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96화 (296/327)

296. 쉴 새가 없다.

“곰고기로 끓이는 죽이라면 이미 우리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먹지는 않습니다."

이태랑기 부족은 물론이고 다들 곰고기는 이미 먹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리 좋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을 수확 철에 곰사냥을 다 나서지만, 이건 곰고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놈들로 인해 받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집마다 말린 곰고기를 지붕에 걸어 두지만, 냄새가 심해서 정말 먹을 게 없는 겨울이 아니고서야 잘 먹지 않습니다."

원종이 곰죽을 해주겠다고 하자 다들 곰고기는 별로라며 토로하듯이 이야길 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누족들이 이해는 되었다.

현대에서도 곰고기를 다른 고기들처럼 유통해서 먹는 나라가 러시아, 캐나다, 일본 정도로 한정되었는데, 그들도 다른 고기가 있다면 굳이 곰고기를 먹지 않는 게 기본이었다.

그저 여행객들이나 곰고기라고 하니 호기심 삼아 먹어보는 사람이 곰고기 수요의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곰고기에 대한 취급이 바닥인 이유는 바로 노린내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먹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자란 곰들은 그래도 노린내가 덜한데, 야생에서 자란 곰들은 그 노린내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현대에서도 향신료인 후추와 마샬라 가루를 엄청나게 집어넣어서 그 노린내를 없애는 것이 곰고기 요리의 시작과 끝이었다.

그런 후추와 마샬라 가루 없이 아이누족들은 곰고기를 먹어왔으니 원종이 곰죽을 해 준다고 해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노린내가 날 것이 뻔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이었다.

“역겨울 정도의 노린내가 나서 먹기 힘들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재작년에 잡아 말린 곰고기가 그대로 있을 정도이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원종은 2년 동안 집안 불가에 걸려 바싹 말려진 곰고기를 가져오게 했는데, 그을음이 묻어 검게 변한 곰고기는 딱딱하기가 돌덩이 같았다.

도마로 쓸 돌 위에 고기를 두고,나무망치로 고기를 두들겼다.

텅텅!

마치 나무토막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고, 곰고기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땀을 흘리며 10여 분을 두들기자 고기가 충격에 갈라졌고, 고기 결에 따라 포(浦)가 떠졌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포를 다시 나무망치로 두들기자 황태 채처럼 곰고기가 갈라졌는데, 그제야 원종은 이마에 땀을 닦았다.

으깨다시피 부스러진 곰고기를 입에 한 번 넣어 봤는데, 처음 맛은 육고기구나 하는 육향이 입안을 채웠다.

하지만, 한번 씹어 보니 고기에서 군내와 비슷한 노린내와 오래 묵은 잡내가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2년 동안 말린 고기에도 이렇게 냄새가 강하니 진짜 먹을 게 없는 겨울이 아니라면 먹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종은 으깬 고기를 프라이팬에 넣고, 기름 없이 굽기 시작했다.

먼저 불로, 군내를 날리고 불 향을 입히기 위해서였다.

고기가 익으며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100여 미터 밖에서도 곰고기를 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린내가 났다.

고기가 바싹하게 익자 소금과 유채 기름을 듬뿍 넣어 한 번 더 볶아 기름을 고기가 흡수하게 했다.

이어서 생 후추와 붉은 열매를 그라인더에 같이 넣어 갈았고, 그 가루를 뿌려주었다.

가루가 프라이팬에 들어가니 노린내만 풍기던 곰고기에서 후추의 알싸한 향과 청아하면서도 과일 신맛 같은 향이 나기 시작했다.

“저 검은 것은 후추라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는데, 저 붉은 열매 같은 것은 뭡니까?"

"말린 오미자(五味子)네.”

기름에 잘 볶아진 곰고기를 덜어 사람들에게 조금씩 맛보게 해주었다.

"음. 오오. 노린내가 정말 거의 나지 않습니다."

