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08화 (308/327)

308. 진짜 춘장.

"천상의 맛과 지옥의 맛이라. 왠지 2개다 먹어보고 싶구만."

"방금 천상의 맛인 가수저라를 먹어봤으니 지옥의 맛이라는 그 짜장면도 먹어보고 싶은데, 먹을 수 있나?"

"그 짜장면이 명나라의 장군들이 죽어가면서도 먹었다는 그거지?"

“그렇다면, 우리도 그걸 먹으면 죽는 건가?”

“그 독은 빼고 짜장면을 해주면 안 되는 건가?”

명나라의 장군들을 독살시켰다는 음식이라는 것이 몽골인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는지, 다들 짜장면을 먹어보고 싶어 했다.

한국에선 흔하디흔한 짜장면이 여기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먹어야 하는 별미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춘장이 없고,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오래 묵은 검은 된장도 없다는 것이었다.

“짜장면을 해 드릴 수는 있으나, 그 재료를 만드는데 한 달 정도 걸립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춘장을 담으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기에 날짜가 되는지부터 물었다.

“한 달? 그냥 그 재료를 산해관 인근에서 구해오면 되는 거 아닌가?"

산해관 인근의 중국인들을 약탈해서 재료를 가져오겠다는 것이었다.

“짜장면이 그런 흔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면, 이번에 명나라 장군들이 그렇게 먹고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긴, 특별하니깐 그런 장군들이 모여있는 연회에서 올라갔겠지."

“특별한 음식을 먹기 위해 한 달이라. 좋아. 기다리지."

“나도 기다리도록 하지. 아주 오랜 기간 열리는 혼례식이 되겠군. 하하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온 몽골 부족장들이 짜장면을 기다리겠다고 하자, 이건 이것대로 난감했다.

함께 온 이들까지 하면 300명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춘장을 대량으로 준비해야 했다.

우선 하파 부족장이 가지고 있는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었고, 중국인들이 먹는 노란색의 콩 네 가마와 토기나 항아리도 가져오라 시켰다.

가르디란과 짜장면이란 것을 해 보고 싶다는 몽골인 두 명을 시켜 잘 말려진 밀을 절구에 찧어 밀가루로 만들었다.

이후 밀가루에 조금씩 물을 넣어 섞어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을 많이 넣어 반죽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밀가루에 물이 뿌려져 일정 부분만 엉겨 붙어 있는 상태여야 했고, 그런 상태로 만들기 위해 젓가락으로 비비듯이 섞어주었다.

밀가루가 물기를 머금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재워 주었고, 이걸 다시 체에 걸러 뭉쳐진 밀가루 반죽은 걸러 내었다.

습기를 머금은 밀가루를 고운 면포에 싸서는 찜기에서 쪄내었는데, 밀가루를 익히는 것이었다.

찜기에서 쪄지며 익은 밀가루는 다시 습기를 머금어 뭉치게 되는데, 이걸 또 체에 걸러 반죽화된 것을 걸러 내었다.

본래라면 여기에 장을 발효시키는 유익균인 황국균을 넣어 밀가루에서 발효가 일어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평원에서 황국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된장을 떼어 익힌 밀가루와 버무려 두었다.

된장에 있는 유익균들이 익힌 밀가루에서 번식을 하게 되면 황국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누룩이 될 터였다.

물론,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은 경우라면 그냥 곰팡이가 피고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기온도 30도 전후로 맞춰 주어야 했기에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토기에 밀가루와 된장을 섞어 넣고, 여러 곳에 두고 이틀을 기다렸다.

"숙수님, 이건 푸른색의 꽃이 피었습니다. 이건 먹지 못하는 겁니까?"

“그래. 그건 실패다. 제대로 발효가 되었다면 흰색과 노란색의 꽃이 피어야 한다. 푸른색의 꽃이 핀 것은 절대 먹으면 아니 된다.”

여러 곳에 두었던 10개의 토기들 중에서 단 2곳에서만이 흰색과 노란색의 유익균 곰팡이 꽃이 피었고, 밀가루 누룩을 얻을 수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꽃이 피는 것이 2할이었군요."

"아니, 여기이기에 2 할인 것이다. 조선이라면 8할의 성공을 했을 것이다."

“날씨가 중요한 것이군요.”

"그래. 건조하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이런 평원에서는 발효가 잘 일어나기 힘들다. 이 짜장면도 평원과 북방이니 더 귀하게 취급받을 것이다. 그리고 발효가 제대로 일어났던 2곳의 위치를 기억해 두어라."

