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Pride (Good Night, Shara) - 11
“아이고, 피곤해라!”
마지막 남은 ‘적’까지 처리를 하고 기지개를 폈다. 내가 불러일으킨 상황이긴 했지만 몸이 피곤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1시간을 걸어 돌아가야 했는데 중간에 쓰러지기하고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허리츰의 글록17을 꺼내고 탄창을 빼내 남아있는 탄수를 확인했다. 17발 중 16발을 쐈으니 탄창을 비어있었다. 마지막 한 발은 장전이 되어있는 상태. 교체가 필요했다. 오늘의 전리품, 9mm 파라펠럼 총알 115발이었다. 일단은 탄창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가방에 옮겨야했다.
걸음을 건물 뒤쪽에 있는 한 초라한 문으로 옮겼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문은 아무곳에서나 떼어내 가져다 붙인 손잡이가 붙어있었는데 그 위로 ‘보일러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먼지가 쌓인 공기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시멘트로 대충 만든 계단이었다.
타고 내려가니 붉은색의 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랫부분이 녹슬어버려서 제대로 열리기나 할 지 의심스러운 문이었다. 그래서 발로 있는 힘껏 걷어찼다. 역시 녹슬어버린 나머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순간 울렸다.
“엔?”
문이 웅장하게 열리고 안에 있던 사라가 나를 불러주었다.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게 빠르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묻었던 피는 오는 길에 아무 시체의 옷을 벗겨서 닦아낸 후였다.
“다녀왔어.”
“엔! 다친곳은 없어? 총소리들이 엄청 울렸던데.”
“내가 좀 끝내주잖아. 다 쫓아내고 왔어. 이제 돌아가자.”
“응.”
그녀에게 맡겨놓았던 가방을 받아 탄창들을 넣고 메었다. 그리고 따로 글록17의 탄창을 하나 꺼내 장전해두었다.‘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허리츰에 끼워넣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저 공돌이한테 무슨 짓 안당했지?”
가방을 고쳐메고 얘기를 듣고 있던 태영을 노려보며 물었다. 일단 아군이긴 했지만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던사라였다. 언제든지 쉽게 건드릴 수 있었다.
“너무 사람을 못 믿는 거 아냐?”
그가 자신은 억울하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사라에게 재차 물어보았고 그녀는 그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사라의 손을 잡고서 밖으로 나왔다. 태영도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나저나 용케도 이런 곳을 알고 있었네. 이건 칭찬해줄게.”
그는 보일러실을 보다가 무슨 감상에다로 젖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슨 감상인지는 모르겠고 그런것 따위에 관심도 없었다.
우리는 다시 정비고로 향했다. 혹시나 남은 ‘적’이 있을까 조심하면서. 사라는 내가 무사한 것에 기뻐하는지 아까부터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빨리 정비고로 가서 챙길거나 챙기고 떠나자고. 괜히 더 피곤해지기 전에.”
걸어가면서 그에게투정부리듯 말했다. 피곤하고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사라가 있어서 이 정도나 참는거지, 그녀가 없었다면 그냥 내가 아무거나 뜯어서 가져갔을 것이다.
정비고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가지 않고 밖에 내동댕이 쳐진 듯 주차되어있는 전투차량으로 향했다. 초록, 갈색, 검정으로 얼룩처럼 도색된 차량은 삐걱대는 인형처럼 바람에 골을 앓는소리를 내고 있었다. 태영은 차의 앞으로 다가가 혼자만의 힘으로 앞 뚜껑을 열었다. 한 손을 가진 나로서는 사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열어왔는데 그는 한 번에 열어 재꼈다. 나도 두 팔 멀쩡히 있었다면 태영보다 멋있게 열었을 것이다.
“내 가방 좀 벌려줄래?”
그가 어깨의 가방을 내리며 부탁했다. 원래 같았으면 명령하지 말라고 욕부터 박고 시작했겠지만 함부로 그럴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라와의 손깍지를 잠시 풀고 가방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높이까지 올려준 뒤 옆에서 멀뚱히 앞을 바라보는 사라를 불렀다. 나에게로 눈동자가 향했다.
