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87화 (287/327)

287. 설탕의 왕. (1)

“봉서(封書)가 왔다고?"

상단을 통한 보고는 단계를 거치며 내용을 보아야 하기에 보통은 봉인되어 오지 않았다.

“네. 단주님만 꼭 보셔야 한다고 봉서와 직접 만든 설탕을 보내왔습니다”

"오 설탕이 유구에서 드디어 생산되었구나.”

사탕수수를 전해주고 생산법을 알려준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설탕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봉서와 같이 온 설탕을 보니 봉지로 쓰인 천에 고려 설탕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잘 만들어진 설탕을 보니 아마도 설탕 생산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봉서로 보내온 듯했다.

설탕을 맛보며 여유 있게 봉서를 뜯었는데, 원종은 봉서에 쓰인 내용이 진짜 맞는 것인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했다.

"아니 왜 이렇게 돼버린 건데?"

***

"오오옷! 진짜 단물이 쏟아지는구만."

사람 키 보다 훌쩍 자란 사탕수수 대를 기다란 대 그대로 둥근 통짜 쇠가 돌아가는 롤러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사탕수수가 납작하게 으깨어지며 즙이 통짜 쇠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즙을 받아 마셔보는 배일욱은 달짝지근하면서도 텁텁한 풋내가 나는 사탕수수 즙에 감탄을 했다.

"캬! 이거 먹어보게나. 텁텁한 맛이 좀 있지만, 더워서 힘이 빠졌던 것이 바로 돌아오는구만."

뜨거운 햇빛의 열기에 쳐졌던 몸에 힘이 도는 것 같았다.

배일욱의 말에 김수도 마셔보았는데, 그동안 사탕수수의 대를 잘라 옮겨심으며 고생했던 것이 일시에 씻겨 내려가는 맛이었다.

"달콤한게 맛있구만. 그러니깐 이 국물을 모아서 끓여내라고 했지?"

“그래. 내가 만드는 걸 잘 듣고 써두었으니 한번 해보자고."

삼별초의 후예들은 산처럼 쌓여있는 사탕수수의 곁가지를 쳐내며 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자로 정리된 사탕수수는 통짜 쇠로 만들어진 롤러에 넣어졌는데, 대나무처럼 딱딱하던 사탕수수도 통짜 쇠 앞에서는 찌그러들며 즙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본래 사탕수수와 설탕의 역사에선 노예들이 사탕수수를 잘게 썰며, 두꺼운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벗겨내었었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부드러운 속 대만을 모아 돌 맷돌에 갈아 즙을 모았었다.

사탕수수의 수확과 껍질 벗기기에 노예들의 노동력이 갈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종이 총통을 개발하기 위해 모았던 대장장이들과 기술자들을 통해 통짜 쇠를 맞물리게 돌리는 롤러를 만들어 주었었다.

회전 손잡이를 사람이 돌리거나 소나 말을 이용해 롤러를 돌리면 딱딱한 껍질을 까지 않은 사탕수수라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 즙을 뽑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납작하게 찌그러든 사탕수수 대를 쇠망으로 만들어진 압착기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후 위로 스크류 압착기를 돌려 대에 남은 즙을 추가로 더 짜내었다.

롤러를 통해 나오며 이미 즙을 다 뽑았다고 생각했지만, 힘줄 나오게 돌려가며 압착하자 다시 졸졸거리며 사탕수수 즙이 압축기 구멍을 통해 흘러나왔다.

최소한의 인력과 장비로 최대한의 사탕수수 즙을 짜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짜낸 사탕수수 즙은 고운 면으로 불순물을 여러 번 걸러내었고, 큰 솥에 넣어 졸이기 시작했다.

노르스름했던 사탕수수 즙이 끓기 시작하면 불순물이 떠오르는데, 불순물을 국자로 계속 떠내며 즙을 졸였다.

세 시간을 그렇게 졸이자 즙이 갈색으로 변했고, 점도가 올라가 즙이 아니라 시럽의 뻑뻑한 형태가 되었다.

“이 액당화가 되면 넓은 쟁반에 부어서 말리라고 했지? 그러면 끝인가?"

김수는 시럽 화 되며 갈색으로 변화 된 즙을 숟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감탄했다.

