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Pride (Good Night, Shara) - 13
차량의 바퀴는 쉬지 않고 굴렀다. 습격을 받았다는 섹터를 향해서.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이는 뒤쪽은 바퀴 때문에 생기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내가 앉은 곳은 짐칸이 아닌 준열의 바로 옆자리였다.
태영이 나타나고 난잡했던 상황이 대강이나마 정리되었다. 태영과 준열, 노인의 정리에 따라 나를 던지며 욕을 박았던 남자는 바로 섹터의 병원으로 실려갔고 사라는 태영의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나도 따라 남으려고 했지만 사람 한 명의 자리가 비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미 간다고 내뱉은 말이 있어 따라오게 되었는데 대신 짐칸이 아닌 원래는 노인이 앉아야 할 조수석에 내가 앉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대처법일지는 몰라도 내게는 최악의 대처였다.
물론 공짜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내일 출발 전 일정량의 식량과 물, 차에 쓸 기름을 받기로 했다. 한 마디로 일의 보수였다. 물론 결과가 있다면. 하지만 그런 보수 따위는 잘 모르겠고 사라는 잘 있으려나. 계속 걱정이 따라왔다.
“걱정되나 보지?”
가만히 앉아 창밖으로 황폐해진 풍경을 바라보는 내게 준열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아마 사라에 대해 말하는 것일테지.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면서 답했다.
“순한 토끼 한 마리를 야생 맹수무리들 중앙에 두고 왔는데 걱정이 안되는게 이상한 거 아닌가?”
“우리 섹터는 괜찮아.”
“어딜 가도 들었던 말들이야.”
당장 서울에 있을 때 여러 섹터를 돌아다니면 세트라도 되는 마냥 들었던 말이었다. 대부분의 섹터에서 그 말을 듣고 하루를 머물면 대개 나는 덮치러 왔었다. 애석하게도 밤에는 경계를 서면서 뻐기는나였기에 그러는 순간 강제천국행을 면치 못했다. 그런 내가 사라를 섹터에 그나마 맡길 수 있던 이유는 일단은 태영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빚이라면 빚이었고.
“난 너에 대해서 알아.”
대뜸 그가 말했다. 그 말에 신경이 쏠리고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그는 운전만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뒤적거렸냐.”
“섹터에 전직 형사가 들렸었어. 그 때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었고 이제는 필요없다면서 심심하면 보라고 사건 자료집을 주고 갔는데.”
“거기에 우연찮게 내가 있었다?”
“맞아. 정말 우연이지. 나도 놀랐어. 오랜만에 꺼낸 사건집에 당신이 있을 줄은. 당장 내쫓아내려고 했어.”
“그래서 알고 보니까 이 차량은 섹터로 가는게 아니라 나 하나 처리하려고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좋은 생각이지만 이건 진짜로 섹터로 가는 차량이야. 그리고 난 당신을 내쫓거나 죽이지 못 해.”
“왜지? 너한테는 있어서 독일텐데.”
“아버지가 당신을 두기로 결정했으니까.”
“섹터에?”
“자신의 손에.”
웃기고 자빠지는 소리라 비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를 자신의 손에 두겠다는 미친놈들이 한 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마냥 그 소리를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착했어.”
열심히 달리던 자동차는 섹터의 문 앞에 도착했다. 앞 유리로 내다보는 모습은 겉은 그대로였지만 속은 180˚ 달라져 있었다.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기저기에 말라비틀어진 시체들의 나열이 이어졌다. 볼만한 광경을 아니었다. 내 스타일과 달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도대체 어디서 이런 신잡종들이 이딴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이런 시체들, 불과 어제 보았다. 피가 잔뜩 빨린 채 뼈와 가죽만이 남아 버려져 있던 그 동물시체. 이제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조차도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차량은 섹터의중간까지 달리다가 멈추었고 곧바로 사람들이 제각각의 무기들을 챙기고 내렸다. 준열은 노인에게로 향했고 나는 따로 이곳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지내는 집이나 건물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유리창도 깨져있지 않았다. 스친 흔적은 있지만 부서진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크립톤이었다면 커튼을 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이상 유리를 깨부수고 벽에 흠집들을 냈을 것이다. 움직인 시간대와 습격받은 건물의 상태는 봐서는 절대 크립톤이 아니라는 것을 확정지었다.
