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과거의 트라우마.
"위, 위화도?"
압록강에 있는 그저 그런 작은 섬.
모래가 많이 쌓였을 때는 물길이 줄어들어 조선 땅과 연결되기도 하는 작은 모래 섬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에서 이 위화도는 보통의 섬이 아니었고,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섬이었다.
태조가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회군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전하. 병사 절제사 오순이나 전원종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의주에 3만의 군사가 모인다면, 그 이후가 걱정이 될 뿐이옵니다."
도승지 홍귀달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위화도와 인접한 의주에 3만의 병사를 가진 장수가 있다면 다시 위화도 회군과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위도총부의 총관 허정을 신뢰하고는 있지만, 사람 일이란 것이 어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오위의 병력들이 모두 다 북방으로 가 있을 때 그들을 거느린 자가 변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막을 방도가 없사옵니다.”
명나라의 포로를 보고 북방을 정벌하여 태제, 황제가 되는 웅심으로 부풀어 올랐던 성종의 뜨거웠던 가슴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도승지 홍귀달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다 꾸려진 3만의 군대가 의주에서 역심을 가지고 한양으로 내려온다면 그걸 막을 방도가 없었다.
오늘 느꼈듯이 오위의 병력은 편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도성을 방어하는 내금위나 겸사복으로는 수적 열세로 인해 3만을 막아 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총관인 허정을 견제할 수 있게 용양위의 지휘는 허정에게 충좌위의 지휘는 다른 이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은 어떠한가?"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태조께서 위화도 회군을 하실 때 요동 정벌군에 좌군 도통사(左軍都統使)로 조민수가 있었사옵니다."
위화도 회군을 할 당시에도 요동 정벌군이 역심을 품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최영이 팔도 도통사로 우두머리가 되고, 조민수가 좌군 도통사, 이성계가 우군 도통사로 있었었다.
하지만, 아둔한 우왕이 최영이 떠나면 안 된다고, 최영을 곁에 두었고, 결국 조민수와 이성계로 요동정벌군을 지휘하게 했다.
그렇게 두 명의 지휘관이 있었음에도 둘이 협심하여 회군을 결행했었다.
지금 오위도총부의 총관 허정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이를 같이 세운다고 하더라도, 그 둘이 협력을 해버리면 말짱 꽝이었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 종친을 보낼 수도 없었고, 국구인 한명회를 보낼 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종친이나 사이가 틀어진 한명회를 보내는 것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었다.
명나라의 군대를 이겼다고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성종은 총관 허정을 믿고 오위의 군권을 맡겼지만, 승리했던 모래톱이 위화도라는 말 하나 때문에 없던 의심이 마음속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태조가 남긴 어두운 그늘 중 하나였다.
허정도 태조대왕처럼 뜻을 세웠다고 군사를 이끌고 내려와 버리면 자신의 대에서 조선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허면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친정을 하시옵소서."
"친정?"
“네. 전하. 위화도에 전하께서 가신다면 위화도의 일이 재현될 일이 없지 않겠사옵니까?"
"으음. 그렇겠군.”
위화도에서 병력을 거느린 장수가 변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 최고의 방법은 왕이 직접 가는 것이었다.
친정을 하게 되면 병권을 장수가 아닌 왕이 가지게 되는 것이니 변란이 생길 수도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초전에서 4천의 기마대를 물리치며 조선의 힘이 명나라에 못지 않기도 했으니 친정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친정하여 명나라의 군대를 물리치면 북방을 점령한 태제로서 후세에 길이 칭송을 받을 터였다.
“짐이 직접 친정하겠다!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바꿀 것이다. 위화도를 넘어 요동을 점령했다는 것으로 위화도가 기억될 것이다. 내금위와 겸사복은 친정 준비를 서두르라!"
***
"응? 전하께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올라오고 계신다고?"
원종은 성종의 친정 소식에 깜짝 놀랐다.
“네. 그렇습니다요. 용양위와 충좌위를 위시하여 내금위와 겸사복의 군졸들까지 3만 병력을 거느리고 북상하고 계십니다!"
“허허. 전하께서 풍찬노숙을 견뎌내실 수 있으려나.”
물론, 친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왕으로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여러 내시들이 붙어서 수발을 들 터였다.
하지만, 그런 잡다한 것들을 실제 지휘관이 신경 쓰게 되면 전술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뭐, 물론, 성종에게 엄청난 전쟁 재능이 있어서 명나라군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정복 군주로 이름이 남을지도 몰랐다.
한창 더운 7월에 성종이 이끄는 병사들이 의주에 도착을 했고, 그 소식이 명나라 장수 이신록에게도 전해졌다.
위화도 전초전 이후 근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명나라의 이신록 장군도 그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패하고 돌아온 양두충에게 조선군의 정보를 얻었고, 반으로 줄어든 기마병을 늘리기 위해 주변의 여진족들을 복속시켜 잃어버린 기병을 채우려 애썼다.
그리고, 명나라의 군사가 5만의 대군이라고 했지만, 덩치가 크고 병사로 쓰기 좋은 화북의 병사들은 몇 없었고, 대부분이 강남 출신의 병사들로 키가 작고 뼈가 여물지 못한 어리거나 늙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정병을 보내 달라고 연경에 표를 올리게 되면, 결국 능력 없는 장군이라 찍혀 강등당하게 되니 이신록 장군도 어떻게든 이들을 강군으로 길러내기 위해 훈련을 시키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강과 모래톱을 의지해 방어하는 전략이라. 그러고 보니, 옛날 수나라가 고구려를 칠 때 수계에 당했었지."
이신록은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와서 패한 것들을 떠올렸다.
수양제는 강을 건너는 동안 공격을 받았었고, 청야전술로 보급에 문제가 생겨 후퇴를 하다 수계 공격으로 대군을 잃었었다.