"어디 나도 한번 먹어보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아이누족들은 서로 곰고기 맛을 보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나던 곰고기의 비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자 신기해했다.

씹으면서 느껴지는 고기의 육질감에 후추의 알싸한 맛과 오미자의 신맛이 나면서 쓴맛과 짠맛까지 느껴지니 이게 과연 곰고기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마, 맛있습니다. 곰고기가 이리 맛있어지다니."

"굶기 싫을 때나 먹었던 곰고기를 내가 먼저 찾을 것 같구만."

“다들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구만. 조선에는 이 오미자가 많이 나네. 종자를 줄 것이니 여기에도 심어 곰고기를 먹을 때 쓰면 될 것이야."

사람들에게 맛보게 하다 보니 고기가 반으로 줄어들었기에, 거기에 물을 붓고 밀가루를 풀었다.

버터를 풀고 우유를 더 넣으면 좋았겠지만, 이곳에서 자란 밀가루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스튜처럼 뻑뻑해진 것을 다시 퍼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고, 물을 더 넣고, 식은 조밥을 넣어 죽을 끓여내어 다시 나누어 주었다.

후루룩~

“크하! 등판에 땀이 나는 것이 한겨울에 먹으면 추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곰고기를 이렇게 먹을 수 있다니."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을 곰고기로 받을 수 있으니 형편이 니아질 겁니다.”

“이 곰죽에는 밀가루가 들어가는데, 발해방 사람들이 심은 곡식 중에 밀이 있으니 그걸 갈아서 넣어 먹으면 되네.”

발해방 사람들이 개간하고 재배한 방식대로 밀과 보리, 조와 수수를 수확한다면 후추와 따뜻한 옷. 설탕과 설탕술을 사 먹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강어귀 마을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잡아 직화에 올려 만드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훈제를 했는데, 배를 뒤집은 모양의 연기 훈연실을 설치하여 훈제법을 알려주었다.

훈연실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만으로 5배 이상의 훈제연어 생산이 가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훈제연어를 조선에 와서 팔 수 있게 하기 위해 이태랑기 부족에게 한 선 두 척을 주었는데, 고형만의 무역 독점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발해방과 아이누족 간의 선의의 경쟁을 하게 잘 조율해 준다면 서로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을 터였다.

동생인 진기를 총독으로 부임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눈이 더 내리기 전에 해류를 타고 북해도를 벗어났다.

해류에 의지해 동해 중간에 이르자 바람 방향이 서풍에서 동풍으로 바뀌었는데, 그 바람을 타자 이틀 만에 두만강 유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부산에 도착하니 희재가 명나라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황제와 만귀비가 태자에게 밀려 화북 땅을 빼앗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동창 태감들이 군대를 지휘하는데, 싸우는 족족 패퇴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의로 패퇴해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군대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군"

"그렇습죠. 헌데, 부산에서는 실어 오신 곡식을 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곡식 가격이 많이 내렸습니다.”

“중국이 전쟁통인데, 곡식 가격이 내렸다니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이 단주님이 다른 상단 사람들에게 말라카로 갈 수 있는 우회 항로를 알려주셨지 않습니까? 규수로 해서 내려가는 항로요."

“아, 설마 규수에서 곡식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냐?"

“네. 콩과 수수가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근처 곡식 가격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동래 내상의 배에서 보리쌀을 내려 싣고 가는 달구지가 보였다.

“동래 내상에 저렇게 자본금이 많은 이가 남아 있었나?"

"그게 좀 웃기게도 왜에서는 그냥 막사발이나 도자기를 좀 주면 곡식을 그냥 다 준다고 합니다.

왜관이 없어지고, 대마도에서 왜인들과 만나 거래를 하는데, 단주님이 항로 지도를 다 주셔서 다들 왜관에서 거래하지 않고, 그냥 규수나 그 위쪽까지도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재미있구나.”

