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Pride (Good Night, Shara) - 9 (11/72)



〈 11화 〉Pride (Good Night, Shara) - 9

목욕탕의 샤워기를 틀었지만 물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수도고 자시고 물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끊겼을 테니까. 오히려 수도가  연결되어 있다면 그곳은 새로운 문명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목욕을 못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어제 태영의 집에서 차가운 물로 씻기는 했지만 따뜻한 물에서의 샤워는 못해본지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번쯤은 굴러가던 드럼통이라도 가져와서 물을 넣고 밑에 불을 피워서 목욕을 해볼까 했지만온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더러운 드럼통을 쉽사리 닦을 수도 없었다. 거기다 물은 부족했고 있는 것마저 탁한 물들이었다. 아예 온천을 찾아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샤워기에서 시선을 돌렸을 때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누군가 이곳에 들러오는 것이 보였다. 소리와 함께. 그것을 보자마자 나이프를 뽑고 유리문 바로 옆에 몸을 숨겼다. 누가 들어왔는지는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의 발걸음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 뒤, 천천히 유리문이 열리고 은색의 총구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였다. 그와동시에 나도 나이프를 휘둘렀다.

들어온 사람은 겨우 1명이여서 조용하고 빠르게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오려던 여자가 몸을 뒤로 젖히고 피해버린 것이다. 내가 노린 곳은 목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숙이거나 젖혀도 피할 수 있는 높이였다. 그렇다고 당황할 시간은 없었다. 여자 혼자인 만큼 조금만 틈을 줘도 소리를 지르든 소음공해를 일으키든 사람을 부를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나이프의 손잡이를 돌려 고쳐잡고 밑으로 내려찍었다.

고맙게도 여자는 샤워실 안쪽으로 피해주었다. 그것도 잠시, 다시 나이프를 쳐들고 여자에게로 빠르게다가가 휘둘렀다. 총을 맞을 걱정은 없었다. 그녀가 든 것은 저격류의 라이플이었던 지라 계속해서 근접전으로 몰아붙이면  틈은 전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이건 삼촌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계속 휘둘러지는 나이프는 여자가 총의 몸체로 날을 막고 나서야 아주 잠깐 멈추어졌다.


“이열, 멋진데.”

나는 그녀에게 감탄했다. 아까 나에게 너무나도 쉽게 죽었던 어중이떠중이들과 무척이나 다른 그녀였으니까. 쉽게 죽이는 것도 가지고 놀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가끔씩 이렇게 어렵게 죽여야 하는 것도 도전정신이 들어서 너무도 재미있었다.


“당신이 우리들을.”

여자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차 있었지만 다른 누구들처럼 흥분하는 기색은 1도 찾아볼  없었다. 이 여자, 이런 싸움을 많이 겪어본 경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탁월했다. 조금만 키우면 괜찮은 살인자로 만들 수 있을 재능인이었다. 대치하고 있던 나이프에 힘을 더 주어 아슬아슬하게 날이 그녀의 눈동자를 찌를 거리를 만들었다. 이쯤되면 자세라도 흔들려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었다.

“그러게 친구들 관리를  했어야지. 특히 나이 쳐먹고도 정신 못차리는 꼬추새끼들.”


“그 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일 애들은 아니야.”

“총이란 총은  쏘던데  죽일 생각을 없었던 애들이라고?”

사실 맞다.


“썅년아, 네가 무슨 공자냐? 아니, 노자던가. 아무튼 나한테 총을  시점부터 너네는 나랑 전쟁을 선포한거야. 알갔?”

짧은 변명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여자는 총을 이용해 내 나이프를 옆으로 밀어버리고 몸을 오른쪽으로 피했다. 굳은 피가 묻은 날은 애꿎은 벽에 상처를 내었다. 바로 오른쪽 여자의 총구가 나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맞지 않더라도 총이 한발이라도 쏴 질 경우 곤란한 나였기에 아예 나이프를 던져버렸다. 그녀는 그걸 피하려 총구도 내리고 다시 몸을 옮겼고 그 틈을 파고든 내가 바닥을 구르며 가까이 붙었다. 올려 때리려는 나의 주먹, 여자도 그것을 보고 막으려 했지만 이건 페이크였다. 진짜 공격은 그녀의 다리를 걷어 차버렸다. 순간적인 충격으로 다리가 굽어져 커다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들어가 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기절까지는 아니지만 시야가 흔들리도록.

