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전장에 먹히다.
명나라 장수 이지란은 조선군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양두충과 기병들을 먼저 내보냈다.
본래라면 협상을 해서 어떻게든 싸움 없이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미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고 하니 그러기엔 늦었다고 생각되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동항은 방어에 좋지 못한 열린 곳이라 이지란은 병사를 이끌고 압록강 변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본대가 강을 다 건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양두충은 이미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한 번 당하기도 했고,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는 송양지인의 아둔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기마대로 바로 공격을 했다.
하지만, 조선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기마병을 불러들여 방비해 두었고, 방어에 중점을 둘 수 있게 궁병들을 먼저 도강시켜 두고 있었다.
“틈새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물러난다!"
슈슈슉슛! 샥샥!
동남아에서 수입한 물소 뿔이 많았기에 3천에 달하는 궁병들은 모두가 각궁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의 활보다 50보 이상 더 멀리 날아가니 명나라의 기마대를 견제하기 충분했다.
궁병만으로는 기마대를 놓칠 수도 있었기에 박투르안과 여진족 전사 테이츄가 기병들을 이끌고
나서게 했다.
그러자 양두충은 제대로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 손해만 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쫓지 마라! 강을 건너는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징을 쳐 기마병들을 불러들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강을 건너던 성종은 화를 내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들을 쫓지 않고!!"
성종은 명나라 기병을 물리쳤다는 생각에 어서 뒤를 쫓으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성종이 보기에는 명나라의 기마대가 대패하여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는데, 기마대가 제대로 쫓지 않으니 속이 답답했다.
호종하고 있던 선전관을 급히 전원종에게 보내었다.
“주상전하께옵서 쫓아가 전과를 확대하라고 하셨소이다!”
박투르안과 테이츄의 모습을 보고 진퇴를 결정하기 위해 뒤에 있었는데, 선전관의 닦달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패퇴한 적을 쫓아서 전과를 확대하는 것이 병법의 정석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적이 정신없이 도망을 칠 때에 유효한 것이지 지금처럼 기병이 물러날 때에는 해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쫓으라고 하니 쫓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투르안! 거리를 두고 쫓는다! 도강이 완료될 때까지 견제를 한다!"
일각 여름 말을 타고 쫓다 보니 강을 따라 올라오는 명나라의 본대가 보였는데, 동항이 비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동항으로 우회해서 병량을 털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전관이 다시 와서 돌아오라고 했기에 말 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명의 본대가 강을 끼고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정면으로 맞붙는다!"
급히 병사들을 먼저 도강시켜 넘어오자 성종은 각궁으로 인한 궁병 전력이 예상외로 강하다는 생각에 전면전을 고려했다.
오위도총부의 총관 허종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을 한 것 같았다.
이지란의 군대만 깨트리면 산해관까지 허허벌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강 중 승리한 기세를 그대로 이어나가고 싶은 것이었다.
원종의 기마대는 우익으로 움직여 양두충의 기마대를 견제하였는데, 각궁의 사거리가 긴 이점 때문인지 명나라의 본대와 맞붙어서도 궁병으로 적의 전열을 그대로 무너트릴 수 있었다.
“하하하. 명나라가 원나라를 쫓아내고 중원을 차지했을 때 강군이라 알려졌는데, 이제 보니 허명이었구나. 이리 쉽게 진이 무너지다니!”
성종은 궁병으로 적의 전열을 무너트리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하는 명나라군을 비웃었다.
그리고 후퇴하는 명나라 군사를 쫓아 휘몰아쳤다.
"명의 증원군이 온 거 같습니다!"
쫓기던 명나라에 증원군이 오며 다시 진을 세우자 조선군은 다시 궁병을 내세워 전열을 무너트렸고, 기세를 몰아 다시 또 공격하여 몰아쳐 갔다.
한참을 쫓다 다시 증원군이 오며 맞붙었는데, 또 다시 조선군이 이기며 두 시진 넘게 명나라군을 뒤쫓았다.
“이제 그만 가야 한다. 말이 지쳤다. 이후로는 말이 질주를 하지 못한다."
여진족 전사인 테이츄의 말에 아차 싶었다.
원종도 맞붙어 싸우면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도망치는 양두춤 때문에 기운을 많이 썼다.
