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Pride (Good Night, Shara) - 10
“욱.”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곧바로 구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이 몰려들었다. 배도 아팠고 목도 아팠다. 숨을 쉬기도 조금 불편했다.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잘 보이지 않던 앞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하나하나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이 바로 앞에 앉아있는 한 여자였다.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묶고 짙은 남색의 후드자켓을 지퍼 끝까지 올려 입은 외팔의 여자. 그녀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였지?’하다가 폭풍처럼 몰려오는 기억에 곧바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에 팔과 다리를 보니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케이블타이와 함께 단단히 박혀있는 기둥에 묶여있었다. 풀어보려 발버둥을 쳤지만 케이블만 덜그럭 거릴 뿐 전혀 풀리지 않았다.
“다행이네. 빨리 깨어나서.”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앉고 있던 의자를 옆으로 차버리더니 나와 반대쪽에 있는 문쪽으로 걸었다. 지금 내가 묶여있는 곳은 작은 집같은 곳이었다. 창문은 깨져있고 벽에는 곰팡이인지 얼룩인지 여러가지가 가득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붕은 내가 묶여있는 기둥 위로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그곳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난 엔이야.”
자신을 ‘엔’이라고 밝히며 뒤돌아서는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기보다 이제 나에게 무슨 짓을 할 지가 더 두려웠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볼까? 넌 지금부터 나랑 즐거운 게임을 할거야. 내가 방금까지 고민하면서 빠르게 만든건데 나름 할 만할 거야. 왜냐하면 죽지 않고 살 수도 있거든. 할래?”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의 눈과 마주하는데 그 누구에게도 볼 수 없었던 눈빛이었다. 겉보기는 잔잔한 바다 같지만 속은 심해 속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괴물과도 같은 눈이었다.
“대답이 없다는 건 고민한다는 거고 나보고 대신 선택해달라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그럼 게임 시작이야.”
엔은 대답 못하는 나를 보면서 자기 멋대로 게임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던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그녀였다. 손에 들린 것은 기다란 볼트들이었다. 내 손가락 길이만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너랑 나는 가위바위보를 할 거야. 손이 묶여있어도 그 정도는 가능하잖아. 가위바위보를 해서 네가 이기면 좋은 경험을 시켜줄 거고 진다면 내가 네 몸 아무데나 원하는 곳에 이 볼트를 쳐박을거야. 참고로 안심해. 머리랑 심장은 안 박아. 바로 죽어버리면 게임을 못하잖아. 여기까지는 이해했지?”
그녀가 볼트는 다시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발밑에 있는 드릴을 들었다. 볼트를 박을 때 쓰는 전동드릴이었다. 작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마자 드릴이 빠르게 회전하며 굉음을 내었다.
“그렇게 총 20번의 가위바위보를 할 거야. 끝나고 나서 네가 죽을지 살아갈지는 끝나면 알게 되겠지. 아! 잊을 뻔했네.”
엔은 잠시 드릴을 내려놓더니 자신의 다른 주머니에서 조금 더러운 수건을 꺼내 그것을 말아서 나의 입에 갑작스럽게 쑤셔 넣었다.
“원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해야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하니까 어쩔 수 없지. 꽉 무는게 좋을 거야. 그럼 시작한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떨어져 볼트하나를 꺼내더니 미리 드릴에 꽂아두었다. 끝이 뾰족한 드릴이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내 아래에 놓여졌다.
“첫 벗째. 가위바위보!”
하고 싶지 않았다. 아픈 것도 싫었지만 죽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 반대로 게임을 하면 적은 확률이겠지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담할 수는 없다. 그 20번의 가위바위보를 모두 질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두려웠다. 무서웠다. 그래도 살고자하는 나의 마음이 강했는지 몸이 멋대로 게임을 시작해버렸다. 손이 움직인다.
“올~”
그녀가 낸 건 주먹이었다. 내가 낸 것은 손을 활짝 펼친 보자기였다.
“첫 판부터 좋게 출발하네. 정말 운이 좋은 애네!”
나는 두려움에 긴장하며 혹여나 졌을까 무서웠는데 그녀는 신나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첫 판은 이겼지만 다음 판은 어떻게 될까 두려워 안심할 틈이 없는 나였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주먹을 쥐었던 손을 편 엔은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은 나의 턱을 잡더니 그대로 고개를 뒤로 꺾게 했는데 그 과정이 예상과 다르게 부드러웠다.
