증났다. 그나마 별이 안 박혀있어서 다행이지. 나보다 위는 아니니까.
“어디가게?”
“따라가게. 둘보다는 셋이 나을걸.”
“상관은 없는데 내 손이 하나라 너까지는 못 챙겨줘. 이건 사라거니까.”
“내 몸정도는 내가 지켜.”
그의 조건에 승낙을 하고 동행을 허락했다. 이로서 어제와 같은 멤버가 다시 결성되었다. 다른점은 목적이 다르다는 것 뿐. 태영은 자신의 준비를 끝마치고서도 뭔가 잊은 듯 다시 들어가더니 자신의 것과 같은 방탄헬멧, 조금 더 상태가 좋은 조끼를 가져오더니 사라에게 착용시켜주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인정해. 사라는 그런것들 하고는 거리가 머니까. 드레스나 가져다주지 그래?”
“있었으면 벌써 줬어. 어울릴 것 같으니까.”
가볍게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다. 나나 태영보다는 사라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이상한 괴물들의 소굴로 들어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그녀니까.
무기들을 챙기고 마지막으로는 태영이 들고 있던 헤드랜턴을 머리에 끼웠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하수구 입구로 안내를 받고 멀리가지 않아서 맨홀의 뚜껑을 찾을 수 있었다. 뚜껑을 열기 전, 저 멀리서 우리와 비슷하게 장비를 착용하고 이동하는 남자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준열이나 노인은 아니었지만 오늘 봤던 얼굴들인 것은 알 수 있었다.
당장 아침에 나와 함께 트럭에 타고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거기다가 그 사이에는 민재도 끼여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지 못한 채 지나가려다가 우연찮게 고개를 돌리고는 늦게나마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마자 밝은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이!”
손까지 흔드는 것은 덤이었다. 그는 헤드랜턴 대신 손전등을 들고K1기관단총과 등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메고 있었다. 아마 노인이 챙기게 한 것이겠지.
“너희들도 하수구로 탐색가는 거야?”
우리의 차림새를 보면서 그가 물었다.
“보시다시피. 너도 같은 목적인가 보네.”
“어. 급하게 탐색조를 꾸리게 됐어. 아, 혹시 같이 가겠어? 어차피 목적도 같은데 말이야.”
“됐어. 우리는 멀리 갈 것도 아니거든.”
“아......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민재는 준열이나 태영과 다르게 순순히 물러났다. 이런 면에서 난 그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잡다한 말 없이 필요한 대답을 들려주고 알아서 사라져주는거.
“맞다. 이거, 준열이가 알려준 사항인데 절대로 피를 흘리지 말래. 가장 조심하라고 했어. 체이스뱃들은 아무래도 피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면서.”
“체이스 뱃?”
“네가 찾았다는 박쥐괴물의 명칭이야. 리더가 그렇게 정했어.”
네이밍센스는 그지같은데 부르는데 있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격하는 박쥐라. 피를 쫓는 것은 맞으니 이미지가 맞아 보이기도 했다. 민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부름에 무사히 돌아오라는 안부를 끝으로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내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알아냈으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나의 후드자켓은 잘 보이지 않을 뿐, 여기저기에 핏자국들이 얼룩을 이루고 있었다. 품안의 권총과 메고 있던 나이프집을 잠깐 풀어 사라에게 들게 한 뒤 자켓을 벗어 바로 옆에 있던 전봇대의 못에다가 걸어두었다. 태영이 골라주면서 마음에 들었던 후드자켓이라 버리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탱크톱 차림이 되었고 팔의 맨살이 드러났다.
“안 추워?”
“서울에서도 벗고 살았어. 이 정도는 아직 봄이지.”
추위 역시 산타는 기다리면서 단련이 되었다. 항상 겨울이 되면 산타를 맞이하기 위해 눈이 오는 바깥에서 맨손과 맨발로 옥상에 올라 자주 기다렸었다. 꼭 잠옷만 입고 맨손과 맨발로 있어야 산타가 엄마가 말했었기 때문이다. 아빠새끼가 말했다면 개소리로 들었겠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했기에 믿었다. 물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울지만 않는다면 산타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새끼도 조사는 착실히 했나보네.”
