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전초전. (2)
원종은 명나라의 기마대가 움직인다는 것을 오순 장군에게 알려주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려고만 했었다.
애초에 5만이나 되는 명나라의 대군과 싸워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헌데, 자신이 나타나지 명나라의 기마대가 우왕좌왕하더니 물러나며 패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공격의 적기요."
"단주 지금이요! 지금 몰아쳐야 하오!”
여진족 전사인 테이츄는 물론이고, 배로 합류한 원나라의 후예 박 투르안도 지금 몰아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니, 어쩌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미 양두충의 본대는 강변을 벗어나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서 싸우는 거 보다 뒤쫓아 입히는 피해가 더 크오! 지금이라도 가야 하오!"
박 투르안의 한라마가 앞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갈퀴를 흔들며 앞발을 쳐들었는데, 잠시도 몸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런 한라마의 모습에 자극이 되는지 다른 말들도 몸이 달아 움찔거리고 있었고, 여진인들도 언제든지 박차를 가해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종이 보기에도 공격을 명하게 되면 수월하게 이길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양두충의 기마대가 크게 패해 돌아간다면 명나라의 본대가 움직일 수도 있었다.
원종은 그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명나라의 기마병이 몇 정도였지?"
“5만 중 대략 1만이었소이다."
양두충의 기마대가 주둔지인 동항을 나올 때 세어본 숫자가 4~5천이었으니, 명나라가 보유한 기병의 절반이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원종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기마부대를 최대한 줄여 놓으면 명나라 병사들이 주위를 크게 살피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이 신경 써 개간한 조밭도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되었다.
"적을 쫓게!"
***
"양장군님! 후방의 놈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
양두충은 부장의 말에 후방을 살펴보니 진짜 기병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조선의 병사들이 아니었구나. 제길! 속았다. 기수를 돌린다! 조선 놈들을 박살 낸다!"
후퇴하며 물러나던 양두충은 급격하게 말머리를 돌렸고,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말머리를 돌려 다시 압록강 모래톱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기마대와 보병의 차이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전진과 후퇴, 후퇴와 전진을 구분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병은 한번 흩어지면 재집합 장소에나 가야 다시 정리를 해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말을 탄 기병은 달랐다.
말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는 성향도 있는 데다가 기마병들은 후퇴하여 도망치는 것에도 여유가 있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기에 전황을 보고 말머리를 돌리거나 우회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말을 탄다는 것 자체로 일반 보병보다 고급 병종이었기에 진퇴의 규율을 잘 지킨다는 것도 있었다.
다시 말머리를 돌려 양두충의 기병들이 모래톱으로 짓쳐 들자 모래톱을 막고 있던 조선군들도 다시 진형을 정리하며 양쪽을 막아내기 바빴다.
하지만, 뒤늦게 공격해 온 원종의 여진족과 조선인들이 뒤를 막자 앙두충의 기병은 앞뒤가 막힌 포위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기병의 운신이 힘든 모래톱에서 앞뒤가 막혀 버리니 기병들은 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양장군 후퇴해야 합니다!"
“제길. 후퇴하는 우리를 꼬드기기 위해 시간 차를 두고 공격을 하다니. 놈들의 군략에 당했다."
양두충은 혼란에 빠지려는 기병대를 수습해 어떻게든 포위를 뚫으려고 했다.
부관들을 돌진시켜 후방에 틈을 벌리려고 했기에, 쐐기 모양의 축을 만들어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콩이 불에 볶아지는 괴상한 소리가 울리며 말과 병사들이 무너져 내렸다.
터터터텅! 터텅!
연속으로 울리는 괴상한 소리가 십여 번 나자 축을 만들던 이들이 금세 무너졌는데, 오히려 그 틈으로 중갑을 두른 기병들이 비집고 들어와 양두충의 기병들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몇 번이나 축을 만들어 포위를 뚫어 나오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양두충은 포위를 뚫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도망을 쳤다.
