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화합을 만들어내다.
"달(Moon) 말입니까? 그럼, 그 빵인가요?"
“그래. 노란 색의 보름달 빵 말이네."
카스테라를 제대로 만드는 것을 가르쳐 주며, 케이크에 쓰이는 스펀지 빵도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었다.
그때 구워내며 이름을 달 빵이라고 알려줬었다.
"고기로 요리를 만들라고 하면 어찌합니까?"
"고기 요리는 우리에게 시키지 않을 것이야. 주변의 몽골인이든 여진인이든 고기보다는 가수저라를 원할 테니깐.”
가르디란도 말을 듣고 보니 원종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난로와 비싼 설탕이라는 부(富)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가수저라를 다들 원할 터였다.
“달 빵 중에서도 원형이 아닌 반달 모양을 만들거라 그러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해주마."
반으로 잘린 달 빵을 만들라는 소리에 가르디란은 원종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서로 만든 반달 모양의 빵을 합쳐 온전한 둥근 달 빵을 만들려고 하시는 거군요."
“그렇다. 그렇게 서로가 합쳐져 하나의 달이 되니 이번 혼례식의 의미와 가장 알맞을 것이다."
"멋집니다. 가수저라에 의미를 담을 생각을 하시다니.”
"그러니, 네 주인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전하거라."
원종은 그 혼례식 날 만들 케이크를 위해 야크(yak)의 젖을 짜 모았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야크 젖을 끓여 위로 박리되는 유지방을 긁어모았다.
일반 소젖에 비해 야크의 젖은 지방이 풍부했기에 생크림을 만들기 위해서 유지방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례식 참석을 위한 몽골부족의 세력가들이 하나둘 찾아왔는데, 그들이 올 때마다 불려가 가수저라를 만들어 주었고, 호떡도 구워주었다.
다들 설탕의 단맛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꿀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에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당연히 조선의 이름난 요리사를 초빙해 온 하파 부족장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오이라트부와 연계되어 있던 부족들도 새 신랑인 하느구이의 천막으로 모였는데, 내게 제대로 가수저라를 배운 가르디란도 그들을 만족시킬 만큼의 가수저라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이 많아지자 난로 오븐으로 만드는 것의 한계가 왔고, 제대로 된 큰 오븐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를 따라온 위사들에게 호수의 진흙을 퍼서 사각형의 진흙 벽돌을 만들게 했다.
잘 말려진 벽돌로 돔 형태의 이태리식 피자 오븐을 만들었다.
가르디란에게도 벽돌 오븐을 만드는 것을 알려줘서 만들게 했고, 비싼 쇠로 된 난로가 아닌 해체 후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벽돌 오븐을 몽골인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몽골인들은 직접 불에 굽거나 물에 넣어 끓여내는 음식이 전부였는데, 오븐으로 굽는 음식의 맛을 알게 되자 새롭다며 뭐든 오븐에서 구워 먹을 생각을 했다.
이 오븐 때문에 몽골인들의 식습관 자체가 바꿔 버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드디어 오이라트부와 우랑카이부의 연합을 위한 혼례식 전날이 되었다.
헌데, 가르디란이나 나를 불러 뭘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특별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어봤음에도 그냥 가수저라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접대해 주면 된다고 했다.
오이라트와 우랑카이의 자존심 싸움이 우리들의 요리 솜씨로 치러질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내가 우스웠다.
나를 데리고 왔던 체르긴도 그저 몽골인들이 궁금해하는 가수저라만 잘해주면 된다고 했다.
“헌데, 사람들이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 먹는 것 같은데 저건 뭐요?”
“탱그리 님의 선물이라고 불리는 붉은 열매다. 아주 달고 맛있지."
달고 맛있다는 말에 원종도 이리저리 땅바닥을 살폈는데, 바닥에 붙어 나는 수풀에 산딸기가 열려 있었다.
따먹어 보니 모양만 산딸기라 아니라 맛도 새콤한 것이 산딸기의 아종쯤 되는 것 같았다.
말과 소, 양의 똥이 굴러다니는 평원의 수풀에서 산딸기 모양의 열매가 열려 있는 게 재미있었는데, 몽골인들도 적극적으로 땅바닥을 살펴 따 먹었다.
