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Pride (Good Night, Shara) - 12
문을 발로 거세게 열어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문 옆에는 처음 보는 2명의 사내가 각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이정도까지 한 것이라면 준열은 저걸 다 읽었고 나의 행적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된다. 어떻게 저걸 그 형사가 아닌 저 새끼가 들고 있는 지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청을 나와태영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저 망할놈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도 생각해두려 했다. 살려두어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당겨지는 힘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하얀색의 가로등 조명 아래, 사라와 내가 멈추게 되었다. 위로는 남색하늘이 드리웠다.
“엔, 방금은 너무했어. 그냥 단순히 묻는 거였는데 왜 그러는 거야? 차라리 대답을 안 했어도 됐잖아!”
사라가 화를 내며 나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그녀와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받는 야단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로부터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이밍을 잘못 잡고 말았다. 방금 준열과의 대화로 내 스트레스는 오를 대로 올라 넘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사라는 지금 꺼지기 힘든 불에 휘발유를 들이부운 격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조금이라도 좋게 대화를 할 수는 없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닥쳐! 장애인년아!”
결국 참다못한 내가 터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담지 않았던 말을 담기까지 했다. 브레이크를 걸려고 해도 페달이 고장나 버린 것이다. 그걸 이제서야 눈치를 챈 사라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엔?”
“시발, 앞이 안보이니까 세상물정 몰라서 대가리가 쳐 비었지. 니 새끼 귀에는 아직도 시발 ‘하하호호’거리는 세상처럼 느껴지냐? 1년 동안 갇혀서 그 지랄같은 꼴을 당했는데도 그 따위 생각이야?! 준열이 저 개새끼가 단순한 질문따위를 던질 줄 알아?! 내가 시발 너한테 조금의 이해라도 구걸한게 병신이지. 오냐오냐만 쳐 받으면서 자라니까 세상이 이따구로 되도 오냐오냐 해줄 것 같아? 언제까지 애새끼 짓 할건데?! 그리고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대답하라 나발이야! 무슨 사이비같던 우리엄마처럼이라도 되보게? 시발,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냐고!”
“안 알려줬잖아!”
눈만 휘둥그레 뜨고서 내 욕이란 욕을 다 먹던 사라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번에는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아직 터져버린 화가 다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라의 눈물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가르쳐줬잖아!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가르쳐주지 않았잖아......”
머리로는 아직도 욕을 해대는데 정작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사라의 말이 맞기도 했으니까. 난 그녀에게 단 한 번에 내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준 것이 없었다. 간단한 내 이름은 커녕 ‘엔’이라고 부르라고 만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사라에 대해서만 알아왔을 뿐, 나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려준 게 없었다.
그녀는 계속 눈물만 흘리다가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초점없는 눈동자는 눈물로 차올라 맑아질 정도였다. 사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잠시, 고개를 땅에 쳐박았다. 속에서 뭉쳐진 채 풀어지지 않는 화가 몸속을 계속 긁어댔다. 마음 같아서는 총을 꺼내 아무데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쏴 갈기고 싶었지만 총알이 부족했다. 그 대신으로 땅에 날숨만을 한 우물만큼이나 내뱉었다. 울음소리가 귀를 울렸다.
“......돌아가자.”
아직도 울고 있는 그녀를 강제로 끌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길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들을 받게 되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꽤나 볼만한 광경일 것이다. 사라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지금 무언가를 들을 상황도 아니어서 신경쓰지 못하겠지만 이런 시선받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며 구역질이며 모든 것들을 참아내고 태영의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라를 바로 침실 안에 집어넣어버렸다.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짜증이 나긴 했지만.
“무슨 일이야?”
아니나 다를까, 물어올 거라고는 생각했으니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이상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침실의 문을 굳게 닫고서 벽에 기대어 섰다. 천장에 달린 작은 주황색 전구가 벽난로의 불처럼 나와 태영을 비추었다. 무거운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요함이 가득한 공기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기였다. 때로는 평화로움을 가져다주겠지만 대부분을 어두운 그림자만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지금도 그랬고 아빠새끼와 있을 때고 그랬다.
“신경 끄라면 조용히 꺼져줄래?”
먼저 얘기했다. 그가 집요하게 물어오기 전에 확실히 꺼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 정도야?”
“그 정도로 쪽이 팔릴 수도 있는 일이지.”
“......쉴래?”
예상과 다른 대답.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렇게 물어만 올 줄 알았는데 반대로 쉴거냐고 물었다. 그 점에서 조금 웃음이 새어나왔다.
