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Pride (Good Night, Shara) - 6 (8/72)



〈 8화 〉Pride (Good Night, Shara) - 6

“아, 이제 출발하는 겐가?”

준비를 끝내고 이제 막 섹터를 나서려고 바리게이트를 지나려던 때 미리 기다리고 있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열은 보이지 않았다.


“배웅이라도 해주려고?”

노인을 보며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말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어제의 일 때문인지 조금 그의 표정에 경련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후자쪽일 것이다.

“사람을 한명 더 붙여줄까 하는데, 어떤가?”


그럼에도 노인은 억지로 자상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사람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확실히 사람이 더 있으면 그것대로 좋기는 했지만 거절했다.

“난 사람을 잘 챙기는 타입이 아니거든. 여자친구 빼고.”

“그렇겠군.”


나의 말에 동의를 하며 고개까지 끄덕이는 그였다.

“태영씨, 잘 도와드려.”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아가씨도 조심하고.”


사라한테만큼은 노인의 표정이 풀려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바리게이트를 넘어 섹터를 벗어났다. 그 뒤 우리는 계속 걸어야 했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황폐한 땅들과 나무들. 중간마다 폐가들도 있었는데 뼈만 남은 사람처럼 속을 다보이고 있거나 완전히 무너진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데 소모된 시간은 한강의 기적보다도 한참이나 짧았다.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 2년 만에 이렇게 변해버린것이다.

그 속에서도 ‘사건’이 시작점이었지만 이후의 일들은 크립톤들이 크게 한 몫들을 하셨다. 오로지 ‘사건’만 나타났었다면 지금쯤 복구할 수 있는 상태였겠지만 크립톤들 때문에 복구는 커녕 하락세를 걷다가 이 꼴이 난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것들이 사람들을 습격하고 먹어치웠으며 군대와 전쟁에서도 그 괴물놈들이 승리했다. 다른 나라들의 상태는 모르겠다만. 더 이상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황폐해진 땅 위에는 폐건물들뿐이 아닌 썩어버린 시체들이나 밤새 허기가 끝까지 몰린 크립톤에게 당하기라도 했는지 동물시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크립톤들은 평소에는 동물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크게 허기가지면 사람대신 동물들을 습격하기도 했다. 먹을게 없어 대신 배를 채우는 행위였다. 사람이 곤충을 먹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런 경우가 흔치 않아서 지금까지 고라니나 개,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자유롭게 번식해올 수 있었다. 최근에 사람의 숫자가 감소하기도 했으니 이제는 개나 고양이의 숫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몇몇 동물의 멸종을 걱정하던 우리가 반대로 인류의 멸종을 걱정하게 되는 입장이었다.

잠깐,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엔?”

사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동물들의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자, 보통 크립톤들이 먹는다면 살점을 파먹거나 어딘가 부위를 뜯어 쳐먹는게 보통이다. 맹수새끼들이 쳐먹듯이. 그런데 여기 시체들은 살점이 파인 흔적이 없었고 마치 피가 모두 빨려서 뒤진 것 같았다.

“무슨  있어?”

갑자기 멈춘 나 때문에 태영도 물어왔다. 그러게.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 더 그림들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얘기하고 생각해봤자 지금은 골치만 아파질 뿐이라 말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시발! 역시 차를 빼앗든가 해서라도 타고 왔어야 했어!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는건데?!”


나의 짜증이 쌓이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중간마다 찔러오는 시체들의 썩은 내와 보이는 것이라고는 넓고 넓은 황폐해진 배경뿐인 이곳은 최악중의 최악이었다. 서울은 적어도 익숙한 사람냄새와 여러 남아있는 건물들이 있어 길을 가다가도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은지루함 그 자체였다. 나의 손을 잡고 있는 사라나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태영과 대화를 하면서 걸으면 조금은 시간에서 생각을 멀리할 수 있었겠지만 아까부터 사라나 태영이나 그냥 아무말이 없었다.


“이제 반쯤 걸었어.”


섹터로부터 떠나온 후 처음으로 그가 시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서야!


“쉬다가 갈까?”


그가 제안했다.

“사라, 다리는?”

“난 괜찮아. 엔은 어때?”


“네가 괜찮은 거면 난 아직 멀쩡해.”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다고는 할  없었다. 역시 아침을 거른 것 때문인지 벌써부터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가능만하다면 당장 땅 위에 누워있는 시체라도 육회삼아 쳐먹을까 싶었지만 전부 다 썩은 것들뿐이라 그것도 불가능했다.