“윽.”

제대로 들어갔는지 그녀는 들고 있던 총을 놓침과 동시에 한 손을 바닥을, 다른 한 손은 자신의 머리를 잡으며 휘청거렸다. 내가 또 이겼다. 그녀는 머리를 맞고서 휘청거릴게 아니라 빠르게 정신을 차리던 총을 꼭 붙잡고 있던 뭔가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내가 한 번 더 머리를 가격하도록 허용했다. 둔탁한 소리가 샤워실안을 울렸다.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한 여자가 바닥에 누워버렸다. 조금이나마 생긴 여유. 머릿속으로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있잖아, 이런 빈 목욕탕에서  해보고 싶은게 있었어. 영화에서나 자주 봤었는데 현실로 보면 정말 예쁠 것 같았거든.”

“아으?”


그녀는 두려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이상 기어가지 못하도록 두 허벅지와 다리의 힘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여자의 목덜미가 매혹적이었다. 사라는 하얘서 예뻤고 이 여자는 생기가 도는걸  보여주는 색이라서 예뻤다.

“그래서 지금 해볼려고. 너로.”

나이프를 꼭 쥐고 날카로운 날 부분을 여자의 목으로 가져갔다. 조금만 닿았을 뿐인데 붉은색의 선명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눈 감아.  순간이니까. 그리고 조금 뒤에 눈 뜨면 내가 보내준 네 친구들이 마중나와 있을 거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주고 나는 재밌는 일을 하나, 이루었다.



“언니?.......”

건물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아까부터 1층 복도에 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심히 안으로 들어섰다. 분명 언니는 1층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니겠다고 했을 터인데 어째선지 계속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연처럼 언니가 방에 들어간 상태라서 내가   것일 수도 있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불안감이 나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복도에 발을 내밀고  번째로 들어간 곳은 조금 넓은 방이었는데 안은군인들이 사용했던   몇몇 통신장비들이 먼지와 거미줄에 뒤덮여 있었다. 모두  수 없는 것이었다. 부서진 책상과 뜯어져 떨어져있거나 매달려 있는 기계 장비들. 깨진 모니터들은 과거의 흔적들을 품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죽게 되면서 버려진 이곳은 완전 초라해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코팅된 종이였는데 빛바래고 구겨졌지만 아직 읽은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는 C조라는 단어와 함께 몇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건우, 김태영, 조정한, 박용수, 이진혁.’


옆에 각자의 계급들이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곳에서 지냈던 군인들의 이름인  했다. 나머지 부분은 모두 읽은 수 없는 상태라 더 이상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서 나와 다시 복도를 거닐다가 또 다른 방에 들어섰다. 이번에 들어선 곳은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 아까 그곳처럼 모니터들이 바닥을 구르고 컴퓨터들이 부서져있지만 책상이며 서류며 처음 보는 책들이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꺼내서 볼 여유는 없었기에 대충 눈으로만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사무실 같은 곳을 나오고 계속 복도를 걷다가 끝쪽의 한 문 앞에서 멈추었다. 문 위의 팻말에는 ‘목욕실’이라고 적혀있었다. 아까처럼 문의 창문만으로 한 번에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공간이기에 들릴 생각이기도 했지만 내가 문 앞에서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쪽에서 격한 냄새가 내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비릿하면서도 철같은 것에서 나는 냄새였다.


“언니?”

열려있는 목욕실의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올렸다. 먼저 탈의실이 나왔고 불투명한 미닫이 유리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리는 어째서인지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뒤덮고 있던 불안감이 나의 몸속까지 물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유리문을 잡고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나는 다리에 모든 힘이 풀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아냐......언니, 안 돼. 은아언니.”


샤워기가 가득한   중간에 언니가 있었다. 다만 아까처럼 나를 달래줄 수 있는 언니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언니는 눈을 감고 목이 잘린 채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로 가지런히 정리된 머리카락은 벌써 핏물로 물들여져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샤워실의 바닥, 벽 모두 언니의 것으로 보이는 피로 페인트 칠하듯 모든 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구석에 언니의 몸이 부분마다 잘린 채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을.