“너무 느끼다가 바로 싸버리지는 마. 썅년아.”
무엇을 하려나 바짝 긴장한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나의 목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가끔씩 마주쳤던 변태들처럼 맛이라도 보듯 간지럽게 했다. 벌써부터 커다란 자극이 느껴졌다. 중간에 그만하라며 몸을 비틀고 잡힌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그녀는 힘으로 제압하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잡아먹듯이 삼켜댔다.
“짭짤하네.”
빠르게 끝났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늘어질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가위바위보!”
숨이 가빠지면서도 나의 손은 게임을 이어갔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가 낸 것은 가위, 내가 낸 것은 주먹이었다.
“존나게 운 좋네. 이대로 20번째까지 이어가는 거 아냐? 옘병할. 재미없게.”
다시 패배한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아까처럼 그 짓을 할까, 긴장한 채 멀어지려 했지만 그럴 곳은 있지 않았다. 바짝 달아오른 몸으로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입이 아니었다. 천천히, 내 몸을 타며 여기저기를 만지고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그 동선 속에서 가슴도 몇 번 스쳐갔다.
“귀엽네.”
몇 번 만지작거리던 손은 빠르게 자켓과 셔츠의 단추를 풀어나갔다. 지금 무슨 짓이냐며 반항을 해보지만 역시라면 역시인 듯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어느새 풀린 셔츠 사이로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지금 세상에 브라는 잘못된 선택이야. 갑갑하거든. 뭐 그래도 이게 너같은 갓 어른된 애들한테는 어울리겠지.”
드러난 브래지어가 거칠게 뜯어져나갔다. 나의 맨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친한 여자애들 빼고는 함부로 보이지 않았던 가슴이 처음 보는 이 살인자에게 드러내준 것이다.
“딱 봐도 처음인 티 나네. 이것만 해줘도 몇 번은 가겠다, 야.”
역시 나는 알 수 없는 말. 엔은 나의 가슴 한쪽을 살살 문지르다가 움켜잡았다. 순간 몸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지나갔다.
“힘 풀어, 썅년아. 그래야 존심이라도 더 세우지. 작은 것도 아니구만. 나보다 크네. 시부랄.”
무슨 말을 하느냐고 눈빛으로라도 물으려던 찰나, 이번에는 더 큰 자극이 지나갔다. 마치 몸을 뒤집어 놓기라도 하듯 그녀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손으로 잡던 가슴 한 쪽은 아예 입으로 물어버린 것이다. 괴로웠다. 그만큼 힘이 더 들어갔고 그러면 더 괴로워졌다. 그런데도 그게 미치도록 좋았다. 괴로워서 힘을 빼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 힘을 들이면 괴로움과 동시에 몸을 달구는 듯한 쾌락이 몰려왔다. 그만하라며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허락치 않았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까, 점점 하얘져가는 머리로 버텨보지만 무언가가 올라왔고 서기 위해 붙잡고 있던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다.
“이래야 재밌지. 아깝다, 아까워. 걔네들만 없었어도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그녀가 무어라 말했지만 나의 귀로는 한 단어도 주워들을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버티고 서보려는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 세 번째 판. 할 수 있지? 가위바위보!”
엔의 진행에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웠고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내었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힘이었다.
“아, 시발. 또 졌네.”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그녀가 낸 것은 주먹, 내가 낸 것은 보자기였다. 그런데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이 패턴으로 진행이 된다면 다음으로 건드려질 곳이 어딘지 알았으니까. 나는 빠르게 두 다리를 오므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좋은 경험이든 뭐든 싫었다. 이제 그만. 다 멈춰주기를 바랬다.
“반항하지마. 벌려, 시발련아.”