아마도 이 작은 베리류가 몽골인들의 비타민 공급처인 것 같았다.
이 딸기를 맺게 만드는 꽃은 또 푸른색이었는데, 꽃과 열매가 같이 피어있는 것이 참으로 특이했다.
이 색상 대비를 보니, 혼례식 때도 이 꽃과 열매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사와 몸종들을 시켜 열매와 꽃을 따로 채집했고, 꽃은 절구에 찍어 파란색의 물을 뽑아내었다.
딸기 열매도 절구로 찍어 그 붉은색의 물을 뽑았다.
“가르디란. 자네는 내가 가진 거품기가 없으니 팔 힘이 강한 장정 3명을 데리고 오게.”
“그 머랭이라는 것을 치는 것이라면 저 혼자서 해도 됩니다."
일을 배우며 몇 번 쳐봤다고 가르디란은 자신만만해 했다.
“머랭이 아니라 크림을 만들어야 하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해. 달 빵을 꾸미려면 가수저라를 만들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있어야 하고, 그걸 만들려면 4명이 있어야 할 거네."
원종의 말을 들은 가르디란은 척 보기에도 강해 보이는 장정 4명을 데리고 왔다.
빵 위에 올리는 생크림을 만드는 것도 머랭과 비슷하게 사람의 노동이 들어갔는데, 지방 함량이 높은 야크의 젖에 그동안 모아 두었던 유지방을 넣었고, 중탕으로 녹인 버터와 설탕을 추가로
넣어줬다.
그리고, 좀 더 빨리 굳게 하기 위해 높은 산에서 얼음을 구해와 그 위에 그릇을 놓고 치게 했다.
“본래 요리 대결이 펼쳐지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인데, 그런 것이 없으니 그냥 한 번에 알려주겠네.”
가르디란과 내가 각자 달 빵을 구워냈는데, 갈색으로 잘 구워진 스펀지케이크를 가로로 칼질해 얇은 세 조각의 빵판을 만들었다.
“가장 아래 빵 위에 설탕물을 바르게 빵이 촉촉해야 위에 거품이 잘 붙을 수 있네."
붓으로 설탕물을 찍어 빵 위에 발랐고, 장정들이 열심히 머랭치기로 만들어 준 크림을 위에 올렸다.
평평하게 칼로 모양을 잡아 주고는 다시 그 위로 빵판을 올렸고, 설탕물 바르기와 크림을 다시 올려주었다.
그렇게 3개의 갈색 빵판 사이로 흰색의 크림이 들어가 있으니 옆에서 봤을 때 먹음직스러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네. 자네는 산딸기의 꽃잎에서 추출한 푸른 빛의 액을 크림에 넣어 푸른색으로 만들고 그걸로 빵의 겉을 발라주게."
가르디란이 푸른색의 크림을 빵 전체에 발라 푸른 포도색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원종은 산딸기 열매에서 뽑은 붉은 색을 크림에 넣어 핑크색의 크림으로 케이크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기름을 먹인 종이를 삼각뿔처럼 만든 후 흰색의 크림을 넣어 짤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걸로 케이크 위에 흰색의 테두리를 만들어 올렸다.
케이크의 중앙에는 축 결혼 같은 것을 써주려고 했는데, 몽골인들은 글자를 써줘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하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을 늑대로 여긴다는 생각에 각각 케이크에 늑대를 그려주었다.
물론, 나뭇가지로 크림 위에 그리는 것이라 졸라맨 형태의 그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케이크를 다 만들고 보니 이미 신부 아버지인 하파가 딸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행사가 끝이 난 뒤였다.
그래서 케이크를 하파와 하느구이 앞에 올려줬다.
"가수저라가 아니고, 이것은 무엇이오?"
연한 파란색과 핑크색의 원통 모양의 것을 앞에 올렸으니 이것이 무엇인지 모를 만도 했다.
“조선에서는 이것을 '게익'이라고 합니다. 돌을 세워 돕는다는 뜻이지요. 주로 귀빠진
날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이 게익을 만들어 친한 이들과 나눠 먹습니다."
게익이란 이름을 다들 처음 들어본다고 어찌 먹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축복스러운 오늘 같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신부의 아버지와 신랑을 도울 사람들일 겁니다."
