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15화 (315/327)

315. 위기. (1)

한명회는 한강이 보이는 압구정 정자에 앉아 흐르는 세월을 보며 소일이나 하고 있었다.

헌데, 시독관 정점이 가로막는 노비들을 밀쳐내며 압구정으로 뛰어 올라오는 것을 보곤 변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인가?"

"그것이..."

한명회는 정첨이 귓속말로 하는 이야길 듣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유언비어가 아니라 진짜인가? 전하께서 사로잡히셨다는 게.”

“춘봉 상단의 배로 소식이 왔을 때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믿지 못했는데, 파발도 방금 도착을 했습니다. 전령의 말로는 압록강을 건너 싸우다 이지란의 꾀에 넘어가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주상께서 사로잡히셨다고 합니다.”

“허허. 친정을 하신다고 할 때 내가 말렸어야 했던 것을, 킬로 가세."

성종의 책임 전가로 실각은 했으나, 명분상 국구이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한명회였기에,

정전으로 들어 정승들이 앉는 상좌에 앉는 것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정을 주도할만한 능력이 있는 이가 한명회가 유일하기도 했다.

한명회는 먼저 전령 두 명을 불러와 당시의 상황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위화도에서 진을 지키는

이가 전원종이며 그것을 증명하는 특임 마패로 도장을 찍어 보냈으니 거짓은 없을 터였다.

우선은 외손녀가 과부는 안 되겠구나 싶어 안심했다.

"명나라에 전하를 풀어달라는 사신을 보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싸움을 했다고는 하나 아국과 명나라는 군신(君臣)의 의(義)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그 군신의 의는 이미 전하께서 친정하시며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네. 나는 중국의 전례를 따라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네."

대신들은 성종을 구하겠다는 이야기는 일절 없이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한다는 한명회의 말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례가 있다고 하지만, 전하를 구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바로 새로운 왕을 세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옵니다.”

"맞습니다. 먼저 사신을 보내 전하를 풀어달라고 해야 하옵니다. 그 이후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이 온당한 방법일 것입니다."

아무런 구출 노력 없이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몇몇 대신들이 나섰다.

“정강의 변이나 토목보의 변이 있었을 때 송나라나 명나라에서 구명을 위한 사신을 안 보냈을 것 같소? 사신을 보내면 금나라든 오이라트 든 들어주기 힘든 조건들을 요구했을 것이오. 그리고,

그것들을 들어주다가는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요."

정전에 앉아 있는 대신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냥 조선의 왕을 잡고만 있으면 뭘 가져다 바치라고 하면 가져다 바치는데, 그걸 놓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약속? 합의?

공물을 받고 할 때는 약속이나 합의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힘에서 차이가 나는 상대에게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골수까지 다 빨아 먹을 때까지 왕을 잡고 비틀어 댈 터였다.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전하를 볼모로 길을 열라고 해서 한양까지 명나라 군사가 내려오면 어찌 되겠소? 종묘사직이 무너지는 것이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후대 왕을 옹립하여야 하오."

성종을 앞세워 쳐들어오면 막을 수 없다는 말에 한명회와 생각이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1왕자이자 세자인 고릉대군(남국 귀비의 아들)이 나라를 잇는 것으로...”

"아니 되오이다! 지금과 같이 혼란한 상황일수록 산정군(숙의 윤씨의 아들)을 세워야 하오이다!"

서거정이 한명회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일전 상당부원군께선 고릉 대군은 외가가 없어 그 뒤를 받쳐줄 힘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셨지 않으셨소이까?"

"그랬소. 그래서 내가 도와주고자 귀비를 수양딸로 들인 것이 아니겠소”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외다!"

수양딸의 아들인 고름대군이 왕이 된다면 모든 권력은 한명회에게 쏠리게 될 터이니 그것을 막고자 서거정이 나선 것이었다.

성종의 실착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겨우 한명회를 실각시켰는데, 다시 세력을 잡게 두지 않겠다고 대신들이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권세가 있는 한명회는 서거정과 일부 훈구 대신들을 말을 무시하고 고름 대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한명회를 막아선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 한씨였다.

그녀는 성종이 포로로 잡혔다는 말에 옥새를 가져와 들고 있었는데, 그녀 또한 남국의 피가 섞인 고릉대군보다는 ‘숙의 윤씨'가 낳은 산정군이 보위에 오르는 것을 원했다.

그러다 보니 힘으로만 보면 한명회가 미는 고릉대군이 보위에 오를 것 같았으나 인수대비라는 집안의 어른이 옥새를 들고 버티고 있으니 한명회 마음대로 왕을 옹립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도성에서 이런 알력 다툼이 벌어지며 시간을 끄는 동안 북방의 상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캬하하하. 조선의 국왕을 잡았으니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연경에 전령을 보내 조선의 국왕을 사로잡았다고 알리고, 어찌해야 할지 명을 받아오거라.”

“장군. 명이 내려오는 동안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이참에 압록강 너머를 복속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 좋다. 먼저 조선의 장수들을 데려가 항복을 권하고 본보기로 몇을 죽이고 오거라. 그리고 조선의 왕은 우리 말을 잘 듣게 길을 들이도록 하여라.”

명나라는 성종의 얼굴과 손처럼 밖에 보이는 곳을 제외하고 마구 구타를 하며 길을 들이기 시작했다.

태어나 누구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던 성종은 하루도 안 되어 매타작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시키는 대로 서찰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압록강 변에 무릎을 꿇고, 위화도의 진지를 향해 읍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성종을 보며 위화도 모래톱을 지키고 있는 원종은 죽을 맛이었다.

“주상전하가 맞으시네."

