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탐험 선단.
“저들을 이끌 선장으로 생각해 두신 사람이 있습니까?"
부산 포에서 건조 중인 배가 세척이었기에 세 명의 선장이 필요했다.
“원항 항해를 자주 한 염호진 선단의 선장 중에서 한 명, 섬과 섬 사이를 잘 옮겨 다닌 삼식이의 선단 선장 중에서도 한 명을 뽑을 것이네."
“그럼 나머지 한자리는 누구이옵니까? 설마 직접 가신다는 것은 아니시지요?”
사실 원종이 직접 가고 싶기도 했다.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역사에 이름이 남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벌여 둔 일이 너무 많았고 중원의 전쟁이 어찌 되느냐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결정도 세워야 했다.
“선단의 대장으로는 발해방의 고형만을 생각하고 있네. 북해도를 개척하며 그 위의 사할린과 섬들이 이어진 열도까지 가봤다고 하니 그가 적임자네.”
현대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를 따라 북상하면, 캄차카반도가 나오고 거기서 베링해를 잇고 있는 알류산 열도를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원항에 노하우가 있는 선장과 열도 섬 사이를 오가는데 노하우가 있는 선장.
그리고, 북방의 추운 바다를 경험했고, 잔인하지만 리더로서의 추진력이 있는 선장까지. 그렇게 인력 구성을 갖추어야 어떤 일이 일어나든 대응이 가능할 것 같았다.
“각기 다른 장점이 있는 선장들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부산으로는 언제 내려가실 겁니까?"
“북해도로 가는 진기가 준비할 것이 있다고 하니 진기가 준비되면 부산으로 가지."
그간 도성의 가페와 국숫집에서 장사에 대한 것을 배우며 진기가 성장했는데, 15살이 되면서부터는 상단에 들어와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 북해도에 가야 한다고 진기에게 이야기했을 때가 떠올랐다.
“네가 북해도에 5년 동안 파견 생활을 해야 할 것 같구나."
“북해도라면 여기입니까?"
상단 고위층만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꺼내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면, 여기에 지점을 만드는데, 저를 지점장으로 보내주시는 겁니까?"
진기는 북해도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곤 오히려 기뻐했는데, 드디어 자신에게 무게감 있는 일을 주는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상단의 지점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북해도에 있는 아이누족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고, 생활을 조선 사람들과 같게 만드는 것이 네 일의 주가 될 것이다.”
"큰 형님이 요동 땅에서 여진인들에게 하는 일과 비슷한 거군요."
“그렇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20년, 40년이 지나고 조선말을 배운 이들이 많아진다면 북해도도 자연스레 조선 땅이 될 것이다. 그 주춧돌을 네가 놓는다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임기가 5년이라고
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계속 연장될 것이니 오랫동안 산다고 생각을 하거라."
“성과가 안 좋으면 5년이군요."
“아니, 성과는 보지 않는다. 반란이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네가 죽을 때까지 그곳의 총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동생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데리고 가도 되지만, 환경이 조선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가족들과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도 하지 않았구나. 북해도의 6개 부족이 귀부할 때 부족장의 딸들을 선물로 바쳤다. 그들 모두와 혼약을 해야 한다. 그러니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것이 맞겠구나."
"네? 부인을 6명을 맞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진기는 한두 명도 아닌 6명의 부인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소리에 놀랐다.
하지만, 금세 얼굴 표정은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 되었다.
"혹시 따로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을 정부인으로 삼고, 현지 부족의 딸들을 첩으로 삼아도 된다."
아이누족에게는 첩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그냥 부인이었지만, 진기가 마음이 드는 여자가 있다면 먼저 혼례를 치러주고 보내고 싶었다.
"아닙니다요. 형님. 이 북해도를 조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혼약을 맺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짐 없이 여섯 부인을 맞아들이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어머니와 향희도 준비를 시키거라. 아, 혹시 향희에게는 매파가 오거나 했느냐?"
조선에서 여자 나이 14살이면 슬슬 혼처를 알아봐야 할 나이이긴 했다.
"아직은 없사오나 내년에는 시집을 보내야 할까 생각은 했습니다."