"이걸 말려서 그냥 써도 되지만, 상품처럼 팔려면 하루를 말리고 다시 즙을 빼야 한다고 하셨네.그래야 가루가 된다고.”

"하긴 돈이 되어야 하니 가루를 만들어 내야지."

그렇게 쟁반에서 하루를 말린 시럽은 남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결정화가 진행되었는데, 그런 결정화 되기 시작한 시럽을 돌절구에 찧어 가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시럽의 수분이 남아있었기에 우리가 익히 아는 설탕과는 달랐다.

이런 뭉쳐진 가루를 고운 면사에 넣어 분리기에 넣어 온종일 돌렸다.

조선에서는 벌꿀 판에서 꿀을 뽑아내는 데 쓰는 통이라고 했는데, 개와 소, 말을 움직이게 해서 물레방아처럼 안쪽의 축을 회전하게 만드는 기계였다.

이 분리기 기계를 온종일 돌리니 수분이 원심력으로 빠져나가서 제법 결정화된 설탕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걸 다시 돌절구에 넣어 찧고 면사에 넣어 그늘에서 하루를 말리자 손으로 잡아도 눅눅해지지 않는 설탕이 되어있었다.

“놀랍군. 놀라워. 우리가 설탕을 만들어 내다니.”

김수는 갈색의 결정화된 설탕을 한알 한알 집어 먹기도 했고, 아예 한 움큼 잡아서 털어먹기도 했다.

단맛이 입안에서 물씬 올라오는 것이 상인을 통해 구매했었던 그 설탕의 맛과 같았다.

“성공이다! 진짜 설탕이야! 맛이 달아."

직접 사탕수수를 늘려가며 경작을 했던 이들은 너도나도 설탕을 주워 먹으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렇게 설탕이 생산되기 시작하자, 배일욱은 오키나와의 토호들인 아지(按司)들과 왕에게 맛을 보라고 선물로 보내었고, 이제는 비싸게 수입하지 말고 싸게 자신들에게 구매하라고 홍보를 했다.

***

"정녕 이것이 오키노에 라부섬에서 온 고려인들의 후손들이 만든 것이 맞는가?"

오키나와 상씨인 상선위(威)는 곱게 갈아 만든 듯한 노란 가루를 손으로 집어 먹어보며 놀라워했다.

“네. 고려인의 후손들이 섬의 북쪽 아지 기토마루의 땅에서 사탕수수라는 것을 재배하고 있는데, 거기서 이 설탕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상선위는 그 고려인들이 알려주었다는 설탕 물밥이라는 것도 해 먹어보았는데, 더워서 기력이 떨어졌을 때 먹어보니 기력을 단박에 회복시켜 주었다.

이런 설탕을 조카인 상진의 외할아버지 땅에서 난다고 생각하자 괜히 불안감이 들었다.

자신의 형이자 오키나와 왕인 상원은 아직까지도 후계에 대해서 결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세자인 상진은 이제 11살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력을 넓히려고 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형이 왕이 될 수 있게 도왔던 자신은 닭 쫓던 개가 되어 왕이 된 조카를 받들수밖에 없을 터였다.

끊어진 왕조인 상(尙)씨를 이어 제2 상씨 왕조를 열 수 있게 도왔던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 설탕이란 물건이 계속 조카의 외가에서 생산이 된다면 자신의 입지가 더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이 설탕을 내가 가져오고 싶다. 어찌하면 되겠느냐?”

“설탕을 만들어 내는 고려인들을 데려오고 사탕수수를 심어 만드는 정공법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2년이나 뒤처지게 되는 것이었으니 고려인들과 아지인 기토마루를 이간질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간질을 한다고? 어떻게?"

“기토마루의 땅에서 고려인들을 쫓아내고 아지들이 설탕 사업을 빼앗으려 한다고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거짓 소문의 방법이라."

과연 이 방법으로 될까 상선위는 미심쩍었다.

"그렇게 소문을 내면 불안함을 느낀 고려인들이 섬을 떠나거나, 아니면 우리 쪽으로 올 것입니다."

중원에서 묵자(墨子)의 사상을 배워 온 자성이란 자의 말을 들으니 꽤 솔깃한 방법이었다.