배에서 쓰는 아라비아산 망원경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성종의 얼굴을 확인했다.

병조좌랑 이득길도 망원경으로 성종의 얼굴을 확인하자 서로 한숨을 내쉬었다.

“단기로 누군가 건너옵니다!"

말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온 이는 서찰을 건네었는데, 그 내용을 보고 다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은 모든 병장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 그것이 과인의 뜻이니 속히 시행하라...]

평소 성종의 필체에 비해 떨림이 있는 글씨체로 봐서는 강압적으로 쓰게 만든 게 확실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명이긴 했다.

“좌랑은 어찌 하면 좋겠소? 항복해야 하겠소?"

"우리가 항복한다고 해도 주상전하를 풀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나도 동의하오. 그리고, 우리가 이 서찰을 따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하게 된다면 우리 뒤를 이을 다른 군사들도 다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오.”

결국, 원종은 성종의 어명을 무시하고, 위화도의 모래톱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병조 좌랑 이득길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내 의견에 동조했지만, 앞이 캄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가 명에 따르지 않을 것 같자 명나라 장수는 칼을 뽑아 성종의 목에 겨누고 위협을 하기 시작했다.

칼을 내려칠 듯 휘젓는 모습에 간이 쪼그라든 성종은 기겁을 했고, 그런 모습을 보는 조선군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

싹뚝!

그러다 내려친 칼에 성종의 상투가 잘려 버렸고, 너무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린 성종을 끌고 가며 그날의 일과가 끝이 났다.

“야습을 해 올 수도 있으니, 다들 경계근무에 신경 쓰도록 하라."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병사들을 다독이며 의주로 이어진 길을 보는데, 파발마가 올 기색이 없어 보였다.

중국 왕조의 전례처럼 빨리 다른 왕이 책봉되면 성종을 무시하고, 위화도를 지켜내면 되는데, 그런 전갈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날이 밝자 명에서는 성종을 데리고 나왔는데, 우리 쪽을 보며 성종을 희롱하고 당장이라도 목을 벨 것처럼 우리에게 겁을 주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도 성종을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심적으로 괴롭더라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만귀비께선 조선의 왕을 연경으로 보내라고 하십니다. 근래 뛰어난 장수를 얻으셨다고 아주 기뻐하셨사옵니다."

만귀비의 명을 들고 온 태감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명을 전하며 이지란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어찌해야 한다고 명을 받은 게 있는가?"

“귀비께서는 이지란 장군에게 이쪽을 맡기셨습니다."

“맡기셨다?”

맡겼다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 태감에게 다시 물었다.

"조선을 더 점령하든, 그만하든 장군께 맡기겠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 말의 끝은 이후 장군이 얻은 땅을 장군께 드리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아하하하. 그렇군. 맡긴다는 의미가 그런 것이었군."

이지란 장군은 자신이 조선을 점령한다면 제후로서 조선 땅을 다스릴 수도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조선의 국왕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태감에게 선물을 주고, 길들인 조선의 왕을 데려가게 내어주었다.

“장군, 그럼 병시를 움직이겠습니까?”

"움직인다 하더라도 위화도의 모래톱을 뚫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위화도에 조선의 병사들이 다 몰려 있으니 그 상류인 개들포란 곳으로 강을 건너면 되옵니다. 그곳도 말을 타고 건너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방비하는 이가 없느냐?"

"본래 있었으나 지금은 없사옵니다. 어제 정찰병이 확인한 사항이옵니다.”

"그럼 그쪽으로 압록강을 넘는다!"

***

갑자기 하루 전부터 강 건너에 성종이 오지 않았고, 몇몇 기마병들도 사라진 것이 보였다.

그냥 눈으로 보았다면 몰랐을 것인데, 망원경으로 매일 꼼꼼히 얼굴을 살펴보았기에 어떤 이들이 없어진 것인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이 변화가 뭔지 고민할 때 개들포를 감시하던 이가 급히 말을 몰아 왔다.

“개들포로 명나라 군사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거기로 도강하려는 거 같습니다!"

상류인 개들포에서 강을 건너온다면, 위화도의 모래톱을 막아봐야 소용이 없었다.

“여기서 싸우다 전멸하기보다는 뒤로 물러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소. 다른 의견이 있소?"

병조좌랑 이득길도 뽀족한 답이 없었기에 후퇴에 동의했다.

연락을 위해 와 있던 춘봉 상단의 연락선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여 한양으로 보냈고, 주위 고을에도 전령을 보내 피난을 명했다.

그리고 짊어질 수 있는 병량만 챙기고는 모두 강물에 던져 넣어버렸다.

병력을 뒤로 물려 후퇴하기 시작하자, 의주의 만상은 물론이고 일반 평민들도 피난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도성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고, 위에서는 명나라 군사들이 내려오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는 단어에 딱 알맞았다.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성종이 사로잡힌 이후 파발마로 보낸 그 병사가 도성의 전언을 들고 온 것이었다.

원종은 얼른 서찰을 열어보았는데,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왕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로가 된 성종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를 없애려면 새로운 왕이 옹립되어야 하는데, 그런 새로운 왕에 대한 것이 서찰에는 하나도 쓰여있지 않았다.

그리고, 명나라군의 우회를 예측했는지 위화도를 지키지 못하면 후퇴하여 평양성으로 집결하라고 되어 있었다.

“후퇴하여 평양성으로 집결하는 것은 청야(淸野)를 위한 준비를 하며 후퇴를 하라는 명령입니다."

같이 서찰을 본 병조 좌랑 이득길은 서찰에 나와 있는 평양성 집결의 뜻을 내게 이야기했다.

"청야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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