박쥐 놈들이 피를 쫓는다는 것은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추측이었고 이곳도 그 꼴이 나면 나 혼자 그 추측을 이용해 사라를 데리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준열도 알아버렸으니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다.
옷을 걸어두고 사라에게서 다시 권총과 나이프집을 받아 몸에 걸쳐 등 쪽으로 메었다. 후드자켓 품안에 넣던 글록19는 앞 벨트 쪽에 흘러 떨어지지 않도록 꽂아 넣었다. 바로 꺼내 쏴버릴 수 있도록 위함이었다. 휘발유가 들은 페트병은 나이프집 벨트 사이로 적절히 끼워 넣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실험이자 보험용으로 주위에 굴러다니던 작은 페트병 하나는 주워 내 앞에 두고나이프를 꺼내 날을 붙잡았다.
“뭐 하는거야?!”
옆에서 무엇을 하나 지켜보고 있던 태영이 놀라 말리려고 하지만 이미 내가 날을 움켜쥐고 손가락 하나를 그은 뒤였다. 다른 손이 있었다면 편하게 그으면 되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 방법뿐이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조금 많은 피가 흘러나오게 되었다만 작은 페트병을 4분의 1정도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투명한 색의 페트병 안으로 붉은색의 피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이 장면을 보지 못하는 사라가 벌써 사고라도 난 듯 태영에서 물어보지만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조용히 해달라고 눈빛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이 행동이 사라를 위함일지라도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낼 테니까.
“내가 바지까지 벗으려고 했는데 공돌이가 말렸어.”
“엔. 그건 나라도 말렸어.”
“내가 벗겠다는데 왜 주변에서 난리야? 어차피 벗으면 존나게 좋아죽을거면서.”
“엔은여러의미로 대단한 것 같아.”
“항상 말했잖아. 내가 좀 쩔어줘.”
페트병 안에 충분한 만큼 피를 채우고 먼지와 흙이 묻은 뚜껑을 닫았다. 아직 피가 묻은 손은 전봇대에 걸어두었던 후드자켓에 닦아내고 잠시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손가락 하나여서 멎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도 미지수이긴 했다. 상처만나도 박쥐놈들이 맡고 따라오는지. 물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그 섹터에서 피는 나지 않아도 흉터나 최근에 다쳤지만 피가 멎고 아문 상처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살아있었으니까. 하지만 1%도 엄연한 가능성이자 수치였다. 그러니 복권에 당첨되는사람들이 있는거고.
“지금에서야 묻는건데 아까 민재일행이랑 같이 가는게 낫지 않았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만 그러기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다니면 오히려 잘 뒤져. 지금만큼은. 시야가 더 넓어지기는 하겠지만 그 빠른 놈들 상대로 이동도 느려질 거고 더 눈에 띄는 떼다가 한 명이라도 중간에 넘어지면 그대로 도미노 지경이 될 걸.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사라가 있어. 장님이 끼면 그 쪽에서 누가 좋아할까. 안그래도 사람 많은데 도움도 안되는 짐이 더 끼어들어가는 거니까. 이번 탐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빠른 이동이야.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우리가 더 안전해.”
“의외로 일리 있는 말을 하네. 짜증난다라던가, 그런 이유일 줄 알았는데.”
“내가 딴 건 몰라도 싸움질이랑 섹스는 자신있어. 덕분에 세상사는 것도 빠르게 배웠지.”
“엔. 그건 살아가는 것과 크게 연관이 없는 것 같아.”
“사라. 니 세상이랑 내 세상이 같냐? 아 같구나. 이제는.”
사라의 말을 업어 던지고 후드자켓으로 닦고 있던 손을 떼었다. 피가 흐를 만큼의 상처지만 지혈을 한데다가 그렇게 큰 상처도 아니여서 빨리 멎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쓰지 않았던 압박붕대를 꺼내 일부를 잘라서 손가락에 꽉 조여 상처를 가렸다. 그리고 태영과 함께 우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맨홀의 뚜껑을 열었다. 전 것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더럽다는 그런 냄새는 아니었고 최소 100년은 묵은 먼지층들이 내뿜어내는 냄새들이었다.