꿈이길 원했다. 이건 단순히 악몽이라고. 괴물들, 사람들과 싸우다가 지쳐버린 나머지 꾸고있는 악몽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변하지 않는 현실이 나를 목메이게 했다. 목이 아프고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다리는 이미  기능을 잃어버렸고 바닥에 놓은 손에는 언니의 피가 묻어졌다. 지금 나의 눈은 그저 항상 나를 바라봐주었던 몸이 없는 언니의 얼굴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들리지 않을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핏길을 기어가 언니를 끌어안았다. 이곳은 모든게 핏빛이었다.






목욕탕의 장식을 끝내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남은 인원은 겨우 2명이었기에 귀찮게 숨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손잡이가 다 떨어져나간 난간을 벗삼았다. 2층, 복도 중간에 도착하자마자 왼쪽에 있나, 오른쪽에 있나 귀를 기울였다.

‘끼이익.’


타이밍 좋게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마자 오른쪽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동반사가 되듯 나의 몸이 오른쪽으로 꺾였다. 우연의 만남같이 소리가 들린 문에서는 한 남자가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저 인간이 ‘대가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흔들린 나머지 이성과 판단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이 없어? 나한테  말 많을 것 같은데.”


오른손에 글록을 쥐고 먼저 말을 걸었다. 총구는 겨누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싸울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죽이고 싶어한다. 남자의 눈동자는 여전히 칼을 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켓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이야 많지. 그런데 지금 얘기해봤자 들어주지도 않을 거잖아.”

“이야~, 잘 아네. 개새끼.”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입을 벌리고 쳐 뱉어봐야 죽여버리겠다는 말밖에 더 나오겠냐만은. 그래도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보면 재미는 있었다. 이루지도 못할 복수를 내게 행하는 그 행동에 다시금 절망을 주고 잔뜩 열을 올리는 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글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자켓 안에 들어간 그의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서 널 죽여버리고 얘기하려고.”

그는 마지막 대사를 말하고 자켓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며 나에게로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내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연막탄이었다. 나의 앞으로 핀이 빠지며 굴러온 연막탄은 순간의 소리와 함께 폭파하고 하얀색의 연기를  주위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연막탄을 맞추든, 저 개새끼를 맞추든 둘 중 하나라도 하기 위해 총구를 들었지만 이미 그는 몸을 날려 어딘가로 숨어버린 뒤였다.

“비매너새끼.”


나는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면 개죽음만 당할 뿐이니까. 그리고 퍼즐 맞추듯 나의 옆으로 남자가 칼을 들고서 빠르게 찔러왔다. 뒷걸음쳐서 거리를 벌려놨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상처 하나쯤은 생겼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칼이 스치지도 않은 것을 보더니 고쳐잡고 내 목을 겨누고 휘둘렀다. 바로 몸을 숙여 피해버렸다. 그리고 틈을 노려 권총을 그의 배에 겨누었지만 먼저 날아온 것은 발길질이었다.


덕분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게 되었다. 나는 벽에 부딪히리라 생각했지만 마주한 것은 바닥이었다. 2층에 있던 어떤 방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어떤 공격이 들어올까 긴장하며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았는데 연막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내게 던지고는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어릴 적의 나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비매너가 아니라 이게 실력이고 경험이라는 거야. 시발련아.”


“이 개새!”

나를 무시한다는 것에 화가 나서 바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끝부분은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그가 던진 것이 터졌는데 가루인지 가스인지가 빠르게 퍼지더니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다. 냄새를 한  맡는 것만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갓 중학교 1학년생이 된 나에게 아빠새끼가 방에 가둬놓고 뿌려대던 최루가스였다.


“당신은 졌어.”

남자는  말을 끝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바로 발로 차서 열려고 했지만 이미 무언가로 문을 쳐 막아버린 뒤였다. 뒤로 돌아 창문 쪽으로 향해보지만 철창이 박혀있어서 폭탄으로 터트리지 않는 이상 나가는 것을 불가능했다. 방안으로 가득히 차오르는 가스에 눈이 따갑고 목이 매워지기 시작했다. 가스는 어느 새 이 방을 가득 채워버렸다.