“대신 존나게 지루한 게 문제지. 야, 공돌이, 뭔가 재밌는 얘기라도 없어?”


“이제는 그렇게 부르는거야?”


“사실이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 얘기라......군대썰이라도 풀어줄까?”

“당장 칼에 썰리고 싶냐?”


그가 군인인  만 해도 답답한데 자기가 보냈던 군생활 얘기까지 꺼낸다면 미쳐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미치길 원하는 것인지 이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내가 리더의 섹터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임무가 있었어. 작전명은 모르지만 크립톤들을 제거하면서 그것들의 본거지랑 은신처를 찾는게 목적인 작전이었어. 정비병이었던 나도 출동을 했고. 실탄을 끼운 총을 메고  친구가 운전하는 5톤 트럭에 타고 이동했어. 각 중대마다 맡은 구역들이 있었는데 내가 맡은 구역이 가장 밑 지역이었지.”

“바보같은 작전이네.  괴물놈들의 본거지랑 은신처를 찾을 생각을 하고 말이야.”

크립톤들의 본거지나 은신처는 찾는다면 찾을 수는 있었다. 그것들이 세상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는  수 없어도 세상 어디에 머무르는지는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나는 한 번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더더욱 위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찾아내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바보중의 바보들이 하는 짓거리였다. 실제로 태영말고도  측에서 여러번 공격을 감행했었지만 대부분이 개죽음을 당했다. 설령 그 행동들이 낮에 이루어졌더라도 말이다. 본거지가 괜히 본거지인게 아니란 소리다.

“그 때 우리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결말이 본거지로 우당탕탕 쳐들어갔다가 역으로 당해서 다 죽었다?”

아무리 총으로 무장한 군부대라도 그 많은 크립톤들과 크립러스트들을 상대하는데 있어서는 많이 버거울 것이다. 제대로 달려들면 사람을 몇 십 명이고 죽여대고 쳐먹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런 뻔한 엔딩은 아니였어.”

“아? 그럼 뭔데?”

“나도 몰라. 그 때 당시 아침만 해도 끼지 않았던 안개가 급격히 끼더니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어. 그것도갑자기.”

“얘기만 들어도 기분 나쁜 안개일  같아요.”

사라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생색을 내던 나도 어느 순간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안개 때문에 우리중대원들 모두 잠시 멈췄어. 작전실행이 불가능할 정도였거든. 그런데 그게 큰 실수가 되었어. 멈추자마자 알  없는 무언가에게 습격당했거든.”


“사람?”


낮이라면 해가 떠있든 져있든 크립톤들은 모두 자장가나 듣고 잠에 드는 시간이었고 크립러스트가 깨어있다 해도 본거지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나오지 않는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사람뿐이지만 그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작전 당시라면 아직 군부대가 활발히 활동하던 때라 민간인이 함부로 군인들을습격할 이유가 없었고 힘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라는 단어가 어울리도록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람은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크립톤들도 아니었어.”

“그럼 뭐야? 동물새끼야?”


“그건 모르지. 다만 크립톤은 아니었어. 그건 확실해.”


크립톤이 아닌 다른 무언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슨 방사능 같은 것에 오염된 괴물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느 원자력 발전소도 터지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습격을 당하고 대부분이 죽었어. 그나마 살아남은 군인들은 모두 흩어져버렸어. 안개 때문에 모두 어디로 흩어져 버린 것인지는 알 수도 없었고.”

“모두 다 사라지신 건가요?”

“어, 모두.그리고 난 걔네들을 찾고 있는 것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어. 그게 내가 여기에 머무르는 이유야.”

그는 어제 노인 때문에 미처 답하지 못했던 이유를 지금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반응을 했고 사라는 몰입된 나머지 안됐다는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거나, 연인을 잃는다. 예전에는 쉽사리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건’이후에는 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족, 친구, 연인, 모두 없던 나의 입장에서는 잃는다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러마처럼 슬플 거라는 것은 머리로라도 알고 있었다.

