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Pride (Good Night, Shara) - 3
정비고로 이동을 하면서 이 섹터의 도심을 둘러보았다. 다른 섹터처럼 곳곳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개조한 폐건물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가 비슷한 곳도 있는가 하면 종교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교회까지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추가로 몇몇 건물에는 대피소라는 팻말과 함께 지하 쪽으로 내려가는 듯 한 계단들이 보였다. 만에 하나 크립톤들이 벽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왔을 시에 대피를 하려고 만든 곳으로 보였다.
전체적으로 이 섹터는 그저 생존자들이 모여 만든 곳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시이지 기지로 느껴졌다. 지금까지 둘러본 그 어떤 섹터들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고 사회구조가 있으며 많이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심할 수 없었다. 평화? 좋다고 치자. 그런데 이곳은 그 정도가 심했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그 어떤 사람들도 긴장하는 기색은 커녕 이곳에 크립톤들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듯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평화는 없다. 반드시 평화로운 곳에는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아빠새끼가 말했던 공식, 평화와 전쟁의 위험도는 비례한다는 것. 평화가 길게 유지될수록 다가올 전쟁을 커진다는 공식이었다. 도대체 이곳은 얼마나 이딴식으로 살아온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죽하면 경비원이라는 사람이 졸린 눈을 하고 있었을까.
‘사건’역시 공식에 따른 것과 다름없었다. 옛 시대가 지내고 몇 십 년 동안 평화를 만끽했던 세상에 ‘사건’이라는 폭탄이 떨어졌으니까. ‘사건’은 한 순간에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 때 나는 잠깐이나마 경찰과의 씨름을 피하기 위해 서울 구석탱이 모텔에서 조용히 몸을 팔며 돈을 받거나 간단한 도둑질이나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며 활동을 쉬고 있던 때였다. 당시 경찰은 내가 누군지조차 알아내지 못했기에 꽤나 편하게 돈을 벌면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러던 봄 날 오후, 손님과 섹스를 한 번하고 심심해서 놀러가던 도중 ‘사건’이 터졌고 그 탓에 나의 왼 팔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혼란해했고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난 적응이 빨랐다. 아빠새끼가 그렇게 키운 덕분이었다. 아, 구역질 올라오네. 그리고 도착했다.
“다 왔어. 사라.”
“그래? 정비고는 어때?”
“음......”
사라는 나와 다니고 나서 어딘가에 도착하면, 우리가 머무르게 될 건물 같은 것에 있어서는 어떤 모습인지를 물어봐왔다. 머릿속으로나마 상상하고 새겨두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는 정비고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작은 시골의 카센터도 이정도는 아닐 것 같을 정도라 알맞는 단어를 찾아야 했다.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기이전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나도 않았다. 비가 오면 무너질 것 같은 지붕에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벽. 분명 콘크리트 벽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우리 삼촌의 카센터에 대해 말해줬었나?”
“처음 듣는 얘기야. 왜? 비슷해?”
“아니, 더 심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삼촌의 중고 차 판매점만 해도 시대에 뒤쳐지는 정치인처럼 낡고 문제가 많았었다. 그런데 그곳보다 더 안 좋은 것이다. 이건 시대에 뒤쳐지는 게 아닌, 그냥 시대라는 단어만도 못할 정도였다. 옆에 있는 폐건물이 더 세련되어 보일 정도였다. 물론 지금 세상이 망했기는 했다. 하지만 이 섹터 안에는 이 정비고보다 안 좋은 상태의 건물들은 없었다.
정비고 안에는 우리의 차가 앞 뚜껑이 열린 채 주차되어 있었다. 주인없이 헐어진 개집 안에 들어간 똥개같았다.
“엔?”
“어쨋든 설명을 듣지 않는게 더 나을 거야. 사실은 내가 설명해주기 싫은 거지만.”
“피.......”