익힌 밀가루에 곰팡이가 피는 시간 동안 몽골인들은 노란 콩을 구해왔는데, 이 노란 콩을 푹 삶아 절구에 찧어 메주콩처럼 만들었다.

그리곤 페이스트화된 메주콩에 발효시킨 밀가루 누룩과 소금, 물을 넣고는 잘 버무려 줬다.

콩과 같이 약탈해온 항아리를 불을 피워 살균하곤 버무린 콩을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밀가루 누룩이 발효되었던 장소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놔두었는데, 2~3일마다 뚜껑을 열어 된장처럼 변해가는 춘장을 뒤집어 주었다.

그렇게 보름이 되니, 청국장 냄새보다 더한 발효 냄새가 솟구치기 시작했는데, 썩는 냄새와 발효되는 냄새의 중간 정도의 냄새였다.

“크윽.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사람의 변 같습니다.”

가르디란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 발효되며 솟구치는 역한 냄새를 맡자 과연 이걸 먹을 수 있는 건가 의구심을 가졌다.

그리고, 다른 몽골인들도 썩은 냄새가 나는 이걸 먹을 수 있는 건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로 썩은 음식을 명나라 장군들이 먹고 죽었을 거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제 제대로 익은 거 같으니 내일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고, 하파족장에게 이야길 하게."

***

근 한 달이라는 시간과 풍겨오는 썩는 냄새로 인해 짜장면에 대한 호기심이나 먹겠다는 식도락의 욕망이 다들 줄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죽음과 맞바꾼 맛이라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 몽골인들은 몰려들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면을 수타로 쳐서 만드는 게 불가능하여, 밀가루 반죽을 해서 칼로 써는 칼국수 면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큰 냄비 2개를 화덕에 걸었는데,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가르디란이 맡았다.

“먼저, 냄비에 설탕을 올려 졸여야 하네."

원종은 자루째 들고 다니는 설탕의 대부분을 냄비에 넣고는 졸였다.

바로 짜장면의 색깔을 내기도 하며 맛을 좌우하는 캐러멜 라이징을 위한 것이었다.

가뜩이나 정제되지 않은 갈색의 설탕이었는데, 졸이게 되니 금세 뻑뻑한 검은색의 캐러멜이 되었다.

"와아! 이 달달한 설탕 굽는 냄새는 정말 끝내주는군. 윽! 이건 또 뭐야?"

달달한 단내가 나는 냄비에 썩은 냄새가 나는 춘장을 넣었고, 캐러멜의 검은 색이 춘장에 배길 수 있도록 볶았다.

그리고, 캐러멜과 춘장이 제대로 섞인 것 같자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에게 구해온 기름을 듬뿍 넣어 춘장을 기름에 볶았다.

기름에 튀겨지듯이 한참을 볶게 되자, 기름과 불길의 냄새에 밀려 춘장에서 나던 역한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경을 하고 있던 몽골인들도 저걸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썩은 냄새가 사라지며 진한 갈색의 모양이 되자 신기해했다.

볶아낸 춘장에서 기름을 덜어내고 춘장을 따로 모아 두었다.

이후 잘게 다진 양고기를 냄비에 넣고 볶기 시작했다.

짜장면에는 돼지고기가 최고였지만, 이곳에서는 생선만큼이나 구하기가 힘든 것이 돼지고기였다.

짜장면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양파도 구하기 어려웠고, 구할 수 있는 것은 파와 당근밖에 없었다.

마늘과 생강은 우리가 들고 온 것이 있었기에 쓸 수 있었는데, 양파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양고기가 노릇해지자 당근과 파를 넣어서 볶았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그리고, 볶아둔 춘장을 넣어 볶았는데, 다시 불길이 가해지자 양고기 특유의 냄새와 춘장 특유의 냄새가 섞여들며 괴상한 냄새를 풍겼다.

냄새를 죽이기 위해 가져온 후춧가루와 인도 마샬라 가루를 넣어 어떻게든 냄새를 줄여내었다.

그렇게 잘 볶아진 짜장을 그대로 면에 올려 먹으면 간짜장이 되는 것인데, 사람이 많은지라 멸치와 다시마를 삶은 물을 넣어서 다시 끓였고, 전분물을 넣어 뻑뻑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약간 연하기는 해도 짙은 갈색 계통의 짜장이 만들어졌다.