대장이 그렇게 도망치니 다른 기병들도 함께 강물에 뛰어들었는데, 강 너머에 있던 기병들도 일이 그른 것을 알고는 같이 강물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싸움을 보고 있던 원종은 물에서 올라오는 명나라 병사들을 손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양두충은 놓쳤으나 포로를 이리 많이 잡았으니 대승 중의 대승이오!"
오순 절제사는 보군으로 같은 수의 기병들을 물리쳤다고 아주 좋아했다.
"포로가 대략 600명은 되는 거 같습니다. 포로는 오 절제사께 다 드리겠습니다.”
별동대처럼 이리저리 다녀야 했기에 원종은 포로를 다 오순에게 넘겨주었다.
"하하하. 고맙소이다. 놈들의 병장기를 모으고, 일어서지 못하는 적은 그냥 방치하라!"
부상을 치료하는 것도 아니고, 확인해서 죽이는 것도 없이 그저 방치하라는 말에 원종은 그 의도가 궁금했다.
“아마 도망친 양두충의 보고를 듣고, 확인하러 오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 죽지 못하고 신음만 흘리는 자기 병사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상자들을 챙겨가면 더 좋습니다.”
절제사 오순은 나름대로 전장의 철칙과 군략을 가진 이였다.
부상자들을 명나라에 떠넘겨 손해를 보게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사로잡은 포로들은 어찌할 것입니까?"
“의주에서 여진인들의 포로를 다루는 방식을 들었는데, 그 방식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럼, 옷을 다 벗기고, 줄로 묶어 도성으로 보낼 생각입니까?"
여진인들은 사로잡은 포로를 손끼리 묶어 줄을 세워서는 자신의 부족으로 끌고 가 모욕을 주었는데, 그걸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잡혀 온 포로들을 보며 여진인들은 전쟁에 대한 지지와 참전을 결정하게 되는데, 조선에서도 그렇게 포로들을 구경시켜 이득을 얻겠다는 말이었다.
“오늘 대승을 거둔 것을 수급을 잘라 증명하기보다는 사로잡은 포로를 보내어 증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오순의 말에 원종도 동의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명나라 사람들이 입고 있는 장구류와 말을
가져가겠습니다.”
“흠. 별동대로 움직인다면 말이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절제사 오순은 삼십 대라 그런지 말이 그럭저럭 통하는 사람이었다.
***
"저기 온다! 아버지 저기 와요!"
칠동이는 어른들이 올라가지 말라는 서낭당 나무에 올라서서 멀리 줄지어 오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평상시라면 신령한 나무에 올라갔다고 경을 칠 어른들이었으나 오늘은 다들 멀리서 온다는 명나라 포로들을 구경한다고 나무에 오른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매나, 이렇게나 많은 포로를 잡았다고? 줄이 끝이 없는 것 같은데."
“압록강변에서 오순 절제사와 전원종 절제사가 합심해서 명나라의 기마대를 전멸시켰다고 하더니 그게 참말이었구만."
“그러게. 난 춘봉 상단 사람들이 이야길 하길래 자기들 단주니깐 그렇게 올려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포로들을 보니깐 진짜였구만."
평양성 인근의 배담골 사람들은 줄지어 끌려오는 명나라 병사들을 보고는 일부러 말을 걸어 진짜 중국 사람인지 확인을 했다.
이시애의 난이라던지 여러 사건들에서 야인이 아닌데도 야인으로 몰아 죽이던 일이 흔했기에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말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머리부터 상투를 튼 흔적이나 자국 자체가 없었기에 진짜 싸움에서 이기고 포로로 잡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이런 포로의 행렬이 평양을 지나 개성, 도성에 닿지 사람들은 명나라의 포로를 구경하기 위해 길에 나왔고, 형편없는 명나라 포로들을 보게 되자 대국이라는 명나라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절제사 오순은 자신의 군공을 증명하고자 여진인들의 방식으로 포로를 보낸 것이었는데, 그 의도와는 다르게 민족적인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하하하. 보군 4천으로 기병 4천을 물리치고, 포로를 600명이나 잡았다니 참으로 큰 군공을 세웠도다!"