뚜껑을 열고 내가 제일먼저 내려갔다. 발이 닿자마자 박쥐, 체이스뱃들이 덮쳐올지도 모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다행히 시작부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권총을 손에 쥐었다. 다음으로는 사라가 태영의 도움을 받아 조심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밑에서는 내가 받쳐주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그녀의 머리가 사다리 손잡이와 부딪힐 뻔했는데 헬멧이 그것을 막아주었다. 여기서 멍이라도 하나 더 생기기라도 한다면 나의 입에서 또 다른 욕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사라를 욕하는게 아니라 멍이 생긴것에 대해서. 그만큼 아침의 일로 이후로 그녀가 상처입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 나였다.
마지막으로는 태영이 등에 총을 메고 내려왔다. 중간에 덜그럭 거리면서 총구가 걸리는 바람에 날 조금 답답하게 말들기도 했지만 이로서 모두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다.
하수구 안은 다른 곳들과 비슷했다. 그나마 여기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 아마 이곳 섹터에서 사용하는 물일 것이다. 머리에 낀 헤드랜턴을 켜고 먼저 어느 방향으로 가 볼지 상의를 했다. 지금에서는 어떤 방향으로든 상관이 없었지만 가능하면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가위바위보로 정할까 고민하던 때쯤에서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 사라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장님일지 언정 청각장애인은 아니었고 오히려 소리를 듣는 것에 있어서는 일반인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사라. 도움이 필요해. 아무소리라도 좋으니까 어딘가에 들리는 소리 없어?”
“그게 도움이 될까?”
“당연하지.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적어도 계속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훨 배 나았다. 그녀는 한 번 해보겠다며 눈을 감았고 태영과 나는 서로 입을 다물고 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그리고 이것이 탁월한 선택임을 알 수 있었다. 사라가 곧바로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마 바람소리? 아닌가. 바람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소리만 들렸다면 그걸로 됐어. 무슨 소리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지.”
권총을 집어넣고 사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헤드랜턴의 빛을 비추어 성큼성큼 걸었다. 하수구로 들어온 사다리에서 멀어질수록 바깥의 빛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우리의 대열은 나, 사라, 태영순이었다. 내가 가장 앞에 나서고 사라가 중간에서 소리로 방향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태영은 뒤를 봐주며 따라오는 역할이었다.
“이제 설명해주겠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작정 걷기만 하지 말고.”
태영의 목소리가 하수구 안에서 울렸다. 크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수구가 마이크 역할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에게 설명을 해준다고 했었는데 아직까지도 해주지 않고있었다. 뒤늦게나마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특히 ‘체이스벳’을 강조하며.
“그런 괴물이 여기에 있다고?”
태영이 다시금 물었다. 사라도 말로 표현하지만 않았지 표정은 순간적으로나마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두 사람에게는 그럴만도 했다. 당장 눈앞의 크립톤들만 해도 버거운데 또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놈들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하면 그런것들이 나타날 수가 있지?”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나타날 때는 됐지. 노인에게도 말한거지만 ‘시건’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났어. 이미 크립톤들이 싸돌아다니는 마당에 그런 괴물들 한 두 종류 추가된다고 이상할 건 없잖아. 안그래?”
“이상할 게 없다해도 나타나지 않는게 좋지.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지네. 마치 우리를 버린 것 같잖아.”
“뭔가 착각하다본데, 세상은 우릴 가진 적이 없어. 우리가 허락없이 안에 있는거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중 하수구의 길이 삼거리 형태로 나뉘었고 잠시 멈추어 사라에게 길을 물었다. 정확히는 소리를.
“이쪽에서 소리가 더 강하게 들려. 바람소리랑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야.”
