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06화 (306/327)

306. 솜씨로 증명하다. (2)

가르디란은 가죽 장갑을 끼고 뜨거운 도자기 그릇을 꺼내었는데, 도자기 틀이다 보니 빵이 식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가르디란은 빵이 식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칼질을 해서 빵을 잘라냈다.

김이 솔솔 나는 카스테라 빵을 접시에 나누어 담았는데, 잘린 노란 빵의 모양으로만 보면 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식는 것을 기다리지 않은 것이 원종에겐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또 고개를 젓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가수저라를 먹는 방법이었다.

다들 손으로 집어 먹는데, 밥을 먹는 방식처럼 카스테라를 꾹꾹 눌러서 뭉치게 해서 먹었다.

카스테라의 부드러운 식감 자체를 없애 버리고 먹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르디란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를 몰랐다.

카스테라를 굽고 나선 열이 식을 때까지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데, 열을 빼며 생기는 변화를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빵이 식으며 그 속의 열기가 빠져나가면 그 열기가 빠져나간 사이로 공기가 들어차면서 카스테라 특유의 폭신한 식감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모르는 것이었다.

가르디란의 카스테라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실제 카스테라를 받아먹고 있는 몽골인들은 무엇이 부족한지를 몰랐다.

단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한 몽골인들은 밀가루와 계란의 고소함과 설탕이 만들어낸 단맛에 그저 좋다고 먹을 뿐이었다.

“이것이 가수저라였군. 여진족 족장들이 천상의 맛이라면서 말하길래 어떤 맛인지 궁금했는데, 이런 단맛이었어.”

“꿀보다 더 단맛이 나는데, 참으로 신기하군."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과 같은 노란 색에 단맛이 있으니 계속 손이 가는 거 같아."

몽골인들은 굽거나 튀기는 음식은 자주 접했지만, 이렇게 오븐으로 구워 만드는 음식은 거의 처음이었다.

해서 가르디란의 카스테라가 주는 단맛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극찬에 가까운 칭찬을 들은 가르디란은 '봤지? 이것이 내 실력이다!'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쪽에서 만드는 가수저라는 언제 나오는 건가?"

“너무 오래 난로에 있어서 타는 거 아닌가?"

“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지면 그때 꺼냅니다. 눈대중으로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요리사의 실력이긴 하지만, 정확한 순서와 시간을 지키는 것도 요리사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실력입니다."

당연히 몽골인들은 이런 말에 불만을 나타내었지만, 그래도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모래가 다 떨어지자 오븐에서 빵을 꺼내었는데, 윗면이 짙은 갈색으로 잘 구워져 있었다.

“저거 봐! 너무 오래 있었잖아. 오이라트부의 요리사가 한 것은 노란색의 먹음직스러운 색이었는데, 저건 이미 다 탄 거라고!”

“쯧쯧쯧, 그 귀한 설탕과 꿀을 넣고는 다 태워 버리다니."

즉각적인 몽골인들의 반응이 귀찮았지만, 묵묵히 빵틀을 꺼내어선 흰 종이 위에 거꾸로 뒤집어 두었다.

“난 탄 거라도 먹을 수 있네. 어서 잘라서 주게."

몇몇이 가수저라를 먹었던 접시를 내밀었는데, 원종은 그런 손짓을 거부했다.

“가수저라는 뜨거울 때 먹는 것이 아닙니다. 난로에서 꺼낸 이후 열이 식을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열을 가해 뜨겁게 만든 음식을 바보처럼 식혀 먹는다니."

“가수저라를 태운 것만 해도 큰 실수인데, 그걸 차갑게 식혀 먹겠다고? 도대체 어디에서 음식을 차갑게 식혀 먹나?"

“구운 고기를 뜨겁다고 차갑게 해서 먹는 바보는 없네!"

몽골인들은 당장 칼을 뽑아 들 것처럼 험악하게 지금 먹어야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원종은 그런 기세를 모른 척하고 다시 모래시계를 돌려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예법이 있듯이 요리를 만들고 먹는 데도 그 법도가 있습니다. 제가 만든 가수저라는 정확한 시간과 만드는 방법을 지켜야 하는 법도가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진짜 가수저라를 먹고 싶으시면 기다리십시오."

몽골인들은 당장 들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부족장인 하파가 아무 소리 없이 기다렸기에 다들 씩씩거리며 참을 뿐이었다.

원종은 그런 몽골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여유롭게 소젖을 냄비에 담아 난로 위에 올려 끓였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자 그제야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따뜻한 활동으로 만든 빵들을 분리하자, 정사각형으로 각이 져서 만들어진 갈색의 카스테라 모습이 보였다.

