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대마도. (2)
경험을 위해 발해방이 참여한다고 했으니 나서라는 것이었다.
사실, 제주도에서 거둔 원나라의 후예들도 제주도에서 고립되어 생활했기에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이 없었다.
해서 발해방 사람들을 같이 앞세워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우리 아비루 씨족이 앞장서겠습니다. 두지포에서 니노만까지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습니다."
아비루나칸이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인듯했다.
“급히 갈 이유는 없네. 먼저 배들을 움직이고, 이후 전열이 갖추어 움직이면 되네."
일기도의 배들이 니노만으로 상륙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니 두 세력이 상잔한 이후에나 가면 되는 것이었다.
***
"한 번에 다 같이 내려야 한다! 너무 앞서가지 말아라!"
마츠우라 켄타로는 니노만에 상륙할 때 한 번에 내려 피해를 줄이려고 했지만, 해적들은 그렇게 속도를 맞추는 것이 몸에 익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배들은 한참 먼저 상륙을 했고, 배에서 내려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 사다쿠니가 자랑하는 50무사단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놈들!"
수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화를 내었지만, 애초에 해적들이다 보니 이런 훈련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속도를 맞춘 배에서 한 번에 해적들이 내려 올라가자 화살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지리적으로 불리한 몽돌해변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해변 너머 평지가 되니 말을 탄 무사들이 내달려 왔다.
"써글!"
마츠우라 48방 해적 무리에서 갈라져 나와 일기도를 장악했던 켄타로에게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전력이었다.
비록 10여 기밖에 되지 않는 기마무사였지만, 소씨가 오랫동안 대마도를 지배하며 키운 비장의 무기였다.
짚으로 만든 방패를 세워두고, 그 뒤에서 화살을 쏘는 무사들과 좌우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해적들을 짓쳐가는 기마무사의 위력에 일기도의 해적들은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불이다! 불화살을 쏴라! 저놈들의 짚으로 만든 방패를 불태워라! 말도 불을 무서워하니 불을 질러라!"
해적들은 양 사방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고, 짚으로 만든 방패가 불에 타며 활을 든 무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기마무사는 불이 난 곳을 피해 계속 해적들을 괴롭혔는데, 그 기마무사를 잡기 위해 해적들이 나서니 대나무 창을 든 영민들이 나타났다.
"제길 모두 죽여버려라!"
마츠우라 켄타로가 앞장서서 대나무창을 자르며 영민들을 몰아붙였지만, 금세 재정비되어 나타난 무사들이 3m가 넘는 창을 가지고 나오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를 든 영민까지 합쳐도 200명이 안 되는 숫자였지만, 두 배나 더 많은 해적들은 연계가 되지 않아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평지에서 몽돌해변으로 물러나자 기마무사들이 날뛰지 못해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돌을 던져라!”
활을 쓸 수 있는 이들이 몇 없다 보니 켄타로는 투석을 지시했고, 양측은 서로 돌을 던지며
투석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소강상태를 보는 소 사다쿠니는 둥글게 짚을 꼬아 만든 큰 공을 준비시켰다.
“화구로 놈들을 불태우고, 창대가 들어간다!"
짚으로 만든 공을 불태워 해변가로 굴렸는데, 인원수가 많아 버티던 일기도 해적들은 불을 피해 이리저리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창을 든 무사들이 몰아치자 해적들은 버티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마츠우라 켄타로 놈을 잡아라! 그놈을 잡은 자에게 백은을 내릴 것이다!"
소 사다쿠니는 전쟁의 승리가 굳어지자 마음속이 뻥 뚫렸다.
저런 해적 놈들 수백 명보다 가신단으로 잘 키운 무사 50여 명이 훨씬 더 강력한 것이었으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거기에 씨족으로 이루어진 영민들이 받쳐주니 그 누가 대마도를 친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을 쫓는 무사들을 보며 기뻐하는데 그런 즐거움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엇! 산을 넘어서 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
원종은 두지포에 상륙했던 배를 움직여 니노만을 드나드는 입구를 막아 도망치는 배가 없게 했다.
