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05화 (305/327)

305. 솜씨로 증명하다. (1)

"분명 조선어를 쓰는 거 같은데, 조선 사람들이 맞나?"

"복색을 보면 조선 사람들이 맞는 거 같아. 이 중에 전원종이란 자가 누구냐?"

몽골인 중 중국어를 쓰는 자들이 나서 나를 찾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요양에서 분명 이야길 들었다. 뛰어난 숙수인 전원종이 여기에 있다고, 여기에 없는가? 그가 없다면 살려줄 이유가 없지."

“여, 여기 있소. 내가 춘봉 상단의 전원종이오,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것이오?”

생사가 갈릴 수도 있었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전원종이 맞나? 춘봉 상단의?"

품에 있던 옥으로 된 호패를 보여주었는데, 몽골인들은 한자를 모른다고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옥으로 된 것을 내보이며 본인이 맞다고 하니 진짜겠지하며 수긍할 뿐이었다.

“그럼 우리를 따라 움직인다. 걸음이 느린 자는 죽이겠다."

"아니 이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알려줘야 따라가든지 할 거 아니오? 무엇 때문에 우릴 데리고 가겠다는 거요?"

“바로, 저것 때문이다."

몽골인은 달구지에 실려있는 쇠로 만들어진 난로를 가리켰다.

“난로 때문이란 말이오?"

빵을 굽는 데도 필요했고, 북방의 추위에 노숙할 때도 필요했기에 난로를 들고 왔는데, 몽골인들은 난로 때문에 우릴 잡았다고 하니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저걸로 만드는 가수저라를 먹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시다."

“가수저라? 가수저라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하하.”

몽골인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가 카스테라 때문인 걸 알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괜히, 상단의 재산을 탐내어 인질극을 위해 납치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게 아니라 카스테라 빵을 먹고 싶어서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 같자 여유가 생겼고, 가뜩이나 위험한 장안으로 가는 길이 탐탁지 않았기에 이들을 따라가는 것이 더 나을 것도 같았다.

몽골인들과 어울리며 요리를 좀 만들어 주다 오면 만귀비가 연경으로 돌아와 있던지 아니면 전쟁이 끝나 있던지 상황이 바뀌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몽골인들에게 납치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라면 그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나와 몇몇 심복들만 데리고 길을 서두르면 되지 않겠소? 괜히 말도 없이 걸어가야 하는 저들을 데리고 가면 시일이 더 오래 걸릴 터인데."

말을 알아들은 몽골인들은 자기네끼리 쑥덕거렸고, 가야 할 길이 멀기에 말이 없는 이들을 놔두고 가기로 했다.

"아마도 몽골인들이 제 솜씨를 탐내는 것 같으니 순순히 따라가 솜씨를 뽐내면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우선 동항으로 돌아가 계시지요."

"허나, 그리되면 별제사 어르신의 안전을 지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조 참의나 관리들은 몽골인들에게서 풀려날 수 있다고 다행이라 여겼는데,

금군 위사인 이충호는 그러면 안 된다고 버티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는 이게 맞소. 정 그렇다면 이 위사가 나랑 같이 갑시다."

"그럼, 밀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본래 연행(燕行)길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서신을 넘겨주어 연행을 이어나가야 하지만, 그대들만 장안으로 가게 되면 만귀비를 만나지도 못하게 될 거요. 그러니, 동항으로 돌아가 기다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을 것 같소이다.”

관리들도 이번 사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기에 두말하지 않고, 동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원종은 원길에게 짧은 편지를 써 걱정하지 않도록 했고 몸종으로 붙은 네 명에 위사 이충호를 비롯한 네 명의 위사가 더해져 9명이 몽골인들과 함께 움직였다.

난로라던지 짐이 실린 마차가 빠른 이동 때문인지 나흘 만에 바퀴가 부서졌고, 거기 실려있던 짐들은 몽골인들이 나누어 말에 실었다.