“사라, 가방 벌려야해.”
“알았어, 엔.”
그녀는 앞으로 손을 뻗어 내가 말하는 가방을 찾았고 더듬거리다가 지퍼쪽을 발견한 뒤 열고 무엇이라도 들어가게끔 나와 함께 크게 벌려주었다. 태영은 뚜껑 안으로 손을 이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돌리는가 하면 또 무언가를 빼내었다. 기계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는 나인지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 그가 자신의 두 손으로 축구공만한 은색의 부품을 꺼내었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부품인지 알아?”
“내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빨리 집어넣기나 하라고! 팔 아파.”
그의 질문을 걷어차 버리고 들고 있던 가방을 흔들며 말했다. 정말로 팔이 아팠다. 안그래도 한 팔뿐이라 부담이 더 가는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하니 짜증이 났다. 겨우 막 쌓였던 스트레스를 푼 참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실망한 눈치로 떼어낸 부품을 가방안에 넣었다. 그것이 들어오자 무게가 아래로 확 쏠렸고 잘못했다가는 떨어트릴 뻔했다. 사라도 잡고있긴 했지만 그녀의 힘은 너무 약했다. 겨우 내가 버틴 것이다.
“존나게 무겁네!”
“제일 무거운 부품이거든.”
“그럼 빨리 내려와서 가방들어!”
내가 소리치자 그는 일부러 장난이라도 치듯 웃으며 차에서 뛰어 착지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뻗고 싶었지만 손이 없어서 그러지를 못했다. 태영은 등과 함께 어깨를 내밀었고 발로 차려다가 꾹 참고서 가방을 던지듯 그에게 주었다.
“다 챙긴거겠지?”“어. 필요한 건 다 챙겼고 돌아가야지, 이제.”
그는 k2소총을 고쳐메고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우리가 따라가고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경계를 하며 걸었다. 사거리에서 습격을 받은 것처럼 또다른 습격을 받을지도 몰라서였다.
사람이 사람을 습격하는 일은 꽤나 흔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는 더더욱. 크립톤은 사람들의 공통된 ‘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공통의 적일뿐, 그 외의 적들도 많았다. 그 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었다. 이유는 물자 때문이었다. 나처럼 재미나 그냥 거슬려서, 혹은 시비가 붙어서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물자 때문에 습격하는 게 이유였다.
옷이든, 음식이든, 물이든, 살기위해서 구해야했고 처음에는 찾거나 줍기만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의 것을 빼앗기 시작했다. 폭력이 시초였고 끝은 살인이었다. 군대나 경찰이 아직 건재했을 때는 억지로라도 진압이 되어 막긴 했지만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싸움과 섹터끼리의 전쟁뿐이었다. 특히 이 모든 행위들이 활발한 곳은 서울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다시 습격받는 일 없이 30분쯤 걸었고 중간에 내 옷을 새로 맞춘 마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고 각자 챙겨온 식량을 먹기로 했다. 태영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나는 과일통조림을 2개 꺼내어 뚜껑을 열고 사라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사라가 눈치재치 못하도록 내 것은 그녀의 통에 다 담아서 주었다. 그 모습을 태영이 다 보았지만 아침때처럼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마음에 드는 새끼일세.
“고마워, 엔.”
“많이 먹어. 네가 힘내야 내가 잘 버티지.”