“......심심풀이로 얘기해줄게.”
태영은 소파에 앉아서 얘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고 문 앞에 기대서 있기를 고집했다. 그는 내 고집을 받아주면서 컵에 커피를 타 나에게 한 잔 건네주었다. 김이 나는 따뜻한 커피였다. 술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커피를 마시며 저녁때부터 여기로 들어올 때까지의 일을 얘기해주었다. 예의 바르게도 그는 내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서 들어주었다. 중간에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를 조금 높인 감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럴때마다 문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혹여나 사라가 내 말을 듣고 울 것 같아서였다. 안주거리로나 쓰일만한 얘기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네가 잘못했네.”
태영이 얘기를 듣고서 당돌하게 말해왔다.
“준열이형이랑 만났을 때부터 성격보니까 계속 그랬던 것 가고, 거기다가 오늘도 그런 태도였다면 사라도 화낼만하지. 그녀는 너랑 다르게 올바르게 자랐으니까.”
“나도 내 나름 올바르게 자랐어. 경우가 다를 뿐이지.”
“뭐, 그것 다 좋아. 근데 내가 지적하는건 좀 달라. 바로 네가 사라에게 화를 냈다는 거야. 거기다 심하게 욕도 했고. 스트레스는 남한테 받아놓고 왜 사라에게 다 푸는 거야? 그건 무척이나 잘못됐어.”
그런가.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때 빡치기만 했지 사라의 상황은 이해하지도 않은 채 화를 냈다. 사라는 앞을 보지 못한다. 그건 그녀가 원해서 만든 결과가 아니었고 나처럼 똑같이 ‘사건’에게 당한 것이다. 원치 않는 일이었고 애초에 내가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이건 넘기도록 하자.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무튼 내 잘못이 맞다고 점점 생각이 바뀌어갔다.
“내 잘못 했다라......하.”
컵에 들어있던 커피는 벌써 반이나 줄어있었다. 얘기를 하면서 목이라도 말랐나 보다. 그의말이 이어졌다.
“잘못한 걸 알았으면 다름은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당당히 말했다. 태영은 생각치 못 한 답이라도 들은 듯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사실이었다. 내가 잘못했는데 그 다음은 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내 잘못이건 뭐건 상대를 내쫓아버리거나 날 짜증나게 했을 때는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끝이었다. 하지만 사라는 그런 잡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르겠다.
“농담이지?”
그는 재차 확인하며 물어왔지만 나의 대답은 같았다. 다른 것이라고는 내가 고개를 들었다는 것 뿐이었다.
“몰라. 사라한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사과해야지.”
‘사과’.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나의 인생에서 사과는 필요 없었다. 무엇이던지 총과 돈이면 정당화되었으니까. 역시 인간관계라는 것은 복잡하다. 돈이나 내 몸뚱아리로 돌아가는 인간관계는 정말로 쉬웠지만 사라같은 경우는 무척이나 복잡했다. 조금이라도 배워 보려고는 했지만 그럴수록 짜증만 났고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몰라, 모른다고. 해본 적이 있어야지.”
“후, 형 말대로 넌 뭘 하면서 살아온 거야? 사람으로서 기본도리잖아.”
나는 태영과 같은 부류의 사람새끼들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너도 뒤지고 싶어?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기본도리는 하나뿐이야.”
“뭔데?”
“산타.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는 산타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솔직히 나도 의미는 몰라. 아빠새끼가 알려주기만 했으니까.”
컵 안의 커피를 모두 비우고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옆에는 3년은 더 되어 보이는 신문이 있었는데 짤막한 글로 한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서울 쓰레기장 살인사건’이었다. 사진은 무척이나 잔인하다는 이유로 사건현장의 사진을 첨부하지 않은 상태였다. ‘범인은 서울의 마녀?’라는 글귀도 적혀있었다. 준열이 생각나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 내가 사라한테 사과만 하면 된다는 거지?”
“어.”
상담의 끝을 알리는 말을 툭 던지고 그대로 그에게서 시선과 몸을 돌렸다. 더 이상의 상담을 필요 없었다. 혹여나 그가 다시 부를까 빠른 걸음으로 사라를 집어넣었던 방 안에 내 몸을 들이밀었다. 무너질 것만 같은 집의 반듯한 나무문을 닫아버렸다. 거실로부터 그와 분리되고 침실 안에서나와 사라가 이어졌다.
들어왔을 때 그녀는 얼굴 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머리 부분은 완전히 감추지 못한 머리카락이 조금씩 흘러나와 있었다. 더 이상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그녀의 옆, 침대의 끝 쪽에 앉았다.