협박에도 난 꿎꿎이 버텼다. 그러자 엔은 한숨을 쉬더니 나의 치맛자락 사이로 손을 강제로 넣더니 팬티 속을 헤집었다. 그곳으로 그 감촉이 느껴졌다. 닿기만 했을 뿐인데도 벌써 힘이 빠지고 그 괴로움이, 기분좋은 무언가가 올라올 것 같았다. 나의 몸은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이 여자가 안 것일까, 잠깐 날 바라보던 눈빛에 조소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내가 조금 오므렸던 다리를 벌리자 그녀의 손이 강하게 움직였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느낌이 몸을 덮쳐왔다. 허리가 휠 것 같았고 다리는 이제 버틸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냥, 그저, 좋았다. 숨이 가빠졌고 폐는 터질 것 같았다. 내 숨이 닿을수록 그녀의 손을 깊숙히, 강하게 움직였다. 얼마가지 않아 내 몸안의 무언가가 또 터지듯 쾌락이 몰려왔다. 뿐만 아니라 다리 아래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와 타고 흘렀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쓰이지 않았다. 멍하니, 힘이 빠진 채로 앞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물 한번 존나게 많네. 어으, 냄새.”
안 들어왔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든 들리지 않았다. 이미 나의 머리는 기능을 잃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내 눈앞의 엔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상태이던지 안중에도 없고 바라보면서 즐겼다.
“바로 이어서 네 번째 판! 가위바위보!”
다시금 이어지는 게임. 이번 판에서 크게 웃을 수 있던 것은 엔이었다. 내가 낸 것은 가위, 그녀가 낸 것은 주먹이었다. 내가 진 것이다. 되돌리려 해도 그럴 수 없는 패배였다. 하얘지던 머리가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점점 멀리 떠났던 두려움이 다시금 몸을 덮어왔다.
“내가 이겼네! 뭐, 규칙은......규칙이니까.”
아무것도 들지 않았던 그녀의 손에 전동드릴이 들렸다. 여전히 볼트가 끼워진 상태였다. 구릿빛의 햇빛에 반짝이는 볼트가 점점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의미한 뒷걸음질, 묶여있는 상태라는 걸 잠시 잊어버렸다.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간단하게 허벅지부터 시작해볼까?”
차갑고 기다란 볼트의 끝이 나의 허벅지살위에 올랐다. 끝이 날카로운 그것은 나의 그 살을 관통해버릴 기세였다. 다리를 움직여 피하고 싶었지만 아까까지 당한 것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이더라도 그녀가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허벅지는 총알이 박혀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괜히 움직여서 다른 부분 건드리게 하지말고 가만히 있어. 말 잘 들어야 산타가 선물을 주지.”
웃기려고 하는 소리였다면 하나도 재미없었고 진정시키려 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나의 눈동자가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 순간에 은아언니가 떠올랐다. 언니가 지금이라도 와서 구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위이이잉!’
“읍! 으읍! 웁!”
전동드릴이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맨살이 들러나 있던 허벅지를 볼트로 뚫고 들어왔다. 그냥 박히는 것도 아니었고 회전하면서 속살을 긁어가며. 아팠다. 아프다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지사고 아파서 다리로 모든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 아프다는 걸 아는데도.
목으로 나의 비명이 폐도 함께 끌어낼 지경이었다. 차라리 눈이라도 가려졌으면 몰라도 볼트가 꿰뚫고 들어오는 것을 나의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당하니 수 십 배는 더 아팠다. 전동드릴의 소리가 나의 귓속을 갉아먹으며 파고들었다. 겨우 3초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3시간은 지난 것 같은 순간이었다. 드릴의 회전이 멈춰졌지만 볼트는그래도 박힌 채나를 괴롭혔다. 붉은색의 핏줄기가 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 허름했던 신발을 적셨다.
“야, 야! 정신 잃는거 아니지? 아직 14번 더 남았어.”
엔이 드릴을 놓고 나의 뺨을 때렸다. 그래도 느끼지 못했다. 허벅지의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다.
“다시 한다. 가위바위보!”
곧바로 게임을 이어가지만 이번 판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그 어느 것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만이 나를 향해 보자기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쭈? 안 내? 그럼 진거지 뭐.”
‘다시’는 없었다. 내가 내지 않았으니 진 것으로 처리되었다. 빠르게 항의하듯 아픔이 가득 찬 신음소리와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말을 섞어 강하게 내뱉어보지만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볼트를 끼우고 나에게 드릴을 가져다 대었다.
“이번에는 여기로 해볼까?”
그녀가 웃으며 볼트를 가져다 댄 곳은 나의 왼쪽 어깨였다. 볼트가 닿자마자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무서웠다. 어깨를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그녀의 힘이 강하가 어깨를 손도 아닌 볼트로 짓눌렀다.