이간질에 속은 고려인들이 기토마루의 땅을 떠나게 만든다면 반쪽의 성공이었고, 자신에게 고려인들이 오게 된다면 그걸 빌미로 기토마루를 칠 수도 있으니 완벽한 책략이었다.

더불어 대의명분까지 만들어 주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좋다. 설탕의 생산을 기토마루가 탐내고 있다는 소문을 내고 고려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라.”

***

설탕을 만들어 팔고, 상인인 케하루를 통해 왜와 대만은 물론이고 조선에까지 설탕을 수출한다고 기뻐하던 삼별초들에게 그 소문이 들려왔다.

삼별초의 후예들은 아지인 기토마루가 고려인들을 쫓아내고 사탕수수밭을 빼앗을 거라는 소문을 듣게 되자 괜히 불안했다.

“어쩐지. 그 기토마루란 늙은 놈이 설탕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늙어서 외손자를 꼭두각시로 세우고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거부터 욕심이 머리끝까지 오른 놈이라고 봐야지."

“그런데, 어르신들은 어찌하시기로 했는지 아는가?”

"어르신들도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 일단, 대만에서 케하루가 가져왔던 날이 휘어있던 그 긴 장도를 꺼내와야겠어."

“맞다. 그 칼이 있었지."

남중국해의 해적들에게서 빼앗은 칼을 원종이 자신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떠올리자 다들 칼을 갈고 사탕수수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준비를 했다.

"소문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토호인 아지들이 기토마루에게 사탕수수를 경작하고 싶다고 줄을 대고 있다는 건 확실하더군."

배일욱은 오키나와섬으로 와서 알게 된 이들에게서 나름의 소문을 들었다고 이야길 했다.

"그럼, 우리에게서 뺏어서 다른 이들에게 넘긴다는 게 진짜라는 말인데, 하, 쌍놈들 처음에는 자유롭게 경작하게 해준다고 해놓고서는, 그럼 어떻게 할 작정이오?"

김수는 속았다는 생각에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지. 그냥 농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비싼 설탕이 나오고 있으니 욕심이 날 수밖에. 그리고 이 소문 때문인지 왕의 동생인 상선위 쪽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어. 그 이야길 들어보고 결정을 하도록 하지.”

***

상선위의 지낭인 묵가 출신 자성은 고려인들의 경작지에 와서는 설탕을 만드는 공정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경작 규모도 어림으로라도 얼마 정도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가장 놀랐던 것은 젊은 사내들이 300명 가까이 설탕을 만드는데 투입되고 있었고, 그들 모두가 날이 길고 휘어진 대도를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탕수수 경작으로 다져진 구릿빛의 몸을 보자 자성은 이 고려인들을 어떻게든 써먹고 싶어졌다.

해서 자성은 상선위가 시키지 않은 일을 배일욱에게 이야기했다.

"아지 인 기토마루가 그대들을 내쫓고 땅과 사탕수수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워 우리 주군이 나를 보내셨소이다.

아예 이참에 서로 힘을 합쳐 기토마루를 토벌하는 것은 어떻겠소이까?"

"흠. 그렇게 되면 왕권 다툼에 끼어들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끼기 싫소이다."

왕위에 대한 일은 끼어들어서 성공해도 토사구팽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실패를 하게 되면 말 그대로 멸족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라 배일욱은 기토마루를 공격하는 것에는 나서고 싶지 않았다.

허나, 자신들이 경작한 사탕수수를 탐내는 이가 기토마루였으니 상선위와 힘을 합쳐 물리치는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다만, 그에 따른 보장은 확실히 받아 두어야 했다.

“합시다. 놈들이 우리 사탕수수를 빼앗으려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아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니겠소?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그리고 우린 그것도 있지 않소?"

배일욱과 다르게 김수는 상단주인 원종이 주고 간 선상 총통 4자루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

어찌 사용하는지 배울 때 한번 쏘아 보고는 아껴두고 있었는데, 만약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면 선상 총통 4자루를 써서 이겨보고 싶었다.

배일욱도 그런 무기가 있고, 젊은이들이 무장할 수 있는 철검도 넉넉하게 있었기에 나서기로 했다.

"좋소이다. 상선위께서 나서시는 일에 힘을 합치도록 하겠소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