그러곤, 아비루 씨족을 앞세워 길을 나섰는데, 멀리 니노만의 해변에서 불길이 치솟자 길을
서둘렀다.
니노만에 도착하니, 생각과는 달리 마츠우라 켄타로가 패해서 양 사방으로 도망을 치며 배에
올라타려고 하고 있었다.
“나팔을 불고 저 소씨를 공격하면 되는 거요?"
드디어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박 투르안이 상기된 얼굴로 물어왔다.
“아니 나팔은 불지 않는다. 도망치는 자들을 잡기 위해 흩어진 자들을 불러 모을 이유가 없으니깐. 그리고, 소씨와 일기도의 해적 모두를 친다.”
"오우, 그럼 일기도란 섬까지 먹는 거구만. 히히히."
박 투르안은 미친놈처럼 말을 달려나갔고, 그 뒤로 30명의 기마와 발해방 고형만과 박치산의
호위대가 뒤를 따랐다.
“어서 북을 쳐 무사들을 모아라!"
소 사다쿠니는 조선의 병사들이 오는 것을 보곤 해적들을 쫓기 위해 흩어진 무사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으나, 이미 해변 여기저기로 흩어진 무사들을 채 반도 모으지 못했다.
그래도 기마무사들이 먼저 모여 부딪혀갔다.
10여 기에 불과한 기마무사들이 짓쳐들어오자 박 투르안과 기마대는 중간이 갈라지며 양쪽으로 포위하듯이 스쳐 지나갔다.
10여 기의 기마는 어느 쪽을 공격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할 때 양쪽으로 스쳐 지나며 휘둘러지는 병장기에 절반이 넘는 기마무사가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남은 기마무사는 뒤를 쫓으며 활로 쏘아 잡았고, 크게 회전한 박 투르안은 장창을 든 무사들이 있는 곳을 휘저으며 화살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박치산의 호위대와 발해방 사람들이 몰아붙이자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소씨 일족들이 무너져 내렸다.
“저기 저자가 소 사다쿠니와 그 아들들입니다."
아비루 씨족들도 나서서 핵심 인물들을 알려주었기에 박 투르안이 그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해변에서 올라오는 일기도의 해적들도 남김없이 잡아라. 반항하는 이는 죽여도 된다."
처음 조선의 군사들이 왔을 때 일기도의 해적들은 자신들의 원군이라는 생각에 기뻐서 다시 소씨들을 공격했으나, 소씨들을 처리한 후에는 자신들에게 창을 내밀자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몇몇은 다시 배에 올라타 도망을 치려고 했고, 몇몇은 같은 편인데 이럴 수 없다며 따지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난전 중에 마츠우라 켄타로가 죽어버렸기에 해적들의 구심점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조선의 상인이 대마도를 다스리려고 하는 것이오? 조선 조정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소 사다쿠니는 기해동정(東征)이후 대마도는 대마주(州)로서 조선의 속주라는 점을 들어
강변하는 것이었다.
같은 조선의 주(州)를 공격하는 것은 조선의 왕을 부정하는 일이었기에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잘못 아셨소. 대마도를 앞으로 다스릴 사람은 조선 사람이 아니라 아비루 씨족의 촌음이오.
대마도 내의 씨족 간의 싸움에 우리가 도움을 준 것일 뿐이오."
"그게 무슨..."
“대마주(州)의 씨족이 바뀌는 것이니 조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아비루 씨족에게 투항하는 자들은 따로 건물에 머물게 하고, 투항하지 않는 자는 손발을 묶고 입을 막아서 따로 가두어라."
해적들과 소 씨 일족들이 정리되자 발해방의 고형만을 불렀다.
“우리는 내일 일기도로 갈 것인데, 함께 하겠소?”
"일기도도 점령할 생각이십니까?"