칼국수 면을 담아 두었던 그릇에 짜장을 올리고, 부족장들급에게는 달걀을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 위에 올려주었다.

“이 젓가락으로 비벼서 먹는 것이 온대, 젓가락질이 힘이 들면 나무로 된 삼지창으로 이렇게 말아서 먹어도 됩니다.”

왠지 짜장면도 손으로 먹으려고 할 것 같아, 춘장이 발효되는 기간동안 호위들에게 나무로 포크를 만들게 했는데, 다들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짜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검은색이라 먹으면 죽을 것처럼 생기긴 했군. 처음 냄새를 맡았을 때는 썩은 냄새가 났는데, 지금은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군”

“그 냄새가 나면서 이리 검은색의 음식이었다면 무서워서 못 먹었을 게야. 하하하."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 면을 춘장에 비비거나 찍어서 먹었는데, 짜장면이 입안에 들어가자 훅 풍겨오는 짙은 향에 몽골인들은 놀랐다.

이제까지 먹어봤던 음식들과는 맛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가수저라가 단내가 나는 천상의 부드러운 맛이었다면, 짜장면은 짙으면서도 끈적한 맛이었으니 극과 극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파 족장은 단맛이 느껴지는 끈적하고 강한 짜장의 맛을 보니 왜 명나라의 장군들이 이걸 먹고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음식에 독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단맛이 있었다.

사위가 된 하느구이는 물론이고, 다른 부족장들도 새로운 맛에 만족을 했고, 더 먹고 싶어 했다.

원종은 많이 먹는 몽골인들 덕분에 두 시간 내내 가르디란과 짜장을 볶았고, 밀가루와 춘장이 다 떨어지자 그때서야 몽골인들은 잘 먹었다고 찬사를 했다.

사실, 한국의 조미료가 제대로 들어간 짜장면에 비하자면 맛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춘장을 만들고 했기에 오래 묵은 된장으로 만든 짜장보다는 본래의 짜장면 맛에 더 가까웠으니 몽골인들은 진짜 짜장의 맛을 본 사람들이었다.

다시다나 미원만 있었어도 그 맛이 배로 뛰었을 테지만, 최대한 멸치와 다시다를 삶은 물을 넣어 감칠맛을 더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

“제대로 짜장을 배운 이는 자네가 처음이야."

원종은 가르디란에게 요리 수료증을 건네주었다.

가수저라와 짜장면에 대한 수료증이었다.

"그럼, 그 명나라의 장수들을 처리한 것과는 다른 짜장인 것입니까?"

"그에게는 이 춘장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어.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하게 가르쳤거든. 하지만, 자네는 저 멀리 오이라트 부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야 하니 대체재가 없을 것이니 춘장을 만드는 것을 알려준 것이지."

"감사합니다."

“가수저라도 그렇고, 요리가 멀리 퍼지면 변형이 되고,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어. 하지만, 요리를 할 때 그 근원을 꼭 기억하고, 제자들에게 알려주게나. 가장 좋은 것은 조선으로 요리 유학을 오는

것이겠지."

“오이라트부가 커지고, 성세를 떨치게 되면 꼭 조선으로 요리 유학을 하러 가겠습니다."

가르디란은 자신의 주군인 하느구이와 함께 서쪽으로 떠나갔다.

몽골을 떠나기에 앞서 유제품 만드는 걸 알려주려고 했으나, 소금이 부족해서 제대로 치즈나 버터를 만들 수가 없었다.

“양과 말의 젖으로 술을 만들기보다는 돈이 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치즈를 만들려면 소금이 있어야 하니, 그 소금부터 구해야 하겠지요."

"비싼 소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나?”

"제가 소금을 수레 단위로 몽골에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심양까지는 와야 거래가 가능합니다."

“거기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 좋아, 매달 중순에 심양으로 갈 터이니 그때 소금 거래를 하지.”

얼떨결에 잡혀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었지만, 좋은 거래처를 하나 뚫은 것이었다.

소금을 이들에게 팔고, 소금으로 만들어지는 버터와 치즈를 받을 수 있다면 이득이었다.

우릴 데려온 체르긴이 다시 산해관 인근으로 약탈을 간다고 하기에 그를 따라 심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몽골에 가 있는 동안 만귀비와 황제가 개봉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남경을 포위하기 위해 대회전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이렇게 되면 만귀비에게 가보긴 해야 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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