"그렇지. 다들 나를 도와주고 서로 돕기 위해 온 것이지."
"그런 사람들에게 이 게익을 잘라서 주면 되는 것입니다. 칼을 빌리겠습니다."
신랑이 허리에 차고 있는 작은 손칼을 빌려 케이크를 팔 등분 했다.
삼각형으로 잘린 한 조각을 조심스레 빼내자 주위에서 탄성이 나왔다.
“푸른색의 속에 황금과 같은 노란 가수저라가 있고, 흰 구름이 그 사이에 있구나."
“억! 저.저거 게익 위에 그려진 그림이 늑대 아냐?"
“늑대가 맞아! 역시 오이라트와 우랑카이는..."
몇몇 사람들은 늑대가 그려진 게익이 잘리고, 오늘 방문한 유력 가문의 수장들에게 나누어지자, 거기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오이라트의 '에센'이 칸으로 올라설 때 칭기즈칸의 황금 씨족이 아닌 자는 칸이 될 수 없다고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반대를 했었다.
물론, 그런 후손들의 대부분을 에센이 죽였었다.
그 이후 오이라트의 에센이 죽고 황금 씨족들은 다시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칭기즈칸과 황금 씨족을 상징하는 늑대를 잘라 먹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아주 오해하기 좋았다.
그걸 깨달은 오이라트부와 우랑카이부의 사람들도 아차 싶었지만, 두 가문의 후손들이 혼례식을 치루는 이유도 근래 성장하고 있는 황금 씨족을 견제하기 위한 것도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게익을 먹었다.
하파도 이것을 깨닫고는 입을 열고 나섰다.
“이 '게익'이라는 것이 돌을 세워 서로 돕는다는 뜻이라고 했으니 어찌 보면 딱 맞는 음식이오. 우리 두 부가 힘을 합친다면 그 누가 무섭겠소?"
“맞습니다. 늑대는 늑대일 뿐, 그 늑대를 이을 힘 있는 세력은 우리들입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늑대를 잡아먹읍시다.”
장인의 의견에 신랑이 확답하자, 혼례식에 모여있던 이들은 두 부족의 관계가 굳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제야 다들 케이크를 맛보기 시작했는데, 원종이 미리 준비한 나무 포크를 사용해서 먹었다.
“부․부드럽군. 그리고 달아."
“흰색의 구름이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녕 구름과 같군. 씹으니 그냥 사라지는데.”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이리 부드럽고 단 것인가?"
“가수저라의 맛인데, 구름 맛이 더해지니 이건 다른 음식이구나, 새로운 세상을 보았어."
몽골인들은 생크림의 부드러움과 케이크 빵의 단맛에 감탄을 했다.
아마, 저기에 포도나 사과 같은 과일들을 넣었다면 더 환장을 했을 것 같았다.
"여윽시! 대단하십니다. 게익이라는 음식으로 오이라트부와 우랑카이부를 협치하게 만드는 그 실력! 저 가르디란은 발끝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두 부족장의 의중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돌을 세워 서로 돕는다는 의미의 '게익'을 만들어 냈으니 솜씨에 위사들도 감탄할 뿐이었다.
"하하하. 그대들은 뭣 하는가. 다시 있는 재료로 게익을 만들어야 하네. 다들 움직이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멋쩍어서 요리를 돕던 이들을 닦달해 천막으로 집어넣었는데, 산해관 인근에서 막 올라왔다는 젊은 몽골인이 나섰다.
“고원에서 소식을 듣고 연경 인근에서 재미를 보았는데, 그때 들은 말이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다시 어떻게 되었나? 결판이 났나?"
“여전히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황제가 유리하다고 하는데, 거기서 들은 말은 짜장면이라는 음식으로 태자 군의 장군들을 독살시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도 들은 적 있어."
"검은색으로 된 밀가루 음식이라고 하던데, 장군들이 죽어가면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나오는 것이오?”
"죽으면서까지도 먹으려고 했던 그 짜장면을 바로 지 조선에서 온 손님이 만들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 천상의 맛이라는 가수저라를 만든이와 검은 지옥의 음식이라는 자장면을 만든이가 같다는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