“그럼, 내 좋은 혼처를 알아보겠다. 네가 준비가 되면 같이 부산포로 가서 북해도로 가는 배를 탈 것이니 준비를 하거라.”
***
"여동생과 작은어머니를 북해도에 함께 보내기로 했네."
교역을 위해 부산에 와 있는 고형만에게 동생 가족을 소개했다.
적서의 차별이 분명히 있었으나, 그런 부분을 애써 없애고 싶기도 했고, 그만큼 북해도에 동생과 가족을 보냄으로써 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형만을 조선소로 데려가 건조 중인 배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저 배가 새로 나올 태평선(太平船)이네."
태평양을 건너다니는 배라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었다.
“저 배를 타고 북방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갈 것이네. 쌀이 많이 난다는 미국이라는 땅에 가기 위한 배이지. 어떤가?"
“길쭉하고 배가 큰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배의 선장이 되어 북방 항로 개척에 나서주게나. 능력 있는 다른 선장을 2명 뽑았으나 선단의 중심이 되어 이끌고 가줄 뛰어난 선장이 필요하네."
고형만은 거친 파도가 치는 추운 바다를 개척하는 일에 나서 달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을 멀리 보내려는 그런 수작인가 의심부터 했다.
죽은 대영일 공자의 아들인 대순호와 자신을 떨어트려 발해방의 세력을 삼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북방 항로 개척을 위해 이제까지 보지 못한 큰 배를 만들고, 나무 물통까지 만들어 준비를 하는 모습에 북방 항로 개척에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순호 공자님을 중국 남경에 있는 발해방에서 클 수 있게 허락해 주신다면 북방 항로 개척에 나서겠습니다."
요동의 발해방과는 달리 남경에 있던 발해방 사람들은 중국인들과 동화되어 발해인의 민족성을 다 잃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선에서 우리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하면 훗날 따로 나가기 힘들 거라는 것을 생각한 결정인 것 같았다.
“알겠네. 남경의 발해방 사람들과 연락이 되면 대순호 공자와 함께 있는 발해방 사람 모두를 보내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진기 공자와 가족들을 북해도로 모신 다음 부산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고형만과 진기의 가족이 북해도로 떠나자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는데, 삼식이의 선단이 마침 부산에 돌아왔다.
“이게 북해도에서 1차로 만들어져 온 참나무 물통이군요."
발해방 사람들이 마을을 개척하며 북해도에서 나무들을 잘라 말려두고 있었는데, 그걸 바로 오크통으로 만들어 조선에 판매한 것이었다.
물론, 이 오크통의 대금으로는 설탕과 후추를 잔뜩 구매해 갔고 닭털과 오리털로 만든 나이기온 옷도 대량으로 구매해서 갔다.
“이 통에 가득 설탕술을 실어 온다면 가져오는 양이 확실히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워낙 설탕과 설탕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 대만섬에서도 사탕수수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유구와 대만에서 럼주가 만들어진다면 2~3년내에 중국과 말라카로도 럼주를 수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만은 잘 돌아가고 있는가? 명나라 내전의 여파는 없고?"
"그렇지 않아도, 전쟁에 병사들을 다 빼가고 젊은 남자들을 동원하는 바람에 남부 해안가의 치안이 무너졌습니다. 해적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기에 작은 규모의 상선들은 아예 움직이질 못하고 있습니다."
"염호진 선단이 말라카로 가기로 했는데, 걱정이군."
“해서, 대만에서 화포를 보내 달라는 사신이 와서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화포를?”
“네. 해적 놈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화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흠, 지원을 해줘야 하긴 하겠군. 염호진 선단이 갈 때 화포와 화약을 미리 보내줘야겠어."
중국 남부가 혼란하면 우리 선단도 위험할 수 있으니 대만의 시쭈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태평선에도 화포를 실어야 했기에 목포로 가서 제대로 화기 생산과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폈다.
“선상 총통 10자루를 붙였다고?”
“네. 두 사람이 한 조로 해서 쓰는 것이 온대, 이름은 십상 총통으로 지었습니다."
10번을 쏘는 총통이라는 소리에 그 사용법이 궁금했다.
사수인 한 명이 양손으로 나무 구조물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나무 구조물에 붙어 있는 선상 총통에 불붙은 화섭자를 가져다 댔다.