안개. 나는 그것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습격. 무엇일까. 서울도 이따금씩 안개가 끼긴 했지만 그 속에서 걸어 다니면서 습격을 당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냥 안개일 뿐이었으니까. 아니면 ‘안개’에 내가신경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이곳에서 안개를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사라는 아예 시야가 없는데 안개로 나마저 시야가 좁아져버린다면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얘기가 끝마쳐질 때  우리는 작은 마을 같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유리들이 깨지고 벽들이 무너진 폐건물들이 줄을 서고 서울처럼 여기저기가 갈라진 아스팔트가 인류 최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식물이라도 조금 자라고 있었다면 좀 볼만했겠지만 어디선가날아 들어오는 쟂빛의 모래들만이 조금씩 쌓여있을 뿐이었다. 밟을 때마다 부드러우면서 푹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라에게 걸음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작은 마을 같지만 있을 것은 있던  같은 마음이었다. 서울에서 여기저기 전전근근하던 PC방이나, 노래방, 주점의 간판들이 보였고 중형정도 크기의 마트도 하나 있었으며 편의점과 모텔도하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유흥소들은 대부분 나의 재작년 기억들과 연관이 있었다. 의뢰나 일이 들어오면 사람을죽이고 조직이나 다른 살인청부업자가 시비를 걸어오면 역으로 죽인 뒤 묻어버리거나 성적으로 쳐먹고 모두 묻어버렸다. 혹여나 경찰들이 냄새를 맡아 쫓아온다 싶으면 PC방에서 진을 치거나 노래방에서 서빙이나 청소 알바로 위장을 하고 밤이 되면 모텔에서 옷을 벗는 일로 숨어 다녔었다.

“여기 근처에 옷가게가 있는데 들리겠어? 너도  오래입은  같은데.”

“아?”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내려 나의 옷상태를 보았다. 찢어진 곳은 없었지만 실밥이 튀어나오고 구겨지거나 굳은 핏자국들 때문에 여기저기 얼룩진 곳이 많았다. 바지는 애초에 검은색이라 괜찮았지만 남색의 후드자켓이 문제였다. 대략 4개월 동안 입고 굴렀으니 그럴만도 했다. 새로 장만할 때가 되긴 했나보다.

“옷가게라 해놓고 먼지 가득한 시장에 데려다주는  아니겠지?  아줌마가 아니거든.”

“거길 가도 지금 네가 입고 옷보다는 멀쩡한 게 많을걸?”

“멀쩡하면 뭐해? 죄다 나이들어 보이게 하는데. 난 아직 팔팔한 처녀야! 아, 처녀는 오래전부터 아니었지. 아무튼 그래.”

“그럼 갈거지?”

“물론. 안내해.”


잠시 시간을 내어 옷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사라는 이미 이쁘장하게 차려입었으니 필요없었고 이번에는 나의 옷 쇼핑이 시작되었다. 그래봐야 늘 비슷한 걸 사기때문에 다른 여자들처럼 오래 걸리거나 하지 않았다. 색 관계없이 후드자켓, 그리고 청바지. 이것들이 전부였다. 문명이 멀쩡했을 때도 항상 후드자켓을 입었었고 가끔 변덕이 들면 코트나 스웨터를 입었다. 주점노래방이나 모텔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거고.

그를 따라 찾아간 옷가게는 유리창은 물론이고 벽들이 죄다 뜯어져 있었다. 옷을 입으면 부러운 몸매를 자랑하던 마네킹들은 시체마냥 허리부분이 잘려있거나 부서진 벽 잔해에 깔려있었다. 만약 진짜 사람들이었다면 새빨간 웅덩이가 생겨나고 여기저기에 장기들이 흩뿌려졌겠지. 나로서는 꽤나 볼만한 광경이었을 테고.

옷가게의 안은 여기저기에 옷들이 걸려있었지만 모두 찢어지거나 먼지가 쌓여져 방치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빈 공간이 있는 것을 보니 벌써 여길 들려간 사람들도 있는 듯 했다.


사라를 잠시 카운터  의자에 앉히고 남아있는 옷들을 꺼내보면서 내가 원하는 후드자켓을 찾기 시작했다. 태영은 창고에 남아있는 것이 있는지 보겠다면 불이 켜지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나마 멀쩡한 하얀색의 후드자켓을 꺼내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몸에 맞춰보았다.

“사라, 나 예뻐?”


“응, 예뻐.”

사라는 고개만을 나에게 향하여 미소와 함께 답해주었다. 옷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초점 없는 눈동자. 그녀의 대답은 내 질문에 대한 예의적인 대답일 것이다.


“어떻게 예뻐?”

조금 칙칙했던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보이지도 않는 사라의 앞에서 옷을 들고 나랑은 절대 어울린다고 할 수 없는 상업용 포즈로  보았다. 고민하면서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의외로 자연스럽게 답해주었다.

“엔은 목소리만큼이나 어떤 옷을 입어도 예뻐.”


“지랄.”

