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23화 (323/327)

323. 내란. (1)

안산성을 형님에게 맡기고 동항으로 출발하기 전 요하 강 하구의 영구 항을 통해 상단의 연락선들이 먼저 한양과 벽란도로 움직였다.

아직은 내가 거병한 것을 모를 테니 한양과 벽란도의 물자를 최대한 실어 동항으로 옮겨놓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게 군사를 이끌고 동항에 도착하자 한양에 있던 이재원 행수가 도착해 있었다.

“한양에서 병량으로 쓸 수 있는 물자를 최대한 빼오긴 했으나, 염탐꾼이 들러붙어 모두 다 빼 오진 못했습니다.”

“7할이라도 빼 왔으면 충분한 것이오. 이재원 행수가 큰일을 해줬소."

“그리고, 남경 상인 텅신황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옹원의 도자기를 넘겨주어 고맙다며 중국 남부의 사정을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네."

얼른 텅신황의 서신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몸져누웠었다는 황보정 장군이 병을 떨치고 일어나 강하를 비롯한 강남 일대의 폐 태자 세력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만귀비와 황제 측에 여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사천으로 들어간 폐 태자가 관중 땅을 노리고 진령산맥을 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사천의 한중 땅에서 서안이라 불리는 장안까지는 진령산맥만 넘으면 지척이라 만귀비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었다.

“좋구나. 우리가 도왔던 것이 다 돌아오고 있구나."

만귀비와 폐태자 둘 다를 도왔었기에 서로 알아서 정신없이 싸워 준다니 고마운 소식이었다.

서로 싸운다고 만귀비가 조선에 신경을 쓰지 못할 터이니 안산성 후방에 대한 걱정 없이 병사들을 움직이면 되는 것이었다.

“박투르안과 여진인 테이츄를 불러라!"

***

“전원종, 아니 역적 왕원종이 위화도에서 제주(祭酒)를 강물에 바치고 남하를 시작했다고 하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어유소 절도사와 서기정 대감은 어디에 있소? 그 둘은 대체 무얼 했다는 말이오?"

신승선은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서거정과 어유소를 보낸 것인데,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리자, 그 둘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다.

“어유소 절도사는 나라를 팔아 중국에 넘기려 했다고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고 하옵니다. 서거정 대감은 반란수괴의 편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어유소 절도사의 목을 쳤다면 왕원종이 역심을 품은 것이 확실합니다. 속히 병사를 모아 놈을 쳐야 합니다!"

"속히 오위 군사를 모으고, 훈련원과 내금위 겸사복의 장수들을 모아라!"

정전의 대신들은 다시 터져버린 난리에 군사를 모은다 누구를 부른다 분주했지만, 자리에 앉은 한명회는 이런 난리에도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확실하지 않지만, 서거정이 원종의 편에 붙었다는 말을 듣고 '왜?'라는 의문을 던지며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역적의 수괴가 상당부원군의 손녀 사위이니 부원군의 내통이 의심된다. 부원군을 옥에 가두어라."

신승선의 명이 떨어졌지만 내금위 위사들은 쉬이 나서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았는데, 한명회는 그런 위사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를 포박하게나. 이미 이시애의 난 때 옥에 갇힌 경험이 있으니 잘 아네. 누명이 벗겨지면 다시 나올 수 있을 터이니 다들 어서 움직이세."

한명회는 부담스러워하는 위사들에게 오히려 여유를 보이며 정전을 벗어나 옥으로 향했다.

옥에 갇힐 때도 여유 있게 벽에 기대어 앉으니 문을 잠그는 위사도 한명회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부원군의 누명이 벗겨지면 언제든지 나오실 분이니 너희들이 잘 모시거라."

“네. 위사 나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옥졸들도 한명회의 위명을 알기에 설설 기었고, 오히려 먼저 집안 청지기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연락까지 해주었다.

“나는 죽은 듯이 들어앉아 있을 터이니 그저 밖이 어찌 돌아가는지나 알려주시게나. 그러면 내 나중에 은혜를 갚겠네."

“부원군 나리께 은혜라니요. 그저 편안히 계십시오."