“맞네. 일기도를 점거하고 있던 마츠우라 켄타로가 죽었다는 것이 아직 알려지기 전이니 빈집 털 듯이 일기도를 취할 것이오. 함께 해준다면 오늘 사로잡은 소씨 일가와 해적들의 절반을 건네주겠소."
고형만은 포로들을 주겠다는 말에 의아했다.
“북쪽의 섬을 개척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오. 거기에 발해방 사람들을 밀어
넣기보다는 이런 포로들을 밀어 넣어야 발해방의 전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오."
험한 개척에 포로들을 쓰라는 원종의 말이 옳게 들렸다.
“일기도로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
대마도를 아비루 씨족에게 맡긴 원종은 마츠우라 켄타로가 타고 온 배들을 앞세워 일기도로 움직였는데, 대마도 니노만에서 해적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잘 막았기에 일기도에서는 켄타로가 죽은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배에서 병력들이 내리고, 박 투르안의 기병들이 달리기 시작했을 때도 이게 무슨 일인지를 알지 못했다.
일기도에 상관을 차리고 있던 상인 히로타의 정보로 손쉽게 수뇌부를 잡을 수 있었고, 대부분의 병력들이 대마도로 가서 죽었기에 이렇다 할 싸움도 할 필요가 없었다.
“일기도의 도주는 대마도의 아비루 촌음이며, 그 대행 봉신으로 히로타가 맡게 될 것이다."
마츠우라 켄타로의 죽음을 알자 대부분의 수하들은 배를 갈아타기로 했고, 상인 히로타를 필두로 상관 요원들을 전면에 내세우자 일기도는 금세 안정이 되었다.
"켄타로가 마츠우라 48방에서 갈라져 나온 이이기에 마츠우라 쪽에서 일기도를 도모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교역보다는 병사를 늘리고, 방비에 신경을 쓰도록 하라.”
“네. 후쿠오카의 오우치(大內)가문과 연계하여 해적들을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종이 대마도와 일기도를 수중에 넣은 것을 단순하게 보면, 조선 외의 영토를 획득한 것이지만, 크게 본다면 이 두 섬을 획득함으로 해서 생기는 이득이 많았다.
우선은 조선 남부를 침입하여 약탈하던 왜구들의 보급기지를 없애버렸다는 것이었다.
왜의 본토와는 사나흘 거리이기도 했으나, 본토에는 각 번의 영주들이 관리를 하고 있기에
마구잡이식의 해적은 본토에서 보급을 할 수가 없었다.
영주들의 입장에서는 마구잡이 식 약탈을 하는 해적들이 이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과 하루나 이틀 거리인 대마도와 일기도는 그들의 이득을 위해 어떤 해적이든 다 받아 주었는데, 그런 해적들의 보급기지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물론, 이 보급기지가 사라진다고 왜구들이 금세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키우기 힘들었던 사병을 여기서는 자유롭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성종이 교역에서 나오는 이득을 즐기며 우리를 좋게 보고 있지만, 왕권 국가에서는 왕의 마음이 어찌 바뀌느냐에 따라 멀쩡한 사업체를 날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역적질을 해서 뒤엎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무력 다툼은 피하고 싶었다.
자본으로 점점 스며들게 만들어 군림하는 것이 원종의 목표였다.
***
한양으로 간다는 원종과 헤어진 발해방 고형만은 입맛이 썼다.
대마도와 일기도의 싸움에서 전쟁을 경험해 본다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고, 120여 명의 포로들도 받았기에 손해를 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발해방은 추운 북쪽의 섬을 개척하고 있는데, 고려의 후손들은 이미 교역에서 성공하여 재력과 무력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물론입지요. 조선인들이 쓰던 방식을 우리도 잘 배워야 합니다. 무턱대고 싸워서
물리치기보다는 내부의 적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손쉽게 이기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도 분발하자고."
발해방 사람들이 춘봉 상단을 보고 자극받았을 때 원종은 조정에 들어 왜관을 없애야 한다는 주청을 올렸다.
“부산포와 염포, 내이포에 있는 왜관을 없애야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