그렇게 10여 일을 더 북쪽으로 움직이자 지대가 높아지며 늘 보았던 물이 많은 평원이 사라지고 마른 흙이 가득한 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군데군데 호수들이 보였고, 양을 치는 몽골인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체르긴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10여 일간 같이 움직이며 육포와 식량을 같이 먹고 했기에 이들의 우두머리인 체르긴과는 어느 정도는 말을 트고 있었다.

“모튜 더브다 중국인들의 말로는 소나무 언덕이라고 불린다."

소나무의 언덕이라면 송원(松原)정도 되는 지명인 듯했다.

"저기 보이는 언덕만 넘으면 하파님의 땅이다.”

처음 체르긴이 이끄는 몽골인들에게 붙잡혔을 때는 당연히 이들이 모시는 하파라는 족장의 명을 듣고 우릴 잡으러 온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첫날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길 나눠보니 그들이 모시는 하파 라는 사람이 나를 잡아 오라고 시킨 것이 아니었다.

체르긴과 용사들이 산해관 인근이 혼란스러워지고 약탈할 수 있다는 소식에 약탈을 나섰었고,

요양에서 조선 사신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납치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하파라는 몽골족 족장이 여진인을 통해 난로를 구매했었고, 그러면서 밀가루 반죽을 구워 먹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산해관 인근에서 이익을 얻은 것에 하파님이 좋아하시겠지만, 그대를 데리고 온 것을 더 좋아하실 거요. 다음 달에 우리 우랑카이부와 오이라트부의 혼사도 있기에 다들 좋아할 거요.”

흙 언덕을 넘자 푸른색의 호수가 나타났는데, 이 호수를 중심으로 부족이 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부족장인 하파의 천막을 중심으로 다른 천막들이 둘러싸듯이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황금색의 차양이 쳐져 있고, 비단으로 천막의 벽을 장식하여 그 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명나라에 몰려 북쪽으로 도망쳤음에도 아직 그들의 부(富)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저자가 그 소문의 전원종이라는 조선인이라고? 저리 젊은데 진짜가 맞느냐? 속은 것 아니냐?"

부족장 하파는 몇 년 전부터 여진인과 중국인을 통해 들었던 조선 음식들을 생각하자 저렇게 젊은이가 그 사람이라고 믿지를 못했다.

부족장인 하파가 신뢰하지 않으니 그제야 우릴 데리고 온 체르긴도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을 했다.

옥으로 된 호패를 보여주었지만, 한자를 제대로 알아보는 자가 없었기에 호패가 신분을 증명해주지 못했다.

결국 맞다 아니다로 서로 답답해할 때 천막의 차양을 밀고 들어온 자가 중재를 했다.

“그자에게 가수저라를 만들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방금 들어온 자는 오이라트부의 '하느구이' 라는 자였는데, 하파의 딸과 결혼을 앞둔 사이였다.

"조선인인 전원종이 이름을 떨친 이유가 난로를 만들었고, 거기서 가수저라를 만들어 내어 유명해진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여진족의 족장인 원길이란 부족장을 통해 알려졌지."

"그러니 그 가수저라를 만들게 하여 그것으로 본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군. 음식으로 이름을 떨치는 자라면 음식으로 확인을 해야지.”

"그리고 우리 오이라트부에도 뛰어난 요리사가 있사온데, 그도 가수저라를 만들 수 있으니 그 비교가 가능할 것입니다."

"오! 그렇다면 둘에게 같이 가수저라를 만들게 하면 되겠군. 그럼 난로는 가져왔는가?”

"우리 오이라트에서 쓰는 난로는 조선인들이 만든 것이 아닌지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해서 저희는 여기 설치된 난로를 쓰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저 조선인들은 난로를 들고 왔으니 난로를 조립해서 하도록 하게."

오이라트의 하느구이가 데리고 온 자는 가르디란이라는 자였는데, 검은 피부에 키가 작은 이로 티벳 출신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져온 난로를 설치하는 동안 가르디란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는데, 시작부터 고개를 저었다.