“야, 사라.”
앉은 채로 방안에만 들릴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보았다. 조금 움직임은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내가 아는 ‘사과’는 우선 상대방이 나에게 귀를 기울여주어야 하는데 사라는 이불 속에 들어간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갑한 나머지 이불을 열어 재끼고 강제로라도 듣게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더욱 이불속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정도는 나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사과’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시발.”
품안에서 글록19를 꺼내쥐고 몸을 조금 숙였다. 몇 일 전처럼 크립톤이 돌아다니거나 하는 소리는 없었다. 대신 무거운 침묵과 공기들이 색다르게 이 침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거움에 어째선지 속까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권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꽉 쥐었다.
“잘 자, 사라.”
나는 그럼에도 잘 자라고 사라에게 말했다. 전해질지는 모르겠다. 그런 속에서도 밤은 흐르고 있었다.
“나도 간다.”
무거운 밤이 지난 아침, 나는 사라를 데리고 바로 준열을 찾아가 얘기했다. 그는 자기가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간다고. 잠 덜 깼냐? 한 대 쳐줘?”
“의외네. 어제는 그렇게까지 못박아놓고는.”
“내가 원래 변덕이 좀 쩔어줘.”
이번에는 내가 무례한 행동을 취해도 사라는 끼어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난 듯 했다.
오늘 아침부터 사라는 나와 대화하지 않았다. 태영과는 평소처럼 대화를 하면서도 내가 말을 걸고 들어오면 못 들은 척 하거나 형식상의 인사같은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변화에 욕이 튀어날 뻔했지만 참기로 했다. 어제 태영이 나보고 잘못했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여기로 오자고 했을 때는 따라왔다. 다만 이것도 평소와는 달랐다. 나와 어디를 갈 때면 항상 내 손을 잡던 사라가 이제는 나의 빈 팔이 만들어낸 빈 옷소매를 아이처럼 손으로 쥐어 잡기만 했다. 이것은 무척이나 큰 변화였다.
“하......맘대로 해.”
준열은 그 말과 함께 대기중으로 보이는 한 차량을 가리켰다. 차량은 저번에 본 것과 비슷했다. 다만 이번 것은 크기가 더 컸고 20명은 탈 수 있어보였다. 뿐만 아리나 지붕을 개조해 2명 정도는 올라가 바깥을 지킬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사람이 타는 공간 안에는 나이대가 다양한 청년 혹은 중년의 남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탑승해 있었다. 그 사이로 우리가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여자를 처음 본다는 느낌보다는 우리 같은 장애인들이 ‘왜 여기에’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 시선들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사라를 구석에 앉힌 뒤 그 옆에 내가 앉았다. 원래라면 절대 놓지 않았을 사라의 손이 내 옷소매를 놓아버렸다. 떨어져 내리는 옷자락만큼 나의 심장도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계속 우리를 쳐다보는 남자들에게 한 마디 말했다.
“뭘 봐? 장애인 처음 봐? 눈 치워.”
그, 소리에 모두들 다시 제각각 하던 것을 이어갔는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찾아내서 패버리려다가 옆의 사라를 생각해 그만두었다. 곧 준열이 어깨로 가방과 무기를 가지고 탑승했는데 나를 보더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라씨도가는 거야? 위험할텐데 섹터에 두고 가는건 어때?”
“응, 엿.”
“어이, 말이 좀 싸가지가 없다?”
준열과의 대화 가운데로 한 남성이 끼어들어왔다. 턱수염이 거칠어 보이는 피부가 조금 까만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이 손에는 정글도가 쥐어져 있었다.
“아저씨, 앉아주세요.”
“네가 그러니까 저 년이 만만하게 보는 거야.알아?”
준열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운 눈빛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만큼은 싸움을 제일 잘하거나 힘이 가장 쎈 남자인 듯 했다. 성격도 고약할 것 같고.
“그럼 당신 싸가지라도 떼서 나한테 주던가.”
내가 가볍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더디 나에게로 한 걸음씩 위엄을 실으며 다가왔다. 키는 185정도 되어보였다. 나보다 머리통 한 개 반 정도 더 큰 몸이었다. 몸 여기저기에는 힘을 좀 썼던 듯한 근육들이 붙어있었다. 남자의 굵직한 손이 나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의 힘에 내 몸이 들리더니 바로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어깨와 등으로 고통이 몰려왔다. 죽을 정도는 아니고 가볍게. 저 멀리 사라가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이, 시발! 으......”