말을 타고 있는 기마대가 이럴 정도라면, 강을 건너오고 4시간 가까이 행군하며 적을 쫓고 있는 보군들의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일 터였다.
승리에 대한 기쁨으로 사기가 고양되어 있다고 해도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이렇게 움직였으니 다들 지칠 만했다.
그리고 계속 지면서도 다시 진을 세워 싸우고 후퇴하기를 반복하는 명나라군의 행태에 함정을 파고 조선군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추격하면 안 된다고 성종에게 전령을 보내었지만, 성종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말이 지쳤다고 진군을 멈추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 몇 번이나 싸워 이겼으니, 정신이 없는 적을 지금 몰아쳐야하는 것이다! 말이 지쳐 오지 못한다면 보군만으로도 몰아쳐야 한다!"
몇 번의 승리로 죽어가는 명나라 병사들을 보았고, 그런 전장의 잔혹함이 성종에게 승리의 열기를 심어준 것이었다.
결국 병사들은 계속 명나라군을 쫓았고, 멀리 동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화도에서 명나라군의 임시 주둔지인 동항까지 한 번에 몰아세운 것이었다.
“여기만 점령하면 요동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모두 공격하라!"
성종은 당장 동항을 점령하겠다며 군사를 움직였다.
그런 조선군의 공격에 명나라 군사들은 밀리며 압록강 하류의 갈대밭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동항으로 명나라 군사들이 다 들어 가 버리자 갈대밭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말라 있던 갈대밭은 금세 붉은 화염을 토해내는 불바다가 되었고, 명나라 병사를 쫓아 갈대밭에 들어온 조선군은 불길에 놀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불을 더 질러라!"
이지란의 명으로 갈대밭을 빙 두르게 불길이 치솟았는데, 불길은 신기하게도 동항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애초에 동항이 커지며 갈대를 잘라 지붕을 만들고, 불쏘시개로 쓰며 소비했기에 동항 주위로는 갈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놈들이 불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게 밀어붙여라!"
이지란은 몇 번의 패배를 당하며 후퇴를 할 때 죽어가는 병사들의 시체를 보며 화를 꾹 눌러 참았었다.
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병사들을 희생했었다.
그리고, 그 희생 덕분에 조선군을 갈대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고, 조선군은 불을 피해 강물에 뛰어들거나 불을 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계에 당해 흩어지는 조선군을 한숨 돌린 명나라 병사들이 사냥하기 시작했다.
“이런 썩을, 화공에 당하다니."
원종은 크게 일어난 불길을 보며 인상을 썼다.
일부러 패하는 척 끌어들였지만, 그래도 복병 정도이겠거니 했는데, 갈대밭까지 끌어들여 불을 지를지는 몰랐다.
후미의 병사들은 불을 피해 물러났지만, 그 중심에 있던 병사들은 강물에 뛰어들고 한다고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지휘관들이 다 불 속에 있는지 후미의 병사들은 어찌할지를 몰라 했다.
“도강한 곳까지 모두 물러난다! 후퇴하라!”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이라도 지켜야 했다.
명나라 병사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왔지만, 기마대가 멀쩡했기에 우리를 잡기보다는 불을 피해 물에 들어간 이들을 잡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주상전하는 어디에 계신가?"
"그것이...중군에 계셨는데,
중군에 있던 자들 중 뒤로 나오는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써글. 우선 물러나도록 한다!”
경계하며 움직여 해가 지고 어두운 밤에 겨우 압록강을 건너왔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강 장소에 남아 있던 병사들은 패퇴한 우릴 보고 놀라워했다.
“전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병조 좌랑 이득길이 물어왔지만,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저 지독한 화공을 당해 도망쳐 왔다고 이야길 하고 쉴 뿐이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밝아오자 한두 명씩 병사들이 돌아왔는데 다들 성종과 총관의 행방을 몰랐다.
박투르안과 여진족 전사인 데이츄에게 명나라군이 진격해 오는지를 감시해 달라고 내보냈고, 남아 있던 관리들을 모았다.
병량을 관리하고 하는 병조 좌랑 이득길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장수나 관리가 없었다.
“다들 주상전하와 공을 세우기 위해 다 나간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우선은 강을 건너가도록 합시다. 지금 여기서는 명나라군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압록강에 의지해 막아내야 하니 다시 건너가야 합니다."