“이상! 이상한 점이나 정보를 얻게 되면 바로 알려주도록. 해산!”
노인은 자신과 함께 온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그는 이곳에 지내던 사람들에게 다가가더니 안부를 물으며 시체들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었다. 하는 짓이 상층부의 머가리들과 겹쳐보였다. 나도 이제 개인적으로 조사를 나서기 위해 손에 글록17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엔.”
나에게로 다가오던 준열이 부른 것이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상태가 좋지 않은 K2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왜? 할 욕이라도 남아있어?”
“그건 많지. 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야.”
“아, 저번에 그 약속? 설마 이런 대낮에 야외에서 하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장난할 생각 없어.”
나의 앞에서 참아보려 유지한 그의 무표정이 깨져버렸다. 덕분에 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너와 같이 다니라고하셨어.”
“누구 맘대로? 난 혼자가 편해. 너 같은 놈옆에 있어봤자 방해만 되고 너도 나 싫어하잖아.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가 뭐라 말했든 신경 끄고각자 길 가는걸로 해. 그게 너 떡치고 나 떡치는 윈윈전략 아니겠어?”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난 널 따라갈 생각이었어.”
“뭐? 왜, 시발.”
“스스로가 잘 알텐데, 왜 그러는지.”
그의 말대로 나 스스로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전에 여기서는 깽판을 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정보를 모으고 이 일을 조금이라도 밝혀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곳의 생존자들은 중요한 정보덩어리나 다름없기도 했고. 이러한 내 생각을 말하고 그가 떠나길 바라지만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짜증스러움을 억누르고 그의 동행을 허락해야 했다.
“같이 다녀도 같이 다닌다고 생각하지마. 귀찮게도 하지 말고.”
“내가 하고싶은 말이야.”
도착하자마자 신경전을 벌인 우리는 바로 조사에 나섰다. 제일 먼저 행하기로 한 것은 생존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준열이 맡기로 했다. 내가 대화를 했다가는 싸움만 일어날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여기서는 나도 동의하고 한 발짝 물러났다. 대신 정보를 묻고 모아준다면 나야 좋았다. 우리를 곧바로 생존자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섹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앞장서고내가 뒤를 따랐다. 이곳의 길은 알지 못하니 그래야 했다. 그리고 골목을 몇 번 꺾어 들어가 빠르게 첫 생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30대의 한 중년 아줌마였다. 준열이 이 사태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새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사람들을 습격했거든요. 저도 도망을 친다고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 얼굴 크기만한 새들이었어요. 검은색의. 사람을 습격하는 것도 끔찍했구요. 한 마리가 붙더니 갑자기 수십 마리가 빠르게 달라붙었고 밖처럼 저 시체들처럼 만들어놓았어요. 그것도 정말 순식간에. 비명조차도 들리지 않았어요.”
준열은 두려움으로 가득찬 그녀를 살살 달래었고 나는 중요한 부분들을 잘라 머리로 다시 곱씹어보았다. 검은색의 새들. 까마귀를 말하는 것일까. 크기정도야 작은 녀석들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밖의 시체들하고는 이미지가 매치되지 않았다. 그 녀석들은 부리로 파먹었으면 파 먹었지 모기처럼 피를 빨아재끼는 놈들은 아니었다.
준열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네주고 인사를 마친 뒤 곧바로 다음 생존자를 만나러 길을 걸었다. 오래 걸을 필요는 없었다. 바로 옆집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불과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음 생존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다만 대화하기 이전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두 번째로 만난 생존자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초등하교를 다닐법한 아이였다.
“유리창 너머로만 잠깐 봤었어요. 엄마랑 아빠가 저보고 뛰어야 한다면서 커튼을 쳤는데 그 때 박쥐들이 유리창에 붙었어요. 엄청 많이.”
“박쥐? 확실하니?”