“왜? 싫어? 그러면 뭐라도 냈어야지. 이건 네 잘못이야.”
‘위이이잉!’
“으웁! 읍!”
또 드릴이 빠르게 회전했다. 동시에 볼트가 왼어깨를 뚫고 들어왔다. 아까와 같은 고통이 한 순간에 몰려왔다. 너무 아파서 이제는 눈물까지 나오고 있었다. 어깨에서 피가 튀고 또 다른 핏줄기를 만들어내었다. 내가 입고 있는 코트와 교복이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 똑같은 3초 남짓의 순간, 그리고 똑같은 3시간 같은 고통. 그럼에도 진행되는 가위바위보였다.
“바로 간다! 가위바위보!”
이번에는 힘을 쥐어짜 고통을 이기고 주먹을 내었다. 그리고 낙담했다. 엔이 낸 것이 보자기였기 때문이다.
“2연승이네?”
그녀는 빠르게 새로운 볼트를 끼우고 내 몸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나의 왼쪽 배 부분이었다. 셔츠가 풀어헤쳐져지면서 드러난 곳이었다.
“가여워라. 이제 너도 나처럼 애는 못 낳겠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픈게 싫었다. 이 이상 했다간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드릴을 회전시켰다.
“우웁! 읍웁! 우!”
새로운 볼트가 나의 배를 뚫으며 들어왔다. 새로운 핏줄기가 생겨났다. 새로운 도통이 느껴졌다. 이제 그만하자고 소리질러보지만 게임은 멈추지 않았다.
“가위바위보!”
그녀가 낸 것은 바위. 내가 낸 것은 가위. 그녀의 3연승이었다. 이번에는 나의 왼팔이었다.
“웁!”
“안내면 병신, 가위바위보!”
내가 낸 것은 보자기, 그녀는 가위였다. 또 엔이 이겼다. 이번에는 왼쪽무릎이었다. 더 이상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만 움찔거렸다.
“우, 웁!”
무릎에 박힌 볼트는 뼈까지 깎아 내린것 같았다. 게임은 계속......계속.
“가위바위보!”
내가 낸 것은 가위, 그녀가 낸 것은 주먹.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였다. 처음 볼트가 박힌 곳이었다.
“가위바위보!”
또 그녀가 이겼다. 이번에는 왼쪽 손목이었다. 볼트가 긴 나머지 손목을 관통했다.
“가위바위보!”
또......또 그녀가 이겼다.
“보!”
엔은 9연승을 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등이었다. 이런 식으로 엔은 17번째 가위바위보까지 승리를 했고 나의 몸 여기저기에 볼트들을 박아 넣었다. 이제 18번째의 가위바위보가 진행되었다. 나는 기적처럼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이미 몸은 피로 덮여졌고 옷들도 모두 붉은색으로......
“가위바위보!”
그녀가 낸 것은 보자기, 내가 낸 것은 가위였다. 이제서야, 그녀의 연승을 끊어버린 것이다. 3번째까지만 해도 이겨봤자 마냥 기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고통따위 받을 바에야 나의 그곳이 느껴지는 게 나았다.
“이열! 드디어 이겼네. 축하해.”
계속 나를 뚫고 피를 흘리게 했던 드릴이 바닥에 놓여졌다. 그것과 함께 안도의 숨을 속으로 쉬어졌다.
“다음에도 이기면 아다 졸업이야. 잘해봐. 지금은 준비단계거든.”
그녀의 손이 나의 몸 여기저기에 박힌 볼트들을 한 번씩 만지고 난 뒤 교복치마를 끌어내렸다.흘러내힌 피들로 얼룩진 팬티가 드러났고 그것마저도 땅으로 흘러내려졌다. 벌어진 사이로 나의 그곳이 드러났지만 더 이상의 반항은 하지 않았다. 볼트가 주는 아픔들이 더 컸으니까.
엔은 무릎을 꿇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기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이 나를 한 바퀴 돌았다가 마지막장소인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의 혀가 가슴이 아닌 그곳을 햟기 시작했다.