펑퍼엉, 펑, 펑펑!
연속으로 10번의 발사가 이루어졌는데, 실험을 위해 세워 두었던 10개의 허수아비는 온몸에 구멍이 났다.
“이런 십상 총통 10개가 있다면 그 어떤 군사라도 다 막아 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위치로!"
최무선의 손자인 최공손의 호령에 다시 십상 총통을 든 이들이 줄을 섰는데, 30명이 열 면씩 세 줄로 섰다.
“이번에는 연환쏘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삑삑!
최공손이 호루라기를 짧게 두 번 불자, 1열에 있던 십상 총통에 화자를 붙여 발사를 했다.
펑 퍼엉, 펑,펑펑!
1열이 모두 쏘자 1열은 3열의 뒤로 갔고, 2열이 일어나 다시 십상 총통을 발했다.
펑 퍼엉, 펑, 펑펑!
2열은 다시 1열의 뒤로 움직이며 자연스레 3 열이 일어나 발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 1열의 두 명과 대기하고 있던 1명이 십상 총통에 화약을 넣었고 다시 발사할 준비를 했다.
두 번째부터는 확실히 발사 속도가 느려졌지만, 머스킷 총 병들의 연환 사격 전법이 그대로 적용된 방식이었다.
“이 연환쏘기는 어떻게 생각한 것인가?"
"우리가 소수이고, 적이 다수일 때 막아내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한 번의 연습 사격으로 배 한 척이 말라카에 다녀와서 얻는 이익이 사라졌습니다."
"하하하. 화끈하구먼."
원종이 최공손에게 화기 개발에 들어가는 돈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 돈은 신경 쓰지 않고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십상 총통을 일렬로 30개를 세워서 화망을 만들 수만 있다면 몰아쳐 들어오는 적군의 예봉을 다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로 재장전되는 시간 동안 총구가 2개로 되어 있는 쌍 선상 총통으로 견제를 한다면 백병전에서 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 들려서 머스킷 총으로 가기 위한 힌트를 주려고 했는데, 그런 방향성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이런 독특한 방향으로 전술이나 기술이 발전된 것 같았다.
초창기 머스킷 총은 단발이면서 명중률이 형편없었기에 이런 산탄 형태로 쓸 수 있는 총통 스타일이 지금으로서는 더 맞는 답일 수도 있었다.
무리하게 머스킷 총으로 가기보다는 야금학이 좀 더 발전할 때까지 이 방향으로 놔둬도 될 것 같았다.
"이제 개인이 쓰는 화기 말고 지자총통 같은 큰 총통을 개선 시켜 보세나."
오크 나무통을 만들 때 바퀴를 잘 만드는 대장장이와 소목장들을 불러 모았듯이 부산포와 목포 인근에서 바퀴를 잘 만든다는 장인들을 불러 모았다.
“이 지자총통 아래에 경첩을 다는걸세.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회전하는 경첩이긴 한데, 그 회전 각도를 마음대로 정하고 고정할 수 있어야 하네."
나무 바퀴와 이어지는 지지대는 통짜 쇠로 만들게 했는데, 그 쇠에 경첩을 붙여 원하는 각도로 총통의 각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사 후 반발력으로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통짜 쇠에 끼워 쓸 수 있는 반동 제어장치도 개념을 설명했다.
"지자총통에 바퀴를 달아 말이나 소로 끌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네. 급할 때는 사람이 여럿 붙어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하고."
“배나 성벽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거군요."
"맞아, 잘 움직일 수 있는 큰 바퀴가 달려 있으면 배나 성벽 위는 물론이고 육지에서도 끌고 다닐 수 있으니 전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지."
“네.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요.”
“함께 온 탐험 선단 배에 탈 선원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에게도 총통을 쓰는 법을 알려주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를 포수와 사수로 지정해 주게."
“흠. 북방 항로에 바로 쓰일 수 있게 바퀴를 달아 보겠습니다요.”
미국으로 가는 준비가 착착 진행되며, 태평선의 운항 테스트를 준비하는데, 전령선으로 쓰이는 다우선으로 급보가 왔다.
“문경의 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