“네. 박쥐였어요. 제가 아는거랑 조금 생긴 게 달랐는데 박쥐였어요.”
검은색의 새. 그렇다. 미처 생각치 못했지만 박쥐도 검은색의 새는 맞았다. 쥐새끼 종류긴 하지만 날아도 다니니까. 거기다 거짓말이 어려운 꼬맹이의 말이라 더 신뢰성이 있었다. 박쥐라면 이미지도 어느 정도 맞았다. 뱀파이어나 흡혈귀를 보면 죄다 박쥐종류였었다.
다만 박쥐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러다가도 이제는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세상이 변하고 무려 2년이나 지났는데 그런 일 하나둘 쯤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머리가 아파져왔다. 만약 그것들이 단체로 튀어나오면 쉽게 상대할 수 없었으니까. 화염방사기 것으로 지져버리면 모를까.
준열은 겁먹은 아이를 위로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이후로도 여럿 생존자들을 만났지만 모두 비슷한 말들뿐이었다. 대부분이 비슷하거나 같은 대답을해서 우리는 더 이상 생존자들에게 물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제 시체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차량근처로 돌아왔을 때 열심히 묵념하고 있던 노인은 사라져 있었다.
준열과 나는 각자 시체들의 겉을 샅샅히 조사해보았다. 내가 맡은 첫 시체는 꼬마 여자아이의 몸이었다. 다른 것들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어딜 만져도 바로 뼈가 느껴졌다. 심하게는 말라버린 장기까지도 만져질 정도였다. 썩 느낌은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이의 여린 살들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필요없는 과정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보란 듯 상처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무릎 쪽에 어디선가 넘어진 듯한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살들이 말라들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그 상처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였다.
“떨어져주세요.”
쪼그려 앉아서 확인하려는 나의옆으로 어느 순간 한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하얀 꽃이 손에 들려있었다. 눈앞의 시체처럼 말라버리기는 했지만.
“떨어져주세요. 제발.”
그녀는 눈물까지 머금고 호소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사라와 겹쳐보였다. 바로 어제 나에게 울며 소리쳤던 사라. 여성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져주었다. 그걸 보고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꽃은 시체의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면서 참다 못했는지 크게 울기 시작했다. 시체를 안으며, 슬프게 울었다. 그 애절한 소리만으로 이 여자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 일은 안타깝게 됐어.”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위로의 말 중 하나를 건넸다.
“그럼 가주세요.”
“그건 안되겠는데.”
나의 거절에 그녀가 매섭게 째려보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화가나 보였다.
“가란 말이에요! 가라구요!”
“야,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네 도움이 필요해. 안그러면 저기 꼬맹이들 보이지?”
나는 뒤에서 부모를 따라 지나가던 아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체의 아이와 나이가 비슷한 애들이었다.
“저 꼬맹이들도 당신 애처럼 될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그녀는 경악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날 쓰레기 보듯 했다. 그런데 어떻하겠냐, 쓰레기가 맞는데.
“사실이니까. 그런 꼴 보기 싫으면 당신이 겪었던 일, 자세히 알려줘야겠어. 그래야 이 빌어먹은 난장판을 막던가 하지.”
여자는 여전히 눈물과 함께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니 적어도 대답해줄 생각은 생긴 것 같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 나를 노려보며 입을 떼어주었다.
“궁금한건 어제 일이겠죠?”
“정확히는 당신 딸에 대해서 어쩌다 습격을 받았는지 알려줘야겠어. 분명 당신하고 같이 있었을 텐데 딸애만 습격받은 건 이상하잖아.”
표정에 금이 간 듯 일그러져있었지만 그녀는 숨을 크게 내쉬고 ‘참자’라고 말하는 듯 했다. 잠깐,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한 마디, 한 마디, 화와 여러 감정이 섞여 들어간 말투였다.
“딸애랑 빠르게 도망치던 중이었어요. 다행히라면 이기적이겠지만 우리를 공격하지 않아서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딸애가 넘어졌는데 그 뒤에 곧바로......그 괴물들이......빨리 구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여자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 울어버렸다.
“그, 넘어졌을 때 피가 났어?”
