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25화 (325/327)

325. 신 조선. (1)

"남대문이 열립니다. 어찌 합니까? 바로 들어갑니까?"

축시(새벽1시쯤)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문이 열린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함정은 아니겠느냐?”

“성문을 방어하는 병졸들이 열고 있다고 싸울 뜻이 없다고 합니다.”

"하하하. 방패병을 앞세워 들어가자꾸나."

교환권이 천 조각이 되는 걸 두려워한 양반들이 들고일어날 것 같았는데, 성을 지키는 병졸들이 문을 열어줬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박치산이 방패병과 선상총통을 앞세워 성문으로 들어섰는데, 매복은커녕 다들 싸울 의지가 없는지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려 있다.

싸워도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살려주다마다. 겉옷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라. 더는 책잡지 않겠다."

병사들은 입고 있던 겉옷을 다 벗어 던지고는 바로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궐로 진군한다. 염선장은 성문을 지켜주시오.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라!"

덩!덩!덩! 더엉!

부우우웅~! 뿌웅~

북채를 잡은 이가 북을 치고, 진군을 알리는 나팔을 불며 움직이자, 잠들었던 도성이 잠에서 깨어났다.

병사들은 배 위에서 쓰는 대방패를 들었는데, 이들이 박자를 맞춰가며 걸어가자 사람들은 두려워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궁궐 앞 육조거리에 다다르자 수백의 군사들이 육조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천자총통을 가져오라!"

마차 바퀴가 달린 총통 4문을 앞세우고 장전을 지시하곤 원종이 나섰다.

“물러서라! 망왕을 잡아 내리는 것이 목표이지 너희들을 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생각할 시간을 반 각 주겠다. 이후로도 이 자리에 서 있다면 죽어서도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어두워 병사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총통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비키거라!"

병사들이 갈라지며 흰색의 내의만 걸친 이가 나타났는데, 한명회였다.

성문이 뚫린 걸 알고 대신들이 옥에 갇혀있던 한명회를 꺼낸 것이었다.

“손녀사위 우리 이야기 좀 하세나."

일이 쉽게 될 것 같아 육조거리 앞에 있는 춘봉 가패의 탁자에 마주 앉았다.

“신승선 대감은 어찌 되었습니까?"

“대신들이 나를 풀어주더니 그 방에 그대로 신승선을 집어넣더군."

“하하하. 대신들이 판세가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하는 눈치는 남아 있군요."

“그래. 어찌했으면 좋겠나? 자네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게."

대신들이 모든 전권을 한명화가 받은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자연스레 나의 인척이라고 내보낸 것일 터였다.

“망왕은 북해도로 귀향을 보내고, 신승선은 효수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종친을 왕으로 세울 것인가? 아니면 왕좌에 직접 앉을 것인가?"

조선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성계처럼 새로운 나라를 열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왕좌에 앉되 양위를 받아 조선을 이을 것입니다."

"조선은 이씨의 나라인데, 그걸 다시 전씨, 아니 왕씨의 조선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조선이라는 이름이 본래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인 만큼 이씨들의 것은 아니지요. 나라를 새로 개국하게 되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며 했던 많은 일들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런 일들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조선을 이을 생각입니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은 지배 권력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조를 따르던 신하들을 죽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 새로운 신하를 앉혀야 왕권이 안정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종은 그런 살육과 정리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왕의 성씨가 이씨에서 다시 왕씨로 되는 것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즉, 신승선 일파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흠. 자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해도 되겠나? 우선은 명나라에 잡혀간 후왕(성종)이 풀려나게 되면 구(舊)신들은 다시 후왕에게 충성을 하게 될지도 모르네.”

“더 이상의 혼란이 없게, 후왕에 대한 대비는 이미 다 하고 왔습니다."

“크하하하. 역시 그렇지. 그렇다면, 지금은 대신들을 용서한다지만, 훗날 정리할 계획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우선은 처 할아버지의 재산부터 반을 뺏을 것입니다."

"흐음. 내 재산을?"

직위가 아닌 처 할아버지라고 이야길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앞장서서 재산의 반을

내놓으십시오. 목숨값이라고 먼저 내시면 됩니다. 대신들에게 목숨값이라고 재산의 절반을 바치게 하십시오. 이씨 종친들의 재산은 대부분을 빼앗을 것입니다."