운동화의 발바닥, 무릎, 두 손과 코트의 밑자락이 모두 붉은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모두 은아언니의 피였다. 이제는 온기따위 돌지 않는 언니의 피인 것이다. 눈물이 흘렀던 자리에는 차가움만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눈물이  방울도 더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현실을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순간이 현실임을 알면서도 도저히 나의 정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쥐고 있던 권총은 어느새사라져 있었다. 언제 놓아 버린 것일까. 알 수 없었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제발 깨어나라며  자신에게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멍하니 목욕탕의 문 옆에서 벽에 기대고 주저앉은 채 말이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작은 비명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손으로 잡아쥐고 바닥만 쳐다볼 뿐이었다.

‘툭.’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나를 가둬버린 이 복도로 노크하듯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는 문을 잠근 채 나오지 않는 나의 정신에게도 두드려왔다. 조심히 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만은 내밀었다. 들려온 곳은 나의 오른쪽, 바깥으로 나가는 유리문이었다. 그곳에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튀어나와 있었다.


“오빠?”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유리문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럴 때마다 붉은 색의 발자국이 하나하나 복도에 새겨졌다. 나의 그림자는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따라왔다.

“오빠. 온거에요?”

문으로 다가가면서 조금 이상해 걸음을 멈추었다. 일단 머리카락이 맞았는데 보이기만 할 뿐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항상 내가 이렇게 부르면 대답을 해주던 현호오빠였다. 그런 사람인데 대답은 커녕 아무 움직임도 없는 것이었다.

“오빠. 장난치지 마요. 무섭잖아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오빠에게 장난치지 말아달라고 말하며 다가갔다. 차가운 유리문의 손잡이에 붉은 손을 올리고 조심히 열었다. 그리고 오빠의 머리카락이 보인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김과 동시에 고개를 들렸다. 그제서야 왜 오빠가 대답조차 않았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럴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내 눈앞에 은아언니처럼 잘려져 매달려있는 오빠의 얼굴이 피를 흘리면서......

“아아......”

이제는 주저앉지도 않았다. 너무 놀라서 이제는 몸조차 굳어버렸다.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메두사의 눈이라도 본 것처럼 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보기도 싫었고 듣기도 싫었다. 빨리 이 악몽에서 깨기를 바랄 뿐이었다. 눈앞도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정말로 저주에 걸린 것처럼.

“안녕, 학생.”

그 저주를 푼 것은 내 머리위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였다. 고정된 고개를 위로 향하자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한 데 묶은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들고 나를 겨누고 있었다. 검은색의 권총은 마치 ‘사신’같았다.


“말도 안했는데 눈치 깔고 잘 듣네. 산타가 좋아하겠어.”

야외계단으로 내려온 그녀는 어느샌가 나의 앞에 서 있었다. 총구는 정확히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아, 혹시 그 교복 코스프레야? 학생이면 조금 곤란한거든. 몇 살?”

이제서 나는 우리의 ‘적’을 두 가까이   있었다. 짙은 남색의 후드자켓과 검은색의 바지, 운동화는 내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헐어있었다. 그녀에게서 가장 큰 특징을 찾자면 왼팔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많던 나의 언니, 오빠들이 저 왼팔없는 여자에게 모조리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20살이라.”


어느 새 그녀가 나의 코트주머니에서 학생증을 꺼내 보고 있었다. 고등학교가 멀쩡히 있던 때 가지고 다니던 학생증이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그저 나이만 알려줄 뿐이었다.

“딱 내가 이딴 세상을 맞이했던 나이네. 기억난다. 팔이 사라지고 개고생한거. 이야, 그 때 참 많이도 달려들었지.  하나 따먹겠다고 몇명이나 쳐들어오던지. 모조리 죽이긴 했는데 마지막 남자는 마음에 들어서 역으로 따먹고 죽여버렸어. 아, 너 아다냐? 아니면 후다?”