내가 크게 소리쳤다. 아픈 등을 손으로 메만지며 일어났다. 준열이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집어던진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싸우지도 못하는 병신년이 함부로 나대네.”
그러면서 나를 비웃기까지 했다. 다른 놈들은 여전히 바라만보고 있었다. 애초에 도움 따위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남자들은 모두 겁쟁이들이었으니까. 그가 다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겨우 상체만을 일으킨 상태였다. 다시 내 멱살이 잡혀 몸이 들어 올려졌다.
“아저씨, 그 손 놔요.”
준열이 다시 제지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날 내동댕이쳤다. 이번에는 사라가 앉은 자리까지 던져졌다. 다시 등과 바닥이 부딪힌다. 등이 헐어버릴 것 같았고 슬슬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사라 앞이니까.
“아저씨!”
준열이 마지막 경고라는 듯 말해보지만 역시 듣지 않았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사라를 보았다.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 손으로 내 손을 뻗어 잡아주었다. 그러자 사라의 손이 멈추고 나의 손을 꽉 쥐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용케 바로 나의 앞에 일어섰다.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서. 이번에는 다른 쪽을 보는 둥의 실수는 전혀 있지 않았다.
“그만해주세요!”
사라가 소리쳤다. 평소에 연약하게만 느껴졌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무척이나 강하게 느껴졌왔다. 어제 나에게 화냈을 때랑은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뭐야, 넌. 끼어들어서 다치기 싫으면 빠져.”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만해주세요.”
그녀는 호소하듯 말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두려움이 느껴질 법도 한데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비켜.”
“싫어요.”
“하......”
그는 짜증의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남자의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사라가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는 관심 밖으로 내다버린 채 그녀의 팔을 세게 부여잡더니 옆으로 밀쳐버린 것이다. 던지듯 밀쳐진 사라는 작은 신음을 내었고 쓰러지는 찰나 지켜보고만 있던 남자들의 부축에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보였다. 그녀의 이마 옆에 작은 상처가 생겨난 것을. 내 속에서 무언가가 끊기기 시작했다.
“하여튼 시발, 어린년들이 좆도 모르고 설쳐대고.”
“야.”
남자의 말을 매섭게 잘라버리고 음산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의 관심이 나에게로 집중되었을 때는 허리츰의 권총을 꺼내 그의 무릎에 쏴버렸다. 다시는 걷지 못하도록. 갑작스러운 총성에 준열을 포함해 보두가 놀라고 그도 무릎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피를 막으며 넘어지려 했다. 그리고 비명도 내지르기 전에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쉴 틈 없이, 쉬지 않고 계속 얼굴을 주먹으로 갈겨댔다. 나의 오른 주먹에 피가 묻어나왔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남자가 억지로 일어서려 하면 총알이 박힌 부분을 때렸고 다시 머리를 가격했다. 무언가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패버렸다. 이 새끼는 죽어야 마땅했다. 사라를 상처입혔다. 사라를!
“모두 멈춰!”
주먹이 허공에서 멈춘 것은 다른 큰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짐칸 밖에서 노인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제지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준열이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모두가 숨죽였다. 그 와중에 나 혼자만이 주먹을 멈춘 채 일어섰다. 얼굴이 아닌 등만을 보여주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햇빛에 눈이 부셨다.
“자네도 그만해주게.”
노인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내 몸 안에 폭발하던 것들은 잠시나마 사그라 들었다. 이미 내가 눕힌 남자도 이 정도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굴이 뭉개지고 무릎을 아작 내버렸으니까. 나는 그에게서 떨어져 사라를 찾았다. 그녀는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아있었다. 빠르게 또다른 상처가 없는지 몸을 살펴보았다. 멍이 들거나 까진 것이 없는지 샅샅이. 다행이라는 말은 쓸 수 없었다. 그녀의 왼쪽 어깨에 멍이 들어있었다.
“괜찮은가?”
“다 꺼져!”
다가오는 노인과 주변의 남자들에게 내질렀다. 사라가 다쳤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화낼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 주위의 이 사람들을 모조리 쏴 죽이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 해 상황이 난잡해 졌다. 분위기는 잠금장치 풀린 보일러처럼 과열되었고 나도 다시 자제력을 잃어갔다. 머리가, 마음이 계속 뒤엉키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혼란스러움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들은 시끄러운 소음이 되었고 이미 손이 권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미 남은 탄의 갯수가 세어지고 이들을 어떻게 죽인 것인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이상 상황이 더 악화되려는 찰 나, 태영이 나타났다.
“또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