말라카로 가서 이득을 내고 싶어 하는 상단들의 도박 같은 항해가 걱정되어 우회 항로를 알려준 것인데, 해금령과 왜관의 이전으로 봉인이 풀려버린 조선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왜에 진출하고 있는것이었다.

특히나, 후추와 설탕 같은 교역품은 오히려 조선이 더 저렴해졌으니 왜에서 사 올 것은 식량과 왜은밖에 없었고, 다들 곡식을 사들고 오는 것이었다.

거기다 왜인들이 원하는 조선의 도자기와 포목을 왜국 상인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으니 장사가 잘될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의 아비루 씨족이나 일기도의 히로타는 어떻다고 하더냐?"

“상선들이 왜로 가기 위해서는 대마도와 일기도를 무조건 거쳐야 하다 보니 접안하는 상선들에서 얻는 수익이 쏠쏠하다고 합니다. 조선 상인들이 모이니 왜관이 있는 대마도나 일기도에 왜인들도

몰려들어 인구도 늘고 물산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잘되었군. 후쿠오카나 사츠마에 세운 상관은?"

"거기도 우리 상관 옆으로 송상과 만상의 상관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는 내가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조선 상인들이 활발하게 진출하며 규수 일대의 상권을 장악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선이 많이 다니게 되면 자연스레 왜구에 대한 대비도 하게 될 것이고, 수영의 배들로 그 핑계로 규수 북부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왜구들의 숫자도 줄어들 터였다.

해상물류를 장악하게 되는 자가 승리한다는 이 시기의 경제 공식이 그대로 재현된다면 왜의 성장 자체를 막아 버릴 수 있을 터였다.

"삼식이와 희재가 남방 우회 항로를 신경 쓰거라, 그리고 발해방의 고형만과 아이누족들이 거래하러 오면 후하게 거래를 해서 힘을 좀 실어주거라."

“네. 다 아픈 손가락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북해도에서 가져온 곡식은 결국 동항에 가서 팔 수밖에 없었는데, 한양의 곡식 가격도 안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고한 염호진 선장과 선단의 선원들에게 휴가를 줘서 쉬게 하니 큰형이 동항으로 돌아왔다.

근 3년 만에 본 형은 호랑이 가죽으로 된 외투와 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느 여진족 족장보다 더 여진족스럽게 변해 있었다.

“형님. 의관은 다 어찌했습니까?"

“하하하. 그런 불편한 것들은 다 벗고 살기로 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평원에서 살아보니 다 귀찮더구나. 그래. 이번에 들어보니 독하고 달달한 술이 난리라고 하던데 그 술로 형제간의 정을

풀어보자꾸나."

외향은 변했지만,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

“만귀비가 좋은 조건을 내세워 여진족에게 병력을 요청하였다. 몇몇 여진족들은 물자 지원이나 명나라의 벼슬에 혹해 나서려고 하는데, 나서도 될 것 같으냐?”

“처음 여진족을 끌어들일 때의 조건에 비해 배나 좋아졌다면, 그만큼 전선이 힘들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내가 배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알려주고 최대한 싸움에 관여치 않게 만들고 있는데, 비단과 보물은 물론이고 '대부' 벼슬까지도 준다고 하니 다들 나설까 고민하고 있다."

"싸움에 나선다면 아예 태자 쪽에 붙어야지 만귀비 쪽은 아닌 듯합니다. 군대를 태감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싸우는 족족 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다른 여진족들을 불러들일 테니 네 요리 솜씨로 그들을 붙잡아 두어라."

"그렇게 하지요. 어찌 보면 참전하지 못하게 붙잡아 둔 것 자체가 태자를 돕는 것이니 나중에 태자 쪽에서 고마워할 겁니다."

그렇게 삼십여 명의 여진족장들을 동항에 불러들여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주고, 카드놀이와 주사위로 하는 부루마블 놀이를 가르쳐 여진족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는데, 북경에 만들어둔 상관에서 급하게 배가 왔다.

“황제 군이 패퇴하여 북경을 빼앗기고 장안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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