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왜 여기서?
"이리 앉게 시묘살이를 하지 않고, 이렇게 올라온 것이 참으로 대단하이."
“그, 그것이 아니오라...."
“겸양하지 않아도 다 아네. 다들 자네 형제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억할 것이네."
한명회의 입에 발린 말에 반박하기도 뭐해서 그냥 맞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전하를 위해, 조선을 위해 노력하겠사옵니다."
“그런데 말이야 듣기로는 그 북경성의 장군들을 독살한 음식이 짜장면이라는 음식이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음식인가? 장을 튀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군.”
"그것이 예전 만귀비의 태감에게 알려준 음식이 온대, 그 요리를 독살에 이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혹여나 이 일로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혹시나, 요리를 가르쳐 준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선수를 쳤다.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렇게 된다면 사람을 죽이는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들은 다 죽어야 할 것이야. 칼이 부엌칼로 쓰일지 사람을 해하는데 쓰일지는 쓰는 사람에 달린 것이야.
자네는 선의로 요리를 가르쳐 주었겠지만, 그걸 독실에 쓴 것은 만귀비이니 자네는 잘못이 없네. 그러니 자책하지말게나."
“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정전에서 이야길 하지 않고, 자네를 이리 따로 빼서 이야기하는 것은 독살에 대해 듣고는 전하께서도 두려워하셨기 때문이네.
대체 어떤 독이기에 한자리에 있던 이들이 그렇게 단체로 죽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 어떤 독인지 자네는 아는가?"
독살 이야길 듣곤 성종도 혹여나 독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바로 복어의 독일 겁니다. 장군들이 바로 죽지 않았고, 숨을 쉬지 못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독살의 증거인 얼굴색이 검어지거나 피가 굳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고 했으니 10중 8, 9는
복어의 독일 겁니다."
“흠. 자네에게는 좀 더 상세한 정보가 들어 왔었나 보군. 복어의 독이라. 일찍이 복어를 먹고 죽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들어는 본 적이 있는 것 같군, 그럼 이 독을 피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복어의 독은 섭취 후 일각 이후로 증세가 나타납니다. 해서 상궁이나 태감이 기미를 한 이후 일각 이후로 음식을 먹으면 피할 수가 있습니다.”
일각 후 말이 어눌해지고, 숨 쉬는 게 힘들어지면 복어의 독이 있는 것이니 기미만 제대로 하면 막을 수 있다고 설명을 해줬고, 한명회는 대처법이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그리고 애초에 짜장면을 만들 때 생선의 살을 발라서 쓰거나 하는 것을 엄금하고, 해물을 쓸 때는 전복, 새우, 오징어만 쓰게 한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알겠네. 내 미리 수라간에 하명하도록 하지.”
이후 한명회는 민물에서 잡을 수 있는 '황복'도 아예 먹지 못하게 명을 내렸고, 아예 복어가 궁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후 한명회와 만귀비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고, 예물로 어떤 것을 가져갈지도 상의하여 명나라로 떠날 준비를 했다.
***
"남경에서 왔다는 자가 단주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어찌 할까요?"
"남경?"
태자 측에서 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리를 만들었는데, 텅신황이 보내온 사람으로 서신을 전해주었다.
[...춘봉 상단주가 알려준 짜장이라는 음식으로 인해 북경을 잃었고, 유능한 장수들을 잃었다고 하여 태극 선단을 붙잡아 들이려 하는 것을 겨우 막았네. 자네가 미리 검은 음식을 조심하라고 보낸
서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네.]
이런 면피를 위해서 서신을 보내둔 것인데, 제대로 들어맞은 것 같았다.
[다만, 짜장면으로 인해 장군들이 죽은 것은 명확하기에 앞으로는 춘봉 상단이 남부의 항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자네를 죽이기 위해 독살된 이들의 후예들이 암살자를 보내기로 했으니 주의하게... 패전의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 보니 춘봉 상단주에게까지 그 화가 돌아가는 것이네...]
서신을 읽어보자 시발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서로 싸우고 하라고 짜장면과 독을 알려주었고, 그걸 또 조심하라고 정보를 주었는데, 그걸 제대로 못 막은 책임으로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텅신황에게는 이런 일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서신을 보내었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장안에 있는 만귀비에게 가기 위해 북경을 지나 내륙에 접어들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다.
열 장정이 도둑 한 놈 못 막는다고, 재수 없으면 암살자에게 나도 죽을지 몰랐다.
더구나, 조선에서 병사를 100명 데리고 간다고 해도, 중국의 자랑인 인해전술로 달려들면 답이 없었다.
가뜩이나 먼 길이 위험했는데, 암살자도 보낸다고 하니 더 가기가 싫어졌다.
만귀비가 다시 북경으로 옮겨오면 그때 가는 것이 좋은데, 문제는 그때가 언제냐는 것이었다.
“북방 항로로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고형만 선장에게서 기별이 왔사온데,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장례문제와 엮이다 보니 신대륙 탐험대를 잊고 있었다.
이번에 출발해서 무사히 돌아온다고 해도 1년 이상이 걸리는 길이었고, 이번에 보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될지도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목포로 내려가서 배웅하며 혹시나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챙겨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쉬웠다.
"고형만 선장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전해주게. 믿고 있다고. 쌀이 많이 난다는 땅에 도착하면 이름을 남길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당부해주게."
서신으로나마 고형만에게 건투를 빌었고, 나도 안동도의 감영에 배속되는 노비와 공인들 500여 명에, 사신단에 필요한 관리와 병사들을 이끌고 동항으로 출발을 했다.
***
"너에게 사신으로 장안에 다녀오라고 했다고?”