“났어요. 이제 된거죠? 빨리 가주세요!”
“그럴게.”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자를 뒤로하고 시체들에게서 멀어졌다. 당장 다른 시체들도 눈여겨 보고 조사를 해봐야 했지만 갑자기 준열이 멀리서 오라는 손짓을했기 때문이었다. 저 시발놈의 손모가지를 잘라내고 싶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 보던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는데다가가자마자 나에게 따지듯 화를 내기 시작했다. 주먹도 나올 기세였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데?”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주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대강 알 수 있었다. 보나마자 주저앉아서 펑펑 울어대는 여자때문일 것이다.
“중간이지만 대화하는 걸 들었어. 지금 네가 한 게 사람이 할 태도야?”
“그럼 위로나 한 마디 던지도 가라면 그냥 가야했냐? 우리 목적은 조사로 알고있는데.”
“최소한 안정은 시켜줘야지! 자식을 잃은 엄마야. 넌 그 정도 배려도 없어?!”
“야, 꼬맹이......뭣 모르면 닥치고 있어.”
“......뭐?”
“지금 우리는 이 좆같은 상황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돼.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정보를 모아야 하고 추측이든 소설이든 써내야 한다고. 그래야 니새끼들 집을 지켜내든 할 거 아냐. 사사로운 감정이나 그 쓸모없는 배려해줬다가는 얼마나 늦을 지 모르는데 뭐하러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는데? 남은 사람들도 다 죽이고 싶은가 보지?”
“후......”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일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속마음으로 외치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그래, 당신의 말대로 우린 따로 갔어야 했어. 아니, 그냥 나 혼자 조사하고 당신을 여기에 묶어두던지 해야했네. 내가 참 병신이었네.”
“그걸 스스로 깨달았으니 다행이네. 근데 날 어떻게 묶어두게? 제압할 수는 있겠냐?”
“여기에 우리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까먹었어? 아무리 당신이라도 위험할텐데.”
“해봐? 너야말로 까먹었나 보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인질들이 있는지.”
난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 함께 온 남자가 기껏해야 20명 정도 되었는데 지금 있는 차와 섹터의 지형, 그리고 쓰다버릴 민간인들이 있으니 충분했다. 나의 자신감에 준열이 어이가 나간 듯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진짜로 쓰레기네.”
“자료 보고도 몰라봐?”
“여기에 무조건 있어. 절대로 움직이지마. 그 어디로도!”
그는 나를 잡아당겨 차가 있는 쪽으로 밀어버리고는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당장 잡아서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괜한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관두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니었다. 준열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조사에 복귀했다. 중간에 끊긴 시체조사를 재개했다. 이번에는 껄끄러운 일을 피하기 위해 주변에 사람이 없고 성인인 시체들만을 골라 조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팬티가 있으면 벗겨 까보고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도움이 될 만한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대략 30구의 시체를 조사했고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피가 빨린 시체들 모두 베이거나 넘어졌거나, 뭐로든 피가 나올 정도의 상처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것들도 그렇다고 함부로 일반화 시킬 수는 없었지만 아마 작은 상처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들로 미루어 내가 얻은 정보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어디선가 박쥐새끼들이 튀어나왔고 혹은 피를 흘린 사람들을 습격했다.’가 결론이었다.
사람들을 습격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대상을 정하고 피를 빨았는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골치 아픈 점이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어디서 날아들어왔냐는 것이다. 아무리 저녁때라지만 날씨가 흐린 것도 아니었고 해가 조금 남아있었기에 밖에서 날아왔다면 이 섹터의 사람들이 모두 눈병신이 아닌 이상 모를리가 없었다. 피하는 것도 집들이 멀쩡한 것을 보면 힘도 미약해서 경고를 듣고 집에 들어가 숨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는건 남은 경우의 수는 하나였다. 섹터의 내부로부터 습격을 받은 것이다. 이 생각에 곧바로 주위를 돌아다니며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나의 눈에 한 가지, 뛴 것이 있었다. 하수구로 들어가는 맨홀 뚜껑이 그것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에 눈에 띄었다. 바로 뚜껑이 삐딱하게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강제로 뚫고나오는 바람에 그런 것처럼. 바로 발걸음을 옮겨 그 맨홀 위에 섰다.
