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26화 (326/327)

326. 신 조선. (2)

"뭬야? 조선의 왕이 바뀌었다고?"

“네. 마마 안산성의 성주였던 충원왕이 한양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리 빨리? 어찌 한 달 만에 한양을 점령한 것이냐?"

만귀비는 어이가 없었다.

원종이 안산성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된 거 같은데, 한양을 점령했다고 하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북방에서 내려가는 척 병사들을 유인해서는 강을 통한 상륙작전을 했다고 합니다. 비어있는 한양을 쳤기에 제대로 된 싸움도 없이 끝이 났다고 합니다."

"어이가 없구나. 어이가 없어. 조서의 혼란을 위해 그리 작업을 했는데, 이리 금방 끝이 나다니.”

“마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마지막 때가 있사옵니다. 잡아둔 후왕을 풀어주시면 됩니다."

"오! 그래 후왕을 풀어줘서 조선으로 돌려보내면 되겠구나. 어서 그를 풀어줘 분란을 일으키게 하라!"

만귀비는 조선이 안정되어 간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잡고 있던 성종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포로로 잡고 있던 조선의 병사들 천여 명도 풀어주었는데, 성종이 이 병사들을 기반으로 세를 일으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식량과 얼마간의 무기까지 만귀비가 챙겨주었다.

***

“전하 저기가 요하이옵니다. 저기만 건너게 되면 조선이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옵소서."

성종이나 포로들도 명나라에 잡혀 있으면서 조선군이 요하까지 밀고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압록강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지. 명나라에서 받았던 그 치욕을 잊지 않아야 하네. 내 반드시 명나라를 쳐서 연경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야."

성종은 잡혀 있던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업신여겼던 동창의 태감들을 꼭 찾아내어 찢어 죽일 것이라 다짐했다.

요하에 이르렀지만, 강을 건너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는데, 강이 깊어 걸어서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불러 모은 조각배 20여 척으로 사람들을 옮겼는데, 그런 왕복하는 자신들을 보며 요하 변에 사는 이들이 구경을 나왔다.

"안산성의 성주는 누구인가? 조선의 국왕이 돌아왔다고 전하라!"

"에? 조선의 국왕 말입니까? 어디에 계신 겁니까?"

안산성 아래에 사는 조선인들은 한양에서 망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이 된 원종이 온 줄 알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패잔병 같은 사람들만 보이고 한양으로 갔던 이들은 보이지 않자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네 이놈들! 어서 안산성의 성주를 불러오래도! 여기 전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이냐?"

성하(城下) 마을의 조선인들과 여진인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요하를 건넌 자들의 숫자가 많자 혹시나 싶어 안산성에 연락을 넣었다.

그러자 성에서 전원길과 병사들이 말을 타고 나와서는 그들을 맞이했다.

“정녕 전하이십니까?"

원길은 키가 크고 후덕하게 풍채가 좋았던 성종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진짜 성종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고 자세히 뜯어보니 예전에 보았던 성종이 맞았다.

“하하하. 과인이 맞네. 안동도 관찰사가 안산성의 성주였군."

원길은 성종이 자신을 반가워하자, 지금 조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명나라에서 풀려나셔서 다행입니다.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원길은 성종과 몇몇 대신을 말에 태워 성으로 움직였고, 요하를 건넌 병사들은 따로 천막을 세워 거하게 먹고 마시게 하라고 지시했다.

“하하하. 드디어 조선의 음식을 먹어보는구나."

성종과 13명의 신료들은 안산성에서 내주는 조선식 음식에 감탄을 했다.

아무리 일국의 왕이라고 해도 명나라에 잡혀 있었기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었다.

특히나, 봉기로 운하가 막혔을 때에는 연경에도 식량이 부족하여 끼니를 거르기도 했었다.

거기다 요하까지 오며 받았던 식량을 다 먹어 버리자 말까지도 잡아먹었고, 다들 걸어서 오다 보니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성종은 배부르게 먹고 술을 한잔 하다 보니 그제야 조선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졌다.

"그래 조정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상당부원군(한명회)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가?"