기껏 병량과 물자를 들고 강을 건너왔는데, 다시 하루 만에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다들 피곤했지만, 지금 건너가지 못하면 죽음밖에 없다고 느꼈는지 다들 병량과 물자를 들고 압록강을 건너갔다.
강을 건너가는 동안 어떻게든 방어를 해야 하는데, 박투르안이 명나라의 전령이라며 두 명의 기마병을 데리고 왔다.
"조선의 왕을 붙잡았으며, 지금 즉시 항복하라는 명이다."
명나라 병사가 내민 서찰을 받아보니, 글씨체로 봤을 때 진짜 성종의 글씨체였다.
[...과인은 명의 장수 이지란 공에게 환대를 받고 있으며, 안전하게 있으니 그대는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무기를 내려놓고 명을 따르라...]
씨발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그냥 불에 타 죽었거나, 불을 피해 물에 들어가 익사를 했다면, 왕자들이나 종친이 있기에 새로운 왕을 옹립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로잡혀 버리면 답이 없는 것이었다.
꼭두각시 왕이 되어 나라를 가져다 바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송나라 때 정강의 변으로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사로잡혀간 일이나, 명나라 정통제가
오이라트족에게 끌려간 토목의 변처럼 전례가 있으니, 성종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세워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직접 알리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 나였으니 스트레스인 것이었다.
우선은 이 사실을 한양에 알려 한명회에게 새로운 왕을 세우던지 하라고 전해야 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필체를 알아보았다고는 하나 전하께서 안전하게 계신지도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니겠소?"
전령으로 온 명나라 사람도 옳다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전해주고 오라고 명을 받은 것인지 시간을 달라는 말에 바로 돌아갔다.
"춘봉 상단의 다우 선으로도 상황을 도성에 보고하고, 파발마를 급히 보내어 전하께서
사로잡히셨다고 전하여라.”
원종은 자신이 직접 두 장의 서찰을 쓰고 서명과 예전에 받았던 특임 마패를 도장처럼 찍어서 2명을 급히 보내었다.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병조 좌랑 이득길은 큰일이 났다고 울 것처럼 이야길 했는데,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종도 알 수가 없었다.
“우선은 전하께서 확실히 붙잡혔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소. 저 서찰이 조작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미 이 사실을 알리는 서찰을 도성으로 보냈지 않습니까?”
“진짜일 경우를 위한 대비라고 생각하시오.”
적의 기만전술일 수도 있었으나, 지금 조선에 성종이 없는 것은 확실했기에 도성에 있는 한명회나 다른 관리들이 알아서 할 터였다.
"그것과는 별도로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하오. 다시 위화도에 진지를 꾸려 진짜 전하가 붙잡히셨는지를 확인해야 하오. 그때까지는 강에 의지해 어떻게든 적을 막아봅시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병사들을 이끌고 오후까지 강을 건너 위화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그제야 명나라에서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다.
머리가 다 풀어지고 갑주도 빼앗긴 채 행색이 너덜너덜한 자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병사 절제사 오순이로군."
위화도에서 같이 싸웠던 이였기에 바로 알아보았으니 그 행색을 보니 살아있는 게 다행으로 보였다.
“전하께서 사로잡힌 것이 맞소?"
“맞소이다. 갈대밭에서 2만이 넘는 병사가 죽었소. 어서 항복하도록 하시오. 버텨봤자
죽음뿐이오."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항복을 종용했는데, 항복하기 위해 위화도에 진을 꾸린 것이 아니었다.
“전하를 직접 보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오. 우린 우리의 본분을 지키겠소. 돌아가시오!"
"그럼 이놈이 죽을 수밖에."
우리가 절제사 오순의 말을 듣지 않자 명나라 장수가 큰 칼을 들어 오순의 목을 베어 버렸는데, 오순은 자신이 죽을지를 몰랐는지 놀린 눈으로 목이 잘렸다.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자라면 살아있을 필요가 없지. 그대들은 한 줌밖에 안 되는데, 왜 죽으려고 하는가?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물러날 시간을 주겠다!"
“우리는 전하의 옥체가 상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러면 이 진 체를 접고 물러나겠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같은 입장이다."
"그럼 그 얼간이를 직접 데리고 오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