어린아이 같이 삐진 표정을 하는 사라를 데리고 우리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차는 앞 뚜껑이 열린 채 사람의 배 속을 열어놓은 듯 안을 처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가 고장이 난 것인지는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정상이 아니고 반 병신상태가 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정비고 안은 밖에서 예상한 모습과 얼추 비슷했지만 의외로 여러 종류의 공구란 공구들은 모두 보였고 정리도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구의 상태 하나하나가 깔끔했다. 관리를 잘한 것이다. 여러 개의 선반들에는 층마다 공구의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것들 중 하나를 들어보았다. 은색의 스패너에 내 얼굴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의 표정도 비춰졌다.
“음, 힘은 있어보이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네.”
“......”
“뭐야? 외팔이와 시각장애인에 이어 벙어리까지 나타난 건 아니겠지?”
“엔, 누가 오신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야! 정비사 맞겠지? 뭔 말이라도 해보지 그래? 입닥치고 있다고 꼴리진 않으니까.”
남자는 나와 사라를 몇 번 번갈아보더니 차량의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몇몇개를 만지다가 우리를 손가락으로 불렀다. 당장 그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사라가 말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꾹 참고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었다.
“벙어리라면 벙어리라고 고개라도 끄덕여. 군인이라서 간지라도 챙기겠다는 거야? 미안한데 나 군인 졸라 싫어하거든!”
“그래도 정비사는 필요하잖아.”
그에게 다가가고 사라가 다시 표정을 찌푸릴 때 쯤 입을 열었다. 생긴것과는 다르게 가는 목소리였다. 딱 굵은 것과 가는 것의 중간정도. 모델처럼 차 위에 한 손을 올리고서 있는 모습이 잡지의 표지에 어울릴 것 같았다. 출판해줄 잡지사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듣기는 들었는데 정말 성격이 험한 것 같네.”
“알면 잘 모셔. 사라, 미리 말하지만 난 지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어.”
“그냥 비켜줘, 내가 잘 얘기할게.”
정비사가 차에서 내려오고 사라는 나를 비켜 세우며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그녀가 남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허리까지 굽혀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을 정말로 예의가 베여이었고 기품도 있어보였다. 그렇지만 2% 부족한 것은 여전했다. 그녀는 정비사가 아닌 차에게 허리를 굽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가 나에게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이상한 여자로 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군인이라도 젊으니까 눈치는 있겠지? 어떤 늙다리들과는 다르게.”
“아, 여기가 아닌거야? 죄송해요! 제가 눈이 안 보여서요.”
사라는 오른쪽으로 돌고서 다시 사과했다. 정말 안타깝지만 이번역시 꽝이었다.
“나야, 사라.”
“아,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답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틀렸다면 내 뒤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이 한계가 되면 작은 햄스터처럼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그녀였으니.
“그,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신세를 지게 되었어요. 자동차도 잘 부탁드립니다.”
“음.”
정비사는 준영처럼 정말 안보이는지 시험따윈 하지 않았다. 인사를 받고 그대로 몸을 돌려 우리 차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전문용어들을 써가면서 설명을 해주는 친절함을 보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한 마디도 알아먹지 못했다.
사라는 어찌어찌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난 중간에 이해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인터넷 신조어보다도 알아먹기 힘들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하품으로 남은 것들마저 전부 뱉어내 버렸다. 질리다 못한 내가 그의 말을 잘라버리고 내 멋대로 요약을 해버리기까지 했다.
“뭐가됐든 이 차는 이제 병신불구라는 거지? 폐차할거면 나 시켜줘. 삼촌이라고 생각하면서 줘 패버리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고칠 수는 있어. 오래 걸릴 뿐이지.”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4일?”
4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에 짜증이 솟구쳤다. 이런 곳에 4일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게. 그래도 지낼 곳은 보장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벌써 ‘리더’라는 노인을 쏴죽이고 어떻게든 차를 구해 사라와 달아나 버렸을 것이다.
정비사는 차의 앞 뚜껑을 닫고 우리를 보며 말했다.