원길은 감영을 떠받칠 노비들과 공인들을 받고는 만족스러워했는데, 원종이 장안으로 가야 하는 사신으로 뽑혔다는 것에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었다.
“내전이 한창인 중국으로 가라고 하다니 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지금 장성 근처는 어떻습니까?"
“육로로 간다면 요양까지는 여진족들의 땅이기에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양에서 산해관까지는 안전을 답보할 수 없을 것이다."
“병사들을 120명이나 데리고 왔는데도 말입니까?"
"그래. 야인들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고, 산해관을 만든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여진인이든 몽골인이든 장성 안쪽으로 못 넘어오게 관문을 설치한 것이지요."
“헌데, 북경의 난리 통에 쓰고자 산해관을 지켜야 하는 병사들을 모두 다 빼가 버렸다. 관을 지킬 장수와 병사가 없으면 관문이 어찌 되겠느냐?"
“아마도, 무법지대가 되었겠군요."
“그렇다. 목축을 하던 어진 여진인이라도 눈이 돌아갈 것이다. 지켜줄 이가 없는 땅은 약탈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산해관 일대가 무법천지가 되었다.”
“배로 갈 수밖에 없겠군요."
"배로 간다면 북경까지는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정녕 장안까지 갈 생각이냐? 아주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전란의 땅이 된 중원은 생존 자체가 힘들 것이다."
여진인들과 살며 담대해진 형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진짜 전란으로 혼란스러운 중국 땅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말도 다르고, 도움을 청할 관(官)도 제대로 없으니 외국인인 우리 사신단이 중국 도적놈들의 1순위 목표가 될 터였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흐음. 네가 실종이 되거라."
"실종요?"
"그래, 네가 수족으로 부리는 이들을 정해서 옷에 표식을 하게 하거라. 그리고, 바닷길이 막혔다고 육로로 움직이거라. 이후로 여진인들에게 공격하는 척을 시켜 사신단을 잡고, 너희를 인질로 잡는
연극을 해보자꾸나.”
“관리들과 병사들은 조선으로 돌려보내고, 저와 친인들은 여기서 시간을 보내게 하겠다는 것이군요."
“그렇다. 다만, 그렇게 되면 서신이 문제다."
“서신은 중국인을 구해 태감 왕직에게 보내 답을 받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될 것이지 왜 직접 사신단을 꾸려 이리 가는 것이냐?"
"조정에서는 만귀비에게 예를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사신단을 꾸민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이 먼저 예를 차렸으니 중국도 예를 차려 만나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이런 쓸데없는 허례허식, 쯧쯧쯧"
원길은 고개를 저을 정도로 허례허식을 싫어했지만, 사실 원종이 서신만 보내어 답을 받아 낼 수 있는 것도 만귀비와 밝힐 수 없는 거래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런 예를 차려도 만나기가 힘든 사람이 만귀비였다.
***
“북경이 황제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태자군의 잔당들이 남아있고, 배를 대는 항구를 태자군이 점령했기에 우리가 배를 타고 더는 못 갈 것 같소. 위사들은 말과 마차를 모으고, 다른 이들은 짐을 최대한 간결하게 추려 주시오."
"허면 육로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그러니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하시오. 교역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가지고 있는 종이나 교역 물품은 다 내려놓으시길 권하오."
물길로 북경을 다니게 된 이후로는 육로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사신단의 사람들은 짐을 추린다고 난리가 났다.
130명의 사신단은 동항을 출발해 15일 동안 걸어 요양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요하강을 따라 움직이는데,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우리를 쫓는 이들이 있었다.
금군 위사인 이충호가 병사들을 이끌고 방어 대형을 짜려고 했으나, 원종은 달려오는 여진인들의 숫자가 족히 천명은 넘을 것 같다고 아예 방어진을 만들지 않게 했다.
“싸워 이길 수 없는데, 싸워서 뭐 하오? 협상을 하면 될 터이니 위사들은 물러나시오.”
“하오나,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서는 것은 아니 되옵니다.”
“그대들이 죽는 것이 더 큰 일이니 내게 맡기게나."
원종은 흙먼지를 뿌리며 달려오는 여진인들을 보았는데, 산해관 일대에서 약탈을 하고 돌아오는 것인지 피와 흙먼지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말을 탄 여진인들은 우리 사신단의 혼이라도 빼겠다는 듯이 주위를 빙빙 돌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고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었다.
이런 행동에 사신단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우린 조선의 사신단으로 명나라로 가고 있는 길이오! 싸울 의사가 없으며 길을 열어주길 원하오!"
원길 형에게 배운 여진인의 말을 하자, 말들이 멈추고 우릴 포위하며 가까이 다가들었다.
"코킬라두쿠리! 아리키오도!"
"응?"
형님에게 들었던 여진인들이 쓰는 말이 아니었다.
"헉! 큰일입니다. 여진인들이 아닙니다. 원길님이 배정해주기로 한 그 여진인들이 아닙니다."
형이 길 안내 삼아 붙여준 여진인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이들은 누구란 말이냐?"
"여진인이 아니라 몽골인들 같습니다."
"뭐 몽골? 원나라말이냐?"
주원장에게 밀려 원나라가 북원이 되어 밀려났었고, 영락제가 황제가 된 이후로는 북원의 세력들은 더 북쪽으로 밀려나 그들의 본래 있던 몽골고원으로 다 쫓겨나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몽골인들이 나타났으니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여진인과 이야길 하는 소릴 들었는지 몽골인들 중에서 한 명이 나왔는데, 중국어를 쓰는 자였다.
"춘봉상단의 단주인 전원종을 찾고 있다. 여기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