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24화 (324/327)

324. 내란. (2)

“배...배다!”

"무슨 실없는 소리임? 강나루에 배가 있는 게 당연하지."

노들섬의 어부들은 배라고 외치는 이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곤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배, 배다!'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큰 상선들이 강폭을 가득 메우며 한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배마다 한가득 장정들이 타고 있었는데,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을 보자 어부들은 난리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왜, 왜구 놈들인가?"

“무슨 소리인가? 저기 깃발이 보이지 않는가? 태극문양 깃발이 보이지 않는가?"

“아, 그럼 춘봉 상단의 태극 선단? 아차, 그러고 보니 춘봉 상단이 난을 일으켰다고 하던데..."

“배를 타고 한양으로 바로 들어가겠다는 거구만. 사대문 밖이긴 하지만, 바로 성문 앞에 닿을 수 있으니 다들 놀라겠어. 우리도 얼른 집으로 가세나. 괜히 여기에 있다가 날벼락 맞을라."

고길 잡던 어부들이 놀란 것 이상으로 한강 변의 백성들도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와 병사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몇은 급히 관아로 달려가 신고를 했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급히 나온 병졸들도 수십 척의 배에서 줄지어 내리는 수천의 병사들을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방패 병이 가장 앞에 서고, 그 뒤로 선상 총포를 든 이들이 선다! 다음 배가 올 때까지 나루터를 지켜야 한다!"

40척의 배로 상륙을 한 병력이 3000명밖에 되지 않아 2파로 오는 1400명을 기다려야 했다.

방패 병들이 진을 짜서 버티고 그 뒤로 나루터를 지키기 위해 진채를 꾸리자 관아의 병졸들은 수적으로도 열세라 그냥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성문을 닫아라! 저들이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성문으로 내 달렸다면 바로 도성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도성에 얼마의 병사들이 있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추가로 오는 병력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루터 인근의 백성들도 갑자기 등장한 병사들에 놀라 사방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왕원종의 군대가 도성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금세 퍼져나갔다.

“아니, 평양성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들은 도대체 뭐냔 말이냐?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냐!"

신승선은 도깨비처럼 배를 타고 나타난 병사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왕원종의 얼굴을 아는 자가 배에서 내리는 왕원종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기마대로 평양성 앞에서 허장성세를 펼치고 본대는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온 것 같습니다.”

"써글. 한양에 병사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뒤로 쳐들어온 것이구나. 사대문을 닫아걸고,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어서 전령을 보내어라!"

"구원을 청하는 전령을 어디로 보내오리까?"

위사의 물음에 신승선의 입이 막혔다.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있는 평양성은 기마대와 대치하고 있고 성에 들어가 있으니 안 되고, 가까운 경기감영이나 충청감영에는 병사들이 없었다.

수도인 한양과 경기도 그 어디에도 지금 동원 가능한 병사들이 없는 것이었다.

진관제하에 진관에서 모았던 병사들은 성종이 친정할 때 데리고 가 다 죽어 버렸고, 그때 살아남은 자들과 수군, 오위의 일부 군사가 지금 원종의 병사로 온 것이었으니, 그들을 막을 병사가 없는 것이었다.

도성과 궁을 지키는 내금위까지도 최소한의 인원을 빼고는 평양성으로 다 보내었었기에 남은 병사를 모두 끌어모아도 채 천명이 되지 않을 터였다.

절망적인 상황에 신승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포자기식 명령을 내렸다.

“도성! 도성 내의 모든 장정들을 모아라!"

"노비들도 모읍니까?”

사대문 안의 장정들은 이미 대부분이 징병 되었기에 지금 남은 장정들은 양반이거나 노비들일 터였다.

강제로 노비들을 모은다는 것은 양반들의 재산을 빼앗겠다는 말과 같았으니, 신승선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양반들에게 노비들을 내놓으라고 하고 노비를 빌렸다고 증서를 써줘라."

증서까지 써주며 노비를 받아낼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역적이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신승선은 놈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서신을 열어보니 언문으로 글이 쓰여 있었다.