그녀는 조심히 묵직해진 통조림을 받아들었고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덕분에 스스로 먹는 것에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어보였다. 눈을 빼앗기고 중간에 1년 동안 갇혀 움직이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처음 밥을 먹으라고 통조림을 쥐어주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었다. 엎어지는 건 기본이고 제대로 씹지도 못했으며 먹자마자 구토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정말 많이 발전한 것이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출발하려고 일어섰을 때 가방을 뒤적거리던 태영이 나에게 초코바 하나를 내밀었다. 나보고 받으라며 고갯짓까지. 이걸 받아야하나 조금 망설이다가 조용히 받아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초코바는 무척이나 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겨우 이걸 먹고 버티겠냐고 묻겠지만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이것역시 아빠새끼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시절부터 나의 식단은 쓰레기였다. 어떤 날은 한끼라도 제대로 된 밥을 입에 대보지도 못했었다. 아빠새끼가 주는 것만을 강제로 먹어야만 했다. 주로 먹게 된 것은 벌레들이었다. 가장 처음 먹게 된 것은 메뚜기. 도대체가 어디서 구해온 것들인지 하루마다 10마리씩 주워오든 사오든 가져왔고 나중에는 기르기까지 했었다.
한 달 가량을 점심으로 메뚜기를 먹으며 버티기도 했었다. 그 외로는 거미나 잠자리, 애벌레, 지렁이까지 배속으로 꾸역꾸역 쳐 넣었었고 만약 먹기를 거부하거나 구토를 하면 벌레가 가득한 방안에 집어넣고 굶게 만들었다. 그 때마다 나는 배가 고파 살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주위에 기어다니던 벌레를 쳐먹으며 버텨야 했었다. 이 행각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멈췄고 그때서야 제대로 된밥을 삼시세끼 먹게 되었다. 집을 뛰쳐나오기 전까지는. 지금이었다면 그 새끼 머리에 총알을 쳐 박아주는건데.
마을을 지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섹터로 돌아왔다.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우리를 기다리나 했더니 민재였다.
“이봐 엔! 고생많았어.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던거야? 여기저기가 먼지랑 흙투성이인데. 얼룩도 많고.”
역시 이 남자는 겁대가리가 없었다. 조금 흥미가 돋았다.
“조금 일이 있었지. 나랑 말 섞을 생각이라면 나중에 술이라도 들고와. 지금은 피곤하니까.”
“오케, 조심히 들어가. 아, 그리고 준열이가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 새끼가? 뭘?”
씹새끼.
“말 좀 전해달래. 오늘 저녁에 잠깐 시청으로 오라던데.”
그가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그 전에 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라고? 드디어 미쳤나 보다. 언제부터 그 망할놈이 내 머리위에 있던 것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해졌다. 역시 팔이라도 하나 분질러 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직접 쳐오라고 해. 나 빡도는 꼴 보기 싫으면.”
“엔, 그러지 말고 가자.”
완전히 거절을 하자 사라가 준열을 거들었다. 그녀딴에는 그냥 여기서 머무르게 해주고 하니까 한 번쯤은 말을 들어주자는 것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 새끼편을 드는 것 같았다. 참고로 그렇다고 해서 사라가 싫은 것은 아니다. 난 사라를 사랑하니까.
“일단은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야. 엔이 준열씨를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참는 셈 쳐주면 안될까?”
“아?......젠장, 알았다고.”
그녀의 달램에 못 이겨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나의 대답을 받고 준열에게 전해두겠다고 말한 뒤 가버렸다. 우리는 태영과 함께 정비고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특히 사라는 침대에 눕혀 잠깐 낮잠을 자게 했고 내가 그 옆을 지켰다. 저녁노을이 오를 때까지.
해가 져가는 저녁. 직접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섹터의 시청이었다. 준열이 원하는 대로 몸소 이곳까지 온 것이다. 물론 사라도 함께였다. 사라는 내 손을 꽉 잡은 채 나의 뒤를 따라왔다. 져가는 노을에 하얀색이던 그녀의 원피스는 노을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시청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로비에 섰지만 그 어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기다려야 하나 싶었지만 그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기에 로비 가운데서 안이 울리도록 소리는 내질렀다.
“야! 꼬맹이! 몸소 찾아왔는데 마중도 없냐?!”
“참을성 더럽게 없네.”