“돈이 있는데도 왜 그러는가? 자네는 조선 최고의 부자가 아닌가?”

“기득권이라 부르는 양반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고려와 조선은 왕이 있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신하들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신 조선은 왕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금권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말인가?"

“네. 그렇게 모은 양반들의 돈으로 군대를 키울 것이며 양반들에게도 세금과 역을 물릴 것입니다."

"세금과 역을 받아들이겠나?"

"저의 세력을 떠받치는 자들은 사대부와 양반들이 아닙니다.

세금을 내고 역을 사는 백성들이 저의 세력 기반입니다. 그런 백성들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있는데. 사대부와 양반들을 왜 두려워하겠습니까?"

"힘이 최고인 듯 보이지만, 힘으로 누르다 보면 결국 그 반작용으로 그 힘에 밀려가게 될 것이네.

양반들을 얕잡아 보지 말게나."

"이제까지의 왕들은 힘을 쓰는 방법을 몰랐기에 아차 하다 양반들에게 다시 밀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그들이 낸 돈으로 병사를 키워 눌러주고, 그들에게 있던 힘도 뺏어서 백성들에게 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어떻게 힘을 준다는 말인가?"

"조정의 일을 논하는 정전을 2개로 만들 것입니다. 양반들의 정전과 백성들의 정전을 만들어 그 힘이 제가 아닌 서로에게 향하게 할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영국식의 귀족의회와 평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의회를 두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 두면 자연스레 양반들과 평민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될 터였다.

이제까지 수직적인 관계였다면 그 수직적인 것을 수평으로 만들어 주기만 해도 서로 힘의 균형을 가지게 될 터였다.

물론, 시민계급이라 불리는 일반의회에서 제 몫을 할 정도의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내가 또 해야 했다.

그 두 의회는 직할 군대를 가진 왕이 삼각 견제를 한다면 한명회가 걱정하는 힘에 의한 역성혁명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터였다.

더구나, 귀족의회인 양반 의회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으로 변방에서 2년 이상의 복무를 한 양반이나 의무 선원으로 2년동안 배를 탄 자로 한정을 한다면 지금처럼 공자왈맹자왈 입으로만

떠드는 자들은 알아서 힘을 잃어갈 터였다.

“처 할아버지께서는 목숨의 대가로 재산의 반을 내는 조건으로 협의를 했다고 전해 주시면 됩니다. 이후의 일은 그저 지켜만 봐주시면 재미가 있으실 겁니다."

"흠."

한명회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손녀사위를 보았다.

어쩌면 저런 자신감이 있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지금 조선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렇게 하지. 재산의 반을 내놓고 목숨을 구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하겠네."

“그리고 하나 더 해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궐에 있는 모든 이씨 종친들을 내쫓아 주셔야 합니다."

"하긴. 그런 것은 내가 해주고 떠나야 깔끔하겠지. 그렇게 하지. 다만 왕자들은 내쫓지 않고 모두 다 근정전에 모아두도록 하겠네."

“네. 갈 곳이 없는 이들도 근정전에 모아두십시오."

한명회가 돌아가고 한 식경(대략 30분) 후 대신들이 모두 궐을 나왔고,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병사들과 대신들을 따로 격리하라. 서거정 대감이 나서주시오."

이제까지 뒤에 있던 서거정이 나서서 대신들을 구분했고, 궐의 내관들과 위장들을 철저하게 구분했다.

“내수사의 내관 이치현은 어디에 있는가?"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이치현은 구면이었기에 오히려 고개를 더 들지 못했는데, 내수사의 재산 목록을 살펴보고 그대로 재산을 관리하게 놔두었다.

"이씨 종친들의 재산을 압류할 것이다. 이치현 자네가 종친들의 재산을 조사 좀 해주어야겠는데. 할 수 있겠나?"

"물론이옵니다. 신명을 다해 조사하겠습니다."

정전에 도착하니 제안대군이었던 망왕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금 모자란 자였지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는 아는 것 같았다.