그녀가 가리킨 쪽은 직진이 아닌 옆길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쪽으로 헤드랜턴을 비추어보았다. 지금까지와 우리가 걸어온 똑같이 어두운 그림자만이 드리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나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하고 귀를 기울여 보지만 헛수고였다. 이런곳은 작은 소리만으로도 크게 울려 돌아오는 곳인데 사라는 어디까지 듣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까지도 궁금한 부분이었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사라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열을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세상은 변할까?”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하수구를 울렸다. 나름대로 조용히 말했지만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메아리를 받으며 내가 답했다.
“그렇겠지. 이제 징조가 나타난거니까.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이 줄어들고 크립톤들이 늘어날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를 사냥감이 되고 그것들은 사냥꾼이 되겠지. 비극엔딩이 결정된 영화처럼 될지도 모르지.”
“엔은 무섭지 않아?”
“나에게 두려움을 묻는거야?”
그녀의 말에는 두려움과 진심어린 걱정이 섞여있었다. 나는 콧웃음을 쳤다.
“하, 솔직히 번거롭기는 해. 매번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 때마다 대처법이나 싸움법을 찾아야 하니까. 하지만 두렵지는 않아. 이미 내가 ‘두려움’ 그 자체거든.”
스스로의 대답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태영이 조금 정신이 이상한 여자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뭘 봐? 뒤 안봐? 두 번째부터 후장뚫리고 싶어? 그것도 저 박쥐새끼한테.”
“진심으로 충고하는 건데 그 공격적인 말투는 고치는 게 좋을거야. 난 이해해도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불쾌하게 들을테니까.”
“나라는 사람에게서 이런말이라도 듣는 거면 넌 성공한거야. 대부분이 내 한마디를 듣기도 전에 도망쳐버렸거든. 그런데 넌 멀쩡히 내 옆에 있잖아. 안 그래?”
“사라, 넌 어떻게 엔이랑 대화하는거야?”
듣다 못해 질문이 사라에게로 넘어갔다.
“엔은 서툰 것 뿐이에요. 말은 저렇게 해도 모두 의미는 있으니까요.”
“내가 뭐가 서툴러? 너보다 떡친 횟수는 적을지 몰라도 스킨을 끝내주거든!”
“정말, 너희 둘을 신기해.”
서로의 메아리가 오가는 하수구 속에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가 오갔다. 이렇게 사라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얘기라는 걸 해본 적이 잘 없었다. 주제는 완전히 개판이지만 이게 평범한 대화라는 것일까 싶었다. 나에게 평범한 대화라는 것은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항상 나의 입에서 오가는 말들에는 쓰레기들의 언어들 뿐이었으니까. 이 상황에서 그러면 안되겠지만 조금 더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볼까 잠깐, 여흥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 한 마디, 한 단어, 한 음절 말하려 입을 때었을 때, 좆까고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오라는 것처럼 앞에서 불안정한 메아리가 우리를 급습했다. 찢어질 듯 한 괴성과 굵직한 비명소리, 그리고 총성이었다.
“엔!”
지금까지 두려움을 딛고 걸어주었던 사라가 멈추었다. 그 탓에 나와 태영도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우리의 대열은 흐트러지고 더 이상의 전진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휘발유가 든 페트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반 정도를 바닥에 뿌린 뒤 라이터를 들었다.
“사라, 쫄지말고, 이 소리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섞여서 들려와.”
태영은 소총의 안전모드를 해제하고 앞을 겨누었다. 그러면서도 뒤를 살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럼 아무거나 좋아. 제일 가까이 들리는 소리가 있어?”
“모르겠어. 난 모르겠어.”
어떡하면 좋은 선택이 될까. 빠르게 하수구안에서 빠져나갈까? 어차피 소리가 들리는 쪽은 우리가 걸어온 길이 아닌 앞쪽이었다. 일단을 우리의 뒤가 비었다는 것이었다. 빠르게 물러나 맨홀 입구로 향한다면 될 것이다. 간단했다. 다만 나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체이스벳’이란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외관따위가 아닌 습성이나 행동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여기서 알아두고 간다면 나중에 대처가 편할 것이다.......뭐라는 거야, 시발. 이 이상 들어갔다가는 사라가 위험하다. 나는 사라가 다치는 게 싫었다. 그러니까.