[조선(朝鮮)이란 이름은 옛 고조선의 이름에서 따왔으나 그 의미를 아침의 해가 빛난다는 뜻으로 글자를 맞추었다.

해서 조선은 말 그대로 선한 빛이 나는 나라였다.

하지만, 아둔한 후왕이 잡혀간 이후 그 아름답던 빛을 잃었고, 검은 구름에 가려진 아침이 되었으니 통탄함을 금할 수 없다.

새로운 왕을 세웠으나 천지 분간을 못하는 망왕이라 충신을 죽이고 간신을 중히 여기니 스스로 망국을 초래하도다.

충신으로 죽을 각오를 했으나, 망왕으로 고생 받을 이들이 안타까워 전조의 후예로서 다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려 일어섰으니 속히 성문을 열어 새로운 왕을 맞이하라!]

“이글이 쓰인 종이를 성문 너머로 수천 장을 뿌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승선은 종이를 우겨서 찢어 버렸다.

“그리고, 글을 쓴 것이 서거정 대감이라고 합니다."

“그, 그럼 역적에게 넘어간 것이 사실이라는 말이냐?"

신승선은 서거정이 돌아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설마 했었다.

하지만, 직접 표문(表文)을 써서 이렇게 나섰다고 하니 괘씸했다.

"서거정의 가족들을 잡아 와 죽여라! 그리고 각도의 관찰사들에게 전령을 보내라 의병을 모아 속히 상경하라 전하라!"

없는 병사를 내어 서거정의 집으로 보내었으나 이미 식솔들은 다 도망을 친 이후였고, 권세가들의 집을 돌며 젊은 노비들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도성 안은 무법천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단지 사대문을 닫아걸었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터진 것이었다.

춘봉 상단이 빠지며 물자 부족으로 혼란을 겪긴 했지만, 송상이나 다른 상단이 있어 물류가 겨우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왕원종이 배를 이용해 도성 밖에 도착하여 진을 치자 모든 것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사대문 안에서는 청야전술로 버틸 거라는 소문까지 돌자 성을 나가려는 자들이 성문 앞에서 난리를 부렸다.

강제로 성민들을 돌려보낸 병졸들은 겨우 한숨을 돌렸는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성문을 닫아걸라고 했지만, 이런다고 이길 수 있을까? 청야전술을 펼친다지만, 병량을 가진 쪽은 저쪽인데, 우리가 버틸 수 있냐는 말이지."

"난들 아나 어디서 숨겨둔 병량이라도 나오겠지. 우리는 그저 우리 목숨이나 잘 보전하면 되는 것이네."

"청야전술을 생각하니 배가 더 고픈 것 같군. 휴우.”

“이런, 배가 더 들어왔다고 하네.”

"큰일이군"

한양 나루터에 2파로 1400명이 오자 바퀴 달린 천자총통을 앞세워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항이 없어도 너무 없구만."

“모든 병력을 평양으로 올려보낸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양면 공격이 대성공한 것 같습니다. 허허."

서거정은 처음 양면 공격을 이야기했을 때는 병력을 나누는 것에 반대를 했었다.

서거정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기마대와 같이 밀고 내려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원종은 2차 세계 대전 때 마지노선의 교훈으로 그런 정면승부에 대한 고정 관념이 없었기에 당연하게 한강 상륙 작전을 기획했다.

그 덕분에, 비어있는 후방에 너무 쉽게 도착했으니 남대문 앞에 선 것이 체감되지 않을 정도였다.

"철환으로 1발씩 쏘되 성문 위 현판을 노려라!"

퍼퍼퍼펑!

4대의 천자총통이 큰 소리를 내며 발사되었지만, 아쉽게도 철환은 현판을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총통이 발사되는 소리를 처음 들어본 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선을 확실히 제압한 듯싶어 나무로 깎아 만든 둥근 확성기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이들에게 묻겠다. 명나라 놈들에게서 조선을 구한 이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나 왕원종이다!"

“우와아아!"

"안주성 대첩을 기억하라!"

내가 말을 하자 수군들이 떠나가라 환호를 질렀고, 다른 병사들도 환호했다.