한명회는 옥중에 갇히자 다시 서거정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원종의 편에 붙은 것이 정확하지 않다곤 하지만, 소문으로라도 서거정이 원종의 편에 붙었다는 말이 돈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자진해서 서거정이 가겠다고 했던 것까지 떠오르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움직였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애초에 도성에 있는 병사들보다 더 많은 병사를 가진 이를 소환하겠다고 했을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한명회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후왕(성종)이 잡혀가고 아둔한 충안왕이 조선의 왕이 되었을 때 예상되었던 혼란일 수도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한명회 자신은 가지고 있던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고 하니 이미 인력(人力)을 넘어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명이 다한 것이지. 명이 다한 것이야.'

***

“아니, 군량미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

훈련원 부주이자 임시로 도성의 방어를 맡은 병마 절제사 김덕청은 비축된 군량미가 없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본래, 군량을 대는 곳이 춘봉 상단과 송상이온데, 병량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춘봉 상단은 반란수괴가 운영하는 곳이니 강제로 문을 열고 조달을 해도 되는 것이다."

“네. 부주 어른, 이미 선전관과 나졸들이 역적이 운영하는 춘봉 상단에 달려가 강제로 문을 따고 춘봉 상단의 병량미를 챙기려고 했으나,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럼 송상은?"

"송상 또한 명나라 이지란 장군의 군대가 올 때 군량을 소진하여 지금 당장 제공할 수 있는 군량이 얼마 없다고 했습니다."

“써글 내가 직접 송상의 총대방 김만수를 만나보겠다.”

김덕청이 병졸들을 이끌고 송상의 본부로 가니 물수건을 이마에 올리고 있는 총대방 김만수가 있었다.

“천방지축인 아들이 상단 일로 왜에 가 있는데, 그때 곡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기에 우리 송상이 가진 곡식이 몇 없습니다."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니 김만수가 물수건만 올리고 있음에도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김덕청은 어쩔 수 없이 송상이 내놓은 것들만 챙겨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관리들의 녹봉을 위해 곡식을 가지고 있는 광흥창(廣興倉)이 생각이 났다.

“광흥창에 보관되어 있는 병량을 우선 융통한다!"

“광흥창으로요?”

"그래. 거기에는 곡식이 있지 않겠느냐?”

“그게 녹봉을 위해 쌀을 보관하던 광흥창 또한 병량이 얼마 없을 겁니다. 몇 해 전부터 춘봉 상단의 교환권으로 녹봉을 지급한 이후로는 광흥창에서 녹봉을 받는 이가 몇 없습니다."

“허허. 모든 것이다 상단과 연결이 되어 있구나. 어찌 이런 일이, 상단 없이 어찌 싸운단 말인가?"

훈련원 부주 김인수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춘봉 상단에서 물건을 사고 쌀을 사 먹으며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옷이며 쌀이며, 의복이며 심지어 백정들이 잡는 고기까지도 춘봉상단에서 구해서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의지했던 곳이 역적이 되어

쓸 수가 없게 되니 나라를 지킬 병사들을 위한 병량조차 제대로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부주 나리, 유일하게 병량이 쌓여 있는 곳이 한 곳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더냐?"

“바로 평양성입니다. 일전 명나라군이 내려올 때 평양성에서 청야전술을 펼친다고 평양성에 병량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있을 것이 옵니다."

"옳구나. 평양성에서 막아내면 되겠구나."

부주 김덕청은 급히 궐로 들어가 5위의 군사들을 이끌고 평양성에서 청야를 펼쳐야 한다고 주청했다.

신승선도 김덕청의 말을 옳게 여겨 겸사복은 물론이고 내금위까지 박박 긁어 9천 명의 병력을 만들어 내었다.

급하게 꾸려진 병사를 이끌고 김덕청은 평양성으로 향했다.

***

"저.저기봐! 또 봉수대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오늘 파발마만 해도 10마리가 넘게 지 갔어."

"춘봉 상단의 단주가 난리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아주 죽겠구만."

“다들 전란을 피해 도성을 떠난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병사가 꾸려져 북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도성의 백성들은 시시각각 피어오르는 봉수대의 연기와 쏜살같이 달려 들어오는 파발마에 공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청천강 유역에서 명나라 군사 3만 명을 전멸시킨 사람이 전원종인데, 이거 과연 막을 수는 있는 것이야?"