성종은 6조 거리에 줄 세워진 명나라 포로들을 보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보고가 그제야 체감이 되었다.
이제까지 선대들이 외적과 싸웠으나 이리 포로를 많이 잡았던 적이 없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대에 풍작이 이어지고, 물산이 풍부해져 살기가 좋아졌으니 요순시대와 같다는 말이 헛된 칭찬인 줄 알면서도 우쭐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렇게 외적과의 싸움에서도 크게 이겼으니 성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조가 나라를 세우고, 태종이 기틀을 잡아 세종이 흥하게 했던 것이 자신의 대에 대융성하게 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한창때인 20대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니, 더는 대국이라는 명나라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항에 주둔하고 있는 명의 군사들을 물리쳐 안동도로 명명한 요동 일대를 조선의 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웅심이 일었다.
'암암, 선대 대왕들이 하지 못한 영토의 확장을 이루어 낸다면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황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당장이라도 북방을 호령하는 강한 군주가 되고 싶은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허 총관 오위도총부에서는 아직도 완편(完編)이 멀었는가?”
“호분위(도성의 서쪽과 평안도)는 완편을 하여 의주로 올라가고 있사오나, 의흥위(개성,경기,강원,충청,황해도)는 거리가 멀어 모으는 시간이 걸리고 있사옵니다.”
“용양위(도성의 동쪽과 경상도)나 다른 위는?”
"용양위와 충좌위(도성의 남쪽과 전라도)는 편성 후 올라오는 중이오며, 충무위(도성의 북쪽과함경도)는 편성 후 대기를 명하였사옵니다.”
가까운 도성과 먼 지방이 하나의 위로 묶여 있었기에 그 편성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의주에서 전쟁 중임에도 편성이 아직 안되었다는 말에 성종은 고개를 저었다.
이 오위의 구성을 보면 도성의 어느 한쪽과 지방이 묶여 있는데, 이는 세조가 만든 군제였다.
세조 때에 삼군부에서 오위도총부로 전환하며 오위 안에 중앙군과 지방군을 함께 설정하여 연계를 시켰는데, 이것이 진관체제의 핵심이었다.
지방의 요충지마다 진관을 설치하여 진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군을 만들었고, 이
지방군과 도성의 오위군이 합쳐지는 것이었다.
지금 정남 병사들을 모으는 것도 각 진에 등록된 정남들을 징집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
사실, 1년 내내 근무하는 상비군은 도성의 내삼청(내금위, 우림위, 겸사복)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원정을 해야 하거나 하는 큰 전쟁에서는 병사들을
모으는 데만 한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훗날 임진왜란이 터지고 난 이후에 이 진관체제는 지방의 작은 전투에는 괜찮지만, 큰 전쟁에는 병력을 합치고 운영하는 데 약점이 많다고 하여 폐지가 되었다.
이후로는 각 지역의 군사를 등록된 진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각 현 별로 한 곳에 집결시켜 한 사람의 지휘하에 두게 하는 제승방략 체제를 도입하게 되었으니, 성종은 진관체제의 단점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달 말까지는 징집을 마치고 의주에 3만 명 이상 주둔시키도록 하시오. 한시가 급하오.”
“네. 전하 소신이 직접 용양위와 충좌위를 이끌고 의주로 향하도록 하겠나이다.”
"명의 포로들은 철광과 석탄광에 보내어 일하게 하라. 명나라와 싸워 승리를 거둔 오순과 전원종의 공에 대해서는 상황이 끝난 후 논공행상하도록 하겠다."
성종은 병사들을 모으는데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 언짢았지만, 첫 전투에서 명나라의 포로를 저리 잡아 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전에 들어 도승지 홍귀달의 귓속말을 듣고는 마음이 급히 가라앉았다.
“전하. 의주에 명나라의 군사와 같은 수의 군대를 주둔시켜야 하는 것은 맞사오나, 그 위치가 걱정이 되옵니다."
"위치가 걱정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에 절제사 오순이 승리한 모래톱이 바로 위화도라고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