"춘궁기에 누가 너희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는 기억을 하는가? 왕좌에 앉아있는 망왕이 아니라, 바로 나 왕원종이다!"

"우와아아아!"

“춘봉 상단의 혜택을 기억하라!"

내가 말을 할 때마다 병사들이 환호를 해대니 말할 맛이 났다.

“그런 나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던 것이 바로망왕이고, 쓸모없는 대신들이다. 내가 그냥 죽었어야 하느냐?"

"아닙니다! 단주님이 왜 죽습니까?!"

"살아야 합니다!"

"우와아아!”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섰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왕을 치우고, 나라를 좀먹는 탐관오리들을 처벌하고자 내가 이리 온 것이다!”

"우와아아아!"

"왕원종! 왕원종!"

“내일 아침 3번째 선단이 도착하여 병력이 내린다면 도성을 공격할 것이다. 살려는 자들은 성문을 열어라. 죽고 싶은 자들은 성문을 닫고 청야하라. 먼저 굶어 죽는 것은 너희들이 될 것이다!"

"우와아악!"

"너희가 먼저 죽을 것이다!"

내가 나서서 이야길 하고 병사들이 떠들어 대자 성문과 성벽에 올라가 있던 이들은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급하게 징병되어 올라온 노비들은 물론이고, 기존의 병졸들도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송상 총대방 김만춘이 만나 뵙길 청합니다."

내가 만나겠다고 하자, 김만춘은 들어와 읍을 하며 옥으로 된 패를 하나 꺼내어 보여주었다.

왕씨라고 쓰여있는 신분패였다.

“이미 발해방 사람들에게 들어 알고 있네."

"알고 계셨다니 감읍 드리옵니다. 전조의 후신들이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뒤를 이어 전조의 신하를 자처한 이들이 계속 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어느새 열을 넘을 정도였다.

“양반들은 다들 교환권이 천 조각이 될까 봐 겁을 내고 있습니다. 성문을 열기 위해 애쓰시지 않으셔도 자연스레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거 겁을 주기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기쁠 것이네. 우선은 내일 3파로 병력이 모두 오게 되면 그때 성문을 여는 공격을 할 것이네."

***

“위사나리 설마 우리만으로 저 밖의 병사들을 막으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나? 증원군으로 데리고 온 것이 저 노비들이네."

“써글 노비들은 싸우다 죽기보다는 그냥 항복하겠다고 하는데, 저들을 어찌 믿습니까?"

"이거 여기서 죽게 생겼구만. 위사 나리 정말 여기서 싸우다 죽어야 합니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휴우."

남대문을 지키는 병졸들은 물론이고 무과 급제자인 정영호도 죽을 맛이었다.

급제를 하고 장가도 들어 이제 좀 무관으로서 멋지게 살아보나 생각했는데, 꼼짝없이 여기서 죽을 판이었다.

"위사님. 문을 열고 항복을 합시다요. 여기서 버린다 해도 막아낼 수 없고,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여기서 버틴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냥 문을 열어 버리고, 목숨이라도

보전합시다요."

"맞습니다. 위사님. 죽기 싫습니다요.”

본래 저런 말을 하게 되면 위사나 권관들이 칼을 뽑아 저런 병사들을 베어야 했다.

하지만, 당장 정영호도 그러고 싶다 보니 군법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을 따라 문을 열고 투항하고 싶었다.

"웬 놈이냐!"

어찌할지 결정을 못 했는데, 성문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내일부터 공격을 한다고 했기에 피난을 가려는 이들이었다.

"문을 열어주시오. 이대로는 다 죽을 뿐이오. 상대가 명나라군 3만 명을 몰살시킨 장수요. 우린 죽기 싫소이다. 그저 살짝 문을 열어주면 되오."

정영호는 줄을 선 피난민들을 보고는 고민을 끝냈다.

“너희들은 피난 갈 필요 없다. 성문을 열 것이다. 그냥 밖의 군대를 맞아들이면 청야니 뭐니 필요 없을 것이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라는 말에 병졸이든 피난민이든 구분 없이 나무를 치우며 성문을 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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