나는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말들로 여자는 혼자서 말했다.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내가 대답이 없으니 혼자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단지 웃고 있는 것 뿐인데 몸이 떨릴 정도의 소름과 두려움이 다가왔다. 이제 알겠다. 우리는 호랑이를 상대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기지도 못할 괴물과 싸운 것이었다.


“표정보니까 아다네. 비록 내가 여자라  경험이 레즈가  수 있긴 한데 너만 괜찮으면 쩔어주는 경험을 시켜줄 수 있어. 이제 갓 20살이 되기도 했는데 아다인 상태로 뒤지면  쪽팔리잖아.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안 그래?”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나의 학생증이 들여 있어 총구가 나에게로 향해 있지 않았다. 순간이겠지만 도망칠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긴 것이다. 머리로는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짜고 있었다. 정작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리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소리치는데 듣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사이 나의 학생증은 바닥에 버려졌고 그녀의 손에는 총 대신 커다란 칼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재미없는 년.”


그 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의 머리로 큰 충격이 가해졌다. 의식이  멀리, 떠나가버렸다.





“쿨럭.”


눈앞의 남자는 내가  총알에 배를 뚫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때 본 그의 표정은 일품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되는 반전때문에 절망으로 변해버린 그 표정이 너무나도 보기가 좋았다. 이대로 얼굴만 잘라내 보관하고 싶었다.


“어떻게?”


자신의 배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구멍을 막으며 물었다. 그는 내가 제시한 문제에 대한 풀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를 방에 가두고  독하다는 최루가스를 퍼트려 내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계획이었던 듯 했다. 나는 그 점에서 칭찬을 주고 싶었다.


만약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면 조금이나마라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거기다 최루가스는 마비까지는 아니어도 숨쉬는 것을 막아버리니까 좋은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내가 그 가스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면역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치도 않았다. 그게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중학생이 된 14살,  때 아빠새끼는 어디선가 최루가스들을 구해왔고 나를 방에 가둔 채 가스를 채워넣었었다. 당시 눈이 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숨을 개판으로 쉰 나머지 깨질 것 같았던 머리와 내장도 토해낼것 같았던 구토였다. 매일 10분, 내가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준다는 목적으로 길게 잡으면 1시간도 갇혀있었다. 그걸 한달간 반복했었다. 덕분에 나중에 가서는 최루가스 속에서 숨을 쉬어도 버틸 수 있었다.


“어떻게긴. 이게 경험차이라는 거야. 실력이기도 하고. 개새끼야.”


“웃기지마!”

그는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총을 들고 나를 쏴버리려 했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발로 걷어차버렸다.

“난 웃긴데? 야, 솔직히 너 지금까지 죽여봐야 몇 명이나 죽여봤어? 수십? 수백? 있잖아, 이 누나는 지금까지 4년이나 사회에서 사람을 죽이고 다녔고 2년동안 망해버린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어. 니새끼가 겨우 꼬꼬마 동산을 만들  난 나라를 세운거지. 꼬마새끼야.”

“살인자 새끼.”

“맞아. 난 사람죽이는 게 정말 좋거든. 왜? 칼로 쑤시면서 변하는 그 표정을 제대로 본 적 있어? 재밌어. 겨우 곤충이나 동물따위 죽이는 것보다 엄청. 그래서 살인자라는  부정 안 해. 마지막 말 고맙다. 시발아.”

대화를 끝마쳐가며 등에 메고있던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상처가 난 복부부위를 발로 강하게 눌렀다. 남자는 고통에  표정으로 채워져갔다. 좀  다양한 표정을 보고 싶어서 밟았다 떼어보거나 걷어 차보기도 했다. 그의 표정이 새롭게 바뀔 때마다 나는 흥분되었다.


“아무튼 즐거웠어. 역시 가끔씩은 이렇게 죽여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니까.”

“미친년.”“뭐래, 욕도 게걸스럽게 하네.”

나이프를 높이 들고 그의 목을 힘껏 내려쳤다. 붉은색의 꽃 한송이가 피어올랐다. 오늘 갈아입은 새 옷은 벌써 반이나 얼룩졌지만 원래의 색 때문에 그렇게 크게 티는 나지 않았다. 공돌이의 선택을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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