“우선 내일 나와 함께 가줘야 할 것 같아. 그 정도는 괜찮지?”
“목적부터 말해야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판단할 거 아냐. 어디로, 왜.”
“부품이 모자라. 그래서 근처에 있는 군부대로 갈거야. 여기서 1시간쯤 걸어서.”
1시간동안이나 걸어야 한다는 것에 벌써 속이 쓰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라를 만나기 전까지 오질나게 걸어다녀야 했는데 여기서도 걸으랜다. 차라리 총으로 내 다리를 쏘고 말지. 이것에 사라역시 동의할 것이다. 거기다가 군부대라니. 당장 군인만 해도 답답한데 그곳까지 갔다가는 답답한 나머지 폐가 찢어질 것이다. 분명히!
“그러면 내일 출발하는 건가요?”
“어.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오지 않아도 돼.”
“아니, 사라도 갈 거야.”
정비사가 나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나도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이 공기를 사라는 알지 못했다.
“이 여자, 사라는 여기에 있는게 안전해.”
“어쩌라고. 내 여친이니까 신경끄시지?”
“위험 속에 내몰셈이야?”
“적어도 여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사라를 혼자 내버려둔다. 그녀와 나만이 있는 공간이고 숨길 곳이 있다면 괜찮았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섹터였고 그들의 눈에서 피할 수 있는 곳도 있지 않았다. 언제라도 사라를 탐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직 밝히지도 못한 이곳의 위험성 역시 이유에 한 몫 했다. 하지만 이런 내가 못마땅하게만 보이는 것인지 남자가 내 얼굴가까이 다가오며 조금 화를 냈다.
“여기는 안전해. 섹터 밖보다는.”
“군인이랍시고 귀에다가 총알이라도 박아 넣었어? 내 여친이야. 내가 판단해.”
“그만!”
그와 나의 갈들이 원수진 사이처럼 번지기 시작했을 때 사라가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렸다. 말리는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소리로 판단해야 했기에 늦은 것은 아니었다.
“저도 갈게요. 저도 엔과 같이 신세를 지는 입장이니까 저도 도울게요.”
“아니, 바깥은 위험하다니까. 특히 당신이니까 스스로 잘 알잖아.”
“괜찮아요. 엔을 믿어요.”
그의 경고에 나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대신했다. 덕분에 난 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라가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음에도 정비사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납득해야 했다. 이게 우리였으니까.
“하......알았어. 대신에 정말 난 어떻게 되든 책임 못 져.”
“누가 책임져달래? 한 이불 덮고 잔 것도 아니면서.”
난 사라와 한 이불 덮고 잤었다. 남자의 표정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지만 사라를 보더니 한숨만 쉬고는 참아내었다. 그리고는 짜증스러운 기색 그대로 나에게 다시 따라오라는 손가락질을 했다. 이번에도 저 손가락을 잘라버릴까 했지만 사라의 손을 잡는 것을 대신으로 참으며 뒤를 따랐다.
그가 안내해준 곳은 정비고 바로 옆의 작은 폐건물이었다. 2층의 주택이었는데 2층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붕이 뜯어져 있어서 멀쩡히 쓸 수 있는 것은 1층뿐이었다. 그 1층으로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폐건물이라는 외관과 달리 안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사람이 지낸다는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방마다 천장에 달려있는 전구들과 거실에는 벽난로를 대신하는 작은 드럼통과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 소파,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TV하나가 선반에 올려져 있고 그 옆에는 라디오가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다가 화장실까지. 제일 먼저 사라와 화장실부터 이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지낼만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정비사의 집이었지만 그래도 숨길 수 없는 것은 있었다. 지금의 세상을 알려주는 먼지덩어리가 부분부분 묻어있는 콘크리트 벽이었다. 벽지는 다 뜯기거나 헤져있었고 중간마다 철근을 드러내는 곳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꾸미든, 어떻게 수리하든 이곳은 폐건물이었다.
“당신들은 여기서 자면 돼. 침대가 조금 작긴 해도 여자 2명이면 충분할거야.”