“달려! 사라!”
내 스스로의 생각에 태클을 걸고 사라의 손을 잡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태영은 우리가 앞장서 달리는 것을 확인하고 맞추라고 하지도 않은 대열을 흐트리지 않았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는 저 너머의 합주에 뒤섞여들어가 새롭고 난잡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왼쪽!”
지나왔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아까까지는 조용한 어둠만이 깔리던 이곳이 흔들리는 빛과 소음들 때문에 스릴러가 넘치는 박쥐의 집으로 변해버렸다. 빠르게 챙기느라 미처 닫지 못한 페트병은 버렸다. 그래도 새어나와 옷에 베인 냄새들이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잠깐, 안돼! 엔.”
빠르게 출구로 향하던 중 사라가 나의 손을 꽉 잡아 당기며 멈춰세웠다.
“왜 그래?”
“앞에서 소리가 들려. 발소리야.”
잠시 그녀의 손을 놓고 권총을 꺼내들었다. 허리 앞쪽, 벨트에 꽂아두었던 글록19였다. 권총의 총구가 보이지도 않는 소리를 향해 겨누어졌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어서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밖에 비춰지지 않는 헤드랜턴 안으로 서서히 발소리의 주인공이 소음의 메아리를 뚫고 나타났는데 그 모습에 총구를 바닥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위에서 우리를 보고는 천진난만한 사람처럼 인사를 건넸던 민재가 여기저기 물어뜯긴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에, 엔? 사라?”
“민재씨?”
그의 목소리만으로 사라가 민재임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가.”
“도망가......빨리!”
‘키이익!’
그는 우리에게 도망치라는 말과 함께 하수구의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미 한 번 들었던 괴성이 이번에는 커다란 무리가 되어 헤드 랜턴의 빛이 채 다 비추기도 전에 그를 덮어버린 것이었다. 수십? 아니, 수 백마리가 한 사람을 덮어버린 것이다. 끊어지지 않는 괴성과 파리처럼 빠르게 휘젓는 날개들. 그 속으로 민재가 사라지고 있었다.
“엔, 무슨 일이야? 엔!”
“언제나 있는 일.”
급하게 뛰어온다고 반도 채 남지 않은 휘발유를 앞으로 뿌렸다. 다 새어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세상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던 액체들이 여기저기로 튀었고 냄새는 금세 우리를 덮쳐버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방울방울들은 랜턴의 빛에 보석들처럼 반짝였다. 그 속으로 삼촌의 빛을 잃은 라이터를 던졌다. 삼촌의 라이터는 한 가지 고장난 부분이 있었다. 한 번 키면 뚜껑을 닫지 않는 이상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었다. 화력이 너무 세서. 아마 개조한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공중에 떠오른 불이 휘발유의 액체들과 닿았고 흔적을 까라 큰 불이 빠르게 퍼져갔다. 내가 만들어낸 불의 길이 닿은 곳은 민재를 덮치고 있는 체이스벳 무리였다.
‘키이이익!’
갑작스러운 하수구의 화재와 연기에 당황한 체이스벳들은 자신이 먼저 맛보겠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가 뒤질뻔한 남자들처럼 여기저기로 흩어져나갔다. 그 중에는 우리쪽으로 달려들다가 불에닿여 반대쪽으로 날아간 놈들도 있었다. 이대로 막힌 것 같던 틈이 만들어졌다.
“반대쪽으로 달릴거야. 이 길은 답이 없어.”
아직 휘발유의 냄새가 묻은 손으로 사라의 깨끗한 손을 더럽히며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제부터는 하나의 미로게임이 시작되었다. 저 체이스벳들은 언제부터 여기있었는지 알 수 모르겠지만 분명 이곳의 지리에 훤할 것이다. 우리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다른 출구를 찾아야 했다.
“공돌이, 혹시라도 있을 희망따위에 걸고 물어보는 건데 또 다른 출구, 알고있어?”