일부러 신경이라도 날카롭게  듯 말했지만 조금 기뻤다. 처음으로 제대로  답을 들은 것이니까. 지금까지 입은 것이라고는 후드자켓 뿐이었고 몸으로 돈을   들었던 소리들은 모두 회유하고자 말한 썩은 대답들이었으니까. 아마 그들이 말한 ‘예쁘다’는 옷이 아닌 내 몸에게 한 소리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몸이 아닌 나 자신을 칭찬해주었다. 비록 그녀는 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뻤다.


“이건 어때?”


마침 태영이 창고에서 비닐에 씌인옷을 하나 꺼내들고 나왔다. 그의 손에 있는 것은 베이지색의 가을용 코트였다.


“도로 가져다 놔. 저번에 코트입었다가 바람 때문에 더럽게 불편했어. 팔 하나에 옷이 제한이 걸린다는 걸 그 때 알았지. 왜 시발 장애인을 위한 옷은 없는거야?”


“기본적으로 옷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만드니까.”

“돈을 벌 줄 모르네. 그러니까 이 나라가 발전이 없었지. 어째보면  함께 손잡고 멸망한  다행이야.”


“옷가지고 너무 민감한 거 아니야?”

“옷은 의식주에서 ‘의’야. ‘가지고’라는 말따위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금씩 아무말 대잔치로 가다가 나의 억지승리에 태영이 도로 옷을 가져다 놓았다. 다시 옷쇼핑이 시작되었고 잠시 뒤 그가 다른 옷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것보다 더 짙은 남색의 후드자켓이었다.


“그럼 이게 좋아?”


“어머. 자기, 그거야 그거. 처음부터 내오란 말이야!”

“어두운 색이 취향이야?”


“개인적으로 내 성격과 삶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


그에게서 뺏어가듯 옷을 채가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졌다. 이제 다시 입을 필요가 없는 옷이라 더 더러워지든 먼지가 묻든 내 알바가 아니었다. 바로 새 옷을 나만의 입는 노하우로 빠르고 자연스럽게 입었다. 사이즈는  정당했고 팔은 조금 길긴 했지만 손을 완전히 덮는데 아니라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색은 기존의 남색보다  짙어서 피가 묻었고 얼룩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지퍼를 올리고 쇼핑과 옷입기를 마쳤다.

“그럼 다시 존나게 걸어볼까.”

사라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으킨  옷가게를 나왔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가게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들을 발로 차버리며 길을 만들었다. 좁지만 사라를 위한 안전한 길이었다. 바로 뒤로 태영이 뒤따라 걸어오며 다시 가던 길을 이어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를 작은 마을을 벗어나 논밭같은 곳 사이로 쭉 뻗어진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정말 지루한 풍경, 만약 나에게 방법만 있다면 사라의 눈을 고쳐서 앞이 보이게   이 풍경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사라는 ‘사건’이 일어난 뒤의 변해버린 풍경을 알지 못했다. 대강 상상만으로 알고 있겠지. 그런 그녀가 이 풍경들을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슬퍼할까? 아니면 나처럼 기뻐하다가 지루해할까.

결국 계속 걸어가다가 고픈 배를이기지 못하고 내가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제안했다. 태영도 어차피 근처가지 다 왔으니 좋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있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고 나는 사라의 손을 잡고 주변의 밭으로 들어갔다. 동물과 크립톤들 다음으로 개체수가 많아진 곤충들이 여기저기에 보호색을 띄면서 숨어있었다.


“잠시만 있어봐.”


사라를 잠시  시야가 보이는 곳에 세워두고 나는 빠른 손으로 숨박꼭질을 하는 메뚜기들을  마리 한 마리 잡았다. 이번 후드자켓의 장점이 또 하나 드러났는데 주머니에 지퍼가 있어 메뚜기를 잡아 집어넣으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둘 수 있었다. 덕분에 다른 담을 것 없이 대략 17마리정도를 잡아넣을 수 있었고 못 먹은 아침을 대신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메뚜기는 고단백질 식품이니까.

매일매일 먹을 것을 구하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한강 주변이나 산 근처로 가서 먹을 수 있는 곤충들을 잡거나 개나 고양이들을 총으로 쏴서 사냥하기도 했었다. 먹는데 있어서 거부감? 그딴건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생물이란 생물들은 식량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길러졌으니까.


돌아가기 위해 바로 사라의 손을 잡고 돌아가려던 때 나는 멈추고 잠시 그녀를 위해 기다려주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을 감은 그녀는 지금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쌀쌀하기는 해도 이제는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에 들을  했다.