몽골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대충 보면 갈색으로 다 타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원종이 빵칼로 네 면의 갈색 테두리를 잘라내자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수저라가 탄 게 아니었군. 겉에만 갈색으로 탄 것처럼 보인 것이었어."

“안쪽은 황금색의 노란색이야! 아까 오이라트부의 가수저라보다 더 노란 거 같은데."

카스테라의 갈색 겉면과 진노랑의 안쪽 면은 색깔의 대비를 만들어 내었고, 이 색깔 대비가 더 식감을 자극했다.

빵칼로 2.5cm 두께로 잘라 두 조각씩을 접시에 주었는데, 미리 준비해 두었던 포크도 건네주었다.

“가수저라는 손으로 먹어도 되지만, 이 삼지창으로 자르고 찔러 먹으면 더 좋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종은 직접 포크를 쓰는 법을 보여주었고, 카스테라를 잘라 입으로 넣었다.

손으로 밥을 먹듯이 손으로 꾹꾹 눌러서 카스테라를 먹을까 싶어 포크를 꺼내 든 것이었다.

몽골인들은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기에 비슷하게 포크를 써서 카스테라를 잘라 먹었는데, 대부분이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잘라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게 잘린 크기였기에 스펀지처럼 푹신한 카스테라의 식감을 몽골인들이 느낄 수 있었다.

"어엇, 탄 맛이 나지 않아. 분명 갈색으로 탄 거 같은데, 탄 맛이 없어. 그리고, 뭉쳐진 염소의 털을 씹는 것처럼 부드러워!"

“아까 먹었던 가수저라와는 완전히 다른데, 같은 가수저라가 아니야."

분명 입안에 들어와서 단맛을 내며 씹히는 것은 가르디란이 만든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단맛이 입과 혀에 와 닿는 방식이 너무나 달랐다.

가르디란의 가수저라가 뭉쳐진 떡과 같은 단맛이었다면, 지금 먹는 가수저라는 씹으면 그대로 가루가 될 것 같은 부드러움과 푹신함을 가진 단맛이었다.

이제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식감이었기에 더 입안의 음식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 단맛 또한 색다르게 와 닿는 것이었다.

“가수저라는 그냥 먹어도 맛있으나 이렇게 소와 염소의 젖을 같이 먹으면 더 단맛이 강해지고 더 부드러워집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원종은 난로에서 따뜻하게 끓인 소젖을 잔에 담아 건네주었는데, 가수저라와 데운 우유를 같이 맛본 이들은 손에 들린 우유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소젖에도 설탕을 넣은 거요?”

“단순히 끓이기만 했습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헌데 어찌 이리 단맛이 나는 거지?”

우유와 함께 먹는 가수저라는 또 다른 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열기가 빠져나가며 만들어진 빈 공간에 우유가 들어차자 그 우유에 카스테라의 단맛이 녹아들었고, 우유 전체가 달아지며 입안 가득히 단맛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여진족들이 실로 천상의 맛이라고 했던 것이 이 맛이겠구나. 아까 먹었던 것은 천상의 맛이 아니었어. 정말 젖과 꿀이 입안에서 어울리고 있으니 이 맛을 절대 잊을 수 없겠구나.”

“털 뭉치를 씹는 것 같이 부드러웠는데, 젖을 먹으니 그 털이 그냥 녹는 것처럼 단물이 되어 사라지니, 이런 맛은 처음이다."

우유와 함께 먹어서 그런지 입안의 카스테라가 금세 녹아 사라졌고, 몽골인들은 서로 더 달라고 접시를 내밀었다.

“오이라트부도 한번 먹어보시지요. 이것이 바로 조선에서 나온 가수저라입니다."

오이라트부의 하느구이도 포크로 카스테라를 먹었고, 가르디란도 카스테라를 먹었는데, 가르디란은 폭신한 카스테라의 맛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맛이... 이것이 가수저라의 본 맛입니까?"

"어디에서 가수저라를 배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맛보는 것이 원조의 맛이네.”

가르디란은 가수저라를 배웠던 어선방 출신의 중국 태감을 떠올렸다.

'이 가수저라는 조선에서 왔던 젊은 숙수에게 배운 것인데, 귀한 설탕이 들어가기에 귀인들을 위한 음식이네.'