“안타깝지만.”
“그냥 없다고 해! 뭐가 안타까워? 좆된거지!”
어디에 출구가 있는지 모르는 이상 한없이 달려야 했다. 벌써 두 번이나 삼거리를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직진으로 나아갔다. 세차게 흔들리는 빛으로 우리가 잘못해서 출구를 지나치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하지만 보였으면 하는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새로운 고민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망치기도 바쁜데 삼거리도 아닌 사거리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뒤에서만 오는 크립톤에게 쫓겼으면 몰라도 이 하수구 안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을 체이스벳들을 생각한다면 길을 잘못 선택하는 순간 끝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사라를 중앙으로 데려와 맡겼다.
“잘 들어. 아까부터 또 소리를 듣는거야. 알겠어?”
“안 돼. 너무 시끄러운 소리들뿐이야.”
아직도 메아리를 울려대는 비명과 괴성을 말하며 그녀가 포기하려 했다.
“사라. 나와 함께 부산 가려면 이 망할 곳에서 나가야해. 지금 날 살릴 수 있는 건 너뿐이야.”
“그렇게 부담만 주면 더 안될거야. 조금 진정을 시켜.”
태영이 끼어들었다.
“부담? 내가 틀린 말 했어? 진정시킬 시간따위 없어. 이건 진짜로 죽을 상황이야.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살랑살랑 해줄게 아니라고! 지금 이게 나만 죽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의 배려는 이미 해줬어. 근데 지금은사라도 실수하면 죽는 상황이야.”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지금 너의 방식은 사라에게 실수할 기미만 제공하는 짓이야. 더 죽이는 행동이라고.”
“그만해주세요.”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 다투는 가운데 사라가 한 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엔의 말이 틀린게 아니니까, 해볼게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엔도.”
“.....알았어.”
그녀는 나의 의견에 반동의를 하고 태영에게 부탁했다. 그는 이번에도 마지못해 물러나는 것 같았다. 난잡한 소리들 속으로 사라가 들어갔다.
“어떤 소리를 찾으면 돼?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첫 번째로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곳, 두 번째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알았어. 해볼게. 그리고 부탁이 있어.”
“뭔데?”
“손. 놓지 말아줘.”
“내 여친인데 놓을리가 있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라는 안심이라도 된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바로 집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미 보이지 않으면서 눈을 감는 모습. 이 모습을 볼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이 세상이 산타와 같았고 그녀가 안타깝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쪽에서 작지만 바람소리 같은게 들려.”
드디어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던 사라가 눈을 뜨고 남은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은 바로 앞이었다.
“좋아. 역시 사람은 앞을 보고 가야지.”
방향이 정해지자마자 쉬는 틈 없이 달렸다. 이미 방향을 정하는 시간만으로 많이 소비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괴성의 합주는 줄어들었지만 흔들리는 랜턴속의 긴장감은 배를 더했다.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첫 번째 사냥감이었던 민재일행은 모두 죽은 듯 했다. 그렇다는 건 다음 먹이는 우리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즉시 달려들 것이다.
“저거 아니야?”
정신없이 뛰던 중 태영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흔들리는 랜턴 빛 안으로 사다리 하나가 보였고 맨홀 뚜껑하나가 작은 구멍들로 들어오는 빛들과 함께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그 사다리에 매달렸다. 먼저 맨홀 뚜껑을 열기 위해 태영을 올려 보내고 바로 뒤로 사라의 손에 사다리를 쥐어 올려보냈다. 태영을 평소 공돌이의 생활로 잘 단련된 팔로 가뿐히 맨홀뚜껑을 밀어올렸고 사라를 향해 뻗은 손으로 그녀는 끌어올려주었다. 조심조심하며 올라간 사라까지 반 쯤 올라갔을 때 상황은 절정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소리쳤다.
“엔! 이상한 울음소리같은게 들려!”
사라가 말하는 소리는 길게 가지 않아 나의 귀에도 박혀 들어왔다. 체이스벳의 괴성이었는데 아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