“망왕의 상태가 좋지 못하니 양위를 직접 주관하지 못할 것 같구나. 옥새를 받고, 양위 받았다는 것으로 기록을 하여라."

“전하. 상황이 상황인지라 간소화하는 것은 좋사오나, 훗날 이것으로 책이 잡힐지도 모르옵니다.”

서거정은 벌써 내게 전하라 호칭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조선의 왕이 아니라 황제가 될 것이다.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할 것이니 조선 왕의 자리를 양위 받는 것으로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칭제건원 하겠다는 말에 서거정은 놀랐다.

이제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당하십니다. 중국의 조공 관계를 없애기 위한 최선의 방도이옵니다."

"그것뿐이겠나. 이제는 우리가 조공국을 거느리게 될 것이네. 우선은 신승선이 전국

관찰사들에게 보낸 전령을 회수해야 하고, 충안왕이 원왕에게 왕위를 양위했다고 알리게."

“네. 평양성으로 전령을 보내어 싸움이 끝났다고 알리겠습니다."

***

단 하룻밤이었다.

춘봉 상단의 군사들이 배를 타고 한양에 들어왔고, 난리가 났다고 다들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밤새 제대로 싸움도 없이 성문이 열리고, 왕이 바뀌었다는 포고에 다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다른 의미의 난리가 났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다시 춘봉 상단의 문이 열리며 영업을 시작하자, 한양의 백성들은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실려있는 신문역할의 주보(週報)가 각 현에 뿌려지자 전날 원군을 청하는 전령을 만난 관찰사들은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찌하면 되는 것이오? 의병을 모아서 상경을 해야 하는 것이오?"

충청 관찰사인 이임복은 혼자서 판단하기 힘들자 부사와 현감들을 불러 모았다.

"상경의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명분이 왜 없는 겐가? 왕위를 찬탈한 무도한 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명분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명분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이제는 원왕 전하가 되신 분도 명나라의 황제에게 왕으로서 책봉을 받으신 분입니다. 왕위를 찬탈했다고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씨가 아니지 않은가. 조선은 태조로부터 이어진 나라이네.”

"허나, 원왕 전하께선 이씨 조선을 부정하지 않고, 이어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의병을 모아 상경을 하기에는 명분에 무리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더구나 한양의 대신들도 모두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의병을 모으고 상경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대신들도 등청하지 않고, 투쟁을 하여야 병사를 일으킬 명분이 생깁니다. 헌데,

한양은 아무 이상 없인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충청감영에 모인 이들은 의견을 주고받았으나 결국 의병을 모으는 일은 그만두고 말았다.

사람 특히 벼슬아치나 양반들은 명분과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뭐, 충성심이나 혈연, 의리 같은 예외가 있을 때도 있으나, 보통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관으로 내려가 있는 관리의 대부분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자들이었고, 자신의 것을 내놓고 모험을 할 사람은 없었다.

충청 관찰사인 이임복은 종친이라고 부르기도 먼 촌수의 이씨였기에 의병을 모아 상경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지만, 그와는 달리 접점이 없는 이들은 나설 명분이 없었기에 나서지를 않았다.

결국, 신승선이 보내었던 의병을 일으켜 상경하라는 전령의 서신은 흐지부지하며 없던 일이 되었다.

그저 '지금 이대로!'이길 원할 뿐이었다.

***

"우오와아!"

"만세! 만세! 만만세!"

성 밖에서 들리는 환호 소리에 평양성에 있던 김덕청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한양에서 온 전령이 싸움은 끝이 났다고 아뢰자 싸움이 끝난 것을 깨달았다.

“부사 나리. 이것도 적의 계략일 수 있습니다. 서신 한 장으로 성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김덕청은 전령이 가져온 깨진 옥을 대보아 감합을 확인했음에도 성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성밖에 진을 치고 있던 군마들은 진을 해체해서 철수를 해버렸다.

그걸 보고서도 믿을 수 없어 파발을 몇 번이나 보내었고, 그와 잘 아는 군관들이 직접 와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제야 평양성 문을 열었다.

평양성 문이 열리고 조선의 내전이 끝났다는 소식이 퍼지자 금세 명나라 만귀비의 귀에도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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