“네 그렇사옵니다. 오늘은 머리 아픈 조정의 일은 잊으시고, 명나라에서 돌아오신 것만을 생각하십시오. 내일부터 정국에 대해서 이야길 하시면 될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그렇지. 오늘은 내가 조선에 돌아온 기분 좋은 날이지."

성종은 자신이 잡혀간 이후에 국구(왕의 장인)인 한명회가 나라를 잘 이끌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직접 내려 만들었다는 소주를 대취할 때까지 마셨다.

“내가 한양으로 간다면, 관찰사가 바빠질 것이오. 내 명나라의 연경을 불태우고 불알 없는 이 태감 놈들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일 것이오! 그 태감 놈들으을...”

힘들게 돌아왔고, 오랜만에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독한 술을 마시다 보니 성종과 신료들은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었고, 명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명나라 욕을 엄청나게 했다.

그러다 서서히 하나둘 잠이 들어 버렸다.

취해서 잠이든 이들을 보며 원길은 동생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형님. 제가 한양을 점령하고 일이 마무리가 되면 명나라에서는 후왕을 풀어줄 것입니다."

"다시 분란을 일으키도록 하겠지."

“네. 그래서 여길 형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후왕이 요하를 건너온다면, 형님이 처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꼭 죽여야 한다는 말이냐?"

원길은 그래도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이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네. 그래야 조선이 평안할 것입니다. 한 명의 목숨을 끊어냄으로써 수백 수천의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원길은 동생이 이야길 했을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하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미 명나라에 잡혀갔을 때 줄 끊어진 연과 같이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어디 산에서 한가하게 살게 해주거나 자신과 함께 만주 벌판을 돌아다니며 노니는 그런 삶을 알려주려 했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설움을 겪었던 성종은 어떻게든 자신을 업신여겼던 이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했다.

절대 자신처럼 즐기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조선에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든 왕권을 찾으려고 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다시 명나라와 싸우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동생의 말처럼 수백, 수천의 목숨이 사라질 터였다.

하나의 목숨으로 수천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하나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맞았다.

“술 취한 이들을 한 명씩 방으로 옮겨라.”

술에 취한 성종부터 병사들이 들어 옮겼는데, 술자리가 벌어진 방을 벗어나자마자 무사들의 칼이 성종의 목에 박혀 들어갔다.

성종과 13명의 신료들 모두를 죽이자. 그대로 시체를 불태웠고, 성종을 참칭한 무뢰배들이 있었으나 안동 관찰사의 질문에 놀라 중국으로 도망쳤다고 표문을 조정에 올렸다.

그리고, 요하를 건너온 천여 명의 병사들은 요하강 하구의 영구항에서 배에 태워 동항에 내려주었고, 거기서 걸어서 조선으로 들어가게 했다.

명나라에서는 분명 잡았던 성종을 풀어줬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확인하려 했는데, 풀어줬던 성종의 흔적을 찾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한명회 대감이 금 180근과 은자 5900냥 백미 1670석, 잡곡 2100석을 헌납했사옵니다."

“서거정 대감이 은자 450냥 춘봉 상단의 교환권 890장..."

조정에서 한 자리씩 하는 대신들은 목숨을 살려주고 자리를 보전하는 대가로 재산의 반을 헌납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한명회와 서거정이 솔선수범하여 재산을 바쳤는데, 한명회의 재산만으로도 만 명의 군대를 2년은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선 그동안 출항을 하지 못했던 선단들을 교역을 위해 출항시켰고, 수군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렸다.

다만, 보졸과 기마대는 재편을 했는데, 기마대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오가며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유목 마을 형태의 가호로 만들어 버렸다.

언제든 정착을 원하면 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정착에 불만을 품은 여진인들은 유목 기마대에 속하게 만들어 반 병사화시켰다.

보졸들은 현대식 군제로 개편을 했는데, 기존의 조선 무관들을 다 배제하고, 내 밑에서 함께 했던 이들을 전면 배치했다.

그리고, 무과를 아예 없애 버렸다.

군역으로 들어온 이들 중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하는 이들을 승급시키는 방향으로 바꾼 것이었다.

무장으로 출세하고 싶다면 군역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겠다는 이들은 수군학교처럼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장수가 되는 형태로 전근대적인 군대 체제를 만들었다.