흔들리는 베이지색의 머리카락, 그에 따라 흔들리는 원피스 자락. 하나의 그림 같았다. 그림 따위에 관심없는 나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사라가 눈을 떳다. 그리고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생각이 들었길래, 어떤 것을 느꼈길래 저런 미소가 나왔을까. 알지 못한 채 사라의 손을 잡았다.


“가자, 사라.”

“응, 엔.”

그대로 태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라를 먼저 앉히고 나도 옆에 따라 앉은 뒤 주머니의 지퍼를 열어 메뚜기들을 꺼내 쿠크리나이프로 머리들을 떼어버렸다.

“먹으려고?”

“한 마리 먹어볼래? 정력에도 좋아. 아마도.”

방금 머리가 잘려나가 몸만 움직이는 몸통 하나를 들어 그에게 권유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태영이었다. 사라를 궁금해 하고 있었지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들고있던 메뚜기의 몸둥아리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튀김옷을 씹는 듯 한 몸통은 그야말로 최악. 당장 사라가 요리를 하고 망친 것이  맛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익숙한 식감과 익숙한 맛이라 거부감은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태영이 반은 신기해하고 반은 거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17개의 마리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바닥에는 먹다가 잘 넘어가지 않아 뱉어놓은 다리들이 수두룩했다.


“다시 출발하자. 얼른 챙기고 얼른 뜨자고. 나도 귀찮은건 싫으니까.”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 잠시 뒤, 태영이 말했던 근처를 정말로 근처였다. 불과 5분도 걷지 않아그가 말한 군부대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군부대의 입구는 넓직한 사거리였는데 반은 공사를 하던 구역이었다. 이제는 멈춰버린 공사현장이지만 말이다. 여기에서도 꽤나치열했었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우리 앞으로 버려진 여러대의 전투차량들과 트럭들이 길을 막고 있었고 그 뒤로는 버스 한대가 큼지막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쓰레기더미들이 동산을 이루고 아스팔트 위에는 찢어진 옷들과 끊어진 녹색의 허리띠들, 피가 묻어서 굴러다니는 방탄헬멧과 녹이 슨 고장난 총들, 물통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길 오른쪽에는 간판에 ‘돈가스’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무너져 내린 식당과 총알이 오가는 곳이었을 텐데 의외로 멀쩡한 주유소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유소는 식당의 바로 옆에 붙어있지는 않았고 살짝 떨어져 있었다. 왼쪽에는 왠지 알  같은 벽들과 옆구리들이 터진 모래주머니들이 쌓여 허름함을 보였다.

“재작년쯤에 임시로 만든 진지야. 밤에 크립톤을 견제하기 위해서만든건데 나도 저기에 들어갔었어. 원래는 지붕도 있었어.”


“용케도 살아남았네. 근데 저거 어쩌다 저렇게 된거야? 크립톤들이 직접 파먹으면서 철거했어?”


“그랬다면 ‘그 동안 애썼다.’하면서 보내줬겠지. 장비를 점검하다가 포병애들이 날려먹었어. 자기들 말들로는 실수였다고 하는데 아무도 믿을 생각이 없었어. 저 안에 애들도 있었거든.”


“그때까지도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지? 주변에 시체들이 널릴 거라는거.”


“그렇지. 모두 갓 대학생들 뿐이었으니까.”

나이대로 보면 태영역시 대학생이었다. 나는 대학교는 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대학생이라는 말에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여담으로 사라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다. 이제 모두 의미가 없어져버렸지만 말이다.

“엔.”

“왜?”


이제 돈가스집 건물을 지나 빠르게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 사라가 나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멈춰 세웠다. 미약한 힘이기는 했지만 순간 나를 멈추게  수 있었다. 옆에서 걷던 태영도 따라 멈추었다.

“발소리가 들려.”


“그야 우리가 걷고 있으니까 들리는 거 아니겠어?”

태영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며 사라가장난이라도 치는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난 빠르게  사거리를 크게, 자세히 둘러보았다. 일단 뒤는 아니었다. 뒤였다면 내가 이미 눈치챘을 것이고 지금보다 전부터 사라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변에 있다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시야에 집중하면서  역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어떤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다 저 멀리 버스의 부서진 창문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고 그 즉시 태영을 발로 차 트럭쪽으로 보냄과 동시에 사라를 안고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려 부서진 전투차량 뒤로 숨었다. 몸이 잠깐이나마 공중에 뜬 순간, 우리와 태영의 사리를 빠르게 회전하는 총알 하나가 지나갔다. 나의 귀로 커다란 소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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