맨홀 뚜껑 다가가 가까이서 보았다. 그러다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코를 막고 조금 떨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역한 냄새가 강하게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썩을 화장실보다도 더한 썩은 내였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남자들한테 둘러싸여 생일을 맞이했던 때보다도 더!
코를 막은 채로 발을 이용해 뚜껑을 옆으로 밀어 치웠다. 바로 밑으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꽤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다리를 물론이고 맨홀 뚜껑에 무언가 긁힌 자국들이 넘쳐났다. 이정도만 보다가 냄새 때문에 물러나야 싶었지만 꾹 참고서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이렇게 수상하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데 안 들어가본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팔이 정상적으로 2개가 있었다면 편했을 것을.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사다리를 잡으며 내려가면 좋았을 텐데. ‘사건’에 원망감을 가져보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나 소용이 없어 묵묵히 아래로 내려갔다.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차가워지는 공기가 나의 살결을 스쳐지나갔다. 목도리라도 챙길 걸 그랬나.
남들보다는 많이 느렸을 속도로 내려간 발이 마침내 땅에 닿았다. 겨우 사다리 하나는 타고 내려왔을 뿐인데 벌써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여기로 오기도 전에 있었던 싸움 때문에 허리도 쑤셨다.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썩은 내와 어우러지는 썩어버린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맨홀로 들어오는 빛 덕분에 아예 안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빛 덕분에 ‘사건’이 있기 전 하수구에서는 절대 볼 수없었던 광경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 어떤 악한 상황에서도 살아 남았던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하수구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알들이 그 범인들이었다.
“이런 시발, 세상 좆같네 진짜. 내가 낳아도 이것보다는 예쁘겠네. 우웩.”
촘촘하게 벽을 덮으며 저 멀리까지 붙어있는 알들은 숨이라도 쉬듯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데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징그러웠다. 그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나는 잔뜩 경계하며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했다. 막 발을 떼고 올리던 그 순간 처음 들어보는 고음의 괴성이 들려왔다.
‘키이익!’
왼쪽에서 들려온 소리였고 사람의 소리는 아니었던 지라 자동적으로 손이 나이프를 꺼내들었고 즉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 몸을돌아 나이프를 겨누었을 때 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그 괴성의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의 박쥐. 다만 내가 사전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조류인지 파충류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이상한 윤택의 가죽과 뒤죽박죽 박혀있는 5개의 눈, 무엇보다 강렬하게 첫인상을 남긴 것은 벌어진 입으로 튀어나온 또 다른 턱대가리였다. 날아오는 속도는 길에서 어디서나 날아다니던 닭둘기 수준이었지만 결코 느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도 부딪히기 한 팔 거리쯤에서야 나이프로 찍어내릴 정도였으니까. 최근에 닦은 날이 녀석의 몸을 꿰뚫고 돌바닥에 상처를 내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녀석은 날개짓, 몸짓 발버둥을 치다가 조금 뒤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이프로 꽂은 상태에서 발로 건드려 보고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이프를집어넣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가까이서 시체를 확인해보았다.
‘사건’이 일어나고 2년, 그 2년 동안 지내면서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아니, 괴물인가. 솔직히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당장 밤만 되어도 크립톤들이 돌아다니는 마당에 이런 작은 놈들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쯤 튀어나오나 주시하고 있었고 오늘이 그날인 것이다. 아마 이런 놈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숙였던 몸을 일으키고 다시 사다리에 올랐다. 이제 이곳의 궁금증은 풀렸으니까. 이 섹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만 보면 굶주린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크립톤들이 왜 잠잠했는지. 죽은 녀석의 배에서는 붉은 피, 그리고 크립톤 특유의 주황색의 피가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박쥐들은 사람뿐만이 아닌 크립톤들도 자신들의 먹이로 삼았던 것이었다. 뭣하면 그 길거리의 동물들도. 하수구를 나오고 맨홀 뚜껑을 닫아버렸다. 안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