그 태감을 가르쳤던 그 젊은 숙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젊은 사람인 것을 깨닫자 가르디란은 이제까지 자신이 보여줬던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자신이 만든 것을 널리 알려주고 베풀었는데, 그걸 배운 제자와 같은 이가 더 잘났다는 듯이 아래로 내려 보고 있었으니 그 부끄러움이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제게 제대로 된 가수저라를 가르쳐 주십시오."

오체투지하듯이 가르디란이 바닥에 엎드리자, 원종은 급히 그를 일으켰다.

“그대는 이미 배웠으나, 글자를 몰라 상세한 것을 잊은 것일 거요. 한두 가지만 바로 잡아 줘도 충분할 거요. 그리고 이만하면 신분 확인은 된 것입니까?"

“물론이네. 여진인들이 이야기한 천상의 맛이 이제 어떤 것인지 알았네. 그대를 데리고 온 것은 체르긴의 독단이었지만, 이제는 손님으로 대우할 것이오. 조선의 숙수에게 천막을 배정하라!"

이젠 손님으로 대우하겠다는 부족장 하파의 선언이 있었으니 안전상의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

"그러니깐 다음 달에 있을 혼인식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구만."

"그렇습니다.”

가르디란은 이제 매일 내 천막으로 와서 한글을 배우고, 그에게 요리법을 알려주며 책을 써줬는데, 그 대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북방의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상단의 배들이 다니며 중국과 아시아의 정보들을 수집해 주었지만, 이런 내륙의 정보는 구하기가 힘들었기에 처음 듣는 정보가 많았다.

중국 한족의 3대 치욕 사건으로도 불리는 '토목보의 변'이 1450년에 있었는데, 이때 명나라의 황제인 정통제를 사로잡아 간 사람이 바로 오이라트 부족의 에센 타이시 였고, 지금 혼인을 위해 온 하느구이가 그 후손이라고 했다.

“그럼, 몽골고원의 땅은 다 오이라트 부족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건 또 아닙니다. 명나라의 황제를 잡아 위세를 떨쳤던 에센 타이시가 암살로 죽자 오이라트부가 갈기갈기 찢어졌고, '숲의 사람들'이라 불리었던 이름처럼 지금의 오이라트부는 저 멀리 고원을 지나 우랄산맥 근처로 흩어져 들어갔습니다.”

“그럼, 이 멀리까지 혼인을 하러 온 이유가 뭐지? 너무 멀면 혼인으로 얻는 이득이 적을 것인데.”

“상징적인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센 타이시가 칭기즈칸의 황금 씨족을 많이 죽였는데, 오이라트부가 힘을 잃은 이후로는 다른 부족들에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쪽의 실력자인 우랑카이부에서 부인을 얻어 다시 동쪽으로 영향력을 보이고 싶어 합니다."

가르디란에게 에센 타이시 사후 큰 세력 없이 흩어진 몽골 부족들의 이야길 듣고 있으니 북원이 사라지고 몽골 부족들이 힘을 잃어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중앙집권이 제대로 안 되었기에 그냥 이합집산이 허구한 날 반복되었고, 외부의 적과 싸우기보다는 내부의 적과 싸운다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부족, 씨족 사회의 문제점을 몽골인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제 주인이신 하느구이님이 저를 데리고 온 이유는 멀리 떨어진 오이라트부와 우랑카이부의 혼사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 화합을 만들어 내려고 한 것입니다."

“혼인식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우애를 다지겠다는 생각은 좋은 것 같군.”

“그렇지요. 헌데, 숙수께서 계시니, 하느구이 주인님의 생각이 틀어져 고민이십니다."

“생각이 틀어질 게 뭐가 있나? 나에게 배운 기술로 자네가 만들면 되는 것이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부족들의 힘에 따라 생각이 흐르는 몽골인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아마, 하파 부족장은 숙수님께도 요리를 해달라고 할 겁니다."

"아아, 가수저라처럼 자네가 하는 요리와 똑같은 걸 만들어서 내가 또 이겨주길 원하겠군. 그렇게 하면 오이라트부보다 우랑카이부가 더 위에 있다는 것처럼 보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내 말이

맞는가?"

"맞습니다. 그래서 제 목도 간들간들하고, 하느구이 주인님의 입지도 위태롭습니다.”

"허, 이거 참."

자기 딸을 결혼시켜 보내는데도, 부족의 위신을 생각해야 하고, 사위를 찍어 눌러야 한다는 몽골인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흠.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자네 예상처럼 하파 족장이 내게 요리를 요청을 하게 되면 나는 달(Moon)을 만들 거네. 그러니 자네도 달을 만들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