그가 한 방안에 있는 침대로 안내를 해주었다. 침대를 지탱하는 다리나 밑의 나무부분은 조금 부서져 이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다른 걸로 받치고 있었다. 이불과 침대시트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깨끗했다. 마치 세탁기를 돌려놓은 것처럼. 이곳에는 멀쩡한 세탁기도 있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사라의 손을 잡고 침대를 만지게 해주었다. 그 다음은 침대주변의 가구나 벽들을 짚어주고 잠시 혼자서 이 장소를 기억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걸 보고 있던 정비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꽤 오래 같이 지냈나 보네. 어떻게 해줘야 할 지 아는걸 보면.”
“오래 지내기는 했지. 서로 몸을 틀 정도로 말이야.”
“무슨 의미야?”“흥미있어? 돈 내. 얘기가 아니라 직접 보여줄 수도 있어.”
“됐어.”
우리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사라는 벽을 짚으며 나에게로 다가와 있었다. 한 손은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은 내 쪽으로 뻗으며. 그 손을 잡아주었다.
“기억했어?”
“응, 조금이지만 생각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
밝게 웃으며 말하는 사라. 이럴 때면 사라가 나보다 언니라는게 이상할 정도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봐, 화장실로 가자.”
“거실이나 다른 방도 아니고 화장실이 먼저야?”
“그래, 화장실.”
우리가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사라의 고개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분명 그 때의 일이 떠올라 부끄러운 것이겠지.
정비사는 순순히 화장실로 안내해주었다. 화장실은 침실 바로 옆에 있었다. 이번에도 아까와 같이 사라에게 먼저 이리저리 만지게 해주며 기억시켰고 변기의 위치를 강조한 뒤 스스로 기억하도록 잠시 내버려두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마다 변기 안 쪽으로 손이 갈 뻔했는데 빠르게 달려가 손목을 잡으며 말려야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외치는 나의 한 마디.
“거기는 아니라고, 멍청아!”
그러면 사라는 또 웃으며 답했다.
“미안해.”
그녀에게 화장실을 기억시켜주는 것은 꽤나 고난이도였다. 벌써부터 진땀이 빠지고 조금 피곤한 기색이 들 정도였다. 어차피 같이 다닐거고 4일만 지낼 곳인데 그냥 손을 잡고 데려가는게 나았나 싶었지만 이것도 사라 자신에게는 필요한 연습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관두었다.
“여기 화장실은 환풍구도 없어? 우리 삼촌 화장실이 더 낫겠네. 항상 쓰레기만 가득하던 곳이긴 했어도.”
“어쩌겠어. 밖도 저런데.”
일단 냄새가 심했다. 사라를 어떻게 저 안에서 오랫동안 버틴 것일까. 심지어는 화장실의 구조를 기억하기 위해 여기저기는 만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눈이 안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냄새도 맡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무척이나 인상을 쓰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냄새때문에 숨막히는 줄 알았어.”
“내일 방독면이라도 찾아볼까.”
“아마 없을걸.”
“무슨 군부대가 방독면 하나 없어? 이 나라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아, 형편없었지.”
“화장실에서 사용할 방독면이 없다고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남이사.”
나중에 사라의 손이나 씻겨야 할 듯 싶었다. 냄새나는 곳을 만지기까지 하면서 여기저기를 오갔으니 손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화장실의 안내가 끝나고 다음으로는 거실-다용도방-샤워실 순으로 소개를 받았다. 특히 샤워실 부분에서 사라가 무척이나 기뻐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샤워를 해본 적이 없어 몸이 많이 찝찝하던 참이었다.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일반 물탱크에 담아두는 물이었던지라 생각만큼 차갑지도 않았다. 거기다 지금 시기는 산타도 다녀가지 않는 시기니까 얼어죽을 일도 없었고.
아무튼 우리를 이곳에서 4일 정도는 머물게 되었다. 그래서 품안에 있는 권총을 굳세게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