시청복도에서 준열이 손에 종이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라도 하고 나온 듯 피곤해 보이는 기색도 느껴졌다. 그건 나와 사라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부르지 말았어야지.”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어.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그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권총을 꺼내려다가 꾹 참고 그의 뒤를 따라 걸어 테이블 하나가 있는 작은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무슨 취조실이라도 되는 것 마냥 갑갑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라를 먼저 앉히고 그 옆에 내가 앉았고 준열은 맞은편에 앉았는데 우리를 번갈아 보면서 종이뭉치를 탁탁거렸다. 한 대 치고 싶어라.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빨리 당신을 보내고 싶으니까 다 생략하고 말할게.”
“그럼 그 말도 생략좀 하지? 그 한마디가 무려 4초야.”
준열이 크게 한 숨을 쉬었다. 피곤과 함께 분노가 들어간 한숨이었다.
“오늘은 날 화나게 하지마. 지금 문 밖에 총구가 많으니까.”
안다고, 바로 반박하려던 때 사라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만하라는 표시였다. 열려던 입을 닥치고 그의 협박에 못 이겨주는 척 한 발 물러서주었다. 내 자존심에 깊게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만족하며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끊어져버렸던 말을 붙여나갔다.
“우리가 너희들을 데리고 올 때 잠깐 들렸던 섹터, 기억나?”
“그 난민촌? 기억나지.”
“그곳 사람들이 방금 전 습격을 당했어. 그리고 대략 200명의 사람들이 죽었지. 절반이야.”
“네?”
준열이 전하는 소식에 사라가 놀란다.
“크립톤인가요?”
“방금 전에 습격했다니까 아니겠지.”
크립톤을 해가 뜨는 오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맞아, 크립톤은 아니야. 그렇다고 다른 섹터의 사람들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 갑자기 외계인이라도 뿅 나타나서 싹쓸이라도 해갔냐?”
“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 알아봐야 해.”
일단 크립톤들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낮에 움직이지 않고 정말 만약에 이 괴물새끼들이 변종이든 대가리가 바뀌었든 해서 낮에 움직였더라도 그곳에서 ‘크립톤’이라고 알려줬을 것이다. 보는 눈이 몇 개인데 그런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거랑 날 부른건 무슨 연관이야? 너희들끼리 가서 알아보면 되잖아.”
“나도 그럴려고 했지. 그런데 아버지께서 당신과 함께 가겠다고 했어.”
“그 노인이?......하, 지금 내가 '왜?’라고 해도 넌 모를 것 같고 내가 직접 찾아가서 따지면 되는 거겠지? 좋아. 그럼 얘기 끝. 사라, 돌아가자.”
“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게 아닐까?”
“좆까라 해. 지 자신이 잘난 베테랑이신데 내가 왜 가? 능력 쩔어준다면서. 그리고 괜히 갔다가 이유모를 것에 뒤지기 싫어. 게다가 저 꼬맹이도 날 싫어하는데 갈 이유가 없지. 그러니까 얘기 끝.”
얘기를 마무리짓고 사라의 손을 잡고서 방에서 나서려고 했던 그 때 준열이 일어서더니 나를 불러 세웠다.
“이봐, 엔.”
잠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진짜로 한 대 치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하고 관련없이 하나만 물어보자.”
그는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에게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내 대답은 그를 아니꼽게 째려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사건’전까지 뭘 하던 사람이었어?”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자신이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던져보였다. 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이 개새끼가 뭘 하려는지, 지금까지 종이 따위를 왜 들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야, 꼬맹이.”
준열은 사라가 눈이 안보인다는 것을 알고서 나에게 미리 보여준 것이다.
“사라가 없었다면 섹터고 나발이고 넌 뒤졌어.”
“엔!”
옆에서 사라가 소리를 쳤지만 무시해버렸다. 계속 종이뭉치만을 바라보았다. 그도 똑같이 바라보다가 곧 나를 쳐다보고는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은 입을 열어 재꼈다.
“대답으로 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