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권리권? (3)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분명히 이 교환권을 팔 때만 해도 한양 전장 소속 상단에서 물건도 살 수 있고, 교역선이 돌아오면 2할의 이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이제는 이 교환권을 받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허허. 이보시오. 그때 교환권으로 바꿔 갈 때 분명 알렸지 않았소. 옆에 붙어 있는 방에도
쓰여있지 않소."
문지기가 가리키는 곳에는 방이 붙어 있었지만, 한자로 쓰인 방이라 읽을 수가 없었다.
"저기 쓰여 있듯이 교역선이 돌아오고 그때 생기는 이익금에 대한 교환권이라고 쓰여있지 않소."
"그러면 더 바꿔줘야 하는 거 아니오? 분명 어제 경상의 배가 나루에 들어온 것을 보았는데, 쓸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오?"
“허허 이리 답답한 양반이 있다. 이익금에 대한 교환권이지 않소. 근데, 그 이익금이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오. 그러니 그 가치가 없는 거요."
"그게 말이 되오? 좁쌀을 가져와서 교환권을 바꿨는데, 그 가치가 없다니!"
“이익금에 대한 교환권이라고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내가 답답하오! 하여튼, 이제 교역선 이익금에 대한 교환권은 이익 난 것이 없으니 그냥 천 조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물러나시오!"
"이익금이 없다니. 그리고, 이게 이제 천 조각이라니!"
“어서 곡식으로 바꿔주시오! 상단주를 불러주시오!"
"가을에 파종할 보리를 맡기고 받은 건데, 이게 그냥 천 조각이 되었다니 그게 말이 되오!"
"이걸 안 바꿔주면 우리 가족이 다 죽소! 돌려주시오!"
“세상에 이런 일은 없는 거요!"
이른 아침부터 한양 전장 입구에는 교환권을 교환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교환권을 쓸 수 없다는 말에 다들 언성을 높여 다툴 수밖에 없었다.
“이익금 교환권은 안 되고, 일반 교환권만 다른 물건으로 교환 가능하오! 이익금 교환권을 가진 자는 물러서시오!"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다른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전장에서 힘센 일꾼들이 쏟아져 나와 정리를 하려 했다.
그러나, 이익금 교환권을 들고 온 이들이 천명 넘게 몰려들자 한양 전장은 아예 문을 닫아걸어
버렸다.
하지만, 이런 문을 닫아버리는 행위에 사람들은 더 자극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돈 내어놓아라. 이놈들아!”
“어디서 사기를 치는 것이냐!"
“애들아! 어서 문을 뜯어내거라!"
일반 평민은 물론이고, 갓을 쓴 양반들도 교환권을 교환하러 왔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종들을 부려 한양 전장의 문을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쿵쾅거리는 소리에 한양 전장에서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나와서 종들을 오히려 두들겨 패버렸다.
기세에 밀린 양반들은 포도청에 고변해서 판관을 불러왔으나, 분명 계약서에 위험부담 부분이 쓰여있었고, 합법적인 거래였기에 판관들도 나서지 못하고 돌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해결 없이 한양 전장의 입구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진을 치자 한양 전체에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도성 밖 경기의 사람들도 모여들게 되자 한양 전장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고립이 되어 버렸다.
"허어참. 이거 교역 이익에 대한 교환권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이야."
권항필은 담장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상은 교역 실패로 큰 손해는 입었지만, 교환권으로 3만 냥의 이익이 생겼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의 남는 장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 번 이렇게 사고가 났으니 이후로는 같은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며칠만 있으면 제 놈들이 지쳐서 흩어질 것이니 우리는 그때까지 버티면 되네. 포기하고 집에 가자고 선동할 세작도 넣어 두었으니 보름이면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야."
최홍서는 며칠만 버티면 된다고 권항필을 다독이며, 다음에 꾸려서 보낼 교역선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한양 전장의 이름을 바꾸던지 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떨쳐내면 될 것이야. 이름이 바뀌게 되면 다들 잊을 거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 또 이익금 교환권을 발행하면 되는 것이야. 이것이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닌가? 하하하."
최홍서의 말에 권항필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런 둘에게 기분 나쁜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자자. 주먹밥이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텐데 이것 잡수시오."
“다들 이거 먹고 기운 내시오. 물도 있으니 목 막히지 않게 잡수시오."
어디선가 나무 수레가 여러 대 오더니 담장에 기대어 앉아있는 이들에게 주먹밥을 건네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나무 수레의 화덕에서는 물도 뜨겁게 데워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사람들은 사흘 동안 고함을 지르고, 제대로 먹거나 쉬지도 못해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이리 주먹밥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으니 하늘의 선녀가 건네주는 천상의 음식 같았다.
더구나, 그냥 곡식을 소금에 버무려 만든 게 아니라, 채소와 고기 조각이 들어가 있는 고급
주먹밥이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댁들 뉘시길래 이리 먹을 것을 주는 것이오?"
"우리는 춘상이라 불리는 춘봉 상단의 사람들이오. 상단주님이 지나가시다가 댁들을 보시고는 딱하다 여겨 음식과 물을 베푸셨소이다."
"춘봉 상단?"
"아, 경상의 배와 함께 돌아왔다는 그 배의 상단이구만."
“맞소이다. 본래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데, 해적에게 끌려간 경상의 선원들이 배가 없어 중국에 고립된다는 말에 손해를 무릅쓰고 경상의 선원들을 태워 왔다오."
“허허 보기 드문 선행이었구먼."
“거기다 또 우리에게 이리 주먹밥까지 베풀고 있으니 거기는 복 받을 것이오."