다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괴로운데, 아직도 볼트들 때문에 아픈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을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아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고 안그래도 가쁜 숨이 더 빠르게 내쉬어졌다. 변태 같았다. 이제는 아픔 때문이 아닌 수치스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흘러내린 눈물은 핏줄기와 함께 땅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다시 몸 안에서 무언가 터지려 하고 있었다. 참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터져버렸다. 겨우 남아있던 힘들이 빠지고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아, 힘들어. 내가 왜 이딴걸 해주기로 했지. 돈 받는 것도 아닌데. 그냥 다른걸 하고 말지. 시발.”
그녀가 중얼거렸다.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고 뭉겨져 구깃해진 소리처럼 들렸다. 조금씩 나의 의식이 세상과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래도 이제 두 판밖에안 남았으니까. 자, 정신 차리고 가위바위보!”
그녀가 무언가를 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흐릿해져 눈으로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이긴 것 같았다.
“이런, 졌네. 축하한다. 너 이제 아다 졸업이야. 비록 상대가 남자나 짐승새끼는 아니지만 뭘로 졸업하든 똑같은 졸업이니까. 그래서 준비해봤어.”
엔은 나의 뒤로 걸어가더니 무언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묶여 있는데다가 어차피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여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빠르게 가져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끝이 잘려나간 녹슨 철이었는데 짧은 원통의 모양이었다.
“이걸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걱정 마. 나도 해봤거든. 아, 정확히는 당했다고 해야되겠지. 그 엿같은 건달새끼, 시발. 그 때 그 새끼 똥구멍에다가도 똑같이 쳐 박아줬어야 했는데 내가 괜히 곱게 죽여버린 개새끼!”
혼잣말을하다가 갑가지 화까지 내었다.
“됐고 졸업식이나 시작해볼까. 이지현 학생.”
그녀는 나에게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사이로 봉을 가져갔고 천천히 그곳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의 속이 차가운 철로 채워지고 있었고 얼마쯤 들어오자 무언가 찢어지는 아픔이 몰려왔다. 볼트가 박히는 것과는 달랐고 덜 아팠지만 아픈건 맞았다. 나의 몸이 그걸 받아들이는데 몇 분이 지났다.
“벌써 쓰러지려고? 아직 시작도 안했어. 이렇게 움직여줘야 시작이지.”
나의 몸 안으로 가만히 들어와있기만 했던 봉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럴수록 아팠지만 미친 듯 한 쾌락이 몰려왔다. 이제는 생각마저 끊겨나는 느낌이었다. 지금이 덜 괴롭고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겨우 몇 번을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을 뿐이었는데 몸 안의 무언가가 강하게 폭발했다.
“뭐야? 벌써? 토끼야? 시발, 산토끼네.”
실망한 기색을 내배치는 그녀가 매 몸에서 봉을 뽑아내고 뒤로 던져버렸다. 몸 안에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흐르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벌써 마지막 가위바위보네. 용케도 살았고. 뜸들이지 말고 바로 시작해보자고. 마~지막 게~임, 가위바위보!”
20번째 가위바위보. 이대로만 이긴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끝인 것이다. 좋게 끝내고 싶었다. 이미 못 벗어나는 것은 뼈속에게까지 새겨졌으니까 이 판을 이기고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것에 나의 희망을 가득 품었다. 하지만 내가 어리석었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니었다. 엔, 그녀가 이겼다.
“내가 이겼네?”
이번에 그녀는 어디에 박을까 뜸들이지 않았다. 바로 볼트를 드릴게 끼우더니 나의 오른쪽 눈 바로 앞에 들이밀었다. 감긴 오른쪽 눈 위로 볼트가 찔러왔다.
“내 친구가 장님이야. 그에 비해 나는 두 눈 다 멀쩡하고. 무슨 소리냐고? 널 가운데 두고 우리가 다녀간 표식을 만들려고. 나는 두 눈 다 잘 보이고, 내 여자친구는 두 눈 다 안 보이니까 넌 하나만 지지자.”
아까와 달랐다 아까까지는 적어도 내 두 눈이 보이는 맨살들이었지만 지금은 바로 앞이었다. 거기다 눈이었다. 세상의 빛이 꺼져버릴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게임까지 수고했어. 바이.”
나의 오른쪽 눈에 올려진 볼트가 드릴과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뜨여져 있던 왼쪽의 눈으로 붉은색의 핏방울들이 퍼져가는게 보였다. 나의 희망은 처음부터 밟혀있었다고 이제서야......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