"이야길 들어보니 힘들다고 하는군, 이틀 전 북상한 군대가 1만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럼, 춘봉 상단 쪽에 병사가 더 많은 거잖아. 맙소사. 이거 나라가 뒤집히겠구먼."

"뒤집어지던 꼬꾸라지던 모르겠고, 문제는 이 교환권이야."

말을 하다 말고, 속주머니에서 춘봉 상단의 교환권을 꺼내었는데, 10여 장이나 있었다.

“교환권이 있어도 이제 교환권을 쓰지 못하게 되었어. 이게 백미 한 마의 가치인데, 지금은 역적 수괴의 상단이라고 아예 쓰지를 못하게 막고 있으니 이게 그냥 천 조각이 될 판이라고"

“그렇군. 그게 제일 큰일이로군. 나도 교환권이 몇 장이나 있는데, 이거 어쩌나"

"어쩌긴 이걸 쓰려면 춘봉 상단주가 이겨야지."

"에헤이! 자네는 어디 가서 그 입 놀리지 말게나 바로 치도곤을 당할 거야."

“쳇. 내가 틀린 말 했나. 우리는 물론이고 양반네들도 아주 난리일 거야. 다들 축재하기 편하고, 시세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기에 양반네들도 이 교환권을 엄청나게 들고 있을 거라고.

난리가 나서 춘봉 상단이 완전히 문을 닫아 버려봐. 어찌 되겠어. 재산을 다 날리는 거라고."

말을 들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금이나 은도 재산을 축재하기 좋지만, 가치가 큰 만큼 통용이 어려웠다.

반면에 춘봉 상단의 교환권은 언제든지 쉽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백성들도 10여 장씩 쌓아둘 정도였으니, 살림살이가 좋은 양반네들은 훨씬 더 많은 수량을 들고 있을 터였다.

“이거, 우리뿐만 아니라 양반네들이나 녹봉으로 교환권을 받아 들고 있던 관리들까지 춘봉 상단이 이기는 걸 원하는 거 아냐?"

“난 교환권이 아니라도 춘봉 상단의 편이야. 우리 막내아들이 선원이 되기 위해 수군으로 갔다고. 이제 2년 차라 내년이면 선원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지면 안 된다고."

“에헤이. 자네 마음은 이해하는데,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를 대 놓고는 하지 말게나. 진짜 큰일 나."

도성의 백성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눌 때 박투르안이 이끄는 5천의 기마대가 청천강을 건너 평양성에 나타나고 있었다.

다행히 하루 전 평양성에 들어온 김덕청은 이리 빠르게 내려온 군마들을 유심히 살폈다.

“천 리를 달려온 선봉대일진데, 어찌 싸운 흔적이 없는 것인가? 안주성에도 병졸들이 기천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이 맞사오나, 안주성 앞 평야에서 왕원종이 명나라의 군사들을 물리쳤었습니다. 그걸 본 자들은 감히 맞서 싸울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덕청은 군관들의 이야길 듣고 이 싸움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겠구나. 그러니 천 리 길을 달려와도 싸우려고 나서는 자가 없었고, 싸우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구나."

청야전술을 위해 평양성에 병량이 비축되어 있다고 해도 이미 기세에서 진 것과 같았기에 과연 몇 달씩 걸리는 청야전술을 펼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선봉대로 기마대가 왔으니 본대는 언제쯤 도착하겠느냐?"

도착한 기마대에서 병사들이 내려 진채를 만들고 있자, 김덕청은 본대를 위한 준비를 해두는 것이라 여겼다.

“기마대가 싸우지 않고 왔으니 사흘이면 본대가 오지 않겠습니까?"

김덕청은 사흘 후 왕원종의 본대가 오면 싸울 수 있게 마무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끼룩끼룩~끼룩~

“바람 부는 방향이 좋기에 술시와 해시(밤 9시쯤) 사이에 배가 닿을 것 같습니다.”

김덕청의 생각과는 달리 원종은 뱃전에 서서 백령도와 서해의 섬들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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