“어휴, 이 쓰레기 같은 한양 전장의 교환권을 안 사고 춘봉 전장의 교환권을 샀어야 했는데. 그땐 내가 뭔가에 씌었지."
사람들은 주먹밥을 먹고 뜨거운 물을 마셔 몸을 추스르자 다시 한양 전장의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담벼락을 허물기 위해 돌로 찍어 대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 언문을 잘 아는 자 있소? 춘봉 상단에서 매주 나오는 주보인데, 여기에 쓰여있는 것이 이상해서 확인해 보고 싶소이다."
주먹밥을 주고 간 이들이 다시 돌아와서는 10여 장의 주보를 사람들에게 주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어디 보자... 한양 전장의 앞에서 항의 중인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워 천 조각이 되어 버린 이익금 교환권을 반값에 사주겠다고 쓰여 있구랴."
"뭐? 반값에 이익금 교환권을 사주겠다고? 일반 교환권이 아니라? 이익금 교환권이라고 제대로 쓰여있는 게 맞소?"
"맞소. 그렇게 쓰여있소. 분명, 가치가 없어져 버린 이익금 교환권을 반값에 사준다고 하오."
“사준다는 것은 괜찮은데...반값?"
이야길 들은 이들은 반값에 사준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본전 생각이 나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본전에 2할의 이자를 얹어 준다던 교환권을 그 반값에 팔아야 한다고 하니 그 손해가 와 닿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사흘이 넘는 시간 동안 한양 전장이 대응하지 않았기에 '재산을 다시 찾을 방법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값이라도 사주겠다는 곳이 있다고 하니 귀가 트였다.
젊고 힘 있던 몇몇이 날래게 뛰어가기 시작했고, 점차 사람들은 춘봉 전장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양 전장 놈들은 이제 가치가 없다고 똥 닦는 천 조각으로 쓰라고 했는데, 반값이라도 주고 사주겠다고 하니 난 춘상에게 가겠소.”
“에휴. 가을에 뿌릴 볍씨를 다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반이라도 준다고 하면 가야지."
"그래도 그냥 가긴 억울하오. 이 쌍놈의 한양 전장 놈들에게 화풀이는 해야겠소."
파주에서 온 삼방이란 자는 이대로 가는 것이 억울하여 물 끓여 먹으라고 주고 간 화덕에서
불붙은 나무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불붙은 나무를 한양 전장의 초가지붕에 집어 던졌다.
"더러운 놈들 내 불맛이나 봐라!"
여러 곳에 집어 던진 불붙은 장작은 초여름 바짝 말라 있던 초가지붕을 금세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이야!"
"이 쌍놈의 새끼들 꼬시다!"
본래 불이 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달려들어 불을 끄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담장 밖 사람들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박수를 쳤고, 한양 상단의 사람들은 사흘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그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 불로 한양 전장의 건물 4채가 불에 타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는데, 최홍서는 사람을 풀어 불을 지른 삼방이를 잡아 포도청에 넘겼다.
그리고, 원종은 그 이야길 전해 듣자, 삼방이를 가엽게 여겨달라는 상소를 조정에 올렸다.
***
“대략 2만 냥 치의 교환권을 1만 낭에 구매했습니다. 더 이상은 우리도 여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환권을 살 때 확실히 지장은 다 받으셨지요? 나중에 이걸 원가격 그대로 우리가 받아 내게 되면 분명 돌려 달라는 이가 나올 것입니다."
“언문으로 만들어 지장을 일일이 다 찍게 했습니다. 다들 가치를 잃고 천 조각이 된 것을
'반값이라도 사준 것에 아주 고마워했습니다. 훗날 제값의 가치를 가졌다고 다시 와서 낯짝 두껍게 더 달라고 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김재원의 확신에 찬 말이 맞길 빌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었다.
분명, 나중에 다시 돌려달라는 이가 있을 터였다.
뭐, 그런 비율까지 어느 정도는 계산을 해두었기에 원종은 궐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한명회와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
“허허. 그 무슨 해괴한 말인가? 불을 질러 사람을 죽게 한 자를 살려달라는 탄원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성종은 고의로 불을 질러 사람과 재산을 상하게 한 지를 방면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왔다는 승지의 말에 화를 내었다.
“할아버지이신 세종대왕 시절 화적(火賊)의 방화(放火)로 인해 인가 2천여 호(戶)가 불에 타고, 수십 명이 죽었던 일이 생생한데, 화적을 방면해야 한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맞사옵니다. 이 삼방이라는 자를 능지처사(凌遲處死)하여 화석에 대한 본보기로 삼아야
하옵니다."
“헌데, 도대체 누가 이런 상소를 올린 것인가?"
“수군훈련원의 도정(都正)이자 병마 절제사인 전원종이옵니다."
"으응? 전 도정이 그런 상소를 올렸다고?”
성종은 원종이 이런 상소를 올릴 위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상소를 직접 읽어보기 시작했다.
"흐음. 상소를 보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뻔했소. 승지는 왜 이런 사정은 이야길 하지 않은 것이오?"
도승지인 권감(權)은 그저 성종을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전하. 이 삼방이라는 이가 죽을죄를 지었으나, 이처럼 피해를 당한 이가 몇천 명에 달한다고 하니 문제를 일으킨 교환권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교환권에 대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한명회의 말에 성종도 옳다고 여겼다.
성종 자신 또한 '주 요순 야 걸주’라고 불릴 정도로 밤에 궁을 나가 술과 여자를
즐겼는데, 그때 교환권의 편리함을 직접 체험했기에 교환권의 사용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할아버지인 세종대왕 시절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였던 저화와 통보의 문제까지 되짚어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환권을 만들어 유통한 전원종과 최홍서를 불러들이도록 하라!"