그리고 당나라의 군대는 강은 건넜으나 거점 방어에 성공한 고구려의 성에 발이 묶여 전쟁에 패했었다.
수십만이 정벌하려고 했음에도 실패했었는데, 이제는 4만으로 줄어든 그것도 정예도 아닌 병력으로 조선을 정벌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만귀비가 내린 명령에는 조선 정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조선의 국왕과 잘 협상하여 사과와 항복을 받아내고 끝내는 방법도 있었다.
이신록이 생각하기에는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안전한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갑자기 조선의 국왕이 친정을 선언하며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고 했기에, 조선과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고 있었다.
***
"명의 기병들과 명나라에 붙은 여진인들의 소규모 기마가 압록강 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위화도에 모래 진지를 만들자 다른 곳으로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종의 친정으로 커다란 군막이 세워졌는데, 군막 안에서는 고위 관리들과 장군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한양의 정전이 이곳 의주로 옮겨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도를 보시면 여기 위화도가 가장 강폭이 좁으며 그다음으로는 상류의 개들포가 가장 좁습니다. 물론, 모래톱으로 인해 강을 건너기도 이곳이 가장 편합니다."
“개들포는 병마 절제사 전원종이 여진인과 안동도 감영 병사들로 기마대를 꾸려 도강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안동도 관찰사인 전원길은 어디 있는가?"
“전 관찰사는 여진인들이 명나라에 붙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러 여진족장들을 만나고자 북방으로 가 있사옵니다."
“흠. 그렇군."
성종은 한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는데, 원종이 전한 현대식 지도 제작법 덕분에 압록강변은 물론, 요동반도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허 총관. 궁금한 것이 있네. 지도에 보면 압록강을 기준으로 조선의 땅에는 여러 군진과 산성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압록강 밖은 그런 표시가 하나도 없는 것 같군. 정보가 없어서 그리지 못한 것인가?"
“전하. 아니옵니다. 동항에 있던 춘봉 상단이나 안동도 관찰사인 전원길의 사람들이 있기에 압록강 밖의 지형지물들도 지도에 다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그럼, 지도처럼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 많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요동반도 이후 연경까지 가는 길도 새롭게 그린 지도가 있습니다.”
성종은 새로 가져온 지도도 꼼꼼히 살펴봤다.
여진족의 땅이라 그런지 평원에 듬성듬성 방어를 위한 산성이 있을 뿐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반면에 압록강 안쪽의 조선 지도에는 방어 진지인 진과 산성이 수십 개가 표시되어 있으니 비교가 절로 될 수밖에 없었다.
저런 방어 진지가 있으니 중국의 병사들이 쳐들어와서는 패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명나라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항은 시가지를 둘러싼 성도 없었고, 요동 일대가 텅텅 비어 있는 빈집처럼 보였다.
“저 지도가 맞는다면 동항의 명나라 군사만 깨트리면 요동 반도까지 거칠 것이 없는 것인가?"
"그게 그렇긴 하옵니다. 봉황산성이 있사오나 북쪽 내륙에 있기에 평원으로만 따진다면 거칠 것이 없사옵니다."
"그럼, 우리가 요동까지 가서 요하 강을 기준으로 진을 설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북쪽으로는 봉황산성을 기준으로 삼아 국경을 정한다면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친 것만큼 영토를 늘리게 되는 것 같은데."
“하오나, 여진인들과 명나라에서 가만히 있겠사옵니까?"
“상서, 지도를 보시게. 압록강변으로 만들어진 진과 산성이 한두 개인가? 우리도 저게 하루아침에 다 만들어졌겠는가? 요하와 봉황성을 기준으로 두고 저런 방어 진지를 세우다 보면 자연스레 방어할 수 있는 우리의 땅이 되는 것이네."
"옳사옵니다. 근래, 조선에 이렇게 물산이 풍부하고 인력이 남은 적이 없었사옵니다. 국경을 넓히고, 병사를 주둔시켜 지켜낸다면 평원에서 경작을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안동도 관찰사인 전원길이 여진인들과 친분이 깊다고 하니 그들을 세종대왕처럼 귀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성종의 말에 찬성하는 관리들도 나오니 다들 그럴듯하게 둘렀다.
그리고 장수들도 잘 만들어진 지도를 보자 어느 정도 확신이 들기도 했다.
지도에는 산해관이 있는 연경 인근까지 제대로 된 관이나 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압록강을 기준으로 방어만 하며 있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압록강을 넘어 요동으로 갈 시기가 온 것이다. 특히나 명나라는 아직도 폐 태자의 내란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일 것이다."
폐 태자가 강하를 벗어나 사천 땅으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있었기에 폐 태자의 난이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폐 태자에게 신경 쓰는 만큼 명나라에서는 요동 반도를 조선에게 넘기고 내란부터 정리를 하려고 할 터였다.
그 시간에 압록강 변의 진지들처럼 방어를 위한 준비를 한다면, 요동 평야가 조선의 땅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위화도를 건너 요동 땅으로 진군하도록 한다!"
***
“압록강을 건너 진군을 하니 이제 개들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내려와서 우익을 맡으라고?”
성종이 직접 친정을 하며 요동 땅을 점령하겠다고 강을 건넌다는 소식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동항까지는 평원이 이어져 있는데, 이런 평원에서 조선군이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성이나 험한 지형지물에 의지해 방어를 했지, 점령을 위한 공격은 해본 적이 없는
병사들이었다.
특히나, 평원의 특성상 기마 병력이 더 많아야 하는데, 조선의 면제상 보군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마병을 이끌고 하류로 내려오니 성종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고, 동항에서도 알아챘는지 명나라 장수 이지란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