수도 한양에 7천 명의 군대를 주둔시켜 두었기에 군제를 변경한다고 했음에도 대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성균관을 없애겠다고 했을 때는 사림과 양반들이 들고일어났다.

물론, 이것도 대신들을 낚기 위한 것이었다.

“성균관은 단순한 교육기간이 아니옵니다. 유학(儒學)을 강의하며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이기도 합니다. 성균관을 없애신다는 것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유학 자체를 없애 버려 야인들과 같이

되겠다는 말과 같사옵니다."

“맞사옵니다. 나라의 동량지재들을 제대로 가르쳐 유학을 이어가게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옵니다.

절대 폐하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옵서 명나라와 싸우며 감정이 상하셨다고 중원에서 나온 유학을 멀리하시게 되면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럿이 안 된다고 강변하자 원종은 다 들어 주었고, 이후 입을 열었다.

“허나, 그대들도 보지 않았는가?

명나라와 싸울 때도 조선의 편보다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용서를 구하고 화평을 해야 한다고 했던 대신들이 있었잖은가.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보다 유학이 태동한 중원을 더 높은 중심으로 여겨 언제나 중원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하네. 이것은 바뀌어야 하네. 그렇지 않은가? 우의정."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그런 문제로 성균관을 폐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를 키우게 되는 것이옵니다. 다른 방도를 추가해 그러한 애국정신을 키우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보옵니다."

서거정과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흠.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나라 사랑은 실제 외적과 싸울 때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네. 그러니 나라 사랑을 키우고, 호국 정신을 기르기 위해 성균관 입학 자격에 하나를 추가하지."

"어떤 것이옵니까?"

"2년간의 군역일세."

"아니 되옵니다. 양반에게 군역이라니요. 이제까지 그런 일은 없었사옵니다."

"맞사옵니다. 전례가 없었사옵니다."

“전례가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나. 성균관의 유생들 중에 제대로 힘을 쓰는 자들이 있었나?

이번에 난리가 났을 때 애국정신을 내세워 명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

나라의 근본이 되는 동량지재를 키운다는 곳이 성균관인데, 그 동량지재들 중에 애국정신을 내세워 나라를 지킨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냐는 말이네."

원종의 물음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늘 앉아서 글만 보고 유학만을 배우다 보니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도 성균관 유생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네. 나는 이것이 양반들의 애국정신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네."

"맞사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사옵니다.”

“그렇지. 그래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어떻게 나서야 할지를 몰라서 못 나선 것으로 생각이 되네.

영의정의 생각은 어떻소?"

“맞사옵니다. 칼을 쓰고 말을 타는 법을 알았다면 아마도 성균관 유생들도 들고일어났을 것입니다. 허니 성균관 유생들도 군역을 치르어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나설 수 있는 방도를

배우는 것이 맞는 것 같사옵니다."

영의정 한명회가 맞다고 하니 다른 이들이 나서려고 해도 나설 수 없었다.

우선은 명나라와의 싸움에서 성균관 유생 중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설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럼, 이제 성균관 유생이 될 수 있는 조건에 진사시와 생원시에 걸린 이중 군역을 치른 이들만이 성균관에 입학이 가능하다. 그리고, 2년의 군역을 지었으니 그 보상으로 성균관을 졸업하면 바로

군관이나 현감으로 배치가 될 것이다."

조건을 만들었고, 그 조건을 달성하면 바로 당근을 주기로 했으니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 성균관 유생 140명을 강제 입대 시켰다.

보군으로 북방으로 가든지 수군으로 망망대해에서 고생을 하게 될 것이었다.

"지당하십니다!"

“양반들도 평민들이 치르는 군역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옵니다."

정전의 우측에 앉아있던 노란색의 관복을 입은 이들이 나를 칭송했다.

바로 시민의회 혹은 평민의회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당장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없었기에 중인 출신 상인 8명과 여진족 출신 2명, 대만 출신 1명, 북해도 출신 1명, 오키나와 출신 1명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나중에는 20명까지 늘릴 예정이었는데, 상인 계급이 제대로 성장만 해준다면 자연스레 그 아래 만들어지는 직업군들의 대표들이 소속될 터였다.

정전에 상인과 외인들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신들은 불만이 많았으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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