가르디란은 계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지 않고, 그냥 그대로 휘저어 버린 것이었다.

흰자와 노른자를 나누지 않고, 해도 카스테라가 만들어지긴 하지만, 내가 가르친 레시피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기에 기대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르친 레시피가 조선을 벗어나 중원, 티벳, 몽골까지 퍼졌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있었지만, 이렇게 레시피를 지키지 않고 레시피가 퍼지고 있다면 마냥 기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원래의 맛과는 점점 달라질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르디란은 계란에 설탕과 꿀을 넣어 저었고, 밀가루를 넣어 제대로 반죽은 만들어 내었다.

그러곤, 도자기 그릇에 반죽을 담아 난로에 집어넣었는데, 저렇게 하면 가수저라라고 알려준 카스테라가 만들어지긴 할 터였다.

난로 오븐에 카스테라를 넣은 가르디란은 우리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눈빛은 딱 그 눈빛이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요리를 했는데, 넌 실력이 어느 정도냐?' 하는 대가(大家)들의 눈빛이었다.

마침 우리 난로도 설치가 되었기에 불을 피우고 시작을 했다.

먼저 난로에 불을 피우며 온도를 맞추는 동안 계란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었고, 흰자를 휘저으며 설탕을 넣었다.

그리고 비장의 도구를 꺼내었다.

바로 황동으로 만든 거품기였다.

회전 날이 달린 손잡이 위로 톱니바퀴를 만들어 바퀴 손잡이를 돌리면 회전 날이 돌아가는 도구였다.

샤르르륵~ 샤르르르~

회전 날이 돌아가며 흰자에 점성이 생기기 시작했고, 색상도 뿌옇게 변했다.

거기에 설탕을 2번에 걸쳐 나눠 넣자 점차 굳어 가더니 거품처럼 머랭(meringue)이 만들어졌다.

거품기를 뺐을 때 머랭이 따라 올라오다 머랭 꼬리가 딱 꺽이며 굳어진 자세를 만들었는데, 가장 좋은 머랭 굳기였다.

“달걀의 투명한 흰자가 저렇게 흰색이 되다니 신기하군.”

계란으로 머랭을 만드는 것을 처음 보았는지 가르디란은 물론이고 다른 몽골인들도 신기해했다.

그리고 먼저 풀어 두었던 노른자와 꿀을 넣고, 다시 거품기로 섞어주었고, 몇 번이나 체로 거른 고운 밀가루를 넣어 잘 섞어주었다.

“방금 짠 소의 젖이나 염소의 젖이 필요합니다."

“가수저라에 젖이 들어간다고?"

이제까지 먹어보았던 가수저라에는 젖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오이라트에서 온 하느구이는 가르디란을 쳐다봤다.

가르디란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였는데, 그의 자신만만하던 눈빛은 이미 머랭치기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유채꽃에서 짠 기름과 염소의 젖을 넣고 다시 섞어주자 반죽이 물러지며 방금 만든 따뜻한 스프처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빵틀을 준비해주게."

황동으로 만든 밑판과 합쳐지는 동판으로 사각 틀을 만들었는데, 그 틀 사이로 반죽이 빠져나가지 않게 기름과 밀랍으로 틈을 메꾸었다.

황동 틀에 반죽을 넣고는 우리도 난로에 가수저라를 넣었다.

그리고, 모래시계를 돌려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재미있군. 두 가수저라를 만드는 방법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맛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천막 안은 금세 빵 굽는 냄새로 가득 찼는데, 달달하게 풍겨오는 냄새가 사람들의 코와 혀를 자극했다.

우리보다 먼저 가수저라를 난로 오븐에 넣었던 가르디란은 오븐 틈으로 살펴보다 빵을 꺼내었다.

채 20분도 안 구웠던 것 같았기에 이것도 고개를 젓게 했다.

빵은 고기를 굽듯이 눈대중으로 파악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이라트부의 가르디란이 만든 가수저라를 맛보시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